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 "하읏, 하아..-" "하악..- 하악...-" "흐앙, 으읏....-!" "하악...- 씨발." "흐읏....-?" 한 사람을 밑에 깔고서 열심히 애무를 하던 남성은 갑자기 낮게 욕을 내 뱉더니 하던 일을 그만두고서 땅에 떨어진 자신의 셔츠를 걸치고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그러자 침대에 거의 알몸으로 누워있던 이는 짜증난다는듯 말했다. "뭐가 또 불만인데?!" "더러워." "뭐가?! 또 뭐가 니 맘에 안 들어서 그러는거냐고!!" "남창새끼처럼 헐떡이는게 맘에 들지 않아." "씨발아! 그럼 니가 밑에 깔려봐!!!" 확실히 지금 짜증을 내고 있는 이는 남자였다. 이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입꼬리를 살짝 틀고서는 담배를 피는 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쫘아악------ "넌 언제나 니 욕구만 채우려고 들어. 그 점이 무척 맘에 안 들어." "하- 나 참. 너 지금 나 때렸냐?" "때렸다. 어쩔래? 씨발 놈,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너같은 새끼 알아봐야 됐어." "쿡, 지랄하고 있네. 맨 처음에 순진한 얼굴 하고서는 잘도 받아내더군." "미친놈! 그래도 그때는 니가 괜찮은 놈인줄 알았다! 괜찮은 놈? 쿡, 그때는 내 눈이 어떻게 됐나봐! 너 같은 새끼를 괜찮은 새끼로 착각하고!! 씨발!" 쏘아붙이던 이는 이내 눈가를 팔로 문질러댔다. 그러다 담배를 피고 있던 이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더니 폰과 지갑을 챙겨 방을 나서려했다. "어디 가는데?!!!!!" "너같은 더러운 새끼가 질질 짜는 거 보니까 속 터져서 나가려고-" "그칠테니까 있어!!!!" "그래도 욕구는 풀어야 될거 아냐. 너는 나를 충족시켜 주지 못 해." 쾅-!! 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는 집을 나갔다. 그러자 집에 홀로 남은 이는 바닥에 주저 앉아 아주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엉------!!! 나쁜 새끼야!!!!!!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흐윽,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미친 새끼야!!!!!!!!!!!!!!!!! 흐아아앙------" 결혼 생활 1년. 우리는 서로에게 싫증, 아니 정확히 남편이 먼저 나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의 권태기(倦怠期)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 그렇게 남편은 어젯밤 나에게 독설(毒舌)로 그를 괴롭히고서는 집을 나가더니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지글, 지글- 탁탁탁- 어젯밤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분명 오늘 오후쯤에야 올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바보같이 식사를 차린다. 물을 얹이고, 파를 썰어 넣고, 마늘도 잘게 다지고- 찌게를 식탁위에 얹어놓고, 갖가지 반찬을 꺼내어 놓고 밥을 떠 놓고 멍하니 앉아있는다.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시는 내 앞에 앉지 않을 너를,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그리고는 정성스레 차려놓은 식사를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방으로 들어가 회사에 갈 준비를 한다.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가방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넣고, 머리를 빗고, 안경을 쓰고- 권태기를 느끼는 남편을 기다리는 부인이 아니라 일반 회사원으로 사회에 뛰어든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가 인사하자 여자 직원들도 활기차게 인사한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가방을 내리고서 자신의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출근한 것 같지 않은 자신의 남편. "저기, 정윤호씨 아직 출근 안 했습니까?" "아, 아침 일찍 전화 왔는데 오늘 못 올 수도 있다고 하던걸요?" "정윤호씨가 용현씨한테 전화를 했단 말입니까?" "그런데, 왜요?" "아, 아닙니다." 그의 표정은 단번에 굳어버렸다. 아내인 자신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고 별로 친하지 않는 회사 동료에게 연락을 해서 결근을 알리다니.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 그였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구겨버렸다. 그때 지나가던 여 직원이- "어머, 유천씨. 그거 이번에 태휴 식품 계약서 아니에요?" "아-" "그건 중요하니까 다른걸 구기시라구요." "알겠습니다." 유천은 알겠다는 말을 끝내고서 폰을 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기분이 많이 상해버렸다. 정윤호 때문에, 자신의 남편인 정윤호 때문에- 1년 전, 우리는 부모님께 어렵게 허락을 받아 동성 결혼이 가능한 벨기에로 떠나서 혼인신고를 하고서 벨기에 지사에서 일을 했다. 물론 회사에서는 이 두 사람이 동성 결혼을 했는지 모른다. 철저히 숨겼으니까- 그러다 이번에 운 좋게 고향인 한국 지사에 발령이 나서 두 사람 다 한국 지사에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권태기는 한국에 와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더 심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보세요? "정윤호." -누구야..-? "하, 나 참. 넌 내 목소리도 모르냐?" -왜 전화했는데? "왜? 내가 전화하면 안 돼? 또 어떤 계집애랑 몸 섞고서 다 벗고 누워있나 본데- 내가 생각하기엔 니가 어제 나한테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해." -피식, 내가 무슨말을 했는데?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텐데." -회사 안이라서 곤란한가보지? 쿡, 난 내가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조차 나질 않는걸.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야 사과를 할 거 아냐. "야비한 새끼. 너 같은 더러운 새끼 살다 살다 처음 봐!" -아하, 그러셔? 지금 피곤하니까 끊어. "정윤호." -끊는다. "야!!!!! 씨발..-...!!!!" 유천은 욕을 내 뱉으려다 여기가 문득 회사 휴게실이란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재빨리 사무실로 돌아갔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가 꺼졌다는 기계음 섞인 여성의 목소리만 흘러나올 뿐- 그렇게 하루종일 회사 생활을 엉망적으로 하고서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 안에 들어서자 마자 끈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일부러 발소리를 쎄게 내서 걸었는데 신음소리를 그치지 않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짙어지기만 했다. 문을 닫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문이 활짝 열린 상태에서 자신의 침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윤호와 자신의 침대위에서 한 여자가 윤호에게 깔려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유혹적인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하으읏, 윤호..-" "하악-, 쿡, 역시 사내새끼 몸보다 부드러운 살결이 더 좋아." "하으응, 간지러-" 윤호의 소리와 여자의 신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부엌에 가서 유리 컵 하나를 들고와서 침실, 바로 침대 밑으로 던져버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가 깨어졌고 순간 끊기지 않을 것 같던 그 신음소리도 끊겼다. "하악, 박유천?"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마. 무척 불결하고 기분 더러우니까." "쿡, 지랄하고 있네. 자기가 무슨 고귀한 존재라도 되는 줄 아나보지?" "흐응, 윤호- 어서 내 안으로..-" "쿠쿡, 그래." 여자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문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 뱉었다. 그 덕분에 유천의 얼굴은 더욱 빨게 졌고, 윤호는 웃으며 그 여자에게 대답을 해주고는 유천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그여자의 몸을 만져대기 시작했다. "하으응-" "하악- 하악-" 유천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굳어버린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아....- 내가 널 사랑한 대가가 이런거였어? 정윤호, 너 정말 실망이야!" 유천은 결국 가방을 내팽겨치고 집을 나왔고, 유천이 나가자마자 거짓말처럼 윤호는 행동을 멈추고 침대에 걸터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박유천, 니가 이렇게 귀찮고 성가시는 상대일줄이야. 휴우-' 유천의 상처는 깊어만 간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 터덜, 터덜- 결국은 집을 뛰쳐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옷도 갈아입지 못 한터라 딱딱한 정장 그대로고 유천의 의지하는 폰 역시 밧데리가 다 떨어져 꺼져버렸다. 부모님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시면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왜 그런 결혼을 했냐고 하실까봐 겁이 나서 들어가지 못 했다. 그저 몇시간이 지나도록 걸었던 거리를 걷고, 또 걷는 수 밖에- "하아......- 빌어먹을 새끼." 우연히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자신이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공원이었다.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인데 지금은 시간이 시간인터라 사람들이 없다. 가끔 손을 잡고 지나가는 연인들밖에- 유천은 벤취에 앉아서 아까의 윤호를 떠 올렸다. 자신보고 보라는 듯 입가에 미소까지 지으며 여자의 몸을 능숙하게 쓰다듬던 그 모습.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던 그 장면. 툭, 투툭- "씨발, 박유천 니가 왜 우냐. 니가 왜 울어." 결국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유천은 자신의 손에 눈물이 떨이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서는 계속 닦아내지만 계속 흐르기만 하는 눈물을 닦여지지 않는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신이 바보같이 울 일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바보같이 눈물이 흐른다. "으흐흑, 나쁜 새끼때문이야!! 으흐으윽-!!" 유천이 울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이 힐끔 거리더니 나중에는 신경쓰지 않고 지나갔다. 그렇게 몇시간을 울고나서야 유천은 속이 후련해졌는지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는지 이제 공원에는 한명도 없었다. 가로등 불빛만 쓸쓸하게 공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 유천은 지금 두 다리를 의자위로 올려 몸을 움크리고서는 손을 뻗어 자신의 넷째 손가락에 자리잡은 은색의 심풀한 반지를 보고 있었다. -영원히 너만 사랑하겠다고 약속해. 결혼 당시가 생각난다. 결혼 허락을 받고 벨기에로 향해서 작은 성당에서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단 둘이서만의 결혼식때 윤호가 밝게 웃으며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영원히 너만 사랑하겠다고 약속해' ".........진심이었던거야, 아님 거짓이었던거야?" 괜히 허무한 기분이 든다. 권태기를 느끼고서는 아무 여자랑 몸을 섞고 어쩌다 한번 자신과 관계를 맺게 되는 날에는 중간에 하다가 충족하지 못 하다고 나가버리거나 했던 그. 그러고보면 '벨기에'에서 살았었던 1년동안의 결혼생활은 정말 행복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휴우......-" 유천은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바지를 털고 일어나 자신의 아파트로 향하였다. 지나가던 길에 24시간 편의점의 시계를 봤는데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넘기고 있었다.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일의 분량을 처리하고 11시 가까이 되서야 집에 왔는데, 집에서 여자와 몸을 섞고 있는 그를 보고 화가나서 나왔는데 이때까지 방황한 시간은 고작 2시간이란 말인가- 하루가 지나가고도 몇시간이 더 된것 같은데- * 달칵- 문은 다행히 열려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까의 그 신음소리는 없었고 여자의 신발도 없었다. 신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서니 침대는 말끔히 새 시트로 정리 되어 있었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윤호가 샤워를 하고 있나보다. 유천은 오늘 거실에서 자려고 이불가지와 잘때 입을 옷가지를 챙기고 있었다. 그때 윤호가 다가왔다. "이제 이불까지 싸 들고 나가나보지?" "상관하지 말고, 잠이나 자." "아까는 안 들어올 것 처럼 나가더니 왜 들어왔데?" "내 집이기도 하니까. 쿡, 너야말로 아까 그 여자랑 끝나지 않을 것 같더니 용케도 끊었네. 나때문이야?" "알긴 아는군. 니가 흐름을 끊었어. 재수없게도 말이지." '재수없게도 말이지.'...- 왜 이렇게 가슴을 무너지게 만드는지. 유천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들고 있던 이불을 다시 고쳐 들고 얼굴이 굳어서 얼굴 근육이 움직여지지도 않는데 억지로 움직이며 웃었다. "쿡, 그럼 이 재수없는 몸은 나가드리지요." "들어와서 자." "필요 없어. 저 더러운 침대에서 더 이상 못 잘것 같으니까." "너보다 더 깨끗할걸?" "상관하지마, 정윤호. 미쳐버리겠으니까." 유천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뒤 돌아 나와 문을 쎄게 닫고서는 거실로 나와 보일러를 약간 틀고 소파를 옆으로 치워 이불을 폈다. 그리고는 베개를 놓고 거실에 불을 끈뒤에 욕실로 들어갔다. 욕실로 들어가서 20분 정도 샤워를 길게 하고서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는 침실을 한번 노려봐주고는 거실로 와서 아까 펴 놓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있으니 잠이 올듯도 하다. 달칵-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그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숨결이....- "흐읍.....-!!" 그는 강하게 유천의 입술을 빨았고, 유천은 그런 그의 입술을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그는 집요했고, 유천은 쎄게 깨물어버렸다. "하악- 하악- 그 더러운 입술로 나한테 키스하지마. 하악- 나까지 더러워지는 듯한 느낌이니까." 유천은 비꼬움이 들어간 말투로 말을 내 뱉었고, 윤호는 인상을 잔뜩 구기고서는 손을 들어 유천의 목을 조였다. "커, 커컥..- 크윽..- 정...유..ㄴ...-!!" 그 힘이 너무 강하여 유천은 숨이 막혀 죽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히 윤호가 손을 풀어 유천은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윤호는 턱을 타고 흐르는 피를 닦으며 유천을 차갑게 쳐다보고서는....- "한번 더 이런 짓 했다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당장 죽여버리겠어." 이런 차가운 말을 내 뱉고서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남은 유천은 또 다시 숨죽여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 다음 날- 두두둑- 어젯 밤 그리 편하게 자지 못 해서 그런지 목을 움직이는데 뼈들이 우드득 거린다. 유천은 목을 부여잡고 욕실로 들어가서 몸을 씻고 나와 어젯 밤 윤호 혼자 잤을 안방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그는 아직 자고 있었다. 유천은 깨워야 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다가 회사에는 지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지 그에게 다가갔다. "야." "........" "정윤호, 그만 퍼자고 일어나!" "............." 윤호는 유천의 외침에 깊은 숨을 내 쉬며 몸을 틀 뿐이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행동에 조금은 심통이 나서 한대 때리려다가 침대가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잠자는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내가 너를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때는 오직 니가 잠들었을 때 뿐인가?' 유천은 뭔가 허무한 느낌에 허탈한 웃음을 한번 짓고서는 그의 뺨쪽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좀 더 손을 내려 입술 가에 손을 대었다. 그의 입속에서 피가 흘러내려 입술 위로 피딱지가 굳어 있었다. 그의 입술 위로 손가락을 갖다대려 하던 그 순간 그는 몇번이나 뒤척이더니 눈을 떴다. 유천은 갑자기 깨어버린 그때문에 놀라서 그대로 얼어있었고, 그는 부스스하게 일어나더니 유천을 보고 말했다. "뭐 하려고 그렇게 있냐?" "흥, 오해하지마. 회사에 지각하지 않게 깨우려고 했을 뿐이니까." "누가 뭐래냐." 윤호는 무심한 말을 내 뱉고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유천은 그가 들어가자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서는 작게 내 뱉었다. "나쁜 자식." -어? 유천이 먼저 깼네. -응. 윤호야, 식사준비했으니까 빨리 씻고 나와. -으응. 어? 그대로 가게? -그럼 뭐하고 가? -남편한테 굿모닝 키스정도는 해줘야지. -에이, 됐어. 남사스럽게.. -어? 이러기야? 나 삐친다? -훗, 알았어. 이번 한번 뿐이야. chu- -유천아, 나 지금 너무 기분 좋다. -그래? -이쁜 신부가 그 이쁜 입술로 신랑한테 뽀뽀해오니까 너무 좋다? -..///.... 됐어, 빨리 씻어. -유천아, 사랑해. -으응, 나두..- 윤호 사랑해.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시작했던 아침. 그런데 언제부터 서로에게 이렇게 냉담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이했는지. 과거를 회상하니 괜히 서글퍼져 유천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꺼내었다. 하얀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넥타이를 매기 위해 거울 앞으로 왔다. 남색 넥타이- -유천아, 이 색 웬지 잘 어울린다, 그치? -으응, 어두운데. -어두워도 잘 어울리는데? -정말? -응, 내가 사줄게. 사자! 알겠지? -응. 윤호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우리 둘다 벨기에 지사에 취직했을때 사줬던 것이었다. 항상 소중하게 보관하고 특별한 날에만 이 넥타이를 맸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고 느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참 넥타이를 매고 있다보니 아까 입속에서 새어나온 핏자국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한참 서랍을 뒤지더니 뭐 하나를 찾고서는 활짝 웃었다. 달칵- 윤호가 나오자 유천은 정장 마이를 챙겨 방을 나왔다. 윤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며 방안으로 들어서려 했고, 유천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윤호를 지나쳤다. 아니, 사실 그 짧은 순간에 유천은 이미 자신의 할 말을 윤호에게 했다. [서랍장 위에 연고 얹어놨어.] 그렇게 유천이 집을 나서고 나서 윤호는 느긋하게 옷을 갈아입고서는 아까 유천이 보던 거울 앞으로 다가와서는 넥타이를 매었다. 그러다가 유천의 말이 생각나 서랍장 위를 보았는데, 입 안에 바르는 연고가 있었다. 윤호는 그것을 손에 쥐고서는 몇번이나 들여다 보았다. "박유천." 혼자남은 집 안에 유천이 대답해줄리는 없었다. 윤호는 그런 것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넌 내가 너한테 관심이 없는 걸, 사랑이 식어버렸다는 것을 알고서도 이렇게 하냐?" '비참하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 당했다는 기분이...- 내가 죽도로 밉고 싫지 않아? 너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내가 너에게 먼저 싫증을 느꼈잖아. 난 박유천, 네가 이토록 지겹고 귀찮고 거슬리는데 넌 내가 그렇지 않냐? 박유천, 넌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거냐?' 윤호는 그러다가 서랍장 위에 엎어 놓았던 액자를 하나 세웠다. 그러자 두 사람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보였다. 그냥 입술 끝만 올리고 찍는 자신과는 달리 정말 환하게 미소를 짓고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서 사진을 찍은 유천.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하지만 죄책감이 든다고 해서, 난 너를 다시 사랑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 넌 이미 내게는 너무 지겨운 상대가 되어 버렸으니까." 달칵- 쾅-!! 윤호는 다시 액자를 엎어버리고 유천이 꺼내어 놓은 연고를 아무 곳에나 던져버린 후 옷을 마져 차려입고 방을 나왔다. 지독히도 행복하지 않은 부부. 이 부부에게는 '행복'이란 것이 존재했던 나날은 겨우 '1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 탁- 유천은 서류를 바라보다 가방을 내려놓는 듯한 소리에 옆을 보았다. 윤호가 왔다. 유천은 애써 시선을 돌려 서류를 바라보지만 아까처럼 서류에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연고는 발랐나? 빨리 상처가 아물어야 할텐데..-' 계속 머릿속에는 윤호가 연고를 발랐는지, 상처가 빨리 아물어야 되는데,라는 걱정만 가득 찰 뿐이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정윤호기때문에 이런건 걱정해 주지 않아도 되는데 계속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저기....-" 결국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말을 꺼냈는데, 말을 꺼내는 동시에 윤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한뭉치 들고, 과장에게 가 버렸다. 유천은 한참이나 윤호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때, 윤호가 볼일을 끝내고 왔는지 자리에 앉으려 할 때였다. 여직원이 윤호에게 말을 걸어왔다. "윤호씨, 커피 사드릴까요?" "아, 죄송합니다. 혀에 상처가 나서 단분간 뜨거운 건 피하려구요." 꼭 유천이 들으라는 듯 시선을 은근슬쩍 유천에게로 향하게 하여 말하는 윤호. 그리고 나서 여직원과 윤호는 몇마디를 더 나누더니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윤호가 앉자마자 유천은 조용하게 말했다. "너 나 들으라고 말한거지." "아니, 있는 그대로 말했는데 니가 왜 과민반응이지? 찔리는게 있나보지?" "정말, 너란 자식은..-!" 유천은 아까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윤호는 파일을 꺼내어 훑어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회사 안이야. 조용히 해." "하-" 유천은 기가 막힌다는 듯 윤호를 노려보고서는 고개를 획 돌려 서류만 뚫어질 듯 노려본다. 끓어 넘치는 화를 애써 참고 있는 유천이었다. 당장이라도 윤호의 뺨에 빨간 손자국을 남겨주고 싶지만 윤호가 말한대로 회사 안이다. 자제해야한다. "빌어먹을." 결국 죄 없는 종이 하나가 유천의 손안에서 구겨져 나간다. 윤호는 슬쩍 유천의 자리로 눈을 돌려 보더니 유천의 행동을 보고 아무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 그렇게 6시가 되어 회사에서 마치자 마자 유천은 바로 회사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평소에는 윤호가 내려가는 시간에 맞춰 같이 내려가는 유천이지만 오늘따라 계속 비꼬우는 듯한 윤호때문에 기분이 상해버려서 마주치기도 싫은 것이었다. 삑- 리모컨을 눌러 차 문을 열어서 차를 막 타려했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그 순간 누군가가 유천의 움직임을 멈추게했다. "같이 가." "싫어." "박유천." "나 오늘 니 얼굴 보기 싫으니까 꺼져." "내가 한 말에 혼자서 흥분한건 너 아니던가?" "......씨발, 그래! 나 혼자 흥분하고 화났다! 그러니까 그 손 떼!" 유천은 차문을 닫지 못 하게 방해하는 윤호에게 앙칼지게 소리쳤다. 윤호는 할 수 없다는 듯 손을 떼고 차문을 닫아 주었다. 유천은 시동을 켜고서 그대로 빠르게 차를 출발 시켰다. 윤호는 허탈하다는 듯 한숨을 내 뱉고서는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롯가로 나갔다. 그렇게 택시를 잡기위해 서 있는데 익숙한 차 한대가 매끄럽게 주차되었다. 이내 창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씹, 그냥 가기전에 어서 타." "쿡....-" 귀가 새 빨게져서는 앞만 바라보고 자신보가 타라는 유천이 웃겨서 조그만 웃음을 내 뱉었다. 그 웃음 소리를 들었는지 유천은 귀를 더 붉히며 외쳤다. "빨리 타!!!" "그냥 갈 것 같더니." "맘 변했을때 빨리 타!" 유천의 외침에 윤호는 다시한번 조그만 웃음을 내 뱉고는 차에 올랐다. 윤호가 타자 기다렸다는 듯 출발하는 차. '박유천, 넌 어쩔 수 없나보군. 차갑게 돌아서는 것 같으면 다시 나에게 돌아와 있으니....- 하지만 미안하다, 박유천. 난 너에게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어.' 빨간 불- 퇴근길이라 그런지 도로가 꽉 막힌다. 최근에 서로에게 어색해지고서는 긴 시간을 같이 있지 않았던 두 사람. 같이 있더라 하더라도 결국은 한사람이 먼저 싫증을 내고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차안은 조용하다. 차 안에 사람이 타고 있는지도 의문이 갈 정도다. "많이 막히네." 유천은 전혀 움직일줄 모르는 차들을 보니 답답해져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독시리 조용해서 평소에 즐겨 듣던 테잎을 넣었다. 그러자 흘러 나오는 노래는-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 "아-" 탁- 무의식적으로 그 노래를 듣자마자 바로 꺼 버렸다. 웬지 지금은 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행동을 이상하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체 그 테잎을 꺼내어 손에 꽉 쥐고서 핸들을 잡았다. 다행히 그 순간 도로가 뚤리기 시작했고, 유천은 차를 운전해나갔다. '두려워서...- 너랑 이 노래를 듣기가 두려워서 껐어. 큭.....- 너 그거 알아? 이 노래, 결혼 전에 니가 많이 불러줬던 노래잖아. 그때가........ 좋았다, 그치?' 꺼내지 못 하는 말을 애써 가슴속에 묻으며 눈물을 삼키는 유천이었다. 환청이 들릴 것만 같아서- 노래를 끌 수 밖에 없었다. '유천아, 사랑해.' 노래를 부르고 나서 항상 버릇처럼 해 줬던 그 말이 환청으로 들릴 것만 같아서 노래를 끌 수 밖에 없었다.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는 가슴시린 한 남자의 슬픈 사랑.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 스르륵-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앞으로 15층을 더 가야한다. 유천은 좁은 공간에 윤호와 자신. 이렇게 둘만 있자 괜히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정작 윤호는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데- 누구 한 사람이라도 중간에 엘리베이터를 멈춰서게 해서 타 줬으면 좋으련만 엘리베이터는 한 치의 멈춰섬도 없이 계속 15층을 향해 올라가기만 한다. "하아...-" 유천이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 쉬자 윤호가 쳐다본다. 유천은 갑자기 윤호가 자신을 쳐다보는게 머쓱해서 바껴가는 숫자에 눈을 돌릴 뿐이었다. 땡- 15층. 드디어 도착했다. 유천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말자 튕기듯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자신의 집인 1502호 앞에서서 열쇠를 꺼냈다. 그리고는 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쉬고 싶다는 생각에 열쇠를 집어넣어보지만 유천의 급한 손길 때문인지 열쇠는 열쇠구멍에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 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냐? 왜 그렇게 당황해?" "아니야." 철컥- 유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유천은 재 빨리 집에 들어와서 방으로 향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넥타이를 풀어 걸어둔 뒤에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챙겨 들었는데- 쾅- "비켜." "여기서 갈아입어." "싫어." 윤호는 어느새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아버리고는 문을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옷가지를 들고 있는 유천에게 여기서 갈아입으라고 권했지만 유천은 싫다고 하고서는 윤호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다시한번 말했다. "비켜." "이제 내 앞에서는 옷도 갈아입기 싫다는건가?" "상관하지 말고 비켜." "박유천." "부르지마." "..........." "부르지마, 내 이름. 난 너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사람이야. 그런데도 어느 순간에 니 생각하고 있는 날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줄 알아? '박유천, 정말 비참하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 "비켜줘." 달칵, 쾅-! 윤호는 유천이 나가고도 한참동안 멍안히 서 있기만 했다. 눈물이 눈에 잔뜩 고여서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데 눈물이 흘러내릴까봐 눈도 깜빡이지 않는 유천을 보니 괜히 가슴이 저렸다. 눈물이 잔뜩 고여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비켜달라는데 안 비켜 줄 수가 없었다. 유천의 우는 모습과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니 한순간에 힘이 쫙 빠져 버렸다. 윤호는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가 서랍장 가까이 가서는 오늘 아침에 그냥 덮어버린 액자를 손에 들었다. 밝게 웃고있는 유천- 그리고 방금 봤던 우는 모습의 유천. "큭.....-" 윤호는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웃음이 꽤나 씁쓸해보였다. "싫증이 났다해도.........- 너를 사랑했긴 했나보다." '니가 우는 모습에 가슴이 저린걸 보면 말야.' 윤호는 한참이나 유천의 웃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담은 액자를 손에서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유천의 눈물 고인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지워버릴 수 없었다. * 탁탁탁- 김치를 썰이고, 고추를 물에다 씻고, 김치 찌게를 만들기 위해 물을 얹었다. 찌게에 넣기 위해 김치를 썰고 있는데 갑자기 손에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 유천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김치를 썰었고, 김치를 썰고서, 김치와 돼지 고기를 볶은 후 물이 끓는지 확인하고 김치를 넣었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물에 담궈뒀던 고추를 씻는데 또 한번 물에 뭔가가 툭 떨어져 작은 물결을 일으켰다. 유천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아무런 말도 없이 씻은 고추를 씻고, 또 씻었다. 그런데 아까 물에 한방울씩 떨어지던 그 '뭔가'는 이제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물이 끓어 넘치고 유천은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찌게의 불을 꺼버렸다. 그리고는 서서히 주저 앉았다. "흑....- 흐흡.......- 흐윽......-"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천의 어깨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유천의 한쪽 손은 자신의 입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유천이 주저 앉은 부엌 바닥에는 투명한 눈물 방울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울면 안돼, 박유천. 넌 강해. 그래서 울지 않아. 눈물을 흘리는 건 바보같은 짓이야. 박유천. 넌 강하니까 울지 말아야 해.'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거는 유천이다. '넌 강하다.', '눈물을 흘리는건 바보같은 짓이다.' '울면 안 된다.' 스스로 자기 최면을 걸어 눈물을 그치려 하는데 눈물을 계속 쉴새 없이 유천의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 달칵-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천은 당황해서는 당장에 눈물 자국을 손으로 훔쳐버리고서는 일어나서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다시 찌게를 끓이기 위해 불을 켜고서 아까처럼 분주하게 움직였다. 역시나 유천이 예상한대로 얼마 안 되어 윤호가 부엌에 나타났다. "밥은." ".......조금 있으면 다 되니까 기다려." "그럼 여기 앉아서 기다리지." "아니, 방에 들어가서 기다려." "왜-"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방에서 기다려." ".......박유천." "어서 방에 들어가라니까!" 유천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집안에 울렸고, 윤호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방에 들어왔다. 윤호가 들어가자 유천은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유천의 분주함을 뒤로 유천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 "빌어먹을." 윤호는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작은 욕을 내 뱉었다. 윤호는 아까 유천이 우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목소리가 잠겨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었고, 일부러 자신을 방으로 보내려는 점에서 알 수 있었다. "난 어떻게 해 줘야 하는거냐-" 윤호는 혼란한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없어 그저 팔로 두 눈을 가리고 유천이 부를때까지 한참이나 그렇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 달칵- "저기...-" 병실 안을 찾은 한 남자가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 팔에는 아파보이는 링겔을 꼽꼬서 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그쪽이....- 이선우?" "..............-" 남자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이내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러자 그 남자는 활짝 웃으며 한쪽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창민이야. 오랜만이지?" "...........-" 아버지 두 분이 고향 친구라 알게 된 두 가족이 있었다. 바로 창민네 가족과 선우네 가족. 하지만 선우네 아버지가 일때문에 선우가 8살때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갔다. 그때 창민의 나이 13살. 선우는 곧 잘 창민을 잘 따랐고, 선우만큼 어린 동생이 없는 창민은 자신을 잘 따르는 선우를 이뻐했지만 선우가 대전으로 이사가자 사이가 좋았던 이 두 아이도 만날 기회가 없어지게 되었고- 13년이 지나서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만나게 되었다. 교통사고. 그건 정말 교통사고였다. 선우가 운전하는 승용차에 부모님, 두살차이의 귀여운 여동생을 이렇게 태우고 단풍놀이를 마치고 오랜만에 외식까지 하고서 저녁 9시쯤이 되서야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상태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야기를 하시고 여동생은 카메라를 만지며 필름을 감고 있었고 선우는 나름대로 상쾌한 기분으로 운전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11톤 화물 트럭 운전기사가 졸음 운전을 해서 주행선을 넘어 선우의 가족이 탄 승용차와 충돌을 하고말았다. 엄청난 충돌사고 였다. 차의 앞부분이 크게 찌그러지고 유리가 깨졌다. 이내 곧 차에 불이 붙었고 상대편 트럭 기사는 허겁지겁 차에서 내려왔지만 이미 차에 붙은 불은 어쩔 수 없었고, 도로는 몇시간동안 꽉 막혀 있어야 했으며 이내 경찰들이 오고 119가 왔다. 선우가 눈을 떴을때는- 여동생은- 자신의 옆자리, 바로 보조석에 탔던 여동생은 그 자리에서 불에 타 2도 화상을 입고 즉사했다고 했고 부모님은 병원에 실려왔지만 그 날 밤을 넘기지 못 해 사망하였다. 살아남은 건 선우 한 명- 부딪혔을 당시 잠시 의식이 있었던 선우는 가족은 생각도 하지 못 하고 생존 본능 그대로 혼자서 차 문을 열고 도망쳐 10m 정도 떨어진 곳에 기절해 있었다. 깨어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된 선우는 미칠듯이 괴로워했고, 결국은 ~~~ '실어증'이라는 병에 걸렸다. 의사는 말했다. 그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려 말을 하지 못한다고- 마음의 문을 열면 말을 다시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선우 같은 경우에는 뇌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정신적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 하는 '실어증'에 결렸다고 하였다. 선우가 조금만 더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 찾는다면 말을 다시 할 수 있을거라 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도 안 된다고 했다. 선우의 타박상은 낫게 되었지만 말을 하지 못 했다. 결국 선우는 친척의 집에 맞겨 지거나, 혼자 살지 않고 아버지가 바로 죽기전의 유언처럼 아버지의 절친한 고향 친구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선우는........- 창민이를...........- 잘......... 따랐으니까..........- 우리가......... 없어도................- 창민이...........가.............- 쿨럭-!' '말하지 말게!! 살아야 될거 아닌가! 선우는 고작 21살이야!!!' '큭.......- 그러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우리..............- 아들............. 잘........................... 부타............ㄱ.......-' '여보게!!!!!!!!!!!!' 결국.........- 그는 말을 끝 맺지 못 하고 운명하였다. 선우의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서울에서 내려온 창민의 아버지는 선우의 아버지의 죽음에 많이 슬퍼하셨고, 나중에 많이 괴로워하는 선우를 친구의 유언대로 창민이와 같이 있게 하려했다. 그래서 이렇게 창민을 보낸 것이다. "많이 컸네." "...............-" "선우는 형이 안 반가워?" ".............." 선우는 아무 미동없이 창민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인형같았다. 한 곳만 응시하는- 초점없는 인형. 꼭 사람모습과 똑 같은 인형 하나를 앉혀 놓은 것만 같았다. "선우야, 이제 선우는 형이랑 같이 살아." ".............." 선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창민이 난처한 얼굴로 선우에게 물었다. "가기 싫어?" 선우는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다. 창민은 더 난처해 하며 선우에게 물었다. "왜 싫어?" ".................." "아- 우, 울지마!" 갑자기 선우가 눈물을 툭 떨어뜨리는 바람에 창민은 당황해 하며 휴지를 찾아 휴지를 뽑아 선우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선우가 우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자신의 가족때문에 이 곳을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쩔 수 없어.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께 부탁하셨거든-" 창민의 말에 선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부탁'이란 단어에 말이다. 창민은 선우의 갈색 머리칼을 장난스럽게 헝크리고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 의사선생님한테 갖다 올테니까, 옷 갈아입고 있어." "..............." 선우는 끝까지 아무 말도 없었다. 창민은 머쓱한 웃음을 한번 짓고서는 병실을 나섰다. 앞으로 한 집에서 같이 살아야 할 남자, 이선우.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그 상처를- 제발 치유할 수 있기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 "아버지, 엄마! 선우 데려왔어요!" 창민의 목소리에 소파에서 신문을 보던 창민의 아버지가,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던 창민의 어머니가 현관으로 나와 무표정을 하고서 서있는 선우를 반갑게 맞이한다. "어머- 선우 많이 컸구나." "선우도 이제 어른인데, 당연하지." "호호, 여튼 잘 왔어. 아줌마 식사준비 할 테니까 기다리렴-" "자, 피곤할테니 저기 앉자." 창민의 아버지 말에 선우는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곤 거실로 들어서서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창민도 선우의 작은 짐가방을 놓고서 소파에 앉았다. 창민의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선우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처음보지?" "............." 선우는 아무말도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몇번이나 말을 걸어도 선우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선우가 '실어증'에 걸린 것을 아직 모르는 창민의 아버지는 선우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말이 없이 고개만- 혹시 말하기 싫으니?" "..........." 선우는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들더니 창민을 쳐다보았다. 아마 창민에게 자신이 실어증에 걸려 말을 못 한다는 것을 아저씨께 알려주라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창민은 알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선우 '실어증'이래요. 그래서 한동안은 말하지 못 해요." "뭐?! 실어증?! 말을 잃는다는 그 병말이냐? 뇌에 이상이 있니?!" "아뇨, 선우는 잠시- 충격...- 때문에, 그런거구요. 안정을 취하면 조만간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데요. 대신...- 그 기간이 너무 늦어서도 안 돼죠." "그래, 그렇구나. 21살이라해도, 아직 어린 나인데- 쯧." 창민의 아버지가 안타깝다는 눈으로 선우를 쳐다보자 선우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창민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자신의 아버지께 무언의 외침을 했다. '그런 소리 하시면 어떡해요!!' 창민의 외침을 알아들었는지 창민을 아버지는 '아차!'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말할거리가 없어서 그렇게 거실에는 고요함이 맴돌았다. 그때 다행이도 창민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세 사람, 식사하러 와요!" "험험- 가자." 창민의 아버지는 많이 어색했는지 바로 일어나서 헛기침을 하며, 선우에게 가자고 말하고서는 바로 부엌으로 가셨다. 그런데 선우는 아저씨의 말을 듣지 못 했는지 여전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창민은 그런 선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일단 밥 먹으로 가자." 창민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고개를 든 선우가 작게 끄덕였다. 선우는 눈물을 참고 있었던지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아무래도- 아까와 같은 소리는 듣기 싫겠지. 창민은 선우를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선우의 어깨를 달래 듯 툭툭 토닥여주며 부엌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 창민은 애써 환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와아- 왜 이렇게 맛있는 거 많이 했어요?" "선우가 오랜만에 우리 집 오니까 맛있는 거 많이 해줘야지-" "엄마는, 평소에도 우리한테 이렇게 해 줄라니까요-" "너희가 착한 짓을 해야 이렇게 해주지. 그렇지, 선우야?" "..............." 선우는 멀뚱히 아줌마를 바라보더니 어느순간 끄덕이고서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선우의 행동때문에 부엌은 아까의 거실처럼 한순간에 고요함이 맴돌았고, 창민은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깨야 된다는 생각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어서 어서 먹자구요! 이 맛있는 음식 식게 할거에요?! 잘 먹겠습니다!" 창민이 한 숟갈을 떠 먹고서는 아직 숟가락만 손에 쥐고 있는 선우에게 환하게 웃으며 반찬하나를 집어서 흰 쌀밥 위에 얹어주며- "어서 먹어, 이거 맛있어." "............" 선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한 숟갈 떠 넣었고, 선우가 음식을 다 씹어 삼키자 아줌마는 선우에게 맛있냐고 물었고, 선우가 끄덕이자 행복해 하시며 아저씨의 옆에 앉으셨다. 금방 분위기는 되 살아났고,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일반 가정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탁- 하지만 그 이야기들인 선우가 젓가락을 내려 놓는 순간 끊겨버렸다. 선우는 한 순간에 조용해 진게 자신때문이란걸 알았는지 눈을 깜빡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창민은 그런 선우의 행동을 파악하고 선우에게 물었다. "그만 먹으려고?" 그러자 선우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창민은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좀 많이 남았네-, 좀 많이 먹어야 될텐데. 피곤하니까 2층에 올라가면 방 두개 있거든? 거기서 왼쪽편 방에 들어가서 쉬어." 선우는 다시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일어서서 수저를 싱크대에 담그려고 했지만 아줌마(창민의 어머니)께서 그냥 놨더라고 하시길래 선우는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그대로 부엌을 빠져나와 2층으로 향했다. 선우가 가고나자 아저씨(창민의 아버지)는 한숨을 내 쉬었다. "말도 함부러 하지 못 하겠구나." "어쩔 수 없어요. 한 순간에 가족을 잃었는데- 얼마나 가여워요." 창민의 말에 두 사람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식사가 시작되었고 이내 다시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 졌지만 창민은 내심 선우가 걱정 되기만 하였다. * "..........흐윽....-!" 참으려고 했는데- 우는 것이 너무 한스럽고 바보 같아 참으려고 했는데- 결국엔 또 터졌다. 그냥 싫었다. 너무 미울만큼 화목한 가족이- 일반 가정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들이- 그들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 자신의 가족들을- 너무나 그립도록 만들어 버렸다. 식사 내내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는 신문에서 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셨지- 우리 어머니는 맛있는 찌게를 식탁으로 가져오시면서 아버지께 제발 그런 따분한 이야기는 즐거운 식사시간에 하지 말라고 타이르셨지- 우리 귀여운 여동생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나에게 말해주기 바뻤지- 나는- 이런 우리 가족이 참으로 좋았고, 행복했지- 돌아가고 싶었다. 단 몇일 전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크윽, 흐윽-!" '내가 죽였어! 내가 죽인거야!!! 그때!! 그때 어머니하고 아버지한테 빨리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면-!! 선혜를! 선혜를 데리고만 내렸다면!! 바보 같이 나 혼자 살려고, 나 혼자만 벗었났어!! 이선우, 이기주의자!!! 세상에 살 필요도 없는 너같은 놈은 죽어야해!!!!' 선우는 자책하며 미친듯이 책상을 뒤졌다. 책상을 뒤지고 또 뒤져서 커트 칼을 하나 찾았다. 선우는 미친듯이 괴로워하며 커트칼의 칼심을 올렸다. 날카로운 칼 끝이 선우의 하얀 손목을 파고 들었다. 따갑고 아팠지만-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뜨거울 불 속에서 2도 화상을 입고 죽은 귀여운 여동생 선혜- 병원으로 옮겨지셨지만 더욱 괴로워 하시며 돌아가신 부모님- 그 세 사람의 아픔에 비하면 자신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힘을 줘서 칼 심을 넣었다. 피가 손을 타고 바닥에 흘러내린다. "큭.......-" '선혜야, 오빠 곧 갈게. 어머니, 아버지. 나 곧 갈게요- 우리 거기서도 같이 살아요. 우리 여기서 행복했던 것 처럼- 거기서도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 네 가족에서-' 그렇게 아무도 오지 않는 2층 방에서 선우는 피를 흘리며 점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식을 잃어가면서- 함께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곧.....- 갈게.' 나오지 않는 말을 몇번이나 반복한다. '곧 갈게.'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가고 아픔도 사라져간다. 선우는 가장 편한 미소를 지었다. 아프고 나서 처음 짓는 가장 편안한 미소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 지금은 아침 식사시간. 오랜만에 그와 함께 하는 아침을 맞는 유천이다. 그는 항상 유천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일어나서 출근을 해 버리거나, 아님 유천보다 훨씬 늦게 준비해서 항상 같이 밥 먹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가 "밥은-"이라고 하길래, 어쩌다 보니 같이 식사하게 되었다. 항상 혼자서 밥을 먹는둥, 마는 둥 했던 아침 식사를 오랜만에 맛있게 먹어본다. 갖가지 반찬을 담았던 반찬 그릇도 바삐 움직이는 젓가락으로 인해 비워지게 된다. 항상 반찬을 담으면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 담겨져 있던 반찬 그릇- "물좀 줘." "응? 아, 응." 유천은 밥을 먹고 있는 윤호를 보다가 윤호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자신보고 물을 달라하자 당황해 하다가 냉장고 앞으로 향했다. 그의 밥그릇은 평소와는 다르게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항상 가득차 있던 밥그릇. 그가 늦게 준비해서 아침 식사를 차려놓고 출근한 뒤, 집에 돌아오면 그의 밥그릇은 식은 밥을 가득 담고서 항상 덩그라니 놓여져 있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깨끗이 비워진 그의 밥그릇을 보니 기분이 좋을 수 밖에- 또르르- 물컵에 물을 따르는 소리가 오늘은 가볍게만 들린다. 그와 함께 식사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모든게 새롭게만 느껴지다니. 유천은 자신의 한심스러운 모습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가 물을 마시는 모습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정윤호, 너는 나한테 사랑이 식었을지 모르는데- 나는 그게 아닌가봐. 아직도 너랑 있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기만 해. 나 참 바보같아, 너한테 그렇게 서러움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널 보면 행복한걸 보니까. 아직도- 정윤호, 널 사랑하나봐.' 뭔가 아쉬운 듯한 눈으로 윤호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작스레 유천에게 눈을 맞추는 윤호때문에 두 사람은 우연찮게 시선이 마주쳤다. 유천은 화들짝 놀라서는 아직 남은 밥을 떠 먹었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시선이 의식되었는지 너무 어색하기만 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하지?' 이내 유천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웬일로 밥 먹어?" '아- 미쳤어, 이런 질문따위를 하다니. 이상한 질문이잖아-' 유천은 자기 맘대로 움직인 입술이 저주스럽기만 했다. 웬일로 밥을 먹느냐니- 그게 무슨 말인가. 밥은 항상 먹는데 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런 유천의 질문에 윤호는 비웃음 비슷한 것을 짓지 않고 유천의 질문의 본 의도대로 대답했다. "앞으로 아침식사는 너랑 먹을 생각이야." "웬일이야. 나랑 식사하기 거북해서 항상 밥 안먹던 거 아니었어?" '웃-! 왜이러는 거지? 왜 이렇게 비꼬인 말투만 계속 흘러나오는 거야!' 유천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런 말이 술술 나오자 속으로 꽤나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윤호도 그런 유천의 비꼬움을 눈치챘는지 유천에게 눈을 맞췄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눈을 마주치지 못 한체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려버렸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행동을 보고 한숨을 내 쉬더니 말했다. "거북하진 않아." "하- 그러셔? 그럼 다행이네." 달그락- 유천은 빈 그릇을 쟁반에 담아 싱크대에 담궈놓고, 반찬이 남은 것들은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고서는 재빨리 윤호와 함께있는 이 자리를 피했다. 방에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그러자 다리에 힘이 풀리듯 문에 기대어 주저 앉아버렸다. "하아- 박유천, 왜 그런 말을 내 뱉는건데-" '왜 그런 마음에도 없는...- 그런 차가운 말을 내 뱉는건데-' 유천은 그저 한숨을 내 쉴 뿐이었다. * "박유천...- 내가 그정도로 너를 싫어했었냐." 아직도 식탁앞에 앉아있던 윤호는 중얼거리듯 말을 내 뱉었다. 아까 유천의 말이 계속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 -웬일로 밥 먹어? -웬일이야. 나랑 식사하기 거북해서 항상 밥 안먹던 거 아니었어? -하- 그러셔? 그럼 다행이네. 비꼬임이 잔뜩 들어간 말투. 하지만 그 말투 속에는 자신이 상처를 받아 아팠다는 의미가 들어있었다. 꼭 유천은 그렇게 보였다. 상처를 받을대로 받아서 더 이상 다정한 말투를 내 뱉을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긴 유천이 그런것은 다 자기 잘 못이니까. 그런 유천의 모습을 보니까 미안했다. 하지만 '미안하다' 그 이상의 감정을 더이상 들지 않았다. "미안해, 박유천." '더 이상 너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들지 않아서 미안해- 너에게 '사랑'이란 것을 더 이상 느끼게 하지 못 해서 미안해- 내가 너에게 질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니가 아플일은 없었겠지, 이렇게 내가 속으로 미안해 할 일도 없었겠지. 그래, 모든게 다 내 잘못이지. 널 계속 사랑했었더라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박유..- 아니, 유천아. 왜 '사랑'이란 감정은...- 왜 이렇게 다시 되 돌려놓기가 힘드냐? 원래 '사랑'이 이런거야? 한번 잃으면 다시 되 돌려놓기 힘든거야? 다시 널 사랑할 수만 있다면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이란 감정을....- 너에게 느낄 수 없는 날 이해해 줄래?' 마음속의 진실한 고백이 밖으로 울리지 못 하고, 오로지 윤호의 속에서만 울린다. 윤호 역시 마음속이 많이 혼란스럽고 괴로운지 식탁에 엎드려 버린다. '사랑'은 무서운 것이다. 한번 잃으면 다시 제 자리로 돌려 놓기 어려운 것이 '사랑'이므로- 아무리 한 사람이 사랑 한다해도, 한 사람이 마음을 돌려버린 이상 다시 시작하기 힘든게 '사랑'을 시작하는 감정이므로- 그러므로 '사랑'은 무서운 것이다. 지금 이 두 사람은 '사랑'의 무서움이란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을지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 뭔가가 바삐 움직이는 듯한 느낌에 무거운 눈꺼플을 어렵사리 들어올렸다. 이제 곧 만나지 못 했던 가족들을 만나겠지. 그리고 다시 가족과 함께 행복할 수 있겠지. 선우는 어렵사리 눈꺼플을 들어올린 후 눈에 초점을 맞췄다. "하아.....-" 숨을 한번 내뱉음과 동시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이내 빠른 속도로 선우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익숙한 천장- 이 곳은 병원. '결국은 죽지 않았구나, 끈질기게도 아직까지 살아있구나'라는 생각이 선우를 괴롭혔다. 이제 편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왜 죽지 못 했던 걸까. 칼심을 더 깊게 넣지 못 했던가- "서, 선우야! 괜찮아?" ".............." 대답대신 눈물만 계속 흘렸다. 아무런 소리도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죽지 못 한것에 대한 한스러움 뿐- '왜 살았을까, 왜 살았지'라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계속 떠 돌 뿐이었다. 그런 선우의 행동에 선우를 병원까지 엎고 온 창민만 불안할 뿐- "선우야? 왜 계속 울어?" '당신 때문이야, 내가 산건 당신때문이야! 당신만 아니었어도!! 당신이 나를 살려서 난 또 죄책감에 시달려야해! 당신때문에!!' "흐, 으악..-! 으으악..-!! 으아아아악-!!!!!!!!!!!!!" "서, 선우야! 가, 간호사!!! 여기 좀 와봐요!!!" 갑자기 소리를 질러버리는 선우때문에 꽤나 당황한 창민이 재 빨리 간호사를 불렀다. 선우는 소리를 지르다 못해 좀 있다 몸을 흔들거리는 발작까지 보였다. 응급실에 있던 환자들이 다 선우와 창민을 쳐다보고 이내 응급실의 간호사가 진정제가 들어있는 주사를 들고와 선우가 맞고 있는 링켈에 진정제를 투입했다. 이내 선우의 발작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선우의 눈물은 그쳐지지 않았다. "선우야, 왜 그래? 많이 힘들어?" "................." '몰라- 당신은 내 심정 모를거야. 혼자 남은 이 기분 모를거야- 한순간에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을- 당신같이 행복한 사람들은 모를거야...-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가슴이 무너지는지-' 그렇게 선우는 팔목의 칼이 낸 커다란 상처와 함께 마음의 상처도 더 커져버렸다. 이런 선우의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다. * 회사 안, 즉 두 사람의 사무실은 지금 조용하다. 지금은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점심시간이라 모두 나간 것이었다. 사무실에 남은 사람은 단 두명. 그리 낯설지 않은 정윤호와 박유천. 이 두 사람 외에는 모두 근처 식당에 식사를 하러갔다. 유천은 바삐 자판을 두드리고 있고, 윤호는 서류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박유천." 탁탁탁, 거리던 유천의 타자 소리가 멈췄다. 윤호의 목소리만 낮게 울려 퍼질 뿐이다. 어색한 적막감. 유천은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 해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내 윤호가 다시 유천을 불렀지만 유천은 이번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계속 타자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윗줄에 써진 내용이 또 다시 반복 되고 있었다. '빌어먹을, 틀렸잖아. 정윤호 놈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돼.' "박유천, 몇번을 불러야 대답할래?" "니가 내 이름을 안 부를때까지." "그럼 내가 니 이름을 안 부르면 대답할래?" "내가 왜? 내 이름을 안 부르는데 대답을 왜 해?" 유천의 비꼬임이 잔뜩 들어간 말에 윤호는 한숨을 내 쉬더니 단정하게 매어진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 단추 하나를 풀었다. 그리고 조용히 유천의 뒤로 다가갔다. 조심히 유천의 뒤에서 한쪽 팔을 컴퓨터 책상에 고정시킨 뒤 뒤에서 유천을 껴 안는 포즈로 유천의 뒤에 허리를 약간 숙여 서 있었다. 순간 굳어버린 유천은 손놀림을 멈췄다. ".......비켜." "왜 이렇게 많이 틀렸지? 여기에 썼던 내용이 여기에 또 써지고 있잖아." "상관 하지 말고 비켜." "여기엔 접속사도 틀렸군. 제정신으로 일하고 있는거야?" "알아서 고치고 할테니까 가있으라고!!!!" "드디어 고개를 돌렸네?" 윤호의 말에 유천은 아차하며 다시 고개를 컴퓨터 모니터로 돌리려 했지만 윤호의 손이 더 빨랐다. 윤호의 손이 유천의 턱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손에 힘을 많이 준 윤호덕에 턱이 부러질 듯이 아픈 유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읏,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문서야. 어서 놔줘."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문서를 잘도 처리하고 있더군." "정윤호! 놔란 말야!!" 유천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치자 윤호는 유천이 앉은 의자를 돌려 자신을 마주보게 한 뒤 유천의 두 손을 결박하고서는 자신을 쳐다보게 했다. 하지만 윤호를 쳐다보는 유천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좀 있음 사람들 와.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싫냐?" "...........니가 날 싫어하는데 난 널 좋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래, 유천의 말이 맞다. 정윤호가 박유천을 싫어하는데, 박유천은 정윤호를 좋아할 이유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없다. 받지 못 할 사랑따위를 왜 해야하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랑을 박유천은 한다는 거다. 정윤호가 박유천을 싫어하는데, 박유천은 정윤호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좋지않아." "니 말은 진실, 내 말은 거짓이라, 이거냐?" "............." "하- 됐어, 꺼져. 손목 아파." 유천이 고개를 돌려버리자 그 순간 재 빠르게 유천의 고개를 들어올려 입을 맞췄다. 유천은 갑작스러움에 놀라서 두 눈만 깜빡 거리다가 이내 윤호를 있는 힘껏 내치고 입술을 가렸다. 유천의 얼굴은 숨을 쉬지 못 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악- 하악- 정말 너 같은 새끼는 사라져야해!" '마음대로 사랑하게 만들어 놓고, 마음대로 먼저 싫증내고, 마음대로 입 맞추고, 마음대로 사람 마음 설레게 하고, 마음대로 또 상처주는- 너같은 새끼는.....- 사라져야해!' 유천은 당장에 회사 내의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세면대에 서서 두 손에 물을 받아 입안을 몇번이나 헹궈내고 나서야 입가를 닦았다. '제발.........- 정윤호, 나한테 이러지마. 비참하게 만들지 마.....-!' 유천은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닦아내고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 한 체, 회사 내의 휴게실에서 동료 직원들이 오기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갔다. 정윤호와 단 둘이 있을 수 없어서. 그와 같이 있으면- 비참해 지는건 언제나 자신이기에. 두려워서 그와 함게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 공항은 오늘도 분주하다. 언제나 많은 사람이 나 다니는 곳. 입국하기도 하고, 출국하기도 하는 이 커다란 곳 중 한 게이트에서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들이 만나야 할 사람이나 떠나 보내야 할 사람과 인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자를 눌러 쓴 그는 짐을 받아 휠체어를 밀어 밖으로 나왔다. 서울 하늘- 공기는 탁하지만 하늘만큼은 푸르다. 공기가 탁하긴 해도 오랜만에 오는 고국이니 만큼 숨을 한번 들이 마셨다가 내 뱉어 본다.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물었다. "형! 한국이야, 정말 오랜만이지?" "............응." 휠체어에 탄 그는 힘없이 웃어보이며 작게 대답했다.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그는 푹 눌러썼던 모자를 벗었다. 그 순간 그의 꽤 긴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흘러 내려 닿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활짝 웃다가 순간 '아차!'하는 표정으로 폰을 꺼내어 번호를 입력하고 'SEND'를 눌렀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달칵- -여보세요? "어, 유천이 형!" 몇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나서야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는 활짝 웃으며 '유천이 형!'이라고 외친다. 아마 유천과 아는 사이인 듯 했다. 그리고 나서 2분 정도 통화하고 나서야 그는 전화를 끊고서 휠체어를 밀며 말했다. "유천이 형이 집 앞에 가 있으래. 그럼 곧 올 거라고- 어서 가자." "그래." "형, 많이 피곤하지? 유천이 형 집에가서 안마해줄게." ".......니가 피곤하지, 뭐." "그런 소리하지 마. 형은 그런 소리하면 안 돼." 그렇게 그들은 어렵사리 택시를 잡아 유천의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과장님, 오늘 집에 중요한 손님이 와서 그런데 먼저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래. 퇴근해도 좋아. 저번에도 늦게까지 남아서 일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천은 자리로 돌아와 오늘 집에가서 봐야할 서류들을 챙겨 가방에 넣고서 정장 마이를 챙겨입었다. 그러자 옆에서 윤호가 물었다. "누가 오는데?" "우진이하고 재중이. 그럼 간다." 유천은 꼭 윤호를 피하기라도 하는 듯 금새 윤호와의 대화를 마치고 회사를 나와 주차장에 가서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지금 시간은 오후 3시. 학생들도 아직 안 마쳤을 시간이고 사람들도 아직 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기에 도로는 시원하게 뚤려있었다. 유천은 습관처럼 창문을 열고 노래 테이프를 놀았다.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 테이프를 바꿔 끼워 놓는다는게 깜빡하고 아직도 이 테잎을 넣고 있었다. 유천은 '제길'이라는 말을 낮게 내 뱉고는 끄려다가 그냥 뒀다. 날씨도 맑고 멜로디도 맑고 부드러운데 왜 이렇게 기분은 더러운지. 유천은 아까보다는 조금 거칠게 운전을 해 나갔다. 끼익- 이내 곧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고, 유천은 익숙하게 17층을 눌렀다. 얼마 안 있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유천은 오랜만에 정말 화사하고 밝게 웃었다. "야! 전우진! 정말 오랜만이잖아!" "형! 진짜 오랜만이야!" 두 사람은 꼭 껴안고 인사를 하더니 이내 떨어지고서는 서로를 마주보고 환하게 웃었다. 유천은 그렇게 진과 인사를 하고 허리를 조금 숙여 재중을 보았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으며 밝게 인사했다. "재중아, 잘 왔어." "그래, 오랜만이다." 보기만 해도 '아! 멋지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재중인데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멋지다. 보고 있으면 어디다 시선을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멋진 사람, 김재중. 유천은 집으로 들어가면서 재중을 보고서 말했다. "다리는 어때?" "물리 치료 꾸준히 받고 있어. 그리고 그쪽에서 어느정도 나아서 왔고." "맞아, 조금만 더 치료 받으면 다시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데!" 우진은 신나서 유천에게 떠들썩 하게 말하고서는 재중에게 "그치?"라고 귀엽게 물었다. 그러자 재중은 웃어주며 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우진은 그런 재중을 보고 베시시 웃는다. 유천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은지 자신 역시 웃으며 재중을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 옷을 갈아입은 후 마실 것을 꺼내왔다. "그럼 이제 한국에 있는거야?" "응, 그렇게 됐어." "그렇구나, 그럼 살 집은?" "미국에서 틈틈히 알아놓은 탓에 이 인근에 마련했어." "그래? 가까워서 다행이네." 그렇게 몇십분을 그들에 대해 말하다가 재중의 어떠한 말로 인해 이야기의 흐림이 끊겼다. 아니, 정확이 말하자면 유천이 갑자기 얼굴을 굳혀버리고 말을 뚝 끊어 버렸다. 재중이 유천에게 한 말은- "윤호랑 잘 살고 있지?" "유천아?" "유천이형?" "아아- 아니야, 그럼! 잘 살고 있지! 내 얼굴보면 모르냐?" "흠- 그런가? 그런데 작년보다 살이 더 빠진 것 같아." "나이가 들다보니까 계속 빠지네, 하하-" 유천의 농담섞인 말에 분위기는 다시 띄워진다. '잘 살고 있냐고? 그런 것 같아? 나 사실 너무 힘들어. 너무 힘들어서- 계속 지쳐가......-' 마음속의 말은 꺼내지 못 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계속 웃으며 얘기만 하는 유천. 하지만 아까 볼 수 없었던 그늘이 유천의 얼굴에 생겼다. 괴로워도 바보같이 웃는 남자. 속에 있는 말은 꺼내지 못 하고 계속 혼자서 끙끙 앓기만 하는 바보같은 남자. 이 바보같은 남자는- 한 남자를- 너무나 지독시리 사랑해서............-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2] 달칵-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윤호가 열쇠로 문을 열고서 집 안으로 들어선다. 요즘 기분도 영 그렇고, 마음이 많이 혼란한 탓에 오랜만에 칵테일바를 운영하는 친구를 찾아가 칵테일을 마시고, 얘기하다 보니까 12시가 넘어버렸다. "하아-" 소파위에 서류가방을 내려놓고 등을 기대어 앉아서 한숨을 내 쉬었다. 그때 베란다 쪽에서 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웬 한숨이야?" "누구.....-" "나야." 윤호는 인상을 조금 찌푸려 어둠속에서 상대방을 확인하더니 이내 얼굴에 조그만 미소를 짓고서는 소파에 바로 앉았다. "오늘 귀국한거냐?" "그렇지, 뭐." "다리는?" "미국에서 치료 받고 왔으니까, 이제 한국에서 물리치료만 받으면 돼." "다행이네." "그렇지, 뭐." 김재중, 그는 정윤호의 중, 고, 대학교 동창이다. 엄청 오래 된 친구, 김재중. 그런데 그런 김재중이 가끔 취미 삼아 하던 모터 싸이클을 즐기다가 아마 엔진에 고장이 나서 차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그대로 벽에 부딪혔는데 차 밑에 다리가 깔려버린 재중은 하체마비가 와 버린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완벽하게 낫게 하기 힘든걸 알고서는 1년전에 친한 동생이었던 진과 미국에 치료를 받으러 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지나서야 재중은 물리치료만 받으면 나을 수 있을 정도의 좋은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우진이는 어때? 여전히 그래?" "뭐, 그렇지..-" 윤호는 재중의 대답에 그렇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는 정장 마이에서 담배하나를 꺼내어 불을 붙여서 입에 물고서 떼었다. 윤호의 입에선 하얀 연기가 빠져나왔다. "전우진도 참 재수없는 녀석이지." "그때는 정말...- 휴우..-" 재중은 생각하기도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고가 난 당시- 엔진에 고장이 나서 차가 벽에 그대로 충돌하는 바람에 차에 깔려 하체마비가 온 재중- 그 당시 엔진을 갈아 줬던 사람은 다름 아닌 우진이었다. 당시 재중의 모터싸이클 팀 내에서 지프 역할도 했었던 우진이 재중의 엔진을 갈아주었고, 하필이면 그 엔진이 말썽을 부렸던 것이었다. 죄책감. 전우진은 김재중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 자신때문에 재중이 반신불구가 되 버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재중이 미국에 치료를 받으러 간다했을때 그 누구보다 앞서 자기가 간다고 나섰던 것이었다. "우진이는 자냐?" "유천이랑 자. 그런데 정윤호." "왜?"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하고 얘기하면 항상 '유천이는, 우리유천이는' 하면서 박유천 얘기를 잠시도 그치지 않더니 오늘은 웬 일이냐?" "아- 큭, 내가 그랬었냐?" 윤호가 시니컬 하게 웃으며 말하자 재중이 이상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윤호를 바라 보았다. 윤호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재중은 그런 윤호를 보고서는 말했다. "아까 유천이도 좀 이상하던데, 너희 싸웠냐?" "싸웠다라-" 재중은 알리가 없다. 1년전에 미국으로 떠났던 재중. 한참 윤호와 유천이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기. 서로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시기. 재중이 미국으로 떠나고서 얼마 안 되어 자신들도 벨기에로 떠나 1년동안 행복한 신혼을 즐겼지. 그리고 행복은.............................. 그게 끝이었지. "김재중, 너 공부 잘하지?" "음- 그런가?" 재중은 윤호의 물음에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그러나 윤호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재중은 그런 윤호를 이상하게 생각하고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너 공부 잘 하니까...- 하나만 알려줘라." "뭘?" ".........'권태기'라는 거.......- 극복...... 하는거." "뭐?" "내가...... 다시 박유천을.........-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는 거...-" "..............." "미치겠다.... 미치겠어, 김재중.....- 왜 이렇게................- 박유천이 싫냐........-? 어떻게 하면 돼?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랑 할 수 있냐? 어떻게......... 하면?" 띄엄 띄엄 말을 꺼내는 윤호의 말에 흐느낌이 들려왔다. 재중은 휠체어를 끌고 윤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윤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권태기냐?" "으흑....-!" 윤호는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재중은 오랜 친구를 토닥여주며 그저 아무 말 없이 위로해 줄 뿐이다. 현재 오랜 친구로써 윤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슬픔을 달래어 주는 것일 뿐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3] 달그락- 윤호는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젯 밤 그렇게 재중과 얘기하다가 재중이 먼저 들어가고 나서 한참이나 혼자 있다가 소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듯 했다. 윤호는 몸을 일으키며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몸이 더 많이 뻐근했기 때문이다. 윤호는 소파 밑으로 발을 딛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불. '..............어제 그대로 잤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겉 옷도 벗겨져 있고, 어제 착용하고 있었던 안경도 벗겨져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다. 그리고 따뜻한 이불도 덮어져 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은 단 한명 뿐이다. 박유천. "휴우- ....으읏-!" 유천이 한 일에 한숨을 내 쉬며 일어서려 한 윤호는 머리를 짚으며 다시 앉아야 했다. 어제 마신 칵테일도 꽤 쎈 것이었는데, 재중이 방에 들어가고 나서 집에 있는 소주를 따서 또 마셨으니- 머리가 꽤나 아플 것이다. "머리 아파?" 머리를 짚고서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는 윤호에게 걱정스러워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익숙한 목소리. 이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아내, 박유천의 목소리다. 유천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유천은 꽤나 놀란 듯 코앞에 갖다 댄 얼굴을 바로 떼어 굽혔던 허리를 바로하고 윤호를 내려본다. "꽤 많이 마셨더군-" "그렇게 마시고 집에와서도 마셨으니까." "술냄새 나. 어서 씻고 와, 국 끓여 놨으니까." 유천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서 뒤 돌아서려 했는데 그 순간 윤호가 유천의 팔목을 잡아 자신의 옆에 앉혔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유천이 재 빨리 일어서려 했지만 윤호가 다시 잡아 당기는 바람에 옆에 앉게 되었다. 유천은 한숨을 내 쉬더니 "용건이 뭐야?"하고 다시 차가운 표정으로 윤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반대로 윤호의 눈은 침착했다. "미안하다." "............" 갑작스런 윤호의 말에 유천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다시 한번 말했다. 이번엔 아까보다는 부드럽게- "미안해, 유천아." "............" "유천아."라니,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일까. 유천은 그냥 마음이 저렸다. 그리고 코 끝이 찡해졌다. 윤호는 살짝 웃더니 조심히 유천을 감싸안아서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이번만큼은 유천도 피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했다. * 탁- "하아-" 재중은 문을 닫고 들어와 휠체어를 문에 붙혀 문에 기대었다. 유천과 윤호의 대화, 그리고 입맞춤. 윤호의 행동을 종 잡을 수 없었다. '권태기'로 인해 힘들어 하는건 어젯밤에 알았다만 방금 윤호의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미안해"라는 그 말은 무엇인가. '정윤호, 딱 끊어서 분명하게 행동해.' 재중은 또 다른 친구 유천이 걱정 되었다. 윤호가 권태기를 느끼면 힘들 사람은 분명 유천이다. 아까 대화를 들어봐서는 유천도 윤호가 자신에게 권태기를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는게 분명했다. 그런데 윤호가 저런 무분별한 행동을 하다니, 저런 행동은 유천에게 오히려 상처가 될 것이다. "........형- 뭐해?" "응? 아, 우진아." 재중은 침대위에 앉아서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해 두 눈을 부비적 거리는 진을 보고서 휠체어 바퀴를 돌려 침대까지 가서는 진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자. 식사는 유천이한테 말해 놓을게." "아니야, 자기는- 형도 씻어야지." 그렇게 잠 많은 아이가 자신때문에 억지로 일어난다. 다리가 불편해 혼자 씻으러 욕실까지 스스로 들어가지 못하는 재중을 이끌고 마비가 온 다리를 정성스레 씻겨 주며 "시원해?"라며 베시시 웃는 그 모습이 항상 볼때마다 안 쓰러웠다. 재중은 그런 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팔을 조금 더 내 뻗으며 겨우 닿은 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하는거야?" "칭찬해 주는거야." "응?" "착한 일 해서 칭찬해 주는거야." "정말?" '정말?'이라는 말을 내 뱉고서는 베시시 웃어버리는 이 아이. 괜히 마음이 저리다. 갑작스럽게 반신불구가 된 자신때문에 느껴야 할 행복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체 항상 자신의 곁에만 있는 이 아이가 안쓰럽다. 재중은 코 끝이 찡해졌다. 그리고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목 매이는 소리로 말했다. "이.....리와....- 착한.....일 했으니깐......- 형이... 형이 꽉 안아줄게..-" "응!" 그러면서 또 바보같이 베시시 웃어버리고서는 재중의 품에 포옥 안기는 진. 재중은 그런 진을 불편한 자세로 안고 있으면서도 놓지 않으려는 듯 우진의 어깨를 꽉 안고 두 눈을 감았다. "더 자......-" "형은......-?" "많이 잤어." "됐어, 그러면 씻으러 가자." "아니, 아직........- 아직 이 방 밖으로 나가지 말자." "응?" "그냥........... 자자." 재중의 목매이는 소리에 우진은 한참이나 가만 있더니 다시 그 웃음을 지으며 "알았어."하고 재중을 휠체어에서 일으켜 부축해서 침대위로 올린 후, 이불을 덮어 준다. 그리고 자신도 그 옆에 누워서 빙긋 웃었다. "형, 그럼 잘자." "그래.....- 우진이, 좋은 꿈 꿔." "그럴게." 우진은 마지막으로 대답하고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 소리. 우진이 잠들었다. 재중은 우진의 머리칼이 얼굴을 가리지 않게 뒤로 쓸어 넘겨준다. "미안해, 우진아." 이른 아침부터 집안 전체에 슬픈 기운이 맴 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4] 탁, 타탁- 흐르는 음악에 맞춰 핸들에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춰본다. 아침에 윤호가 한 말때문인가? 기분이 좋다. 그냥 상쾌하다. 평소에는 잘 느낄수 없었던 이 기분- 아니, 평소에 느낄 수 있더라도 요즘들어 한번도 느껴보지 못 했던 이 감정. 그래서 주체할 수 없이 기쁘기만 하다. '기다릴테니까- 오늘 처럼만...- 오늘처럼만- 나한테 해주면 돼. 빨리 돌아오는건 바라지 않을게. 천천히라도 좋으니까- 다시 돌아와주기만 하면 돼.' 유천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늦어도 좋으니까, 천천히해도 좋으니까 떠나버린 그 감정을 다시 찾아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것 뿐이다. 오랜만에 회사 동료 직원들에게 밝게 인사하고 자리 앉았다. 유천이 인사를 하면 모두 하나 같이 웃어주며 하는 말이 "박유천씨, 오늘 좋은 일 있어요?" 이것이다. 유천은 동료들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본다. 매일 아침 그렇게 인상이 좋지 못 했던가- 하지만 이제 아닐 것 같다. 이제는 매일 이렇게 웃는 날만 있겠지. 유천은 절로 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 하고 얼굴에 그대로 표현해 버린다. 그리고 팀장에게 가서는 윤호의 결근을 알린다. 팀장은 윤호가 결근했다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요즘 정윤호씨 너무 잘 빠지는 거 아니야?" 라고 물었지만 유천은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자리로 돌아왔다. 웬지 하루종일 기분이 좋을 것만 같다. 오늘은 집에 가기 전 마트에 들려 윤호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사 가서 저녁 식사때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유천이었다. 오늘은 윤호에게 예전처럼 잘해주고 싶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윤호가 예전처럼 돌아 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서- * "나 슈퍼 다녀 올게!" 쾅-! 우진이 슈퍼에 간다고 하고 집에서 나가자 재중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정윤호, 오늘 아침-" "........봤냐?" "권태기라며?" "근데?" "'근데?'라니? 오늘 유천이한테 한 행동이 뭐냐고." "아아- 키스? 나름대로 권태기 극복하려고 한 행동중 하나." "유천이 마음은 생각해 봤냐?" ".................기분만 좋겠지." "야, 정윤호." 재중은 무심한 윤호의 말에 화가 안 날수가 없었다. 저렇게 무심할 수가 있는가. 오늘 아침 유천에게 그렇게 키스를 해 놓고 지금은 저렇게 유천에게 무심할 수 있는건가. 재중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윤호를 불렀다. 윤호가 재중을 돌아보자 재중은 윤호를 노려보았다. "너, 내가 다리만 정상이었다면 너 패고도 남았다." "하아- 그래, 나는 맞아도 쌀 놈인데- 어떻하냐. 떠나간 마음인데-" "잡아. 그 마음 잡으라고. 너희 동성이면서도 어렵게 결혼했잖아." ".............." "그런데 이제와서 사랑이 식었다고 이러는거야? 남은 인생 계속 이렇게 어색하게 살거야? 너는 마음이 떠났다지만 아직도 널 사랑하고 있는 박유천은 어떻게 돼? 뭐가 되냐고!!" "..............그렇게 걱정되면- 니가 박유천 좀 맡아라." 퍼억-! 한순간이었다. 악에 받친 재중이 한순간에 일어나서 윤호를 팼다. 그 순간 정말 타이밍도 좋게 우진이 슈퍼 갔다 들어왔다. 그리고 거실로 들어서자 마자 쓰러져 있는 윤호의 위에 올라타서 주먹을 뻗고 있는 재중을 보고 기겁을 하고서는 재중을 억지로 윤호에게서 떼어낸 후 부축했다. "정윤호!!! 너 그딴 소리하는 거 아니다!!!!!!!! 사랑했으면 책임을 져야 할거 아냐!!!!!! 너그렇게 무책임한 인간이었어?!!!!!!!!!!!! 끝까지 마무리 지으란 말야!!!!!!!!!" "형!!!! 그만해!!!!! 그만해애!!!!!!!" 윤호는 쓰러진 몸을 일으키며 씩씩 거리는 재중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며 진에게 말했다. "재중이 많이 흥분했다. 니가 안정좀 시켜라." "응? 어어, 알았어." "정윤호, 똑바로 행동해. 너 하나로 인해 상처받을 사람 생각해." 쾅- 윤호의 방 문이 닫기자 우진은 재중을 부축해 휠체어에 앉힌 후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중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닦아주며 "왜 그랬어"라며 울듯이 물었다. 재중은 그런 우진의 손을 잡아 우진의 행동을 멈추게 한 뒤 풀리지 않는 인상을 애써 펴며 진에게 말했다. "형, 잠시만 혼자 있을테니까- 방에 들어 가 있어." ".............알았어. 그럼- 빨리 들어와." 우진은 재중의 말에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재중은 테이블 위에 있는 윤호의 담배를 집어 불을 붙인 후 베란다로 나갔다. '박유천, 정윤호......- 너희 왜 이러냐...........- 너희 1년 전으로.............- 내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안 되는거냐? 너희 행복하게 살면 안 되냐?' 재중은 담배를 깊게 빨아 들인다. 그의 안타까운 눈길과 씁쓸한 눈길은 좀처럼 없어지질 않는다. 많은 결혼식을 보았지만 유천과 윤호만큼 행복한 부부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부부가 지금 힘들어 한다. 그 부부가 위태롭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5] 철컥, 달칵- 열쇠로 잠긴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문이 열린다. 어두운 현관에 불을 켜고서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다. 그의 두 손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터질듯 물건을 담고 있는 봉투가 들려있다. 그는 봉투를 부엌, 식탁 위에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달칵- 방으로 들어오자 방 역시 컴컴했다. 하지만 침대 위에 검은 물체가 보이는 걸 보니 분명 사람이 있다. 그는 침대가로 다가서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진이야?" 그의 질문에 갑자기 누워있던 그 사람은 몸을 일으키더니 유천을 침대에 앉혔다. 유천은 엉겹결에 침대에 걸터앉게 되었고, 이내 어둠속에서도 초점이 맞춰진 그는 상대방이 윤호인것을 확신하고서는 평소처럼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할말 있어?" "박유천." "왜." "박.......유천...-" "왜, 정윤호." "내가.........- 괜히 널 잡고 있는거라고 생각하냐?" 유천은 윤호의 질문에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그리고서는 방에 있는 창문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하긴........- 싫지만,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지." 유천의 말에 윤호는 유천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분명 다음 말이 남아있다. 윤호는 유천이 다시 입을 열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유천을 바라보았다. "사실은 니 말의 반대일지도 몰라." "응?" "쿡, 넌 이미 나한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지 않잖아? 그런 널 잡고 있는 바보같은 인간은 '박유천'이라는 거지. 정말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해야하는 거니까." 알고있다. 그의 마음이 사라졌을때부터 진작에 그를 떠나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놈의 '미련'이란게 뭔지 아직도 그를 잡고 있는 자신을 보면 한스럽기만 한 유천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그를 잡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의 차가운 행동이 싫어도, 그의 알 수없는 태도가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오로지 박유천은 정윤호를 '사랑'하기 때문에 잡고 있는 것이다. "정윤호, 너는 내가 싫은거지." "................." "됐어, 그렇게 뜸들일 필요없어. 알아, 그쯤은 안다고." "박유천." "그런데- 어쩌겠어. 쿡- 내가 바보같은걸, 어쩌겠어." 유천은 그말을 끝마침으로써 침대에서 일어서서 정장 마이를 벗어두고 방을 나서려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그대로 열어버리려다가 잠시 행동을 멈추고 윤호에게 물었다. "우진이랑 재중이는?" "병원에 들려서 물리치료도 할겸, 집도 둘러본다고 나갔어." "그래..-" 유천은 나가기 위해 다시한번 손잡이를 잡았지만 이내 손잡이를 돌리려던 손을 멈추고서 윤호를 쳐다보지도 않은 체 뒤 돌아서서 조용히 말했다. "................난- 니가 돌아올거라고 믿고 있어." "............." "지금은 이렇지만, 이제 곧 지긋지긋한 권태기따위 없어질거라 생각하고 있어." "............." "우리는 많이 사랑했으니까, 그만큼 시련도 많을 뿐인거야." "............." "많이 사랑해서 많이 힘드니까, 조만간 힘든것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거야." 윤호는 아무 말없이 듣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유천의 마지막 말이 그치자 꼭 다물고 있던 입을 조금 열었다. ".............왜-" ".........." "왜 그렇게 믿고 있는거지? 이때까지 내가 너한테 한 행동들을 봤잖아!" "너를 믿으니깐........- 서로 많이 사랑했으니까, 그 사랑이 돌아올거라 믿어."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 힘들잖아, 박유천! 니가 힘들잖아!" "단지 지나가는 '권태기'라 여길게." 유천의 말에 윤호는 입을 다물었다. 유천은 뒤 돌아서 있지만 분명히 슬픈 얼굴을 하고, 눈에는 눈물을 매단체 꼭 참고 있을 것이다. 유천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생각 안 할래. 그냥 너무 사랑해서- 한번쯤은 겪는- 그런 '권태기'로 생각할래." 유천은 그 말을 마치고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발을 내 딛는데 뒤에서 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지금 이 감정을 '한번쯤은 겪는 권태기'로 취급한다고 해! 그런데, 박유천! 내가 만약에 너를 다시 사랑하지 않는다면? 만약에 너의 대한 나의 감정이 여기서 완전히 식어버린다면! 그때는- 너 어쩔래? 그때도 지금처럼 돌아올거라 믿을거야? 그럴거냐고!" "만약에- 니가 그런다면,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쾅- 유천이 생각했던 '이야기'. 그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행복한 결말을 그린- 그런 이야기? 윤호는 유천이 닫고 나간 문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니,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라 정윤호는 말했다. 박유천과 정윤호가 생각하는 이야기의 결말은 다르다. 박유천이 말하는 이야기는, 언젠가는 정윤호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그런 행복한 결말을 가진 이야기 일 것이고, 정윤호가 말하는 이야기는, 결국엔 '사랑'이란 감정을 더 이상 느끼지 못 하고 서로 돌아서게 된다는 그런 불행한 결말을 가진 이야기 일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이렇게 사람을 지치게 할 줄이야- 윤호는 그런 '사랑'을 했다는게 한 없이 후회 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 "내일 야구 보러 가는데 너도 갈래?" ".............." "이렇게 방안에만 있는 거 답답하잖아, 응?" 창민은 아까부터 선우의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을 계속 말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창민때문에 선우는 짜증날대로 짜증나버렸다. 처음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대답을 원하는 창민때문에 슬슬 짜증나기 시작해 버린 것이 결국은 폭발까지 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선우는 아무 공책이나 꺼내서 뒷장을 찢어 글씨를 휘 날리듯 써서는 창민에게 던져버렸다. 창민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보더니 이내 머쓱하게 웃는다. "어쩔 수 없어." 창민의 말에 선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얼굴로 창민을 쳐다보았다. 물론 아직까지 그의 얼굴엔 짜증이 잔득 담겨 있었다. "혼자 있다가 또 저번처럼 자살기도 하면 어떻해?" 선우는 그제서야 아차하고서 창민을 쳐다보았다. 조금은 머쓱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옆에서 계속 떠들면, 내가 계속 옆에 있기라도 하면 그런 짓은 최소한 안 할 거 아냐.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 "그때, 병원에서 괴로워하는 모습 보니깐 혼자 못 놔두겠더라." ".............." "너무 외로워 보여서." '너무 외로워 보여서'란다. 선우는 그 소리에 화가났다. 자신이 왜 저런 동정어린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조차 가지 않았다. 선우는 그의 말에 화가나서 또 다시 종이를 찢어 그 위에 휘갈겨 썼다. [내가 외롭던 말던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잖아?! 착각하지마! 난 하나도 외롭지 않아!] 창민은 또 다시 그 종이 위에 휘갈겨 써진 선우의 필체를 읽더니 '휴우-'하고 한숨을 내 쉬고서는 선우의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있는 선우에게 다가가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타악- 물론 선우는 창민의 손길을 그대로 받고 앉아있지 않았다. 냉정하게 '타악-'쳐 내버렸다. 하지만 창민은 놀라지 않도 다시한번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또 쳐내는 선우- 그렇게 몇번이나 쓰다듬고 쳐 냈을까- 결국엔 선우가 먼저 지쳐 가만히 있었다. 창민은 자신의 손길을 막지 않고 있는 선우를 보고 웃음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견제할 필요없어.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니 주위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까 그렇게 벽을 쌓지마." ".............." "그렇게 벽을 쌓을수록 사람들과 격리되어 혼자 남게 되는건 결국엔 너니까-" "............" "그러니까, '그 일'이 있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견제하지마."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아이는 '그 일'이 있어서 그렇지 '동정'을 할만큼 가여운 아이는 아니니까- 그냥 이 아이와 친해지고 싶다. 어린 날 아무리 친했다고 해도 몇년이 지났으니 어색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창민은 이런 어색한 관계를 그냥 허물없이 친한 사이로 만들고 싶다. 이 아이가 쌓기 시작한 벽을 허물어 구석으로만 들어가려는 이 아이를 직접 지켜주고 싶다. 그게 창민의 현재 조그만 소원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6] 어느새 이틀이 가고 일요일이 왔다. 여기는 바닷가- 백사장의 새하얀 모래가 푸른 새벽의 빛을 받아 조금은 시려 보인다. 잔잔하다가도 어느새 큰 소리를 내며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가 시원하면서도 차가워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파도 소리와 더불어 차의 엔진소리가 들린다. 차 한대가 백사장 가쪽에 주차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내리는 남자- 탁- "하아- 오랜만이네." 정윤호다. 차에서 내린 이는 다른 이도 아닌 정윤호였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온 것일까? 그는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는 기지개를 폈다. 몇시간 운전해 온 피로가 쫙 가시는 듯 했다. 오늘 새벽 일부러 혼자서 일찍 바다에나 와 보려고 어제 일부러 잠자리에 일찍 들었고, 오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자고 있는 유천이 깨지 않게 조심히 차키를 들고 나왔던 것이었다. 폰은 들고 나오지 않았다. 일부러 폰을 놨두고 온 것이었다. 아무한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친한 친구 재중에게도, 자신의 부인 유천에게도-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윤호였다.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백사장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백 사장 한 중간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냥 가슴 한 구석이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 곳으로만 향해야 할 자신의 마음이 분산되고 있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자신있게 걸어온 그 길을 헤매고 있다. 앞으로 나서기가 무섭다. 그와 같이 걸오온 그 길을 이제는 더 이상 그와 함께 못 걸어가겠다. 힘들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사박- 사박- 아무도 없는 새벽의 바닷가인데 타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윤호는 고개를 돌려 발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주인공은 여자였다. 그런데 울고 있는 듯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울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증거가 바로 가까이 다가올수록 들리는 울음소리였다. "흐어엉---!!" 윤호는 혼자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서 살짝 말을 붙여 보았다. "저기요-" "흐아앙, 진권아---" 그러면서 윤호의 품에 안겨 계속 눈물을 쏟아냈다. 윤호는 그런 그녀가 불편했지만 우는 여자를 냉정하게 떼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 거리면서 "울지 말아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더욱 서럽게 울며 '진권'이란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결국 윤호는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녀를 품에서 떼 내지 못 하고 안고서 달래어주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그녀는 그제서야 울음을 멈추고 화들짝 놀라며 윤호의 품에서 떨어지고서는 얼굴을 새 빨갛게 붉히고서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하면서 되려 자기가 당황해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윤호는 웃음이 나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윤호를 쳐다보았다. 윤호는 근거히 웃음을 그치고서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름이 뭐에요?" "예?" "이름이 뭐냐구요-" "아- 근데 이름은 왜요?" 가르켜 줄 것 같이 행동하더니 이내 윤호를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눈망울로 쳐다보며 물어본다. 윤호는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풋- 하고 웃더니 말했다.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잖아요. 그리고 모르는 여자가 덥썩 안겨가지고 우는데 안 궁금하겠어요? 정 가르켜 주기 싫다면 저부터 말하죠, 윤호에요. 정윤호." "아아- 윤호..- 그럼 저도 말할게요. '미야'에요. 권미야." "이름이 외자세요?" 윤호의 물음에 그녀는 무섭지 않은 동글한 눈에 힘껏 힘을 줘서 윤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름이 '미야'라구요!" "아, 풋- 그래요?" 그렇게 바닷가에서 만나 거기에 앉아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나눴고, 해가 밝자 출출한 윤호는 식당으로 향했고,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어느새 말까지 놓게 되었다. "그럼 미야, 너 차인거네?" "뭐, 그렇죠. 윤호 오빠는 애인 있어요?" "............." 윤호는 미야의 질문에 그저 어색한 웃음한 지었다. 그러자 미야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뚱한 표정을 지으며 윤호에게 조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웃음으로 떼우는게 어딨어요-" "있는데, 지금은 싫증나서-" "헤에- 권태기구나?" "그런셈이지, 뭐." 윤호는 시큰둥하게 말했고, 미야는 그런 윤호에게 장난끼 섞인 웃음을 내 보였다. 미야는 딱 보기에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였다. 하얀 얼굴에 적당히 마른 몸매와 남자들이 좋아하는 허리까지오는 긴 생머리, 거기다가 속쌍꺼플 진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눈매를 가진 그런 아이였다. 써클렌즈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눈망울은 크고 검었으며, 맑았다. 이제 대학생 생활도 얼마 안 남았고 해서 자신을 제외한 5명의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미야. 그리고 어제 저녁 친구들과 바다로 놀러왔는데, 어제 저녁 늦게 남자친구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미야보고 헤어지자고 한 것이었다. 미야는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았지만 남자친구는 그저 "미안해"라는 말만 되 풀이할 뿐,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밤새 잠을 자지 못 하고 새벽 5시 정도 되서 다시 울음이 터졌는데, 친구들이 깰까봐 바닷가로 나온 것이고, 거기서 윤호를 만났는데 자신의 남자친구와 겹쳐보여 윤호를 껴 안고 울었다는 것이었다. "미야, 서울에 산다고 했지?" "네." "그럼 폰 줘봐." 미야는 서스럼 없이 폰을 건넸고 윤호는 자신의 폰 번호를 찍어 저장을 하고서 다시 미야에게 건네줬다. "이렇게 밥까지 먹은 사인데 나중에 다시 못 만나면 아쉽잖아. 서울오면 전화해. 오빠가 또 밥 사줄게." "와- 정말요? 그때는 해물탕 말고 더 맛있는 거 사줄거에요?" "그래-" 윤호는 최근 유천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웃음을 미야에게 지어주었다. 미야는 폰을 쥐고 윤호를 향해 눈을 가늘게 휘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빠, 연락하면 바로 나와야돼요!" "그래." 그렇게 미야와 헤어진 후 차로 돌아와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는 윤호. 기분이 좋다. 바다에 올때까지만 해도 혼란스럽게 어두웠던 윤호의 마음이 지금은 밝다. 혼란스럽지도 않고 머리가 아프지도 않다. 미야를 만나서 일까? 하지만- 윤호는 알까? 그녀와의 만남이 또다른 슬픔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7] 이 곳은 병원. 유리로 된 투명한 창 안에는 여러 환자들이 굳어지는 자신들의 몸을 치유하려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안에 역시 이 사람도 속해 있다. 김재중. 반신불구가 된지 얼마 안 되어 의술이 발달한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1년만에 돌아온 남자. 이제는 물리치료만 꾸준히 받고 운동만 꾸준히 하면 다시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에 한국에 온지 몇일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병원만은 한국에 온 둘째날부터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우진은 그런 재중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다. 옆에 안전대를 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한걸음, 한걸음 걷는 재중. 그의 몸짓 하나, 하나가 무척이나 괴로워 보인다. 맨 처음엔 우진이 옆에서 도와주려 했지만 재중은 한번 도움 받으면 계속 도움 받으려는 생각만 하게 된다며, 진을 옆에 오지 못 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진은 창을 통해 그런 재중을 바라보며 그저 안타까운 눈을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하아-" 오늘도 그렇다. 항상 그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그때 자신이 나서서 그의 차의 엔진만 갈지 않았어도 이런 불행은 없었을텐데- 모터싸이클을 즐기던 그가, 두 다리로 멀쩡히 걸어다니던 그가 자신때문에 한순간에 반신불구가 되어버렸다. 차가 뒤집힌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리를 지르고 즐기던 관중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지고, 차는 뒤집혀 연기가 나고 있었고, 거기서 어렵게 상체를 빼며 나오려던 재중. 스텝들과 모터싸이클 관계자들과 구조대원들이 달려가 차 밑에 깔린 재중의 하체를 빼 냈을땐 이미 재중의 하체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하체에 고통을 느끼는듯 병원으로 옮기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다리를 잡으며 괴로워 하던 재중의 신음소리가 아직도 우진의 귓가에 생생하다. 1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과거. 그는 자신이 반신불구가 됐다는 소리에도 우진이 죄책감을 느낄까봐 웃기만 했다. '괜찮아, 우진아. 미국가면 나을 수 있데. 그러니까 웃어.' 바보같은 남자는 웃으랬다.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자신의 하체를 느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는 진 때문에 아픔도 감소하고, 슬픔도 감소하고 그렇게 환하게 웃으며 진보고 웃으라했다. 지금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땀을 비오듯 흘리며 어렵게 한걸음 한걸음 떼는 그를 보니 가슴이 아프다. "미안해." 몇천번을, 몇만번은 사과해도 평생 미안해야 할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은 사과를 하면 항상 니가 왜 미안하냐며 그때는 운이 없어서 그런거였다면서, 안 그래도 부모님이 모터싸이클 그만 둬라했는데 말 안들어서 천벌 받아 이렇게 됐다며, 벌 받은거라- 그렇게 웃어넘겼다. 그때 우진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얹었다. 우진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황급히 닦아내고 뒤 돌아섰다. 그 사람은 한국에서 재중을 맡았던 의사였다. 한국에 온 현재도 이 의사가 재중의 담당의사이다. "아- 선생님." "김재중씨는-" "안에 있어요." "우진씨는 안 들어가나보죠?" "혼자서 걷는 연습 하고 싶데요." 의사는 우진의 말에 안을 바라보았다.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저 사람. 많은 사람들 중에 더욱 열심히 하는 사람, 분명히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 김재중이었다. 의사는 그런 재중을 보고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진에게 말했다. "김재중씨는 정말 의지가 강한 사람입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그때 반쯤은 포기하고 미국에 있는 병원을 권했죠." ".............." "그런데 1년만에 저렇게 건강하게 돌아오다니, 허허- 미국이 아무리 의술이 좋다해도 환자의 의지가 약하면 저렇게 건강할 수는 없죠. 정말 강한 사람입니다." "맞아요, 형은 정말 강한 사람이에요. 그런 강한 사람을- 제가 저렇게 만들었구요." 우진의 축 늘어진 말에 의사는 진을 바라보다가 다시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김재중씨는 누구를 위해서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우진씨 때문인 것 같은데요? 우진씨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재중씨가 어떻게든 그 감정 없애주려고 그러는 것 같거든요." "...........훗, 그런가요."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봐주는 몇 사람을 위해 삶을 열심히 살아가죠. 김재중씨도 전우진씨를 위해 열심히 걷는 연습을 하는게 아닐까 싶네요." "형은- 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을 위해 걸어야 해요." "하하, 그런가요?" 그렇게 의사와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으니, 삐삐-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의사는 호출을 받았다며 미안하다며 다음에 얘기하자고 이야기를 그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의사가 가고 나서도 우진은 멍하니 재중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강한사람, 김재중. "난 형이 자랑스러워." '그래서 더 미안해.' 우진의 고개가 숙여진다. 죄책감에 고개가 숙여진다. * "형, 오늘 저녁에는 고기 구워 먹을까?" "고기 먹고 싶어?" "응? 아, 특별히 먹고 싶은건 아니고-" "먹고 싶으면 먹자." 커다란 눈을 휘며 멋진 웃음을 짓는 재중.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땀방울이 맺혀있다. 우진은 재중의 휠체어 앞에 쪼그려 앉아서는 재중을 올려다본다. 재중은 그런 진을 내려다보며 '왜?'라는 말을 눈을 맞춰 물어본다. "아까 의사선생님이 그랬는데, 형은 참 강한 사람이래." "아, 얘기했었어?" "응. 내가 생각해도 그래, 형은 참 강해." "칭찬들으니까 기분 좋은데?" 재중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진도 웃음으로 답하려 하는데- "흐윽..-"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우진은 울지 않으려 구겨지려는 얼굴을 애써 펴며 웃지만 그럴수록 흐느낌이 새어나온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재중이 당황해서 우진의 두 뺨을 감싼다. "왜 울어-" 우진은 울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젖고서는 재중의 두 다리에 얼굴을 묻는다. 재중은 바지자락이 젖는게 느껴졌다. 또 울고 있다. 분명 또 죄책감이 들어서겠지. 재중은 그를 달래어 주기 위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그 순간 우진이 고개를 들고 재 빨리 일어서 휠체어의 뒷쪽에 가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는 바람에 재중은 잘 돌려지지 않는 상체를 돌리며 진을 보려했다. "우진아-" "형, 나 지금 흉하니까- 나중에 집에가서 내 얼굴 봐." ".......-" "지금 너무 못나서 형한테 내 얼굴 못 보여주겠으니까, 집에 갈 때까지만...-" "우진아." "집에 갈 때까지만 내 얼굴 보지 말아 줘, 부탁할께." 우진의 애원섞인 어조에 재중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바로했다. 집에 가는 동안 계속 울게 분명한데- 그래서 달래어 줘야 하는데, 안 그럼 계속 울어서 눈과 코가 빨게 질텐데.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재중은 몸을 바로하고 앉는다. 그러자 휠체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우진은 휠체어를 밀며 숨죽여 울기 시작한다. 재중은 우는 진을 느끼면서도 달래어 줄 수 없다. 슬픈 사람들, 그래서 보고 있음 가슴 아픈 사람들- 김재중과 전우진, 그들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8] 달칵-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누가 현관쪽으로 급히 걸어 온다. 이내 모습을 들어낸건 유천. 윤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윤호는 가만히 서 있던 유천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윽 지나쳐서 방으로 향했다. "정윤호." 그런 윤호를 유천을 불렀다. 윤호는 마침 방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는지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유천이 부르는 소리에 행동을 멈추고 유천을 바라보았다. 유천은 막상 윤호가 자신을 쳐다보니 할말을 잃었는지 멈칫 하고 있었다. 그런 유천의 모습에 윤호는- "피곤해, 빨리 얘기해." 짜증이 잔뜩 베어 나오는 말투로 유천에게 말했다. 그러자 유천은 주먹을 폈다가 다시 꽉 쥐면서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윤호에게 물었다. "오늘 아침에 어디 갔었어?" 유천의 질문에 윤호는 맥이 빠지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긴, 항상 나가도 유천이 깨어 있을때만 나간 윤호가 유천이 자고 있는 사이에 없어져 버렸으니, 궁금하기도 할만하겠지. 하지만 윤호는 그런 유천의 태도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아파트 앞에 와서도 한참이나 주차장에 있다가 왔다. 그냥 알수 없는 짜증이 밀려와서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유천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까봐 애써 차에서 몇시간동안 자신을 제어하고 올라 왔건만, 결국은 또 짜증나기 시작한다. "어디를 갔다오건 그것도 너에게 꼬박꼬박 일러야 되는건가?" "아..-" 윤호는 어느새 또 차갑게 내 뱉고 있는 자신의 입을 저주해야만 했다. 그냥 바다에 잠시 다녀왔다고 말해주면 될 것을 또 이렇게 빌빌 꼬우며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윤호의 차가운 눈과 무표정은 변함이 없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있지만 분명 유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유천은 결국 고개를 떨구고서 뒤 돌아서서 말했다. "들어 가 쉬어." 유천이 시무룩하게 대답하고 다시 소파에 앉으려 하자 그때 윤호가 유천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다시 손잡이를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윤호에 귓가에 들리는 울분에 찬 목소리. "뭐가 미안한데?!" "............" "얘기해봐, 정윤호! 넌 항상 그러더라?! 항상 그렇게 쌀쌀 맞게 대해놓고 끝에는 사과하는 이유가 뭔데, 이 바보야!! 왜 남의 맘을 갖고 노는거야!! 니가 뭔데!!!" 유천의 목소리 뒤에 이어지는 울음 소리. 많이 서러운 듯 '흐어엉-'하고 큰 소리로 울어버린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한번 쳐다보고서는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거실에 남은 유천은 두 다리를 감싸 안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유천에게 상처대는 말만 톡톡 내 뱉어놓고 한 순간에 미안하다고 하거나 그 말을 한 뒤 바로 뒤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방식. 정윤호는 알고 있을까? 이런게 더욱 커다란 상처로 다가온다는 것을- * 털썩- "하아-" 윤호는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불을 켜지 않아 컴컴 하지만 이내 어둠에 익숙해져 뚜렷이 보였다. 밝은 곳에 있는 것 보다는 어두운 곳에 있는 것이 더 좋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니 시계의 초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와 유천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지겹다, 울음 소리. 인상이 살짝 구겨진다. 그래도 계속 들려오는 울음소리. 울음소리에 짜증이 난다. 인상이 구겨진다, 심하게 구겨진다. "아아악-!!!!!!!!!!!!! 씨발!!!!!!!!!!!!!!!!!"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스탠드를 집어 던져버렸다. 유리로 된 스탠드는 '와장창'하면서 파편을 사방으로 날리며 깨어져 버렸고, 윤호는 침대에 앉아 가라 앉지 않는 흥분을 애써 가라 앉히려고 하고 있었다. 뭔가 속에서 끓어 넘치려고 한다. 정신은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뭐지? 도대체 뭘까? 그를 이토록 화나게 하는 것은, 그를 이토록 미치게 하는 것은.... 도대체 뭐지? 다다닥-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생각대로라면 이제 몇 초 후에 방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 올 것이다. 달칵- "정윤호..-!!" 윤호는 주먹을 꽉 쥐고 있다가 방에 들어온 유천을 바라보았다. 어두워도 단번에 눈에 띈다. 울다가 놀라 울음을 그치고 들어온 듯한 모습. 유천은 윤호를 보다가 침대 옆에 깨진 유리 파편들을 보고 어느정도 상황 파악을 했는지 윤호를 보고 최대한 인상을 찡그리고서는 소리쳤다. "또 왜 그러는데?!!! 니 성질 니가 자제 못 해서 그러는데, 왜 그러냐고!!!!" 그렇게 소리 치는 도중에도 유천의 눈에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인상을 팍 찡그리고서는 침대 밑으로 내려가 고개 숙여 울고 있는 유천의 앞에 서서는 유천의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어 유천의 머리칼을 움켜잡고서는 고개를 들게 해서 키스를 했다. "흐웁-!!" 그리고는 재 빠르게 유천을 침대위로 넘어뜨려 유천이 입고 있는 셔츠 단추를 힘으로 터뜨려 버렸다. 그리고는 유천의 상체를 만져대기 시작했다. 유천은 그의 입술을 거부했고 더불어 그의 손길까지 거부했다. 잔뜩 화가난 그에게 유천이 막는 행동따위는 장난에 불과하지만 유천이 계속 입을 맞춰오는 그의 혀를 깨물어 버리자 그의 행동은 거짓말처럼 멈춰 버렸다. "하악....- 하악.......- 흐윽.....- 흐으윽......-" 유천이 다시 흐느끼자 윤호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인상을 구기고서는 행동을 계속 하려했다. 유천은 심하게 반항했고 겨우 윤호에게 벗어나 거의 다 벗겨진 셔츠를 붙 잡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도망치듯 현관으로 와서는 신을 신었다. 그 순간 방에서 윤호가 나왔고 무섭게 유천에게 다가왔다. 유천은 신을 제대로 신지도 못 한체 그대로 현관문을 열었다. 타악- 현관문을 여는 순간 도망치듯 나오려던 유천은 집 앞에 서 있던 누군가에게 부딪혀 그 누군가의 몸 위에 쓰러지듯 넘어졌고, 유천의 밑에 깔린 그 누군가는 몸을 일으키며- "형?" "으흑- 으흐흐흑..-" 아마 그 사람은 유천을 아는 듯 했다. 그는 유천의 상태를 살피고서는 놀라서 유천의 셔츠를 끌어올려주면서 유천을 감싸 안았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며 윤호가 "박유천"이라고 외쳤고- 그는 윤호를 보며 멍하니 입을 열었다. "매형."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9] "매형." 유천과 닮은 얼굴이지만 여려보이는 유천의 이미지와 다르게 남자다운 이미지가 흘러나오는 이 남자는 바로 유천의 첫째 남동생 유환이었다. 유천과 딱 2살차이가 나는 남동생이었다. 키도 크고, 유천과 달리 근육도 있고 성격도 서글서글 해서 인기도 많았다. 현재는 대학을 졸업하고 운 좋게도 취직이 되어 광고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니가 웬일로-" 윤호도 꽤나 당황한 듯 멍하니 서서 유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환의 품에서 울고있는 유천이 생각이 나서 단추 튿어진 셔츠를 부여잡고 울고 있는 유천의 팔목을 잡아 끌었다. "박유천, 일어서." "흐윽, 흐흡..- 흑...-" "안 일어서?" 윤호의 낮아진 목소리에 유천은 어깨를 움츠렸고, 어느정도 상황파악이 된 유환은 자신의 자켓을 벗어 셔츠가 튿어져 몸을 내 비추고 있는 유천의 상체에 덮어준 후, 자신보다 체격이 작은 유천을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여전히 유천의 손목을 잡고 있는 윤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거 놔요." "어째서?" "형이 싫어하잖아요, 어서 놔요." "박유천은 내 아내야." "형을 진정 아내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강제 행위를 해도 되는겁니까?" 유환의 말에 윤호는 순간 '아-'하고 지금의 상태를 깨달았다. 단추가 다 튿어져 셔츠의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을 걸치고 울고 있는 유천과 자신 역시 셔츠 단추 몇개 풀고서 유천을 찾으러 나오는 모습이란- 누가봐도 어떠한 상황인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유환의 품에 안겨 아직도 울고 있는 유천을 당장에라도 낚아채서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지만 그럴 수없다. 유환의 말대로 자신은 지금 자신의 아내에게 강제 행위를 행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윤호는 하는 수 없이 유천의 손목을 놓았다. "할 말 없으면 오늘 형은 제가 데리고 가겠어요." "그건-" "형도 그게 더 좋을 듯 하네요." 벌벌떨고 있는 유천을 내려다보고서는 윤호를 노려보듯 눈을 맞췄다. 그리고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어 차갑게 말했다. "오랜만에 왔는데 매형에 대해 잔뜩 실망만 하고 갑니다." 그 말을 끝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유천을 품에 안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윤호는 그저 멍하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유환의 품에 안겨 윤호를 원망섞인 눈으로 바라보던 유천을- * "유환아, 나 돌아갈-" "무슨 소리야! 뭘 돌아가?! 단분간 집에 들어갈 생각마!" 유환은 아까 윤호에게 터뜨리지 못한 분노를 자신의 답답한 형한테 조금이나마 터뜨리고 있다. 유천은 시무룩해져 유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유환은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자신의 차, 조수석에 자신의 형, 유천을 태우고 자신은 운전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어주고서는 차를 출발 시켰다. 주차장을 벗어나 바로 신호를 받게 되었다. "아까 매형, 아니. 정윤호가 억지로 형 범하려고 했지?" "아, 아니야." 유천은 유환의 질문에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유환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유천을 흘끔 바라보고서는 신호가 바껴 차를 출발시키며 말을 이었다. "항상 이런식이야?" "아니라니깐. 오늘 잠깐 싸워서-" "그런데 아까 왜 그렇게 대성통곡을 했는데?" "내가 언제 대성통곡을 했다고 그래." 유천의 말에 유환은 "어련하겠어-"라며 말을 그쳤다. 유천은 그런 유환의 반응에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며 유환의 자켓을 다시 고쳐 덮었다. 유환에게는 아니라 했지만 아까 무엇엔가 잔뜩 화가나서 자신을 강제로 범하려 했던 윤호의 모습이 생생하다. 유천은 다시 눈가에 고이는 물기를 닦으며 생각했다. '사랑이 없는 관계따위는 맺고 싶지 않아. 니가 날 사랑하지 않는 이상- 난 너한테 안길 수 없어. 넌 날 사랑하지 않으니깐.......-' * 달칵- 이 곳은 4층짜리 고급빌라. 유천은 한번도 와 보지 못한 동생의 집에 감탄하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넓은 방 두개와 적당한 크기의 거실과 거실과 연결되어 있는 부엌. 유천은 거실로 나오면서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유환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큰 곳 얻었어?" "할아버지가 형 많이 이뻐하셨잖아, 형 대학 졸업하자 마자 이 집을 구해놨나 보더라고. 근데 형이 정윤호랑 결혼 해 버린다고 벨기에로 떠나니까 나한테 그냥 떠넘기듯 주더라고." "아- 그랬니?" 유천의 눈가엔 씁쓸함이 묻어난다. 유난히 자신을 어릴때부터 이뻐하셨던 할아버지. 자신이 윤호와 결혼한다고 말했을때 할아버지는 쇼크로 병원에 한달이나 계셔야 했다. 종가집 장남이라며 항상 이뻐해주고 갖고 싶은건 다 갖게 해줬던 할아버지에게 유천은 배신감을 안겨주게 된 것이었다. "요즘 할아버지는 어떠셔?" "다행히 건강하시지. 형 보고 싶어 하셔." "훗, 그래봐야 나 가면 욕만 퍼 부우실걸." 유환은 방에서 티셔츠 하나를 꺼내와 유천에게 주었다. 유천은 티셔츠를 받아들고 유환의 자켓을 벗고 단추가 튿어진 셔츠를 벗고서 티셔츠를 입었다. 체격이 유환보다 좀 외소해서 그런지 유천에게는 박스티가 되어 버렸다. 유환은 그런 유천의 모습을 보고- "저런- 역시 크네. 일부러 딱 맞는거 줬는데." "뭐, 얻어있는 주제에 아무거나 입지, 뭐." 그렇게 시간은 가고 혼자 떠들던 tv도 이내 꺼졌다. 유천은 어느새 무릎을 모우고 앉아서 멍하니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유환은 그런 유천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 쉬었다. ".....매형 생각해?" ".....응? 아, 아니." ".........여기서 있어. 매형이 직접 형 찾을때까지 여기서 있어." "..........응." 유환은 조용히 다가가서 자신의 형을 안아주었다. 유천은 유환의 품에 인형처럼 아무 미동없이 안겼다. 유환은 유천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 형,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큰 형, 우리 유천이형...- 행복해야하는데- 박유환이 가장 좋아하는 형이니깐 우리 형 데리고 간 그 정윤호랑 행복해야하는데..-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 형 행복해야 하는데..-" 유환은 그 뒤로도 "행복해야 하는데-"를 반복했다. 진심으로 형의 행복을 바라는 동생의 슬픔 속삭임. 유천은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0]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유환에게 정장을 빌려 입고서 출근했다. 오늘은 없다. 항상 그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가방이, 그의 얼굴을 가렸던 안경이 오늘은 없다. 어제 갑작스럽게 집을 나오게 되었으므로 미처 필요한 간단한 짐을 챙기지 못 했던 것이었다. 차도 아파트 주차장에 있고, 차키 역시 집에 있다. 차키라도 가져와야겠다고 말하니 유환은 차라리 자신이 태워줄테니 단분간 집에 들어갈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란다. 하지만 '차키'를 핑계로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렇게 비참해져선 안 되지만, 이렇게 무슨 핑계거릴 대서라도 집에 들어가서 윤호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또 어젯밤 내내 술을 마셔서 속이 쓰린건 아닐까, 아님 그대로 집을 나가서 또 여자를 안았을까 하는 생각이 유천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제 그렇게 억지로 범해질뻔 해 마음속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윤호를 걱정하는 자신을 유천 역시 알다가도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미치도록 싫고, 미웠다. -14층 입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탔던 엘리베이터는 어느새 자신의 부서가 있는 14층을 알렸다. 여자 목소리가 끝나자 마자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역시나 가방과 안경이 없어서 그런걸까. 뭔가 허전했다. 집에서도 잘 쓰지 않는 안경이라지만 회사 올 때는 꼬박꼬박 챙겨 쓴 안경. 자신의 얼굴을 한번 손으로 쓸어보다가 자신의 빈손이 어색했는지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부서에 도착하자 부서내의 직원이 인사를 해 왔다. "유천씨, 오늘 안경 안 썼네요." "아, 네." 유천은 짧게 대답하고나서 예의상 짓는 미소를 살짝 지어주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리에 꽂혀있는 서류를 꺼냈다. 그때 뒷쪽에서 여직원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천씨, 커피 뭘로 마실래요?" 유천의 여직원의 말에 의자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밀크커피."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때문에 뒤로 몸을 살짝 뺐다. "우와- 유천씨 안경 안 썼네요?" "아, 네." "이야-" 유천은 자신이 안경을 안 쓴것에 대해 사람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 사람, 저 사람이 그러니 귀찮음도 느껴졌다. 그녀는 웃으며 유천에게 말했다. "우와- 유천씨, 몰랐는데 참 이쁘게 생겼네요?" "예?" 유천의 그녀의 말에 당황한듯 "예?"라며 크게 반문했고 그녀는 웃으며 다른 여직원을 불렀다. "유천씨좀 봐요, 안경 벗으니까 사람이 달라보여요-" "어디, 어디-" 그녀의 말에 각자 일을 보고 있던 여직원들이 몰려왔다. 안 그래도 그녀가 "우와- 유천씨 안경 안 썼네요?"라는 대사를 할때부터 그녀들은 유천을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에 아예 자리에서 일어서서 유천에게 몰려든 것이었다. "이야- 지금 보니까 유천씨 피부도 하얗고, 좋다-" "남자한테 이런말 하면 좀 뭐하지만 유천씨 이쁘게 생겼네요?" "우와, 거기다가 오늘은 넥타이도 안 매고- 웬일로 멋을 냈어요?" "유천씨 어려보인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이것저것 유천에 대해 말했고, 유천은 갑작스럽게 여직원들이 모여들자 꽤나 당황스러웠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때 툴툴거리며 앉아있던 동료가 아까 커피, 뭐 마실거냐고 묻던 여자에게 말했다. "미현씨! 커피 안 뽑아와요?" "아, 네! 유천씨, 무슨 커피 마실거에요?" 그녀는 유천에게 싱긋 웃으며 물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유천은 짜증도 내지 못한 체 여전히 어색한 미소만 지으며 "밀크커피요-"라고 말했고, 미현은 알았다며 나갔다. 미현이 가고나자 여자들은 아예 유천을 만지려 들었고, 유천은 몸을 더 뒤로 뺐다. 그때 다행히도 구세주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어이- 뭐해? 다들 일 안해?" 과장의 목소리에 그녀들은 아쉽다는 듯 각자 자리에 돌아갔고, 사무실은 아까처럼 다시 조용해졌다. 유천은 한숨을 내 쉬며 과장에게 작은 목례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과장은 유천에게- "박유천씨, 이번 신제품 해외 수출 기획안 수정본 들고 와요." 그 말을 하고서 따로 마련된 자신의 개인 공간으로 들어가는 과장. 유천은 작게 "예."하고 대답하고 자리에 앉아 파일을 뒤적거리며 기획안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기획안은 어디에도 없었고, 유천은 다급해져서는 이리저리 찾았다. 그러다가 생각난 것- 바로 집에 있다는 것이었다. 기획안을 다 수정하지 못해 집에서 하려고 집에 들고갔던 건데 어제 일로 인해 수정을 다하지도 못할 뿐더러 가져 오지도 못한 상태였다. 분명 오늘까지 였는데- "어떡해-" 왜 하필 집에 들고갔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때 과장실에 "박유천씨!"라고 부르는 소리에 유천은 "예!"하고 과장에게 갈 수 밖에 없었다. 혼날 것을 예상하고서 말이다. *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겁니까! 분명히 오늘까지라고 했잖습니까!" "죄송합니다, 어제 집에 들어가질 못 해서." "그게 말이나 됩니까? 기간을 넉넉히 줬잖아요! 그리고 내가 일부러 박유천씨한테 그 일 맡긴거 알잖아요, 왜 이렇게 일을 흐지부지 하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유천은 과장의 야단에 그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계속 반복하듯 꺼냈다. 과장은 서류 얘기를 끝내고 이제는 유천의 복장에 대해 얘기했다. 흰셔츠에 남색 정장. 넥타이 없이 단추도 하나 풀고 있던 상태였다. 유천은 "빌려 입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라는 말을 한 뒤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꺼냈다. 사실적으로 유환은 회사갈때 꽤 자유로운 복장으로 가기때문에 정장도 넥타이까지 다 갖춰진 정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있어도 그건 본가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이걸 입었는데 재수없게도 과장에게 걸린 것이었다. 과장은 그렇게 유천을 20분정도 혼낸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복장 똑바로 하고 다녀요!"라는 말과 함께 드디어 야단을 그쳤다. 유천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서 과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참고 있었던 한숨이 나왔다. 유천은 자리에 와서 앉아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허겁지겁 오더니 유천의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서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누군가는 바로 정윤호. "헉- 헉-" ".........." 뛰어 올라왔나보다. 숨이 가뿐걸 보면- 유천은 일에 집중하려했지만 계속 윤호가 신경 쓰였다. 머리는 다 말리지도 않고, 넥타이도 흐트러져있고 정장 마이 단추도 닫혀있지 않다. 늦잠을 잤을까, 아님 다른 여자와 아침까지 있다가 회사에 헐레벌떡 뛰어 온 것일까. '박유천, 제발! 니 일에 집중좀 하자!' 유천은 애써 정신을 집중 시키며 서류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자신이 과장실 들어갔을 때 뽑아 온 식은 커피를 마셨다. 조금 쓴 커피 맛에 유천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그때 윤호가- "박유천." "박유천"이라고 불러서 고개를 돌렸다. 윤호는 뭔가 할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고, 그 순간- "정윤호씨, 나좀 봅시다!" 방금전까지 계속 자신을 야단치고 있었던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부부싸움을 했을까? 과장은 오늘 왜 저렇게 히스테리를 부릴까. 윤호가 과장의 부름에 과장실로 들어가고 이내 과장실에서는 윤호를 혼내는 큰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유천의 귀엔 과장이 윤호를 혼내는 목소리따위 들려오지 않았다. 단지 투명한 유리벽 안으로 윤호가 고개를 약간 숙이고서 과장에게 혼나고 있는 모습만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어쩌면 이 두사람의 상태는 지금 같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유리벽을 하나 세워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그런 상황. 그는 유리벽을 통해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지만 사랑하는 이는 반대편에 있는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유리벽은 목소리를 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의 사랑고백이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지지 못 하나보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는 그에게서 점점 멀어지나 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1] "도대체 결근은 하기 일수며, 오늘도 지각! 정윤호씨 요즘 왜 이럽니까?" "죄송합니다, 요근래 사적인 일이 많이 생겨서 그렇게 됐습니다." "사적인 일도 중요하겠지만 여기는 직장이고, 사회입니다! 정신차려주세요!" "알겠습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윤호는 아까의 유천처럼 과장에게 몇번이나 고개를 숙인 뒤 "나가보세요."라는 말에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돌아 서 과장실에서 나왔다. 직원들은 웅성웅성대며 오늘 과장 왜 저러냐며 난리다. 윤호가 자리에 앉자, 유천은 옆을 흘끔 바라보며 윤호의 얼굴을 살펴본다. 인상이 굳어있는 걸 보니 분명 그리고 상쾌한 기분은 아니다. 회사에 늦은데다가 과장한테 깨지기까지 했으니 얼굴이 굳어질만도 하다. 거기다 윤호는 남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못 하는 성격이라 더 굳었을지도- 유천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아까 하려던 말이 뭐야?" "............." 윤호는 아무 말 없이 유천을 쳐다보았다. 유천은 갑자기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윤호때문에 놀랐지만 오늘만큼은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해버린다. "또 피해버리는군." "너하고 시시한 눈싸움따위 할 시간 없어." 결국은 또 변명이다. 유천은 되지도 않는 일을 하려고 다시 서류를 손에 잡았고, 윤호는 그런 유천의 모습까지 계속 쳐다보았다. 유천은 윤호의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눈을 흘기며 윤호에게 톡 쏘아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 봐? 과장한테 그렇게 깨지고도 정신 못 차리겠어?" "일하는걸로 깨지지는 않았으니까 상관 마." 유천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일에 집중했다. 하지만 윤호의 시선은 게속 유천을 향하고 있었고, 유천은 결국 윤호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낼수있는 최대한의 화가난 목소리를 냈다. "그딴식으로 사람 뚫어지게 쳐다보지마, 재수 없으니깐!" "큭, 재수없다라- 재수없다면 보지 말아야지, 큭. 그래야지-" 유천의 말에 무척이나 빈정대더니 그제야 자신의 일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살짝 구겼다. 그렇게 그 날의 오전은 흘러가고 있었다. * 퇴근 시간 6시. 현재 시간 6시 4분. 4분 전에 과장은 정확히 정각 6시에 "먼저 갑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회사에서 나갔다. 지금 직원들은 앉아서 과장을 욕하고 있는 중이었다. 말 많은 여직원들이 중심멤버가 되어서 말이다. 그러다가 한 여직원이 말했다. "오늘 기분도 더러운데 한잔 하러가죠? 내가 쏠게요!" "그럴까?" "하여튼 성격 하나는 화끈하다니깐?" 이렇게 해서 윤호와 유천이 있는 팀 직원들끼리 회식이 이어졌다. 맨 처음에는 고기집. 일단 삼겹살을 먹으며 소주 몇병과 맥주 몇병과 음료수 몇병을 시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그렇게 하다 모두의 잔에 소주가 부어지고 아까 자신이 쏜다고 했던 여자는 직원들보고 잔을 들으라고 한 뒤 씨익 웃으며 크게 외쳤다. "내가 쏘니까 오늘 화끈하게 마시고 노는겁니다, 알겠죠?!" "물론이지!" "자자! 그럼 건배 한번 하자고! 부부싸움으로 마누라한테 혼난 과장님을 위해!" "하하-" "어서 하자고! 건배!" "건배--" 유천도 여직원의 말에 웃으며 잔을 비우고 술을 따르려 했다. 그때 누군가 유천의 손에서 술병을 뺏어 갔다. 유천은 그 상대를 쳐다보았고, 그 상대는 유천을 보고 싱긋 웃었다. "제가 따라드릴게요." "아아- 그래 줄래요?" 유천은 웃으며 말했고 그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서 "예."하고 말하고서는 유천의 소주잔에 술을 부어 주었다. 유천은 잔을 비우고서 그를 향해 웃어주며 말했다. "역시 남이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다니깐." "헤에- 선배님, 농담은요-" 탁--! 그때 그의 옆에 있던 윤호가 술잔을 쎄게 놓았다. 다른 직원들은 신경쓰지 않고 계속 마시고 먹어댔지만 유천은 그런 윤호의 반응에 윤호를 쳐다보았다. 유천에게 술을 따뤄준 사람을 가운데 두고 앉은 두 사람. 가운데 앉아있던 그도 놀랬는지 윤호를 쳐다보았고, 윤호는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비스듬히 고개를 올려 그를 노려보듯 쳐다보며 말했다. "신참, 나한테는 안 따뤄주는가?" "아아, 따뤄드려야죠!" 그가 술을 따라주자 윤호는 마시고서 피식 웃었다. 유천은 윤호의 저런 행동이 분명 자신에게 심통이 나서 저렇게 행동한 것을 알고 윤호를 흘겨보듯 한번 쳐다보고서는 옆에 있던 다른 직원과 웃으며 얘기하고 식사를 했다. 그렇게 있다가 전화가 오는 것을 안 유천은 전화를 들고 시끄러운 식당 밖으로 나와 받았다. "여보세요?" -형, 어디야? "아, 유환이야?" -어디냐고, 나 형네 회사 앞이란 말야. "뭐? 정말? 이런, 형 회식하하고 있는데 어쩌지?" -거기가 어딘데? "여기가 어디냐면-" 그때 누군가가 유천의 핸드폰을 뺏어서 받았다. 유천은 당황해서 그 사람을 쳐다봤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윤호였다. 유천은 뭐하는 짓이냐며 어서 내 놓으라 했고, 윤호는 그런 유천의 팔목을 잡아 유천의 행동을 저지하고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유천이형! "처남-" -매형? 어서 우리형 바꿔요. "형은 알아서 잘 보낼테니 그냥 집에 가지 그래?" -무슨 소리에요? 어서 형 바꿔요! "너무 과잉보호 하는것 아닌가?"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결국 유환은 화가나 소리를 질렀고, 윤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그럼 끊지."라 말하고서 자기 맘대로 끊어버렸다. 유천이 방금 그게 무슨 짓이냐면서 따져들었지만 윤호는 그런 유천을 차갑게 쳐다보더니 폰의 베터리를 뽑아 베터리는 자신의 한쪽손에, 그리고 본체는 유천에게 던져주었다. "뭐 하는 짓이야! 어서 내 놔!" "회식 끝날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지." 그렇게 윤호는 들어 가 버리고, 유천은 멀뚱히 서서 기가찬듯 윤호의 뒷 모습을 노려볼 뿐이었다. 자신에게 분명 관심도 없을거면서 자신을 대하는 저런 행동은 무슨 심보인지- 유천은 저런 윤호의 행동에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저 확실히 행동해 주길 바랄 뿐이다. 확실히 행동을 해주면 이렇게 마음이 혼란스럽고 아픈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2] "더럽게 늦네-" 유환은 지금 유천과 윤호의 아파트 앞에서 3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회사 앞에서 1시간을 기다린것도 모자른지 3시간이나 유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당장에 갔겠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자신의 형이니 만큼 기다릴 수 밖에- 더군다나 아까 전화를 끊은 사람은 윤호였다. 저번에 윤호가 유천에게 하려 한 짓을 생각하면 절대 윤호와 유천을 같이 있게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유환은 지금 계속 차안에서 지루하게 유천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을 보니, 오후 10시. "왜 이렇게 안와!" 전화를 해도 윤호가 어떻게 했는지 폰이 꺼져있는 상태라는 기계음만 들려오고- 유환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몸도 찌뿌등 하고- 당장에 집에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푹신한 침대에 눕고싶었다. 그렇게 하품을 하며 차안에서 여전히 자신의 형을 기다리는 유환이었다. * "2차 갑시다!!" "노래방 갈까?" 벌써 잔뜩 취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2차를 간다며 난리다. 한명, 두명 자리에서 일어나고 혼자 남은건 유천. 술을 많이 마셨는지 취해서는 엎드려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따라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있던 윤호는 같이 있던 동료에게 먼저 나가라는 소릴 하고 유천에게 다가가 유천을 흔들었다. 하지만 유천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박유천, 일어나봐-" "우웅..-" 윤호의 부축으로 겨우 일어난 유천은 비틀 거리며 신발을 신고 윤호에게 기대다 시피 해서 나왔다. 윤호는 어렵사리 유천을 부축해 유천의 가방과 자신의 가방을 한쪽손에 다 들고 나와서는 식당앞에 모여있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박유천씨하고 저는 여기서 빠질게요." "에이- 왜 그래? 젊은 사람들이 한번 마셨음 본전을 빼야지!" "그래, 그래! 2차는 내가 쏠테니 가자고!" "아뇨, 박유천씨가 많이 취한 것 같아서 먼저 가려구요, 집도 같은 방향이니까." 그렇게 겨우 회사 직원들에게 벗어난 윤호는 유천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올리게 하고 자신의 손으로 유천의 허리를 잡아 유천을 받치고서 택시 한대를 잡았다. 차가 가까운 곳에 있기는 하지만 술을 마셔서 운전은 하지 않기로 했다. 택시를 잡고 차에 올라서 옆자리에 불편한 자세로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유천을 바라보았다. 여전하다. 남자치고 곱상한 얼굴에다가 턱선이 가늘어 더 여려보이는 것과 떡벌어진 어깨와 달리 조금은 좁은 어깨와 날씬하고 긴 체형. 26살이나 되었는데도 여전히 어려보이는 얼굴. 그는 여전한데 왜 그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지 못한 걸까- * 끼익- 이내 택시가 아파트 앞으로 도착했다. 윤호는 요금을 내고 유천을 안아 내리고서는 가방을 챙겨 택시 문을 닫았다. 문을 닫자 택시는 곧바로 출발하고 윤호는 어렵게 유천을 부축해서는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시간 유환은 윤호가 온 것도 모르고 잠을 깨기 위해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 하나 사서 마시며 밀려오는 잠을 억지로 깨우고 있는 중이었다. 달칵- 거실로 들어서서는 곧바로 소파로 가서 유천을 눕혀놓고 어제 마셨던 술병들을 부엌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다 치우고 나자 고기 냄새도 베기고 해서 곧바로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편한 복장으로 유천이 누워있는 거실로 왔다. 유환의 옷을 빌려 입어서 그런지 넥타이 없이 단추가 한, 두개 풀어져 있어 그의 하얀 목덜미가 더 자세히 보인다. 윤호는 그의 눈을 가린 머리칼을 치워 보았다. 이내 유천의 얼굴이 들어나고 유천은 윤호의 시원한 손에 잠깐 잠이 깼는지 몸을 뒤척이며 살짝 눈을 떴다. ".....으웅......- 윤........호......-" 윤호는 순간 멈칫했다. 반쯤밖에 뜨지 못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 눈빛과 이쁜 빛을 내는 입술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가 왜 그렇게 유혹적으로 느껴지던지- 그냥 안고 싶어졌다. 그와 관계를 맺고 싶었다. 어제 맺으려다가 유환때문에 끊겨서 그럴까? 더욱 그를 안고 싶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 그를 안고 싶다.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윤호였다. 그래서 그를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사.......랑해, 바보야.....-" 라고 유천이 말하는 순간 그를 안고싶은 욕망이 커졌다. 유천은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지만 이미 윤호는 그를 안고서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를 침대에 눕힌 뒤, 그가 깨어나면 나갈 수 없게 문을 잠궈버린다. * 터벅, 터벅- 음료수를 마시고 담배까지 한대 피고온 유환은 느긋하게 아파트쪽으로 오고 있었다. 윤호의 차가 없는걸 보니 아직 윤호는 오지 않았을거라 추측한 유환은 하나 더 사온 음료수를 따고 마셨다. 그러다가 우연히 고개가 윤호와 유천이 살고있는 아파트 층으로 향했는데 불이 켜져있었다. '분명히 아까까진 불이 켜지지 않았는데!' 유환은 다 마시지도 않은 음료수 병을 바닥에 떨어뜨리고서 아파트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15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고서 버튼을 누르고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었다. 제발 저번처럼 윤호가 유천을 강제로 범하는 일따위만 없었음 좋겠다고 생각하는 유환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왜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 것만 같던지 유환은 속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땡-"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유환은 재 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 15층을 눌렀다. 달칵- 15층에 도착한 유환은 윤호네 집 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런데 생각 외로 문은 쉽게 열렀다. 유환은 당장 집안으로 들어가 유천의 행방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유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윤호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어디있는거야-" 유환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거실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오던 소리- [하악, 하아아..-] 분명한 신음소리. 유환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행동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자 더욱 뚜렷하게 들려오는 소리. 유환은 귀를 기울여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도착지는 어느 방 하나. 여자의 신음 소리라 하기엔 조금 굵은 소리. 유환은 단번에 그것이 자신의 형이란 것을 알아채고 미친듯이 방문을 두드렸다. "형!!!!! 형, 거기 있지?!!!!!!!!!" 쾅쾅쾅-!!!!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유천의 힘겨운 신음소리 뿐- "형!!!!!!!! 유천이형!!!!!!!!!!" 유환은 다급해 진다.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유환은 손이 아프도록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형!!!!!!!!!!!!! 유천이형!!!!!!!!!!!!!!!!" -하앗, 하으윽! "개 새끼야!!!!!! 우리 형 건들지 말란 말야!!!!!!!!!!!!" 유환의 슬픈 울부짖음이 집안에 가득찬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3] 쾅쾅쾅-!!!!!! 방 밖은 유환으로 인해 난리 났다. 하지만 윤호의 귀엔 그따위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유천을 탐하는데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하악..- 하지마..- 으읏..-" "하악, 박유천..-" "하아..- 읏-" 윤호가 다리를 벌려버리자 짧게 신음하던 유천이 이내 윤호가 몸을 겹쳐 오자 커다란 비명소리를 힘껏 내 뱉는다. "아악!!!!!!!!! 아파, 싫어!! 아악!!!!!!!!!!" "읏, 힘 빼란 말야-" * 한편 밖에선- 유환은 손이 빨갛게 부어올랐는데도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문 열란말야!!!!!!!!!! 우리 형 내 놓으란 말야, 개 새끼야!!!!!!!!!!!" 그렇게 소리를 질러버리곤 문에 기대어 주저앉아버렸다. 목이 많이 아파왔다. 빨갛게 부은 손이 쓰아렸다. 하지만 유환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형을 지켜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한참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때- -아악!!!!!!!!! 아파, 싫어!! 아악!!!!!!!!!! 라는 비명소리가 무척 크게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잔뜩 구겨져 있던 유환이 깜짝 놀라서는 벙쪄 있다가 계속 들려오는 소리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일어서서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씨발, 건드리지 말란 말야!!!!!!!!!!!!!!!! 우리 형 건들지 말란 말야!!!!!!!!!!!! 니깟 새끼가 뭔데 우리 형한테 그렇게 구냔 말야!!!!!!!!!!!!!!!!!!!" 그 말을 끝마침과 함께 유환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나왔다. "크윽!! 개새끼야!!!! 문 열란 말야!!!!" *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30여분이 지나서야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땀에 젖은 윤호의 모습이 보였다. 문 앞에 앉아 있던 유환은 고개를 숙인체로 윤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일으켜 윤호에게 주먹을 뻗었다. 유천과의 관계로 힘이 빠진 윤호는 미처 방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았고, 유환은 쓰러진 윤호의 멱살을 잡고 패고, 또 팼다. "넌 죽어야 돼!!!!!!!! 너같은 더러운 새끼는 죽어야 된다고!!!!!!!!!!!!" 퍽, 퍽-! 윤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계속 유환에게 맞고만 있었다. 피가 나오는데도 그냥 가만 맞고만 있었다. 유환은 그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계속 맞고만 있는 윤호에게 소리쳤다. "왜 맞고만 있는거냐!!!!! 왜 맞고만 있는거냐고!!!!!!!!!!" "..........이렇게 해서라도 내 죄가 씻긴다면- 내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 유환은 더욱 큰 분노에 휩싸여 윤호를 죽어라 팼고, 윤호도 이제 절정에 달았는지 힘겨워 하고 있었다. 그때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가 유환의 귀에 들려왔다. "...흐윽...- 그만해..- 그만, 흐윽..-" 유환은 곧바로 유천에게 가서 유천을 꽉 껴안았다. 유천은 유환을 부여잡고 울었고 유환은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자신의 형을 꽉 안았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안해- 형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형이 싫어하는 일 당하는데-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는 유천에게 자신의 자켓을 벗어주고서는 유천을 안아 들었다. 유환에게 맞은 그대로 누워서 팔로 눈을 가리고 누워있는 윤호에게 유환은 차갑게 말했다. "다시는 돌려보내지 않아, 아니. 당신 곁에 두지 않겠어. 짐은 내일 찾으러 오지." 쾅-! "큭..- 크큭.....- 크하하하!" 윤호는 그들이 가고나자 한참이나 웃었다. 그러다가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핏내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집에 대고 외쳤다. "박유천!!!!!!!!!! 박유천, 니가 뭔데!!!!!!!!!!!!! 니가 뭔데!!!!!!!!!!!!!! 으흑..-!" 팔로 눈을 가리긴 했지만 눈물까지 가리진 못 하나보다. 눈물은 윤호의 귓가로 흘러내리고 윤호의 울음소리는 커진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크게 울어본다. '니가 뭔데 왜 이렇게 내 맘을 혼란스럽게 하냐- 박유천 넌 이미 내게서 떠난 사랑인데,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거냐- 박유천, 니가뭔데- 니가 도대체 나에게 뭔데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거냐..-' 자신도 나름대로 많이 힘든듯- 윤호는 한동안 계속 눈물만 흘려댔다. 눈물은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고, 아침이 밝을때까지 윤호는 계속 눈물을 흘려야했다. 왜 미련이 남는걸까- 다 떠나버린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널 보면 미련이 남을까- 다 없어진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널 보면 미칠듯이 소유하고 싶을까- 너를 놓치기 싫은 욕심일까, 아님 아직 작게 남아있는 사랑의 감정일까. 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존재- 너의 존재는 나에게 짙은 Chaos....-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4] 다음날- 회사에는 그날 먼저 갔던 두 사람, 윤호와 유천의 자리는 비어져 있었다. 윤호는 어차피 자주 결근했다 하지만, 결근 한 번 하지 않던 유천도 결근하고 회사 직원들은 어제 먼저 가면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냐면서 웅성대지만 이내 과장의 출현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회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 "자, 먹어." 유환은 죽그릇을 침대에 기대어 앉아있는 유천에게 내밀었다. 유천은 죽그릇을 쳐다보다가 유환을 올려다 보았다. 하루만에 수척해진 모습- 유환은 가슴이 아팠다. 목 부근의 붉은 자국들- 어젯밤의 잔혹한 관게- 유천이 입었을 마음의 상처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안 먹을거야?" "........회사는?" "형 회사에는 형 오늘 결근할거라고 말했고, 나도 오늘은 쉬려고." "............" "식기전에 어서 먹어." 유환이 죽을 떠서 유천의 입 앞에 갖다대었지만 유천의 굳게 다문 입술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유환은 한숨을 내쉬며 "조금이라도 먹어야지-"라고 말하지만 유천의 입술은 전혀 열리지 않는다. 유환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죽그릇을 옆으로 치우고 유천보고 누워 있으라 했고 유천은 고개만 끄덕이고 누으려 했다. 유환은 그런 모습을 보고 죽그릇을 들고 나가려고 하는데- "아읏-" "형!" 유천이 허리에서 오는 고통에 신음소리를 내자 유환은 되 돌아 와서는 유천보고 괜찮냐고 묻는다. 유천은 고개만 끄덕이고서 다시 누으려 했지만 아파서 쉽게 몸을 뉘일 순 없었다. 유환은 그런 유천을 도와주기 위해 허리를 받쳐주며 천천히 몸을 바로해 눕혀주었다. 그리고 이불을 덮어주고서 다시 나가려고 하는데 유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뭘- 동생으로써 해야할 일인데-" "미안해.....-" "뭐가 미안해, 형은 미안해 할 일 없어." 달칵, 쾅- 그렇게 유환은 문을 닫고 나갔고, 유천은 몸을 약간 틀어서 누웠다. 싸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는 것 보다 차라리 창 밖을 보는게 더 나았다. 창 밖을 봐 봤자 서울 도시의 빽빽한 건물들과 차밖에 없다만, 이쪽이 더 숨통이 덜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떠오르는 영상이란- 어젯밤의 강제적인 관계- 하나도 행복하지 않고 고통만 느껴졌던 관계- "싫어, 싫어- 떠 올리지마, 박유천- 떠 올리지 말자." 유천은 그 영상이 자신의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다는 느낌에 이불을 꽉 잡고 머릿속에서 지울려고 다른 갖가지 생각을 다 떠올려 봤지만 그 생각은 끝은 다 정윤호였다. 유천은 시니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박유천, 넌 참 구제불능이야-" 그리고 슬픈미소- 울지는 않지만 슬퍼보인다. 울음을 참는게 울음을 터뜨리는 것보다 더 슬프게 느껴지듯 유천의 슬픈 미소는 유천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보다 더 슬퍼 보이고 안타깝다. 그가 자신에게 한 나쁜 행동을 다 떠올려 봐도, 그에게서 치욕스러움을 느꼈을 때를 떠 올려 봐도 그가 밉기는 커녕 그립기만 했다. 이토록 사랑이 깊었던가- 그에 대한 유천의 사랑이 그렇게 깊었던 것일까- 하긴, 유천은 윤호에게 싫다, 밉다라고는 했다지만 한번도 진심으로 그런말을 꺼낸 적은 없었다. 그저 다 말로만이었지, 하루만 지나면, 아니. 몇시간만 지나도 그에 대한 미움은 다 사라지곤 했으니 그를 진심으로 미워한 적은 없었을 테지. 차라리 그를 미워한다면 서로 마음이 편할텐데- 미치도록 그를 증오했다면 가슴앓이가 덜 심할텐데- 유천은 그러기에 그를 너무 깊게 사랑한다. 깊은 사랑은 상대방을 금방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금방 싫증을 내게 된다. 그래서 결국 윤호도 다른 이들과 같이 유천이 주는 깊은 사랑에 싫증을 내고 권태기를 느끼는 것일 거다. 깊은 사랑은 두 사람이 같이 하지 않는 이상- 한 사람에게는 싫증을, 한 사람에게는 아픔을 안겨준다. * 띠리리리- 띠리리리- 핸드폰 벨이 울린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벨은 계속 해서 집 안에 울렸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직도 그대로 굳어버린 듯 누워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분을 누워 있으니 상대방도 지쳤는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울리는 벨- 계속 듣고 있자니 너무 짜증이 나서 배터리라도 뽑을 셈으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발신자에 뜨는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 혹시나 어제 그렇게 나간 유천이 전화 했을까봐 당장 플립을 열어 받았는데- -윤호 오빠 폰 맞아요? ".......그런데, 누구?" -윤호 오빠에요? 나 미야에요! "미야?" 윤호는 잠시 기억을 되 짚었다. 그리고 이내 '미야'라는 사람이 누군지 기억 해 냈는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살짝 웃음 지었다. 그러면서 "어쩐 일이야-"하고 말을 꺼냈다. -이러기에요? 오빠가 서울오면 맛있는 거 사준다 해 놓고! "아침 부터 얻어먹게?" -무슨 소리에요? 벌써 점심때에요. "점심?" 윤호는 그러고서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오후 1시. '제길, 내일 회사 가면 또 과장한테 깨지겠군-' 그날 단단히 혼난 윤호는 과장한테 혼날 것을 생각하고서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들려오는 미야의 목소리에 윤호는 찌푸렸던 인상을 펴며 다시 얘기했다. "8627...-" -그럼 다음에는 오빠가 먼저 전화해요! "그래-" -오늘은 많이 피곤해 보이니깐 못 불러내겠네요. 흐음, 그럼 다음에 봐요! "응." 탁- 받아 적어놓은 미야의 번호를 폰에 저장시키고서 침대의 커버를 들고 욕실로 가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어젯밤의 일로 엉망이 되어 있었기에 그냥 놨둘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빛 바랜 갈색의 긴 머리를 손으로 한번 쓸어 넘기고서는 대충 씻고서 지갑을 챙겨 나갔다. 머리 속도 정리할겸, 지저분해진 긴 머리도 정리할 겸 머리를 자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갈색머리는 맨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갖는 검은 색으로 다시 탈색해 버리기로 했다. 미용사에게 그저 짧게 잘라서 검은 색으로 탈색 해 달라는 말만 꺼내고 눈을 감았다. 그후 1시간 뒤- "안녕히 가십시오-" 윤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미용실을 나왔다. 짧은 머리가 어색해 몇번이나 손이 머릿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손을 거두고서는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26살에 직업은 회사원이니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해서 길러 있는 것 보다 차라리 이렇게 검정으로 짧게 잘라져 있는 것이 더 나이에 맞고 단정해 보이겠지. 하지만 머리를 자르고도 떠나가지 않는 무거운 생각들-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싶다, 하루만이라도 잊고 싶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5] 쾅- "형, 나 왔어-" 유환은 유천에게 자신이 들어왔다고 알렸다. 아까 친구의 전화를 받고 잠깐 친구를 만나기 위해 2시간 정도 집을 비운 것이었다. 평소라면 밤새도록 얘기하고 술을 마시겠지만 지금은 아픈 형이 있기에 적당히 끝내고 돌아온 것이다. 유환은 폰과 지갑을 소파에 던지듯 내려놓고 아무 응답도 없는 유천을 다시 불러 보았다. 하지만 역시 응답은 없다. 그러다가 욕실쪽에서 물소리를 듣고 샤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서는 냉장고에서 냉수를 꺼내 마셨다. 냉수가 몸 안에 흘러 들어가 몸안에 있는 열을 모두 빼앗아 버리는 것 같이 시원했다. 달칵- 마침 컵을 내려 놨을때 유천이 목욕가운을 걸치고 물기어린 머리를 털며 나오고 있었다. "형, 냉수 마실-" "응? 아, 물좀 줘-" 유환은 얼어버린 듯 가만히 서 있었고, 유천은 왜 그러냐는 눈으로 유환의 손에 들린 컵을 뺏어 들고서 물을 따르고서는 벌컥 벌컥 마셨다. 유천이 물을 다 마시고 컵을 탁- 하고 놓는 순간까지 유환은 뻣뻣히 굳어서 경악의 눈으로 유천을 쳐다보았다. "피식, 박유환- 왜 그래?" "혀, 형! 머리!!" "아- 좀 거슬리길래 잘랐어. 괜찮아?" 무척 짧아진 머리. 유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짧아진 자신의 형 머리칼을 만졌다. 유천은 그런 유환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유환의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다. "왜? 형 머리 이러니까 이상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레드블랙으로 염색도 했다? 괜찮아?" "으, 응- 괘, 괜찮은데-" 유환은 여전히 뻣뻣히 굳어서는 유천을 바라보았다. 유천은 그런 동생의 얼빠진 모습에 피식 웃으며 조금은 차가운 손으로 뺨을 가볍게 쳐 주고서는 "정신차려-"라는 말만 남기고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유천이 들어가고 나서도 유환은 여전히 굳어서는 중얼거렸다. "머릴 자를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거야?" 고등학교 졸업 후, 유천은 한번도 저렇게 짧게 머릴 자른 적이 없었다. 다듬으면 다듬었지 저렇게 짧게 자른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유환은 더욱 충격적이고 마음이 아플 수 밖에 없었다. * 유천은 총알 구제 청바지에 흰 셔츠 단추를 두개 정도 풀고서 앉아있다. 그의 갸름한 얼굴에는 무테의 안경의 씌여 있는데 그 것이 유천을 더욱 지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그런데 그의 하얗고 긴 손가락 사이에는 평소때 그에게서 전혀 볼 수 없는 것이 들려 있다. 바로 담배 한 개피- "하아-" 깊게 빨아드리고 숨을 내 뱉자 하얀 연기가 유천의 잎에서 모락모락 나온다. 유천은 그렇게 있다가 아차, 하고서 창문을 열었다. 어느새 하늘은 검게 변하고 도시들은 여러 불빛을 낸다. 그렇게 밤공기를 마시며 담배를 피는 유천. 아주 오랜만에 피는 담배라 그런지 더 씁고, 더 당긴다. 고 1때 친구들 따라 피다가 윤호를 만난 후 전혀 피지 않게 된 담배. 벌써 9년 전이다. 그리고 정윤호를 만나고 사랑한지 9년째. "피식, 오래 됐군-" 그러다가 유천은 재떨이에 재를 털어내고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연기가 나가도록 창문을 닫지 않은체로 침대에 누웠다. 아직 허리가 아파왔기에 고운 미간에 주름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차가운 얼굴을 한다. 몇시간 전과 전혀 다른 모습- 분명 박유천인데 왜 박유천이 아닌 것 같을까- '미련하게 살지 않겠어, 나도 이제 내 인생을 찾아보지-' 그렇게 생각하고서 유천은 시니컬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서 그의 가늘고 붉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목소리- "빌어먹을 세상따위 잘 살아보지, 쿠쿡- 그거 하나 못 할까봐-" 유천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유환을 불렀다. 샤워를 했는지 젖은 머리칼을 말리지도 못한 체 나온 유환은 무슨 일이냐며 유천에게 물었고 유천은 그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야 부르냐? 형이 술 사줄게, 나가자." 그런 유천의 모습에 유환은 살짝 굳었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준비하고 나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방으로 들어갔다. 유천은 아까 머리를 자르러 갈때 집에 들려 카드를 가져왔다. 다행히 윤호는 없었고, 몇가지 필요한 것만 챙겨 나온 것이었다. 집을 나올때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그런 기분을 떨쳐 버리고 나와 버렸다. 이내 유환이 준비를 다 했는지 멋지게 차려입고 나왔다. 유천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생 너무 멋진 거 아냐?" "쿡, 그래? 그럼 이 멋진 동생한테 비싼 거 사주기다?" "그래-" 오랜만에 즐거운 외출을 하기로 한 유천과 유환- 이내 유환의 집엔 불이 꺼지고 문이 잠긴다. 유천은 계단을 내려가며 유환을 툭 치고서는 웃음 섞인 말로 "형보다 더 크면 어떡하냐?"라고 농담섞인 말을 건넸고, 유환은 나름대로 밝은 유천의 모습에 유천의 말을 맞 받아 치며 재밌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내 두 사람은 큰 웃음보가 터졌고 오랜만에 두 사람에게 밝음이 찾아든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빌라를 나섰다. 정윤호, 게임은 끝났어. 그리고 승자는 너야. 하지만 잊지마. 게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 또 다른 게임이 시작 될 거야. 하지만 이번에도 니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마. 설마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큰 오산이야- 나, 박유천은 저번과 같이 나약하지 않거든- 그리고 이번 게임의 승자는 바로 나, 박유천이 될 거야. laura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6] 다음 날- 유천은 다행히도 어제 집에 가서 정장 한벌과 필요한 서류들을 들고 온 관계로 저번에 내지 못한 기획안 수정본을 과장에게 무사히 내고 자리에 앉아 다른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회사 여직원들은 유천이 모습을 나타내자 마자 머리 왜 잘랐냐면서 질문 공세를 해 댔지만 유천은 그저 웃음만 지으며 "노코멘트에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런 유천의 웃음에 여직원들 몇몇은 얼굴이 붉어져서 어쩔줄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동료 직원은 유천보고 인기인 되서 좋겠다며 농담섞인 말을 했고 유천은 멋쩍은 듯 웃었다. "그나저나 어제 왜 안 왔어?" "응? 아, 그날 먹은 술이 좀 과했었나봐- 맥을 못 추리겠더라고." "하긴, 그때 유천씨 많이 마시긴 했었지." 유천은 속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일을 하나씩 처리해 갔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유천과 같이 회사에 오지 않은 윤호가 등장했다. 윤호는 오늘도 뛰었는지 헉헉대고 있었다. 그렇게 윤호가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는 평소에 윤호에게 관심있던 여직원들로 인해 부서 안이 시끌벅적하게 됐다. "어머, 정윤호씨도 머리 자르셨어요?" "이제 좀 있음 봄이니까요-" "호호, 신기하네요- 어제 회사 빠졌던 두 사람 다 머릴 자르고 나타나니까-" 그 말에 유천과 윤호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유천은 윤호의 모습을 보고 아무 반응 없었지만 윤호는 유천의 짧게 잘라진 머리를 보고 꽤 많이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유천은 입꼬리만 살짝 올려 예의상으로 인사할 뿐이었다. "오늘도 늦었네요, 정윤호씨." ".....아- 네." 윤호는 벙 쪄 있다가 유천이 다시 고개를 돌려 업무를 볼때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유천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작게 말했다. "할 말 있어."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유천은 윤호를 올려다보더니 아무 표정도 없이 안경을 고쳐쓰고서 모니터로 시선을 올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 적인 볼일은 나중에 보도록 하죠. 지금은 업무 시간입니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반응에 약간 화가난 듯 인상을 찌푸렸고, 유천은 묵묵히 자판만 두드릴 뿐이었다. 그리고 윤호가 다시 유천의 어깨에 손을 가져가려할 때 과장이 부서실로 오는 바람에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일을 보는 윤호였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몰래 흘끔 보고서는 다시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정윤호, 니가 생각했던 박유천은 이제 없을거야.' 정윤호에 대한 박유천의 반전이 시작되었다. * 땡- [7층입니다.] 7층인걸 알리는 기계음이 들려왔고, 스르륵 열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이사실로 향했다. 이사실의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선약이 되어 있습니까?" "그런 건 없고- 그냥 박유환이라고 전해주세요." "기다리십시오." 비서는 전화를 들더니 1번을 눌렀다. 그리고 이네 "네."하고 전화를 끊더니 유환에게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십시오." 비서의 말에 유환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이사실로 들어갔다. 이사실에 들어가자 한참 바쁘게 서류를 뒤적이고 있는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유환은 밝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창민이형!" * "웬일로 찾아왔어?" "그냥 오랜만에 형 얼굴도 볼겸-" "웬일이야? 니가 아는 형이라곤 박유천 단 하나 아니었나?" 창민의 장난끼 섞인 물음에 유환 역시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에이- 그런 섭한 소리를-"이라는 말을 내 뱉었다. 그러자 한 순간에 딱딱함을 풍겨내는 이사실에는 웃음소리가 묻어났다. 하지만 창민은 유환이 그냥 찾아 올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는 유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유환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간 자신이 본 그대로를- 이야기가 끝난 후 창민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인상은 약간 찌푸려져 있고 씰룩거리는 입술에서는 당장에라도 욕이 나올 듯 했다. "그래서 바보같은 니네형은 청승맞게 울고만 있냐?" "울었음 울었지, 뭘 청승맞게야-" "대답이나 해." "뭐, 그렇지. 그런데 어제 저녁에는 달라보이더라고-" 유환의 말에 창민의 한쪽 눈썹이 날카롭게 치켜 올려졌다. 유환은 그런 창민의 모습에 약간 멈칫 했지만 결국엔 어제 유천에게 느낀 그대로를 말해주었다. "그러니깐- 박유천이 갑자기 잘 자르지도 않던 머리를 자르고-" "응- 그리고 어제 술을 같이 마셨는데, 형이 좀 과음 했거든." "무슨 말 했어?" "으응-" 유환의 대답에 창민은 역시나 유환에게 대답을 재촉했고, 유환은 어쩔 수 없이 창민에게 말했다. 어제 술을 마시고 유환에게 부축 받아 나오면서 유천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유환은 꽤나 당황해서 유천을 바로세워 눈물을 닦아주려 했지만 유천은- '그냥 가자- 흐윽, 그냥 가..-' '형-' '미안, 나 오늘..흐윽- 오늘까지만 울게- 미안, 유환아.' 오늘까지만 운다는 그의 말에 그를 달래어 주지도 않고 그가 맘 껏 울수 있도록 그냥 놨뒀다. 그 상태에서 유환이 해 줄 수 있는 건 유천을 달래어 주는 것도, 유천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유천이 맘 껏 울수 있도록 가만히 놓아둘 수 있는 것 밖엔 없었다. "정윤호 개 자식, 내가 언젠가는 박유천 울릴 날 올줄 알았어-" "정말, 난 그래도 유천이 형 많이 사랑하는 것 같길래 아무 이상 없는 줄 알았는데-" "박유천은 일반인처럼 사는게 오히려 더 편했을지도-" 유환은 창민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유천에 대해 무심한 척 말해도 유환은 알고 있다. 창민 역시 윤호 못지 않게 유천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호가 먼저 선수치는 바람에 창민은 유천에게 그저 든든한 친구로밖에 남을 수 없었다. 윤호에 대한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이나 꽉 움켜진 주먹을 보면 알수있다. 아마 이 자리에 윤호가 있었다면 창민의 주먹은 벌써 날라갔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창민은 유천이 감금상태로 윤호에게 의해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주먹을 더 꽉 쥐었다. "...........형, 난 아직도 바라고 있어." "......응?" 유환의 말에 창민은 꽉 쥐고 있던 주먹에 그나마 힘을 풀고 유환을 바라보았다. 유환은 살짝 고개를 숙인 상태로 창민에게 말했다. "내가 우리 형 벨기에로 떠나기 전 날 형하고 술마셨을 때 말했잖아." ".......아- 쿡, 됐어." 창민은 잠깐 생각하는 듯 싶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 시니컬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역시나 마찬가지 대답이야." "형-" "유천이는 날 친구 이상으로 보지 않아." 창민의 입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온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는지- 유환은 그런 그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 누구보다 유천을 오래 지켜보았고, 그만큼 유천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었던 창민. 유천 역시 창민을 그 누구보다 좋아했지만- 어디까지나 친구로서 였다. 유천은 창민의 마음도 알지 못한 체 대학을 졸업한 후, 윤호와 벨기에로 떠나버렸고- 현재 윤호와의 좋지 않은 사이로 또 다시 창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박유천, 행복하라했는데- 왜 또 아파하고 있냐- 이 바보같은 녀석아..-' 창민의 슬픈 사랑이 가슴을 저리게 만든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7] 선우는 어제 저녁 겨우 창민에게 얻은 차키로 창민의 차를 조심히 운전해 대전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며 준비를 하고 차에 올랐다. 사고 이후 운전대는 잡기 싫었지만, 이렇게 혼자 남기에는 너무 외롭게 느껴져 가슴이 아파 가족과 함께 했던 곳으로 향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 그들의 모습을 잊어버리기라도 할 까봐- 혹시나 그들을 기억하지 못 해 그들이 슬플까봐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루에 몇번씩 그들의 이름을 머리속에 되 새기고 소리는 나지 않지만 몇번이나 입을 움직여 그들을 불렀다. 끼익- 작은 소음을 내며 차는 어느 집 앞에 섰고, 선우는 뭔가에 이끌리 듯 차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뭔가를 살며시 쓸어내렸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문패. "으흐흑- 아으...- 흐으윽-" 몇번이나 '아버지'라고 불렀지만 정확한 발음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아기들의 옹알이 같이 'ㅇ(이응)' 발음만 날 뿐이었다. 하지만 선우는 문패를 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열심히 일해서 선우가 20살 되는 해에 샀던 2층 집. 그렇게나 원했던 집을 사서 이삿짐을 옮기고 아버지가 대표로 걸었던 문패. 아버지가 문패를 걸고나서 모두 환하게 웃었던게 기억난다. 그 기억이 선우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아흐으윽-!" 하루에 몇번이나 하늘에 계신 그 분을 원망했다. 이때까지 믿고 기도했던 그 분을 이렇게 원망한 적이 있었던가- 너무나 억울해서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있기에는 너무 억울해서, 어디에 분풀이할 곳이 없어 그저 그분만을 원망했다. '왜 뺏어갔어요! 왜 나에게서 뺏어갔냐구요! 차라리 내 목숨까지 뺏어가지 그랬어요! 그럼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왜 데리고 갔어요! 왜...-! 왜!!!!!!' 결국은 주저 앉았다. 선우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고, 마른 땅은 선우의 눈물로 인해 축축하게 젖었다. 선우는 그렇게 몇시간이나 눈물을 흘렸다. * 유환과 꽤 오래 이야기 한 탓에 서류도 많이 못 처리하고 이사실을 나선 창민이다. 아버지가 작게 시작한 사업이 꽤 크게 번창하여 이렇게 큰 회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이사'라는 직책을 맡을 수도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창민이 친 아들이라서 '이사'자리를 준 게 아니냐면서 뭐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창민의 일 처리 능력과 실력을 보고 나무라는 사람이 하나씩 줄어 들어 지금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이사가 되었다. 창민은 유천의 이야기로 심란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며 벨을 눌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민의 어머니는 창민을 보고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창민아, 어쩌면 좋니-" "왜 그러세요?" "선우가 아직도 안 왔단다, 밖에 비가 이렇게 오는데-" "아직도 안 왔어요?" "그래, 어디 갔는지 연락도 없고- 얘, 얘!! 창민아!!" 창민은 그 길로 집을 나서 집 앞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에게 차를 빌려 급히 대전으로 내려갔다. 5시부터 약하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두시간이 지난 지금 굵은 장대비로 퍼 붓고 있었다. 역시 혼자서 두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안쓰러워도 그에게 차키를 주는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창민은 퇴근을 하는 많은 차량으로 인해 막히는 도로를 보며 작게 욕을 내 뱉었다. '제발, 제발 거기만 있어라-' 이내 도로가 뚫히고 창민은 대전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 쏴아아아아-- 일기예보를 보지 못한 선우는 오늘 비가 올 것을 예상 못 했는지 우산도 없이 얇은 옷 하나로 집 앞에서 몸을 움크리고 버티고 있었다. 창민의 차가 눈 앞에 있지만 차에 오르고 싶진 않았다. 그냥 이렇게 집 앞에 앉아 집을 지키고 싶었다. 이렇게 집을 지키고 앉아 있으면 시장에 다녀오시는 어머니가, 일을 끝내시고 돌아오시는 아버지가, 학교를 마치고 오는 여동생이 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기다리면 꼭 올것만 같아서 차에 탈 수가 없었다. 입술은 새파랗게 변하고 몸은 차갑게 식어 있는데도 선우는 차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날도 일찍 저물어서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고- 하루 종일 우는 바람에 기진맥진해 져 있는 상태인데다 비까지 내리니 선우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선혜야..- 나 추운데- 그러니까 어서와요. 어서 와서 같이 집에 들어가요- 어서 와요- 같이 집에 들어가잔 말예요-' 빗물과 섞여 또 눈물이 흐른다. 몇시간을 울어서 눈물샘이 다 마른줄 알았는데 또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자신의 체온을 유지 하기 위해 몸을 더 움크리는 선우였다. 그때 멀리서 차의 불빛이 선우를 비췄고, 선우는 눈살을 찌푸리고서는 고개를 묻어버렸다.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혼자서 기다리다가 가족과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차는 이내 선우가 타고온 창민의 차 옆에 주차되더니 누군가 급히 내려 선우에게로 다가온다. 쏴아아아아- "선우야-" 선우는 무릎에 묻었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검은 구두가 보였다. 아버지가 항상 회사갈때 신으셨던 구두와 비슷해 보인다. 선우는 울컥해져서는 창민의 다리를 잡고서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흐어어엉- 아빠아아---" "서, 선우야?" 어린 아이처럼 '아빠'라 하며 울어대는데 왜 그렇게 안타깝던지, 창민은 들고 있던 우산을 놓고서 차갑게 식어버린 몸을 안아들었다. 선우는 창민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여전히 '아빠-'라 부르면서 울어댔다. 그나마 언젠가 한번 들리기 위해 들고 다녔던 선우의 집 열쇠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 비웠던 탓일까? 그새 집에는 얕은 먼지가 쌓이고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다는 것을 한번에 표현하 듯 행복하고 따뜻하던 기운은 온데간데 없고 차가운 기운만이 맴돌았다. 창민은 방에서 이불을 가져와 선우를 덮게 하고서 선우가 손에 꽉 쥐고 있던 차키를 빼 내어서 나가서는 선우네 집 주차장에 차 두대를 나란히 주차 시키고 바닥에 내동강이 쳐진 우산을 접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선우는 몸을 벌벌 떨면서도 울고 있었다. "...으흐흑- 돌아 오란 말야- 흐아..ㅇ....- 가지 마- 흐으윽- 나 혼자 두고 가지마-" 선우의 슬픈 목소리가 창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창민은 선우를 꽉 안아주었다. 그리고 달래어 주듯 선우의 식어버린 몸을 있는 힘껏 안고서 안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 않아- 너 혼자 두고 가지 않으니까 불안해 하지마. 니 가족은......- 이제 니 곁에 돌아오지.... 못 하겠지만- 이젠 내가 항상 니 곁에 있고, 항상 너한테 돌아갈게. 그러니깐....- 그러니깐 그렇게 아프게 울지마..-" 이내 달래어주는 창민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선우에 대한 안타까움의 눈물과 오늘 낮에 전해들은 유천에 대한 슬픈 사랑의 아픈 눈물이었다. 이 두 사람에게는 언제쯤 행복이 자리 잡을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8]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굵은 비를 맞아서 그럴까? 선우는 지금 불떵이가 되어있다. 창민은 정장 마이를 벗어두고 욕실에가서 물을 받아와 수건을 적셔 선우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울다가 지쳐 자신의 품 안에 잠들었는줄 알았는데, 열이 갑작스레 올라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다. 인근에 있는 병원은 이제 문을 닫았을 것이고, 큰 병원까지 나가자 하니 선우의 집이 외진 곳에 있어 시간이 꽤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국은 열부터 내리자는 마음으로 서랍장이고 다 뒤져 해열제를 찾아내고 물수건을 적셔 몸을 닦아줄 뿐이었다. "선우야, 많이 아프면 병원 가자. 응?" 창민의 말에 선우는 그저 고개만 젖는다. 병원이라면 질색을 하는 선우로서 병원은 당연히 가기 싫은 곳이었다. 창민은 하는 수 없이 몇번이나 찬물을 받아와 수건에 적셔 선우를 닦아주고 보살펴주었다. 몇시간 뒤- 창민의 정성을 알아차린 것일까? 선우의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창민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바닥에 털석 주저 앉았고, 이내 밖에 비가 그쳤음을 알아채고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안은 선우의 상태도 그렇고 해서 집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폰을 꺼내들어 집에 전화를 하고 선우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다행히 열이 많이 내렸다. 창민의 차가우면서도 시원한 손에 선우는 이때까지 감고 있었던 눈을 살며시 떠 보였다. "아, 일어났어?" "............." "오늘 서울 못 가겠으니깐 맘 놓고 자." 창민의 말에 선우는 다시 눈을 감으려했다. 그러나 그때 창민의 외침으로 다시 눈을 뜨고 창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고, 너 오늘 한끼도 안 먹었지?" ".............." "기다려봐, 형이 나가서 먹을 거 사올게." 선우는 창민이 일어나자 창민의 옷깃을 어렵사리 잡고 입을 열었다. "시간........늦었어....-" "아, 괜찮아. 한군데 정도는 문 열었을거야." 그러면서 창민은 뒤 돌아섰다. 창민의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은 열로 인해 힘이 빠져있던 터라 창민이 뒤 돌아서면서 침대에 떨어졌다. 창민이 문을 열려고 하자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안 떠난다면서! 항상 내 곁에 있는 다면서!" "배 고프잖..-" "배 안 고프니깐 가지마!!" 선우의 외침에 창민은 다시 뒤돌아서서 선우의 침대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는 푸석해진 선우의 갈색 머리를 뒤로 넘겨주었다. "가지 않아." "..........." "그러니깐 불안해 하지마." 창민의 말에 내색은 안 했지만 선우는 꽤나 안심하는 듯 했다. 창민은 그렇게 한참이나 선우의 곁에 앉아있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선우에게 물었다. "......이제 말 하네?" ".............나도 잘 몰라- 갑자기 말이 나왔으니깐." "다행이다, 그치?" 창민이 환하게 웃으면서 묻자 선우는 슬쩍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창민은 그런 선우의 머리를 헝크리 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종이에 글 적으면서 나한테 화내는 일 없겠네-" "내가 언제 그랬..-! 웃-!"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머리속이 크게 울려왔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다시 체온이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창민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잠잠해지는 선우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파? 병원가자, 어서!" "....됐어, 호들갑 떨지마-" 창민은 여전히 불안한 듯 했지만 많이 안정된 듯한 선우의 모습에 애써 마음을 진정 시켰다. 창민은 다시 선우의 머리쪽으로 손을 가져갔고, 선우는 냉정히 뿌리쳤지만 다시 다가오는 창민의 손에 포기하고서 가만 있었다. "니가 다시 형이라 불러줬음 좋겠어." "..........." "그리고 13년 전처럼 환하게 웃어줬음 좋겠어." "...........꿈도.... 꾸지마." "......꿈은 꿔야되지 않겠어? 니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거잖아." 그 부분에서 선우는 잠깐 흠칫했다. 정말 자신이 창민에게 마음을 열었기에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가- 창민은 웃으며 선우의 손을 잡았다. "........이거.....놔-" "다행이다, 의사선생님이 너무 오랫동안 말을 안 하면 그것도 문제라 했거든-" "...........그만 말해." "우리 집에 온지 몇주가 됐는데도 말을 안 하길래 병원에 가 보려던 참이었는데." "그만해!" "다행이다, 스스로 말 해서-" "그만 하라했잖아!!!!!! 난 아무한테도 맘따위 열지 않았어!!!!! 으윽-!!!!" 아까처럼 또 다시 머리가 울렸다. 선우는 지끈 거리는 머리를 잡았다. 창민은 이번에야 말로 병원에 가야겠다며 선우를 일으키려 했고, 선우는 강한 몸부림을 쳤다. "건드리지마!!!! 병원따위 안 가!!!!!! 사람 하나 살려내는 일도 못하는 곳따위 가기 싫어!!!! 너 혼자나 가!!!!!" "선우야-" "부르지마!!!! 내 이름 부르지 말란 말야!!!!! 우리 가족만 부를 수 있어!!!!!!" "이선우!" "제발 저리 꺼지란 말야---" 쫘아악--- 한순간의 적막- 털썩- 선우는 창민에게 뺨을 맞고서 침대에 쓰러졌다. 이내 선우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고, 침대는 축축히 젖기 시작했다. 창민은 그런 선우를 달래주지도 않은 체 소리쳤다. "이선우!!!! 적어도 주위에 있는 사람마저 잃기 싫으면 그런식으로 행동하지마!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주위 사람마저 다 떠나 갈 거야!!!!" "하윽, 흐으윽..- 떠나!! 떠나고 싶으면 떠나란 말야!!!!!"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창민을 노려보는데 그 모습이 왜 밉지 않고 더 불쌍하고 가여운지- 슬픔과 외로움에 지쳐버린 불쌍하고 가여운 아이. 창민의 눈이 애처로워지자 선우는 소릴 질렀다. "그딴 동정섞인 눈으로 보지마!!! 동정따위 받을 이유 없어!!!!!!!" "........선우야." "흐으윽- 부르지마!!! 우리 가족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야!! 흐흑..-!" 결국 창민은 선우를 감싸 안았다. 선우는 창민을 내쳤지만, 몸이 좋지 않은 선우의 주먹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질 않는다. 창민은 그제서야 '아픈 애를 데리고 뭘 한거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꽉 안아주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가족을 한 순간에 잃어 슬프고 외로운 아이를 때리다니- 선우는 그렇게 또 몇시간이나 눈물을 쏟아야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혼자 남은 슬픔에- 언젠가 혼자 남아 최후를 맞이할 자신의 미래의 모습에-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29] "그럼 이번엔 오른 발 부터 나가보자. 하나- 둘-" 우진은 재중을 부축해 걷기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재중은 나중에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우진은 "같이 연습하는게 더 좋잖아-"라고 말하고서는 재중을 부축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새 재중의 옷은 땀으로 축축해졌고, 그런 재중을 부축하고 있는 진 역시 땀이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재중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가 우진이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보고서 잠시 쉬자고 제안했고, 마침 방 안이었던 터라 우진은 침대에 재중을 앉히고 자신 역시 침대에 앉았다. "힘들면 그만하자-" "왜? 형 힘들어?" "아니, 그게 아니고- 니가 지치잖아." "괜찮아, 형 걸을 수 있음 이정도 고생쯤이야-" 이렇게 말하고서 활짝 웃는데 재중은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걸까. 우진은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욕실 쪽으로 가서 수건을 찬물에 적셔 짠 뒤 그것을 들고 방에 들어와 재중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재중은 그런 우진의 손길을 막았고, 우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중을 쳐다보았다. "형은 괜찮으니깐 너부터 닦아. 땀이 많이 흐르잖아." "샤워하면 돼. 어때? 시원하지?" 우진은 다시 손을 움직여 재중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활짝 웃어보인다. 그런 진을 보는 재중은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마비가 온 자신의 다리때문에 오히려 옆에서 고생하는 진에게 미안하기도 해서 가슴이 아파온다. 하루빨리 걸으면 좋을 텐데- 걸을 수 있다면, 우진이 이렇게 힘들어 할 일도, 그런 진을 보며 자신이 마음 아파하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먼저 갈게요-" 유천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 날 술을 마신다고 회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 해 놓고, 그 다음날을 회사를 빠져 차를 그대로 주차장에 방치해 둔 것이엇다. 그리고 차키는 어제 윤호의 집에서 챙겨 나온 덕에 오늘은 차를 타고 귀가할 수 있었다. 리모컨으로 미리 열어놨던 차 문을 열려고 손을 뻗으려 할때 누군가 유천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유천은 그가 누군지 짐작했는지 뒤 돌아보지도 않은 체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아 당겼다. 그때 그가 뒤쪽에서 유천의 팔목을 잡아 자신을 보도록 잡아 당겨 몸을 돌렸다. "뭐 하는 짓이야?" "왜 피하는거야?" "하- 나참, 웃겨- 내가 언제 널 피했는데?" "박유천, 빈정대지마." "정윤호." 윤호의 말에 유천은 정색(正色)을 하고서 윤호의 이름을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순간 유천을 잡을 손에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윤호는 다시 유천의 손목을 세게 잡는다. 유천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지만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내가 나갔으니 좋지 않아? 니가 좋아하는 여자들도 맘대로 집에 불러놓고 그 짓도 해도 돼. 이제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 조만간 짐 가지러 갈게." "누구 맘대로 나가래?" "쿡, 갑자기 왜 이래? 항상 내가 없어지길, 나가길 바라지 않았어? 니가 원하는 대로 됐잖아. 이제 내가 없으니깐 너도 편하잖..-" 쫘아아악-- 유천의 뺨은 붉게 물들어서 서서히 부어올랐고, 이내 눈가에는 촉촉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때 직원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윤호는 재 빨리 유천을 조수석에다 앉히고 차키를 뺏어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어 주차장을 벗어났다. 유천은 지금 울지 않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원래 이렇게 눈물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결혼생활이 점점 불행해 지면서 눈물도 더욱 많아져서 사소한 일에도 쉽게 울어버리게 되었다. 이것도 다 정윤호때문이겠지..- 윤호는 그런 유천을 알기나 하는건지 운전대를 잡고 어디론가 계속 운전해 나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신호를 받게 된 순간 윤호는 폰을 꺼내어 유천에게 건네며 말했다. "박유환한테 오늘 늦는다고 전해." "싫어." "빨리 전해, 이틀전 꼴 나고 싶지 않으면-" 이틀 전 일이라면, 유천이 강금되어 억지로 범해졌던 그 일. 유천은 자존심 상하는지 주먹을 살짝 쥐었다가 풀며 폰을 받아들어 유환에게 전화해 회사에 남은 일이 너무 많아서 늦게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말하니 유환은 윤호랑 같이 있냐부터 물었다. 유천은 "없어."라고 짧게 대답했고, 유환은 그런 대답에 한숨을 쉬며 퇴근할때 쯤 전화나 하라하고서 끊어버렸다. 유천은 고개를 돌려 윤호에게 폰을 건네 주었고 윤호는 폰을 건네받고서 계속 운전할 뿐이었다. * 어느새 유천은 지쳐 살짝 잠이 들어버렸고, 차도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윤호는 살짝 잠든 유천을 보았다. 짧게 잘라진 머리가 낯설다. 고등학교 이후로 처음보는 유천의 짧은 머리- 항상 만지면 부드럽고 가지런한 갈색 머리칼은 더 이상 없고 붉은 빛 나는 짧게 잘린 검은 머리칼을 하고 있는 유천. 손을 뻗어보지만 이내 다시 손을 거둔다.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사람. 그래서 동성인데도 불구하고 결혼까지 해 버렸는데- 자신을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유천인데, 그런 유천을 내치는 꼴이라니- 자신이 유천에게 얼마나 커다란 잘못을 하고 있는 줄 알지만, 그래서 항상 미안해 하고 있지만 막상 그를 마주하게 되면 미안하던 감정도 사라지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나 귀찮은 마음만 들 뿐이었다. 그런데 소유하고 싶다. 싫증이나고 화가 나는데도 그가 계속 자신만의 것이었음 좋겠다고 생각하는 윤호였다. 그래서 그가 가슴아파 하고 상처입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계속 그를 가지려 하는것이다. "쿡, 정말 악랄하군-" '정윤호, 너란 자식은- 언제나 이기적이고 악랄해서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준단 말야-' 그렇게 윤호가 잠든 유천을 보고 있는데 유천의 눈꺼풀이 몇번 깜빡 거리더니 눈을 똑바로 뜨고서는 고개를 돌려 윤호를 바라본다. 윤호와 시선이 마주치자 깜짝 놀랐는데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고, 이내 유천은 매번 그랬듯 윤호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린다. ".......여기 어디야." 자다가 일어나서 인지 목소리가 유난히 낮게 깔려 있었다. 윤호 역시 낮은 목소리로 "바다"라고 짧게 대답해주었다. 유천은 윤호의 대답에 깜짝 놀라 밖을 바라보았다. 불빛이 한, 두개밖에 없는 어두운 곳. 그리고 시원하게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더욱 추운 밤공기. 틀림없이 바다였다. "무슨 생각으로 이 곳 까지 온 거야?" "그냥 오고 싶어서 왔을 뿐이야-" "넌 항상 니 멋대로야." 그러고서 유천은 차에서 내렸다. 하얀 모래가 밟혔다. 하얀 모래는 밤이라 그런지 더욱 하얗고 시려 보였다. 그때 차가운 바람이 불고 유천은 한기(寒氣)가 드는지 몸을 떨었다. 그때 따뜻한 것이 유천의 어깨에 덮였다. 그 것은 윤호의 정장마이. 윤호는 셔츠만 입은체로 어느새 유천의 옆에 섰다. 유천은 그런 윤호가 추워 보여서 그것을 거절했지만 윤호는 "추위 잘 타잖아, 입고 있어."라고 말하고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앞장서서 걸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뒷 모습을 보며 가만히 서 있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정윤호!!!!!!" 윤호가 뒤 돌아보았다. 유천은 악을 쓰듯 큰 소리를 질렀다. "나한테 잘 해 주지마!!!!!!!!!" 유천의 말에 윤호는 최근에 한번도, 단 한번도 지어주지 않았던 미소를 아주 환하고 이쁘게 짓는다. 유천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이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잘 해주면, 내가 또 기대를 해 버리게 되니깐- 잘해주지마.' "잘 해 주지마, 바보야!!!! 흐윽..-!" 유천은 윤호의 정장 마이를 꽉 잡고 주저 앉았고, 윤호는 그런 유천에게 다가와 유천을 안아주었다. 그리고서는 속삭이는 듯 작은 목소리로 유천에게 말했다. "울지마...- 그리고, 미안하다. 항상 울게만 해서..- 너무 미안하다." "흐윽, 흐아앙-" 결국 윤호에게 안겨 크게 우는 유천이었다. '나 어쩔 수 없는 놈인가봐- 그렇게 맘 먹었는데도 왜 이렇게 니가 좋은걸까- 난 역시 어쩔 수 없는 놈인가봐, 어쩔 수 없는 놈이라서 맘 먹었는데도.....- 그런데도 정윤호를 사랑하나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0] 힘차게 몰려오던 파도가 모래를 만나자 잠잠해진다. 그렇게 몇번이나 거세게 몰려오지만 항상 그렇 듯 또 잔잔해진다. 파도는 힘들지도 않은지 그렇게 몇 백번, 몇 천번을 반복한다. 사방이 어두운 바닷가 한 가운데 앉아 있는 두 사람. 바로 정윤호, 박유천. 1m정도 떨어져 앉은 두 사람. 윤호가 옆으로 왔었지만 유천이 계속 피 하는 바람에 결국은 이정도 거리를 두고 앉은 것이었다. 유천은 두 무릎을 감싸안아 고개를 숙였다. 숙인 얼굴은 분명 방금 전까지 울어서 눈과 코가 빨게져 있을 거다. 울어서 그런지 3월 중순의 바다가 더욱 춥게 느껴진다. 윤호의 마이를 걸치고는 있지만 몸이 덜덜 떨려온다.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늦게 바다까지 왔으니. 덜덜덜- 치아가 부딪힌다. 유천은 몸을 더욱 웅크리고 추위를 달래 보려했다. 그때 몸이 붕 뜨더니 이내 뭔가의 위에 앉혀졌다. 유천은 고개를 정면으로 올렸다. 그러자 셔츠만 입은 단단한 가슴이 느껴졌다. 유천이 일어서려 하자 윤호가 유천을 꽉 안아서 마이를 고쳐 덮어주었다. 그래도 벅차고 일어나려 하자 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있어. 추워서 많이 떨고 있잖아." "...............이런 짓 하지마." 유천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낮게 말했다. 그 말을 하자 윤호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호는 한쪽팔로 어깨를 감싸고, 한쪽 팔로는 허리를 감싸 안았다. 허리를 건드리자 유천은 '아-'하는 소리를 냈다. 이틀이 지났다고 해서 통증이 다 가신건 아니었다. 그리고 싸한 통증과 함께 생각나는 것은 감금당한 체 강제로 맺어졌던 관계. 타악- ".....유천..-" "내 몸에 손 대지마!" "............" "이거 놔! 너같은 나쁜 놈한테 안겨있기 싫어!" "미안해, 유천아." "넌 항상 그런식이야!!" 윤호의 말에 유천은 꽤 많이 화가 났는지 윤호를 쳐다보며 외쳤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다시 조심스럽게 껴 안았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툭툭 쳐댔다. "항상 제 멋대로 일 벌려 놓고 제 멋대로 사과하고!" "미안해..-" "넌 미안해라고 하면 다 되는줄 알아? 니가 나한테 어떤 일들을 한줄 알아?!" "알아, 그러니까 미안해. 박유천 괴롭혀서 미안해 미치겠어!" 윤호가 큰 소릴 치자 유천음 움찔하더니 잠잠해졌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안고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항상 이러면 안 돼, 라고 생각하고서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나 조차도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어떻게 니 기분을 모르겠어? ....................씨발, 정말......- 빌어먹을 권태기로군...-" 윤호는 자신의 말을 욕으로 마무리 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눈을 감으며 조용, 조용히 말했다. "............그 빌어먹을 권태기에 지쳐 가." 유천의 말에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고, 거칠면서도 잔잔한 파도소리가 이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유천은 살짝 고개를 돌려 윤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유천의 말에 잠시 굳어있던 윤호가 유천의 하얀 목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모습에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윤호의 귓가에 다시 속삭였다. "이 말도 이제 마지막이야." 하지만 윤호의 입술은 좀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면 유천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윤호를 쳐 낸다거나 윤호의 품에서 벗어난다던가 하는 움직임 말이다. 그때 윤호는 유천의 내음을 맡으려는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간지럽히듯 입술을 떼지 않고서 말했다. "예상 했었어. 오늘이 너에게 그 말을 들을 마지막 날이란 것을...-" "..........피식-, 바보." 유천은 작게 "바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윤호도 피식 웃어보였다. 그 뒤 유천은 또 한번 입을 열었다. "너한테 내 몸 내어 주는 일따위 없을거야." "..........그래." "너한테 호락호락하게 당하는 일따위.... 없을거야." ".......응." ".............하아..- 난 이제 새로워 지려고 해." 유천의 말에 윤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유천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유천은 이때까지 가만 놔 두었던 팔을 들어 윤호가 자신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유천 역시 윤호를 꽉 안았다. "너 없이 내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거야. 모험을 해볼거야..-" "............." "너 없이...- 내가 얼마나 잘 해 나갈 수 있는지 모험을....- 해 볼 생각이야." "..............." "............그래서....- 그 모험이 끝난 다음에는- 이렇게....- 더 이상 니 앞에서 울지 않을거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천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려 윤호의 어깨를 적셨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더욱 꽉 안았다. 그리고는 유천의 어깨에 자신역시 고개를 묻어버리며 말했다. "그래...- 넌 분명 잘 해 낼거야.......- 하아....- 나도 모험 하나를 해야겠다." ".............흐윽...-" "박유천에 대한 집착을 그칠 수 있도록........- 모험을 해 봐야겠네....-" 그리고서는 윤호는 유천을 살짝 떼어냈다. 유천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된 체 눈은 윤호를 향하고 있었다. 윤호의 눈 역시 그런 유천을 향했다. 그러다가 살며시, 조심 스럽게 유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는 윤호. 유천은 입을 살짝 벌려 윤호를 받아들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슬픈 키스..- '............이 키스도, 너와 하고 있는 이 키스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갈구하 듯 잠시 숨을 돌리다가 몇번이나 키스를 반복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입맞춤을.............- http://cafe.daum.net/wdfanfic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1]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유천은 조용히 눈을 뜬다. 아직 밖은 어둡다. 조용한 이 곳에는 시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유천은 푹신한 침대에서 일어나 이 곳이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이곳 저곳 둘러보다가 이내 이 곳이 익숙한 곳이란 것을 알고서 다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서울로 오는 도중 차 안에서 잠이 들은 것 같은데, 윤호가 집까지 안고 왔나보다. 운전하느라 피곤 했었는지 윤호는 유천의 움직임에 깨지도 않고 곤히 자고 있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보다가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는 얼마나 마셔댔는지 술병이 한 가득이었다. 유천은 눈살을 잠시 찌푸리고서는 한숨을 내 쉬더니 술병을 한 곳으로 치우고 냉장고에 있는(그나마 상하지 않은) 재료를 들고 이 것 저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음식을 다 만들고 몇가지 반찬은 냉장고에 챙겨 넣고 보니 6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유천은 음식을 다 준비해서 식탁보로 덮어두고서는 시계를 보더니 집에 있을 유환이 생각나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하얀 연기가 자욱하게 번져 있었다. 다시 담배에 입을 대기 시작한 유천은 단번에 담배연기라는 것을 알고서는 방의 문을 열었다. 시원한 새벽 공기가 스며 들었고, 유천은 불도 켜지 않고 담배를 피고 있는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는 문을 열고 담배 펴. 안 그럼 암으로 얼마 안 있어 죽을테니까." "...........가는거냐." "가야지. 유환이가 기다리고 있을거야." "..............." 유천은 옷걸이에 걸어진 자신의 넥타이와 정장 마이를 챙기고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차키를 손에 집고서 방문을 열었다. 윤호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며 유천의 움직임을 아무런 표정도 없이 지켜 볼 뿐이었다. 유천은 방문을 열고서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말했다. "언제 시간 한번 비워줘, 아니. 비워둬." "............" 아무런 대답 없는 윤호를 쳐다보았다.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하얀 연기를 내 뱉으며 유천을 쳐다보는 그의 표정에는 "왜?"라는 말이 벌써 새겨져 있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보며 잠시 뜸들이다가 말했다. ".........'벨기에'에 볼 일이 있으니깐." ".............후우..- 그렇군." 윤호는 그제야 입을 열고서 담배를 비벼 껐다. 벌써 그의 재떨이엔 5개 정도의 담배가 버려져 있었다. 그는 그렇게 침대에서 내려와서 유천에게 다가왔다. 유천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무심한 눈으로 윤호의 모습을 하나하나 새겨 넣고 있다. "역시 너도 나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겠지?" 윤호의 말에 유천은 피식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윤호도 자신과 같은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이니깐, 마지막이니 만큼 상대를 더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에 서로의 모습을 새겨 넣는다. 그러다가 2분정도가 지났을까? 윤호가 활짝 웃고서는 유천을 꽉 끌어 안았다. "................안녕, 내 첫사랑." * 띵-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유천은 재 빨리 차로 향했다. 이내 자신의 차가 보이자 문에 차키를 꽂아 넣었다. 그 순간 차 천장에 후두둑,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더 많이 떨어진다. "크윽, 흐으윽..-!" 유천은 주먹을 꽉 쥐고 울음을 참으려고 했다. 아까 윤호의 마지막 인사에 그 어떠한 대꾸도 해 줄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눈물이 나올려고 했으니깐. 참고 있던 눈물이 혼자서 있게 되자 바로 떨어진다. 유천은 애써 눈물을 닦아내며 유환의 빌라로 향했다. 달칵- 차키와 같이 달려 있는 집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이내 벽에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자신의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외투를 걸치고서 폰을 잡고 자는 걸 보니 분명 유천이 전화하면 바로 마중 나오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유천은 그런 동생의 모습에 웃음지으며 유환을 부드럽게 흔들어 깨웠다. "유환아, 형 왔어- 박유환." "......으응? 아...- 혀엉.....-"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말까지 늘어뜨리며 유천에게 안겨오는 모습이 웃겼지만 유천은 오랜만에 유환이 동생같은 모습을 보이자 기분이 좋은지 유환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왜 이런데서 자고 있어. 형 늦게 들어 올 거라 했는데-" "........하암- 뭐야..- 벌써 7시 다 되가?" 유환은 잠에서 막 깬 탓인지 목소리가 낮게 갈라져서 나왔다. 유천은 그런 동생의 이마를 짚어 보더니 부축해 일으켜서 걱정스런 얼굴로 물어보았다. "너 감기 있는 거 아냐? 목소리가 다 갈라지잖아." ".....걱정 마, 원래 자고 일어나면 이러니깐..- 으아-!" 유환은 기지개를 펴며 아직 잠에서 덜깬 눈으로 유천에게 베시시 웃어보이고서는 어깨 동무를 했다. 그것도 잠시 유환은 몸이 뻐근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으윽, 오늘 일찍 출근해야 하는데-" "그러게 왜 기다려, 바보 같기는." "누가 우리 형 납치 하면 어떡하냐? 딱 버티고 연락 올 때까지 기다렸지." "그럼 자질 말던가-" 유천이 새침하게 말하자 유환은 조금 삐친 얼굴로 외투를 다시 벗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그때 유천이 유환을 불렀다. 유환이 뒤 돌아보자 유천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벨기에 행으로 비행기 표좀 예매해 줄래?" ".......웬...- 벨기에?" "...........으응....- 그게.....-" 유환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천을 보며 물었고, 유천은 고개를 숙였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고서 유환을 보며 말했다. "그 나라에서 시작했으니까 끝도 그 나라에서 해야지." 유천의 말에 유환은 벙찐 듯 가만이 있다가 모든 상황이 파악 됐는지 유천을 부르려 했지만 유천은 "출근 할 준비해-"라고 말하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 가 버렸다. 유환은 그렇게 가만 있다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서 방 안으로 들어 와 버렸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은........- 이렇게 헤어질 거 였는가..-" 유환은 머리가 복잡한 듯 한껏 자신의 머리를 흐트러 놓더니 시계를 보고서는 늦었음을 깨 닫고는 씻기 위해 서둘러 욕실로 향한다. 결혼 생활 2년도 다 채우지 못 한 부부가 헤어지려 한다. 조만간 부부는 결혼 후 가장 행복한 생활을 했었던 '벨기에'로 향한다. 이번엔 '혼인신고'라는 설레는 것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혼'이란 가슴아픈 것을 하기 위해 떠날 것이다. 권태기에서 그치지 못 한 슬픔이 결국은 이혼까지 번져서 마음을 따끔거리게 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2] "응, 그렇다니까. 휴우- ... 바라던 거였는데 막상 닥치니까..- 응." 유환은 뭔가 슬픈 얼굴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내용을 살펴보니 바로 유천의 일에 대해 대화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통화가 길어지고 있는데 그때 앙칼진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유환씨! 지금 몇십분째 통화하는 거에요?" "아아, 네! 형, 나 끊어야 겠다, 마녀 떴거든, 응..- 그래, 나중에 봐-" 탁. 수화기를 내려놓고 유환은 자신이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유천네 부부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나 바랬던 이혼.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기분도 그리 좋지 못하다. 유환은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울상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흔들며 잡념을 지우려고 했다. 그때 아까 그 팀장이 다가오며 유환의 머리를 볼펜으로 딱- 하고 쳤다. "앗- 팀장님!" "오늘 왜 이렇게 잡념으로 가득 차 있어요? 유환씨가 지금 하는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어요?" "알아요, 안다구요- 그래도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예요." 유환은 입술을 삐죽이며 투정하듯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은 유환의 말에 유환을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쳐다보고서는 냉정하게 말했다. "사적인 일은 회사를 마치고 보세요. 여기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유환씨에게 맡긴 계획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구요. 제가 유환씨한테 맡긴 이유가 뭔데요-" "알았다구요, 알았으니까 잔소리좀 그만해요." "휴우- 여튼 잘 해봐요." 팀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유환은 잔소리 들은게 맘에 들지 않는 듯 계속 투덜댔다. 유환이 지금 맡은 일은 잘만 하면 승진을 할수도 있는 그런 중요한 일이었다. 바로 이번에 새롭게 하는 광고를 직접 계획하는 것이었다. 유환이 이번 일을 맡게된 계기는 이렇다. 저번 광고를 팀장이 맡게 되었는데 상사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고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유환은 헛점 투성이인 광고라 그녀의 광고를 지적했고, 우연히 회사 휴게실에서 회사 동료에게 광고에 대한 문제점을 얘기하고 있던 유환을 보고 그를 불러 아까 그 문제 점을 다시 말해보라 했다. 유환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말했고, 그녀는 속는 셈 치고 그 광고를 유환이 말한데로 보완 해 보았다. 그런데 광고는 더욱 성공적이었고, 상사들은 그녀를 칭찬하며 그녀에게 이번에도 광고를 부탁한다며 이번 광고 계획을 맡겼다. 하지만 유환의 숨은 실력을 안 그녀는 유환에게 그 일을 넘겨준 것이었다. 이번 일만 잘 하면 유환은 어린 나이의 신입사원인데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를 얻을 수도 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할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유천의 일이 터지니 유환은 미칠지경이었다. "일단 공적인 일부터 봐야겠지-" * 딩동- 딩동- 유천은 회사를 퇴근하고나서 혼자 집에서 있는 중이었다. 평소라면 벌써 집에 와서 자신을 맞을 유환이지만 이번에 큰 일을 맡아서 한동안은 집에 일찍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천은 심심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누가 벨을 눌러왔다. 유천은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계를 슬쩍 보며 '유환인가-'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세..- 창민아!" "박유천, 오랜만이네?" "이야, 심창민!" 문 밖에는 뜻 밖의 손님이 와 있었다. 바로 자신의 죽마고우, 창민이 있었던 것이다. 유천은 그가 매우 반가운 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와 포옹을 했고, 그 역시도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회사에서 바로 온 듯 했다. "옷도 안 갈아입고 왔네?" "집에 가면 나오기 귀찮을까봐-"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든지 귀찮아하는건 똑같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잖냐-" 두 사람은 웃으며 거실로 들어섰고, 마침 창민이 사온 술로 인해 거실엔 술판이 벌여졌다. 맥주를 마시며 이게 얼마만이냐며 창민에게 말을 건네는 유천의 모습이 매우 좋아 보였다. 창민 역시 오랜만에 친구를 봐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 술이 잘 넘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낭자야, 누가 낭군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머리 자르래?" "푸훗, 낭군님이라- 진짜 오랜만에 듣는데?" "하하, 그런가?" 중, 고등학교 시절 창민은 유천과 붙어다닌다는 이유로 '낭군'이란 별명을 얻었다. 친구들은 항상 유천과 창민이 같이 있음 창민을 "박유천, 낭군님."이라고 부르며 놀렸다. 곱상하게 생긴 유천의 외모로 인해 유천은 '낭자' 창민은 '낭군'이란 별명을 듣고 살아야했다. 그런데 유천이 윤호를 만나게 되고 윤호와 붙어다니게 되면서부터 그런 별명은 점점 사라져갔다. 중1때부터 고1때까지 지겹도록 들어온 별명. 그때 당시에는 왜 그렇게 그 별명이 싫던지 화가 날 정도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추억이었다. 창민은 잠깐 추억을 회상하다가 술을 한모금 마시고 진지한 목소리로 유천에게 물었다. "...이혼..- 한다며?" "...응? 아아...- 유환이가 말했구나." "응, 오늘 통화했거든..-" ".....맞아, 나 이혼하기로 했어." 유천은 시원섭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창민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 지는걸 느꼈다. 벌써 타인을 통해 듣긴 했지만 막상 본인을 통해 들으니 충격이 더 컸다. 유환이 최근에 자신에게 들려준 얘기들을 듣고 당장 이혼시켜야 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충동적이었다. 유천에게 한 윤호의 행동에 많이 놀라 충동적으로 이혼을 시켜야 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이혼을 한다니까 유환이 해 주었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커다란 충격이 창민에게 다가왔다. ".......너희.....- 행복했잖아..-" 창민은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게 유천을 보며 말했다. 창민의 말에 유천은 창민을 슬쩍 보더니 술을 한모금 마시고 시니컬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정말 행복한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행복은 고작 1년이더라고." "......1년....-? 그럼 한국에 와서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는 거야..-?" 창민의 충격은 계속 되어야 했다. 그냥 일시적으로 부부라면 누구나 다 겪는 그런 권태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창민의 예상과는 다르게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은 너무나 길었던 것이었다. "..........유천아." "....피식..- 그런 동정섞인 눈으로 보지 마, 비참하잖아." ".........."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 있었는데, 그랬는데..-" 유천의 손에 들린 맥주캔이 찌그러진다. 창민은 시선을 올려 유천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유천은 분한 표정을 하고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창민은 그런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주었고, 유천은 여전히 울지 않으려고 감정을 억제하며 말했다. "그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 있었다고! 그런데...- 그건 나 혼자였나봐." "....유천아." "정윤호는 전혀 그렇지 않았나봐- 그럴 자신 있었던건 나 혼자였나봐-" "알았어, 그만해." 이를 악물며 말하는 유천의 얼굴은 눈물로 번져있었다. 소리내어 크게 울때보다, 흐느끼며 울때보다 더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소리도 내지 않는 유천의 모습이 창민에게는 많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유천에게 말을 그치게 한 후 그를 품에 안아주었다. 유천은 창민의 옷깃을 꽉 잡으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나 분해, 창민아. 나 정말 분해! 왜 내가 이혼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어! 나 지금쯤 무척 행복해야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어-" 한쪽손으로 자신의 가슴쪽의 옷 자락을 꽉 잡으며 구기는 유천의 모습이 많이 안타까운 듯 창민은 유천을 더욱 꽉 안아주었다. 유천은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더 눈물을 흘려야했다. 누가 자신의 가슴을 짓 밟는 것 같았다. 칼로 도려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가슴이 많이 아파왔다. "이렇게 되긴 싫었는데...- 이렇게 되긴 싫었다고-!!" 유천은 오열하며 엄청난 눈물을 흘려냈다. 유천이 아파하는 모습에 창민의 눈에도 눈물이 나왔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아파하는 모습에 창민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차라리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그렇게 해줄게, 유천아."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는 아직도 정윤호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 할 수 없다.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렇게 말 할수 없다. 그렇게 말한다면 또 다른 이유로 아파할 그이기에- "울지마. 흑..- 울지마, 유천아." "흐으윽, 흐악..-" "괜찮아, 울지마..-" 자신역시 끊임없이 울면서 유천을 달래는 창민. 그의 모습은 유천의 모습보다 더 안타까웠다. 어렸을때부터 그를 좋아했다. 좋아하던 마음은 어느새 성장해서 '사랑'이란 감정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자신을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유천의 마음을 안 창민은 혼자서 마음 아픈 짝사랑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는 행복했다. 그의 곁에 항상 같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몇년 후 그들 앞에 '정윤호'라는 존재가 나타났고,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유천을 잃은 기분에 많이 속상해서 울기도 했고, 아버지 몰래 술을 사서 마시기도 했다. 그래도 셋이서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그렇게 대학까지 나란히 같은 곳에 다니게 되었고, 대학 졸업 후- "창민아, 나 윤호랑 결혼하기로 했어." 라고 하며 활짝 웃는 유천의 모습에 창민은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데도 "그래? 축하해-"라며 끝까지 웃어주었다. 벨기에로 떠난 후, 가끔씩 날아오는 편지에 그가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그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이제 10년간의 짝사랑을 마쳐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거짓말 같은 소리. 유천이 이혼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유천을 10년간 바라보며 사랑한 창민에게는 절호의 찬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쁘기는 커녕 더욱 가슴이 무너져 내릴만큼 슬프기만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가 이혼을 하고 얼마나 아파할지를 알기에, 얼마나 힘들어 할지를 알기에 그는 기쁘지 않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는 언제나 행복해야만 하니까- 그런데 그런 그가 아파하니까, 창민 역시 가슴이 아파올 뿐이다. 창민의 눈물은 끊임없이 흐른다. 창민의 품에 안겨 있는 유천의 눈물 역시 끊임없이 흐른다. "유천아, 아프지마..- 흐윽, 아프지마, 유천아..-" '니가 아프면, 내가 아프니까..- 아프지마, 유천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3] "휴우-, 끝났다." 윤호는 꽤 기분이 좋은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정말 오랜만에 집안 청소를 했다. 유천이 집을 나가고 엉망이었던 집이 오랜만에 환해 져서는 예전의 모습을 되 찾았다. 윤호는 자신에게서 땀 냄새가 나는것을 알고서는 옷가지를 챙겨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흘러- "시원하네-" 냉장고에 넣어뒀던 냉수를 꺼내마시고서는 시원한 듯 말을 내 뱉고서 입가를 쓰윽 닦아내는 윤호는 문득 집안을 둘러보았다. 혼자서 지내기에는 넓은 아파트. 따뜻함이 묻어났던 집은 이제 따뜻함 대신 차가움만 묻어난다. 벽지, 가구, 구조-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느낌만은 다른 것일까. 쓸쓸한 기운 마져 맴 돈다. 유천과 같이 있을때는 전혀 느끼지 못 한 것들이 한 순간에 윤호에게 다가온다. 윤호는 씁쓸한 웃음을 짓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Rrrrr- 그때 폰의 벨 소리가 울렸고, 윤호는 '귀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방으로 가서 폰을 꺼내 거실로 와서 플립을 열었다. 액정에는 '미야'라는 이름이 떴고, 윤호는 얼른 플립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어, 미야니?" -..으흑, 오..오빠, 윤호오빠..- 으흐흑..- "미야야? 왜 울어?" -으아아...ㅇ...- "울지 말고, 거기 어디야? 오빠가 갈게." -....흐아..ㅇ..- 여기... 으흑..- 미야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자신이 있는 장소를 말했고, 윤호는 금방 가겠다며 폰과 지갑, 차 키를 챙겨 간편한 외출복을 입고서 집을 나섰다. * "...미야?" "흐윽...- 오빠?" 윤호는 한 공원에 차를 주차해 놓고 벤치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미야로 보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살짝 쳤다. 다행히 상대는 미야가 맞는지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들어보이며 윤호를 부른다. 윤호는 살포시 웃음을 지으며 "여기서 뭐하고 있어-"라고 물었고, 반면 미야는 그런 윤호의 얼굴을 보자 더 울먹이더니 이내 윤호에게 안겨 울기 시작한다. "흐아앙- 오빠-" "그, 그래. 나야, 그러니까 울지마..-" 윤호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자신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미야를 조심히 안아주었다. 그렇게 겨우 미야를 진정 시키고, 근처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와 미야에게 따 주는 자상함까지 보이는 윤호. 미야는 윤호가 사 준 음료수를 마시며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다. 윤호는 미야가 안정되어 보이자 그제야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왜 이런데서 혼자서 울고 있어? 친구들은?" "......먼저 보냈어요. 우는 꼴 보이면 추하니까." 미야의 말에 윤호는 실소를 머금어야 했다. 친구에게 우는 꼴 보이며 추하고, 자신에게 우는 꼴 보이면 추하지 않은가, 라고 생각(전혀 악의는 없다)한 윤호는 아까 음료수와 같이 사 온 티슈를 뽑아 미야의 눈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왜 울었는데? 저번에 그 '진권'이란 애라도 만났어?" "..........." 윤호의 물음에 미야는 그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호를 쳐다보며 두 눈을 깜빡댔다. 윤호는 그런 미야의 모습이 재밌는지, 웃으며 "왜? 내 말이 맞냐?"라고 물었고, 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는 그 부분에서 기가 찬다는 듯 미야를 쳐다 보았고, 미야는 이내 다시 시무룩해지며 말했다. "..........참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 녀석 정말 나쁜 남자인 거 있죠." "아아- 울지마." 갑자기 다시 눈물이 고이는 미야를 보고 윤호는 재빨리 티슈를 뽑아 미야의 눈가를 닦아주며 울지 말라며 다그쳤고, 미야는 겨우 울음을 삼켰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다른 여자애랑 팔짱끼고 지나가는 거 있죠." "........" "불과 몇주전만 해도 나만 사랑한다던 그 나쁜 녀석이..-!" "........" 윤호는 지금 뭐라 위로를 해 줘야 될지 몰라서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유천이라면 그녀를 잘 위로해 줄 수 있을거라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미야가 말하는 남자는 꼭 자신 같았기에- 오히려 미야와 같은 입장에 있는 유천이 그녀를 더 잘 위로해 줄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 역시 불과 몇개월 전만해도 유천에게 사랑을 속삭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다른 여자'와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음..- 오빠가 생각하기에는 니가 좀 이해를 해 줬음 좋겠어." "....무슨 소리에요?" "누구나 한번쯤은 싫증나기 마련일거야. 니 남자친구였던 '진권'인가? 여튼 그 녀석도 '누구나가 다 겪는' 그런 싫증을 느낀 걸거야. 그런 걸 이해해 볼 생각은 없어?" 윤호는 지금 자신의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말인줄 알고 있다. 자신을 버린 상대를 이해하라니- 만약 유천이 이 말을 들으면 분명 자신의 뺨을 때리겠지. 미야 역시 윤호의 말에 잠시 주먹을 꽉 쥐더니 이내 포기한 듯한 얼굴로 힘을 빼며 말했다. "....알았어요, 이해는 해 볼게요. 하지만 다시 좋게 볼 생각은 없어요." ".....그래, 그것까진 바라지 않을게." "예?" "아, 아니야." 윤호는 당장 아니라고 얼버무리고서는 미야를 일으켜 기분 전환 시켜준다며 차로 향했다. '..........유천아, 그것까진 바라지 않을게. 니가 날 좋게 볼 수 없는 건 당연한 얘기야. 내가 너한테 한 행동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인걸..- 하지만 나를...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준다면 좋겠어.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말야-' * 쌕쌕- 울다 지쳐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유천은 그렇게 울다가 창민의 품에서 잠이 들었고, 창민은 그런 유천은 안아들고 이방, 저방을 열어보며 유천의 방을 찾아 유천을 침대에 눕혔다. 유천은 몇번 뒤척이더니, 이내 지금처럼 쌕쌕 거리며 편하게 잠들었다. 창민은 그런 유천의 짧은 머리칼을 만지며 유천의 갸름한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하얀 볼에 손을 가져가다가 손 끝에 느껴지는 눈물에 창민은 유천의 눈가와 얼굴을 조심히 자신의 손으로 닦아준다. ".............울면 안 돼." 그리고는 아까 전처럼 유천에게 다시 한번 울면 안 된다고, 울지마라고 말해준다. 잠에 빠진 유천은 뒤척이기만 할 뿐 대답은 없다. 그러다가 창민은 눈에 고인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고서는 그렇게 한참이나 유천을 보았다. 그때 문자가 오는 소리가 들렸고, 창민은 폰을 꺼내어 문자를 확인했다. [일찍온다며] 자신이 화 났다는 것을, 지금 많이 심심하고 일찍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것을 한 문장에 표현해내는 문자. 누군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자신에게 이렇게 투정할 아이는 단 한명 밖에 없으니 말이다. 폰을 다시 집어넣고, 유천에게 이불을 덮어준 후 방을 나와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10시가 넘었다. 정장 마이를 챙기고 그냥 가려다가 술병으로 지저분해진 거실이 맘에 걸려 술병을 구석에 치워 두고 집을 나섰다. 계단으로 내려가려 하니(4층짜리 빌라라 엘리베이터가 없다) 지친 듯 몸을 축 늘어뜨리고 올라오는 유환의 모습이 보였다. "유환아-" "아, 형..- 집에 왔었어?" "아, 응. 유천이 술 취해서 자니까 깨우지 말고- 집 다 못 치워서 미안하다." "아냐, 아냐- 괜찮아." "그래, 그냥 가서 쉬어라. 많이 피곤해 보여." "응. 형, 잘가-" "그래." 유환과 인사를 하고서 빌라를 나서는 창민. 도로로 나와 택시를 잡는다. 올때부터 자신의 차는 가지고 오지 안았다. 애초부터 술을 먹으려고 왔으니 말이다.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 창민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끝내 울다 자는 유천이 모습이 맘에 걸리기 때문이다. 창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유천, 날 위해서라도 무너지면 안 된다. 넌 항상 행복해야해. 그래야.......- 그래야만, 내 마음이 아프지 않으니까- 사랑.....- 한다.' 전하지 못 하는 고백이 창민의 마음속에서만 울린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4] 조금은 분주한 아침. 늦잠을 잤는지 욕실에서 씻고 있는 유천과 부엌에서 식사를 차리기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유환. 계란을 깨서 푸는 유환의 손길이 바쁘다. 얼마 후, 유천도 다 준비했는지 옷을 입고서 식탁 앞에 앉았다. 이내 유환도 앞치마를 풀며 앉았고 두 사람의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 "내일부터는 형이 아침 차릴게." "됐어. 번갈아 가면서 하면 되지. 그리고 어제 술도 마셨잖아." "아, 술병 거실에 그대로 있지?" "창민이 형이 가면서 구석으로 좀 치워나서 깨끗하니까 걱정마." 유환의 말에 유천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식사를 했다. 유환 역시 식사를 이어 하다가 갑자기 유천에게 할 말이 생각났는지 젓가락을 물고서 유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유천은 그런 유환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서 유환을 보았고, 유환은 "어서 먹어-"라는 말을 하고 다시 자신의 밥을 한 숟갈 떴다. 유천은 알았다는 듯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환은 유천의 눈치를 보며 흘끔 거린다. 유천은 반찬을 집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흘끔거려? 무슨 잘 못 했어?" "아냐-, 그게...-" "뭐?" "....그냥- 됐어." "박유환, 그럼 지금부터 흘끔거리지마." "....으응...-" 대답은 했지만 이내 다시 흘끔 거리며 유천의 눈치를 살피는 유환. 유천은 이내 자신의 밥 그릇을 비우고서 젓가락을 소리나게 놓고서는 유환을 보았다. 유환은 그렇게 흘끔거리다가 유천과 눈이 마주치자 사레가 걸렸는지 콜록 댔다. 유천은 한심하단 눈으로 물을 줬다. "빨리 말해." "콜록, 콜록- 응? 아..- 그게." "빨리. 형 화낸다?" "으응? 아아, 그러니까- 어른들한테는 언제 말할거냐고." "뭘?" ".......이혼...하는 거." 어려서부터 유천이 화내는 거에는 무지 약했던 유환. 유천이 화낼거란 소리에 결국 꼬리를 내리고 자신이 맘 속에 담아뒀던 말을 꺼낸다. 유천은 동생의 물음에 금세 시무룩해진다. 그러자 유환의 표정이 약간 찡그러지는게 괜히 말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유천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물을 한모금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말씀드릴 생각이야." "켁- 콜록, 콜록-" "얘가 오늘 왜 이래?" 유천은 갑자기 또 사레가 걸린 유환의 등을 툭툭 쳐 주며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유환은 얼굴이 새 빨갛게 되어서는 끝까지 콜록댔다. 그러다가 물을 마시고 겨우 진정됐는지 놀란 얼굴로 유천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 오늘?!" "그래, 오늘. 뭐 잘 못 됐어?" "아, 아니- 그런데 그렇게 빨리?" "빨리 말해 드리고 벨기에로 가야지. 계속 시간만 끌다보면 되던 일도 안 돼." "어른들 많이 충격 받으실텐데-" "그러니까 조용히 말씀 드려야지. 넌 집으로 오지 말고 그냥 여기 계속 있어." 유천은 단호하게 말하고서 마이를 걸치고 가방을 들었다. 안경을 쓰는 것도 잊지 않고 착용한 뒤, 마지막 현관에 있는 거울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유천은 구두를 신고서 "형 먼저 간다."라고 말한 뒤 문을 닫고나갔다. 그렇게 유천을 보내고 현관에 멍하게 서 있던 유환은 시계를 보고서 기겁을 하며 부엌으로 가서 대충 치우고 옷과 가방을 챙겨 유천과 같이 현관에 있는 거울로 옷 가짐을 똑바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 "형, 저기 공원에 개나리 폈어-" "그래?" 베란다 유리에 찰싹 붙어 밑을 바라보던 우진은 노란 꽃을 보더니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재중에게 신나서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우진이 말한지 얼마 안 되어 우진의 옆에 재중이 와서 섰고 우진은 손가락으로 "저기, 저기-"라면서 꽃이 핀 곳을 가리켰다. 재중은 "정말이네-"라 하며 진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진은 재중을 쳐다보며 활짝 웃고서는- "우리 나가보자!" 아파트 내의 공원. 이제부터 목발을 집게 된 재중은 휠체어를 탈때보다 훨 수월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두 다리가 다 불편해서 목발이 조금 더 힘들지는 몰라도 연습하는데는 목발이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목발을 집고 다니게 된 것이다. 확실이 내내 앉아서 타고 다니는 휠체어 보다는 양 팔 사이에 끼워 집고 다니는 목발이 재활운동에 더 도움이 되었다. "봄이 다가오긴 하나봐, 그치?" "그러게." 재중은 짧게 대답하고는 벤치에 어렵게 앉았다. 그의 뺨을 타고 땀이 흐른다. 조금 걸었을 뿐인데 땀이 많이 흘러내린다. 하지만 바람도 아직 차갑고 해서 재중의 땀은 금방 증발해버렸다. 우진은 꽃을 다 봤는지 살짝 미소를 머금고서 재중의 옆에 앉았다. "형." "응?" "이제 이렇게 목발 집고 다닐 수 있으니까 나중에 5월 정도 되면 형 걸을 수 있겠지?" "......응, 그럴거야." "그럼 그때 우리 꽃놀이 가자!" 재중은 커다란 눈으로 진을 보면서 "꽃놀이?"라고 물었고, 우진은 활짝 웃으며 "응, 꽃놀이!"라고 대답했다. 재중은 잠깐 생각하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그래-"라고 대답했다. 재중의 대답이 떨어지자 우진은 기분이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이것 저것을 얘기했다. "벚꽃이 참 예쁘겠다, 그치? 아, 사람들도 많을거야-" "그렇겠다." 재중은 기뻐하는 그를 바라보며 하루 빨리 걸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속으로 절실히 기도 하고 있는 중이다. 5월달엔 그와 함께 휠체어나 목발의 힘을 빌려서가 아닌 스스로 걸어서 그가 좋아하는 꽃놀이를 꼭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5월달까지 무슨일이 있어도 꼭 걸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열심히 기도 해 본다. 5월이 기대된다. 그와 함께 할 꽃놀이가 기대된다. 다만, 제발 그때까지 꼭 걸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5] "휴우..-" 벌써 21번째 한숨. 퇴근 시간인 6시가 다가올 수록 유천은 일에 집중하지 못 하고 계속 한숨만 내 쉬고 있었다. 유천이 계속 그런 증상을 보이자 옆에서 일하고 있던 윤호도 유천에게 시선이 안 갈수 없었다. 무슨 걱정이 있는걸까, 하고 궁금했지만 윤호는 묻지 않았다. 뭐 때문에 저렇게 한숨을 쉬는지는 알고 싶었지만, 말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번의 한숨. 정확히 22번째 한숨. 1분 간격마다 내 쉬는 한숨. 그때 유천의 또다른 옆자리에 앉은 직원이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유천은 그저 살짝 미소만 지으며 아무 것도 아니라 대답하기만 한다. 정각 6시. "자자! 퇴근합시다!" 유천의 반대편에 앉은 직원은 오늘 아침부터 선을 보게 됐다며 즐거워 하더니 퇴근 시간이 되자 칼같이 일어서며 퇴근하자고 부추긴다. 직원들은 어이없이 웃으며 자신이 하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선이 보는 직원은 먼저 가겠다고 벌써 나가버렸다. 직원들은 하나, 둘 자리를 비우고- 결국 혼자 남은건 유천. "휴우..- 다 간건가." 사무실을 한번 둘러보더니 자기 혼자 남았다는 것을 깨 닫고서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데, 그의 손짓이 평소보다 많이 느리다. 그는 가방을 챙기다 자신의 옆 자리를 보았다. 바로 윤호의 자리. 아무리 많이 싸우고, 다투고 그래도 자신이 늦게 나오는가 싶으면 아주 가끔 밖에서 기다려 같기 가기도 했는데, 윤호는 자신을 기다리지도 않은 체, 간다고 말하지도 않은 체 가 버렸다. "........쿡, 이런게 끝인가." '끝'이란 기분이 너무 절실하게 든다. 이제 '벨기에'에 가서 이혼서류만 작성하면 완전히 남이다. 유천은 윤호의 자리를 보다가 가방을 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휴우, 박유천. 여기까지 와서 주춤거리면 어쩌자는거야." 유천은 차안에서 운전대를 잡고 엎드리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지금 유천이 와 있는 곳은 바로 자신의 집(본가) 앞. 보기만 해도 부자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아주 크고 웅장한 집이다. 대문 역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유천은 차에서 내려 섣불리 벨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침에 유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 어른들께 들려 말씀 드린다고 말했지만은 막상 오니까 주춤거리게 되고 망설이게 된다. "..........끌면 니가 더 괴롭단 말야." 계속 자신에게 말을 걸어 긴장된 마음을 달래어 보려는 유천. 아까 회사에서 퇴근시간이 다가 올 수록 한숨을 계속 내 쉰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다. 막상 본가에 가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 되는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집에 가서 샤워도 깨끗이 하고 옷도 편하게 갈아입고, 최대한 깔끔하게 와서 차를 몰아 왔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정말 남 부럽지 않게 커 왔고, '도련님'소리까지 들으며 커다란 차로 등교까지 해 봤다. 자신을 위해주는 부모님에게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공부도 열심히하고, 말도 잘 들어서 효자란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윤호와 결혼한다고 한 후 부터 유천은 박씨 집안에서 천하의 불효자식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잘 들리지 않은 집. 저번에 '벨기에'에서 한국에 돌아 왔을 때 한번 들렸고, 그 후로 전혀 찾지 않은 집. 어려서부터 한번도 이사한 적 없이 인테리어만 바꿨던 집인데, 그래서 익숙해야 할 집이 2년동안 잘 들리지 않았다고 벌써부터 낯설다. ".......그래, 가자." 유천은 주먹을 한번 꽉 쥐어보이고는 차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집의 대문 앞에 서서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른지 얼마 안 되어 일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들려왔다. "유천이에요." -크, 큰 도련님이세요? 잠시만요! 유천은 말까지 더듬는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실소를 머금었다. 윤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밝히고, 결혼한 후 집을 찾을 때마다 아주머니는 유천이 왔다하면 항상 저렇게 더듬거리곤 했다. 이럴때마다 유천은 '동성 연애자들이 그렇게 거북스러운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띠익- 얼마 후 대문이 열렸고,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나왔다. 작은 연못에는 붉은 빛의 물고기가 자신의 미모를 달빛에 비추어 뽐내며 이리저리 헤엄치고 있었다. 할아버지 성격 답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정원을 본 유천은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 지는걸 느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끔찍하게 아껴주고 보살펴 준 할아버지께 이번 일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저번에 결혼한다 했을때도 정신을 잃으신 적이 있는데- 달칵. 무거운 발걸음을 겨우 이끌고 현관문을 열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비서 두명과 가정부 아주머니 2명이 유천에게 인사를 했다. "도련님, 안녕하셨습니까." "예, 그것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두분 다 서재쪽에 계십니다." 유천은 딱딱한 인사와 "도련님"이란 호칭이 맘에 들지 않는지 바로 말을 돌려버렸다. 비서는 유천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는지 여전히 딱딱한 말투로 대답해 주었다. 유천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현관을 벗어나 익숙하지만 결코 익숙하지만은 않은 곳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조용, 조용 서재를 찾아간다. 똑똑- 집의 구조를 생각해내며 겨우 찾은 서재. 유천은 할아버지가 노크하지 않는걸 싫어한다는 것이 기억 났는지 노크를 했고, 이내 안에서는 누구냐, 라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천은 쉼호흡을 한번 하고서 경직된 자세로 말했다. "유천입니다." 대답이 없다. 유천은 어느정도 예상했는지 한숨을 내 쉬었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반기지 않을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무반응까지 보이다니. 유천은 허무한 마음을 달래며 할아버지를 만나는 건 무리라 생각했는지 뒤 돌아 섰다. 그때- -들어 와. 한참이 지나서야 들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유천은 다시 뒤 돌아 문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아주 조심히 문을 밀고 서재로 들어갔다. "........안녕하셨습니까." 의자를 돌려 벽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할아버지는 역시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윤호와 결혼한다고 나선 뒤, 할아버지는 유천이 찾아올 때마다 아무런 대답없이 저렇게 듣고만 계셨다. 그런 일이 계속 반복 되자, 유천도 이제 어느정도 할아버지의 무반응에 적응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소파에 앉아서 역시나 유천을 쳐다보시지 않던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문체 유천을 쳐다봤다. 유천을 쳐다보던 아버지는 담배를 떨어뜨려야 했다. "너, 너- 머리가-" "......잘랐어요, 이번일을 계기로." 유천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울려퍼지자, 절대 돌아보지 않을 것 같은 할아버지가 뒤 돌아 앉아 유천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댄다. 분명 놀란 마음을 억제시키려는 행동일 거다. 20년 넘게 한결같이 사랑하고, 다른 손주들 보다 특히나 예뻐해온 유천의 머리가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저렇게 잘려져 있자, 할아버지는 내심 놀랬나보다. ".........무슨 일이 있는거냐." 할아버지는 티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유천에게 아무 일 없었음 한다고 기도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천은 그런 할아버지에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하지만 슬픈미소다. 저번처럼 당장이라도 울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짓는 미소. 털석- 유천은 할아버지의 책상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아버지는 유천의 행동에 놀랐는지 또 한번 눈썹이 꿈틀댔고, 아버지도 아들의 모습에 많이 놀란 듯 표정관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아버지, 아버지." 유천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계속 죄송하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큰 일이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서 아들을 재촉했다.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봐." "................죄송해요, 정말 죄송하단 말씀 밖에...-" "유천아, 어서 말해보라니까!" 할아버지 만큼 유천을 끔찍하게 여기는 아버지가 아들을 재촉한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버지께 기다려 보라는 눈빛을 건넨다.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에 속이 타 들어가지만 가까스로 참고서 유천이 말을 할때 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10분 후. 고개를 들어 올려 할아버지를 올려다 보는 유천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저희 이혼하기로 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6] "오빠, 이 강아지 너무 귀엽지 않아요?" "똥개잖아." "그래도 너무 귀엽잖아요-" 담배를 물고서 한쪽벽에 기대어서 매정하게 말하는 윤호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미야는 길거리에 파는 강아지를 보고 있다. 그런 미야를 보며 윤호는 길게 한숨을 내 뱉었다. 어제 미야가 너무 우울해 하길래 오늘 시내나 같이 가자고 해서 회사 마치자 마자 바로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미야를 만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고 있는 두 사람. 적갈빛 가죽 재킷에, 안에는 흰색 브이넥 니트를 입고, 색이 짙은 구제 바지를 입은 윤호. 회사에서 입는 정장보다는 훨씬 편해보이고 더 멋져보이기 까지 한다. '후우-, 도대체 몇 분을 더 이렇게 있어야 하는거냐..- 유천이는 안 이랬는데-' 윤호는 이 강아지, 저 강아지 다 안고, 쓰다듬는 미야를 보며 유천을 생각해 본다. 몇년 전,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 그저 교제만 하고 있을 당시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유천은 길을 가다가 길거리에 파는 강아지를 보고 좋아하면서 지금의 미야처럼 이 강아지, 저 강아지 다 안고 쓰다듬으며 활짝 웃었다. 한 곳에 오래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윤호로썬 당연히 기분 좋을리는 없었다. 그저 유천이 좋아하니까 잠시 인내심을 갖는 것이었다. 졸린눈을 하고 있는 강아지를 한 마리 안으며 윤호보고 "귀엽지?"라고 묻는 유천에게 윤호는 지금처럼 "똥개잖아."라고 대답해 주었다. 유천은 윤호의 대답에 서운한 듯 다시 강아지를 내려 놓으며 만지지 않고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미안해, 너 한 곳에 오래있는 거 싫어하는데..-"라고 하며 다가오던 유천은 자신의 손을 보며 근처 건물에 들어가더니 이내 곧 나오며 "손 씻고 왔어."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윤호가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유천은 그렇게 행동 했을 것이다. 분명 윤호만 아니었다면 유천은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를 떠나 계속 그 강아지들 곁을 떠날 줄 모를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유천은 윤호에게 많은 배려를 해 왔다. '.......그런 녀석을 아프게 만들다니..- 정윤호, 넌 천벌을 받을거야.' 윤호는 잠시 쓴 미소를 짓다가 담배를 버리고 미야에게 다가갔다. "미야야, 이제 그만 가..-" Rrrrr- 재킷 주머니에 들어있는 폰이 울리고, 윤호는 잠깐 멈추고 폰을 꺼내어 받았다. 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유천의 목소리. "무슨 일 있어?" -일단 우리 집으로 와 줬음 해. "왜?" -와 보면 알거야. 본가로 와. "......그래." 본가로 오라는 유천의 말에 윤호는 대략 짐작했는지 한숨을 내 쉬며 미야를 불렀다. "미야야, 오빠 가 볼때 생겼다." *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방으로 가시지요." 윤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비서의 안내를 받아 회장님, 즉 유천의 할아버지의 방으로 향했다. 미야에게 가 볼 곳이 생겼다라고 말하고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서 바로 본가로 온 윤호. 이내 미닫이 식의 문이 눈 앞에 열리고, 비서는 약간 고개를 숙여 문을 열어주며 "들어가십시오."라고 말했다. 윤호는 고맙다는 말 대신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닫혔고, 윤호는 곧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유천의 모습과 그런 유천의 앞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녕하셨습니까." "으흠! 앉게나." 윤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한 할아버지는 유천의 옆에 마련되어 있는 방석에 유천과 같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할아버지는 둘을 번 갈아 보다 윤호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유천이가 이혼을 한다고 그러던데, 어떻게 된건가?" "..........말 그대로입니다.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어째서인가? 2년 전만 해도 결혼하겠다고 난리도 아니더니?" "갈수록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더 어긋나기 전에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유천의 할아버지는 가만히 윤호를 보다가 둘을 바라보며 물었다. "누가 먼저 이혼하자고 그랬지?" "제가-" 할아버지의 물음에 두 사람 다 동시에 말을 내 뱉었다. 할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지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유천은 윤호를 한번 쳐다보더니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먼저 이혼하자고 그랬어요, 할아버지." "아닙니다, 저 때문에 이혼 얘기가 나왔습니다." 윤호는 이혼을 하게 된 것은 다 자기때문이라는 듯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큰 소리로 두 사람을 꾸짖으셨다. "2년 전만 해도 결혼한다고 난리더니 이게 무슨 일인거냐! 그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음, 왜 결혼을 했냐고! 너희는 일반 사람들이 아니야! 동성이다! 동성 결혼이 그렇게 쉽게 되고, 이혼이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아?! 그리고 여긴 한국이야, 너희가 살던 외국이 아니라고!" "........." 할아버지의 꾸짖음에 두 사람은 아무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들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엔 많이 반대했지만, 너희가 동성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결혼이란 것 까지 하려는 것을 보고 얘들이라면 서로를 사랑하고, 아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할아비를 속인 것이냐?!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었던가봐요,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데, 할아버지 말씀대로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감정을 너무 앞세웠나봐요-" 쫘아악-- 유천의 말에 결국 할아버지는 분노를 못 이겨 한번도 때리지 않던 손자의 뺨을 때렸다. 옆에 있던 윤호는 많이 놀란 듯 뺨을 감싸고 있는 유천을 바라 보았다.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 나서 삿대질까지 하시며 말하셨다. "이, 이 고얀!!! 내가 알던, 내가 아끼던 유천이는 어디 간거냐! 뭐라고? 호기심?! 유천이 니가 지금 그 말을 꺼내도 될 거라 생각하는거냐?! 이 못난 놈아! 크억..-!" "아, 아버지!" "할아버지!!" 갑자기 심장을 부여 잡으시며 주저 앉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옆에 계시던 유천의 아버지와 윤호, 그리고 유천까지 놀라서 할아버지를 외쳤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나가라, 나가서 머리나 식히고 있어." "하, 하지만 아버지, 할아버지가-" "어서 나가! 너희가 있어봤자 더 악화되실 뿐이야!" 아버지의 화난 외침에 유천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끄덕이곤 방을 나갔다. 윤호는 나간 유천과 유천의 아버지를 번갈아 보며 곤란해 하고 있었는데, 그때 윤호와 눈이 마주친 유천의 아버지는 눈 짓으로 유천을 따라 나가보라 하셨다. "하, 하지만- 할아버님께서-" "지금 자네한텐 유천이가 우선이야. 어서 나가봐!" "......알겠습니다." 방 밖으로 나가는 윤호의 뒷모습을 보며 유천의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를 편하게 눕혔다. "아버지, 버티셔야 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계속 심장만 부여 잡으며 거친 숨만 내 뱉으시고 계실 뿐이다. 유천의 아버지는 한숨을 내 쉬었다. '......아버지. 우리가 아끼는 유천이는 왜 항상 아플까요- 그 아이,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을까요...-? 우리 유천이가 다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었습니까?' 아들의 부부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가슴은 그저 아프고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http://cafe.daum.net/wdfanfic ─────────────────────────────────────────────── 스토리를 연재해가는 저도 답답할 뿐이네요. 어서 빨리 완결이 보여야 할터인데- 완결이 보이면 지금보다 덜 조이겠죠?(웃음) 바이러스가 돈다고 합니다. 모두 컴퓨터 조심하시고- 바이러스로 인해 16일까지 컴퓨터를 못 할 것 같습니다. (언니가 화내거든요.) 여름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7]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나오자, 밖에서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는 가정부와 신속히 주치의에게 연락 하고 있는 비서의 모습이 보였다. 윤호는 유천의 할아버지가 쓰러져 초조해하지는 못할 망정, 아무 동요도 하지 않는 무표정으로 나와서는 초조하게 서 있는 가정부를 보며- "유천이는 어디로 갔죠?" "밖으로 나가셨어요. 회장님은 괜찮으-" 가정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호는 몸을 돌려 현관쪽으로 향했다. 가정부는 그런 윤호의 행동이 괘씸하게 생각되긴 했지만 현재 상황이 상황인만큼 그를 욕할게 못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겐 윤호의 행동보다 안에서 쓰러지신 회장님이 더 커다란 걱정으로 다가왔다. 연세가 많으시고, 심장까지 약해서 언제 잘못 될지도 몰라 최대한 충격적인 요소를 피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정면으로 충격을 먹게 될줄이야- 어느 누가 예상했을까. * "..........." 그리 많이 넓지 않은 정원과 워낙 나무들이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는 덕에 윤호는 어둠속에서도 쉽게 유천을 찾을 수 있었다. 정원에 있는 나무 중 가장 커다란 나무의 앞에 멍하니 서 있는 그. 그를 부르며 다가서려 했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저 근처에 있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는 윤호였다. 유천은 윤호가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조용히 말을 꺼냈다. ".........박유천, 너무 한심스럽잖아. 결국은 또 이렇게 됐잖아-" 유천의 집 밖의 환한 불빛 등으로 유천의 옆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윤호는 유천의 혼잣말에 그저 무표정으로 일관한 체 유천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안타까움이 가득 차 있었다. 퍽, 퍽-! 이내 주먹쓰는 소리가 들리자 윤호는 눈을 돌려 다시 유천을 보았다. 자신의 주먹으로 나무를 내려 치고 있었다. 나무의 거친 면에 긁혀 주먹이 많이 아플텐데 유천은 그치지 않고 계속 주먹질을 한다. 유천은 감정이 격해지는지 더 힘을 실었다. 윤호는 말려야 겠다는 생각에 한걸음 내 딛는데- "멈춰." 주먹질을 멈춤과 동시에 유천의 입에서 나온 차가운 한 마디. "거기서 움직이지 마, 정윤호." ".......박유천." "더 이상 추한 꼴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제발 혼자있게 해줘." ".....손-" 윤호의 말에 유천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 보았다. 나무의 거친면으로 피부가 까져서 피가 난다. 유천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나무에 기대어 주저 앉았다. 유천은 나무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난 왜 니 앞에서 다짐한 건 하나도 안 지켜지냐..-" "........" "......씨발, 안 울거라 했는데-" 눈물이 유천의 뺨을 타고 흐른다. 눈물이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반짝인다. 윤호는 유천과 몇미터 떨어진 거리,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유천을 지켜 보았다. 유천은 눈물을 소매에 슥슥 닦아내고서 울음을 삼키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뭐가." "갑자기 불러서-" "할아버님이 시켰을 거니까 괜찮아." "쿡..- 전혀 그런건 아냐. 할아버지가 널 안 불렀다면 내가 널 불렀을지도." 유천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 한 윤호는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표정을 보진 않았지만 시선을 위로 두며 별하나 없는 검은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 혼나기엔 억울하잖아? 엄연히 내가 이혼 당하는건데-" "..........." ".......쿡..- 나 추하지? 이런걸로 또 널 붙잡고 있으니까." 유천은 종요히 눈을 감았다. 윤호는 조용히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유천에게 다가갔다. 유천이 닦은 탓에 물기가 없던 유천의 눈가에 물이 고이더니 이내 한 방울이 유천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보같이 혼자서 확실히 하지도 못하니까 추할거야." "............박유천." "나도 내 자신한테 질리는데, 넌 얼마나 질리겠냐- 크큭."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유천의 모습에 윤호는 가슴이 아파 유천을 안았다. 유천은 자신을 안은 윤호의 체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그의 눈에 아슬아슬하게 고여있던 눈물은 한순간에 흘러내렸고, 그의 입술은 다시한번 움직였다. "..........정윤호, 내가 잘해주지 말라했지." ".......너무 안타까워." ".......동정이 더 가슴아파." 유천의 말에 윤호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유천을 바라보다가 유천을 꽉 안았다. ".............쿡, 정윤호 넌 천재야." ".........."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건 정말 일품이란 말야, 크큭-" 유천의 말이 가슴을 너무 아프게 해서 윤호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인다. 마음의 상처에 속으로 너무 아파하는 유천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퍼서 눈물이 나올 정도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유천은 어느새 죽은 듯 눈을 감고 있다. 윤호는 자신의 눈가에 고인 눈물이 아까 사라진 것을 느끼고 눈을 한번 깜빡이고 유천을 보았다. 얼굴이 창백하다. 유천은 어딘가 아프면 항상 얼굴이 창백해졌다. 윤호는 어디가 아플까, 하고 생각하던 도중 아까 나무를 치던 유천의 주먹이 생각나 유천의 손목을 잡고 조심히 유천의 손을 들어 올렸다. "아얏..-" "바보같은 놈. 그렇게 하면 나무가 넘어가기라도 하냐." 조용하고 냉정한 말투였지만, 그 말투속에 여러가지 감정이 묻어난다. 윤호는 유천의 두 주먹을 다 살피더니 이내 유천의 손목을 잡고 일으켜 인형같이 창백해진 그를 데리고 집 안으로 데리고 갔다. 또 다른 가정부는 윤호의 손에 잡힌 유천의 상처가득한 손을 보고 놀라서 소독약 등을 가져왔고 윤호는 그것들을 받아들고 2층으로 향했다. 1층에 비해 무척 조용하고 어두운 2층. 윤호는 유천의 손을 건들지 않기 위해 조심히 유천의 팔목을 잡아 끌어 당겼다. 이내 유천이 예전에 쓰던 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가 유천을 침대에 앉혔다. 아까부터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던 유천의 눈에는 오직 자신의 팔목을 잡고 있는 윤호의 손만을 담고 있다. 얼마 안 있어 윤호는 유천의 두 손에 붕대를 감아 치료를 끝냈다. 이제 안심이 되는지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침대 밑에 앉은체로 침대 위에 앉은 유천을 올려다 보았다. "...........박유천." "..........." "너야말로 천재야." 윤호의 말에 유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윤호는 쓴 미소를 지으며 유천에게 말했다. "너야말로 떠난 사람 마음 혼란스럽게 놓는건 일품인걸."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선 알 수 없는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움직일 줄 몰랐다. http://cafe.daum.net/wdfanfic ─────────────────────────────────────────────── 조금은 이르게 왔습니다. 언니가 우리 집은 해도 될거란 소리에 당장 컴퓨터를 켰죠.(웃음) 지금은 새벽 3시가 넘어 30분이 다 되어가는 시각인데, 눈이 꽤 아픕니다. 낮잠을 즐기지 못 해서 그런가봅니다.(웃음) 이번편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네요. 뭔가- 정리가 안 된듯한..-(긁적) 눈이 아파서 오래 생각하긴 싫습니다.(싱긋) 권태기 계속 사랑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안녕히.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8] 똑똑- -도련님, 나오시랍니다. 한참 두 사람 사이에 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유천을 부르는 비서의 목소리에 유천은 윤호를 한번 내려다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천을 부르는 것은 곧 자신도 같이 오라는 뜻이기에 윤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유천이 문을 열기 전에 먼저 문을 열어줬다. 아마 손이 다친 유천을 배려하는 듯. 유천은 윤호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 "나가자." 둘이 밖에 나오자, 비서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1층으로 안내했다. 비서가 그들을 데리고 온 곳은 할아버지 방이 아닌 아버지의 방. 유천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눈을 감고 뭔가를 중얼 거리더니 이내 눈을 뜨고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의자를 돌려 앉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유천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아버지, 저희 왔어요." ".....그래." "할아버지는 어떠세요?" "주치의가 왔으니까 안정을 취하시면 괜찮을거야." "죄송해요." 할아버지가 심장이 많이 약해지신 걸 알면서도 그런 얘길 꺼낸 자신을 탓하고 있는 유천이었다. 그는 자신을 탓할 아들을 알고 있기에 화제를 돌려서 말했다. "그래, 이혼한다고..-" "예." 두 사람의 대답이 낮게 울렸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 쉬더니 시선을 아래로 내리셔서 한 곳을 응시 하셨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들어 유천과 윤호, 두 사람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후회같은건?" "하지 않을거에요." "자네도 그런가?" 아들의 대답에 아버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을 잠시 쳐다보다 아들의 옆에 있는 윤호에게 질문 했다. 윤호는 유천의 아버지를 쳐다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의자를 돌려 벽쪽을 보며 계속 말을 이으셨다. "유환이한테 비행기표를 예매해 달라고 했다고?" "예." ".........그래, 당사자들이 맘 먹었으니 주위 사람들이 뭐라해도 들릴 일 없겠지." 아버지의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어떤 대답이 나올지 확신케 해준다. 아버지는 그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은 체 그대로 벽만 바라보며 말했다. "...........이혼.....- 해도 좋다." "..............고.....마워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님."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결국 떨어진 이혼 허락. 결혼 허락도 아닌, 이혼 허락. 둘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의자를 돌려 다시 두 사람을 보며 부탁하 듯 말했다. "이혼하기 전에, 한번만 더 생각해 보렴." "............" "힘들게 허락 받았는데, 이렇게 2년만에 헤어진다는 건..- 너무 허무하잖아?" "저 갈게요." 유천은 아버지의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니 결국 먼저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고, 윤호는 유천이 나간 문쪽을 쳐다보다 유천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아무런 미동 없이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은 유천의 아버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유천의 아버지의 표정은 무거워 보인다. 그리고 무거워 보임과 동시에 너무 슬퍼 보여서 그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심어준다. 윤호는 아무런 대답없는 그를 상관치 않고 입을 열었다. "유천이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 면목.....- 없는 거 압니다. 하지만, 꼭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버님께 드린 약속 지키지 못 해 죄송합니다. 다 저 때문입니다. 이혼도- 유천이의 마음속 상처도- 다 저 때문에 생긴 일들 입니다. 맞아도 마땅할 나쁜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됐네, 이런다고 마음을 고쳐 먹을 것도 아니지 않은가." ".............." "그래도 자네는 참 나빴어.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유천이를 아낀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그 애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가. 자네에게 실망을 많이 했어." 윤호는 무릎을 꿇은 체 고개를 숙였다. 유천의 아버지는 눈을 감은 체로 윤호에게 말했다. "유천이....- 분명히 혼자서 또 힘들어 하고 있을거야. 가 봐." "............" "이혼하기 전까지는.....- 아직 부부아닌가. 어서 가봐." ".............죄송합니다. 그리고 안녕히 계십시오." 윤호는 일어나 유천의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가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유천의 아버지의 비서가 윤호에게 다가와 말했다. "큰 도련님께선 먼저 나가셨습니다." "예." 윤호는 짧게 대답하고 현관으로 가다가 뒤 돌아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는 비서를 향해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탁하나 해도 될까요?" "무슨 부탁이십니까." "할아버님께서 깨어나시면- 죄송하다고, 2년 전에 드린 약속..- 지키지 못 해 죄송하다고- 그렇게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윤호는 비서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유천의 집을 벗어났다. 2년 전, 그는 결혼 허락을 맡기 위해 유천의 본가를 찾았다. 자신을 신임하지 못 하는 할아버님과 아버님 앞에서 자신있게 말했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겁니다, 다른 누구보다 행복하게, 그 누구보다 아껴줄겁니다. 설사 이 약속을 지키지 못 하게 된더라도, 저는 언제나 항상 유천이를 지켜볼겁니다. 그만큼, 유천일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다. 결혼 허락해 주십시오.] 윤호는 집을 나서다가 2년 전 철 없던 자신의 말들이 떠 오르는지 실소를 머금었다. 사랑한다는 감정만 앞세워 무조건 유천과 결혼하겠다고 나서던 자신의 모습. 2년 전과 2년 후의 모습. 결혼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어깨가 축 쳐진 모습만 보일 뿐이다. "......박유천." "................그냥 가." 대문 앞에 무릎을 끌어 안고 두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앉아 있는 유천의 모습에 윤호는 유천을 불렀지만 유천은 냉정한 목소리로 그냥 가라는 말만 한다. 윤호는 "이렇게 있음 감기걸려."라고 하며 유천을 일으키려 했지만 유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붕대가 감긴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감싸며 더욱 몸을 웅크렸다. 윤호는 다시 한번 유천을 불렀고, 유천은 말했다. "................잡고 싶어." "............." "정윤호 잡고 싶어 미치겠어. 그러니 얼른 가 버려. 니 발목 잡기 전에-" "..........유천아." "잡으면 안 되니까 꾹 참고 있는거야. 어서 가. 괴롭단 말야." 윤호는 자신을 보지 않은 체 고개를 묻고 말하는 유천을 더 이상 건들지 않고 유천의 말대로 유천을 등진 체, 자신의 차로 향했다. 윤호가 뒤 돌아서서 유천에게 등을 보이고, 두 사람은 그렇게 간격이 멀어졌다. 윤호가 차문을 열고 나서 유천을 보았다.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묻은 체 앉아 있다. 손이 저래서 운전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유천의 말대로 자신은 유천에게 괴로운 상대이다. 그냥 이대로 돌아서는 게 더 좋을지도- 윤호는 유천에게 시선을 돌려 차에 오르려 했다. 그 순간- ".............보고 싶어." "..........." "과거에도 보고 싶었고, 현재도 보고 싶고, 미래에도 보고 싶을거야." "............" "...........하지만 내가 보고 싶다 해서 절대 뒤 돌아 보지마." 윤호는 조용한 동네에 울리는 유천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비행기 표 구하는데로 연락할게. 잘 가." 유천의 인사가 왜 그렇게 슬픈지. 보내고 싶지 않은데, 보내는 거라 그럴까. 힘이 하나도 없다. 가는 사람 마음이 너무 아파 뒤 돌아 볼만큼 애절하고 슬프다. 윤호는 애써 마음을 잡으며 차에 올랐고, 이내 유천의 동네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멀어졌다. http://cafe.daum.net/wdfanfic ─────────────────────────────────────────────── 뭔가 정리 안 되는 듯한 기분- 휴우, 왜 이러는지. 그리고 권태기 아직 완결아니에요. 완결이 꽤나 멀었을걸요, 지겨우시죠?(웃음) 하지만 참아주세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내용이 펼쳐질테니- 그럼 야행성인 월드는 자러 갈테니 안녕히 계세요.(오전 3시 30분을 오늘도 넘겨버렸군요;) [+] '월소카'가 업뎃을 했네요. 참으로 발랄하네요.(웃음) 카페 생기고나서 난생 처음인가- 그건 아닌 듯 하고..- 음, 여튼 이번 버젼은 발랄, 유쾌네요. 주인 언니께서 힘을 쓰셨나 보네요.(웃음) 바뀐 카페 많이 사랑해주세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39] 그렇게 시간은 무섭도록 흘러버렸다. 그 날 이후 윤호가 유천을 볼 수 있었던 건 겨우 하루. 그 다음부터 지금까지 유천의 모습은 한번도 볼 수 없었다. 연락을 해 볼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날 너무 괴로워하던 유천의 모습에 용기가 없어져 연락도 못 하고 그저 속으로만 어떻게 지낼까, 하고 있을 뿐이다. 유천을 못 본지 11일째. 윤호는 11일째 회사에 무단으로 결근하는 유천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과장에게 결제할 서류를 가져가며 슬쩍 물어보았다. 과장의 말로는- "아, 박유천씨? 박유천씨는 이미 우리 회사에서 나간걸로 되어 있어. 그때, 유천씨가 마지막으로 온 날, 위에서 연락이 왔어. 박유천씨 집안에서 크게 사업을 하나보더라고. 유천씨 아버지가 회장님께 전화해서 앞으로 유천씨는 집안 사업을 하게 될거라고 유천씨를 자른 걸로 처리하라더군. 그 날이 우리 회사 직원으로써 마지막이었지. 하하, 그나저나 유천씨가 그렇게 큰 회사 회장의 손자일지, 누가 알았겠어." 유천의 집안에서 손을 썼나보다. 분명 윤호와 유천의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기 위해 집안에서 움직인 것이다. 윤호는 한숨을 쉬며 자리로 돌아왔다. 유천이 회사를 그만둘 거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 했는데, 윤호는 과장의 말을 듣고 꽤나 놀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에는 '유천'이란 이름이 뜬다. "여보세요?" 결혼 한 이후 한번도 일주일 넘게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런 걸까, 전화를 받는 윤호의 마음은 더 다급해져 있다. 권태기를 겪고서 따로 자게 되는 날이 생긴다 하더라도, 다음 날 회사에서 항상 볼 수 있었으니 이렇게 장기간동안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나야. ".....알아." 유천의 목소리가 많이 가라 앉아 있고 낮아져 있었다. 윤호는 자신때문 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유천은 한참동안 아무말이 없었다. 어색한 통화가 이어지자 윤호는 먼저 말을 꺼냈다. ".........건강하지?" -........응. "....그래, 건강하면 돼." -........너도. 그렇게 또 한참동안 침묵이 맴 돌았다. 윤호는 이번에는 무슨 말을 꺼내야 될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유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행기 표 구했어. 다음 주 월요일이야. 3일 정도 시간 비워둬. ".....그래." -끊을게. 윤호가 뭐라 하기도 전에 유천은 급히 전화를 끊었고 윤호는 한참이나 자신의 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다가 일어서서 다시 과장에게 갔다. 내일부터 '벨기에'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짧으면서도 넉넉한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갖기 위해. * "형, 오늘 낮에 바나나 샀는데, 참 달고 맛있는 거 있지. 자, 먹어봐." "어, 그래."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재중에게 모양내어 자른 바나나를 포크로 찝어 건네었다. 재중은 tv를 보다 우진이 오자 tv에서 시선을 돌려 진을 보며 웃어주었다. 우진이 건네주는 포크를 받아 들고 과일을 먹는 재중은 순간적으로 고민에 휩 싸였다. '....유천이를 꽤나 좋아하는 녀석인데, 어떻게 말하지.' 재중은 자신의 옆에 앉으면서 자신이 보고 있던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는 진을 바라보았다. 유천을 잘 따르는 진에게 어떻게 윤호와 유천의 이혼사실을 알릴까, 하는 고민이 생겨버린 재중. 얼마 전 윤호가 자신과 우진이 사는 집에 술을 사 들고 오면서 얘기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 자리엔 일찍 잠자리에 들어버린 우진은 빠져있었다. 재중은 이혼하게 됐다는 친구의 말에 저번처럼 주먹이 나갈뻔 했지만, 이혼한다는 소리와 함께 술을 들이키며 쓴 미소를 짓는 친구의 모습에 그저 잠자코 있어야 했다. 그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여서. "우진아, 만약에- 음, 그러니까 만약에 말야." "만약에 뭐?" 재중의 말에 우진은 어느새 드라마에서 눈을 떼고 재중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중은 그런 우진의 모습에 말하기 더 곤란한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만약'이란 가장(假裝)을 해서 말해보기로 한 재중은 조심히 입을 열었다. "만약, 음-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야." "풋, 알았으니까 어서 말해. 만약에 뭐?" "....음, 그러니까..- 유천이랑...-" "유천이 형이랑, 뭐?" '유천'이란 이름이 나오자 우진은 재중을 더 재촉했다. 재중은 괜히 꺼냈나 싶기도 하지만, 여기서 더 늦게 말하면 분명 자신의 친구는 더 나쁜놈이 될 것이 뻔하기에(유천에게 권태를 느꼈다는 것 자체에서 부터 윤호는 벌써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재중은 한숨을 내 쉬고 말을 이었다. "유천이랑, 윤호랑 이혼을 하게 된다면?" ".........둘이 이혼해?"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만약'에." "어쩔 수 있겠어? 서로 뜻 안 맞으면 이혼하는거지." 재중은 우진이 보이는 의외의 반응에 많이 놀란 듯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의 눈은 날카롭게 변했고, 말은 계속 이어졌다. "특히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식었을 경우- 더욱 잘라야지." ".........." "사랑하지 않는데, '부부'라는 이름 아래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재중은 우진의 냉정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귓가엔 더 이상 우진의 말들이 들려오지 않았다. 착할땐 한 없이 착하지만 냉정할땐 무척 냉정하기로 알려진 우진이다. 한마디로 공과 사를 구별할 줄 안다고 할까. 그를 알던 사람들은 맨 처음 그가 재중을 따라 나선다고 할때 우진이 맞는지 의심했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이 아는 전우진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한 사람에게 자신을 받칠만큼 따뜻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재중도 맨 처음에 우진의 반응에 대해 무척 놀랐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그런데 그 사고로 인해 우진이 자신에게 그렇게 미안해 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우진아, 후회 안 해?" "무슨 후회?" "그냥...- 나때문에 니가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무슨 그런 소릴 해. 과일이나 더 드세요, 김재중씨-" 재중의 손에서 포크를 뺏어들어 다시 과일을 찝어 손에 쥐어주는 진. 재중이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자 우진은 싱긋 웃어준다. 재중은 그런 진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보인다. '내가 알고 있는 전우진도 전우진이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전우진도, 전우진이야. 고민할 필요 없잖아. 우진이는 진인데-' 한 없이 냉정하고, 공과 사는 칼같이 구분해서 행동하고, 고집이 세서 곁에 있는 사람마저 질려버릴 정도로 만들어 버리는 차가운 남자. 그 사람이 바로 전우진. 반면 알 수 없는 내면에는 눈물도 많고, 순수한 미소도 잘 짓고, 차갑게 행동하는 만큼 상처도 많이 받아 혼자 속앓이를 많이 하는 남자. 그 사람이 바로 김재중 옆의 전우진. 그런 전우진을 구분하지 않고 아껴주는 남자가 바로 김재중.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기에 더 소중한 존재들, 슬픈만큼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은 바로 김재중과 전우진이다. http://cafe.daum.net/wdfanfic ─────────────────────────────────────────────── 제가 야행성이란 말에 여러가지로 많이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구요. 표지도 많이 주시고, 감상도 정말 정성있게 많이 적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웃음) 답변을 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감상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답니다. 요즘은 그냥 '재밌어요.'라는 내용이 들어간 3줄이 아니라 10줄 이상의 감상이 다수이기에 정말 좋아요. 그리고 제 소설에 울고, 웃으시고- 공감하시고, 뒷 이야기를 상상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제가 이렇게 과분한 사랑을 받아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랑에 소설로 열심히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게 소설밖에 없다는 게 아쉽지만, 여러분들이 즐겨주시니 기분이 좋습니다. 여름 감기 걸리셨다는 분들이 많으셨는데요, 다들 조심하시구요. 학생분들은 방학 마무리 이제 하실 때 되셨죠? 잘 하시구요. 직장인 분들은 일하느라 많이 피곤하실텐데, 조금씩 쉬어가시며 하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모두, 모두 정말 사랑합니다.(제 말까지 읽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39편 다 쓴 시간은 새벽 4시 20분쯤이었을 겁니다.-_-; 너무 잠이와서 차마 올리지 못하고 그냥 컴퓨터를 꺼버렸어요.[;] 2시간 전에 일어나 빈둥거리다가 지금에야 오늘 새벽에 적었던 소설을 올려요[;] 아아-; 이렇게 생활하다가 학교생활은 어찌할지 걱정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0] 달칵. 유천의 조심히 동생의 방 문을 열었다. 시간이 이른 탓인지 유환은 아직도 꿈나라 여행중이다. 그에 반면 유천은 옷까지 다 차려입고 있었다. 유천은 유환의 머리 맡에 앉으며 유환의 머리칼을 만지작 거렸다. '새벽 늦게 들어 온 모양이네-' 요즘 중요한 일을 맡았다고 하더니, 유환은 매일 야근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늦게까지 일해 놓고 또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아침 일찍 출근하는 생활을 되 풀이하고 있는 유환. 그 생활이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유환의 볼살이 더 줄어버린 것 같다. 유천은 그런 동생에게 미안할 뿐이다. 회사일도 바쁠텐데 자신의 일까지 봐 주고 있으니 양쪽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테고, 스트레스를 받는 만큼 많이 피곤할텐데- 형으로서 힘들어 하는 동생 위로도 못 해줄 망정, 계속 약한 모습만 보이고 있으니 유환이 더 헬슥해 져 버렸다고 생각한 유천은 동생의 마른 얼굴로 손을 가져가며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으음....- 형이야...-?" 눈도 뜨지 못하고 착 가라 앉아 갈라지는 목소리로 유천이냐고 묻는 유환의 모습에 유천은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동생이 이렇게 지칠때까지 형으로서 뭘 해줬는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형이야. 오늘도 일찍 출근해야 해?" "......아니, 오늘 새벽에 다 끝내 놓고 들어왔어. 하루동안 휴가." "아, 그래..-? 저기, 유환아." "....응?" "형, 윤호 있는 데로 갈게." 유천의 말에 유환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며 유천을 보았다.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유천도 만만치 않게 살이 많이 빠졌고, 기력도 많이 잃었다. 하지만 이혼을 앞 둔 지금, 그와 함께 있지도 못 하게 하면 아직도 '정윤호'란 존재를 사랑하는 유천에겐 '정윤호를 보지 못 하게 한 죄'가 될 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유환은 유천을 막을 생각은 없다. "거기서 바로 떠날거야?" "아마도." "괜찮아?" "그럼, 괜찮지. 거기에 내 짐 있으니까 짐도 챙기고..- 정리도 좀 하고." "...그래, 알았어. 그런데 벌써 가려고?" "응." 그렇게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유천은 유환에게 피곤하니까 다시 자라고 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유환은 유천이 나간 뒤 쉽게 잠들 수 없었다. 한참 뭔가로 고민하다가 나중엔 인상을 팍 쓰며 자신의 머리를 잔뜩 헤집어 놓았다. "질린다, 질려- 사랑이란게 뭔데 이렇게 힘드냐고!!" 한편 방 밖에 서 있던 유천은 동생의 외침을 듣고 피식 웃었다. "......유환아, 정말 사랑이란게 뭘까. 사랑은.....- 정말 존재하는 거 맞니..-?" 유천이 슬픈 말이 집 안에 조용히 울리고, 이내 유천은 차키를 만지작 거리며 집을 나선다. * 달칵- 윤호네 집 현관문이 열린다. 유천은 다시 열쇠를 빼고서는 집 열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혼.... 하면, 이 열쇠도 반납해야하는 건가.' 그리고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이 슬프다. 그는 아직 어두운 실내에 들어섰다. 유환과 같이 산 지가 벌써 한달이 다 되어 가니까 이 집을 떠나 있은지도 벌써 한달이 다 되어 간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을 둘러보았다. 하나, 하나 추억이 다 담겨있다. 한국 와서 가구를 구입할 때, 카키색이 예쁘다고 하는 윤호와 배이지색이 깔끔 하다는 유천은 소파 색깔로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윤호가 결국 유천의 의견을 따라줬고, 나중에 배달되어 왔을 때 윤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마누라 말 듣길 잘했네- 진짜 깔끔하다.' 뭐든지 자신에게 맞춰주고, 자신의 뜻대로 하려다가도 어느새 보면 유천의 뜻에 다 맞춰 따라주고 있던 윤호였다. 유천은 눈을 가렸다. 눈물이 당장에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아서였다. '..........벌을 받고 있는거야, 박유천. 항상 윤호가 내 뜻에 맞춰 줬으니까, 항상 내 뜻대로만 했었으니까, 벌 받는거야..-' 겨우 눈물을 삼키고 손을 떼자, 앞에 검은 물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유천은 고개를 들어 그 물체를 보았고, 그 물체는 이내 사람인걸 증명시켜 주 듯 입을 열었다. "유천이?" ".......창....민이?" 유천은 의외의 사람을 보았는지 놀란 표정을 하고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그는 유천의 멍한 표정에 뺨을 아프지 않게 살짝 치고서는 웃어 보였다. 그는 유천의 죽마고우 심창민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 창민이 왜 윤호의 집에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유천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여긴...- 어떻게?" "아아, 어제 정윤호랑 술 마시다 보니까..- 베란다에서 새벽 공기 쐬고 있었는데 누가 거실로 들어 오더라고. 보니까 너더라?" "아..- 그래?" 그는 여전히 멍한 친구의 얼굴을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유천은 짧은 순간에 과거를 회상했다. 창민과 매일 붙어 다녔는데, 어느 순간 둘 사이에는 정윤호란 존재가 끼어버렸고, 창민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조금 멀어지면서 셋은 삼각형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윤호가 창민에게 유천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라 고백하면서 그 관계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그때 끼어든 또 다른 존재가 다른 학교 다니던 윤호의 죽마고우, 김재중이었고 이들은 또 다르게 사각형의 형태로 '우정'이란 이름아래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그러다가 윤호가 본격적으로 유천에게 고백하고 유천도 그 고백을 받아 들이게 되면서 사각형의 틀은 유지해 가 돼, '우정'이란 이름엔 금이 갔다고나 할까- 정윤호, 박유천, 심창민, 김재중 간의 알 수 없는 관계는 이상하게 망가져서 이때까지 유지되고 있다. "으윽, 심창민, 갔냐? .............유...천이?" 한참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두 사람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엔 방에서 나오며 머리를 움켜 쥐고 있는 윤호가 보였다. 윤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하다가 창민의 앞에 있는 존재에 놀랐는지 손을 내리고 유천을 불렀다. 유천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어."라고 짧게 대답해 주었다. 창민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지켜 볼 뿐이었다. 윤호가 여전히 놀란 눈으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 듯 창민을 보고 있었고, 유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윤호를 보고 있었고, 창민은 안타깝고 슬픈 감정을 다 숨긴 체 유천을 보고 있었다. 묘한 기운이 세명을 감쌌다.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 묘한 기운이 말이다..- http://cafe.daum.net/wdfanfic ─────────────────────────────────────────────── 참 어렵게 쓴 40편입니다. 어떤 내용을 써야할까, 하고 고민했던 편이기도 하구요. 바로 벨기에로 향하려 하다가 이런 상황도 재밌을 것 같아 썼습니다.(웃음) 이렇게 일 벌려 놓고, 나중에 41편을 어떻게 처리할지 저 역시도 제 자신이 궁금하네요. 지금은 새벽 2시를 좀 넘긴 시간인데요. 이제 개학도 얼마 안 남았으니 3시쯤에는 자려구요. 아아, 저는 잠을 자고 싶은만큼 못 자면 얼굴 색이 좋지 않게 되어 버리는 거 있죠. 그래서 주위 사람이 "너 오늘 얼굴 빛이 안 좋다?"라고 하죠. 그게 다 소설 보고, 쓰다가 늦게 자서 안 좋은 것도 모르고 진심으로 걱정해 오죠.(웃음) 그런 반응을 내심 즐기는 저도 참 사악한 인간 같습니다.(웃음) 그럼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오. ━━━━━━━━━━━━━━━━━━━━━━━━ 　소설제목 ☞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中) ──────────────────────── 　작가이름 ☞ 월드 ──────────────────────── 　작가메일 ☞ x_world@hanmail.net ──────────────────────── 　소설출처 ☞ X ──────────────────────── 　계정출처 ☞ Knights of M.S Kingdom ━━━━━━━━━━━━━━━━━━━━━━━━ ──────────────────────────────── 아래소설의 제작권은 '월드'에게 있으며, 개인소장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펌이 발각되는 즉시 마스터에게 건의하겠습니다. 절대 개인소장용으로만 사용해주십시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1] ".....으음.....-" 선우는 뒤척이다가 침대 옆에 놓여진 탁자시계를 보았다. 벌써 8시다. 선우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바로 옆 방인 창민의 방으로 들어갔다. 창민의 방은 가지런하다. 알람시계로 알람을 맞춰 일어나는 그이기에 그가 오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어제 창민의 방에서 기다릴 때 시계 위치랑 항상 방바닥에 떨어져 있어야 할 시계의 위치가 웬일인지 똑같으니까. 그 외에도 흐트러져 있어야 할 이불이 너무나 반듯하니까. 터벅, 터벅- 씻고, 옷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가니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식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진 창민의 집 분위기. 하지만 창민이 없을 때 두 분과 마주하게 되면 항상 주춤하게 되는 선우다. 오늘도 계단에서 주춤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선우를 발견했는지 선우를 불렀다. "선우야, 와서 밥 먹어." "아..- 예." 선우는 아주머니 옆 자리에 앉았다.(4인용 식탁이고, 아저씨의 옆 자리엔 항상 창민이 앉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밥을 떠서 선우에게 주며 다시 선우의 옆자리에 앉았고, 포근하게 웃으시며 말했다. "오늘은 좀 늦었구나." "죄송해요, 다음부터는 안 늦도록 할게요." "어, 아냐- 아줌마는 그런 뜻으로 얘기한게 아니야. 지금처럼 편하게 생활하라는 거지." "............" "아줌마는 선우가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너무 좋단다." 창민의 미소는 아주머니와 많이 닮아있다고 느끼는 선우였다. 두 사람의 미소는 포근한 느낌을 심어주니까. 그래서 그 미소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나 안정적으로 변해버린다. 그렇게 한참 식사를 하다가 선우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창민이 형 어제 안 들어 왔어요?" "창민이? 아, 그래- 윤호네 집에서 술마시고 온다더니, 거기서 쓰러졌나보네." "아..-" 빙긋 웃으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씀하시는 창민의 어머니. 선우는 아주머니께서 계속 지어주시는 미소가 어색해 식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선우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선우가 올라가자 창민의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에게 물을 따뤄주며 말했다. "선우 많이 좋아졌죠?" "다행이지. 그대로 마음 안 열었어봐, 말도 평생 못 했을거 아냐." "후훗, 그런 거 보면 우리 창민이 참 장하지 않아요?" "장한 녀석이 술 먹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아?" "어머, 당신은- 그럴 수도 있죠, 창민인 이제 학생이 아니라구요-" 사이좋은 부부의 한가로운 대화가 집을 더욱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어준다. * "..........." 그렇게 한참 침묵이 유지되던 순간, 창민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세명 오랜만에 같이 있네? 이럴 때 김재중도 있어야 하는데- 정윤호, 나 먼저 씻는다!" 창민은 일부러 비켜주듯 욕실로 들어 가 버렸고, 윤호는 여전히 멍하니 창민을 쳐다보았지만 창민은 쓴 미소를 지으며 윤호의 어깨를 툭 쳐주고 지나쳐 욕실로 들어 갈 뿐이었다. 창민이 욕실에 들어가자 윤호의 시선은 유천에게로 옮겨졌다. 윤호를 보고 있던 유천은 윤호가 자신에게 시선을 맞추자 잠시 흠칫하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버린다. 이런 일은 한 두번이 아니기에 윤호는 한숨을 내 쉬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알아. 단지 짐이 여기 있어서 온 거야." 유천의 말에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한번 쳐다보다 윤호와 시선이 맞추어 지자 재 빨리 고개를 돌렸다. 윤호는 자신을 피하는 유천의 행동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윤호는 유천이 있는 소파쪽으로 다가가서 그의 앞에 섰다. 그는 여전히 윤호의 시선을 피했고, 윤호는 그런 유천의 턱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유천은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뭐 하는거야, 정윤호. 당장 놔." "...왜 피해." "안 피했어." "피하고 있잖아, 이때까지도 피했고 지금도 피하고 있잖아!" 윤호의 언성이 조금 높아지자 유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똑바로 뜨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결코 좋지 않는 눈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선 차가운 말이 흘러나왔다. "창민이 있어. 창민이한테까지 '나 불행해'라고 광고하고 싶진 않아." "불행하냐?" "불행하니까 이혼하려 하잖아." 아무감정도 담지 않은 듯 건조한 유천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린다. 윤호는 웬지 모르게 뒷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다는 느낌에 유천에게 말했다. "보고싶다며.....- 나 잡고 싶으며....-" ".........어디까지나 내 소망이지, 현실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박.....유천." "왜." "................넌 나 사랑하냐." "............정윤호, 착각하고 있나본데, 사랑에 싫증나 '이탈'해 버린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유천의 말에 윤호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제서야 현실을 직시해 버린 것 같은 느낌. 먼저 싫증낸 건 정윤혼데, 왜 집착하고 있는 것 역시 정윤호일까. "............박유천...- 나 왜 이러냐, 갑자기 왜 이럴까." "넌 지금 어린 아이 심정과 똑같아. 아이는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게 되면 어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라 해도 당장 내 팽겨치고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게 돼. 그러나, 막상 엄마가 헌 장난감을 버리려 들면 가지고 놀지 않는데도 엄마를 졸라서라도 못 버리게 하고, 또 다시 구석에 쳐 박아둬." 유천의 말을 듣고 있는 윤호의 머릿속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난 너의 헌 장난감이 되어 구석에 쳐 박히고 싶지 않아." "............." "헌 장난감은 주인이 자신을 가지고 놀기 바라지만, 그건 바램일 뿐 계속 구석으로 더 밀려날 뿐이지. 그러다가 결국은 주인은 헌장난감을 잊어버리고, 헌 장난감은 상처를 받을대로 받아 버려지기 마련이야. 난 적어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 유천의 턱을 움켜잡고 있던 윤호의 손에 힘이 빠진다. 유천은 소파에서 일어서 윤호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 둘 것 한가지." ".........." "아이는 아이고, 정윤호 너는 어른이야. 넌 아이가 아니기에 싫증난 건 금방 버릴 수 있어." "........." 잠깐의 정적. 유천은 굳어있는 윤호를 바라보며 지독시리 차가운 말을 내 뱉는다. "나를 버려, 정윤호." ".............." "니가 날 버리지 않으면......-" 윤호의 멍해진 얼굴 앞에 유천은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널 버릴거야." http://cafe.daum.net/wdfanfic ─────────────────────────────────────────────── 아아아- 41편 일찍 썻죠?(웃음) 하하하, 정윤호군을 다시 못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요! 못된 사람으로 만들면 소설이 더 재밌겠죠. 후후후- 흐음, 정윤호군은 현재 심정이 무척 복잡할 겁니다. 유천군의 말이 이해가 안 가신다면, 제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나하기는 싫고 남주기는 아깝다.' 유천군이 말한 말들의 본 뜻이, 정윤호군의 심정입니다. 그럼 저는 42편을 열심히 쓰러 가겠습니다.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아침밥 해준다고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하네요[;] 분명히 얼굴이 누렇게 떴을거에요(징징) 어제 새벽 4시에 잤는데, 으휴- 3시간 밖에 못 잤다니.(울음) 오늘 할 것도 많은데..- 으흑, 월드는 잠을 맘껏 자지 못 해 슬픕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2] 윤호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윤호는 이내 실소를 머금었다. 그리고는 유천의 뺨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난 한번도 널 '헌 장난감'따위로 생각한 적 없어. 적어도 널 많이 사랑했었으니까." 그리고는 쓴 웃음으로 마무리하고 유천에게서 뒤 돌아 서 방으로 향하는 윤호. 방으로 향하다가 벽 뒷쪽에 몸을 기댄체 있던 창민을 본 윤호는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 가 버린다. 창민은 아까 전에 다 씻고 나와 그들의 상황을 몰래 지켜본 것이었다. 윤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창민은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로 다가갔다. "유천아." ".........다 봤구나." "............왜 무리해." 포근한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뒷목을 감싸며 어깨에 기대게 하는 창민의 몸짓에 유천은 힘 없이 창민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얼마 안 있어 창민의 어깨가 젖기 시작했다. 창민은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잘 버텼어. 울지 않고 잘 버텼어." "......으흑...- 흡..- 우흑..-!" "그래, 잘 했어. 잘했어, 유천아." 윤호는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 차마 알지 못 했지만 벽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창민은 유천의 표정, 하나하나 다 볼 수 있었다. 간간히 지었던 쓴 미소와 눈물이 나오려던 것을 억지로 다시 삼키던 두 눈. 지켜보던 창민조차조 너무 가슴이 아팠던 그 모습. 윤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던 유천의 모습이 너무나 힘겹고 아파보였다. '창민아, 난 정말 나쁜 녀석이야.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줬어. 윤호에게 상처 받는게 너무나 두려워서, 내가 윤호한테 상처를 줘 버렸어. 내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더 이상 상처같은 건 받고 싶지 않은걸-' 유천이 택한 최후의 선택. 자신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약간은 이기적인 방법. 하지만 윤호에게 상처 받는게 두려운 유천에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다. 상처를 받고도 웃을 수 있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려면 상처를 받기 전에 상처를 줘야한다. 그게 유천이 택한 최후의 선택이다. * 아침 8시 36분. 유천은 욕실에서 얼굴을 씻고 있는 중이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하지만 울어서 그런지 얼굴은 금방 제 색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여전히 눈과 코는 빨게져 있었다. 유천은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다가 방금 나간 자신의 친구, 창민이 생각났다. 자신이 다 울때까지 달래어 주던 창민. "......미안, 창민아." 사실 유천은 창민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창민의 마음을 알아챈 건 대학에 들어와서지만, 자신때문에 창민이 얼마나 슬프고, 아파할지 알기에 유천은 항상 창민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창민의 마음을 알면서도 받아줄수는 없었다. 창민의 마음을 알아 챈 당시에는 유천 곁에 윤호가 있었고, 유천은 '좋아한다'라는 감정으로 소중한 친구와 멀어지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몇년이 지나도록 계속 모르는 척 지내왔다. 하지만 오늘 자신을 달래어주며 짓는 안타까운 친구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린다. 달칵. 차가운 손으로 붉어진 눈가를 만지며 욕실을 나오던 유천은 잠시 멈칫했다. "씻으려고?" "......심창민 품에 안겨 우니까 좋아?" ".......정윤호." 윤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담배를 피며 유천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유천의 앞으로 와서는 담배 연기를 유천에게 내 뱉는다. 유천은 담배연기로 인상을 찌푸렸다. "심창민도 너 좋아하는데, 이 김에 나랑 이혼하고 그 새끼랑 살림 차리는 건 어때?" "정윤호, 창민이는 친구야. 너도 알잖아." "호오라- 친구? 너는 친구일지 몰라도 심창민은 널 사랑하는데? 혹시 알아? 너랑 나랑 이혼한다니까 잘됐다 싶어서 이렇게 하는지도-" 쫘아악----- 유천에게 한껏 빈정대더니 결국 윤호는 뺨을 맞았다. 윤호는 실소를 터뜨리며 당장에라도 욕을 할 기세로 유천을 쳐다보았다. 유천은 흥분했는지 윤호에게 소리쳤다.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정윤호! 니가, 니가 어떻게 창민이한테 그런 소릴 할 수 있어?! 친구 아니었어?! 니가 친구라면 어떻게 창민이한테 그런 소릴 할 수 있어!!" "친구? 푸훗- 웃기는군. 박유천, 너 혼자 착각한 거 아냐?" 윤호의 말에 유천은 다시 한번 윤호의 뺨을 때렸다. 윤호는 "씨발-"이라고 욕을 내 뱉으며 유천을 노려봤지만, 유천은 그런 윤호에게 더 큰소리로 말했다. "정윤호, 너한테 점점 질려가!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그래, 그럼 너한텐 친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한텐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친한 친구야! 난 너한테서 내 친구 욕 들어줄 만큼 마음 넓은 사람 아니야, 앞으로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 타악- "웃-!" 윤호는 유천을 벽으로 몰아 세우고서 벽을 한 손으로 짚으며 비웃음을 지으며 "할 말은 다 끝났냐?" 라고 차갑게 물었다. 유천의 인상은 더 찌푸려졌고 윤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난 현재 박유천, 너한테 야비하고 잔인한 그런 남자가 될 수도 있고, 미련을 못 버리고 집착하는 안타까운 남자도 될 수 있어. 선택은 니 자유야. 어쩔까? 1시간 전처럼 미련 못 버리는 남자가 되어줄까, 아님 지금처럼 박유천 가슴을 도려내는 나쁜 남자가 되어줄까?" "정윤호, 너 지금 나 가지고 장난해?" 유천의 화난 음성에 윤호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유천은 거기서 말이 다 끝난 게 아니었는지 윤호에게 계속 말을 이어했다. "너 지금 니 행동이 얼마나 유치한줄 알아? 아까처럼 비유 해 줄까? 넌 지금 장난감을 뺏기기 싫어하는 꼬마아이 같아. 지금 내가 한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면 지금 니가 얼마나 유치한 행동을 하고 있는 줄 알거야." "인정해." "..........." "내 심정은 이렇거든- 나하긴 싫고, 남주긴 아깝고." "더러운 심정이군." 유천은 차가운 말을 내 뱉고서는 윤호에게 벗어나려고 벽에 기댔던 몸을 뗐다. 하지만 윤호로 인해 다시 벽에 밀쳐졌다. 유천은 인상을 쓰며 윤호를 바라봤고, 윤호는 유천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유천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박유천, 니가 알아둬야 할 게 있어." "..........." "내가 너한테 이렇게 행동한 후, 넌 하나 잊어버린 게 있어." 윤호의 말에 유천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윤호를 바라봤고, 윤호는 여전히 유천에게 밀착시킨 몸을 떼지 않은체 그 상태로 유천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가 널 얼마나 아꼈는지..- 넌 그걸 잊어버렸어." 윤호의 말에 유천의 머릿속엔 순간적으로 윤호와 함께했던 행복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 처럼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윤호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행동들은 지금까지 기억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천은 한순간에 패닉 상태가 되어버렸다. ".................니가 날 그만큼 사랑했다면, 우린 왜 이렇게 된 거지..-?" 유천이 멍한 눈동자로 윤호를 보며 묻자, 윤호는 이때까지 지었던 실소와, 비소를 다 지워 버리고 지금까지 지었던 미소 중 가장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빌어먹을 '권태기'가 우리를 찾아왔으니까." 유천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 배경음악 잘 들으셨나요?(웃음) 평소에 '이 노래는 권태기 배경음악으로 딱인데?'라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누구 맘대로;) 그래서 오늘은 음악을 찾아서 깔았죠- 더 좋은 노래를 찾기 전까지 이 노래는 계속 배경 음악으로 쓰일 듯 싶습니다. 아아, 가사하고 소설하고 비교하지 마십시오[!] 노래 속의 연인은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벌어진 권태기고, 제 소설은 '싫증'으로 인한 권태기니까요. 어쨌든 권태기는 권태기잖습니까[;] 요즘 벨기에 언어를 찾아 다닌다고 고생하고 있습니다. 귀찮게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네덜란드 어를 사용한다더군요.(울음) 그냥 영어쓰지-(중얼) 방학 마무리로 바쁜 생활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마무리 잘하세요! [+] 카페에 권태기 올릴때는 태그를 씌운다고 엄청 고생했습니다(울음) 제 고생을 알고 싶으신 분은 회람을 눌러보세요. 하나, 하나 다 있는 [br], 다 제가 찍은거랍니다-_ㅠ; 나모를 이용하고 싶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여튼 음악이랑 즐감하세요! 월드는 새벽 4시가 넘은 관계로 불끄고 자야겠습니다, 감상 기대할게요(씨익)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3] 윤호는 유천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더니 아까 창민이 하던 것 처럼 유천의 뒷 목을 잡고서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다. "너 안 울거라 했잖아." 윤호의 말에 유천은 윤호의 옷을 움켜잡고서 어깨를 들썩거린다. 윤호는 유천의 목에서 손을 옮겨 유천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유천은 그저 힘 없이 안겨 울 뿐이었다. * "다녀왔어요." "어제 얼굴도 안 비추고 바로 친구집에 가서 술 마시니까 맛이 좋니?" "엄청 맛있던데요?" "얘가-" 창민은 지친몸으로 집에 들어오자 마자 어머니와 농담하기에 바쁘다. 어머니는 기가차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어보이며 말씀하셨다. "속 쓰리지? 콩나물국 끓일테니까 씻고 와. 아, 그리고 선우가 널 많이 찾더라?" "선우가요?" "그래, 2층 방에 있을거다. 올라 가 보렴." 창민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서 2층으로 향했다. 2층은 날이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도 켜 지지 않았다. 창민은 또 방에만 있는가, 하고 한숨을 내 쉬었다. 자신의 방에 가방과 옷을 벗어두고 나오려다 바로 선우의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방 안에서는 가라앉은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창민은 피곤함을 지우며 활짝 웃고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선우야, 형 왔어." "..........뭐야, 나가." 선우는 방문을 연 사람이 창민인걸 확인하자 다시 침대에 누워버리며 차갑게 나가라고 말한다. 창민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선우의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베개에 고개를 파 묻고 있는 선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선우는 그런 창민의 손길에 벌떡 몸을 일으키고서는 창민의 손을 냉정하게 탁, 쳐냈다. "선우야?" "만지지말랬잖아!" "내가 너 만진거 한 두번이야?" 창민의 말에 선우는 얼굴을 붉히고서 다시 침대에 고개를 묻었다. 창민은 그런 선우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선우의 머리를 부비적 거렸다. 선우는 아무 반응 없었다. 선우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창민의 말이 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창민은 선우를 쓰다듬는 행동을 많이 해 오기 때문에 선우가 쳐 내는 일이 있어도 이내 다시 손을 뻗어온다. 그렇게 하다 항상 지치는건 선우였기에 창민은 끝엔 항상 웃으며 선우의 머리를 맘껏 부벼놓았다. "나 많이 찾았다며." "누가 그래?" "우리 엄마가." ".....아니야, 누가 바보같은 널 찾는단 말야?" "이 녀석, 형이라했지?" 창민은 아프지 않게 선우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창민은 아직도 새 빨게져 있는 선우의 귀를 보며 웃어보인다. 왠지 선우와 있음 마음이 놓였다. 어렸을때 부터 아는 사이라 그런가, 싶기도 한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유천과는 더 어릴때부터 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볼 때 창민의 감정은 확실히 달랐다. 유천을 볼때는 뭔가 불안하고, 가슴이 아팠지만 선우를 볼때는 기분이 좋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한참 그렇게 선우의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밖에 어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창민아, 다 씻었니? "아, 엄마! 나 지금 씻을거에요!" -빨리 씻고 내려 와! "예!" 창민은 큰 소리로 대답하고서는 마지막으로 선우의 머리를 한껏 부벼주었다. 선우는 "뭐야!"라고 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정리했고, 창민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 형님 씻고 온다!" "아예 가 버려!" "어어? 정말?" 선우가 던진 베개를 손에 쥐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창민덕에 선우의 얼굴은 다시 새 빨게졌다. 차마 이제 와서 "거짓말인거 알잖아."라고 하기에도 무안하고. 창민은 선우의 반응에 만족했다는 듯 웃으며 방을 나갔다. 선우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진짜 사람 놀리는데는 도가 텄어." * "아버지는 안 오시니?" "오늘 비서실장님하고 식사하고 오실거라던데요?" "그러니? 이 양반이, 전화도 안하고-" "헤에- 질투하시는 구나?" "어머, 얘는 무슨 소릴-" 창민의 장난끼 섞인 농담에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셨다. 옆에서 같이 식사중이던 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폭 내 쉬었다. '역시, 내 말이 맞다니까.' "잘 먹었습니다." "벌써? 더 먹을래?" "아뇨,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선우는 창민의 어머니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서는 2층으로 올라갔다. 창민은 그런 선우에게 "잠깐만!"을 외쳤지만 선우는 무시한체 유유히 2층으로 사라졌다. 창민은 한 숟갈 남은 밥을 급히 떠 먹고 어머니가 끓여주신 콩나물 국도 그릇째로 다 마셔버리고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크게 외치고는 선우를 따라 2층으로 사라졌다. 한순간에 혼자남아 버린 어머니. "어머, 저 녀석좀 보게? 풋..-"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이 친해졌다는 생각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편 2층으로 먼저 올라온 선우는 2층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안되어 창민이 시끄럽게 올라오는 바람에 선우는 인상을 쓰며 조용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창민이 재 빠르게 선우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놔." "왜 그렇게 쌀쌀 맞냐? 오늘 이 형님이랑 술이나 같이하자." "어제 마셨잖아, 됐어." "억지로라도 데리고 갈테다!" "뭐? 으, 으앗-!" 창민은 어디서 힘이 난건지 선우를 번쩍 들어올려 어깨에 매고서는 다시 1층으로 향했다. 선우는 자신을 맨 창민에게서 벗어나려고 바둥거렸지만 오히려 다리만 더 꽉 잡힐 뿐이었다. 창민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께- "엄마, 나 선우랑 술 마시고 올게요!" "또 무슨 술이야! 어제도 마셨잖아!" "다녀 오겠습니다!" 어머니라도 나왔다면 선우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났겠지만 설거지 중이던 어머니는 결국 부엌 밖으로 나와 보지 않으셨고, 선우는 그대로 집 밖에까지 매달린 체 나와야했다. 창민은 자신의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선우를 태웠다. 그리고는 재 빨리 운전석에 가서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선우는 창민을 노려보며 화가난 소리로 말했다. "지금 뭐 하자는거야?!" "술 먹자는데 니가 거부하길래 데리고 나왔지." "차키는 언제!" "밥 먹고 바로 나갈 생각으로 들고 내려왔었지- 자자, 맛있는 곳으로 가자고!" 선우는 못 말린다는 얼굴을 하고서 체념한 듯 창 밖을 바라봤다. 창 밖에 보이는 서울 도시의 밤이 아름답게 보였다. 창민은 커브길을 돌면서 선우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말랐냐? 몸무게 오십대지?" "...........최근에만." 최근에만 그렇다는 것은 사고가 있고부터, 선우는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소리일 것이다. 창민은 다시 우울해 지는 선우의 표정을 보고 손을 뻗어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 "...........당신이라면 한번에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간 사고 잊을 수 있겠어?" 선우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가 교차했다. 창민은 진지한 선우의 말을 듣다가 손을 거두었다. 왼쪽손은 차 밖으로 내 밀고, 오른쪽 손으로만 운전하는 창민의 모습이 멋지다. 차가 한강대교 위로 향하고 창민은 선우쪽 창문을 열었다. 밤바람은 춥기도 했지만 두 사람에겐 시원하게만 느껴졌다. 창민은 미소를 지으며 선우에게 말했다. "그딴 일 다 잊어라! 그리고 넌 그 덕에 하날 얻었잖아?"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던 선우는 무슨 말이냐는 듯 창민을 보았고, 창민은 그런 선우를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바로 나." "........." "그 사고가 니 모든걸 빼앗아 간 대신 넌 나를 얻었잖아. 만족 못 해?" 선우는 한참이나 가만 있다가 몇분이 지나서야 창민의 말을 이해했는지 얼굴이 새 빨게 지면서 무슨 바보 같은 소리냐고, 창민에게 소리쳤지만 창민은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선우는 여전히 씩씩 거리며 창민에게 따져댔지만, 창민은 그런 선우를 저지 하지 않는다. 선우의 얼굴에 있던 슬픔과 분노가 다 지워졌으니까 말이다. "토요일이고 하니까 멋진 밤을 보내보자고! 가자!" 그렇게 즐거운 외침이 점점 멀어졌다. ────────────────────────────────────────────── 안녕하세요, 월드입니다! 이번에는 배경곡을 넣지 않았어요- 그 배경곡을 쓰기엔 이번 편은 밝은 편이었거든요.(웃음) 그리고 정윤호군 너무 미워하지마세요, 정윤호군이 제 소설때문에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정윤호군께 너무 죄송하답니다.(머쓱;) 그럼 월드는 오랜만에 일찍(?) 소설을 올려놓고(시간은 벌써 2시를 향해가지만;) 사라지겠습니다, 여러분!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4] "............" 두 사람은 어느새 바닥에 앉아있고, 유천의 상체는 조금 앞당겨져 윤호의 품에 안겨 있는 상태이다. 윤호는 유천의 머릴 쓰다듬었다. 유천은 울다 지쳐서 잠들어버렸다. 여전히 윤호의 옷자락을 꽉 잡은 상태로 말이다. 윤호는 그렇게 유천의 머리칼을 만지작 거리다가 불편한 자세의 유천을 보고서 잠든 유천을 안아서 안방으로 향하였다. 유천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감은 눈은 꽤나 피곤했는지 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까 안을 때 느꼈지만 유천은 최근들어 살이 너무 많이 빠져버렸던 것 같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빠졌지만 안아보면 얼마나 많이 빠져버렸는지 실감할 수 있다. ".........밥은 꼬박 꼬박 챙겨 먹는거냐..-" 볼살이 빠져 턱선을 다 드러내는 유천의 모습이 많이 애처롭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꽉 안아주었다. 그렇게 유천의 체온을 느끼며 윤호역시 잠이 들었다. * 딩동, 딩동-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에 윤호는 감은 눈으로 떴다. 몇시간을 잔건지, 밖은 벌써 해가 지려하고 있었다. 윤호는 품에 안겨 아직도 자고 있는 유천을 내려다 보고는 시끄럽게 울리는 벨소리를 저지하기 위해 침대에서 벗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하는 동시에 문을 열자 예쁜 여자가 서 있다. "정말 오빠 집이네요." "미야, 니가 어떻게..-" "어제 오빠가 놀러오라 해서 왔는데- 곤란해요?" "아니, 뭐 특별히 곤란한 건 없다지만..-" 하지만 실로 윤호는 곤란했다. 유천이 있는데 미야가 오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미야를 내 쫓을 수도 없었다. 윤호는 미야에게 일단 들어오라, 하고서는 부엌으로 향했다. 마실 걸 꺼내면서 자신이 언제 그랬지-,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아차, 하고 인상을 팍 써버렸다. 어제 술을 마시고 아무 번호나 눌러서 전화한다는 게 미야였나보다. 어제했던 통화내용도 얼핏 생각이 난다. "미야야, 우리집 올래? 내일 놀러와, 응..- 응, 올거지? 그래..- 오빠가 준비하고 있을게...- 그래, 응, 응..- 아, 오빠가 술좀 마셔서 그래..- 아, 우리 집 위치? 우리 집 위치는...-" 생각하면 미야의 등장은 다 자기 자신때문이었다. 자신이 어제 술김에 전화해서 부르지만 않았더라도 오늘 같이 곤란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윤호는 미야에게 쥬스를 건네주었다. "뭐예요, 준비 해 놓을거라더니- 어제도 다 술김에 한 말이었죠?" "니 맘대로 생각해. 씻고 올게." "예-" 윤호는 옷을 가지러 안방에 들어갔다. 유천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최근들어 밤에 2, 3시간밖에 잠을 이루지 못 했던 유천은 쉽게 깨어나질 않았다. 윤호는 옷을 챙겨들고 유천이 잠들은 침대끝에 걸터앉았다. "미안해." 그리고는 방을 벗어나 욕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니 꽤나 길어버린 수염들이 까끌했다. 이렇게 신경쓰지 않았던가, 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밖에 있는 두 사람이 생각났는지 한숨이 새어나왔다. "휴우...- 일단 씻고보자." * "혼자 사는 거 치고 넓네? 그리고 깨끗하네. 꼭 신혼집 같아." 미야는 웃으며 신혼집 같다했다. 남자 혼자 사는 거 치고 아기자기 한 것도 많이 있고, 장식품도 많고 정리도 잘 되어 있고, 집도 넓고- 미야는 윤호가 준 컵을 앞에 있는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고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살짝 둘러보는 건데 괜찮겠지?" 그녀의 얼굴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는 현관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담한 방 하나. 안에는 컴퓨터와 몇권의 두꺼운 책 이외에는 없었다. 미야는 살며시 문을 닫고 두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크기는 중간정도였는데, 간단한 운동기구와 책, cd, 오디오 등 가전제품등이 모여 있었다. 미야는 시시하다는 얼굴을 하고 돌아서 나가려 하다가 탁자 위에 있는 액자를 보았다. 접는 식의 액자 였는데 오른쪽엔 윤호의 사진, 왼쪽엔 미야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한 남자의 사진이 꽂혀있었다. "우와, 남자 맞아? 예쁘게 생겼다-" 아마 미야가 보는 사진은 "유천"의 사진인 듯 했다. 미야는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원 위치에 액자를 놓고서 살금살금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 방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마지막 방. 이때까지 침대나 옷장 같은 게 나오질 않은 걸 보니 윤호의 방인 것 같았다. 하얀색 문에 걸려있는 귀여운 액자가 참으로 따뜻하고 깔끔해보였다. 미야는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이때까지 봤던 두 방을 다 합친만큼 넓은 방엔 커다란 침대와, 옷장 등등 여러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제일 눈에 띄었던 건 제일 커다란 액자. 거기엔 아까 봤던 두 남자가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고 제일 먼저든 생각은- "우와, 잘 어울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몇개의 작은 액자가 더 있었다. 이 사진, 저 사진 모두 두 사람의 사진이었다. 한참 사진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뒤척이는 듯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침대위에 누군가 있었다. 미야는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조심히 침대가로 다가섰다. "사진속에 있던 남자!" 사진 속보다 머리를 짧았지만 단번에 그가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남자란걸 알 수 있었다. 미야는 한참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때 방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미야의 시선은 남자로부터 문을 연 그에게 향했다. 문을 연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미야에게 다가왔다. "오, 오빠!" "누구 맘대로 들어 오래? 어서 나가자." 미야는 처음으로 보는 화가 난 윤호의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커다란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윤호가 그녀의 팔목을 잡고 나가려던 때였다. 침대에서 자고있던 유천이 눈을 비벼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는 다시한번 유천을 봤고, 나가려던 윤호역시 유천을 바라보았다. 막 잠을 자고 일어난 유천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윤호와 그녀를 번갈아 보았다. 유천의 시선은 이내 한 곳에 자리잡았다. 크고 검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예쁜 여자. 유천은 자고 일어나서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열며 물었다. "..........누구....-" ─────────────────────────────────────────────── 하하, 드디어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졌군요. 괜히 기분이 좋은걸요?(웃음) 이번에도 노래를 넣었는데요, 이번 노래는 김정훈님의 "유리"입니다. 가사는 상관하지 마시고[;] 들으세요, 이번편 내용이랑 별로 같지 않으니까요- 권태기에 배경곡을 추천받고 있어요. 감상 남길때 알려주셔도 되구요, 뭐, 여러가지 방법(?)으로 추천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닉으로 감사 인사를 받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닉도 함께 써 주시고, 태그도 웬만하면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5] "..........누구....-" 미야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천의 눈빛에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유천에게 허리를 숙였다 다시 바로하며 웃어보였다. "안녕하세요, 권미야라고 해요. 윤호오빠랑 아는 오빠동생 사이구요." "..........." 미야의 인사에도 유천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미야는 그런 유천의 반응을 생각하지 못 했는지 안절부절 하지 못 하며 서 있었고, 그런 미야의 팔목을 잡고 있던 윤호는 유천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사..... 받아, 박유천." "............" 윤호의 말에 유천은 멍한 시선을 윤호에게로 옮긴다. 그리고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미야 앞에 선다. 미야는 그런 유천을 보고 더 무안해하고 있었다. 그때 유천은 아무런 감정 없이 미야를 내려 보다가 자신의 한쪽 손을 내 밀었다. 미야는 갑작스레 내밀어진 유천의 손에 놀란 듯 유천을 쳐다 보았고, 유천은 여전히 아무감정도 담지 않은 눈으로 미야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정윤호 친구 박유천입니다." 딱딱한 말투. 아무 감정도 없는 눈동자. "아내"가 아닌 "친구"라는 단어. "아, 안녕하세요-" 미야는 유천의 분위기에 얼어 유천이 내민손을 잡으며 다시 한번 꾸벅 인사를 했다. 유천은 미야의 손이 닿은지 얼마 안 되어 손을 놓아버렸다. 미야는 당황한 듯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윤호는 유천을 한번 쳐다보더니 미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가자." 쾅- 그렇게 윤호는 미야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유천은 그렇게 멍하게 방 한 가운데 서 있어야 했다. 굳어버린 몸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머릿속의 혼란스러움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윤호가 데리고 나간 사람은 남자도 아닌 여자였다. 그리고 결코 그짓을 하려고 데리고 온 여자는 아니었다. 그가 저렇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윤호에게 새로 생긴 애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읏-" 너무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깨에 팔을 둘러 나가는 두 사람의 뒷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리고, 멋져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몸의 긴장을 푸는 순간, 갑자기 자고 일어난 뒤의 나른함이 물밀듯 밀려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아버렸다. ".............크윽..-" 힘이 다 빠지는 듯한 느낌에 작은 신음을 내 뱉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늦었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그를 놓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 달칵. 유천이 방에서 나오자 현관에 서 있던 그녀는 몸을 바로하며 유천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허리까지 숙여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아, 아까전에 죄송했어요. 제 맘대로 방에 들어가는 바람에-" ".....아닙니다." "아, 안녕히 계세요! 오빠, 오늘 미안했어요. 저 갈게요-" "데려다 줄게." "아뇨, 저 혼자 갈게요. 그럼 두 분다 안녕히 계세요." 미야는 윤호가 데려다 준다는 것도 거절하고, 그대로 집을 나가 버렸다. 윤호는 멍하니 서 있는 유천을 보고 인상을 팍 찌푸리며 화가난 음성으로 따지듯 말했다. "뭐 하자는거야, 박유천?" "뭐가?" "처음 보는 애한테 왜 그렇게 차갑게 대해?" "말 그대로야. 처음보기때문에 그랬어." "......박유천." 유천의 아무감정 담기지 않은 말에 윤호의 목소리는 잔뜩 낮아져 엄청나게 화 났다, 라는 듯 조금 떨리고 있었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보고 입을 열었다. "나 원래 처음 보는 사람한테 다 그렇게 대해- 난 처음보는 사람한테 살갑게 굴지 못 하거든- 누구 처럼 말야." "박유천!" "왜? 알잖아, 내 성격. 너야말로 뭐 하자는거야? 내 성격 뻔히 알면서, 뭐? 인사를 받아주라고? 쿡, 웃기는군- 정말 질린다, 정윤호." "그래, 알아. 안다고, 니 성격.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다 딱딱하게 구는거- 하지만 걔는 여린 여자아이란 말야. 사람 좀 가려가면서 그렇게 대해." "............나가, 정윤호." "뭐?" "그깟 사소한 거 가지고 나한테 열 내려면 아까 그 여자한테 가라고-" 유천은 제법 화가난 눈초리를 하고 윤호를 노려보더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윤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면 갈수록 맞지 않아, 박유천 너하고도 완전히 끝낼때가 온 것 같군." * 월요일. 토요일 저녁 그렇게 사이가 심하게 벌어지고 나서, 일요일엔 서로 딴 방에 가서 접촉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오늘 월요일 새벽이 되서야 두 사람은 마주칠 수 있었다. 그렇게 옷가지 몇벌을 챙기고, 돈을 챙기고, 여권과 비행기 표를 챙겨들고 두 사람은 택시에 올랐다. 택시 기사는 두 사람에게 친구끼리 여행이라도 가나봐, 라고 말했지만 두 사람은 무표정으로 계속 있을 뿐이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택시에서 내려 공항건물로 들어서는 이들. "몇시 비행기지?" "8시 비행기. 지금 들어가면 돼." 유천은 윤호보다 앞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윤호는 허무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역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부부"로써의 인연을 맺은 곳에서 "부부"로써의 인연을 끊으로 향한다. 벨기에로. ─────────────────────────────────────────────── [오늘의 bgm- 보아의 나무 / 추천해주신 "막둥정윤호"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월드입니다. 아, 카페 님들께 너무 죄송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페 들어온거에요, 정말 죄송합니다.(꾸벅) 엑스에는 분명 새벽 2시가 좀 넘어서 소설이 올라왔을건데, 카페에는 올리지 못 했어요. 그때 당시 천둥번개가 치고, 비는 쏟아붓고, 방에는 저 혼자 있고, 잠도 오고, 하늘은 번쩍 거리고 해서, 갑자기 귀신들이 생각나 너무 무서운 나머지[;] 그리고 금방이라도 정전 될 것 같은 상황에 카페는 차마 일찍 올리지 못 했어요- 죄송하구요, 다음부터는 천둥 번개가 치더라도 꼭 올리고 잘게요- [하지만 어제는 너무 무서웠어요(울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6] 밤 늦게서야 벨기에의 수도 브뤼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서둘러 자신들의 집이 있는 도시로 향했다. 역시 유럽의 밤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아무말도 없었다. 이내 익숙한 집 앞에 차가 서고, 두 사람은 서둘러 짐을 들고 내린다. 아담한 정원과 적당한 크기의 아름다운 집. 한국 지사로 발령을 받아 가면서 벨기에에 있는 집을 정리하려했지만 정리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물건도 거의 그대로 다 두고 집 열쇠만 잠그고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항상 차키와 함께 끼워두었던 또 다른 집 열쇠로 문을 열었다. 녹슬었는지 몇번을 돌려서야 겨우 문이 얼렸다. 정원에 잡초가 많이 나 있는 것 처럼, 집은 1년동안 비어져 있었다는 걸 증명하듯 하얀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다." 윤호의 말에 동의 하듯 유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문을 열고, 창고에서 청소기와 먼지털이를 가져와 먼지를 털어내고,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물건들을 닦고하니 벌써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너 먼저 씻을래, 나 먼저 씻을까?" "너 먼저 씻어. 2층 침실 정리하고 있을게." 윤호는 유천보고 먼저 씻으라 한 뒤, 자신들이 사용했던 침실로 향하였다. 침대를 커다란 천으로 씌어놔서 그런지 먼지가 덜 앉았다. 다시 먼지 털어내고, 쓸고, 닦고 하다보니 윤호는 녹초가 되어 버렸다. 침대에 털썩하고 누우니 유천이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왔다. 윤호는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갔고, 유천은 침대에 앉았다. 1년만이다. 이 집에 돌아온건- 이 집에 열쇠를 걸고 한국으로 향할때 윤호와 했던 약속- "다음에 꼭 벨기에에 놀러와서 다시 이 집오자." 그런데 이제는 "놀러"가 아니라 "이혼하러"가 되어버렸다. 분명 행복했던 시간들인데 지금와서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이 집은 너무나 행복했던 추억들만 가득차서 지금 상처를 받을데로 받은 유천으로서는 너무 가슴 아픈 집이다. "행복했으니까 추억이 되는거겠지." 유천은 침대에 누워 이것저것을 떠 올렸다. 벨기에에 와서 샀던 집과 혼인신고를 하고서 보냈던 첫날밤, 비오는 날 함께 했던 술. 휴일마다 대청소, 아침마다 했던 모닝키스. "..........그런데 추억으로 하기엔 너무나 아프구나..-" 그랬다. 추억으로 하기엔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기에 가슴이 아팠다. 1년이 지났는데 모든게 달라져 버렸다니, 너무나 슬프다. 신발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기내 의자도 편했지만 이만큼 편하지는 않았다. 편함과 동시에 피곤함이 밀려왔다. 유천은 왼쪽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잠이 들려 할때 윤호가 와서 방에 불을 끄고 유천의 옆에 누웠다. 항상 누워 자던 위치. 유천은 벽이 있는 왼쪽에, 윤호는 바깥쪽에. 둘이 같이 잘 때는 당연한 듯 이렇게 누워버린다. 이게 바로 1년동안 서로를 사랑하면서 서로 몸에 베어버린 습관. 1년전만 해도 침대에 누우면 장난치다가 결국은 서로를 껴안고 잤는데, 1년후인 지금은- 유천은 벽쪽을 바라보며 누웠고, 윤호는 바깥쪽을 바라보며 누웠다. 확실히 서로 등을 돌려버린 체 잠을 청한다. 이제는 껴안고 자는 것보다 이게 더 익숙해져 버린 두 사람. 그래서 더욱 슬픈 현실. 그렇게 밤은 지나갔다. * "....어나-" "....으음..-" "일어나, 박유천. 아침이야." 유천은 몸을 뒤척이다가 살풋 눈을 떴다. 강한 햇빛이 유천의 눈으로 향하는 바람에 유천은 손으로 눈을 가렸는데, 얼마 안 있어 윤호의 일어나라는 소리가 정확하게 들려왔다. 시차적응이 잘 되지 않아 겨우 몸을 일으키니 눈부신 아침이 되어있었다. "토스트 해 놨어, 씻고 내려와서 먹어." "...으응...-"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질 못 해 벽에 기대며 대충 대답한 유천. 그런 유천의 모습을 보고 윤호는 어서 씻으란 말을 하고 내려갔다. 유천은 윤호가 내려가자 다시 침대에 쓰러져 잠을 잤다. 항상 이랬다. 저번에 벨기에 왔을 때도 유천은 시차 적응을 하지 못 해 한동안 늦잠을 잤고, 그에 반면 의외로 빨리 시차적응을 한 윤호는 항상 먼저 일어나 유천을 깨웠다. 하지만 그것도 한국에선 반대였고, 최근에는 윤호가 유천을 깨운 건 처음인 듯 했다.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윤호는 20분 정도가 지났는데도 내려오지 않는 유천때문에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자 혹시나 하는 생각이 정답으로 맞아 떨어져있었다. 올라 오는 내내 혹시나 저번처럼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고 있는 건 아닐까, 했는데 역시나였다. "어서 일어나. 토스트 다 식었단 말야-" "...싫어..- 잠...와....-" "먹고 자." "...싫어...-" "휴우..-" 윤호는 누워있는 유천의 등 밑으로 손을 넣어 상체를 일으켰다. 눈도 뜨지 못한 체 윤호에 의해 앉게 된 유천은 잠이 계속 밀려오는 듯 윤호의 품에 기대어 눈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윤호는 좀처럼 잠에서 깨지 못하는 유천을 안았고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욕실로 들어가 한 손으로 받쳐 유천을 세워두고 변기 뚜껑을 덮어 유천을 앉혔다. 그리곤 오늘 아침에 사온 칫솔에 치약을 뿌려 유천에게 쥐어주었다. 유천은 그제서야 눈을 반쯤 뜨고 양치를 시작했다. "정신 차리고 씻고 나와." 유천은 아무 말 없이 양치만 할 뿐이었다. 아직도 잠에 깨지 못한 유천을 욕실에 혼자두는 게 내심 걱정스러웠지만 그대로 유천을 두고 1층으로 내려와서 빵을 다시 데우고 컵에 우유를 따뤘다. 이렇게 벨기에서 처음 맞는 그들의 아침이 흘러가고 있었다. * "이혼서류는 언제..-" "오늘 가져와서 작성하고 내일 제출하자." "그래." 윤호가 만든 아침식사를 먹는 유천은 윤호의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서 계속 빵을 먹었다. 내일이면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난다. 두 사람은 이제 곧 "남"이 될 거다. 여행 아닌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귀국하면 두 사람은 더 이상 이렇게 자주 만날 일도, 더 이상 같이 살지도 않을 것이다. 내일 서류에 싸인을 하고 윗 사람역시 싸인만 해 준다면 끝나는 사이니까. 시간이 다가올수록 떨리기는커녕 더욱 덤덤해진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그 모습이 더 슬프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을까? ─────────────────────────────────────────────── [오늘의 bgm- Fly to the sky 의 습관 / 추천해주신 "바보박유천"님께 감사드립니다.] 어제 새벽에 쓰다가 저장하고, 방금 다 마무리 했습니다. 아, 내일 개학이군요. 슬픕니다.(울음) 밀린 숙제는 수두룩 한데 개학이라뇨! 슬퍼요, 월드는 슬프다구요!(어디서 뗑깡을;) 다시 교복을 입고 학생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퍼억] 흠흠, 죄송했습니다[;] 아, 여러분. 그동안 많은 음악 추천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웃음) 그런데 이제는 음악이 넘쳐흘러서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사실은 음악태그 찾기가;) 나중에 음악이 다 떨어지고 나면 그때 제가 다시 음악 받을게요- 권태기 배경음악 구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월드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오늘 새벽은 컴퓨터가 아닌 숙제와 함께 할 것 같군요.(웃음+울음) 흑흑, 월드, 정말로 물러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7] "여기 싸인 해." 윤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본 유천은 펜을 들어 그 곳에 싸인을 했다. 윤호 역시 유천이 쓴 펜을 받아서 옆에 싸인을 했고, 이내 서류를 확인해 보더니 봉투에 챙겨 넣었다. 유천은 서류봉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윤호를 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내일 서류접수하고, 판사랑 만나보고 판결나면 근처 관할 행정기관에 가서 호적정리만 하면 돼. 그러면 다 끝나는 거야." "그러면 다 끝나는 거야."라고 말함과 동시에 유천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윤호도 그런 유천의 상태를 알았는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유천은 어색한 기운에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어색함을 없애보려 했지만 두 사람 중 한명이 먼저 입을 열기 전엔 절대로 어색함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유천은 어색함을 참지 못 하고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아침처럼 늦게 일어나면 곤란하니까 먼저 잘게." "어, 그래-" 윤호는 바로 반응해줬고, 유천은 그런 윤호를 뒤로한체 2층으로 올라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아침과는 달리 지금은 잠이 전혀 오질 않았다. 하지만 윤호와 있어봤자 어색하기만 할 뿐 할 것도 없다. 예전엔 할게 너무나 많아서 하루도 모자를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너무나 많이 비어서 이렇게 일부러 오지도 않는 잠을 자야한다니- 유천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몇번을 뒤척이고 눈만 깜빡 거리길 30분. 달칵. 어두운 방 안으로 윤호가 들어왔다. 유천은 벽쪽으로 돌아누우며 눈을 감았다. 잠은 여전히 오지 않았고 답답함만 더해질 뿐이었다. 윤호는 유천의 옆자리에 누웠고, 유천은 잠들기 위해 속으로 양까지 세어가며 자신이 잠들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때- "박유천." "........." "안 자는 거 알아, 대답 해." ".........왜." 윤호의 말에 유천은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등을 돌린 체 그대로 말이다. 윤호는 팔베개를 한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내일 서류 접수하고, 몇일 뒤에 판사 만나고- 호적정리하면 끝이다?" "그래서." ".......그냥, 뭔가 허전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바랬잖아." 유천의 말에 윤호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유천의 뒤통수(벽을 보고 누웠기에 윤호에겐 뒷 모습만 보인다)를 쳐다보았다. 유천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더니 잠깐의 침묵을 이어갔다. 윤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다시 시선이 천장으로 향하게 하였다. 별로 크지 않는 공간에 두 사람이 있는데 너무나 조용하다. 마치 이 방엔 아무도 없는 빈방처럼- 유천은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마른 입술을 한번 적시고서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난 지금도 아직 널 사랑하고 있어." 유천의 솔직한 고백에 윤호는 아무 미동도 없었다. 알고 있었다. 유천이 아직 자신에게서 마음을 떠나 보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 권태기도 자신때문에 온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유천의 마음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윤호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조용한 공간 속에서 유천의 목소리는 작은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크게 퍼져나갔다. 유천은 지금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이 어둠에 감사하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이혼하려는 것도 물릴 수 있어." 유천의 진심어린 말투. 윤호는 그런 유천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유천은 자신이 덮고 있느 이불자락을 꽉 잡으며 눈물이 흐를까봐 눈을 감고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니가 바라는게 아니잖아." "..........." "지금은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섭섭하댔지?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야." 유천의 말에 윤호는 눈을 떴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유천은 여전히 벽을 보고 돌아 누워 있었다. 윤호는 유천을 내려다 보았고, 유천은 아까 윤호처럼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적응 안 되겠지. 하지만 내가 다시 너와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면 넌 아마도 다시 권태기를 맞고, 이보다 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서 난 멍들대로 멍든 가슴을 안고서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게 될 거야. 그런 건 싫어." "유천아." "가끔 니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니가 나에게서 마음이 완전히 돌아선 건 아니야. 다만 잠깐의 싫증을 느꼈을 뿐. 하지만 그 잠깐의 싫증은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 결국은 서로 얼굴을 붉히며 끝나게 돼. 지금 난 조금의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 "........." "니가 나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돌아섰을 때는 이혼서류에 사인을 해도 절대 지금처럼 섭섭하거나 하는 감정따위 들지 않을거야. 하지만 지금 넌 그런 마음이 없지않아 있잖아? 니가 아직 나에게 마음이 있을 때 이혼서류를 작성하면 조금은 덜 비참할 거 아냐?" 확실히 유천의 말이 맞았다. 이렇게 섭섭한 감정으로 확실히 결정을 하지 않고 귀국을 해서 또 같이 살게 된다면 언제 또 권태기가 올지 모른다. 지긋지긋한 권태기는 여기서 그치는게 낫다. 상처를 이미 입은 사람에게 더한 상처를 입으라는 건 죽음과도 같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상처는 다른 이에게 받는 상처보다 배가 되어 더 아파온다. 유천은 후에 자신이 그렇게 될까봐 일찍이 그걸 막기 위해 헤어지려는 것이었다. 윤호가 자신에 대한 감정이 조금이나마 남았을 때 더 좋은 모습으로 끝내기 위해- "차라리 나도 너한테서 마음이 떠났다면 우린 이미 오래전에 이혼을 하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지 몰라. 하지만 난 아직 너에 대한 사랑을 접지 못 했어. 이혼을 하고나서도 난 여전히 널 사랑할지 몰라. 하지만 널 붙잡는 일따위는 하지 않을거야." 조금씩 울먹임이 섞이는 목소리. 윤호는 유천의 짧은 머리칼에 손을 대었다. 짧지만 부드러운 머리칼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유천의 감고 있는 두눈에서 결국은 눈물이 둑뚝 떨어진다. 유천은 주위가 어두운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억지 부리고 싶어. 정윤호보고 박유천 다시 사랑하라고- 그렇게 억지 부리고 싶어. 사람 마음이 말하는 대로 싶게만 된다면 그렇게 억지 부려서라도 널 다시 되 돌리고 싶어. 하지만 일부러 그러고 싶진 않아. 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곁에 붙잡아 둘 자신이 없거든." "내가 원망스럽고, 밉고, 그렇겠지?" 윤호의 물음에 유천은 실소를 머금었다. "원망 안 한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일거야. 난 아직 널 사랑하니까." "나 없이도 잘 살수 있어?" "그래, 안 되면 노력할거야. 악착같이 살아갈거야." "후회는-?" 윤호의 마지막 물음. 유천은 감은 눈을 살짝 떴다. 속눈썹이 눈물에 의해 젖어서 길게 뻗었다. 유천은 몸을 일으켜 윤호를 마주보았다. 윤호는 유천의 젖은 눈가를 닦아주었다. 유천은 잘 움직이지 않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가 아닌 니가 하게 만들거야."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그런 못되어 보이는 미소인데도, 눈물로 얼룩진 그의 눈가로 인해 너무나 슬프게만 보인다. 그렇게 그들의 벨기에서의 두번째 밤이 흘러갔다. ─────────────────────────────────────────────── [오늘의 bgm- 김현성 의 소원 / 추천해주신 "메롱보댕"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입니다. 개학하고 처음입니다.(웃음) 그동안 여러가지로 나름대로[!] 바뻤습니다. 지금도 급히 컴퓨터를 꺼야합니다.(울음) 언젠가는 방학때처럼 미친듯이 컴퓨터를 할 수 있겠죠? 그날을 기대하며 저는 사라지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수고하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8] 그날 밤 이후, 서류를 접수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에야 판사를 만났다. 판사는 두 사람과 얘기를 몇마디 하고, 마지막으로 후회는 안 하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판사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에 싸인을 했다. 생각외로 이혼 절차를 밟는 시간을 길었고, 윤호는 회사에 전화해 개인 사정으로 출근이 좀 더 늦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윤호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고, 윤호는 끝내 결국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윤호는 여전히 얼굴을 찡그린 체 소파에 앉았고, 유천은 레몬티를 마시다가 윤호에게 뭐 때문에 화났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회사에는 이미 사표처리 됐으니까, 지금이라도 의학 공부해서 의사하란다." "우리 아버지가 전화했나 보네." 유천은 조금 미안한 듯한 음성으로 윤호에게 말했다. 윤호는 아무 대답없이 2층으로 올라 가 버렸다. 유천은 한숨을 내 쉬었다. 윤호의 할아버지는 서울 내에 있는 큰 종합병원 원장이시고, 아버지는 부원장이시면서 의사시다. 가족 모두가 의사를 하고 있어서 모두들 윤호가 의사가 될거라 생각했지만 윤호는 의사가 되지 않았고, 대신 유환과 동갑인 윤호의 동생이 지금 의사 과정을 밟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모두 제 위치로 돌아가는건가...-' 두 사람이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갔다면 윤호는 가족의 뜻대로 의사의 길을 밟고 있을것이고, 유천은 사업을 배워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돕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만났고, 서로 사랑했다. 결국은 각자의 가족이 바라는 길을 걷지 않았고, 뒤 늦게 이제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본래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런데, 원래 걸어야 하는 길을 걷는건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치 못 할까. * "자식, 오랜만이다. 한국 왔음 전화라도 해야할 거 아냐-" "니가 딱 알아야 할 거 아냐." "내가 어떻게 아냐? 안 그래도 바뻐 죽겠구만-" "그러세요, 김이사님?" 두 사람의 대화가 몇 마디 오고간지 얼마 안 되어 웃음이 터졌다. 오랫만에 만나서 그런지 두 사람은 이것저것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의 술잔을 채워나갔다. "안주도 좀 먹고 마셔, 그러다 둘 다 취하면 나 그냥 방에 들어가서 잘거다?" "짜식, 안 취한다니까. 전우진, 이 녀석아! 넌 형님이 보고 싶지도 않았냐?" "보고 싶기는, 형 얼굴 안 보니까 속 편하고 좋더라-" "뭐? 하하, 녀석도 참-" 우진은 부엌에서 웃고 떠드는 두 남자, 창민과 재중에게 안주를 꺼내주며 창민과 몇마디 농담을 주고 받았다. 창민은 진보고 앉으라 한 뒤, 우진의 잔에 술을 부어주었다. 우진은 재중을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마셔도 좋다는 재중의 미소를 보고 창민이 따뤄준 술을 마셨다. "이야, 역시 잘 마시는데?" "술고래가 어디가겠냐-" "어어, 형들- 한명가지고 놀리면 쓰나-" 결국은 진도 술자리에 참석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갔고, 웃음소리가 떠날줄 몰랐다. 하지만 단 한사람 만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입술이 삐죽 틔어 나와서는 애꿎은 리모컨만 계속 만지작 거리는 사람. 다름 아닌 선우다. "쳇, 그렇게 마셔놓고 또 마시냐-" 저녁에 나가길래 어디가냐고 물었을 뿐인데, 창민은 같이 가자며 선우를 끌고 재중과 우진의 집에 왔다. 결국 술 마신지 몇일 안 되어 창민은 또 술판을 벌린 것이었다. 딱히 할것도 없고, 저 사람중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창민뿐인 선우는 툴툴거리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12시를 향해가고, 선우는 참다, 참다 리모컨을 소파에 내팽겨치고 일어서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술병은 장난아니게 많았고, 세 사람은 취해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한참이나 선우가 온지도 모른체 웃고 떠들었다. "가자." "으응, 뭐라고, 선우야-?" "가자고!" 술에 취해서 눈이 풀린 창민을 보며 소릴 지른 선우. 하지만 창민은 잘못 알아들었는지 "뭐라고?"를 몇번이나 반복하더니 끝내는 선우의 팔목을 잡아 당겨 자신의 옆에 앉히고 자신의 술잔에 술을 채워 선우의 앞에 밀어주었다. 선우는 그런 창민을 보며 소리쳤다. "누가 술 마시고 싶데?! 가자고! 늦었잖아!" "우리 선우가 서운했구나아- 자자, 어서 마셔. 형아들만 마셨다고 삐친거야?" 싱글싱글 웃으며 선우의 볼을 아프지않게 꼬집는 창민. 선우는 그런 창민의 손을 차갑게 쳐 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 혼자라도 갈 거야!" 참지 못한 선우는 혼자 가겠다고 소리쳤지만 창민은 갈생각은 하지 않고 진에게 술좀 더 꺼내오라고 말할 뿐이었다. 선우는 화가나 뒤 돌아섰고, 그때 창민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라고 했나? 앉아서 같이 마시자, 창민이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할 얘기가 많거든." 선우는 따질 기세로 뒤 돌아섰지만 아무말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창민이 집에 들어설때 자신의 친구라며 소개 시켜준 재중이었다. 선우는 살풋 미소 지으며 말하는 재중을 멍하니 보았다. '......잘 생겼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 '잘 생겼다.' 재중은 같은 남자가 봐도 참으로 잘 생긴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드는 생각. '남자 답다.' 딱히 그런 모습을 보인건 아니지만 보는것 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우는 괜히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져 고개를 숙였다. 그때 누군가가 선우의 팔목을 잡아 끌었다. 선우는 고개를 들었고, 그와 동시에 아까 보았던, 그러니까 창민의 친구와 동거한다는 우진의 보습이 보였다. 우진은 선우의 팔목을 잡아끌며 빙긋 웃었다. "같이 마시자. 21살이면 마실 수 있지?" "저, 저기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응? 알았지?" 베시시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귀여워서 얼굴을 붉혔다. 결국은 진에게 끌려와 창민의 옆에 앉았고, 창민은 자신의 옆에 선우가 앉자 선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귀여운 목소리로 "선우야-"하고 매달렸다. 선우는 그런 창민을 떼어내려했지만 창민은 잘 떨어지지 않았다. 불만섞인 얼굴로 창민의 잔에 있던 술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자 아까의 그 멋진 목소리가 선우의 귓가에 들려왔다. "못 마실거라 생각했는데, 잘 마시네?" 커다란 눈을 휘며 웃는 그의 모습이 참 멋졌다. 선우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게지는 걸 느끼면서 술기운이 올라 그런거라고 부정했다. 결국 시간은 12시를 넘어서 새벽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방금 전 우진은 빈 방 하나를 가리켜 주고서는 재중을 부축해 방 안으로 들어갔고, 선우는 옆에서 벽에 기대어 자고 있는 창민을 한심하게 바라보고선 남은 술을 마셨다. "제길, 남의 집에서 무슨 추태야, 심창민." 선우는 맘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씰룩였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술을 마시다 보니 그냥 가족생각이 났다. 술은 가끔 잊고 싶은걸 잊게도 해주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한순간에 기억나게 해준다. 선우는 가족 생각에 쓴 웃음을 지으며 술잔에 술을 부어 마셨다. ".........뭐, 나 없어도 잘 지내겠지." 하늘에서도 잘 지낼거라 확신한다. 가족은 다른 가족들보다 몇배나 더 화목하고 행복했으니까. 슬퍼하지 않고 하늘에서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아빠, 엄마. 그리고 선혜야. 나 이제 죽을 생각같은 거 안 할거다. 그냥- 내 자리나 남겨나줘. 내가 나중에 나이들어 죽으면 하늘나라에서 같이 예전같이 살 수 있도록 내 자리나 남겨 놔. 나 잘 지낼거야. 아빠하고 엄마하고 선혜, 세 사람이 죽은 거 후회할 만큼, 나 잘 지낼거야.' 선우는 슬픈 미소를 짓고서는 우진이 가리켜 준 방으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잠시 비틀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고 똑바로 섰다. 그리고는 창민을 깨워 창민을 부축해 방으로 들어섰다. 손님방이라도 따로 만들어 놓은건지 방은 커다란 침대와 옷장 등, 간단한 것들이 놓여져 있었다. 침대에 창민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선우는 창문이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었다. 서울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도 선우는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잘 살거라고, 죽은 가족이 죽어버린 걸 후회할 정도로 행복하게 잘 살거라고- ".....피식, 왜 눈물이 나냐-" 툭툭 떨어지는 눈물을 슥슥 닦아내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방금전까지 다짐한거와는 다르게 가족들이 너무 그리웠다. 이왕이면 같이 행복했음 좋을건데, 왜 하필 자기만 이 세상에서 남아서 또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원망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선우를 뒤에서 안아왔다. 익숙한 향. 술냄새가 섞였긴 하지만 항상 자신의 곁에 있는 익숙한 향이다. "....뭐야, 술 마셨음 잠이나 쳐 자지, 왜 깨고 난리야." "풋-, 그러는 너야 말로 술이나 마셨음 다 잊어버리지, 왜 또 청승맞게 우는거냐." ".....나 새롭게 살거다? 죽은 가족이 날 부러워 할 만큼 행복하게 살 거다?" "....그래,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이제는 울면 안된다, 이선우." 창민의 목소리가 안정적이게 들려온다. 창민의 품이 너무 편해서 선우는 한참이나 그렇게 안겨 있었다.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인생을 행복하게 살 것을 다짐하며- http://cafe.daum.net/wdfanfic ─────────────────────────────────────────────── [오늘의 bgm- Yuhki Kuramoto 의 Meditation / 추천해주신 '혈향가인유천'님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49] '벨기에'에 온지 3주째. 그들은 오늘 호적정리가 다 끝났다. 이제 완전히 남남 상태. 그들은 더 이상 부부가 아니다. 법적으로도, 일상 생활에서도 더 이상 그들은 부부가 아니다. 이젠 '남'이다. "건영이 형이 자기 바에 놀러 오라는데 갈래?" "그래,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가자." 2년전 벨기에에 혼인신고하러 와서 알게된 한국인. '하건영'이란 사람인데 이들보다 한살 정도 더 많다. 지금은 벨기에에서 자리잡고 벌써 3년째 바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옷을 챙겨입고 건영에게 전화를 해 가며 위치를 찾아 그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섰다. "이야- 이게 누구야! 두 사람 오랜 만이다!" "건영형, 1년만이지?" "그래, 이 자식아! 한국가서 왜 연락이 없어?" "좀 바쁜일 있었어." 바쁜일이라 하면 바쁜일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 그는 아직 알지 못 한다. 그들에게 지독한 권태기가 찾아 온 것도, 지금 이 곳에 여행이 아닌 이혼하러 온 것도. 건영은 그들을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며 최고급 술을 가져오겠다며 싱글벙글 웃었다. 건영이 가고나자 시끌벅적하던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고 어색한 분위기만 두 사람 사이를 맴돌았다. "건영형도- 알아야겠지?" "그래." 얼마 안 있어 건영이 술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은 건영에게 자신들 사이에 맴도는 어색한 분위기를 들키지 않기 위해 웃으며 건영에게 농담을 건넸다. "형은 그 외모로 이 위험한 유럽에서 잘도 장사한다? 그것도 술장사를-" "헤에- 나 이렇게 생겼다고 무시하지마! 깡은 얼마나 쎈데." 건영의 외모는 이제 대학 들어간 앳된 20살 같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27살. 얼굴은 곱상하게 생겨서 고생하나 모르고 자랐을 것 같지만 그는 유럽에 와서 이 고생, 저 고생 혼자 다 겪으며 겨우 자리를 잡아 이렇게 장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앞에서 말했듯 아주 어리게 보이고, 남자라기 보다는 여자라고 소개해도 될 만큼 웬만한 여자보다 예쁘장한, 한마디로 미소년과에 속하는 편이다. 그런 외모로 망나니 많은 유럽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지금은 여유롭게 살아가는 편이다. "아, 얘들아! 나 축하해줘!" "뭘?" "나 내년에 결혼해." 환하게 웃자 커다란 눈이 반달눈이 된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하지만 윤호와 유천, 두 사람은 그의 미소도 보지 못한 체 그저 결혼한다는 소리에 딱딱히 굳어있을 뿐이었다. 건영은 두 사람의 반응에 왜 그러냐며, 투덜거렸고 그런 건영에게 유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혀, 형- 그 외모로 여자가 꼬였어? 혹시 연상이라던가-" "아니야! 그리고 나도 너네처럼 동성결혼이야..-!" 동성결혼이란 소리에서 건영은 얼굴을 붉혔다. 유천의 그의 소리에 속으로 '형한테는 여자 보다 남자가 더 어울려.'라는 생각을 했다. 윤호는 건영이 가져온 술을 따서 마시며 아직도 얼굴을 붉히고 있는 건영에게 물었다. "동거중?" "으응-" "헤에, 좋은가보네?" "응! 좋아!" 유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린 아이처럼 해 맑에 웃는 모습이란- 정말 순수해 보인다. 하지만 그가 화나면 어떤지 아는 그들은 그저 피식 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유천은 윤호의 손에 들린 술병을 뺏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부었다. 그냥 그의 환한 웃음을 보는데 가슴이 아파왔다. 2년전만해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너희 괜찮겠냐?"라고 묻는 건영의 말에 자신있게 "응!"이라고 대답 하던 기억이 떠 올라 유천은 잠깐 쓴 웃음을 지었다. 윤호는 유천의 웃음의 의미를 알았는지 묵묵히 술만 마실 뿐이었다. 유천은 조용한 분위기가 흐르자 조심히 말을 꺼냈다. "형, 애인은? 어디있어?" "어어? 잠깐- 제이크, 제이크 없어?" "한국말로 부르면 못 알아듣잖아." 윤호의 말에 그는 싱긋 웃더니 직접 일어나 자신의 연인을 찾으러 갔다. 얼마 안있어 그는 엄청난 장신의 남자에게 팔짱을 끼고 싱긋 웃으며 나타났다. 나시를 입고 있는 '제이크'라는 사람의 근육이 참으로 탄탄해보였다. 그리고 동시에 하얀 피부가 너무 예뻤으며 갈색머리에 조금은 동양인처럼 생긴 얼굴이 '잘생겼다-'라는 말을 내뱉게 했다. "내 애인 제이크야, 인사해." 건영은 뭐가 좋은 그의 팔에 매달리다 시피 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인사하란다. 윤호는 마시던 술을 놓고 일어서더니 그에게 손을 뻗는다. 그리고는- "Prettig met u kennis te maken. Ik ben yung yoonho.(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정윤호라고 합니다)" 그는 간단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제이크란 사람은 건영을 보고 싱긋 웃더니 윤호의 손을 잡으며 그들에게 아주 익숙한 언어로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크라 합니다. 아, 한국 이름은 류준혁이라 합니다." "한국분....- 이십니까?" 분명히 한국어였다. 마치 한국인처럼 발음도 꼬이지 않고 정확하게 인사를 했다. 거기다가 류준혁 이란 이름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름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윤호는 그가 한국어로 인사하는데 많이 놀랐는지 그를 바라보며 한국인이냐며 물었고,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벨기에인 아버지를 두었습니다." "혼혈인인가요?" "엄연히- 그렇게 말할수 있죠." 유천의 물음에 역시나 웃음으로 답해주는 제이크, 아니. 준혁. 유천은 어쩐지 얼굴 생김새가 동양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조금은 황당하다는 의사가 담긴 웃음을 지었다. 그런 유천의 웃음에 준혁도 예의상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게 네 사람은 손님이 오든, 말든 상관치 않고 계속 술을 마시며 시끌 벅적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밤이 깊어지자 손님이 많아져 준혁과 건영도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주문을 받고나자 그제서야 조금은 한가해져서 건영은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로 올 수 있었다. "야야, 유천이 안 말려? 너무 많이 마시잖아-" "말릴필요 없어, 말리면 죽일거야." 유천은 벌써 취했는지 죽일거라는 말까지 내 뱉으며 계속 마셔댔다. 아무렇지 않게 이혼한다해도 마음이 많이 상했을거다. 그리고 1주일 전 유천은 아직도 윤호를 사랑한다고 고백했으니까- 유천의 현재 마음을 이해하는 윤호로서는 유천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 준혁이 손님들을 다 받고 그들의 곁으로 돌아올 때는 이미 유천은 술에 떡이 되어 테이블 위에 엎드려 있었다. 준혁은 윤호의 옆자리에 앉으며(유천의 옆에는 건영이 앉아있다) 엎드려 있는 유천을 보고 놀랐는지 커다란 눈으로 건영과 윤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마실 때까지 두 사람 뭐했어?" "..........냅둬, 쟤도 인간인데 어떻게 속이 안 상하겠어." 건영은 뭔가에 화가난 듯한 말투로 일부러 윤호보고 들으라는 듯 조금은 큰 소리로 얘기했다. 하지만 윤호는 묵묵히 비워진 잔에 술을 채울 뿐이었다. 건영은 준혁이 손님을 받을 동안 그들의 사정을 다 들은 것이었다. 건영은 그 뒤에도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며, 윤호에게 몇마디 하고서는 독한 술을 그대로 한번에 마셨다. 물론 준혁이 말렸지만 흥분한 건영은 그런 준혁의 손길도 뿌리치고 연이어 몇잔을 다 원샷했다. 준혁은 그런 그를 말리다가 옆 테이블에 있는 백인 두명이랑 눈이 마주쳤다. 준혁은 그런 둘을 노려보았고, 둘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윤호씨, 유천씨 잘 데리고 있으십시오." ".....무슨 소립니까?" "저기 백인 두명이 유천씰 보고 있으니까요." 윤호는 준혁이 가리키는 두 백인을 보고나서 술에 취해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유천을 보았다. 지금 상태로는 무슨 커다란 일이 아니고서야 절대로 깰것 같지 않은 유천. 주위 사람들은 그들이 한국어로 얘기하기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준혁이 말에 술을 마시고 있던 건영은 발끈 하며 윤호에게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저 녀석들 질 나빠. 유천이 똑바로 데리고 다녀. 아무리 이혼했다 하지만 네 아내였어." 건영의 말에 윤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준혁은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사실에 꽤나 놀랐는지 엎드려있는 유천과 윤호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쓴 웃음을 짓는걸로 두 사람을 번 갈아보는 행동을 끝냈다. 건영은 건성으로 듣는 듯한 윤호에게 소리치듯 타일렀다. "니가 못 봐서 그러는데 저 녀석들 예쁘장한 사람이면 어떻게든 술에 취하게 해서 자기 나라 사람이든 아니든 안 가리고 강간해 버린다고! 그렇게 건성으로 들을 게 아냐! 여긴 외국이야, 정윤호. 그리고 쟤네들은 체격좋은 서양인이야. 한번 끌려가면 어떻게든 당할 수 밖에 없다고! 너 그 꼴 보고 싶어?!" "유천이는 내가 지켜. 알았으니까 그만 말하라고!" 윤호는 짜증나는지 소릴 질러버렸다. 준혁은 그런 두 사람을 말리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건영은 씩씩대며 가게 내부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준혁은 윤호를 보며 진정하라고 싱긋 웃음 짓는다. 윤호는 한숨을 내쉬며 준혁에게 물었다. "건영형은 어떻게 만났어요?" "이 거리를 지나갈 때 였을거에요. 꽤 늦은 시각이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했죠. 그런데 저 남자 둘이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거에요. 처음에는 그냥 말싸움이다 싶어서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저 남자들한테 둘러싸인 그 남자가 눈에 걸려 그들을 따라갔죠. 그러다가 저 녀석들이 그를 강간하려 하길래 구해줬어요. 그때문에 눈 맞아버렸죠-." "하아, 그런가요. 우리 유천이 잘 데리고 다녀야겠네, 쿡-" 윤호도 조금 취했는지 술기운이 올라왔다. 준혁은 그의 손에 들린 술병을 뺏어들며 그만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윤호는 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인다. 한번 깊게 빨아 들이더니 진한 연기를 내 뱉는다. 그리고는 쓴 미소를 지으며 준혁에게 말한다. "류준혁씨는 건영형한테 잘 해주세요. 나처럼- 이렇게 나중에 나쁜 놈 되지 말고 끝까지 한 사람만 사랑하는 그런 좋은 사람 되세요. 나같은 놈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 결국은 이혼밖에 남는게 없죠. 특히-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가장 커다란 상처를 받아요. 그러니까 류준혁씨는 건영형한테 잘 해주세요." "....그럴겁니다." "그래요, 그래야죠- 크윽..-" 그는 다시한번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의 시선은 자고 있는 유천에게 향한다. 윤호는 그런 그를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자신들과 같은 부부가 절대로 생겨나질 않기를- 결혼을 한다면 그 사람들은 항상 행복하기를-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따위 일어나지 않기를- 자신이 걷는 길을 걷는 사람이 절대로 없기를 바라며- ─────────────────────────────────────────────── 노래는 틀지 않았습니다. 다음편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소설 많이 늦어 죄송합니다. 카페 1주년 소설 쓴다고 바빠서 차마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시험이 더욱 가까워지기 전에 권태기 많이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무척 부산스러운 49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스피커 on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0] "괜찮겠습니까?" "아, 예. 택시타고 가죠, 뭐." 윤호는 괜찮냐고 묻는 준혁에게 계속 괜찮다고 일러둔 뒤 지갑을 꺼냈다. 준혁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챘는지 그의 손을 밀며 안 받겠다고 다시 지갑 넣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쉽게 넣지 않고 계속 돈을 꺼내서 주려한다. 한편 유천은 윤호에게 안기다시피 해서 기대어 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작은 말싸움때문에 머리가 울리는지 윤호를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향했다. "박유천, 같이 가!" 하지만 유천은 아무 대답없이 여전히 비틀거리며 잘못했다간 바로 넘어질 것 같은 걸음으로 바를 나가버렸다. 윤호는 다시 붙잡아 오려다가 곧 나갈거라는 생각에 몇분간 더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엔 그의 손에 술값을 쥐어주었다. 준혁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소리치길, 다음에는 절대 돈 받지 않을거란다. 윤호는 그런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유천이 나갔던 길로 나갔다. 준혁은 그가 나가자 테이블을 정리했다. 아마 그들이 마지막 손님이었나보다. 그가 술병을 치우고 있을 때 그제야 아까 가게 내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 건영이 밖으로 나왔다. 건영은 애들 갔냐고 물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대답에 의자를 꺼내 앉으며 턱을 괴고서 밖을 바라보았다. "걔네들 권태기가 왔데-" "정윤호씨랑 얘기하면서 들었어." "2년전만 해도 그렇게 사이가 좋던 녀석들이었는데. 아니, 한국 가기전만해도 정말 이 세상에 저렇게 사이좋은 부부 없을거라는 생각까지 들게 할 만큼 사이좋은 녀석들이었는데- 이혼하러 왔다니, 너무 기가찬거 있지? 그것도 윤호녀석의 일방적인 권태기라니까 너무 황당하고, 녀석에게 화나기도 하고..-" "그래서 그렇게 빨리 방으로 들어간 거야?" "응. 윤호 녀석 꼴 보기 싫어서-" 어린 아이같이 말하는 건영의 모습에 준혁은 피식 웃으며 건영의 머리를 부벼주었다. 건영은 자신을 어린 아이 대하듯 행동하는 준혁에게 조금은 심통이 났는지 볼이 빵빵하게 부어 올랐다. 준혁은 그런 건영의 모습에 다시 한번 웃더니 건영의 옆에 앉으며 건영의 빵빵하게 부어오른 볼을 꾹 눌러주었다. "정윤호씨도 나름대로 힘들어하고 있더라, 이해해줘." "그래도! .....너무 하잖아. 유천이는 아직도 윤호 좋아하는 것 같은데...-" 건영은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준혁은 그런 건영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여서 다시 한번 머리를 부벼주었다. 건영은 "뭐야!"라며 준혁을 내쳤지만 준혁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부드러운 그의 머리칼을 계속 헝크려 놓았다. 그때- 벌컥- "헉..- 헉..- 혀, 형-!" "윤호?" 건영과 준혁은 문여는 소리에 놀라 뒤 돌아보았고, 그 자리엔 거친숨을 몰아쉬는 윤호가 서 있었다. 건영과 준혁은 그에게 다가가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숨이 찬 나머지 제대로 의사를 전달할 수 없었다. 건영은 답답한 듯 숨좀 들이마시고 얘기해보라며 다그쳤다. "하아..- 형, 유천이!" "유천이가 왜!" "유천씨 아까 먼저 나갔잖아요!" 두 사람도 뭔가 다급함을 느꼈는지 언성을 높였다. 윤호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인상을 팍 구기며 중얼 거리듯 말했다. "없어졌어." "뭐..-?" "유천이가 없어졌어!" * 「이 녀석 엄청 말랐는데?」 「동양인이 의외로 더 색기가 흐른단 말야-」 아까 가게 안에 있던 백인 두 남자. 준혁과 건영이 걱정하던 일이 결국엔 벌어졌다. 일단은 저번에 건영을 건드리려다가 준혁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맞은 두 남자였기에 일부러 일찍 가게를 나섰다. 몇시간동안 가게 밖에서 앉아있다가 비틀거리며 나오는 유천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유천을 어깨에 들쳐매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듯. "아으...- 누구.....-" 「크큭, 목소리도 죽이는데?」 시끄럽게 네덜란드어(벨기에 인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통에 유천은 머리가 울려 잠깐 정신을 차렸다. 몸이 붕 떠있는 듯해서 힘겹지만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 주위를 살펴본 결과 자신은 낯선 백인의 어깨에 둘러매져 있다는 것이고, 알 수 없는 거리로 계속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곁에는 윤호도 없었다. 유천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차라리 지금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말하고 있는 백인들이 자신이 아는 건영과 준혁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 놔...-" 한국 말로 말하면서도 내려 놔, 가 네덜란드 어로 어떻게 되더라, 라고 생각하고 있는 유천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괜히 독한 술을 마셨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할 정도였다. 어깨에 들쳐매져 가는 거기 때문에 속도 안좋고 머리도 계속 울린다. 유천은 미약한 발버둥을 쳤다. "....내려...놔..-!" 「뭐라는 거야?」 「아까 그 녀석들이 쓰던 언어같은데?」 「일본언가? 한국 말?」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서 빨리 끝내자, 크큭- 오랜만에 남자라-」 술을 이만큼만 마시지 않았어도 조금은 알아들을 텐데 지금 머리가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유천에겐 하나도 못 알아듣는 말 투성이었다. 유천은 그들에게 여전히 어깨에 들쳐 매져 가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털썩- "우웃-!" 이때까지 유천을 들쳐매고 온 남자가 어느 컴컴한 공간에 들어서더니 유천을 푹신한 곳에 그대로 던져버리듯 내려놓는다. 유천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거리는 속에 작은 신음을 내 뱉어야했다. 이내 진정하고서 힘겹게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창이 있는데 그 곳에서는 밖의 가로등 등불밖에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방을 밝혀주지 못 했으며,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컴컴한 방에 있는 것이라곤 침대하나에 백인 두명, 그리고 침대에 널부러진 자신. "뭐, 뭐야-" 뭔가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 내리 꽂힌다. 유천은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슬슬 뒤로 물러서는데 두명 중 한명이 유천에게 다가와 씨익 웃더니 자신의 옷을 벗기시작했다. 그 순간 다른 한명은 어디서 구했는지 단단한 밧줄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천의 발목을 단단히 묶었다. 유천은 그에게 주먹을 날리려 했지만 머리도 지끈거리는 데다가 술도 엄청 독한걸로 골라마셔 몸이 나른해진 상태라 주먹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유천의 손목과 발목이 결박당한 상태에서 이내 커다란 천자락이 유천의 입을 막았다. 유천은 두려움에 도리질을 하며 사지를 바둥거리며 침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단단하게 묶인 상태라 잘 되지 않았다. 불안함은 점차 더 커져가고- 이윽고-. '유, 윤호! 윤호야, 정윤호─!' 유천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되는 순간이었다. ─────────────────────────────────────────────── 반가워요. 지금 퀭합니다. 요즘 학교생활이 바쁜지라, 허허- 허접하게 50편 끝내서 죄송하구요. 이번에도 배경음악은 toy의 길에서 만나다입니다. 곡 추천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오나 태그찾기가 힘들어 제 마음대로 곡지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꾸벅) 그래도 자신이 추천한 곡이 나오면 '월드가 내가 추천해 준 곡을 썼구나!'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럼 퀭한 50편을 자축하며 사라지겠습니다. [+] add 50편부터는 아래에 간단한 제 사생활 이야기가 들어갈 것 같군요. 아마도 일기식으로 말이죠.(웃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1] 「생각보다 괜찮아서 좋았어.」 「크큭, 그러게. 죽이던데?」 유천은 얇은 천자락에 둘러싸여 뒷자석에 눕혀져 있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얼굴도 붉은게 열이 오르는가보다. 몸을 약간 틀면서 보이는 흰살이 천자락 안에 유천은 알몸이란 걸 알려준다. 뭐가 즐거운지 떠들석 하게 운전해가던 두 사람은 어느지점에서 차를 멈추더니 한 사람이 뒷자석 문을 열어 유천을 끌어내려 어떤 문 앞에 조금은 거칠게 내려놓는다. 그와 동시에 잭나이프로 다 찢은 그의 옷을 던지고는 뭐가 즐거운지 한 밤에 환호성까지 지르며 차를 몰고 재빨리 빠져나간다. 쏴아아아아- 약하게 내리던 비는 이윽고 굵은 빗줄기가 되어 알몸으로 천자락 하나만 걸친 유천을 더욱 춥게 만든다. 유천은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앉지만 정신이 아득해 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시야가 검어지는 것을 느꼈다. 유천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하더니 툭- 하고 쓰러져버렸다. 얇은 천자락은 어느새 몸의 윤곽을 다 드러내고 칼로 찢은 듯 갈기갈기 다 찢어진, 옷구실도 못 하는 천자락들은 유천의 옆에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그 순간, 유천의 눈에서는 차가운 물이 아닌 따뜻한 물이 흘러내렸다. * 쏴아아아아-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바안에 있는 그들은 초조해서 어쩔줄을 몰라한다. 자신의 손톱을 깨무는 건영과 계속 밖을 내다보는 준혁과 바 안을 계속 왔다갔다 거리는 윤호. 무작정 찾아볼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바 주변은 다 찾아봤지만 유천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저번에 건영이 끌려갔던 곳에서도 유천을 볼 수는 없었다. 아마 준혁에게 죽지 않을만큼 맞고 난 후 아지트를 바꾼 모양이었다. "유천이.......그 백인 녀석들이 데려갔을까..-" "병신." "하건영, 그만해라. 싸운다고 없어진 유천씨가 다시 나타나는 것도 아니잖아." 윤호의 말에 나지막하게 욕을 내 뱉는 건영의 모습에 준혁은 그를 저지시킨다. 이대로면 다시 말싸움이 붙어 일만 피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건영은 초조하게 손톱을 깨물다가 윤호에게 우산을 던졌다. 우산을 맞은 윤호는 아프다는 표정으로 뭐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건영은 버럭 소릴 질렀다. "병신아, 찾아봐야 할 거 아냐! 분명 멀리가진 못 했을거란 말야!" ".......유천이- 무슨일 당했음 어쩌지..-?" "그런 일 있기전에 우리가 데려오면 돼. 병신같이, 왜 술취한 애 혼자 내보내! 내가 분명 그 변태새끼들 조심하라 주의줬잖아! 내가 너 건성으로 들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만해, 하건영. 말좀 자제해라." "빌어먹을!" 건영은 화가나는 듯 겉옷을 챙겨입고 우산을 집어들고 혼자서라도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바의 문을 열었다. 그때 뭔가가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거센 빗줄기가 바 안을 흥건히 젖게 했고 준혁은 문 안 닫고 뭐하냐며 소리쳤다. 건영은 여전히 문 손잡이를 잡은체로 멍하니 그를 내려보더니 이내 두 남자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 유천이- 유, 유천이야. 유천이-" "뭐?!" 두 남자는 급히 건영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까와는 달리 천자락 하나만 몸에 두르고 있지만, 흥건히 젖어서 의식불명인 상태지만 그 사람은 분명 몇시간전 행방불명 됐던 유천이이었다. 윤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털썩 주저앉아 거센 빗물을 맞고있는 유천을 끌어안았다. "유천아, 유천아- 정신차려, 유천아? 박- 유천-" "주, 준혁아, 유천이 어떡해! 흐으윽, 유천이 어떡해애!" 건영은 준혁의 팔을 잡아끌며 어떡하냐고 하더니 결국은 울음을 터뜨렸다. 준혁은 눈 앞에 벌어진 상황에 침을 꿀꺽 삼키며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건영을 꼭 안아주고서는 빨리 방에 가서 이불을 가져오라 했다. 건영은 눈물을 닦아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윤호는 유천을 바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유천의 차가운 몸을 녹혀주기 위해 꼭 안아주었다. 준혁은 문으로 들어오는 빗줄기로 윤호와 유천이 계속 젖자 문을 닫았고, 이내 건영이 들고오는 이불로 얇은 천자락 하나 걸치고있는 유천의 몸을 감싸주었다. "정윤호씨, 우선 방으로-" 윤호는 유천을 이불로 꼭 감싸 안고서는 차가운 유천의 몸을 끌어안아 조심히 안아들고 바 내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다행히 따뜻했다. 일부러 방 내부를 한국식으로 장판을 깔아 놓았기 때문에 침대보다 더 따뜻한 바닥에 이불을 펴고 눕혔다. 열은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고, 뺨은 반항하다 맞은 건지 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입술은 터져있었다. 일단 빗물에 젖은 몸을 닦아줘야 겠다는 생각에 건영에게 뜨거운 물수건좀 부탁했고, 건영은 순순히 방에서 수건을 꺼내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동시에 준혁이 약을 찾아보겠다며 방 밖으로 나갔다. 방에 남은 사람은 단 둘. 의식을 잃은 유천과 괴로움과 놀라움에 잠겨있는 윤호. "......- 바, 박유천- 박......- 유천....-" 윤호의 뜨거운 눈물이 유천의 차가운 살결에 떨어졌다. 유천의 몸을 감싸고 있는 차가운 천자락을 벗겨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불을 겆고서 천자락을 벗기는데 몸 이곳저곳 울긋불긋, 피멍에다가 누가 남겼는지 알수 없는 수많은 자국들- 아까까지 생기가 돌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고, 촉촉하던 입술은 물기하나 없이 바짝 말라져있다. 툭, 투둑- 유천의 맨살위로 윤호의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 계속 늘어간다. 윤호는 천자락을 마저 벗겨내고는 이불로 꼭 감싸안았다. 누워있는 유천을 이불로 감싸서 자신의 품에 안았다. 고개가 뒤로 꺾이며 축 늘어지는 유천의 몸. 윤호는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새도 없이 축 늘어지는 유천의 몸을 몇번이나 고쳐안았다. 그리고는 유천의 차가운 볼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며 연신 미안하다고 중얼거린다. "크흐윽, 미안..- 미안, 유천아..-" 유천의 몸을 감싸고 있던, 윤호가 막 벗겨낸 천자락에는 붉은 피가 퍼져 물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니 마음이 더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바를 나가려던 유천만 잡았더라면, 바로 유천을 뒤따라 나갔더라면 이런일은 없을텐데, 하고 자책을 했다. 몇분 안 되어 나왔을때는 이미 유천은 없었고, 처음에는 멍하니 서 있다가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유천을 찾아다녔다.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까. 한편 방 밖에서 뜨겁게 데운 수건과 약봉지를 들고 있던 두 사람은 조심히 방 안에 그것들을 넣어놓고 방문을 닫고 나왔다. 지금은 끼어들 상황이 아니었다. 쏴아아아아- 여전히 억세게 내리는 비는 지금의 상황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더욱 세차게 내릴 뿐이었다. 그렇게 유천을 찾다 다 지새버린 그날 밤은 너무나 슬펐고, 아팠다. ─────────────────────────────────────────────── 9월 19일. 내일은 카페 정팅이 있는 날. 그와 동시에 카페 문을 여는 날(20일). 많은 분들과 대화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소설이 너무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는 것만 같아 웬지 그렇다. 다음부터는 새롭게 나가볼까…. 　　　　　　　　　　　　　　　　　　　　　　　　　　　　　　　　　　　　　　　　　-월드.　 bgm-버블시스터즈 의 애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2] 유천은 한동안 제대로 깨어나질 못했다. 3일동안 의식불명이었다가 겨우 깨어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갑자기 기절하지를 않나- 또 깼다 싶으면 어느순간에 기절해서 정신을 잃고 그렇게 몸은 점차 쇄약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뼈마디가 앙상하게 들어나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제발...- 제발 좀 일어나봐..-" 일어난다해도 계속 기절을 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의식도 없고, 옷이라도 입혀야 겠다는 생각에 약간이라도 몸을 건들면 흠칫하면서 어디가 그렇게 아픈지 불분명한 의식속에서도 아프다는 말만 계속 해대서 아직까지 씻기지도 못하고 그저 아주 두꺼운 이불로 감싸고 있을 뿐이다. 의사를 불러 진료를 받은 후 바로 집으로 유천을 옮겨왔다. 아무래도 가게 내부라 그런지 아픈 사람을 놨두기엔 별로 좋은 조건이 되지 못 하는 방이었다. "박유천....- 눈좀 떠라, 니가 죽은 사람이냐..-? 어서 안 일어나..-?" 화난 음성으로 얘기해보지만 힘이 하나도 없다. 눈을 감은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유천은 아무런 반응도 없다. 저대로 지내면 체온조절도 잘 안 될테고, 가만 누워있다 영양실조까지 걸릴 판이었다. 의사가 약을 지어줬지만 그것도 깨야 먹이지, 깨지 않는 상태에서 먹일 수가 없었다. "........박유천, 너 한국에 보고 싶은 사람들 많잖아. 그러니까- 병신같이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라. 제발...- 부탁한다, 제발.....- 너 사랑해주는 심창민도, 너만 아끼는 박유환도 다 한국에 있잖아..- 니가 어서 일어나야 그 녀석들 보러가지..- 어서...- 일어나란 말야..-" 나즈막히, 충분히 유천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해보지만 의식이 불분명한 유천에게는 들릴 리가 없다. 오히려 누군가와 대화한다기보다는 혼잣말을 한다, 라는 쪽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윤호는 여전히 유천의 옆에서 그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 의사가 방금 와서는 영양제를 갈아주고 갔다. 식사를 할 수 없으니 링겔로 영양제를 투입시키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윤호는 몇일 째 제대로 자지 못한 잠을 잠깐이나마 보충하기 위해 유천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유천이 몸을 틀어 누워있다. 아까 의사가 링겔 주사를 꼽는다고 몸을 틀게했던가- 그건 아니다. 윤호는 기대감에 부풀어 이불에 꽁꽁 감싸진 체 등을 보이고 있는 유천의 곁에 무릎을 꿇고 조심히 앉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고도 떨리는 목소리로..- "유.... 천아..-? 깼...어-?" 그때 유천의 어깨가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윤호는 그런 유천의 반응에 조심스럽게 유천의 몸을 바로했다. 그러나 유천의 고개는 재 빨리 옆으로 돌려졌다. 윤호가 돌린게 아니다, 본인 스스로가 돌렸다. 윤호는 그것보다 유천이 눈을 떴다는 기쁨에 잠겨 유천의 손을 잡았다. "유천아, 박유천- ....드디어 깼냐..-?" "............" 이번에는 기절하지 않았다. 의식을 놓치지 않고 계속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유천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윤호는 유천의 얼굴로 조심히 손을 가져가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미안...- 유천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정말 미안." "........됐어....-" 일주일 만에 입을 열어서 그런가? 목소리가 많이 거칠고 축 가라앉아 있었다. 윤호는 유천의 손을 꽉 잡으며 긴장이 풀린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난 니가 안 돌아올줄 알고,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너는 왜 그렇게..- 나타났어...- 차라리..- 차라리 나타나려면 더 깔끔하게 나타나지...- 왜...- 왜 박유천 바보같이..-" 윤호의 눈물이 살짝 들어난 유천의 어깨에 떨어진다. 유천은 자신의 어깨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에 그제야 고개를 틀어 윤호를 바라보았다. 울면서 다행히라는 듯 웃고있는 남자. 당하는 그 순간에도 속으로 미친듯이 찾았던 남자, 너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며, 원망도 해 보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남자. 그 남자, 정윤호가 지금 울고있다. 유천이 손을 뻗어 윤호의 눈물을 닦아주려하자 윤호는 한쪽손으로 유천의 손을 잡아 저지하고 고개를 약간 틀어 자신의 눈물을 급히 닦아냈다. 윤호는 일단 죽이라도 끓여 오겠다며 1층으로 내려갔고 유천은 윤호가 나가자 멍하니 링겔만 쳐다보았다. 뚝뚝 떨어지는 액이 꼭 자신의 눈물 같아서 가슴이 아파온다. "박유천...- 이 병신새끼야, 남자에게 깔린게 뭐가 대수라고 이렇게 누워있는거냐..- 씨발....- 더럽게 한심하잖아, 한심해서.....- 눈물이 다 나온다..-" 유천은 그 후에도 한참이나 대량의 눈물을 쏟고, 또 쏟아야했다. 얼마 후. 윤호는 김이 나는 보기에도 먹음직 스럽게 생긴 죽을 들고 와 유천에게 떠 먹이고 있었다. 윤호가 음식을 만들어 오는 사이 잠시 울었던 것 뿐인데 눈이 부워서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윤호는 눈과 코가 빨개진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히려 숟가락에 죽을 떠서 후후 불어주며 유천의 입에 넣어주는 자상함까지 보였다. 유천도 아무 말 없이 윤호가 떠 주는데로 받아 먹기만 했다. "......씻을래?" ".....링겔.....-" "이제 깼으니까 영양제 같은 거 안 맞아도 될거야. 잠시만-" 윤호는 죽 그릇을 들고 방을 나서더니 이내 약품에 묻힌 손을 들고 와서는 주사 바늘이 꽂힌 데 솜을 갖다댄 후 조심히 주사바늘을 뺀다. 주사 바늘이 점차 모습을 들어낼때마다 유천의 표정은 아픔에 점차 찌푸려진다. 이내 주사 바늘이 빠지고 윤호는 액이 나오지 않도록 링겔을 조정하고 유천에게 솜으로 꽉 누르고 있어라 일러둔 뒤 링겔을 버리려 방을 나갔다. 방금 자신의 팔에 꽂힌 링겔을 능숙하게 빼 내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의사. 역시나 윤호가 가야할 길은 의사였던가. 얼마 후 윤호가 들어오더니 링겔 맞은 부위에 솜을 놓고 반창고를 붙이더니 두꺼운 이불 한겹을 벗겨내고 얇은 이불로만 유천의 몸을 감싸 안아올렸다. 유천은 아무 반항없이 마른 팔을 윤호의 목에 감겼고, 이내 유천은 따뜻한 물이 받아져 있는 욕조로 조심히 내려졌다. 윤호는 유천을 내려놓고는 재 빨리 유천의 왼쪽 팔을 들어 올렸다. 유천은 자신의 팔을 들어올린 윤호를 보았고, 윤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아, 별로 상관은 없는데, 웬만하면 링겔 맞은 곳에 물 들어가게 하지마." ".........응." 유천은 작게 대답하고 한동안 물속에 가만히 있었다. 반면 윤호는 타월에 비누를 묻혀 이곳 저곳 세심히 씻어주었다. 하지만 씻을 때마다 유천의 하얀 몸에 생긴 붉은 자국들이 여간 거슬리는게 아니었다. 허리에 들은 멍도, 팔목과 발목에 줄 자국으로 나 있는 멍도 터져버린 입술도 너무 아파보인다. 몇일새에 심하게 구타라도 당한 듯한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자-, 일어서. 마저 씻게." "......내가 씻을테니까 나가줘." "응?" "나가 달라고, 밑 쪽은 내가 알아서 씻을테니까." "아프잖아, 지금 영양도 제대로 보충이 안 된 상태인데다가 링겔 맞은 곳..-"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앞가림 할 수 있는 나이야. 그리고..- 아무 사이도 아닌데 다 큰 남자가 애도 아니고 성인 남자를 씻겨준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유천의 입에서 나오는 냉정한 말들. 윤호는 멍해져 버렸고, 유천은 윤호를 조금 밀친 다음에 욕조를 둘러싸고 있는 커튼을 쳐 버렸다. 유천에게 밀쳐져 여전히 멍하니 서 있던 윤호는 이내 곧 쓴 미소를 짓더니 유천의 옷을 준비하러 방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유천의 말은 여전히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래, 우리 이제 아무사이도 아니지.' 자신이 이제서야 현실을 자각했다는 느낌에 윤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바보스러움을 느꼈다. 내 친건 자신인데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자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윤호는 유천의 옷을 욕실 앞에 가져다 놓고 침대에 누우려다 피 젖은 시트를 보고는 침대 시트를 벗겨냈다. 피가 그새 또 흘렀나보다. 시트까지 묻었으니 유천을 싸 놓은 이불은 당연히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윤호는 한숨을 내 쉬며 시트와 이불을 갈았다. 달칵- "........뭐해?" "피가 묻어있길래..- 시트좀 간다고." 샤워를 끝내고 막 방으로 들어온 유천은 윤호에게 뭐하냐고 물었고, 윤호의 대답에 딱딱히 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냥 수치스러웠다. 유천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혈(血)이 묻은 이불과 시트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과 동시에 몇일 전의 아픈 기억이 치솟는다. 털썩- "....유천아..-?" "허, 허억...- 헉..- 허억....-" 유천은 바닥에 주저 앉은 체 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윤호는 유천이 이상하자 다가와서 유천의 이마에 손을 갖다대었다. 갑작스럽게 오르는 열. 윤호는 당황하며 유천에게 아프냐며 물었고, 유천은 여전히 거친숨을 몰아쉬며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헉, 허억..- 유, 윤호...- 흐억....- 하악...-" "유, 유천아! 나 여기있어, 응? 제발 정신좀 차려!" "허억..- 저, 저거 좀..- 저거 좀 치워... 헉..- 줘..-" 윤호를 찾은 유천은 윤호의 품속에서 여전히 거친숨을 내 쉬며 피가 잔뜩 묻어난 시트와 이불을 가리키며 치워 달라했다. 윤호는 알았다며 유천의 시야에서 이불을 치우고 급히 1층으로 내려가 물을 떠 왔다. 유천은 윤호가 떠 온 물을 마시며 숨을 돌렸다. 이내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온 유천은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하윽, 흐윽..-" ".........유천아." "흐아아..ㄱ...- 나좀...- 나좀 살려줘, 흐으윽..-" ".........유천아....-" 괴로운 듯 말하는 유천의 모습이 너무나 아파보여서 윤호는 유천을 꽉 안아주었다. 유천은 윤호의 품에 안기자 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꽉 안고 등을 쓸어내리며 유천이 최대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달래어 주었다. 유천이 점점 울음을 그쳐가자 윤호는 비누 향이 잔뜩 묻어나는 유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낮고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부탁하나 해도 돼..-?" "....흐윽...- 흡....-" "..........너.....- 나하고 이혼했어도...- 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야...- 그러니까 아프면....- 아프면 절대로 안 되고....- 넌 마음을 너무 쉽게 놓으니까..... 항상 매사에 조심해야 해..- 그리고....- 그날처럼 술 많이 마시지 마, 혹시나....- 혹시나 무슨일 생기면 안 되니까...- 한국에 가면..... 난 더 이상 니 곁에 있을 수 없어...-" "..으흐흑, 으하...ㄱ...-" ".............박유천의 남편이었던 사람으로써 부탁할게." "...으허..ㄱ...- 흐윽...-" "..........한국에 가서는 제발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줄라고, 내가 부탁할게." 조금 나아졌던 유천의 울음은 다시 터져버렸고, 윤호도 조용히 눈을 감으며 울음을 삼켰다. 윤호의 말이 이제 이들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사랑해...-, 박유천."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는 윤호였다. http://cafe.daum.net/wdfanfic ─────────────────────────────────────────────── 9월 20일. 오늘은 카페가 열리는 날. 카페 가입하실 분들은 어서 가셔서 가입하시길 바란다. 12시가 넘으면 다시 문은 닫히게 되니까 말이다. 오늘은 정팅도 있으니까 8시에 다시 컴퓨터를 해야겠다. (카페 정팅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카페로 오시면 메인에 링크 된 곳으로 들어오십시오.) 오늘은 소설 길게 썼는데, 칭찬 안 해줄까? 그나저나- 어서 책방에 책 갖다줘야지…. 　　　　　　　　　　　　　　　　　　　　　　　　　　　　　　　　　　　　　　　　　-월드.　 ＊bgm-성시경 의 아직 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3] 게이트가 열리고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공항에는 유환, 창민, 재중, 우진이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이내 손을 흔든다. "유천이형!" 유환은 유천을 발견하자마자 큰 소리로 그를 불렀고, 그 덕에 유천은 물론, 유천 곁에 있던 윤호까지 유환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유환은 미소를 지으며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잠깐 바라보더니 이내 그들이 있는 쪽으로 향하였다. 한달 정도만에 돌아온 한국. 유천의 상처가 아물고 나서 몇일 더 쉬다가 귀국했다. 원래는 10일 정도 더 일찍 올 수 있었지만 유천이 간간히 안 좋은 기억을 떠 올려 너무 힘들어해서 조금 더 안정을 취하고 왔다. "모두... 나왔네?" ".....얼굴이 이게뭐야..-" 유환은 유천의 말을 듣기도 전에 유천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며 헬슥해진 유천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걱정섞인 말투를 건넸다. 유천은 동생의 손을 떼어내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 안면근육을 움직이 살짝 웃어보였다. 옆에서 그를 바라보던 윤호는 그런 그의 모습이 안타까워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창민 역시 헬슥해진 유천이 너무나 걱정되는지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재중은 힘이 없어보이는 자신의 친구, 윤호의 모습에 역시나 창민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우진은 이대로 있다간 시간을다 보낼 것 같아 그들보고 나가자고 권유했다. 그들 모두가 동의하며 각자 현관으로 향하는데 유천이 누군가하고 부딪혔다. "죄송...-" "하나만 무, 물어도 되겠슴, 니까?" 유천은 사과를 하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윤호는 유천과 같이 걷다가 유천이 누군가와 부딪히자 유천과 같이 걸음을 멈추었다. 유천과 부딪힌 사람은 파란 눈을 한 건장한 체구의 백인 남성. 그는 유천에게 뭔가를 물으려 하는듯 했다. 하지만 유천은 이미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윤호는 그런 그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겨 세우고는 자신이 그 백인 앞에 섰다. 백인은 잠시 당황해 하더니 이내 난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미, 미안- 함니다-" 서투른 한국말로 미안하다는 의사표현을 하는 백인. 윤호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백인은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쪽지를 내밀며 여기로 갈 수 있는 버스 노선을 물었고, 윤호는 꽤 자상하게 버스 정류장의 위치까지 가리켜 주며 조심히 가라는 말을 해 주었다. 백인은 끝까지 서투른 말로 '캄사함니다'라고 반복하고 나서야 공항을 빠져나갔다. 윤호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뒤 돌아 자신의 뒤에 있는 유천을 바라 보았다. 자신의 셔츠자락을 꽉 잡고 떨고 있는 유천. 윤호는 유천의 손을 잡아주며 저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라며, 최대한 안정케 해 주었다. "무슨 일이야?!" "유천이 몸이 안 좋아. 쉬게 해." 벌써 현관쪽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던 네 사람은 두 사람이 오지 않자 유환이 그들에게 다가왔고, 윤호는 자신의 뒤에 여전히 옷자락을 꽉 쥐고 있는 유천의 팔목을 잡아 자신의 앞으로 끌어 당기며 유환의 품에 아프지 않게 밀쳐주며 몸이 안 좋다며 쉬게 하라고 일러준 뒤 자신의 짐을 들고 유유히 자신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유환은 자신의 품으로 밀쳐진 유천의 어깨를 감싸고 유천의 손에 들린 짐을 받아들며 왜 저러냐며, 윤호를 욕했다. 하지만 유천의 시선은 윤호의 뒷모습으로 향해있었다. '..........이제 너의 뒷모습조차 못 보면 나 어떡해..-? 그래도 나 니 뒷모습 보고 버텼는데..- 이제 그런 뒷 모습까지 보지 못 하면......- 나 어떻게 살아.....-? 나 아직도 사랑하는데....-' 유환은 여전히 투덜거리며 유천을 데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자 윤호는 유천을 흘끔 바라보고는 공항을 나가버렸다. 유환은 여전히 투덜 거리며 마지막엔 좀 자상하게 대해 줄 수 없냐며 불평을 터뜨렸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아무도 윤호의 행동에 투덜거리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다. 한참 유환의 불평이 이어지고 있을 무렵 유천의 어깨가 흔들리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유환은 깜짝 놀라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고, 나머지 세 사람도 유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흐, 흐아..ㅇ..- 흐으윽...-!" 창민은 차마 유천을 보지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멀리서 유천을 쳐다보고 있는 윤호를 발견했다. 하지만 창민이 윤호를 발견한것도 잠시, 윤호는 재빨리 등을 돌려 택시를 잡아 떠나버렸다. 창민은 그저 쓴 미소만 지었다. 조금 전. 유환에게 유천을 밀치듯 안겨주고 뒤 돌아서 그들에게 다가온 윤호. "기내에서 잠을 설쳐서 피곤하네, 미안하지만 집에 가야겠다." "그래, 가서 쉬어라." 윤호는 그들에게 다가와서 피곤하다고 말한 뒤 재중의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공항을 벗어났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향했다. 지금 뒤를 보면 그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유환의 품에서 원망섞인 눈이나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그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왕 나쁜 놈 된 거 조금 더 나빠도 된다고 생각한 그는 괜히 냉정하게 유천을 유환의 품에 안겨주고 뒤 돌아섰다. 괜히 어중간한 행동과 태도로 또 상처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유천이 자신을 생각하며 우는 것보다 자신을 욕하며 미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윤호의 판단이었다. '.........난 더 이상 널 지켜줄 수 없어.' 자신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통하고 있다. 박유천을 버린 나쁜 남자, 정윤호. 실로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있는 윤호였다. 하지만 벨기에에서 있었던 일들과 유천을 간호하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생각들. 그 생각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질문을 만들었다. '지금 박유천에게 느끼는 나의 감정은 사랑인가, 아님 동정인가.'라는 그런 조금은 한심한 질문. 하지만 그 질문의 답은 끝끝내 찾지 못했다. 하지만 박유천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끝까지 잔인한 남자가 되어야했다. 윤호는 택시를 타는 곳까지 와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아보니 인상을 찌푸린체 투덜거리고 있는 유환이 보였다. 그런 유환의 모습에 피식 웃던 윤호가 다시 한번 그들을 바라봤을 때는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유천이 울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체 어깨를 떨며 울고 있었다. "......울지 마..-" 이젠 달래어 줄 수도 없다. 아직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사랑이란 감정을 다 없애버려야 한다. 이제는 서로 남이니까, 자신은 나쁜 사람이니까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앞에 떳떳히 나타날 수 없다. 윤호는 스스로 혼자만의 마지막 만남을 가진다. "..........행복해." 한참이나 그를 보았다. 그의 모습을 눈 안에 넣어두려고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창민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꽤 먼거리였지만 서로의 눈은 교차되고 있었다. 윤호는 마지막으로 유천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그대로 택시를 잡아 탔다. '.............이젠.....- 정말 안녕.....-' ─────────────────────────────────────────────── 9월 21일. 어제 정팅을 했는데, 음- 별 얘기 못 해서 아쉽다. 내일부터는 춘추복을 입는데 교복이 너무커서 입기 싫다. 줄여볼까…. 요즘 진정한 친구라는 개념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불과 2개월 전에 진정한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들을 잃고 난 의지할 곳 없이 거짓으로 살아가는 기분이다. 얼마나 더 아파야만 내 아픔을 다 지을 수 있을까… 　　　　　　　　　　　　　　　　　　　　　　　　　　　　　　　　　　　　　　　　　-월드.　 ＊bgm-조성모 의 마지막 사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4] 그 날 이후, 유천은 쉴틈도 없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은 집에 가서 어른들을 뵙고 인사했다. 그리고 앞으로 회사 경영을 배워 회사를 물려 받을거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말했고, 할아버지는 그런 유천에게 이번 무역건 계획안을 만들어보라고 시켰다. 유천은 그 후,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해댔고 최대한 윤호를 피하는 듯 했다. 얼마전엔 유환보고 윤호의 집에서 자신의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유환은 형의 말대로 하긴 했지만 마음은 편치 못 했다. 유천은 정말로 회사경영을 배우기로 맘 먹었는지, 본가로 들어왔다. 물론 유환도 자신의 형을 따라 살고있던 빌라를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왔다. 유천은 본가에 있는 자신의 방을 정리하면서 이것저것을 많이 박스에 집어넣고 다락방에 올려버렸다. 그 물건 대부분이 윤호가 사준 물건이나, 윤호의 흔적이 많이 남은 물건들이었다. "........한장 정도는 괜찮겠지..-?" 한참 앨범을 정리하던 도중 유천은 고등학교 졸업식때 찍은 윤호의 사진 한장을 앨범에서 빼내어 자신의 지갑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윤호와 같이 찍은 사진들로 가득한 앨범을 덮고 역시나 커다란 박스속에 집어넣었다. 유천은 앨범을 다 넣고 바닥에 털썩 누웠다. 한참이나 천장을 바라보다가 아까 지갑속에 넣었던 사진을 꺼냈다. 남색교복에 하얀 밀가루를 묻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윤호의 모습. 졸업식 당일 날 갈색 머리로 나타난 윤호는 유천에겐 너무나 멋졌다. ".........내 남편.....- 멋지다....-" 그리고는 빙긋 웃었다. 사진 속의 윤호처럼 환하게는 아니지만 입꼬리를 움직여 웃어보았다. 하지만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유천은 금세 무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사진을 보고 중얼거렸다. "...........이젠 내 남편아니잖아....-" 공항에서 그렇게 펑펑 울어버린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너무나 많이 슬펐다. 사랑하는 그와 헤어진다는 것이, 이제 그를 '부부'라는 이름으로 구속할 수 없는 것이. 그가 사준 물건,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 하나하나 다 꺼내놓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아파질것만 같아서, 행복했던 기억이 계속 떠 오를것만 같아서 다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다. 유천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뜨더니 책상쪽으로 향했다. 책상 위에는 유천의 폰이 있었고, 유천은 자신의 폰을 들고 한참이나 서 있다가 플립을 열고 주소록으로 들어갔다. [정말삭제할까요?] 유천은 '예'라는 대답이 적힌 번호를 눌렀다. 이내 곧 [삭제 확인, 1번의 내용을 전부 지웠습니다.]라는 내용의 메세지가 떴다. 1번,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자의 번호. 유천은 한참이나 액정을 바라보고 있다가 1번을 꾹 눌렀다. 그러자 해당번호가 없다는 메세지가 나왔다. 유천은 폰의 플립을 닫고 폰을 손에 꽉 쥐었다. 폰을 바꿀때마다 항상 1번은 윤호의 자리였다. 그래서 항상 1번만큼은 자리가 빈 적이 없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 어쩌면 평생동안 1번의 자린 영영 비워둘 것이다. 그 자린 윤호가 아닌 다른 사람은 올 수 없는 유천에게 가장 소중한 첫번째 사람의 자리니까. ".......피식....- 외우고 있으니까 지워도 상관은 없잖아...-" 유천은 자신의 폰을 내려다보며 그저 쓴 웃음만 지었다. * "4월 바다도 꽤 좋다, 그치?" 가까운 바다로 드라이브 왔는데, 바다에는 꽤 많은 연인들이 있었다. 재중은 다리운동도 할겸, 밤바다도 볼겸 걷자고 했고, 진도 곧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재중의 걸음에 맞춰 걸었다. 재중은 꽤 많은 땀이 흘렀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을 금방 식혀주었다. 지나가는 여자들은 재중의 얼굴을 보더니 수군거리며 하나같이 '잘 생겼어.'라는 말을 꺼냈다. 재중은 신경쓰지 않는 듯 했지만 재중에 대한 소릴 하나하나 다 들어버린 우진은 재중의 외모에 대한 칭찬이 나올때마다 쿡, 하고 웃었다. "쿠쿡- 형 인기는 여전하다, 그치? 형, 그거 알아? 나 대학 들어갔을 때 나하고 형하고 엄청 친한줄 알고 여자애들이 나보고 형좀 소개시켜 달라는거야, 우리 과에서는 그런 말 안 한 여자애가 없을 정도라니까." 우진은 얘기하는 도중에 크고 평평한 바위에 앉았고, 재중도 우진의 옆에 앉았다. 재중은 우진의 옆에 앉아 여전히 웃고 있는 우진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해변가로 눈을 돌렸다. 많은 연인들이 모래사장에 앉아서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재중은 다시 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사귀는 여자애 있어?" "왜?" "그냥, 궁금해서. 너 벌써 25살이잖아." "있기는-, 없어. 난 김재중씨때문에 솔로선언한 사람인데요?" 우진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하고서는 또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반면 재중의 얼굴은 시무룩해 졌다. 우진이 25살이 되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하지 못 한게 다 자기때문인 것만 같아서, 자신이 다리를 못 쓰게 된 것이 진을 잡아두는 것만 같아서 재중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자신만 아니라면 지금쯤 사귀는 여자애 하나정도는 있을 건데라는 생각도 들고. 우진은 재중이 아무 말 없자 재중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앉아있던 바윗돌에서 일어서며. "형, 더 늦기전에 들어가자. 4월이라해도 아직은 춥잖아." 우진은 재중이 아픈 줄 알고 말을 돌려 들어가자고 했다. '형 아파보이니까 들어가자.'라고 말한다면 재중은 분명 자신에게 미안해 할 것이므로 일부러 말을 돌려서 얘기했다. 다행히 재중은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우진은 웬지 자신이 재중과 살면서 몇가지 노하우가 생겼단 생각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런, 차에서 꽤 많이 걸어왔다. 어서 돌아가자." 우진은 모래 위에서 힘들게 목발을 집는 재중을 배려해 아스팔트 위로 올라왔다. 역시나 재중은 아스팔트 위에서 더 수월하게 목발을 집고 걸었다. 우진은 간간히 손수건을 꺼내 재중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차까지 왔다. 우진은 목발을 뒷 자석에 집어넣고 재중을 부축해 조수석에 태운 뒤에야 운전석으로 향했다. 탁- "아-, 저런. 형 안전벨트 안 맺지?" "아, 내가 할게." 안전벨트를 매어 준다며 재중쪽으로 몸을 기울여 벨트를 잡은 우진의 손 위엔 재중의 손이 포개어졌다. 순간적인 정적. 우진은 곧 당황하더니 손을 빼려했다. 하지만 우진의 손 위에 포개어진 재중의 손은 어느새 우진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우진은 기울어진 불편한 자세로 고개를 들어올리며- "형....-?" "............" 재중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응시하더니 이내 우진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댄다. 순간 당황한 우진의 두 눈은 동그랗게 커지고, 재중은 그대로 우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댄다. 재중의 얼굴이 다가올수록 우진의 얼굴은 점점 붉어진다. '너, 너무 가까워-!' 입술이 닿을 듯 말듯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재중은 큰 눈으로 진을 한참이나 보더니- ".........우진아, 피부가 많이 상했어." "어? 어어..-" 그제야 재중은 우진의 얼굴에서 멀어지고 손을 놓아주었다. 우진은 차 안이 어두워서 다행이라며 운전대를 잡았다. 이내 차는 출발하고, 두 사람은 조용하기만 하다. 재중은 창 밖을 바라보고, 우진은 앞만 바라보며 운전을 해 나갔다. '위험했어, 김재중.' '닿을 뻔 했어.' 하지만 침착한 겉모습과는 달리 두 사람은 방금 상황에 대해 꽤 복잡해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그날 밤은 더 깊어져만 갔다. ─────────────────────────────────────────────── ※이번 배경음악은 내용과 관련없이 그냥 편하게 들으세요, 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곡이랍니다.(웃음) 9월 23일. 시험기간. 남은 시간은 2주. 아니, 13일. 어서 공부를 해야할텐데, 학원도 끊고 나니 집에서 공부가 도통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눌러야 하는 애들 엄청 많은데…. 가끔은 내가 왜 공부를 해야하지,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어른들은 다 커서 잘 되려고 한다, 고 하지만 정작 난 이해하지 못 하겠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아, 그나저나 앞으로 10월 둘째주 수요일까지 소설을 올리지 못 할 듯 하다. 남은 2주동안 공부만 죽어라 해야겠다. 여러분들도 파이팅! 　　　　　　　　　　　　　　　　　　　　　　　　　　　　　　　　　　　　　　　　　-월드.　 ＊bgm- 핑클 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5] 분위기 좋은 카페 안. 깔끔한 차림에 멋진 외모가 돋 보이는 두 사람이 카페 한 자리에 앉아있다. 지나가는 여자 손님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모습을 쳐다 보기 바빴고, 여 종업원들도 그들의 곁을 한번이라도 더 가기 위해 서로 그들의 앞을 지나가기 바빴다. 하지만 본인들은 다른 곳에 관심이 쏠린 듯 했다. "형, 나 머리 이상하지 않아?" "깔끔하고, 멋져." "후우…. 괜히 긴장되네." 그 두 사람은 다름아닌 진과 재중. 그런데 평소와 다른 것이라면 우진의 어깨까지 닿던 머리가 평소와 다르게 짧게 컷트 쳐 져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평소보다 깔끔하고 멋지다. 붉은 빛 나는 갈색머리는 그에게 묘한 매력을 더해준다. 그 밑에 받쳐입은 세련된 검은 정장과 넥타이 없이 단추를 한 두개 푼 셔츠는 조화를 이뤄 그의 길고 늘씬한 체형을 더 돋보이게 해 준다. "그런데 누굴 만나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 있어. 좀 있음 올거야." 어제 아침부터 내일 만날 사람이 있다며 진을 미용실 데려가서 머리하고, 옷 사고 한 재중이다. 물론 재중에게 몇번이고 누굴 만나냐고 물었지만, 재중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었다. 그래도 중요한 사람이라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예쁜 잔에 담긴 커피보다는 유리 컵에 담겨있는 물쪽에 손이 계속갔다. 그렇게 더 기다리길 5분. 재중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이내 알았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우진은 그런 재중을 쳐다보았고, 재중은 지금 다 왔데, 라며 말하더니 이내 문쪽을 향해서 손을 흔든다. "여기야!" 우진은 재중이 손을 흔드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쪽엔 깔끔한 마스크의 남자와 배이지 색 치마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있었다. 우진은 갑자기 드는 예감에 재중을 쳐다보았고, 재중은 그런 진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남녀를 맞기에 바쁘다. 재중은 그들이 오자 우진의 옆으로 왔고, 두 사람은 재중이 앉아 있던 쪽의 소파에 앉았다. 우진은 자신의 앞에 앉은 그녀를 보고는 재중에게 큰 소리로…. "형!" "쉿, 소리 낮춰. …아, 그래. 이 분이 니 후배?" "그래, 제일 참하고 예쁜애로 골랐다. 그쪽이 전우진?" "………." "우진아." "전우진입니다."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린 우진은 재중의 친구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는다. 재중이 불러 대답하긴 했지만 우진은 상대도 보지 않고 여전히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대답했다. 그런 우진의 모습에 재중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친구는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재중에게 이만 일어나자, 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중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아직도 고개를 돌려 있는 진을 보더니 목발을 집고 일어섰다. 우진은 재중이 일어서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재중을 바라본다. 재중은 알수 없는 미소를 지은 체 진을 바라보았다. "…가, 같이 가." "안 돼. 넌 오늘 이 여자분 하룻동안 에스코트 해 주는 거야. 알았지?" "…형 다리 불편하잖아." "이제 목발은 익숙하니까 괜찮아." 우진의 마음도 모른 채 미소짓던 재중은 친구의 부름에 나중에 보자는 말과 함께 카페를 나가버렸다. 우진은 그런 재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즈막히 젠장, 이라는 말을 내 뱉는다. 하지만 이렇게 남겨진 이상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는 오늘 하룻동안 자신이 책임져야한다. 대학 다닐때 우진은 매너가 좋다는 소릴 여자 선, 후배들에게 많이 들어왔다. 많은 여자들이 그와 만남을 한번 가지면 뻑 가버릴 만큼 그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다 그의 신사적인 매너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저기… 제가 싫으시면 가셔도 돼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는 여자의 모습에 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과 사는 구분할줄 알아야 전우진이겠지….' 우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에게 예의상 미소를 지으며 "아뇨, 나가죠."라 말했다. 우진의 말에 고개를 든 그녀는 진을 보더니 싱긋 웃으며 "예."라고 대답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생각한건데 순간적이었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은 참 귀여웠다. 정장을 입긴 했지만 쌍꺼풀 없이 커다란 눈과 조금 둥근 얼굴형을 가진 그녀는 예쁘다기 보다는 귀엽다는 인상을 주었다. 갑작스런 만남이 황당하고 화가나기까지 했지만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는 일이니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그녀를 에스코트 해 주자고 생각했다. 어느새 밤이 오고 우진은 저녁 식사에 티타임(tea time)까지 가진 후에야 그녀와 헤어졌다. 시내 주차장에 주차해둔 자신의 차에 오른 우진은 큰 도로로 차를 몰았다. 번화가라 그런지 저녁 늦은 시각인데도 길은 꽤나 막혔다. 우진은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막히는 도로에 운전대에서 손을 떼며 안전벨트를 잠깐 풀고 창을 열어 밖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었는데도 엄청난 인원이 거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난히 눈에 띈 사람이 있는데 목발을 집고 힘들게 걷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재중인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차에 놨둔 안경까지 쓰고 보니 그 사람은 다행히 재중이 아니었다. 만약 재중이 저렇게 목발을 집고 사람들에게 치이며 혼자 걷고 있다면 그의 마음은 많이 아플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까 혼자나간(친구와 같이 나갔지만) 재중이 생각났다. '…잘 들어갔을까.' 그렇게 얼마 안 있어 도로가 뚫혔고, 우진은 다시 안전벨트를 매고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 11시 48분. 벨을 누르려 했지만 혹시나 재중이 자고 있음 깰까봐 일부러 차키와 연결해서 다니는 집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거실이나 부엌에 불은 다 꺼져있었다. 자는가 싶었더니 큰방에서 형광등 빛이 새어 나왔다. 우진은 오랜만에 구두를 신어 아픈 발을 바닥에 내 딛으며 큰방으로 다가섰다. "…응, 다행이네. …그래…, 응. …다음에도 만나겠데?" 통화하는 듯 해서 조심히 들어가려고 했는데 통화내용을 듣자하니 아까 그녀를 데려온 그 남자와 통화하는 것 같아 우진은 살짝 열려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형!"이라 조금은 크게 외쳤다. 재중은 그런 진을 보더니 내일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고서는 목발을 집고 일어서서 진에게 다가왔다. 우진은 싸늘한 무표정을 지었고, 재중은 그런 진을 아는건지, 모른 채 하는건지 그저 미소만 띄우며…. "셔츠가 반쯤은 다 나와버렸잖아. 잠깐 화장실 가서 옷좀 단정히 하지 그랬어." "형." "여자애 괜찮았지? 내 친구한테 특별히 부탁했어." "왜?" "…응?" 우진의 갑작스런 반문에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응?"이란 말을 내뱉는 재중이었다. 우진의 싸늘한 무표정은 점점 일그러졌다. 우진은 자신의 이런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재중의 표정을 보고서는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고는 화가난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형이 왜 그랬냐고!" "…난 그냥 너한테 여자를 소개시켜 주려고…." "누가 여자 소개 시켜달랬어! 누가 그랬냐고! 내가 형보고 여자 소개 시켜달랬어?" 재중은 우진의 반응에 놀랐는지 그저 아무 말 안하고 우진의 멀뚱히 바라 보기만 했다. 평소에 전혀 볼 수 없는 우진의 모습이었다. 한번도 이렇게 언성을 높인 적 없었다. 특히나 자신과 같이 생활을 시작한 후 항상 웃기만 했다. 그렇다고 자신과 생활하기 전에 화를 자주 내거나 하진 않았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 소리치며 따져드는 사람이 있고, 조용히 화를 삭히며 은근히 비꼬우는 사람이 있다. 우진은 대체로 후자쪽에 속했는데그런 우진이 언성을 높여 화를 내자 재중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우진아, 오늘 그 여자 맘에 안 들었어?" "맘에 들고, 안 들고가 어딨어? 형은 지금 내가 왜 화를 내는지조차 모르잖아!" "형이 갑자기 소개 시켜줘서 그런거야?" "하아…, 됐어." 쾅-! 우진은 됐다는 말만 남긴 채 문을 있는데로 세게 닫고 방을 나가버렸다. 재중은 우진이 나가고도 한참이나 목발을 집고 방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우진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숨이 거친것을 보면 그의 화는 분명 덜 풀렸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다 갑자기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더니 거친 욕을 내 뱉었다. 그리고는 화를 삭히기 위해 팔로 두 눈을 가리고 누워있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있더니 우진은 벌떡 몸을 일으키고서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여태껏 입고 있던 정장 마이를 벗고 셔츠 단추를 풀었다. 그때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재중이 들어왔다. "…우진아." "…옷 갈아 입는 거 안 보여? 나가 줘." "그럼… 뭐 때문에 화났는지만 말해." "………." 우진은 셔츠 단추를 풀다말고 차가운 무표정으로 재중을 바라보았다. 재중 역시 아까처럼 미소를 짓던 얼굴이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진과 같이 무표정을 한체 진을 똑바로 쳐다 보고있었다. 우진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중의 겨드랑이 사이에는 평소와 달리 그의 다리가 되어주는 목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똑바로 서 있었다. "…목발은? 다리에 무리가면 어쩌려고 이렇게 서 있는거야?" "그러니까… 대답해." "…뭘?" "니가 화난 이유. …버티기 힘드니까 어서 말해." 재중은 정말 힘든듯 방문을 닫고 그 문에 기대어 섰다. 우진은 그런 재중의 모습에 화났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고개만 떨구었다. 그런 진을 보고 재중은 다리에 무리가 왔는지 조금은 힘겹고 무거운 목소리로…. "전우진." "…이유를 말하면 형이 알아주기나 해?" "그러니까 말해보라고. 알아주건, 몰라주건 그건 내가 판단해." 재중의 냉정한 말에 우진은 쓴미소를 짓더니 옷장 문을 열어 옷걸이에 벗어뒀던 정장 마이를 걸어 넣었다. 재중은 한계가 왔는지 진에게 옷 다 갈아 입고 거실로 나오라는 얘기를 하고 우진의 방을 힘겹게 벽을 짚어가며 나갔다. 우진은 그런 재중의 뒷모습을 보고서는 어느새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슥슥 닦아냈다. 재중이 다리 때문에 힘겨워 할때면 항상 눈물이 맺혔다. 지금 역시 힘겹게 방을 나가는 재중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형은… 형은 정말 바보야…." 울은 게 티 날까봐 샤워까지 하고 옷을 새로 갈아입은 후에야 재중이 기다리고 있는 거실로 향했다. 일부러 시간을 더 끌어버렸다. 둘이 있으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말이다. 아까 화낸 게 너무 미안해서…, 목발 없이 스스로 서 있는게 얼마나 힘든지 알면서도 오래 세워뒀던 게 너무 미안해서…, 그의 다리를 자신이 못 쓰게 만든것만 같아 너무 미안해서 항상 그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화는 좀 풀렸냐…." "…어." 재중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떼며 물었고, 우진은 그의 옆에 앉아 작게 대답했다. 재중은 답답할때만 담배를 피웠다. 지금 그가 담배를 핀다는 것은 뭔가 답답하다는 증거. 우진은 자신때문인 것 같아 감히 피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못 하겠고,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이다. "…미안…해." "…됐어…." 재중은 진한 연기를 내 뱉으며 우진의 사과에 됐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정적. 작은 스탠드만 켜놓은 거실은 여전히 어둡다. 우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재중은 소파에 앉은체 베란다 밖의 밤 하늘을 보며 여전히 진한 담배연기를 내 뱉었다. 우진은 다시 한번 말했다. "…정말… 정말 미안해…." "………." "…내가… 내가 형을 좋아해서 그래…." "…우진아…." 우진의 말에 재중은 담배를 잠시 입에서 떼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우진의 발 앞에는 눈물이 한방울,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형을… 사랑하게 됐나봐…." "…진…아…." "…미친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을 사랑하다니…. 그래서… 정말 미안해…. 하필이면… 형을 사랑해서… 형 속만 섞히고…. 정말… 정말 미안해…." 달칵, 쾅- 우진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 가 문을 닫았다. 재중은 타들어가는 담배를 끄지도 못한 채 진을 쳐다보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날 밤에 뜬 달은 참으로 쓸쓸했던 것 같다…. ─────────────────────────────────────────────── 시험이 끝났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이죠?(笑) 아마도 그럴겁니다. 2주만이니. 아마도 두편이나 한편정도는 릭진편일 것 같습니다. 민셩편 아니라고 가리지 마시고 많이 봐 주세요. 시험…, 비록 공부는 하나도 안 해서 다 망쳤지만 기말고사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아주 긴 55편을 마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6] 다음 날. 집 주인들의 기분과 다르게 하늘은 참으로 화창하고 맑았다. 평소같음 벌써 그들의 웃음소리와 조용한 대화소리가 집 안을 가득 매울텐데 오늘은 오전 10시가 넘도록 집안은 아무도 없는 것 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거실 테이블 위 재떨이에는 재중이 피웠을 탄 담배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밤새 불 한번 켜지 않던 거실은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환해졌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하루새에 헬슥해진 얼굴을 해 버린 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 말없이 집안을 둘러보았다.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자신조차 낯선 듯 몇번이고 이곳 저곳 둘러본다. 그때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자 그제야 베란다 문이 열렸다는 걸 알고서는 베란다로 다가가 문을 닫았다. 문을 닫자 이제는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집은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이런 고요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낯선것일 지도. 똑똑- 조용히 자신의 맞은 편 방 앞에 서 있다가 노크를 했다. 반응은 없었다. 깨 있는데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아님 자는 것일까. 그는 궁금한 마음에 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거기까지. 그는 더 이상 손을 움직이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 갈 자신이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그런 고백을 해 놓고 고백 상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 걸 자신없다. 어제는 장난이었다며, 믿었냐며 웃으며 말할까…. 하지만 그건 너무 바보같은 행동.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해보고 싶은건 누구든 다 똑같은 마음. 그 상대가 이루어 질 수 없는 상대라 하더라도 한번쯤은 찔러보고 싶은 심정. 그건 같은 남자를 사랑하다해도 다 똑같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사는 사람으로써 계속 피할수는 없는 노릇. 결국 그는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추워…." 방으로 들어서자 마자 드는 생각은 춥다는 생각 뿐. 아직 조금이나마 겨울기운이 남아있는데 그의 방 창문은 활짝 열려있다. 아마도 어젯밤 내내 우진의 방 빼고 모든 문이 다 열려있었는 듯 했다. 우진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 바람에 날려서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주워 정리해서 책상위에 얹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이불을 입술까지 덮고 있는 재중을 쳐다보았다. 저렇게 이불을 덮고 있어도 분명 추울 것이다. 얼마 전에 겨울 이불을 집어넣고 봄 이불로 바꿨으니 말이다. 다리가 안 좋아지고 부터 몸 이곳 저곳에 질병도 많이 생겨버린 재중이 여간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다. 우진은 조심히 재중의 곁에 다가가 돌아 누워 있는 그의 이마를 짚었다. 조금의 미열이 있었다. 그때 이불 속에서 재중의 손이 불쑥 나오더니 우진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이마에서 치워버렸다. "…깼…어…?" "…깼다기 보단… 안 잤다고 하는 게 낫겠지…." "…열…나…. 왜 문을 열고 잔 거야…, 아픈 주제에…." 우진의 더듬더듬 거리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재중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서는 침대에 걸터 앉듯 다리를 밑에 내리고 앉았다. 여전히 진에게 등을 보인체로…. "…우진아…. 어제 일 말야…. 밤새 생각해 봤는데…" * "응, 엄마…. 응…, 부탁해요. …알았다니까-, 응…." -무슨 좋은 일 있니? 목소리가 즐겁다? "…그래…? 응…, 나 좋은 일 있어. 아…, 끊어야 겠어. 엄마, 나중에 뵈요…." 우진은 플립을 닫고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거울 앞에서서 한번 씨익 웃어보였다. 웃는 모습이 마냥 즐거운 어린 아이들 얼굴과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휘어졌던 눈꼬리는 싸늘함을 담고 그의 올라갔던 양쪽 입꼬리는 꾹 닫혀서 일(一)자가 되어버린다. 검은 눈동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러더니 한순간에 배시시 웃고서는 창문 턱에 올려져 있는, 평소 자신이 가꾸던 허브를 방 안으로 들여놓는다. 로즈마리의 은은한 향이 나고, 우진은 이내 그것을 마구 흔들어 보인다. 그러자 로즈마리의 향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자 우진은 한쪽 눈을 찌푸리며…. "넌 그냥 은은한 향이 좋겠다…." 그리고는 자신의 짧은 머리를 다시 한번 만져보더니 침대 위에 있는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바닥으로 끌어 내린다. 방문 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다 다시 한번 뒤를 보았다. 그리고는 편한 미소를 지었다. "…좋았었어." 쾅- 그대로 문을 닫고 나온 우진은 신발을 신고서 다시 한번 즐거운 미소를 짓더니 힘차게 현관문을 열고서 집을 나섰다. 그의 걸음이 꽤 즐겁다. 지하 주차장 까지 온 그는 뒷좌석에 트렁크 가방을 집어 넣고 운전석에 앉는다.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는 자신의 옆 좌석을 보고 싱긋 웃는다. "…그럼 출발 해 볼까?" 우진의 차는 이내 아파트 주차장을 벗어나 고속도로로 향했다. 한참을 달리다 피로가 밀려와서 잠시 휴게소에 들러와 커피를 마셨다. 분명히 집을 나설때는 밝았는데 지금은 어두운 하늘이 땅을 내려다 보고 있다. 우진은 커피를 다 마시고서 종이컵을 구겨서 쓰레기 통에 넣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밤 공기를 들이 마시다가 내 뱉다가, 이걸 몇번이나 반복하더니 이내 자신의 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겨버렸다. …타기 싫었다. 이 차를 타고 계속 가야 한다는 게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쩔것인가. 이미 반은 넘게 왔는데 다시 서울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우진은 하는 수 없이 차를 타고 휴게소를 빠져나간다. 밤이 더욱 깊어 갈수록 고속도로는 점점 비어간다. 우진은 그런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창문을 열어놓고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계속 속도를 높여간다. "…우진아…. 어제 일 말야…. 밤새 생각해 봤는데…" "………." "…우리… 말야…." "…응…." "…잠시 떨어져… 있자…. 떨어져… 있다보면… 우린 다시 좋은… 형제같은 사이가 될 수… 있을거야." "…떨어져… 있자고…?" "……그래." "…그… 그래….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했었어…. 나 부모님 계신 부산에 잠시동안 내려 갈 생각이었거든." "………." "…미안…했어…." "좋은… 형제… 같은…, 그런 사이라…." 우진은 아까 재중이 내뱉었던 말을 다시 읊어 보았다. 괜히 서글퍼지는 마음에 우진은 갓 길에 차를 세우고는 핸들에 얼굴을 묻었다. 괜스레 눈물이 고인다. 집을 나서기전까지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했다. 엄마에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엄마가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몇번이나 웃었는지…, 입에 경련이 날 정도로 억지로 웃었다. 부모님이 계신 곳에 가서 울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 "으… 으흐윽… 흐흑…" 결국은 울음이 세어 나왔다. 자신을 쳐다보던 재중의 눈빛과 재중의 말들이 비수가 되어 우진의 가슴에 꽂혀버렸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어버린 일…. 이젠 그와 마주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의 눈빛이 두려워서…. 우진은 몇번이고 후회했다. 천번이고…, 만번이고 고백한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아흐윽… 아학… 크흑…" 그렇게 몇십분을 더 울었는지 모른다…. 오늘 하루종일 참고 있던 눈물이 갑자기 흘러내리는 바람에 우진의 울음은 쉽게 그치질 않는다. 자신의 작은 공간에서 우진은 한참이나 울었다. 아픈 마음이 너무 슬퍼서…, 울고… 또 울었다. ──────────────────────────────────────────────── 어렵게 쓴 56편이라 할까요? 잠시동안 글이 잘 써 지지 않았습니다. 정리도 되지 않고…. 그래서 유독 여러분을 많이 기다리게 했을겁니다. 시험 끝나고 많이 올리겠다는 약속 지켜드리지 못 해서 죄송하구요. 중간고사때 유독 시험 점수가 많이 떨어져서 기말고사때는 엄마께 점수 올리겠다고 큰 소리친 저랍니다. 그래서 11월부터는 평소 잘 하지 않던 공부를 해 볼까 합니다.(笑) 소설이 조금씩 뜸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기다리는게 얼마나 싫은지 아니까 저를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염치없는 말 꺼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주 토요일은 카페 문이 열리는 날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7] "오빠- 여기에요!" 미야는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윤호를 보고 손을 흔들어보인다. 윤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미야를 발견하곤 미야가 있는 자리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이내 종업원이 와서 주문을 받아갔고, 윤호는 겉옷을 벗으며 앞에 놓은 냉수를 그대로 원샷해버린다. "…하아, 뛰어왔는데도 많이 늦었네…." "아니에요, 5분도 안 되는걸요-" "하하…, 그런가?" 몇마디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주문한 것들이 나옴으로써 잠시 대화를 중단했다. 앞에 놓인 음료를 한모금 정도 마신 후 미야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꾹꾹 주무르는 윤호를 보고는 물었다. "요즘 많이 피곤해보여요." "…아, 그래…?" 미야의 말에 윤호는 미야에게 시선을 가져간다. 미야의 말대로 몸은 회사를 다닐때보다 정신적 소모는 현재가 더 컸다. 요즘들어 의학에 관한걸 공부하는데, 의학이 복잡한 만큼 책 한권 읽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평소보다 피곤함이 더하다. 오늘 역시 피곤한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이 계속 빠져나간다.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데 살이 찌기보다는 계속 빠지는 것이었다. 그런 점이 윤호의 겉모습을 더 피곤해 보이게 하는 걸지도 모른다. 미야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요즘… 회사 안 다녀요?" "아…, 응. …의학 공부하고 있어." "…의학…이요?" 미야의 물음에 윤호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미야는 윤호의 말에 적잖게 놀란 듯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며 윤호를 바라보았다. 그런 미야의 모습을 보고 윤호는 살풋 웃으며 "왜 그렇게 놀래-"라며 말을 건넸고 미야는 윤호의 말에 물은 게 많은 듯 이것 저것 묻기 시작했다. "의학 공부하는 거면 의사 되는 거에요? 오빠, 원래 의사 되려는 거 였어요? 원래 회사 다니지 않았어요? 왜 갑자기 의학을 공부하는 거에요?" "하나씩 물어, 하나씩…. 뭐…, 의학 공부 한다고 다 의사 되는 건 아니고…. 나중에 시험 쳐 봐야 알겠지…. 그리고 원래 의사 될 생각은 없었는데 이번에 개인적인 일 겪고 나서 집안에서 의사나 하라해서, 의사나 해 버릴까, 하고 납득해버렸지. 그래서 갑자기 의학을 공부하게 됐고…. 그런데 그게 나이 먹어서 하려니까 꽤 힘드네…." 윤호의 말에 미야는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미야의 모습이 귀여워서 살짝 웃음짓는 윤호였다. 미야는 뭔가 생각하는 듯 싶더니 이내 활짝 웃으며 윤호에게 말했다. "그럼 내 주변에도 드디어 의사가 생기는 거네!" "…응?" "아아…, 어려서 부터 몸이 약해서 병원에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친분이 있는 의사가 없어서 항상 거액의 돈을 주고 치료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오빠가 의사되면 오빠한테 부탁하려구요." "…풋…. 누가 너 해준데?" "어어-, 그런게 어딨어요-" 그렇게 한참이나 편한 분위기로 대화를 주고 받던 두 사람은 잔이 비워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호가 계산한다고 했지만 미야가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결국은 미야가 차값을 계산했다. 윤호는 여자가 계산 한 것이 맘에 걸리는지 식사하러 가자했고, 미야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몇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미야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고, 지금은 윤호가 미야를 데려다 주는 중. 창문을 열어 밤바람을 쐬는 미야. 잠시 신호를 받던 중 미야는 윤호에게 "오빠, 지금 바다로 가면 안돼요?"라고 말했고, 쉽게 허락해 버린 윤호는 가까운 바다로 와 버렸다. 바다로 가던 도중…. "…오빠. …나 오빠 좋아해도 돼죠?" 운전을 하다가 고개를 돌린 윤호는 한참이나 미야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있다가 떨어진 대답은…. "…내가 좋아하지 말라고 해서 마음이 니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 "…후훗…, 그렇죠. 마음은 솔직하니까…. 머리는 거짓말 쟁이라도,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못 하니까." "………." 윤호는 더 이상 대답없이 한참이나 운전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바다. 도착하니 생각했던 대로 많이 늦은 시각. 미야는 차가 멈추자마자 차에서 내렸고, 윤호 역시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얇은 옷을 입고 있는 미야에게 자신의 외투를 벗어 덮어주었다. 미야는 싱긋 웃으며 "고마워요."라고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모래사장으로 내려오고 한참이나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어느새 윤호는 담배를 피고 있었고, 미야는 바다바람때문에 윤호가 덮어준 외투를 여미었다. "…오빠…. 윤호오빠…." "…어." "…나 오빠 좋아하나봐요…. 언제부턴가 오빠보면요…. 여기가 막 두근거려요." 미야는 자신의 심장쪽에 손을 갖다대며 윤호에게 말했다. 미야가 윤호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에 두 사람은 마주섰다. 미야의 검은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며 상큼한 샴푸향을 냈다. 윤호는 고백 비슷한 말들을 하는 미야를 바라보았다. "………." "…오빠…. 사람 감정이란 건 참으로 쉽게 변하는 것 같아요." "………." "나…, 진권이 그렇게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눈엔 오빠만 들어와요…." 미야를 바라보는 윤호의 표정은 담담하다. 아니, 아무런 표정도 없다- 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윤호는 지금 미야의 말을 되 새겨 보는 중이었다. 사람 감정이란 건 참으로 쉽게 변하는 것. 이 말이 유독 크게 들려왔던건- 왜 일까…. 그리고 거기서 유천을 떠 올린 건 왜 일까…. "아직… 사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요. …난 아직 사랑이 어떤건지 모르니까…." "………." "하지만…, 오빠를 좋아하는 이 감정만큼은 확신할 수 있어요. 사랑은 아니지만 좋아해요." 「사랑해」 「이 말도 이제 마지막이야.」 "그래…. 이 바다… 미야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하지만… 유천이하고 끝낸 곳이기도 한… 바다야…." 이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 기억나자 이 바다에서 유천과 있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유천의 마지막 사랑고백. 마지막 입맞춤을 하던 순간까지 눈물을 그치지 못하던 그가 생각나버렸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미야와 유천은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지만 윤호는 모르겠다. …왜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아이가 유천하고 겹쳐보이는지…. 마지막 사랑을 고백하면서 끝내 울음을 감추지 못 하던… 자신의 첫 사랑이 지금 왜 이렇게 기억나는지. 그와 그녀는 전혀 다른데…,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자신의 앞에 서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겹쳐보인다. 특히 울던 그의 모습에 눈에 선하다. "…미야야…. 나 좋아하기 전에… 이거 하나만 알아 뒀음 한다. …난 정말 나쁜 놈이다. …난… 난 말이다…. 상대가 아무리 날 사랑한다 해도…, 한때 내가 미칠정도로 푹 빠졌던 사람이라고 해도… 싫증이 나면…, 권태기가 오면…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이라 해도… 버리는 사람이야…. 그래도… 그래도 날 좋아할 수 있겠니…?" 한참 후에야 나온 윤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미야는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고개를 끄덕이는 미야의 모습을 보고 웃는 윤호의 모습이 왜 그렇게 쓸쓸 했을까…. 이제는 봄인데… 왜 이날 유독 바다가 한 겨울보다 더 시려보였을까…. 왜 윤호의 머릿속엔 "그 사람"이 계속 떠 올랐을까…. ──────────────────────────────────────────────── 글이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뜸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사랑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항상 감사하며 처음같은 자세로 글을 쓰겠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옷 따뜻하게 입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8] -이사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누구?" -이선우씨라고 하십니다. "…푸훗, 들여보내요." 창민은 일을 보다가 비서의 연락을 받았는데, 그건 다름 아닌 선우가 왔다는 연락이었다. 아까 집에서 전화가 왔었는데 어머니가 회사에 오시겠다는 것이었다. 선우가 따라 올까도 생각 해 봤지만 성격상 집에 있을거라 생각한 창민은 어머니의 강요에 마지못해 끌려오다시피 따라왔을 선우가 떠 올라 웃음 지었다. 비서의 목소리가 끊긴지 얼마 되지 않아 문이 열리며 잔뜩 불만인 얼굴을 한 선우가 이사실로 들어왔다. 창민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선우는 "왜 웃어!"라고 큰 소리 치더니 소파에 털썩 앉더니 이내 누워버린다. "야야, 넌 남의 사무실 와서 그래서 누워버리면 어떡하냐?" "어쩌라고…. 아줌마가 끌고 오다시피 했는데." "…풋, 그럴줄 알았다, 알았어. …야, 그래도 백수놈이…. 이때까지 집에서 계속 누워 있었을 거 아냐!" "정말 귀찮아 죽겠네! 무슨 상관인데? 일이나 해, 일이나!" 창민의 말에 몸을 벌떡 일으키고 따지는 선우. 선우의 말에 토라진 듯한 창민은 선우를 한번 노려보고는 선우가 오기전까지 보고 있던 문서들을 보았다. 선우는 그런 창민의 태도의 무안해졌는지 괜히 짜증을 내며 다시 누워버렸다. 선우는 자신도 화를 내고 누워 있음 말을 걸줄 알았다. 하지만 창민은 몇십분이 지나도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누우면 바로 잠드는 타입인데 창민이 화난 것 같은 모습에 평소에 몇시간을 자도 부족하던 잠은 오지도 않고 그렇게 혼자서 몇십분간 끙끙 앓는 선우였다. 그러다가 결국…. "야! 소심한 인간아!" "………." 결국 먼저 창민에게 말을 걸어버린 선우. 하지만 창민은 묵묵부답. 그저 하던 일만 마저 할 뿐이었다. 그런 창민의 모습에 심통이 나버린 선우는 소파앞에 놓인 테이블을 발로 툭툭 치며 혼자서 궁시렁댔다. 왜 그렇게 소심하냐느니, 그딴 일에 토라지냐니 등등 참 다양한 혼잣말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창민을 욕하고 있는데도 창민은 아무런 반응 없었다. 사실 창민은 자신에 대해 말하는 선우의 말들을 하나하나 다 듣고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직도 어린 아이들이 사용하는 단어들로 자신을 욕하는 선우가 너무나 귀여운 창민은 펜을 잡고도 한참동안 글자 한자 적을 수 없었다. 그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펜이 들썩였다. 창민은 힘들게 표정관리를 하며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친 선우를 쳐다보았다. 씩씩 거리며 잔뜩 분하다는 표정을 하고서 자신을 노려보는 선우. "야, 너 뭐야?" "…뭐?" "니가 뭔데 내 말을 무시해? 니가 뭔데!" "야, 이선우…." "왜 날 무시하는데?! 부모님 없는 사람은 무시해도 된다고 배웠어?!" "왜 거기서 그런 말이 나와. …선우야…." 지금 상황과 전혀 관계 없는 얘기가 나오자 창민은 난처해 하다가 선우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는 이내 애처로운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는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체 창민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굳게 다문 입술을 열면서 말했다. "…내가 빌붙어 사니까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생각 되나 보지?" "선우야…, 그런 게 아니잖아…." "뭐가 그런게 아닌데! 너 지금 나 무시하잖아! 그래, 너 잘났어! 부모님 있고, 이런 직장도 있고!" "…이선우." "니가 뭔데 날 무시하냐고!" 창민의 어깨를 툭 치는 동시에 고여있던 눈물이 한순간에 흘러내렸다. 창민은 지금 이 아이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화나 있는 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이 없다는 게 콤플렉스가 되어 자신을 한없이 깎아 내리고있는 선우가 안타까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 했다. 결국 주저 앉아 엉엉 울어버리는 선우. 창민은 난처해진 상황에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한 체 있다가 선우의 우는 소리에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선우에게 다가갔다. 물론 선우는 주먹을 휘두르며 창민을 자신의 곁에 다가오지 못 하도록 했다. 하지만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는 창민을 때리지는 못 했다. "흐어엉…, 으하앙…" "…형이 미안해, 그러니까 울지마…. 아무도 부모 없다고 너 무시하지 않아." 창민은 뒤에서 선우를 안고서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선우에게 말했다. "…이런 직장쯤은 너도 열심히 하면 가질 수 있어…. 그리고 가족도…." "…흐아앙… 으하악…" "아무도 널 무시하지 못 해…. 그러니까 두려워 하지마. 가족이 없다고 널 무시하는 사람 없어…. 그리고 넌 스무 살을 넘은 어엿한 성인이잖아? …그런 일은 맘에 담아두지 마…." 창민의 말에 안정이 되어 가는지 선우는 차차 울음을 그쳐갔다. 흥분해서 붉어진 얼굴로 이제는 씩씩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는 선우. 창민은 선우가 울음을 그친것에 빙긋 웃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창민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그녀는 창민과 선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는 무슨 일 있냐며 다가섰다. 창민은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선우를 일으켜주었다. 현기증이 난 건지 살짝 비틀거렸지만 창민이 받쳐줘서 무사하게 일어설 수 있었다. "아버지는요?" "서류 좀 정리하고 내려오신데. 아, 엄마하고 아버지 김비서 내외랑 식사할거라서 너희끼리 들어가야겠다, 괜찮지?" "그럼요- 우리가 애도 아니고…. 오랜만에 선우랑 놀죠, 뭐." 창민은 옆에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창민의 어머니 역시 창민과 같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선우에게 형이랑 재밌게 놀아, 라고 말하신다. 그렇게 어머니는 얼마 후 나가셨고, 창민도 선우를 배려해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운전하던 도중 창민은 선우에게 시내나가서 영화나 보러갈까, 라고 물었지만 선우의 대답은…. "정장 입은 사람이랑 시내같은 데 나가기 싫어." 그런 선우의 어린 아이같은 투정섞인 말에 창민은 그저 웃음 지을 뿐이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면이 많은 선우는 그만큼 나이에 비해 어린 면도 많이 가지고 있다. 땡깡부리는 거나, 고집 피우는 등등…. 아마도 선우의 성숙한 면은 사고 후부터 생긴 것 같았다. "친구들은 안 만나지?" "…별로 친한 애도 없었어…." "흐음…, 왕따…?" "아냐!" 역시나. 창민은 선우의 앙칼진 반응에 호탕하게 웃었다. 어느새 창민은 선우를 놀리는 데 재미를 들였나 보다. 그때 창민의 전화 벨이 울리고 창민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천이…? …어딘데…. 그래…, 알았어. 지금 갈게." 어딜 간다는 건지…. 선우는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지는 창민의 얼굴을 그저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선우는 창민에게 어디 가는데, 라고 물었고 창민은 굳어버린 얼굴로 선우를 보더니 이내 차를 어디론가 몰고 간다. 차가 멈춘 곳은 아까 지나친 시내. 창민은 차를 세우고서 선우에게 말했다. "…먼저 집에 가 있을래? 여기서 택시 타고 먼저 가 있어." "…어디 가는건데…." "…친구…. …미안, 집에 가 있어. 자, 여기 택시비…." 창민은 선우가 내리자마자 바로 어디론가 향했고, 선우는 창민에게 받은 "택시비"를 손에 쥐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우를 툭툭 치고 지나갔지만 선우는 아무런 미동 없었다. 구깃- 선우의 손에 들려있던 창민이 쥐어준 지폐가 구겨졌고, 동시에 선우의 표정도 구겨져버렸다. "…또 혼자남겨뒀어…. …결국은 나 혼자잖아…. 내 곁엔 아무도 없잖아…." 문득 느껴지는 외로움에 선우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 후훗, 정말 오랜만입니다. 진작 찾아뵙지 못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또 시험기간인데.(먼산;) 정말 죄송하구요. 날 잡아서 그날 세, 네편 올려보도록 할게요. 지금 시간이 꽤 늦었네요. 오랜만에 이렇게 늦게까지 해 보네요.(笑) 내일은(아, 오늘이지;) 가족 모두가 절에 가기로 했는데 저 혼자 늦잠 자겠어요. 어서 자야겠죠…. 잘하면 한편 더 올릴수도 있고….(笑) 유독 몇번이나 지우고 다시 쓴 58편입니다. 내용은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 이해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카페 문 열렸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59] 딸랑- 어두운 호프집의 현관문이 열리면서 작은 종소리가 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고 부어라, 마셔라했고 호프집 안으로 들어선 그 역시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찾기 바빴다. 그러다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에게 눈이 갔다. 하염없이 술을 마시고 있는 그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유천아." "…어…? …심창민 왔네…." 유천은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올려 창민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앞에 놓인 술을 마셨다. 병만해도 벌써 6명. 창민은 한숨을 내 쉬며 유천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이거 너 혼자 다 마신거야?" "…응." "…갑자기 왜 이래…." "…갑자기가 아냐…. 갑자기가… 아니란 말야…." 유천은 갑자기가 아니라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러다 피식 웃더니 의자에 걸쳐놓은 재킷 주머니를 뒤적 거리더니 이내 뭔가를 꺼낸다. 하얗고 기다란…, 그건 담배. 유천은 익숙한 솜씨로 필터에 불을 붙이고서 담배를 깊게 빨아 들였다. 창민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테이블 위에 놓인 유천의 재킷을 가져와 재킷 주머니에 있던 담배와 라이터를 빼서는 벗어놓은 자신의 정장 마이에 집어넣어 버린다. 그리곤 유천의 입에 물린 담배도 빼앗아 자신의 입에 물었다. "…뭐 하는 짓이야, 심창민." "…하아…, 너야말로 무슨 짓인데? 몇년동안 피지도 않던 담배도 피고…. 갑자기 왜 이러는거야?" "…갑자기가 아니야…. …이혼했을 때부터… 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어…. 갑자기가 아냐…." "…정윤호 때문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건데…?" "…쿡…. …평생…." 유천의 대답에 창민은 머리가 아픈 듯 잠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자신의 친구가 이렇게 한심해 보일줄이야…. 창민은 담배를 앞에 놓인 재떨이에 비벼끄고 유천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나 지금 너 패고 싶다. …니가 정신차릴 때까지 너 패고 싶다." "…크, 크큭…. 심창민, 넌 나 못 때려…." "………." "…넌 날 사랑하니까… 죽어도 넌 나 못 패…. …심창민…, 지금이 기회야…. 내곁엔 정윤호가 없어. …넌 날 원하잖아…? …기회라니까? …왜…? 못 하겠어…? 그럼 내가 먼저 유혹할까…?" 유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창민은 점점 화가 나고 있었다. 유천은 "니 옆으로 갈까…?"라는 말을 하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와서는 창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반쯤 풀린 눈으로 창민을 쳐다보았다. 창민역시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유천을 잔뜩 화가난 얼굴로 쳐다보았다. 창민의 얼굴을 쳐다보던 유천은 갑자기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으로 창민을 바라보았다. "…그런 눈 하지마…, 그런 얼굴 하지마…. 그 얼굴은… 정윤호가 나한테 불만일 때 짓던 표정이랑… 같잖아…, 그러니까 그런 얼굴 하지마…. 슬프단 말야…, 아프단 말야…." 유천의 말에 창민의 분노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화가난 얼굴이 안타까운 얼굴로 변하고 화가난 몸짓이 부드럽게 변했다. 창민은 자신의 옆에 앉은 유천의 어깨를 감싸서 유천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얇은 셔츠가 축축이 젖는게 느껴진다. 창민은 꽤 많이 길은 유천의 머리칼을 만지며 말했다. "…나는 정윤호가 정말 밉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가졌는데도 투정하나 하고…. …그런데…, 그런데… 난 정윤호 미워할 수 없어….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유천이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미워할 수 없다. 항상 윤호가 미웠지만 미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기에…. "…난 그 자식 미워할 수 없어…. 그날…, 공항에서 그 자식 눈을 봤거든…." "…널 바라보고 있는 그 눈을…." 차마 유천에게 하지 못하는 말…. 유천에게 냉정하게 뒤 돌아선 그의 눈…. 멀리서 우는 유천을 지켜보던 그.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는 그의 눈을 보는 순간…, 그를 미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창민은 유천의 머리칼을 여전히 만지작 거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니 말대로 지금이 기회야…. 니 곁에 드디어 정윤호가 없거든…. …나또한 널 원하거든…. …그런데 난 널 가질 수 없어…. 아니, 가질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거절 할거야…." 그리고는 창민의 쓰디 쓴 웃음. "…난 정윤호의 대용품 따위는 되기 싫거든…." 창민의 슬픈 사랑이 그대로 들어나는 말들…. 유천은 조용히 창민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다 들었다. 그리고는 깨 달았다. 자신이 지금 한 남자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는지…. "친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평생 사랑해야 할 남자에게 엄청 잔인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던 유천은 젖은 속눈썹을 들어올리며 눈을 뜨려했다. 그때 유천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창민의 손이 유천의 눈을 가렸다. 유천은 컴컴해진 앞에 무슨 일이냐며 창민에게 물었지만 창민은 아무대답 없었다. 그저 묵묵히 유천의 두눈을 가리고만 있었다. "…창민아…, 이 손좀 나줘…." "………." 창민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민의 시선 끝에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정윤호. 그는 다름 아닌 정윤호였다. 그 역시 창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창민의 품에 안기다 시피 해 있는 유천을 보고 있는지도. 창민은 유천의 눈에서 손을 떼지 않고 말했다. "유천아…, 잠시만 눈 감고 있자…. …잠시만…."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몰랐지만 유천은 창민이 말한대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창민은 유천이 눈을 감은 후에도 한참이나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창민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윤호. 그때 윤호의 곁으로 한 여자가 다가온다. 윤호는 여자가 다가오자 잠시 창민에게서 시선을 뗀다. 윤호 역시 유천만큼 많이 취했는지 한걸음 떼자 비틀거렸고 곁에 있던 여자가 재빨리 그런 윤호를 부축했다. 창민은 두 눈으로 그 모습을 하나, 하나 지켜보았다. 눈을 감고 있던 유천은 창민에게 이제 눈 뜨며 안 되냐고 물어왔고, 창민은 그런 유천의 말에 대답도 해 주지 않은 채 계속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빠, 어서 가요. …술좀 작게 마시지 그랬어요." "…미안하다…." 윤호는 그렇게 여자의 부축을 받은 체 호프집을 나갔다. 그리고 나가기전 다시 한번 창민을 쳐다보았다. 창민은 윤호가 나가고도 한참이나 유천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유천아…. …세상 참 개같다…. 정말 개같아서…, 못 살겠다…." "…창민아…?" "…유천아…, 그 자식 없는 곳으로 떠날까…? 내가 곁에 있어줄게…, 우리 떠나버리자…." 창민의 눈은 끝낸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창민의 손 역시… 유천의 눈물로 젖어나갔다. 창민이 누굴 봤는지, 그리고 자신이 눈을 왜 가렸는지 파악한 유천….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다. 어두운 호프집 구석 진 곳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다. ──────────────────────────────────────────────── 오랜만에 내용이 막막 떠올라서 연이어 59편을 썼습니다. 58편은 새벽에 썼구요.(笑) 좀 슬픈 내용인가요? 제 소설에서 창민군이 너무 슬프게 묘사되는 것 같네요. 이때까지 소설 빨리 못 올리거 사과하는 기념으로 두편 연속으로 써서 올리니까 이쁘게 봐주세요! 한결 같이 소설 사랑해주시는 분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카페 문 열렸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0] 검은 어둠이 세상을 뒤 덮고, 집들은 하나, 둘씩 불이 꺼지기 시작한다. 이내 칠흙같은 어둠이 찾아오고 거리에는 길목을 빛추는 가로등만히 쓸쓸하게 서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았을 놀이터는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침묵 가운 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알았어요…. 알겠으니까 먼저 주무세요…. …예. 끊어요…. …하아…."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쉬는 남자. 어둠속에서도 하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는 그 남자는 다름아닌 우진이었다. 재중에게 고백 이후 부산으로 무작정 내려온 우진은 작은 슈퍼를 하시는 어머니하고 같이 생활하는 중이었다. 슈퍼에서 어머니 대신 카운터도 봐 주고 어머니와 시장도 가고…. 꽤나 착실한 아들 생활을 하고 있는 중. 하지만 오늘같이 가끔 가슴이 답답할때는 어머니께 거짓말을 하고 밤 늦게 혼자 나와버린다. 하염없이 걷다보면 이렇게 아무도 없는 장소로 와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기 마련이었다. 검은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 하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검은 밤 하늘에서 은은한 빛으로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달. 짙은 검은색에서 기껏해야 두개 정도밖에 볼 수 없는 별이란 존재. 은은한 달빛을 보면 마음이 편안했지만 검은 어둠에 가려 기껏해야 아주 작은 빛밖에 내지 못하는 별을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자신의 가슴이 답답한 건 다 별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계속 그를 원망케 만든다. 그래서 우진은 자기 자신이 너무 싫을 수 밖에 없다. "병신… 미친 놈…. 전우진, 넌 정말 최악이야…." 괜시리 지어지는 씁쓸한 미소. 그리고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얼굴 하나. 커다란 눈을 휘며 자상하게 웃어주는 얼굴 하나가 떠 오른다. 막상 그의 얼굴이 떠 오르니 이것, 저것 궁금해진다. 한동안 꾹꾹 눌러 묻어두었던 감정을 살짝 들추어 보았을 뿐인데 그에 대한 것이 단번에 다 떠오른다. 부산에 있는 동안 억지로 겨우겨우 묻어 두었던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한 순간에 마그마가 되어 폭발 해 버린다. "…정말… 정말 너란 자식은…." 흥분해서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가만힌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더니 마음이 진정된건지 살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폰의 플립을 열어 손가락 끝을 움직여 번호 하나, 하나를 눌렀다. 이내 통화 버튼을 누르고는 떨리는 손짓으로 폰을 귓가에 갖다댄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달칵. -여보세요. 그렇게 듣고 싶었던 목소린데…, 말을 해야하는데…. 왜 말 대신 눈물부터 앞서는 건지…. 물어 볼게 많은데…. 잘 지내냐고, 다리는 어떻냐고, 병원은 잘 다니고 있냐고,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냐고, 씻는 건 어떻냐고, 불편한건 없냐고… 이렇게나 물을 게 많은데 정작 왜 입은 열리지 않는건지…. 눈에 잔뜩 고인 눈물이 글썽이더니 이내 뺨을 타고 떨어진다. "……흑…." 굳게 다문 입술로, 꽉 깨문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몇번이나 "여보세요"를 반복하던 상대도 그 조그만 울음소릴 들은건지 이내 아무 말 없이 조용해 진다. 전화로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눈물이 계속 흘러 나온다. 아무 말 못 하고 한참이나 귀에 대고만 있던 전화.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하던 두 사람. 눈물을 슥슥 닦아내던 우진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잘… 지내니…? "………." -…난 잘 지내…. 병원도 잘 다니고, 목발 안 집고 걷는 것도 연습하고 있어. 의사 선생님도 많이 좋아졌다고 해 주셨어.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어. 그래도 내가 해서 그런지 니가 해 준 밥보다는 맛이 별로더라구…. 우진의 마음을 어떻게 안 건지, 우진이 궁금한 것들을 알아서 하나, 하나 대답 해 주는 그. 소매가 다 젖어가도록 닦은 눈물인데 다시 흘러내린다. 가슴이 아프다. 잘 지내냐니…, 잘 지내지 못 하는데…. 하루에 반을 멍하게 앉아있는데…, 하루에도 몇번씩 많은 기억들을 묻으려고 애쓰는데, 잘 지내냐니…. 자신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데 자신은 잘 지낸다니…. 끝까지 잔인한 사람…. 그렇게 잔인했으면서…, 끝까지 잔인하다. -…부산은 어때? 바다가 바로 보여? 서울보다는 공기가 좋지? …우진아…. "………." -…건…강해…? 아픈 건… 아니지…? …우진아…. "…나… 나 건강해. …아프지 않아. 서울에 있을때는 형때문에 답답했는데 부산에 오니까 그런 거 없어서 너무 좋아.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 …많이 늦었다…, 끊을게." 그의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먼저 플립을 닫아버렸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버린 폰. 아쉬운 마음에 다시 플립을 열어보지만 무심한 폰은 달력으로 해 놓은 액정만 비출 뿐이었다. "…하고 싶은 말 많았는데…, 바보같긴…."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몇시간을 통화해도 괜찮지만 그정도까지는 못 미쳤다. 웃을 정도로 기분이 많이 좋아진 건 아니다. 그와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통화하는 것은 아직은 무리다. 아직도 그를 많이 좋아한다. 그의 목소릴 듣는 순간 식었던 피는 뜨거워졌고, 조용하던 심장은 미친듯이 뛰어댔으니까. 하지만 그를 좋아하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형제같은 사이. 따지고 보면 학교다닐 적 선, 후배밖에 안 되는 사이. 그런 관계를 흐트려선 안 된다.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래야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다. "…평생… 못 있을지도…."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감정이 계속 되는 한 평생 그의 곁에 있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의 곁에 남으려면 그를 좋아해선 안 된다, 그를 사랑해선 안 된다. 어디까지나 "형제같은 사이"라는 범위 내에서 그를 봐야하고 그를 좋아해야 하며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 깨달아야 할 것. 그는 자신때문에 인생이 바뀌었다. "…하악…." 괴로움의 연속…. 그 아픔의 끝은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까…. * 뚜뚜뚜…. 수화기를 계속 들고 있어봤자 들리는 음은 하나밖에 없는데…, 뭣 때문에 계속 들고 있는 걸까…. 이렇게 들고 있음 다시 우진의 목소릴 들을 수 있을까 싶어 끊지 못 하고 계속 들고 있는 수화기…. 탁- 한참 후에야 겨우 끊은 전화. 우는 게 분명했는데, 잔뜩 울고 있을 게 뻔히 보이는데 강한 척 하며 말해가던 진. "앞으로도 그렇게 잘 지내."라는 말이 왜 이렇게 귀에 맴 돌까. 특히 "앞으로도…"라는 말이…. 문득 두려워 져 버렸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지내야 할 까봐…. 사실은 잘 지내지 못 하고 있는데…, 걷는 연습도 게을리 하고 밥도 굶기 일수고 집은 벌써 더러워 져 있고, 얼마 전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찾아 간 병원에서는 상태가 좋아졌다는 말이 아닌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말만 하고….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을 다 꺼내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몇갑이나 피고…. 엉망적인 생활만 되 풀이하고 있다. 진에게 했던 말들은 하나같이 다 거짓말…. 그 아이가 너무나 보고 싶은데,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내 쫓은거와 똑같은데…, 어떻게 이제와서 그 아이에게 돌아오라고 말하겠는가…. 잠시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고 말한 사람은 자신인데, 상처란 상처는 다 줘 놓고 이제와서 "보고싶어."라는 말 한마디로 그를 부르겠는가…. 그렇게는 하지 못 한다. 소중한 동생… 같은 존재에게 더한 상처는 줄 수 없다. "…하아…. …외로워…." 밤 늦은 시각인데도 재중은 불꺼진 거실 테이블에 엎드려 술만 마실 뿐이었다. 외로움을 달랠 길은 술을 마시고 잠드는 것 밖에 없다. 그런 생활을 되 풀이 하다보면 언젠가는 우진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렇게 망가진 자신을 보면 다신 절대로 자신의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겠지…. 어쩌면 아주 많이 이기적일지도 모르는 생각. 자신이 보내놓고 이제는 가지 못하게 잡으려는 한심한 생각…. "…피식…, 한심해…."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달빛에 의존한 체 하염없이 술만 마시는 남자…. 그의 실루엣이 유독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이유는 항상 곁에 있던 한 존재가 없기 때문일까…. ──────────────────────────────────────────────── 대망의 60편입니다. 오랜만에 릭진으로 했습니다. 요즘은 한번에 소설을 잘 못 써서 쓰고 저장하고 쓰고 저장하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볼때마다 뭔가 못 마땅한 내용에 지우고 또 지우고 하며 소설을 씁니다. 60편도 세번이나 지웠다 다시 썼다죠.(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1] "…뭐 마실래?" 창민의 물음에 선우는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입술을 꽉 다문체로 창 밖만 바라보았다. 창민은 그런 선우에게 밖에 나갈까, 라고도 권유하지만 선우는 그저 싫단다. 그리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담지 않은 눈으로 한곳만 응시한다. 창민은 그런 선우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어색하기만 했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지만 선우는 한 3일동안 고열로 앓았다. 그 후부터 선우는 다시 말이 없어지고 맨 처음 이 집에 데려왔을 때와 똑같은 증상을 내 보이고 있었다. 자살소동은 없었지만 멍하니 앉아있기 일수였고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또 다시 말을 못 하게 되 버린 걸까, 라고 걱정했지만 얼마 전에 어머니께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 한시름 놓은 창민이었다. "…죽는 게 어떤거야…?" "…어?" "…외로운 거야…?" "…음,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새로 시작하고 싶으면 죽어도 되는거네." "아니, 그건 아니지…. 이선우, 너 혹시…!" 지독히도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죽음에 대해 묻는 선우. 그런 선우의 말에 문득 불안을 느낀 창민은 선우가 또 자살기도라도 할까봐 놀란 얼굴로 선우를 바라보았지만 선우는 묵묵히 입을 닫고 여전히 한 곳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자신에게 성질내고 화내면 좋을것을, 저렇게 조용하고 아무 말 없으니까 너무 안타깝다. 무엇에 화난 것일까, 아님 다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일까. 선우는 한참이나 한 곳만 바라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떨결에 창민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는 그런 창민을 차가운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더니 2층으로 올라 가 버렸다. 혼자남은 창민은 괜히 무안해지는 느낌에 머리를 글쩍였다. "왜 저러지…." 창민은 선우가 왜 저러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 한참이나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지 괜히 소리를 질러 버리며 죄없는 머리만 헝크렸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까, 도 싶지만 괜히 상처만 건들여 가슴만 더 아프게 할까봐 도무지 그렇게는 못 하겠는 창민. 일단 얘기라도 많이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선우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이나 고민하는 창민. 노크를 하고 들어갈까, 아님 노크를 하지 않고 장난스런 분위기로 들어갈까…. 결국은 후자쪽을 선택한 창민은 살며시 문을 열고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야! 이선우─!!!!!" 방에 들어선 창민은 방안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는 큰 소리로 선우를 불렀다. 방안 가득히 풍기는 짙은 피비린내. 침대 위에 흩어져 있는 알 수 없는 하얀 약. 창민은 선우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아직 삼키지 못한 약을 억지로 뱉어내게 했다. 선우는 완강히 거부했지만 요몇일새 몸이 많이 약해진 탓에 오래가지 못 하고 창민에 의해 벌써 넘긴 약 외에 것은 모두 억지로 다 뱉어냈다. 창민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우를 꽉 안아주었다. 마른 몸이 안겨왔다. 창민은 놓지 않을 거라는 듯 선우의 몸을 꽉 껴안았다. "…안돼. …안돼, 이선우…. 너 죽으면 안 돼…." "………." 창민의 자신의 옷이 피범벅이 되는데도, 눈물범벅이 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선우를 놓아주지 않았다. 한손은 선우의 머리를 감쌌고, 한손은 선우의 허리를 감싸 최대한 꽉 안았다. "죽지마…, 죽으면 안 돼…. 자살은 안 돼…. 내가 옆에 있을게, 그러니까… 이런 짓 하지마." 선우는 창민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눈물을 흘려댔고, 마지막엔 알수 없는 미소를 짓더니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동시에 뒤로 꺾어지는 선우의 고개. 창민의 두 눈은 크게 떠지고 심장은 미친듯이 뛰었다. "이선우─!!!!!!!!!!!!!!!!!!!!" * 하얀 팔목에 하얀 붕대가 감겨져 있고 팔에는 보기만 해도 아파보이는 링겔이 꽂혀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버린 얼굴과 핏기없는 입술. 감겨서 떠질 줄 모르는 두 눈. 그 곁에는 녹초가 된 창민이 앉아있다. 그 길로 미친듯이 선우를 업고 뛰어왔던 인근의 큰 종합병원. 사람이 죽어간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도 아니었던 그. 다행히 살리긴 했지만 출혈이 너무 심했고, 창민이 방에 들어서기 전 이미 많은 양의 약을 복용해서 정신이 금방 들지 않았다. 또 다시 시작 된 선우의 자살기도.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일까.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또내고…. 이렇게 상처를 내면서까지 죽고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멍청한 놈아…, 왜 자살을…. …도대체 왜…." 도무지 알지 못 하겠다. 왜 자살을 하려하는지, 왜 계속 죽으려고만 하는지….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해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하필 이 아이는 죽음을 택하는 것일까…. 달칵- "…창민아." "아…. 유천아. 미안하다, 자릴 비울 수 없어서." "뭐, 그럴 수도 있지. 얘가 그 아이?" 유천의 물음에 창민은 힘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아까 선우를 안으면서 피가 옷에 범벅이 되어버렸는데 차마 자릴 비울 수 없어서 유천에게 집에 가서 옷좀 가져와 달라고 부탁한 창민이다. 마침 부모님은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가 버린터라 부탁할 사람이 유천밖에 없었다. 창민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유천은 선우의 곁에 다가서 선우를 살펴보았다. 많이 아파보이지만 자신을 한곳으로 밀어넣어 자살할 정도로 어두운 아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유천은 창민을 보더니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하지만 창민은 자릴 비울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고, 그렇다면 혼자서라도 먹고 오라고 일렀다. "됐어, 그냥 있을래." "간호하는 사람이 튼튼해야지. 어서 먹고와, 내가 돌볼게." "…그럼 부탁할게." 유천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창민은 갈아입은 옷을 넣은 종이가방을 들고 병실을 나섰다. 창민이 나가고나자 조용해진 병실. 유천은 선우의 눈을 가리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러자 선우의 얼굴이 들어났다. 창백한게 너무나 안스럽다. "우린… 둘 다 못된 것 같아…. 우린… 정말 심창민에게 있어서는 안 될 사람 같다." 조용히 눈만감고 있는 선우. 유천은 그런 선우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조용, 조용 말했다. "…그 녀석을 너무 아프게 해…. 나도…, 그리고 너도…." 요즘들어 창민이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창민은 항상 자신을 위해 희생한다. 그런 창민에게 항상 기대기만 하고, 기댄 뒤에는 그냥 홀연히 떠나버리는 자신. 유천은 그런 자신이 싫지만 자신을 미워해 봤자다. 유천은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난 심창민을 웃게 해 줄 수 없어. …나 그녀석 많이 혹사시켰거든." 여전히 의식없는 선우. 유천은 그런 선우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넌 더 이상 나쁜 놈 되지 말고…, 심창민 행복하게 해 줘…." 유천의 얼굴에서 그 의미모를 아픈 미소는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 역시나 엄청난 수정을 거치며 써낸 61편입니다. 내용은 없고 점점 갈수록 흥미떨어지시겠지만 가면 갈수록 힘들게 써내리고 있어요. 슬럼프일까요. 후훗. 요즘 사는게 힘듭니다. 스트레스때문에 신경성 장염이 다시 재발하고. 으윽, 정말 하루 하루가 미칠것만 같습니다. 그럼 모두들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2] 그렇게 시간은 흘러 여름이 찾아왔다. 학생들에겐 방학이 찾아와 모두 더위를 피해 바다로 놀러가기 바빴고 직장인들은 더위와 싸워가며 일하기 바뻤다.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그들 역시 그 흐름에 맞춰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름의 밤이 찾아왔고 조용한 집에는 쿠당탕하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창민은 놀라서 방 밖으로 나가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는지 선우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창민은 깜짝 놀라서 1층으로 내려갔고 선우를 일으켰다. "또 굴러 떨어진거야?" "……아파." "…휴우." 한, 두번 있는 일이 아닌 듯 창민은 "또"라 했고, 선우는 쓰러진 그대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체 창민에게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선우를 보며 창민은 그저 한숨만 내 쉴 뿐이었다. 그때 자살하기 위해 복용했던 약이 너무 많고 강해서 퇴원하고 난 뒤에도 몸을 잘 가누지 못 했다. 균형도 잘 잡지 못 하고 툭 하면 엎어지거나 걸려서 넘어지고 오늘처럼 계단에서 균형을 잡지 못 해 굴러떨어지는 일도 많이 생겼다. 병원에서도 약물 다량복용 후유증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했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선우가 균형을 잘 잡고 다니는 수 밖에 없었다. 찰싹- "다 됐어, 옷 입어." "…왜 때려, 아프잖아…." 아픈 부위에 파스를 붙여주고는 찰싹, 때리고서 마무리 짓는 창민을 보며 선우는 아프다고 투덜 거린다. 창민은 엄살은, 하면서도 내심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 웃어보였다. 창민은 옷을 다 입고 다시 침대에 누워버린 선우의 머리를 헝크리며 말했다. "이선우. 나 너 좋아하나보다." 웃음섞인 창민의 말. 농담 반, 진심 반. 그런 창민의 말을 들은 선우는 엎드린 체로 고개만 비스듬히 돌려 창민을 흘겨본다. 그런 선우를 보고 "너 귀신같아, 그렇게 보지마-"라며 웃어보이는 창민. 선우는 다시 얼굴을 침대에 묻고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호모야?" "…음, 그런가…?" 그냥 내뱉은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창민에 놀라 선우는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이내 아프다며 다시 털썩 누워버린다. 선우는 경계의 눈을 하고서는 창민을 쳐다보았다. "…너 정신이상자야?" "야, 그건 너무했다. 남자를 좋아하기로서니 정신 이상자라니." "첫사랑도 첫키스도 다 남자야?" "음…, 맞아. 남자. 그런데 키스는 아니야." 선우는 창민의 대답을 듣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흐응-"이라는 이상한 소릴 내더니 이내 창민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병원에 있을 때 자주오던 그 형 좋아해?" "…어떻게 알았냐?" "…눈에 훤히보이더만…. 바보같긴. 말도 못할 사랑, 왜 하냐?" "좋으니까…." "백날 좋아해 봐라, 그 형은 널 친구 이상으로 생각 안 하던데?" 선우의 말에 창민은 잠깐 쓴 웃음을 짓더니 이내 짓궂은 미소로 바꾸며…. "그럼 이선우가 나 사랑해 주면 돼." "내가 미쳤냐?" "에이, 나 좋아하고 있는 거 다 아는데…. 그렇게 튕기는 것도 다 나한테 관심 끌고 싶어서 아니야?" 그 순간 선우의 얼굴이 새빨게 졌다. 짓궂은 미소를 짓던 창민도 갑자기 붉어져 버리는 선우의 얼굴에 깜짝 놀라 굳어버렸고, 선우는 이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땅에 발을 딛었다. 물론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졌지만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재 빨리 방을 벗어났다. 창민은 한참이나 멍하게 앉아있다가 이내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크게 웃어버렸다. "푸하하하! 정말이었던 거야? 하하핫-" 집안엔 한동안 창민의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 달칵. "…형, 안 자?" "아, 유환아. …나때문에 깬 거야?" "…아니, 화장실 갔다가 불켜진 거 보고…." 다 큰 나이에 곰돌이가 그려진 파자마를 입고서 졸린 표정을 하고서 방으로 돌아오는 동생의 모습에 유천은 피식 웃어보였다. 유환은 유천의 침대에 털썩 눕더니 이내 자신의 머리맡에 있는 서류들을 손에 쥐고 본다. 그러고보니 온 방에 서류들이 널려있다. 유환은 머리 아프다는 듯 손에서 서류를 놓고 침대에 얼굴을 묻는다. 유천은 식은 커피를 마시다 그런 동생을 봤는지 방에 가서 자라고 일렀다. "…됐어. …그나저나 아버지도 너무해. 이 일한지 얼마 됐다고 이만큼이나 시키냐?" 유환은 자신이 아끼는 형에게 엄청난 분량의 일을 안겨준 아버지가 원망스러운지 인상을 찌푸렸고, 유천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유환은 그러다가 엄청난 양의 서류들 사이에 있는 유천의 지갑을 봤는지 손을 뻗어 유천의 지갑을 손에 잡았다. 그리고는 잠에서 덜깬 허스키한 목소리를 한 체 한껏 장난끼가 묻어나는 말투로…. "우리 형 금전상황이나 볼까?" "뭐? …아, 안돼!" 유환의 말에 보고 있던 문서에서 눈을 돌려 유환을 본 유천은 놀라서 손에 잡고있던 문서도 놓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유환은 이미 지갑을 열은 후였다. 그런데 유환은 유천의 지갑을 보고는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유천은 잔뜩 당황한 얼굴로 지갑을 뺏어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었고 졸린 얼굴은 어디갔는지 어느새 무섭게 굳어버린 얼굴을 한 유환은 당황한 자신의 형을 쳐다보았다. "…형." "그, 그게…." "…아직도야…?" 당황해서 몸둘 바를 모르던 유천이 한순간에 굳어버렸다. 유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 쉬었고 유천은 시선을 내리깐 체 유환에게 말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께 비밀로 해줘." "뭘 비밀로 해?" "됐어. …끝난 사이야. 더이상… 나랑 관련되게 하고싶지 않아." "…윤호형은 알아? 이혼한지 몇개월이나 지난 지금도 형이 자기 사진 들고 다니는거!" 흥분해 버린 유환은 결국 소리를 버럭 질러버린다. 유천은 그런 유환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다. 유환은 또 다시 한숨을 내 쉬며 짧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유천은 그런 동생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유환은 지금 웃을 상황이냐며 버럭 화냈지만 유천은 그저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난… 정윤호를 사랑하는 그 순간부터 저주에 걸린거야. …평생 정윤호를 사랑해야하는 저주…." "…바보같은 소리 좀 하지마." 유환의 투덜거림에 유천은 조용히 웃더니 말을 이었다. "…못 보는 건 가슴 아프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밖에 볼 수 없는걸. …이해… 해 주면 안 돼…?" "억울해. 왜 형만 아파야 해…." "…지은 죄가 너무 많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유천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유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혈육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까지 보지 말라는, 그런 잔인한 짓까지 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형이니까…, 너무 가여운 사람이니까…. 사랑하는 그를 볼 수 있는 단 한장의 사진. 하루에 몇번이나 지갑 깊은 곳에서 그의 사진을 꺼내 보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을 보는 순간, 그의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 안녕하세요, 나름대로 빠르게 쓴 62편입니다. 잘 봐주세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3] 새벽 3시.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하나, 둘씩 안 보이기 시작한다. 짐을 싣고 달리던 화물차들도 휴게소로 빠져버리고 고속도로는 훤하게 뚫혔다. 몇대의 차 밖에 없는 고속도로위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승용차 한 대가 보인다. 속도는 아마 100을 넘은 듯 했고, 꽤나 위험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운전하는 이는 지금 이 속도조차 만족하지 않는지 더욱 밟았고 엄청난 속도로 차는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름인데도 낮에 비가온데다 고속도로가 산속에 있어 꽤나 서늘한데도 그는 창문을 열어놓고 한손은 창 밖으로, 한손으론 핸들을 잡고서는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고서 운전을 하고있다. 찜통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 아침부터 비가 내렸었다. 오랜만에 시원해져서 기분이 좋았던 그는 오후 7시쯤에 서울에서 온 전화 한통을 받고서 어머니께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 한체 바로 차를 타고 그길로 고속도로로 향했다. 「전우진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무슨 일이죠?」 「김재중씨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어서 병원으로 와 주십시오!」 재중이 쓰러졌다는 소릴 듣자마자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한순간에 밀려오는 걱정과 두려움. 가끔씩 걱정은 했지만 잘 지낼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다리가 불편해도 평소에 체력관리를 하던 그가 갑자기 쓰러질리는 없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놀란 가슴은 지금까지 미친듯이 뛰고 있고 그는 쉬지도 않은체 무작정 서울로 향하고 있다. 부산에서 서울….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달리고 달려도 서울은 아직도 더 가야한다. 그가 아파하고 있을텐데, 분명히 또 힘들어하고 있을텐데, 자신이 옆에 있어야 하는데…. 그가 아플거라 생각하니 그때 당시 얼굴이 떠 오른다. 자동차에 다리가 깔려 괴로워하던 그의 얼굴. 의료진에 의해 실려나가는 내내 아픔을 호소했던 그 고통스럽던 얼굴.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다 자기때문인 것만 같아 눈물이 고인다. 운전에 방해된다고 닦아보지만 눈물은 계속 차 오른다. "난 항상 왜 이러지? …왜 항상 형을 아프게 하는걸까…." 이제 더 이상 안 아파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또 아프다니까 미칠것만 같다. 차라리 서울 내에 있을걸…. 그러면 그에게 금방 갈 수 있을텐데…. 지금와서 후회해봤자지만, 그래도 왜이렇게 후회되는 걸까…. 그는 환자인데, 그것도 자신때문에 다리를 쓸 수 없게 된, 다리에 마비가 와서 곁에서 누군가가 간호를 해 줘야 하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을 내팽겨 치고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 간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나서 무작정 내려 간 부산인데…, 지금은 왜 하필 부산에 왔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난 잘지내」 바보같이 그의 말을 믿어버렸다. 거짓말이었는데…, 잘지낸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는데…, 바보같이 믿어버렸다. 너무 화가나서 잊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아파도 자신에겐 웃으면서 "하나도 안 아파."라고 말하는 사람이란걸…. 그정도로 바보스러운 사람이란걸…. 그런데도 잘 지낸다는 말 한마디에 화가나서…. "…미안해, 형…. 미안해…, 제발… 제발…." "무사해…." * "헉…, 헉…, 어제… 어제 환자 중에 김재중씨 있습니까?" 아침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울에 도착한 우진은 피곤함에 눈을 붙일새도 없이 무작정 병원으로 와서 그를 찾았다. 차트를 뒤지던 간호사는 몇백 몇호 실이라 가르쳐 주었고, 우진은 간호사에게 몇호실인 걸 듣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고 그가 있을 병실로 달려갔다. 벌컥- "…헉…, 헉…. …형…."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로 주저 앉아버렸다. 곁에 아무도 두지 않은 체 혼자서 쓸쓸히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단체 두눈을 닫고있는 그. 링거바늘이 그의 마른 손등에 꽂혀있고 그는 많이 말라버린 몸을 하고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괜찮을 거라고, 형은 아무 일 없을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서울까지 달려왔던 우진은 한순간에 힘이 빠졌다. 저렇게 아팠을 줄이야…, 저렇게 위독했을 줄이야…. 진작에 서울로 돌아올걸…, 그가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진작에 서울로 돌아와 그를 간호해야 했었는데…. "으… 으흑…, 으윽…." 행여 울음소리가 크게 날까봐 억지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를 제어하고 있는데 억지로 깨문 입술 사이로 나오는 울음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뺨을 타고 쉴새없이 계속 흐르는 눈물이 안타깝다. 뒤늦은 후회가 물씬 밀려온다. 놀란 심장은 미친듯이 뛰어대고 놀란 두 눈은 쉴새없이 눈물을 쏟아 붓는다. 놀란 입술은 계속 파르르 떨리고 놀란 온 신경은 몸을 떨게 만든다. "…하나님, 제발… 제발 형을 지켜주세요…." * 달칵. "우진씨?"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힘이 빠질대로 빠진 우진은 힘없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본다. 뒤에는 재중의 담당 의사가 서 있었다. 의사는 우진의 얼굴을 보고 꽤나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재중의 상태를 체크하고서는 꽤나 화난 얼굴을 하고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대체 그동안 뭘 하셨습니까? 김재중씨 신경이 다시 죽어 가고 있습니다. 술, 담배…, 이것들 때문에 지금껏 힘들게 고쳐왔던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한단말입니다!" "…다… 모두… 다… 제… 탓입니다…. 저 때문에… 형이 이렇게 됐어요…." 더 이상 눈물이 나올 것 같지 않던 두 눈엔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의사는 꽤나 당황한 듯 했다. 그리고는 이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진에게 건네준다. 우진은 손수건을 받지도 못 한체 재중의 차갑게 식은 두 손을 꽉 잡고 계속 눈물만 흘려댈 뿐이었다. 결국 손수 우진의 눈가를 닦아주는 의사. 우진은 젖은 두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며 애절한 얼굴로 말했다. "…신경이 죽어가고 있는거라면… 다시 못 걷게 되는건가요…? …그런거에요…?" "…아직… 완전히는 아니니 몸이 회복되면 다시 재활 훈련을 해 봅시다. 1년동안 고생해서 겨우 고쳐왔는데 못 걷게 되면 절망적이잖습니까. …아직 희망은 보이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 때문이에요. 제가 화가나서 형을 놨두고 저 혼자 떠나버렸었어요…. 잘 지내고 있다는 소리에 진짜 잘 지내는 줄 알고 바보같이…. …가끔은 와 봤어야 하는데…, 몇개월동안 한번도 오지 않았어…."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말하는 우진이 많이 안타까운 의사. 그러다가 조금 붉은 우진의 얼굴을 보고 이마에 손을 갖다 대었다. 우진은 차가운 기운에 놀랐는지 그를 바라보았고, 의사는 손을 떼더니 걱정스런 얼굴로 열이 높다며 난리다. …밤새 창문을 열고서 운전을 한게 화근이었나보다. 의사는 진을 일으켜 세우며 어서 진료하러 가자지만 우진은 의사에게 잡힌 손을 억지로 빼내며 다시 재중의 곁에 앉는다. 그리고는 다시 재중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몇개월동안 혼자서 지낸 사람이에요…. 이 사람 두고 갈 수 없어요…. …나 이 사람 깨어날 때까지 여기 있어야 해요…. 그게… 내가 이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는 머리가 꽤나 지끈거리는지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여전히 재중의 손을 꽉 잡은체로 말이다. 그를 지켜보던 의사는 안타까움에 눈을 질끈 감더니 이내 진에게 해열제라도 갖다 준다며 병실을 나갔다. 우진은 의사가 나가자 침대에 엎드린 체로 고개를 돌려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 보기 싫어도… 일어나야 해…. …알았지…?" 이른 아침, 병실에는 우진의 조용한 말이 조용히 울렸다. ──────────────────────────────────────────────── 이제 릭진도 풀어야겠죠.(笑) 지금 이후로 소설 몇편 더 올리고 잠적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말예요. 그래도 그 사이 컴퓨터 할때마다 틈틈히 소설 써 놓을테니 미워하지 마시구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4] 이틀째 계속 내리고 있는 비.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유천은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거실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는 작은 화원같이 꾸며져 있기 때문에 마치 작은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이 곳엔 아버지가 기르시는 난초가 있고, 얼마전에 유환이 선물이라며 유천에게 사다 준 허브 화분도 있었다. 유천은 이 공간을 꽤나 좋아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오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와- 엄청 많이 자랐네?" 유천은 꽤 커다란 나무 앞에 쪼그려 앉아서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흐뭇해 하며 물을 주었다. 이 나무는 윤호와 연애하던 시절, 그러니까 결혼하기 몇일 전 윤호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잘 키워, 라며 나무에 비해 꽤 커다란 화분을 유천에게 안겨주던 그. 유천이 왜 이렇게 큰 화분에 심었냐고 물으니까 윤호는 작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 나무가 자랄수록 우리 사랑도 더 자란단 의미야」 이 말을 한 뒤 꽤나 쑥스러웠던지 한참이나 머리를 긁적이던 그였다. 작은 나무가 심긴 커다란 화분을 들고 어리둥절해 있던 유천은 그런 윤호의 말과 모습에 한참이나 웃었었다. 행복했던 기억. 이젠 이런 기억을 떠 올려도 아프지 않다. 행복했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겼으니까.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넌 이렇게 잘 커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갈라져 버렸어. …미안해서 어떡해?" 푸른 나뭇잎을 많지며 씁쓸하게 웃던 유천. 그때 갑자기 베란다 문이 열리며 유환이 급한 얼굴로 유천을 불렀다. 유천은 무슨 일 있냐고 물었지만 유환은 그저 유천의 팔목을 잡고 현관을 나서 정원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비오는 데 어디…, 저기 사람들 왜 모여있어?" "…가 봐. 어서-" 유환의 재촉에 영문도 모른체 쓰고 있던 우산을 받아들고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유천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아무대답 없으신 두 분.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 한 유천은 그들이 뭘 그렇게 보는가 싶어서 그들의 시선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유…천아…. …박유천…." 잔뜩 술취한 목소리. 이 사람은 누군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주위가 컴컴해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정말 죽도록 사랑한 사람. 이제는 사랑해도 사랑하면 안 될 사람. 그다. 사랑하는 그다. "…아, 아버지. 어, 어떻게 된 거에요? …얘, 얘가 왜…?" 그를 보자 저도 모르게 흥분이 되서 말이 더듬더듬 나왔다. 아버지는 아들의 놀란 얼굴을 보고 한참이나 안타까운 얼굴을 하고 아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벨을 하도 눌러대서 나가보니 와 있더구나. …잔뜩 술에 취한체 말이다. …그리고는 계속 너만 찾는구나." 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시 시선을 그에게 가져간다. 그리고는 조금씩, 천천히 그의 앞에 앉는다. 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대기 시작한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얼굴. 사진속으로만 봐야했던 얼굴이 바로 앞에 있다. 유천은 그의 뺨에 손을 갖다대더니 이내 차가운 체온에 놀라 우산도 놓친체 그를 자신의 품에 꽉 껴안는다. 유천은 자신의 몸이 젖어나가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의 체온이 더 이상 내려가지 못 하게 술에 취한 그를 꽉 안고서는 애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러다가 죽겠어요, 술 깨면 보낼테니까 오늘 하루만 재워요. …부탁해요." "…음…." 아들의 눈빛에 맘이 약해진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를 바라보았고, 할아버지는 한참이나 유천과 유천의 품에서 여전히 의식을 차라지 못한체 계속 유천의 이름을 불러대는 그를 보더니…. "…하연댁, 손님방에 보일러를 켜고 이불을 준비해 놓게." "예, 회장님." 그들의 곁에 같이 서 있던 가정부는 할아버지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이고서 급히 집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쳐다보고있는 자신의 손자에게…. "둘 다 감기걸리겠다. 어서 윤호데리고 너도 집안으로 들어 가." "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유천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의 모습을 보고는 뒤 돌아섰다. 아버지 역시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에 희미하게 웃으시고는 할아버지를 뒤 따라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유천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윤호를 빗속에서 힘겹게 일으켰지만 무게 중심이 안 잡혀 넘어져 버렸다. 그 모습을 뒤쪽에서 지켜보던 유환은 형에게 다가가서 윤호를 자신이 대신 부축했다. "…유환아." "감기 들어, 어서 따라 들어와."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보고있던 유천은 이내 밝게 "응!"이라 대답하며 그들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유환은 1층에 있는 손님방으로 윤호를 데리고 들어갔고, 유천역시 손님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내 가정부 아주머니가 수건을 들고 들어왔고, 유천은 수건을 받아들고서 자신보다는 윤호를 먼저 닦아주었다. 젖은 몸을 침대에 눕히기가 그래서 윤호를 벽에 기대어 앉힌 유환은 그런 유천의 태도가 맘에 안드는지 형의 팔을 잡아 당겨 자신의 뒤로 세운 뒤 손에 들린 수건을 뺏어들다 시피 해선…. "어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와. 그렇게 있다간 감기걸려." "…윤호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어서 말 들어!" 유환이 버럭 소리를 질러버리는 바람에 유천도 어쩌지 못하고 손님방을 나갔다. 유천이 손님방을 나간 후 유환은 윤호의 겉옷을 벗기고 마저 닦아주었다. 윤호는 그와중에도 계속 유천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자신의 형을 부르는게 꽤나 맘에 들지 않았는지 유환은 닦아주던 도중 버럭 소릴 질렀다. "왜, 왜! 박유천 왜 자꾸 부르는데?!" "…유… 천아…. …나… 말야…." "그래, 왜!" 유환은 여전히 짜증을 냈다. 그래도 윤호의 말을 들어보려 귀를 세웠고 이내 윤호의 중얼거림을 듣고 놀란 유환은 그대로 제정신이 아닌 윤호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우리 형한테 그딴 소리 지껄이지마. 더 이상 눈물나오게 만들면 너 죽여버릴거다, 정윤호…." 한껏 눈을 부라리며 협박하듯 말하던 유환은 이내 눈물을 흘리는 윤호를 보고 스르륵 쥐고 있던 멱살을 놓았다. "미안…, 미안해…. 미안, 유천아…." "…박유천, 정윤호…. 둘 다 바보야…." 유환은 속이 타는지 자신의 뒤에 있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바보같은 두 사람때문에 가슴이 내려 앉는 것만 같았다. 제 3자인 자신이 오히려 마음이 심란에 한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샤워를 다 끝낸 유천이 왔을 땐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니 옷으로 갈아입힌 거야?" "…어. 난 자러갈게." 응, 하고 작게 대답하던 유천을 두고 방문을 닫고 나가던 유환은 이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무섭게 유천을 쳐다보며 무서운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서 자지 말고, 형방에 가서 자." "…으, 으응…." 유환은 미심쩍었지만 시간도 많이 늦었고, 피곤한터라 그대로 방으로 올라갔다. 유환이 가고나자 드디어 둘만 있게 되었다. 유천은 윤호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젖은 윤호의 머리칼을 쓸어넘겨주었다. "…왜… 찾아 온거야…? …뭐때문에 술 마신거야, 그것도 이렇게 많이…." 그대로 잠들어버린 윤호에게 말을 걸던 유천은 지금 상황이 꼭 신혼일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웃어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가 너무 슬퍼 보였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너 안 보고 산다는게 이렇게 힘들줄 몰랐어. …그런데 오늘 너 보니까… 너무 좋은 거 있지…. 나 지금 너무 좋아…. …내가 매달리는건 싫은데… 어쩔 수 없는걸…." '좋으니까….' * 새벽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으…, 머리야…." 잠시 잠에서 깬 윤호는 낯선 환경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침대에 엎드려있는 이를 발견한다. 익숙한 모습…. 어제 술을 마시는 내내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이 곳이 그의 집인걸 깨 달았다. 비도와서 밤동안 추웠을텐데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만 입은 그가 걱정스럽다. 침대에서 내려온 윤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깨끗하게 세탁되어 개켜있는 자신의 옷을 보고 갈아입었다. 입고있던 옷을 자신의 옷이 있던 자리에 잘 개켜 놓고 그의 곁에 다가와 앉았다. 살이 많이 빠졌지만 그대로다. 자신이 사랑했던 모습, 싫증냈던 모습. 그 모습 그대로이다. "…정말… 미안해…." 아내였던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있는 그를 안아들어 침대에 눕혔다.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준 뒤에야 그는 걱정거리가 사라졌는지 한층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는 새벽의 푸른 빛을 통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chu- 그의 입술에 작게 입맞춤을 했다. 얇은 입술도 그대로고 마찰할때의 그 느낌도 그대로다.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이런 것도 해선 안 되겠지…?" 잠시 의미모를 미소를 짓던 윤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그의 모습을 보았다. 조심히 문을 닫고 나자 웬지 모를 슬픈 기분에 아픈 미소를 지었다. 한동안 방문에 기대어 서 있다가 이내 그의 집을 나선다. 그렇게 그들의 짧은 재회가 끝났다. ──────────────────────────────────────────────── 마무리가 엉성했습니다.(笑)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뻔뻔스러운;) 아, 오늘부터 12월 초까지 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할 수 없게 되 버렸거든요. 그러니 65편은 조금만 기다려 주셔야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5] "…예.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형 의식 돌아올 때 까지는 못 갈 것 같아…. …응." 핸드폰 배터리가 다 나가는 바람에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그. 부산에 있는 집에 배터리 충전기를 놓아두고 와서 폰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갑자기 없어진 자신때문에 많이 놀라셨을 어머니가 생각나 서울에 도착한 지 사흘만에 전화하는 중이다. 최대한 상황을 자세히 말씀드린 후에야 수화기를 놓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는 재중의 담당의사가 타고있었다. 우진은 간단히 인사를 했고, 의사 역시 간단히 답인사를 했다. "김재중씨가 깨어났으니 이제 마음 편하시겠네요." "…예? 형이 깨다뇨?" "아…, 아직 모르셨어요? 간호사에게 호출이왔는데 김재중씨가 깨어났다더군요. 아마 링거를 갈고 있던 중에 의식을 찾았나보더라구요." "저, 정말이죠?" "그럼요. 저도 지금 병실로 가는 길이니까 같이 가 보도록 하죠." 우진은 의사의 말에 놀란 얼굴을 하더니 이내 엘리베이터가 빨리 병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길 바라며 바뀌는 숫자만 보고 있을 뿐이다. '땡-'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서고 우진은 문이 열리자 마자 튕기듯 나와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병실로 향했다. "안 들어 가세요?" "…자신이…, 없어요…." "그럼 제가 보고 나올테니 앉아서 잠시 쉬십시오." "…예…." 당장이라도 병실로 들어갈 것만 같던 우진은 병실 문 앞에 우뚝 서 버렸고 차마 문을 열지 못 하고 있었다. 우진의 뒤를 따라 온 의사는 그런 진에게 병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시 쉬라고 했고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로 가서 앉았다. 의사는 그런 진을 한번 바라보고 병실로 들어갔다. "하아…." 항상 바래왔는데, 그가 어서 빨리 깨어나길 바래왔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가 깨어났다는 소릴 듣고 너무나 흥분됐었는데 당장 병실로 가서 깨어났을 그를 봐야하는데 병실앞에 서는 순간 갑자기 다가오는 두려움에 차마 문을 열지 못 하고 잔뜩 얼어버렸다. …뭐가 두려운 걸까…. 몇분이 지났을까. 병실에서 의사와 의사가 도착하기 전 미리 와 있던 간호사들이 나왔고, 의사는 차트를 간호사에게 넘겨주다 자신을 보고 있는 우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진을 보고서는 싱긋 웃으며 "들어 가 보십시오."라는 말만 남기고 코너로 모습을 감췄다.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은 의사가 지은 미소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두려운 걸까. 우진은 떨리는 걸음으로 몇발 안 되는 병실로 들어섰다.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그…. 하지만 오늘은 눈을 뜨고 있다. 항상 감고 있던 그 두눈을 뜨고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깼…네…." 이런 단순한 말이 아닌 많은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그에게 어리광 피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물을 참는다고 말을 길게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진을 보고 항상 지어주던 그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네…."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왜 울컥해졌을까…. 억지로 참고 있는 눈물은 눈치도 없이 가득 고이고 볼을 타고 흐른다. 우진은 그에게 뒤 돌아서며 말했다. "…깼…으니까 나… 이제 돌아가야 겠다…." "…우진아…." "…나…, 아직… 형에 대한 감정… 다 없애지 못 했어…. 형이 잠시만 떨어 져 있자며…. 떨어져 있다보면 다시 돌아 올 거라고…. 난 아직 형이랑… 같이 살 만큼 형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지 못 했어…. …형 깼으니까… 나 이제 다시 내려갈게…." 그를 차마 보지 못 하는 진. 그를 보고 얘기하면 눈물만 잔뜩 흐를 뿐 한 마디의 말도 못 할 것만 같아 돌아서서 얘기했다. 다시 내려가겠다는 말을 듣는 재중의 얼굴도 그리 좋지는 못 했다. 다정하게 짓고있던 그 미소는 얼굴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나랑… 떨어 져 살 자신 있으면…, 나 보고 얘기해…." "……잔인하다고 생각 안 해…?" 자신을 보고 얘기하라는 말에 우진은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려 보내며 재중에게 물었다. 여전히 뒤돌아 선 체로…. 재중은 잘 일으켜 지지 않는 상체를 어렵게 일으키며 진에게 말했다. "…난 이제 너 없이 살 자신 없어…. …필요해…. 니가 정말 필요해…." "…형… 정말 잔인하다…. …보낼 땐 언제고…. 잘 있다고 할 땐 언제고…. 사람 속 그렇게 뒤집어 놓고서 이런 모습으로 누워있기나 하고…. 정말… 형 잔인한 거 이제 알았지, 뭐야…." "…그래, 나 너한테 잔인한 사람이야…. 하지만…. 니가 없는 그 짧고도 긴 시간동안 알게 됐어. …난 너한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는 걸…. 내가 다시 걸으려고 열심히 치료 받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이유가 뭔지 아니…?" 재중은 자신에게 뒷모습을 보인 체 서 있는 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 진을 보며…, 자신에게 뒤 돌아서 울고 있는 진을 뻔히 알면서도 다가가서 안아주지 못 한다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재중은 잠시 끊었던 말을 한참이나 뜸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때문이야…. …나 자신을 위해 걷고 싶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 없었어. 평생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살면 되니까…. 하지만…, 하루 몇번씩이나 나 때문에 우는 널 보면… 난 정말 걷고 싶었다…. 너 우는 모습 보기 싫어서… 그래서, 그래서 얼마나 걷는 연습을 했는지 몰라…." "……거…짓말…. 다 거짓말이잖아! 형은 나 안 좋아하잖아!" 우진은 뒤 돌아섰고, 우진이 뒤 돌아 선 순간 재중은 그 다정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우진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어 있었고, 재중은 그런 진에게 자신의 양팔을 벌렸다. 우진은 뭐에 이끌린 듯 그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안겼다. 재중은 자신의 품에 우진이 안기자마자 벌렸던 양팔로 진을 꽉 껴안았다. "…내가 사는 이유는…, 이제 니가 돼 버렸어. …니가 떠나고 나서 내 생활은 엉망이 됐거든…. 걸어야 하는 의미조차 잃어버렸어…. 그리고… 정말 바보 같았던건…. 내가 이렇게 엉망으로 있으면 니가 돌아 올 거란 생각을 했단 거야…." "………." "다행히도…, 그 생각은 현실이 됐지만…." 그는 잠시 쓴 미소를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직접적으로 얘기할게. …내 곁에 있어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 너 일 수 있게 내… 곁에 있어줘…. 더 이상은 어디 가지 말고…, 내곁에만 있어줘…. 앞으론 너한테 이런 고생 안 시킬게…. 병원 치료도 받고 해서 꼭 걷게 되면…. 그땐… 그땐…. 내가 너 지켜줄게…." 재중의 말이 끝나는 순간 숨이 거칠어졌던 우진은 큰 소리로 그의 품에 안겨 울었고, 재중은 그런 진을 소중히 감싸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진에게 있어 그는 항상 멋진 남자였다. 충분히 사랑할 가치가 있는 남자…. 자신이 같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도 그 남자가 재중이란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이렇게 멋진 남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되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이 남자의 '사랑'이 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참이나 울었을까…? 우진은 아이처럼 울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워 차마 재중의 품에서 얼굴을 떼지 못 하고 재중은 그런 지에게 얼굴 좀 보자며 안달이다. 결국 우진은 고개를 들었고 재중은 눈과 코가 새빨개진 우진의 얼굴을 보고 작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의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걷어낸 뒤 작게 입맞춤을 했다. "…사귀자…. …아껴줄게, 사랑해 줄게. 그러니까… 내 애인 되 줄래…?" "……응…." 이제서야 하늘이 맑게 개이는 것 같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따뜻한 햇빛이 고개를 내미나 보다. 두 사람의 사랑에도 드디어 햇빛이 고개를 내밀었나 보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6] 딸랑- 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페 안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다름 아닌 유천. 유천은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더니 이내 어느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창가쪽 자리에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잊을래야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남자가 앉아있다. 유천의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그는 인기척을 느꼈던지 유천을 바라보았다. "…안 나올줄 알았어…." "…아직 니가 불러도 안 나갈 정도 아니야." 유천의 말에 윤호는 조금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웃음이 어찌나 힘이 없어보이던지 그와 얼굴을 마주한 뒤 계속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던 유천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왜 저렇게 헬슥해졌는지. 곧이어 종업원이 왔고 둘은 아이스티를 시켰다.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더운 여름에 카페에 오면 항상 시원한 아이스티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닮아있는 그들이었다. "…어쩐 일이야…? 날 다 불러내고…." "내가 말했던 그대로야. 너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 "…무슨 말인데?" 뭔가 서두르는 듯한 유천의 모습에 윤호는 서운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그렇게 서두룰 필요 없잖아." 라고 작게 중얼거린다. 유천 역시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는 듯한 생각에 자신의 앞에 놓인 물잔을 만지작 거렸다. 그때 주문한 아이스티가 나왔고,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차가운 아이스티 잔만 손에 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날…, 주사가 심했지?" "…응? 아냐, 아니야." "어른들께서… 안 좋아하셨지?" "…뭐, 할아버지가 너 재우라고 했는걸…." 앞의 말은 모두 생략. '내가 부탁해서'라는 말을 싹 지워버리고 말하는 유천. 그래서 그런지 윤호에게 향해 있던 시선이 약간 틀어졌다. 윤호는 그래, 라는 말을 하고서는 아이스티로 목을 축였다. 유천 역시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시더니 두 손으로 잔을 감싸쥐고 잔 안에 얼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지금 니가 왜 날 불렀는지 모르겠어. 나한테 더 이상 할말 같은 건 남아있지 않잖아." "…할… 말이 생겼어…. 지금의 너한테 해도 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망설이는 듯한 윤호의 대답. 유천은 그런 윤호의 대답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뭔가 힘들어하는 듯한 그의 얼굴. …그런데 갑자기 왜 기대감이 생기는 걸까…. 비오던 날 밤 술에 잔뜩 취해 의식도 없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집까지 찾아온 행동과 갑자기 할 말이 생겼다는 말, 그리고 오늘따라 자주 지어주는 (비록 밝은 미소가 아니지만) 미소. 그런 그의 행동에 조금씩 고개를 내미는 기대감. 다시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 줄지도 모르는 그런… 어쩌면 너무 바보같을 지 모르는 기대감…. "……사고를… 쳤어…." 그의 힘 없는 미소, 힘 없는 몸짓, 힘 없는 말투…. 사고를 쳤단다. 무슨 사고일까? 26살이나 먹어서 어린 학생들처럼 싸움을 했을리는 없고 도둑질이나 할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니고(오히려 잘 사는 축에 속한다.) 유천은 무슨 말이냐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다른 곳에 두었던 시선을 유천에게 가져가며 힘없는…, 지쳐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를 가졌대. …나, 정윤호의… 아이를 가졌대." 쿵- 뭔가 쿵하고 내려앉는다. 쿵하고 내려앉았던게 이제는 미친듯이 뛰어대기 시작한다. 쿵쾅, 쿵쾅- 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아이를 가졌다니, 그것도 정윤호,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니…. 유천은 최대한 자신을 안정케 하려고 숨을 들이 마셨다가 내 쉬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 여자가 누군데…?" "…저번에 집에 한번 놀러왔던… 그 아이." 집에 놀러 온 여자라면 유천의 머릿속에 단 한명밖에 없다. '권미야'라고 하며 자신을 소개하던 꽤 예쁘게 생긴 여자. 겨우 한번봤을 뿐인데 그녀는 꽤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예쁜 여자'의 얼굴에 속하는 흔한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최초로 집에 '놀러왔던' 여자였고, 정윤호가 감싸주었던 여자였다. 그가 권태로움을 느낄때부터 집에는 여자들의 출입이 잦았다. 다 하나같이 창녀같은 여자들 뿐이었기에 하얗고 깨끗해 보였던 그녀는 더욱 인상에 남았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녀라 다행일지도 모르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성관계를 맺던 그런 여자들과 다른 여자라 다행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권… 미야라는… 그 여자니…?" 분노를 억지로 누르며 물었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물음에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하…, 너란 인간은…."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눈물은 잔뜩 고여서 깜빡이면 당장에라도 흐를 정도였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보고 한숨을 내 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내 불을 붙이고 짙은 연기를 내뱉었다. 화가났다. 평소때 꼬박꼬박 챙기던 콘돔은 어떻게 했길래 그녀가 임신을 했는가 싶어서, 또 아무하고나 성관계를 맺었는가 싶어서 유천은 윤호를 쳐다보며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처신하고 다니길래 그 여자가 니 아이를 가져?!" "박유천!" 흥분한 탓에 소리가 커졌다. 조용하던 카페엔 유천의 목소리가 꽤나 크게 울렸고, 그 덕에 카페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윤호는 잔뜩 흥분해 목소리가 높아진 유천을 부른 뒤 인상을 썼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윤호의 표정을 본 뒤 유천의 흥분은 약간 가라앉았지만 목소리의 크기만 다시 작아졌을 뿐 숨이 거친 걸 보면 아직 흥분을 가라앉힌 건 아니었다. "……자."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하얀 카드를 꺼내어 유천에게 내밀었다. 유천은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흰 카들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웬지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손은 어느새 그 카드로 향하고 있었다. 부들 거리는 손은 조금씩 카드를 열었고…. "으… 으윽…, 윽…!"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한 유천의 눈에선 비내리듯 눈물이 흘러내렸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카드를 여는 순간, 신랑 정윤호, 신부 권미야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내려 앉았다. 안 그래도 눈에 잔뜩 고여있던 눈물이 수없이 흘러내렸다. 그런 유천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윤호도 그를 달래줄 방법을 찾지 못 했는지 그저 담배만 태울 뿐이었다. 유천의 흐느끼는 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결국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리는 유천이었다.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다시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아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그의 아일 그녀가 가졌다는 게 너무나 화가나고 억울해서…. 이런 현실이 너무나 짜증나고 화가나서…,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으윽…, 윽…, 나… 나 갈게…, 흐읍…." 끝내 울음을 그치지 못 하고 자리에서 일어 서 뛰쳐나가다 시피 카페를 나간 유천. 유천이 나간 자리에는 윤호가 준 청첩장과 유천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만이 남아있었다. 그가 나가고 혼자남은 윤호는 소파에 등을 기대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자 한숨과 함께 하얀 연기가 카페의 어두운 조명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게 카페 천장을 바라보는 윤호. '…술에 잔뜩 취해서… 구분도 못한 체… 옆에 있던 그 아이가 넌 줄 알고… 안아서 내 아일 갖게 된 걸 안다면, 너… 나 안 미워 할래…? 관계를 갖는 내내… 넌 줄 알고 니 이름 불렀다면… 넌줄 알고… 안아서… 그 아이가 인심했다는 사실을… 니가 안다면… 그 사실… 믿어줄래…?' 지그시 감은 그의 두 눈가가 젖어있었다는 걸 그 누구가 알았을까…. ──────────────────────────────────────────────── 아, 정말 저희 집 컴퓨터를 저주합니다. 66편 다 써놓은걸 다 날려버렸지 뭐예요. 이 망할 컴퓨터가 에러가 나서 말이죠ㅠ 그래서 다시 다 쓴거 있죠. 휴우, 이 앞전의 내용이 더 좋은 것 같은데, 제가 그걸 다 똑같이 기억할 순 없으니 구성만 똑같게 썼어요, 용서해주세요ㅠ 아, 그리고 앞으로 저 감상에 답변 달기로 했어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때처럼 열심히 해 보렵니다. 모두들 '힘내'라고 말해주세요.(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7] "무리하는 거 아니야?" "괜찮대도- 의사 선생님도 꾸준히 운동만 하면 괜찮다 했잖아." "그래도…." "역시 집이 최고다-" 하도 조르는 탓에 재중을 퇴원시키긴 했지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저렇게 멀쩡해 보여도 어느 순간에 다시 아플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다행히 의사도 다시 물리치료만 꾸준히 받으면 될 거라 하지만 우진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재중은 소파에 앉아 오랜만에 tv를 켰고, 우진은 먼저 부엌으로 가 술병들 부터 치웠다. "형, 이 많은 걸 혼자 다 마셨어?" "어? 아…, 그게- 그렇게 되더라고." 재중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우진은 못말린다는 표정을 하고서는 유리병을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우진이 부엌을 치우고 있을무렵 재중은 혼자 마음속으로 난장판이었던 집을 조금이나마 치웠던 게 다행이라 생각하고있었다. 우진은 술병이 왜 이렇게 많냐고 투덜거렸고, 그런 투덜거림을 들으며 재중은 또 한번 미리 절반의 병들을 갖다 버렸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이런 점에서 우진이 없는 동안 얼마나 엉망적인 생활을 했는지 알아 볼 수 있다. "우진아, 너도 그만 치우고 와서 쉬어." "형이 워낙 더럽게 생활해서 쉴 수가 없잖아, 반성해." "반성-. 반성했으니까 같이 tv보자." "그게 무슨 반성이냐?" 재중의 반성아닌 반성에 우진은 피식 웃었고, 병을 넣은 봉지를 묶어 현관앞에 갖다 놓았다. 결국 우진은 그대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안 대 청소를 해 버렸다. 한동안 빈집이 되어서 그런지 먼지도 꽤 많이 나왔다. 먼지를 뒤집어 써버린 우진은 땀도 나고 해서 샤워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욕실에 가운이 있어서 걸치고 나오긴 했다만 자신이 예전에 생활하던 방에 들어가도 그때 옷을 다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간 터라 옷도 없고해서 일단 재중에게라도 빌리자라는 심산으로 재중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 옷장을 뒤적거리고 있을때 뒤에서 누군가 진을 껴안아왔다. "형?" "…뭐 하는거야…." 우진이 청소하는 사이 방에 들어와 자고 있었던 탓인지 목소리가 아직도 잠에 취해있다. 우진은 뒤에서 자신을 안은 재중을 상관치 않고 여전히 옷장을 뒤적거리며 옷을 찾았다. "어, 여기 넣어놨던 것 같은데…." "뭐 찾는데…?" "아, 그게… 옷이 없어서 일단 형거라도 입으려고. 내가 형 속옷 여기 넣어뒀지 않았었나?" "두달 정도 지났다고 그새 옷있는 곳도 잊어버렸냐? 이쪽이 아니라 오른쪽 서랍이잖아." "아, 그랬나…?" 우진은 싱긋 웃으며 오른쪽 서랍으로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재중이 뒤에서 끌어 당겼다. 그 덕분에 우진의 손이 서랍에 닿기도 전에 몸이 재중에게 안겨버렸다. 우진은 고개를 틀어 재중을 바라보았고 그 순간 재중의 입술이 우진의 물기 어린 입술에 닿였다. 우진은 처음에 놀란 듯 하나 재중의 감은 두 눈을 보고 자신 역시 두 눈을 감았다. 얼마후 우진의 입속으로 재중이 혀가 침범했고, 혀로 인해 깜짝 놀란 우진은 두 눈을 떴고 조금씩 재중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세부터 불편한 자세이고, 분위기도 그렇기 때문에 쉽게 재중을 밀어낼 수 없었다. "흐읍…, 하아…, 형, 잠깐-" 재중은 왜 그러냐는 듯한 눈으로 진을 바라보았고, 우진은 작게 "힘들어."라고 말한다. 재중은 그런 우진의 모습에 웃음 짓더니 짓궂게도 우진의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대며 "힘들어?"라고 물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기에 우진은 꽤나 놀라며 그를 불렀고, 그는 꽤나 적극적인 모습으로 가운 밑으로 들어난 다리 위에 손을 얹었다. 순간 우진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이건 아니다 싶어 그를 밀쳐냈다. "…우진아…?" "…빠, 빨라-! …키, 키스도… 형하고 오늘 처음인데…. 그리고… 다른 사람 같아…." 얼굴이 새 빨게 져서는 버벅거리는 우진이 귀여워 그의 젖은 머리를 한껏 부비적 거렸다. 그리고는 그를 꽈악 껴안았다. 우진은 얼굴이 새빨개 진 체 재중의 품에 안겼고 진을 안고있는 그 순간에 재중에게 든 생각이라곤 황당하게도 내가 우진이 앞에서 너무 건전하게 생활했었나, 라는 생각이었다. 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만 둘까, 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그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우진아…. 너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어…?" "그게 무슨 말… 으앗, 형!" 엉뚱한 말을 내 뱉고는 우진의 목덜미를 물어버리는 재중의 행동에 우진은 놀라서 몸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방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어쭈구리- 언제부터 이런 사이로 발전하셨나?" ", 창민이 형?" 우진은 울상이 된체 그를 불렀고 재중도 창민이란 소리에 우진의 목덜미를 놓아주고 그를 바라보았다. 창민은 그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관찰하듯 쳐다보았다. 한쪽 어깨를 훤히 들어내고 가운 밑으로 들어난 다리 위엔 재중의 손이 얹어져 있는 우진의 모습. 창민은 진을 재중에게서 빼내어 주었고, 우진은 재중에게서 빠져 나오자 마자 창민을 지나쳐 맞은편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여전히 바닥에 앉아있는 재중은 창민에게 손을 내밀며…. "일으켜줘." "몸도 정상이 아닌 녀석이 잘도 덮친다?" "김재중이 어디 가겠냐…." 재중은 창민의 부축을 받아 침대에 앉았다. 창민은 자신이 와서 다행이라며 조잘대었고, 재중은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다. 창민은 현관쪽을 가리키며 열려있던데, 라고 말했고 재중은 안 잠궜었나, 라고 하며 중얼거렸다. 창민은 그런 친구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치며 소리쳤다. "아예 끝가지 가지 그랬냐?" "너때문이잖아…." "하긴, 니가 아프고 나서 조용하다 했다. 그 바람둥이 녀석이 어딜 가겠어. 언제부터 그런 사이 됐냐?" "한… 2주 됐는가…."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던 두 사람. 어느새 얘깃거리가 떨어지자 재중은 왜 왔냐고 물었고, 자신이 온 이유조차 잊고 재중과 얘기를 나눴던 창민은 그제야 자신이 왜 왔는지 생각이 났는지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며 재중에게 하얀 카드를 내밀었다. …윤호가 유천에게 내밀었던 카드와 똑같은 모양의 카드. "이게 뭐냐?" "…청첩장." "결혼 해?" "내가 아니라…, 니 죽마고우." 재중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카드를 펼쳤고 이내 굳어버린 얼굴로 이게 뭐냐며 창민에게 물었다. 창민은 어제 저녁 그를 만났고, 실수를 해서 애가 생기는 바람에 결혼하게 됐다는 얘기까지 상세하게 재중에게 말해 주었다. 창민은 담배를 물고 창가로 향하며 말했다. "…박유천 불쌍해서 어떡하냐…. 울고있을 게 뻔한데…." "…제일 불쌍한 건 그 녀석이야." "뭐…?" 창민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재중을 바라보았고, 재중은 청첩장에 적힌 '정윤호'란 이름을 슬픈 눈으로 바라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제일 불쌍한 건 박유천이 아니라 정윤호라고…. "…유천인 위로라도 받을 수 있잖아…. 주위사람들이 다 보살펴주잖아. …하지만…. 정윤호는 그게 아냐. …정윤호를 달래 줄 사람따위는 아무도 없어. …박유천을 버리는 그 순간부터…, 정윤호는 혼자인 거야. 욕이며 비난이며 다 듣고도… 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살아 가야해. 처음부터 힘든 감정 다 표현하지 않아서… 끝까지 표현하지 못 해. …그렇게 그녀석은 혼자서 끙끙 앓다가 상처란 상처는 다 받고 죽어갈지도 몰라." 정작 불쌍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정윤호'였다. 박유천도 아닌 …정윤호였다. 그는 냉정했다. 그래서… 끝까지 냉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감정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상처를 받아도 혼자서 앓아야 한다. 박유천과 이혼하는 그 순간부터 정윤호는 나쁜 사람이었다. 박유천이 동정을 받는다면 정윤호는 비난을 받았다. 분명히 그 역시 힘들텐데 그는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 한다. 그는 어쩌면 평생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군. 정작 제일 불쌍한 사람은… 정윤호였어. 혼자서 곪을데로 다 곪은 가슴을 안고서 냉정한 척, 차가운 척 다 하다가… 그 녀석…, 죽어버릴지도 몰라." 창민역시 그의 말에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순간에 그들의 분위기가 가라 앉아버렸다. 가여운 사람, 불쌍한 사람, 외로운 사람… 어쩌면 가슴에 제일 멍이 많이 들었을… 그런 사람, 정윤호. 재중과 창민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 그저 가슴이 무겁기만 했다. 여름인데도 유독 바람이 차가웠던 밤이었다. ──────────────────────────────────────────────── 이번 편엔 제 생각을 넣어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정윤호씨를 욕하시기에 변호 차에 제 생각을 재중씨 말에 반영시켜 봤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짜 불쌍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정윤호씨가 아니라도…, 전 이 남자 주인공이 정말로 불쌍할 것입니다. 정작 죽고싶을 정도로 힘든 사람은 어쩌면… 박유천씨가 아니라 정윤호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소설 후기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인걸 알아주셨음합니다(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8] 툭- "고맙게 잘 쓸게, 귀여운 형아-" 캡모자를 깊게 눌러 쓴 세명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들은 넘어져 잘 일어나지 못 하는 그에게 지갑을 툭 던져주고는 원래 지갑에 있었던 돈을 보여주며 잘 쓴다는 말을 하고서는 그대로 어둑한 골목을 나갔다. 바닥에 주저 앉은체 반격도 못 하고 그대로 돈을 뺏긴 것이 분한지 그들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그는 다름 아닌… 선우였다. "…씨발,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삥이나 뜯어…?" 아까 차마 하지 못 했던 말들을 혼자 남은 지금에서야 하는 선우. 혼자 병원을 다녀 오던길에 꽤 늦어버린 것 같아 안 좋은 몸으로 너무 성급하게 걸었던 탓인지 숨이 가빠서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모자를 쓴 세명이 그대로 자신을 끌고서 어둑한 골목으로 들어오더니 그대로 자신을 넘어뜨리고 옷을 뒤져 지갑을 찾아 돈을 꺼내가는 것이 아닌가. 쉽게 말해서 '삥 뜯긴' 선우였다. "…개새끼들, 돈이 얼만데…. …으윽-! …씨발…, 못 일어나겠어…." 일어 나보려 했지만 몸이 일으켜 지지 않았다. 과다 복용한 후 약이 신경을 약하게 만들어 안그래도 툭하면 넘어지곤 하는데 밀쳐진데다 무릎을 걷어차이기까지 했으니 똑바로 설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거기다가 어둑하고 깊은 골목치고 폭이 넓어 벽을 집고 일어 설 수도 없었고(현재 골목 중간에 주저 앉아있다) 워낙 사람들이 안 다니는 곳이라 그런지 딛고 일어설 것도 없었다. "…아파…." 팔이 쓰아려서 봤더니 꽤 심하게 찢어져서 벌써 피딱지가 굳고 있었다. 선우는 인상을 쓰더니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옆에 내팽겨진 가방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선우는 기다시피 해서 가방을 주어와 폰을 찾아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플립을 열어 '통화'를 누르곤- "나 데리러 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 어디 있길래? "몰라, 어두운 골목이야. 여튼 빨리와. 못 일어서겠어." -어두운 골목이 한 두개냐? 너 무슨일 생겼어?! "…명 슈퍼…. 지금 신명 슈퍼라는 간판이 보여." -신평 슈퍼? 꽤 먼데…, 알았어. 거기서 꼼짝말고 기다려! 창민의 전화였다. 선우는 한결 마음을 편하게 가지며 이왕 옷 더럽혀 진 거, 눕자라는 식으로 가방을 베개삼아 꽤 더러운 골목위를 그냥 누워버렸다. 이렇게 길바닥에 누워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다. 세상이 틀어진게 꼭 딴 곳 같다. 그렇게 눈을 뜨고 한참이나 세상을 바라보던 선우의 눈이 조금씩, 조금씩 감겼다. * "……아파…." "…어디 아파…?" "………." 잠결에 아프다고 한 선우는 슬며시 눈을 떴다. 그대로 잠 들어버렸던가…. 창민은 선우의 말에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선우는 끝나가는 여름의 밤 바람에 추위를 느끼는 듯 따뜻한 그의 목덜미를 더욱 껴 안았다. 창민은 선우를 고쳐 업으면서 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집에서 많이 먼 곳이야?" "…조금. 그냥 차 끌고 나올 걸 그랬다. 그런데 어쩌다가 거기 누워서 자고 있던거야?" "나 자고 있었어…?" "길바닥에 퍼질러져 자고 있더니만." 창민의 말에 선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말좀 예쁘게 하라며 뭐라했다. 창민은 그런 선우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다시 한번 선우를 고쳐 업고 걸었다. 선우는 창민의 등에 머릴 기대며 여전히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삥 뜯겼어." "어쩐지 지갑이 나와 있더라-. 그 나이에 삥 뜯기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셋이나 덤볐어." "뭐, 이왕 없어진 돈은 어쩔 수 없으니 불쌍한 사람한테 기부했다고 생각해. …아, 그나저나 지금 내 동생이 기숙사에서 나와 집에 있거든, 괜찮겠지?" "…너 외동아들 아니었어?" "아, 너는 모르겠구나. 그러니까… 너네 가족이 대전으로 내려간 후…, 음- 니가 8살에 대전갔으니까 너 가고 1년 후에 엄마가 아일 낳았거든. 그러니까 9년 연하 동생." 창민의 현재 나이가 26살이니까 동생은 17살이다. 창민하고 5살 차이나는 선우에게도 창민의 동생은 까마득한 동생이었던 것이다. 선우는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에 안심하고 여전히 창민의 등에 편하게 기댄체로 말했다. "니 동생 말야…." "…응." "…너 안 닮았음 좋겠다." "왜?" "……비밀." 한참동안 뜸을 들이던 선우는 한참후에야 '비밀'이라며 말했다. 창민은 싱겁게 뭐 하는 짓이냐고 묻더니 이내 웃어버렸다. 선우는 밤하늘에 뜬 달을 보며 창민의 내음을 맡았다. 그리고는 창민이 보지 못 하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말했다. '…너 닮아서…, 너 말고 니 동생한테… 내 심장이 두근거리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니 동생은 너 닮으면 안 돼…. 내 심장이 두근거릴 수 있는 사람은… 너 뿐이어야 하니까….' 달칵.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머- 선우야. 괜찮니?" "아, 예." 창민의 어머닌 창민의 등에 업힌체 많이 더럽혀진 모습을 하고 있는 선우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고, 선우는 아직도 창민의 등에 업혀있는게 머쓱했던지 창민의 등에서 내려왔다. 다리에 힘을 주지 못 해 넘어질 뻔 했지만 창민이 잡아주어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다. 창민의 어머니는 선우에게 씻고 내려오라 했고, 창민에게는 신후(창민의 동생 이름)에게 밥 먹으로 내려오라고 전해주라 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갔다. "혼자 씻을 수 있겠어?" "씻을 수 있어." 혼자 씻을 수 있겠냐는 창민의 물음에 냉정하게 말하고는 벽을 집어 몸을 지탱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선우. 그런 선우를 보고 피식 웃고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창민. 선우의 옷때문에 같이 더럽혀진 옷을 막 벗고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비명소리에 문을 열고 맞은편 방(선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야!" 창민이 문을 열고 들어온 방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더렵혀진 옷을 다 벗지도 못 한 체 침대에 쓰러져 있는 선우와 그런 선우의 위에서 선우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자신의 동생 신후의 모습이 창민의 눈 앞에 펼쳐졌다. 창민은 자신의 동생을 선우의 몸 위에서 떼어내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야, 김신후. 넌 어째된 게 본지 얼마 됐다고 덮치려 드냐?"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저, 저! 하여튼 저 인간이 소리쳤단 말야!" "쟤가 내 지갑에서 돈 꺼내갔어!" 신후가 창민의 오해를 풀기도 전에 신후에게서 몸이 자유로워진 선우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창민에게 이르듯 말했다. 창민은 뭐, 하고 큰 소리로 묻더니 이내 자신의 동생을 노려보며 그대로 동생의 귀를 잡아 끌고 선우의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문을 닫기 전 선우에게…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내 방으로 와, 약 발라줄게." "아야, 아프다고, 혀엉-!" "조용히 해, 니가 뭘 잘했다고!" 쾅-!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참이나 시끄럽더니 이내 2층에서 내려갔는지 잠잠해졌다. 시끄러운 형제의 등장이 사라지자 선우는 숨을 돌리며 더럽혀진 옷부터 벗었다. 그리고는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들고 욕실로 향했다. 몸에 물을 묻히고 비누칠을 한 다음 욕조에 물을 받아 뜨거운 물에 조금씩 몸을 담구며 욕조에 들어 가 앉았다. "…그 새끼가 심창민 동생이라고? …닮아도 너무 안 닮았잖아…." 창민의 동생이라 한 소년은 아까 선우의 돈을 빼간 세명중에 한명이었다. 모자를 고쳐 쓴다고 잠시 모자를 벗었을때 분명히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세상이 아무리 좁기로서니 그 세명 중 한명이 창민의 친동생이었다니. 선우는 황당함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너무 기가차서 말이다. 하지만 그와중에 든 생각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보니 창민의 동생의 얼굴이 창민과 많이 닮았다는 것이었다. "닮았음 뭐해…, 인격체가 다른데…." 한참을 툴툴거리던 선우는 어느새 창민을 좋게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괜시리 물을 흐트렸다. 시간이 꽤 많이 흘렀음을 깨달은 선우는 물기를 닦고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 순간, 욕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문제의 '김신후'가 들어왔다. "야! 너 뭐야, 니가 띨빵하게 삥 뜯겨 놓고 어디다 일러?!" "김신후! 거기서 나오지 못 해?!" 신후의 목소리에 창민이 달려왔고, 다시 물속에 몸을 담그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있는 선우에게 한참 따지고 있는 자신의 동생을 끄집어 내며 선우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문을 닫고 나갔다. 한순간에 지나간 상황에 선우는 한동안 멍해 있더니 이내 창민까지 왔다 갔다는 사실에 얼굴이 새빨개 지면서 몸을 웅크렸다. "뭐야, 저 김신후란 애!" 웬지 만만치 않은 사람이 나타난 것 같다. ──────────────────────────────────────────────── 아, 원래 생각 없던 캐릭터 '김신후'군. 오늘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떠오른 인물입니다. 선우군과 붙여놓으면 비슷한 성격에 잦은 충돌로 재미를 제공해 줄 것 같은 느낌에 등장시켰습니다. 어떠신가요, 신후군의 출현이 맘에 드십니까?(笑) 아, 이번엔 음악을 깔지 않았어요. 그 점에 대해 죄송하구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69] 달칵. 꽤나 피곤한 얼굴을 하고 컴컴한 집 안에 들어선 윤호는 겉 옷을 벗기도 전에 소파에 털썩 누워버렸다. 하루종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다리도 아프고 눈도 많이 아팠던 것이다. 안 그래도 두꺼운 의학서적 읽고, 26살 나이에 다른 사람들 대학때 배우는 거 공부하니 피곤할 만도 하다. Rrrrrr- 폰이 울리는 소리에 겉옷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었다. 플립을 열자 액정에는 '미야'라는 이름이 떴다. 윤호는 한동안 그 이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걸까. 시끄럽게 울리는 벨 소리를 무시한체 액정만 뚫어져라 보는 윤호도 대단했지만,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 걸고있는 미야 역시 만만치 않았다. 얼마 후 벨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또 다시 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한참동안 액정만 바라보던 윤호가 드디어 폰을 귓가에 갖다대고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윤호가 받자마자 '오빠!'라고 부르는 미야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는 이내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슨 일 있는 줄 알았다며 말하는 미야. 윤호는 그런 미야의 어린 모습에 피식 웃으며…. "울지마, 피곤해서 그래…. 응, 괜찮아…. 아니, 아니야." 미야는 자기 때문에 미안하다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윤호는 아니라며 최대한 따스한 목소리로 미야를 달랬었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걸려버리면 안 되니까…. "…울지마, 아기에게 안 좋아." 윤호의 말에 미야의 울음은 점점 그쳐졌다. 아기…. 아기에겐 아무런 죄가 없으니까, 아기까지 슬퍼서는 안 되겠지. 윤호는 미야에게 푹 쉬고,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라 했고, 미야는 네, 라고 대답만 하더니 마지막에 미안해요, 라는 말을 불쑥 하고서는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후우- 3살 차이라 해도 어리긴 어린건가…." 미야의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윤호는 한숨섞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는 한순간에 미소를 걷었다. 오늘은 미야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저번에 혼자서 병원에 간다길래 그냥 같이 가자고 해서 오늘 같이 병원에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확인했다. 초음파를 통해 본 아기를…. 작은 생명은 꿈틀 거리고 있었다. 다른 누구의 아기도 아닌… 자신의 아기. 한 날의 사고로 한 순간에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윤호. 병원을 갔다가 아이의 옷을 보러갔다. 아직은 이르지만 미야가 바라는 것 같아 아기 용품점으로 가서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결국 아기들이 신는 작은 신발을 샀다. 겨우 새끼 손가락 크기 밖에 안 되는 그 작은 신. 내 아이가 태어나 신을 그 귀엽고 앙증맞은 신.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것은 묘한 감정 이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걸…. 차라리 유천이 여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몇번이나 했는 지 모른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 이혼 하지 않고서 아이를 위해서라도 살아가겠지. 그러다가 정이 들어 더 이상 헤어지자는 소리도 못 나오겠지. 유천이 여자였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오늘 정말 기뻤겠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일 가졌다고 하면 정말 날아갈 듯 기뻤겠지. 하루종일 피곤한 것도 잊은 체 되려 자신이 그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겠지. "…유천아…."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제와서 그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에게 보여줬던 사랑이 아주 조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앞으로 그에게 줘야 할 사랑이 아주 많이 남은 사실을 깨 달아버렸다. 이제와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빨리 알았어도 좋았을걸. 이젠 한 여자의 남자가 되어야 한다. 쏴아아아아- 하루종일 날씨가 흐리다 했더니, 결국 비는 쏟아붓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어두운 하늘은 더 어두워졌고, 집안은 빗소리와 함께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혼자 살기엔 꽤 넓은 집에서 느껴지는 외로움. 항상 혼자 있었건만 오늘따라 왜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지. 불을 켜고, TV를 켰다. 그것도 모자라 오디오를 켰다. 시끄러운 음악과 tv 속의 사람들의 말들이 집 안을 시끄럽게 만든다.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은 체 멍하니 tv로 시선을 옮겼다. 한참이나 정신 없이 있었을까. 갑자기 오디오의 음악소리, tv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져 다 꺼버렸다. 다시 조용해진 집안에 더욱 거세진 빗소리와 어느새 11시를 훌쩍 넘겨버린 시계소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기지개를 쭉 펴고 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속에 있으니 잠이 들것만 같아 밀려오는 잠을 몰아내기 위해 찬물로 몸을 씻었다. 그 덕분에 피부는 창백해졌고, 입술을 파래졌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차가운 물은 무리였던 것 같다. "젠장…, 의사 될 인간이 몸 관리도 못 하다니." 결국엔 긴 츄리닝을(하의만) 꺼내입었다.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내며 냉장고 앞으로 가 맥주 한 캔을 꺼내었다. 목이 탄다는 듯 단번에 원샷을 해 버리고 캔들이 가득 담겨있는 봉지에 던져넣듯 넣었다. 그리고는 거실 소파로 와서 쌓아놓은 책 중 한권을 꺼내 들었다. 영어로 가득한 책에는 잔뜩 필기가 되어있었다. 한참이나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는데…. 딩동- 늦은 시각 갑작스레 울리는 벨소리에 놀라 현관쪽을 바라보았다. 올 사람은 없었다. 저번에 만났으니 창민이 올 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재중이 그 불편 다리로 찾아 올 리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찾아 올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벨소리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윤호는 짓궂은 앞집 꼬마아이를 생각하며 장난 친거라고 단정짓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딩동- 또 한번 벨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이번엔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몇번이나 연이어 벨소리가 울렸다. 윤호는 짜증난다는 얼굴을 한 체 현관으로 향했고 인터폰을 들여다 보았다. 인터폰 화면에 비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나 꼬마아이의 장난인가 싶어서 혼내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뭐가 놓여져 있는거야…?" 뭔가 묵직한 물건이 있는 듯 했다. 그걸 밀고 조금씩 문을 열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보았다. 마침내 벨을 누른 게 누군지 알게 되었다. 바로 자신의 집, 즉 문 앞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술 냄새가 윤호의 코를 자극시키는 게 엄청난 양의 술을 마셨나보다. "이봐요, 여기는 그쪽 집 아니라구요. 좀 일어나 봐요, 이봐요!" 윤호는 그를 깨워 보내기 위해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는 그를 흔들었고, 그의 몸은 힘없이 흔들렸다. 어느새 윤호는 그의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그를 흔들고 있었다. 쉽게 깨어나지 못 하는 그는 한참후에야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주 환하게, 그리고 아주 예쁘게 웃었다. "…만났다, 정윤호…." 10일만의 재회였다. ──────────────────────────────────────────────── 오늘은 토요일이라 여러 방송이 재방송을 해서 한밤을 봤는데 브리트니가 나오더라구요- 와우, 정말 섹시하고 멋졌어요(笑) 거기다가 박정아양과 인터뷰할때는 말하는 게 너무 귀엽더라구요(笑) 그저 보아양이 부러울 뿐입니다. 그런 가수와 만나다니. 요즘은 브리트니의 곡 중 최근에 나온 Me Against The Music를 즐겨 듣고 있습니다. 빠른 비트가 참 맘에 들고, 뮤직비디오까지 정말 멋집니다. 정말 반해버렸다죠(笑) 거기다가 마돈나가 같이 불렀으니, 그 또한 정말 멋집니다. 개인적으로 브리트니보다 크리스티나의 목소릴 더 좋아하는 편인데, 크리스티나 양도 어서 한국에 오셨음 좋겠습니다(笑) 더불어 아라시(嵐)도 함께(笑) 이상 월드였습니다(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0] "만났다, 정윤호"라는 황당한 말을 남긴체 윤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겨버린 유천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체로 눈을 감았다. 윤호는 비를 맞았는지, 잔뜩 젖어있는 유천을 안아 집안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바로 침실로 데리고 가 젖은 옷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준 뒤 마른 수건을 가져와 그를 닦아주었다. 마른 수건의 감촉이 부드럽지 못 했는지 유천은 다시 눈을 떴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속이 안 좋아 그런지 눈가가 촉촉히 젖어있었다. "…윤호지…?" 꽤나 황당한 질문. 자신의 집에 찾아와 자신을 보고 웃기까지 했으면서 이제와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윤호는 그런 유천에게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나야."라고 말해주었다. 더불어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려주었다. 윤호는 유천의 젖은 머리부터 얼굴, 젖은 팔 등을 꼼꼼히 닦아주었고, 유천은 술에 잔뜩 취해서 금방이라도 잠들어 버릴 상태이면서도 끝까지 윤호를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은 체로 말이다. "…유천아, 추워?" 수건을 들고 이리저리 바삐 손을 움직이던 윤호는 유천의 시선을 느꼈는지 유천의 얼굴을 바라보며 춥냐고 물었고 유천은 그런 윤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윤호는 여전히 차가운 유천의 뺨을 만져보더니 물기 다 닦아 냈으니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겠다며 침대가를 벗어났다. 유천은 부드럽고 다정한 윤호의 모습에 울컥했지만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우는 건 그 날, 그의 결혼 사실을 알았을 때 그만큼 울었음 됐으니까…. 더 이상 우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얼마 안 있어 윤호가 옷을 가져왔고, 축 늘어진 유천의 몸을 일으켜 옷을 입혔다. 그리곤 다시 침대에 눕히더니 유천의 손을 잡아보며 왜 이렇게 몸에 온도가 안 오르지, 하며 그를 걱정했다. 유천은 윤호의 두 손에 감싸진 자신의 손을 보며 빙긋 웃었다. 그런 유천의 웃음을 본 윤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 표정을 사라지고 얼굴은 굳어져갔다. "……왜… 울어…." 빙긋 웃고 있는 얼굴이, 눈꼬리를 휘며 예쁘고 웃고 있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베개로 흘러내렸다. 유천은 윤호가 잡고 있는 손의 반대쪽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닦아내며 안 울어, 하면서 다시 웃었다. 그런데 눈물은 왜 그렇게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지. 유천은 자신의 눈가가 붉어지는 것도 여의치 않고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윤호가 입혀줬던 긴 소매 티셔츠의 소매가 유천의 눈물로 듬뿍 젖었는데도 유천의 눈물은 계속 흘러나온다. "…웃어야 되는데…, 계속 나오네…." 유천의 말에 윤호는 자신의 눈가를 연신 닦아내는 유천의 행동을 저지하고 부어버린 유천의 두 눈에 조심히 입을 맞추었다. 유천은 자신의 얇은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윤호의 입술에 눈을 꼭 감았다. 윤호는 자신의 입맞춤으로 눈을 감고 있는 유천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마른 입술을 유천의 눈물이 촉촉히 젖게 해 주었다. 한참 후에야 유천의 눈에서 입술을 뗀 윤호는 유천의 덜 마른 머리를 쓸어넘겨주며 말했다. "…내 앞에서 억지로 웃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울어…. 하고싶은 말 있음 다 해도 좋아…. …그러니까…, 내 앞에서 억지로 눈물같은 거 참지마…." "……나… 안아줄 수 있어…?" 유천은 덜덜 떨리는 입술 사이로 말을 내 뱉었고, 윤호는 아무런 대답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유천을 이불채로 자신의 품에 안았다. 유천은 윤호의 가슴에 고개를 기댄체로 또 한번 빙긋 웃었다. "…니 품이… 제일 편해…." "………." 윤호는 순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울컥했다.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자신의 품에서 안겨 있는 유천을 더욱 감싸 안았다. 유천역시 윤호의 품에 더 깊숙히 고개를 묻었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될 사람…. 그런 사람을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면 또 다른 사람의 남편이 된다. …더 이상 그의 남편이 아니다. "…윤호야…." "……으, 응." 덜덜 떨리는 몸을 자제하며 유천의 부름에 대답했다. 유천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윤호의 이름을 불렀고, 윤호는 그런 유천의 부름에 하나, 하나 다 대답해주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에 유천은 입을 다물었고, 윤호역시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있었을까…, 유천은 윤호를 불렀다. 그리고 윤호는 역시나 응, 이라고 대답했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음성을 들으며 윤호의 내음을 맡기위해 좀 더 고개를 파묻었다. "윤호야…." "응, 유천아…." "……결혼… 안… 하면 안돼…? …혼자서는… 못 살아…? 나도 이렇게 사는데…, 넌… 못 살아…?" 유천이 얼굴을 묻은 곳의 옷자락이 축축히 젖어가기 시작한다. 윤호는 유천의 머리칼을 한올, 한올 쓸어내리며 조용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난 혼자 살 수 있는데… 나때문에 그 여자가 혼자 살 수 없게 됐어…. 그래서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해." "………너 결혼하는 거 무지 싫다…." "…나도 너 놔두고 이렇게 재혼하는 거 싫어…." 윤호의 말에 유천은 윤호의 품에서 고개를 떼어내고 흐릿한 눈으로 윤호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살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멋지고 매력있는 얼굴. 다시 내 남편 되어 달라고, 그 여자한테 애 지우라 하고 다시 우리 둘이서 살자고 말하고 싶은데…. 너무나 말하고 싶은데, 떼를 써서라도 그렇게 하고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애써 입술을 꾹 다무는 유천이었다. "…우리 왜 이혼했을까…." "……그러게…." "그냥… 그냥 넘길걸…. 싸우면서 정 드는건데…." "……미안하다, 유천아." 미안하다는 윤호의 사과에 유천은 도리질을 치며 "니가 왜 미안해"라고 말하고선 윤호의 뺨을 감싼다. 그리고는 이때까지 자신에게 들려줬던 윤호의 따뜻한 목소리 못지 않게 아주 다정한 음성으로 유천은 윤호를 보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힘들지…? 울어…. 울어, 윤호야. 나 밖에 없어. …그러니까 혼자서 앓지말고… 울어…." 유천의 부드러운 음성에 윤호는 미소를 짓는다. 슬픈 미소를,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미소로…. 유천은 그런 윤호를 꽉 껴안아주며 "어서-"라고 재촉했다. 윤호는 뭔가 망설이는 듯 했다. 유천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윤호를 보고 윤호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서 말했다. "괜찮아…, 울어도 좋아…. …나 뿐이야." "…으… 흑…." 유천의 입맞춤에, 유천만 있다는 안도감에 한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천은 여전히 윤호의 품에 안긴체로 윤호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해서 꽉 안아주었다. 알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함께 했으니까, 부부였으니까 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쯤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참고 있었다. 나오려는 눈물을 몇번이고 참았다.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지켜주는 타입인 것 같지만 되려 자신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말하지 못 해 혼자 아픈 가슴 안고서 울지도 못 한체 어쩌면 그대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럼 사람이… 바로 정윤호였다. "…미안해, 윤호야…. 나 아픈 것만 생각했어…, 항상 나 아픈것만 생각해 왔어…. 미안해, 윤호야…." 유천의 눈가가 다시 젖기 시작했고, 이내 눈물은 뺨을 타고 흘렀다. 윤호는 유천을 꽉 끌어안고 유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울었다. 유천 역시 그런 윤호를 껴안고 윤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미안해…, 미안해…." "으흐윽- … 으흐흑…." 그렇게 서로를 껴안은 체 얼마나 울었는지, 아마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천은 자신이 눈물을 그친 후에도 계속 울음을 그치지 못 하는 윤호의 머릴 쓰다듬어 주며 계속 중얼거렸다. "불쌍한 우리 윤호…, 불쌍한 우리 윤호…. …실컷 울어…, 참지 말고 울어…. …나도 그치고 싶을때 까지 울 테니까…, 너도 나 상관하지 말고… 계속 울어…. …그리고 나서… 이제 우리 울지말자…. …알겠지…?" "…미안…. 미안, 유천아…." 서로에게 지은 죄가 많아 서로에게 한 없이 미안한 두 사람. 어쩌면… 오늘이 지나면 이 두 사람은 윤호의 결혼식때까지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누구의 남편 정윤호가 아닌 박유천의 사랑 정윤호로써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밤…. 그렇기에 더욱 가슴아프고 절실한… 그런 슬픈 밤. "…결혼식 때… 꼭 갈게…. …많이 축하해 줄게…." "…으흐윽…, 유천아…." "…그날… 나 봐도 웃어야돼…. 잔뜩 굳어있음… 신부가 좋아하지 않을테니까… 나랑 결혼했을 때처럼… 아주 예쁘게 웃어야 돼, 윤호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해야 돼…. …난 평생 아파도 상관 없어…. …그러니까… 윤호, 넌…. 나 대신 항상 행복해야 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천은 슬프고도 아주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윤호는 그 미소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두 사람의 슬픈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 개인적으로 맘에 들지않는 70편이었습니다. 재회장면을 어설프게 쓴 것 같아서 4, 5번 지워봤지만 잘 써지지 않더군요. 정말 죄송하구요, 앞으로는 이렇게 엉성한 편 쓰지 않도록 열심히 스토리 구상하겠습니다. 요즘 제가 감상 답변 다 달고 있는 거 아시죠? 그러니까 답변 다 확인들 하셔야해요(笑) 재미 없는 70편 드려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리며 월드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1] "…하아…, 하아…." 유독 밝은 잠귀를 가지고 있는 윤호는 거친 숨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비몽사몽으로 거친 숨소리의 근원을 찾아 어둠 속에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가 문득 시선이 고정된 곳은 자신의 바로 옆. "…유천아?" "…하아…, 하아…." 윤호는 안 좋은 느낌에 침대 옆에 있는 스탠드를 켰고, 유천의 뺨에 손을 갖다대었다. 잔뜩 뜨거워진 얼굴과 자신의 손에 묻어나는 유천의 식은 땀들. 윤호는 유천의 상태에 깜짝 놀라며 침대에서 벗어나 방에 불을 켰다. 곧 방이 환해졌고 윤호의 눈에는 침대에서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자신이 갈아 입혀준 긴팔 소매 티셔츠를 반쯤 다 벗다 지쳐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누워있는 유천을 볼 수 있었다. "유천아, 정신차려! 유천아, 박유천!" "…하아…, 윤호…, 윤호야…." "그래! 그래, 유천아! 나 있으니까 정신 놓지마!" 밤 늦게 비를 맞은 게 화근이었나보다. 몸은 열이 올라 잔뜩 뜨거워 져 있었고, 유천은 속까지 답답하고 뜨거운지 윤호가 입혀 주었던 티셔츠를 벗어내었다. 윤호는 거실로 나가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온도계를 가져왔고, 물수건을 준비해 왔다. 더불어 유천의 뜨겁고 답답한 속을 조금이나마 식혀 줄 시원한 물과 열을 떨어뜨릴 해열제까지. "유천아, 이것 좀 잠시만 물어봐." 윤호는 유천의 입술에 온도계를 살짝 물려주었고, 유천도 윤호말대로 온도계를 물었다. 이내 유천의 입에서 온도계를 뗀 윤호는 39도로 오른 유천에 체온에 거의 경악을 하며 유천의 상체를 일으켜 시원한 물과 더불어 해열제까지 먹여주고 다시 똑바로 눕힌 후 차가운 물 수건으로 유천의 뜨거운 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차가운 물에 수건을 헹궈내서 이마 위에 얹어주었다. 새벽 4시 40분. 윤호의 지극한 간호때문인지 윤호가 먹인 해열제 덕분인지 유천의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고, 유천은 한기를 느끼는지 몸을 움츠렸다. 그런 유천의 반응을 보고 윤호는 쉽게 입을 수 있는 셔츠를 꺼내와 유천에게 입혀 손 수 단추까지 채어 주었다. 그리고는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주었다. "…정말…, 널 두고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윤호는 고른 숨을 내어쉬며 곤히 잠들어버린 유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다가 시계를 본 윤호는 새벽 5시가 다 되어 가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자신이 겨우 1시간 밖에 자지 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천의 열이 내리자 긴장이 풀렸는지 하품이 계속 나고 잠이 물 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잠을 이기지 못 한체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들어버린 윤호였다. * "……유천이…. …박유천!" 부스스, 눈을 뜬 윤호는 침대 위를 잠시 바라보다가 유천을 찾았다. 그러다가 유천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유천의 이름을 부르며 벌떡 일어났다. 새벽에 잠들었던 그대로지만 그의 어깨에서 이불 자락이 떨어졌다. 분명 유천이 덮어준 것일거다. 아무리 열이 내렸다 하더라도 그 몸으로 집까지 혼자가기에는 무리였다. 윤호는 한동안 자신의 어깨에서 떨어진 이불을 보고 있다가 대충 침대위에 올려 놓고는 방을 나왔다. 탁탁탁- 방을 나오니 환한 햇빛이 집안을 비추고 있었고, 집 안엔 평소에 들을 수 없었던 칼로 뭔가를 썰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호는 미야인가, 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순간 윤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 졌다. 윤호에게 뒷 모습을 보인 체 부엌 이리저리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천이었다. 유천은 윤호가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을 모르는지 냉장고 앞으로 가서는 냉장고 문을 열려했다. 그 순간 윤호가 유천의 팔목을 낚아 채 자신을 보도록 했다. "…깼어?" "박유천…." "식사만 차리고 가려던 참이었어…." 유천은 윤호의 화난 얼굴과 음성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며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윤호는 그런 유천을 보며 더욱 인상을 구기더니 자신의 손에 힘을 줘 유천의 손목을 더욱 꽉 조인다. 유천은 자신의 손목이 아픈대도 윤호가 화 난 것 같다는 이유 하나로 아무 말 못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윤호가 갑자기 유천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고 그와 동시에 유천의 손목이 자유로워졌다. "…윤호야…?" "바보…. 바보, 박유천! 너 정말 바보 아냐? 너 환자야! 밤에 열이 39도까지 오른 환자라고!" "……의사 다 됐네." 윤호의 걱정섞인 화에 유천은 반성하기는 커녕 웃어보이며 의사 다 됐다고 한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모습이 마냥 안타까워 그를 꽉 끌어안았다. 유천 역시 순순히 윤호의 품에 안겨 윤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마지막으로… 너랑 식사하고 싶어서…." "…바보, 사 먹으면 되잖아…." "아니…, 내가 만든 음식들로…. 오늘만큼은 니가 웃어주면서 먹어줄 것 같아서…." 윤호의 목덜미에 느껴지는 유천의 입김이 아직 뜨거운 걸 보니 열이 완전히 내린 것은 아니었다. 윤호는 유천의 말에 유천을 더욱 끌어 안았다. 그리고 뒤 늦은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왜 진작 그가 차린 식사를 맛있게 먹어주지 못 했을까, 웃으면서 먹어주지 못 했을까. 그리고 후회에 이은 반성. 항상 짜증만 내서, 항상 정성스레 차린 식사를 먹지 않아서, 웃어주지 못 하고 딱딱하게 굴어서 미안하다. "…내가 어쩌다 너같은 바보녀석을 사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어쩌다… 이혼하게 됐는지…." "……우리가 결혼했다는 사실은 없었던 걸로 하자…." "…무슨 소리야…?" "…결혼할 아내에게 알려서든 들켜서든 어쨌든 좋지 못한 일이고…." "누가 그래? 너하고 결혼한 일이 좋지 못 하다고, 누가 그래!" 유천의 말에 윤호의 화가 더욱 커져버렸다. 유천은 윤호의 품에서 약간 떨어져 윤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뜩 흥분해 있는 상태이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얼굴에 손을 갖다대어 뺨을 감싸며 말했다. "…우리 둘만의 좋은 추억으로 하고 싶어." 그는 결혼을 둘만의 추억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말에 윤호는 아무런 반발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마지막인…. 어쩌면 마지막으로 들어 줄 수 있는… 그런 그의 부탁. "…알았어…." "밥 먹자- 나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놨어." 그 길로 유천은 윤호의 품에서 떨어져 싱긋 웃으며 싱크대를 바삐 움직였다. 항상 식탁에 앉아서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뒷모습만 보아 왔던 것 같다. 윤호는 멍하니 서 있다가 유천의 옆으로 가서는…. "도와줄게, 나랑 같이 식사 차리자." "……응." 한순간이었지만 유천의 눈가에 뭔가가 반짝였다. 그렇게 그날 아침 식사는 결혼 후 처음으로 두 사람이 같이 차려서 먹는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2] "병원 꼭 가야 한다." "응. 그날 봐." "…응. 그날… 보자." 윤호의 말에 유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잡아두었던 택시에 몸을 실었다. 윤호는 유천이 탄 택시가 멀어져 갈때까지 한참이나 서 있다가 자신의 시야에서 택시가 안 보이고 나서야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천은 정면을 보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안 보이는 그의 모습에 다시 몸을 바로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눈에 넣어둬야지….' 창 밖에 보이는 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하나하나 훑어보는 유천. 안 좋은 기억도 많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신혼 생활을 보냈던 곳이니까, 이제는 올 수 없는 곳이니까 더욱 눈에 넣어두고 싶은 심정. 이제는 결혼식에서 만날 수 있는 그의 모습. 한 없이 다정하던 그 모습은 이제 다른 사람의 것이라니 너무나 슬프다.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윤호야…. 왜 니가 계속 잊혀지지…? 방금까지 같이있었는데도… 나 지금 너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너무 두려워….' 눈물이 고인다. 갑자기 그의 모습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계속 생각해 내려는 듯 머리를 굴려대지만 그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다. 왜 이제와서 그의 모습이 생각 나지 않는지. 그렇게 잊으려 애 쓸때는 한시도 빠뜨리지 않고 자신의 눈 앞에 서성거리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그의 모습이 계속 사라지는지…. 그의 모습 계속 기억해 둬야 하는데…. 잊어버리지 않게 기억 해둬야 하는데 계속 그의 영상들이 흩어진다. 다시 한번 그를 보고 싶지만 이미 택시는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지 오래다. '……사랑해…. 윤호야, 너무나… 사랑해….' 그의 모습을 보길 체념한 듯 유천은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마음속으로 집에 가는 내내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 그에게 내 뱉을 수 없는 그 말을, 유천은 혼자서 몇번이나 내 뱉었다. * "…형, 내일 갈 거야…?" "그럼. 가야지…. 너도 갈래?" 유환은 지금 검은 수트에 이것, 저것 넥타이를 갖다대어 보며 자신보고 웃어보이는 형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하다. 그의 결혼식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분명히 그의 결혼식에 가면 마음만 안 좋을텐데 굳이 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유환이었다. 유천은 한참 옷장을 뒤적거리다가 넥타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남색 넥타이. 윤호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사준 남색 넥타이…. 유천은 조금 망설이더니 이내 그것을 집어들고 흰색 셔츠에 갖다대어 보며 유환에게 물었다. "이 넥타이 어때…?" "……윤호형이 사준 거 아냐?" "응. 내일만 하고 이제 안 할거야." 유천의 말에 유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형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형은 오히려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냥…, 그냥 웬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환은 자신의 형에게 내일 결혼식 가려면 일찍 자라고 말한 뒤 방을 나가버렸다. 유환이 나가자 유천의 노래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그는 넥타이를 수트와 함께 걸어두며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멋지겠다…."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자신이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내일 엄청 멋진 모습을 하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였다. 그때 벨기에에서 둘만의 결혼을 할 때에도 그는 너무 멋졌다. 검은 수트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너무 멋져서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 너무나 조촐한 결혼식에서도 그렇게 멋졌는데, 내일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할 그의 모습을 얼마나 멋질까. 「유천아」 "…윤호야…." 「유천아」 "행복 해야 돼…." 환청처럼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대답이라도 하듯 유천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조용히 눈을 감는다. 편안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유천은 지금 조각, 조각 흩어져 버린 윤호의 모습을 모우고 있는 중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날'이후부터 그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 날 듯 하면서도 생각 나지 않는 그. 그런 그를 잊어버리게 될까 너무나 두려워 하루에 몇번이고 이렇게 그의 모습을 생각 해 보곤한다. 그래도 그의 얼굴이 생각 나지 않으면 지갑을 꺼내어 깊숙이 넣어두었던 그의 사진을 꺼내 놓고 한참이나 바라본다. 이제 안 잊어버릴 정도로 봤다, 싶어서 다시 지갑에 넣고 그를 떠올리면 이상하게도 방금까지 봤던 그의 얼굴이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다. 왜 이런 증상이 생기는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를 너무나 그리워해서 그런 것일 아닐까…. "………." 몸을 틀어 비스듬히 누웠다. 그러자 침대 밑 바닥에 떨어 져 있는 흰 카드가 보였다. 유천은 몸을 굴려 침대 끝으로 간 뒤 팔을 뻗어 카드를 잡았다. 그리고는 카드를 펴 보았다. 청첩장. 그 때, 카페에서 윤호가 줬던 하얀 카드. 그 때 그대로 카드를 카페에 놓아두고 와서 '그 날' 윤호에게 부탁해 한 장 얻었다. "신랑, 정윤호…. 신랑, 정윤호…. 신랑…." 카드에 검게 인쇄된 부분을 계속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신랑, 정윤호.' 읽을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유천은 한참이나 그 부분을 보다가 약간 눈을 돌려 그 옆의 글귀를 마저 읽어보았다. "신부…, 권미야. …신부…, 정윤호 신부 권미야…." '내가 아닌… 권미야…. 박유천이 아닌 권미야…. 정윤호 신부 권미야….' 만감이 교차했다. 항상 정윤호, 하면 그 옆에는 자신이었는데 이제는 아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조그만 카드 하나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하지만 이제부터 그는 부부 동반으로 어딜 간다하더라도 떳떳하게 예쁜 아내를 데리고 갈 수 있다. 결혼 했다, 하면서도 신부를 감추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공식적으로 한 사람의 남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 축하해야 될 일. '동성애자'라는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잠이나 잘까…." 한참동안 청첩장을 바라보던 유천은 청첩장을 침대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바로누워 이불을 덮었다. 병원에 갔다 받아 온 약을 먹어서 그런지 많이 졸리웠다. 스르륵 감기는 눈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윤호… 때문에 우는 건 오늘로써 끝내자.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남자니까…, 걔 때문에 울어서는 안 돼. …박유천…, 버텨야 돼…. 정윤호 없이도 잘 버텨내야 해…. 그러니까… 오늘만 마지막으로 울자…. 이젠… 이젠 절대 울지 말자….' 자기 자신에게 울지 말기로 다짐을 한 유천은 그렇게 숨죽여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잠들었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3] "창민이는?" "창민이 형 사회 맡아서 미리 가 있는댔어." 유천은 열심히 운전하고 있는 진에게 창민을 물었고, 우진은 어젯 저녁의 술자리를 떠올리며 대답해 주었다. 어제 유천만 빼고 윤호, 창민, 재중 그리고 자신(진)까지 모두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총각으로써 갖는 마지막 술 자리니, 뭐니해서 오랜만에 한껏 분위기를 살려 유천만 제외하고 모였다. 유천을 부르자는 소리도 나왔지만 윤호가 극구 반대하는 탓에 결국은 4명끼리 마셨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넷 중에서 제일 재치있고, 말 잘하는 창민이 사회를 보기로 했고, 오랫만에 다 함께 웃고 그 시간을 즐겼다. 지금은 윤호의 결혼식장에 가는 길. 어차피 가는 길 같이 만나서 가자 해서 우진이 유천을 태워 식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뒷좌석에 혼자 앉아있는 재중은 아무 말 없이 그저 창 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친구가 계속 맘에 걸리는 모양이다. 진과 유천은 그런 재중을 가만히 지켜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식장. 다른 사람들의 결혼까지 있어서 그런지 식장은 유독 사람들로 붐볐다. 거기다가 양쪽 집안 친척, 친구 다 왔을 테니 식장 안에는 발 딛일 틈조차 없어보였다. 식장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올라온 세 사람은 많은 사람들때문에 예식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지도 못 한 체 어떻게든 사람들 틈으로 계단 위에 올라서려 하고 있지만 불편한 재중의 다리도 한 몫을 해 많은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건 쉽지 않다. 그때 구세주 같은 창민의 전화가 왔고, 얼마 안 있어 그들은 식장을 빠져나가 다른 정문이 아닌 다른 문으로(후문도 아니다) 겨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 예식장에 이렇게 사람 많은건가…." "의사네 집안이라 더 그럴걸. 하여튼 친분있는 사람들은 다 온 것 같아." 유천의 말에 대꾸해주는 창민도 문 밖의 많은 사람들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참동안 문 밖을 쳐다보던 유천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되었다. 사회자 말을 준비하던 창민은 내부에 들어온지 꽤 됐는데도 계속 서서 문 밖만 쳐다보는 유천을 보고서는 이리 와서 쉬라하지만 유천은 창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여전히 문 밖으로 시선을 떼지 못 하고 문에 찰싹 붙어있었다. 창민은 그런 유천의 옆에 다가와 유천의 시선을 따라 가 보았다. 많은 사람들 중에 하얀 예복을 차려입고 말끔히 넘긴 머리를 하고서는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남자. 박유천이 사랑하는 남자, 박유천의 남편이었던 남자, 오늘부터는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는 남자…, 정윤호였다. 창민은 유천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정윤호, 원망 안 하지?" 창민의 물음에 유천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창민은 그거면 됐다며 유천의 어깨를 툭툭 쳐 주었다. 유천은 창민을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문 밖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멋있다. 하얀 턱시도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이 세상 그 누구의 모습보다 멋져 보였고,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빛나 보였다. 일일이 인사를 하고 있는 윤호를 바라보던 유천은 창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신부…, 한번 볼 수 있을까?" * "실례하겠습니다-" 창민의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신부 대기실 안에는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는 미야와 그녀의 친구들이 함께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창민과 유천의 등장에 얼굴을 붉혔고, 창민은 그녀의 친구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잠시 나가 달라했다. 그런 그의 부탁에 친구들은 붉은 얼굴을 한 체 한명씩 신부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구면인데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그때 오빠 집에서 뵜던 분…?" "예, 윤호 친구 박유천입니다." 미야는 유천이 생각났는지 싱긋 미소지으며 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런 미야의 미소에 유천역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창민만큼은 미소지을 수 없었다. '윤호 친구'라고 표현한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유천은 그녀를 보며 다시한번 빙긋 웃었고, 그녀 역시 예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를 바라보던 미야는 속으로 역시나 예쁘게 생긴 남자다, 라고 생각했다. 처음 봤을때 자고있던 그의 모습도 아름다웠고, 자신에게 빙긋 웃어주는 그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맨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름다웠지만 매우 차가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번째 만남인 지금의 그는 부드러웠으며 처음과 달리 힘이 없어 보였으나 여전히 아름다웠다. 미야는 아름다운 그의 모습에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유천 역시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야를 보고 감탄했다. 크고 검은 눈망울이 유독 빛나 보였으며 하얀 웨딩 드레스가 초라한 조명에도 빛나게 눈부셨다. 윤호 못지 않게 눈부신 그녀. 잘 어울렸다. 순간 가슴이 저릿했지만 그녀는 정말 그에게 잘 어울려 보였다. 눈처럼 새하얀 그녀와 눈처럼 눈 부신 그.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 초라해보였다. 달칵- 한참 인사말을 주고 받는 가운데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그는 하얀 턱시도를 멋있게 차려입은, 다름 아닌 윤호였다. 유천은 적지않게 놀란 듯 했고, 미야는 윤호의 등장에 기쁜 듯 활짝 웃어보였다. 윤호 역시 유천이 있을거란 생각은 하지 못 했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미야를 보고 웃어주며 유천을 지나 미야에게로 다가섰다. "오빠, 인사는 다 했어요?" "피곤해서 도망왔어." "그러면 안 돼요-" 누가 봐도 결혼을 앞둔 행복한 커플의 대화. 유천은 괜시리 씁쓸해지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창민은 그런 유천을 배려해서 윤호에게 나중에 보자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서 유천을 데리고 나왔다. 유천도 간단히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 창민에게 끌려가다 시피 해서 신부 대기실을 나갔다. 유천과 창민이 나가자 윤호는 맥이 빠지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야는 그런 윤호의 모습에 결혼이라는 게 사람 많이 피곤하게 한다, 라 말했고 그런 미야의 말에 윤호는 그저 힘없는 웃음만 지워줄 뿐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뒤늦게 잘해주면 상처만 남아. …정윤호, 정신차리자. 지금 니 앞에 있는 이 아이가 니 신부고, 니 아내고, 너의 평생 배우자야. 박유천은… 박유천은 아니야. 그러니까, 정신차리자.' 유천을 무시한 체 미야와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윤호가 유천에게 해 줄 수 있는 배려다. 상처를 더욱 받기전에(이미 받을 만큼 받았지만) 차라리 미야와 더 행복해지는 게 둘 다 편할거라 생각했다. 윤호는 미야의 손을 한번 잡아 준 뒤 오빠 나가볼게, 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형! 창민이 형!" "어, 신후…." 저 멀리서 창민을 부르며 창민에게 달려오는 소년을 보고 유천은 놀란 듯 했다. 소년은 곧 창민에게 다가왔고, 창민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게 끌고 다니지 말라니까, 너같이 건강체질 아니라고." "알았어! 어서 가보기나 해, 저기서 사회자 찾아." 신후의 손에 붙들린 체 식장 이리저리를 끌려다닌 선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창민은 그런 선우가 걱정되는 듯 했지만 사회자를 찾는다는 소리에 유천에게 두 사람을 부탁하고 사람들 틈으로 모습을 감췄다. 유천은 신후를 보고 웃으며 오랜만이라고 인사했고 신후도 그에 맞춰 활짝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했다. "선우는 이제 괜찮아?" "예? 아, 예…." 병원에 입원해 있을 시적에 만난 두 사람. 선우는 유천의 인사에 머쓱해졌는지 얼굴을 붉혔고, 신후는 웬 내숭이냐면서 선우를 약올리기에 바빴다. 선우는 싱긋 웃으면서 신후의 발을 밟아서 짓눌렀고, 신후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웃던 유천은 하객들이 식장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늦겠다며 두 사람을 데리고 식장안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곳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로 가득찬 식장은 발 딛일 틈이 없었다. 한참 사람들 사이에서 낑낑대다가 겨우 고개를 내민 신후는 신랑측에 앉아있는 진과 재중을 발견하고서는 선우와 유천의 손을 양 손에 각각 잡고서는 냅다 달렸다. 그 덕분에 유천과 선우는 녹초가 되었고, 우진은 신후보고 무슨 일이냐며 놀란 듯이 물었다. 신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진과 재중이 마련해둔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앉은지 얼마 안되어 식장내에 불이 꺼지고 사회자만 비추는 조명이 켜졌다. 창민은 이런, 저런 멘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더니 이내 근엄한 목소리로 외쳤다. "신랑 입장!" 사람들 틈에서 하얀 턱시도를 차려입은 윤호의 모습이 나타났고, 그렇게 식은 시작되었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4]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어느새 막바지에 이르렀다. 하객들은 아래 층 뷔페로 하나, 둘 내려가기 시작했고 주례사가 다 끝나자 사회를 맡은 창민이 마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들어왔던 길로 나오는 신랑, 신부의 손에는 입장했을 때와는 달리 각자 손에 반지가 끼어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축복했고 축사 역시 잊지 않았다. 새로 태어난 한쌍의 부부를 저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한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천이 형…?" "나 이만 가봐야 될 것 같아." "식사라도 하고 가지." "미안, 나중에 윤호한테는 축하한다고 전해 줘. 그럼 갈게." 유천은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우진은 그런 유천을 잡으려고 일어섰지만 옆에 앉아있던 재중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탓에 그를 따라나가지 못 했다. 우진은 저대로 유천을 보내면 어떡하냐고 재중에게 원망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재중은 그런 진을 앉히며 말했다. "버텼어. 박유천, 아주 잘 버텼어. 이 자리…, 유천이한테는 가시방석이었을 거야. 그래도 버텼어. …이제 끝났으니까 맘대로 할 수 있게 놨둬. 그게 박유천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우진은 재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밖을 바라보았다. 몸도 안 좋은데 혼자 어떻게 갈런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창민이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니 언제 나갔는지 신랑, 신부는 모습을 감췄고 친분이 있는 하객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민은 오자마자 유천을 찾았고 우진은 방금 혼자서 나갔다고 말해주었다. 그 소릴 듣자마자 창민은 폰을 꺼내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바로 식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유천이는 창민이한테 맡겼고, 우리도 뷔페나 가 볼까?" 재중의 말에 진과 선우, 신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진은 재중을 부축해 먼저 앞서갔고, 신후는 어김없이 선우를 잡아 끌며 아래 층으로 향하였다. 신후에게 끌려가다 시피 하면서도 선우의 눈은 창민이 사라진 그 곳에 계속 머물렀다. 선우는 알고 있었다. 식 내내 창민의 시선은 유천에게, 유천의 시선은 윤호에게 향해 있었다는 걸. 그리고 창민의 시선은 한번도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는 것을…. 사회를 마치자마자 바로 유천을 찾는 모습에 못내 서운한 선우는 시무룩 해 진 체 그대로 신후에게 붙잡혀 아래층 뷔페로 향할 뿐이었다. * "박유천! …헉…, 헉…." 큰 길에서 택시를 잡고있는 유천을 가까스로 붙잡은 창민은 유천을 데리고 인적이 드문, 꽤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와서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유천은 이런 창민의 갑작 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결혼식은 어쩌고 자신을 따라 왔냐며 언성을 조금 높였다. 창민은 유천의 한쪽 어깨를 잡더니 있는 힘껏 힘을 주고 내리 눌렀다. "박유천, 니가 우선이야."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 사회자 없는 결혼식따위 재미없어." "너 정윤호 평생 포기 안 할 거야?!"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포기 할 게 뭐가 있어? …정윤호는 완전한 다른 여자의 남자야." "그럼 끝까지 봐." 잔뜩 낮아진 창민의 음성과 더불어 어깨를 내리 누르는 힘이 더 강해진 탓에 유천의 인상이 잔뜩 구겨져 버렸다. 하지만 유천은 아픈 내색 하나 내 보이지 않으며 창민에게 무슨 말이냐며 물었다. 창민 역시 별로 좋지 못한 표정이었다. 유천을 바라보던 창민은 화가 끝까지 났을 때만 내는 아주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정윤호가 다른 여자하고 신혼여행 가는 것까지 똑똑히 봐. 그리고… 포기해." "……심창민." "그 녀석, 이제 너한테 못 돌아와! 너 언제까지 병신같이 정윤호보고 아파할래?! 그 새끼 행복해 하고 있을때쯤 넌 그 녀석 행복한 모습만 보고 만족할래?! 넌 언제쯤 행복해 지냐고, 병신같은 새끼야!" "심창민, 난 지금 니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유천 역시 창민에게 화가 났는지 그리 좋은 음성은 아니었다. 그런 유천의 모습에 반쯤 나가버린 이성이 돌아왔는지 창민은 유천의 어깨를 짓누르던 자신의 손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고 음 높이가 일정하지 못한 목소리를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에 있는 유천에게 말했다. "정윤호도 너 엄청 비참하게 만들지만…, 박유천 너도 날 엄청 비참하게 만든다…?" "…하아, 창민아." "니가 좀 더 편해지려면…, 끝까지 다 봐. 그리고 니 머리로만 '정윤호는 결혼했다'라고 새기지 말고 니 마음으로도 '정윤호는 결혼했다'라 새겨. …병신같은 새끼, 내가 언제까지 챙겨줘야 하냐…? 박유천, 병신같은 박유천 새끼야." "………." "……내 앞에서 만큼은 행복해라. 니가 불행하면… 내가 미칠것 같으니까… 내 앞에선 제발 행복해라. 그게 잘 안 되면… 척이라도 해라…. 내가… 너 엄청 오랫동안 사랑했던 거 알면… 너 제발 행복해라." 유천은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내 뱉는 창민을 바라보았고, 창민은 정장 마이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며 입에 물었다.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창민은 벽에 기대어 담배 연기만 내 뿜을 뿐이었고, 유천은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담배가 다 타 들어갈 무렵 창민은 담배를 땅에 떨어뜨려 발로 비벼 끈 뒤, 유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때까지 멍했던 유천의 눈동자에 창민의 얼굴이 담겼고, 창민은 "어서-"라고 하며 유천을 재촉했다. 유천은 몇번이나 손을 들었다 놓았다, 했지만 이내 곧 창민의 손을 잡았다. 창민은 그대로 유천의 손을 잡아 끌고 인적 드문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창민이 앞서가고 유천은 그저 끌려가듯 고개만 푹 숙이고 창민이 가는 곳으로 갈 뿐이었다. 어느새 다시 식장 앞으로 왔고, 이때까지 창민이 가는대로 발걸음을 옮겼던 유천은 우뚝 서 버렸다. "…잔인해, 심창민." "이별은 잔인한 법이야." "……너무해…." "………이별을 이겨내려면 냉정해져야 한다, 유천아." 창민의 말에 유천은 창민을 바라보았고, 창민은 특유의 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유천을 잡아 끌었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유천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식장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뷔페로 향했다. 뷔페 안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붐볐고 신랑, 신부는 멋진 정장을 차려입고 하객들에게 이리, 저리 인사를 하고 다녔다. 유천은 꽤 가까운 거리에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윤호를 보자 멈칫 했지만 창민이 다시 이끄는 바람에 어렵게 발걸음을 뗐다. 그대로 윤호를 지나칠 거라 생각했던 유천의 생각과는 달리 창민은 윤호의 앞에서 우뚝 섰고, 유천은 꽤 불안한 눈으로 창민을 쳐다보았다. 창민은 그런 유천의 눈길을 무시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윤호에게 웃어보이며…. "결혼 축하한다, 아까 키스라도 시킬 걸 그랬다-" "짓궂긴." 윤호는 창민의 말에 피식 웃었고, 창민 역시 웃었다. 옆에 서 있던 미야는 친구들끼리 얘기 하라는 듯 자리를 비켜 주려했지만 그런 미야를 창민이 붙잡았다. "어디가요, 미야씨. 신부가 신랑 옆에 있어야죠." "예? …아, 네…." 유독 하얀 얼굴을 하고 있는 미야의 얼굴이 새빨개 졌고, 창민은 또 다시 웃어보였다. 창민의 옆에서 머쓱하게 서 있던 유천은 진과 재중이 있는 곳으로 가자는 듯 창민을 잡아 당겼지만 되려 창민이 유천을 잡아 당겨 자신의 옆에 세워 윤호와 마주보게끔 하였다. "…축… 하해…." "……그래." "미야씨, 축하해요." "고마워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눈빛이 오, 갔고 유천은 한숨을 한번 내 쉬더니 최대한 환하게 웃어보였다. "신혼 여행 잘 다녀와." 유천의 웃음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꽤나 당황한 듯한 윤호. 유천은 그런 윤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빙긋 웃어보였다. 박유천, 그는 이별을 위해 냉정을 택했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5]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안은 너무나 조용하다. 신후는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먹더니 결국은 지쳐서 뒷좌석에서 골아 떨어졌고 창민은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하고 있었으며, 선우 역시 아무 말 없이 창 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빨간 불에 차가 멈춰섰고, 멈춰 선 차는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그때 오늘 하루종일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것만 같던 창민이 입을 열었다. "오늘 신후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녔지? 몸도 안 좋은데 고생했겠다."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라 보는데." 선우의 말에 창민은 힘 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선우는 여전히 창 밖만 바라보았고 초록불로 바뀌자 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렸을까, 차는 집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어디로 가냐고 따져 들었을 선우도 오늘만큼은, 지금 이순간 만큼은 아무 말 없이 조용했다. 그가 온 곳은 그리 멀지 않는 바닷가. 학생들은 개학 준비로 바쁜지 한명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4, 5명밖에 있지 않았다. 바다 끝으로 해가 지고 있었고 바다는 점점 붉게 변해갔다. 차 안에도 붉은 노을빛이 스며 들어왔고, 조용한 차 안에는 갈매기 우는 소리와 힘차게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울렸다. "…바보." 조용하던 공간에 갑자기 들려오는 선우의 목소리. '바보'라는 말에 먼 바다만 응시하고 있던 창민의 눈이 선우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선우는 창민을 바라보지 않은 체 정면에 보이는 바다만 바라볼 뿐이었다. 창민은 그렇게 선우를 바라보다 갑자기 피식 웃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잘 아네-, 나 바본거. 바보 주제에 이것, 저것 오늘 하루종일 설치고 다녔던 것 같다-" "오늘 결혼하는 사람이 그 형이 사랑했던 사람이었나 보지?" "결혼했던 사이였어, 몇개월 전에 권태기로 이혼했지만." "그러고 보면 니 주위엔 다 호모밖에 없구나?" 선우의 무심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건방진 말에도 창민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선우는 그런 창민의 웃음에 혼자만 들릴 목소리로 "병신."이라고 낮게 욕지꺼리를 내 뱉었다. 그렇게 또 다시 한동안 침묵. 언제 해가 다 졌는지 이제 주위는 온통 검었고, 뒤에 타고 있는 신후는 이제 아예 누워버렸다. 창민은 속이 답답한 건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 가는 이 시기에 바다의 바람은 점점 서늘해 지고 있다. 그런데 정장 마이까지 벗고 얇은 셔츠만 입은체로 밖으로 나가다니. 선우는 그런 그가 걱정 돼 운전석에 있는 그의 마이를 들고 창민을 따라 차 밖으로 나왔다. "감기 걸려, 입어." "…걔네 사랑하고 있어." 마이를 건네주던 선우는 창민의 말에 행동을 멈췄다. 창민은 선우에게 등을 보인체로 바다와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었다. 반면 선우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창민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걔네 말야! 이혼했는데, 권태기 때문에 이혼했는데! 이제서야 권태기가 끝나서 지금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웃기지 않아? 그런데! 그런데 더 웃긴건, 선우야!" 파도소리와 섞여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m쯤 떨어진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창민의 목소리가 잘 들려왔다. 선우는 잠자코 창민의 말을 듣기만 했다. 웬지 들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자신이 들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의 마음의 말을…, 그 아픈 심정을 들어 줄 사람이 없다. "나! 나란 놈이! 참 못 됐게도… 참 못 됐게도! 박유천 그 녀석이 정윤호를 완전히 포기하고 나한테 왔음 좋겠다는 거야! 나… 나 정말 나쁜 놈인가봐…! 겉으로는 니가 행복하기만 하면 돼, 해놓고 속으로는! 속으로는…, 나… 으흐윽-!" 누구에게도 하지 못 했던 그 말을 선우에게 말하는 창민. 결국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항상 보살펴주는 그 남자가 울고있다. 달래어 주어야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가 너무 매정하게 느껴져서 눈물이 차오르더니 금세 뺨을 타고 흘러 내린다. 한 없이 떨리는 입술 사이로 떨리는 음성이 세어나온다. "…심창민, 병신같은 새끼…." 선우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내 곁에 있어준다며…. 내 곁에 있어 준다며, 망할 새끼야!!!!!!!!!!!!" 창민의 울음소리가 거친 파도소리보다 더 귀에 들어온다. 선우는 울분을 터뜨리며 창민에게 있는대로 소릴 지른다. "뭐가 내 곁이야! 뭐가 내 곁에 있어주는 거냐고!!!!!!!!! 니가 계속 그러니까 살고 싶지 않잖아! …으흐흑…, 죽고 싶잖아, 개새끼야! 너 없으면 나 살 가치 없어! 너 때문에 살고 있단 말야!!!!!!!! 그런데, 그런데 넌 계속 다른 사람만 바라보고!!! 너 계속 이럴래?! 나한테 이럴 거냐고!!!!!!" 선우의 외침에도 창민은 끄떡없이 계속 주저 앉아있다. 소리를 지르는 그 순간에도 창민의 울음소리가 명확하게 들린다. 잘 울지 않는 사람이, 항상 밝아보이는 사람이 무너지는 게 저토록 무섭게 느껴질 줄이야…. 어쩌면 선우 자신의 이기주의 일지도 모른다. 자신만 바라보게끔…, 창민을 그렇게 만들고 싶어하니까.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자신 역시 미칠지경이다. 자신이 사는 이유, 오직 하나. 심창민. 삶의 존재가 되어버린 심창민. 그런데 창민은 다른 사람만 바라보고, 그 사람때문에 괴로워 하니까 선우 역시 미칠 지경인 것이다. 창민 역시 괴로운 건 마찬가지. 남 앞에서 눈물을 잘 보이지 않던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속마음은 다 들어줘도 자신의 속마음은 타인에게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그 사람이 선우의 앞에서 한 없이 무너지고 있다. '박유천'이란 사람때문에 괴로워 하고 있다. 그럼 창민을 보는게 매우 괴롭기만 한 선우. "뒷 모습 보이지마! 나한테 뒷 모습 보이지마!! 죽을 것 같으니까, 미칠 것 같으니까!!!! 너도 알잖아, 내 심정!!!! 너도 박유천이란 사람 뒷모습만 줄 곧 봐 왔으니까 내 심정 알거아냐! 난 싫어, 난 싫단말야! 뒷 모습 바라보기 싫단 말야, 바보야!" '나 나쁜 거 알아, 심창민- 너한테 강요하고 있는 나 너한테 너무나 잔인하고 못 된 존재란 거 알아- 하지만…, 난 당신처럼 마음이 넓지 못 해서…,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의 뒤에서 있지 못해…. 난 니가 아니니까…. ……왜 하필이면 내 앞이니…? 왜 하필이면 내 앞에서… 그것도 박유천 때문에 무너지냐고! 왜!!' 선우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창민의 눈물은 점점 말라간다. 흐르던 눈물도 이제 서서히 그쳐간다. 하지만 지금 선우를 달래줄 만큼의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신 역시 많이 괴로우니까. 남을 달래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신에게 선우는 마음의 안식처와도 같은 존재…, 그래서 항상 마음의 안식처가 다칠까봐, 다치면 자신이 기대어 쉴 곳이 없으니까 항상 그 마음의 안식처를 감싸 주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지 못 한다. "미안해, 선우야…. 나… 나 지금 너무 많이 힘들어서… 너 달래줄 여유같은 거 없어…. 너무 미안해, 선우야…. 유천이한테 받은 상처… 모두를 너한테 위로 받으려고만 했어…. 미안해…. 미안해, 선우야…." 창민의 진심어린 사과. 하지만 그 사과마저도 선우에게는 상처가 되어가고 있다. 선우는 너무 많이 운 탓인지 거의 실신할 정도까지 와 버렸고, 그때 시끄러움에 잠에서 깨어났는지 차안에서 신후가 모습을 들어냈다. 주저 앉아있는 자신의 형의 모습. 그런 형의 뒤에서 마찬가지로 주저 앉아 거의 실신할 정도인 선우. 신후는 그런 선우를 부축해 차안 뒷좌석에 눕히고 자신의 겉 옷을 벗어 덮어주었다. 토닥, 토닥 아기를 재우듯 해주자 선우는 안정이 되는지 숨소리가 점점 편안해졌고 이내 깊은 잠으로 빠져 들었다. 신후는 선우가 편해질때까지 있다가 조심히 차 문을 닫고 아직도 주저 앉아있는 자신의 형에게 갔다. "형…." "……늦었네…. 집에 가자." 창민은 신후가 다가오자 늦었다며 일어서 차로 향하였다. 그런 형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보며, 그런 뒷모습을 보며 신후는 웬지 모르게 슬퍼졌다. 항상 듬직했던 형에게 엄청 큰 상처가 생겨버린 것만 같아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신후는 두 사람의 슬픈 기운에 자신마저 슬퍼 우울해져 버렸다. 축복해야 하는 날, 기뻐해야하는 날…, 몇몇 사람들은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 아, 1월 1일 00시 00분에 올리려 했지만 그냥 1시간하고도 좀 남은 이 시각에 그냥 75편을 올립니다. 뭔가 정리 안 되고, 그냥 소리만 꽥꽥 지르는 씬을 넣어버린 75편에 여러분이 실망을 하지 않았을까 조마조마 합니다; 이제 2003년이 2시간 채 안 남았습니다. 2004년에는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많은 감상과 사랑 감사드립니다. 2004년에도 실망 시키지 않는 소설로 찾아 뵙겠습니다. 모두들 몸 건강히 내년에 봐요(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6] 윤호가 결혼(재혼)을 한지도 벌써 4주일. 들리는 말에 의하면 3주일 전에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신혼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정윤호'의 결혼으로 몇몇 사람들의 관계가 묘하게 틀어져버렸지만 별 무리 없이 조용하게, 아주 조용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늘해지는 가을에 이제 밤에는 가벼운 가디건 등을 걸치기 시작했고 냉방기구들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어이, 골초 아저씨. 하루에 몇갑을 피는 거야?" "한갑밖에 안 피워." 오늘도 어김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유천.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창민에게 유천은 마우스를 움직이며 한갑 밖에 안 핀다며 대답한다. 그런데 그 대답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건조하던지 옆에 있는 사람을 다 무안하게 해 버릴 정도였다. 창민은 그런 친구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가볍게 머리를 때린다. 그런 창민에 유천은 다 탄 담배를 비벼 끄며 컴퓨터 옆에 정신없게 쌓인 서류를 집어 들며 이것, 저것 번갈아 본다. 그러다가 습관처럼 주머니속에 손을 집어 넣다가 뭔가 허전했던지 창민을 빤히 쳐다보며 손을 내민다. "뭐?" "담배." "미쳤어, 폐암으로 죽을 작정이냐? 재떨이좀 봐." "빨리 줘-" "이것 좀 보게, 벌써 니코틴에 중독된 거냐?" 창민의 말에 유천은 창민을 흘겨 보더니 됐어, 라며 재떨이에 있는 것중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문다. 창민은 그런 유천을 쳐다보더니 뒷통수를 세게 때리고는 담배를 뺏더니 재떨이를 저 멀리 치워버리고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유천은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구겨진 종이를 창민에게 던진다. 창민은 재빨리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빠른 속도로 겉 포장을 떼내고 그걸 유천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사탕?" 유천은 갑작스레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 온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입에서 떼어냈고 그것은 다름 아닌 막대사탕이었다. 창민은 담배 필 생각 말고 담배 생각날 때마다 사탕이나 먹으라며 윽박을 질렀고, 유천은 한풀 꺾인 체 창민이 넣어준 사탕만 오물오물 거리며 빨아 먹고 있었다. 멍해진 눈으로 시선을 한 곳에만 둔체 계속 사탕만 빨아대는 유천. 창민은 그런 유천을 보고 있다가 자신의 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유천을 의식하고 다시 품 안으로 집어넣었다. "유환이가 전화왔더라. 형이 이상하다면서…. 담배를 미친듯이 펴대서 폐암걸려서 죽을 것만 같단다. 밤낮 안 가리고 일만 해 대고, 노크라도 하면 잔뜩 예민해져서 소리만 질러대고. …왜 그러는데?" "……몰라." 최근 유천은 히스테리 아닌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서는 누가 건들이기라도 하면 금방에라도 화를 낼것 같지를 않나, 방에서 3일째 밤샘 작업하며 잠을 안 자질 않나, 담배를 하루에 한갑 이상씩 피질 않나. 결국 보다못한 유환이 그나마 친한 창민에게 SOS를 청했고 그래서 오랜만에 창민이 시간이 난 김에 유천의 집에 방문한 것이다. 화내는 것등은 못 봐서 모르겠지만 확실히 심각한 점은 담배였다. 고1때 호기심으로 피고는 윤호때문에 끊어서 한번도 피질 않았는데 뒤늦게 담배의 맛을 알아버린 건지, 몇 주 사이에 골초가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예전같지 않게 자신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일만 해대는 걸 보니 확실히 변해도 많이 변해버렸다. "…잊으려면 곱게 잊으려 들지, 왜 이렇게 자기 자신을 혹사시키냐?" 유천의 멍한 시선이 창민에게 닿았다. 유천의 고개가 창민에게로 돌려졌고, 유천의 텅빈 눈동자가 창민의 모습으로 가득 담겼다. 유천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입을 열었다. 이때까지 창민을 대하던 말투와 달리 떨리는 음성으로 말이다. "내가… 누굴 잊으려 들어? …어? 심창민, 말해봐. 내가 누굴 잊으려고 이러는건지…."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와 입술, 그리고 목소리. 그런 유천을 쳐다보고 있던 창민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애써 떼며 낮은 목소리와 함께 이름 하나를 꺼냈다. "정윤호." 유천의 얼굴은 이제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뭘 잊으려 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체 계속 잊으려했다. 잊으려는 '상대'가 너무 괴로운 존재기에 무조건 잊으려고만 애썼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누굴 잊으려 하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어 버렸다. 맹목적이었다, 그를 잊기위해 앞만 향해 달렸다. "…그 이름 꺼내지 마." "박유천, 정윤호를 잊어." 유천의 귓가에 메아리 처럼 울리는 창민의 말. 「정윤호를 잊어」 "정윤호를 잊어. 니가 잊어버리려는 상대를 잊어버린 것처럼…, 정윤호를 잊어버려." "…싫어." "박유천-!" "꺼져, 심창민." 유천의 눈동자가 탁해졌다. 자신에게 심한 말을 내뱉는 유천의 모습에도 창민은 아랑곳 하지 않고 유천에게 다시 말했다. 정윤호를 잊어, 라고 말이다. 유천의 인상이 찌푸려졌고, 숨소리가 격해졌다. 흥분하고 있다. 조만간 자신의 안에 있는 분노를 이기지 못 하고 터뜨리고 말 것이다. 창민은 그런 유천에게 주문처럼 말했다. 정윤호를 잊어, 라고. "그래야… 니가 편해." "꺼져. 꺼져버려, 심창민." "박유천, 정윤호를 잊어." "꺼져버려, 개새끼야!!!!!!!" 쨍그랑-! 감정이 격해져 버린 유천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책상위에 있던 유리컵을 창민을 향해 떨어졌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유리컵은 벽에 부딪혔고, 벽과 꽤나 가깝게 있었던 창민은 유리의 파편이 틔는 바람에 뺨에 길다란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이내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가 흘렀고, 창민은 가만히 상처에 손을 갖다대었다. 피가 묻어 나오는 자신의 손을 보지만 별 반응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유천은 창민의 피에 놀랐는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과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잠시 놀란 표정만 지을 뿐. 창민은 겉옷을 챙겨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여전히 흥분해 있는 유천의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툭툭 쳐 주며. "많이 예민해졌다. 머리 좀 식혀." 쾅- 그길로 창민은 유천의 방을 빠져나갔다. 창민이 나가자 유천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멍한 눈동자와 허탈한 몸짓. 자신이 왜 이러는지는 자신조차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이 아주 많이 예민해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하아…, 하악…, 하악-! 아아아아아아악-!!!!!!!!" 두 손으로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쥐고 엎드리며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대는 것 같았다. 속이 너무 뜨거워서 다 타버릴 것만 같았다. 거친 숨소리가, 괴로운 비명이 그의 방문 앞에서 차마 들어오지 못 하고 서 있는 가족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언제쯤이면 '정윤호'란 존재에게서 벗아날 수 있을런지…. ───────────────────────────────────────────────────── > 문학/예술 > 소설 월드님의 개인 소설카페 (cafe.daum.net/wdfanfic) 월드_ 게시판 자료실 소모임 내가 등록한 카페 목록 연재소설 월드의 연재소설방입니다. . 월드준회원 월드정회원 월드우수회원 월드특별회원 최신목록 목록 윗글 아랫글 [[월드]]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7] 번호:213 글쓴이: 월드 | 조회:628 날짜:2004/01/07 20:51 .. ＊bgm- Brian Crain 의 Butterfly Waltz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7] "형, 형-!" 재중을 부르는 우진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퍼졌고, 얼마 안 있어 재중이 쩔뚝 거리며 목발을 집고 (집에선 웬만하면 목발사용) 나왔다. 우진은 재중을 보자 활짝 웃으며 장을 봐 온 봉지를 바닥에 놓고 품속에서 뭔가를 꺼낸다. 재중은 그게 뭐냐면서 진에게 물었고 우진의 손에 들린 '그것'은 이내 몸을 흔들더니 고개를 내민다. "멍-!" 아직 어린 강아지의 목소리. 재중은 놀란 얼굴로 진을 바라보았고 우진은 활짝 웃으며 귀엽지, 라며 꼭 껴안는다. 재중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고 우진은 오다가 자신을 따라 오길래 너무 귀여워서 그냥 데리고 와 버렸다며 강아지를 욕실로 데리고 갔다. 우진의 대책없는 선언에 재중은 피곤한 듯 머리를 집더니 욕실 입구에 비스듬히 서서는 귀찮은 목소리로- "너 어떻게 하려고 개를 데리고 온 거야- 그것도 골목 돌아 다니는 개를. 병균 있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옷이 지저분해졌잖아. 어서 주운 그 자리에 갖다 놔." "평소에 키우고 싶었단 말야. 애완견 센터 개들은 하나같이 다 비싸고…. 이 강아지 더러워서 그렇지 씻겨 놓으면 아주 귀여울 거야. 그리고 병균같은 건 깨끗하게 씻어주면 되고, 옷은 빨면…." "전우진." 재중은 진을 불렀고 그 때문에 우진의 말이 끊겼다. 재중은 자신의 말에도 묵묵히 강아지를 씻겨주고 있는 우진이 이해가 되지 않는 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우진은 열심히 강아지만 씻겨 줄 뿐이었다. 재중은 그런 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얘가 자기 따라 온다고 해서 덜컥 데리고 올 애 아닌데', 라며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 다 씻었다- 역시 귀여워." 우진의 손길로 더러움을 다 씻어버린 강아지는 하얀 털을 뽐이라 듯 내며 온 몸을 흔들어 물기를 털어낸 뒤 짧은 다리로 열심히 거실을 향해 달린다. 우진은 쪼그려 앉아 있어서 그런지 허리가 아프다며 몸을 일으켰고 재중에게 화난 것인지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재중을 무시한 체 지나쳤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품에 안아들며 털 말려야 된다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아마 사귀고 나서 처음으로 하는 다툼. "나 참- 걱정해서 그러는 건데, 왜 그런담." 우진은 불쌍한 강아지를 다시 밖에 갖다 놓으라는 재중이 매정해 보이겠지만 재중딴에는 그런 길거리 다니는 강아지에 묻어있을 병균이 진에게 옮을까봐 걱정하는 건데 그런 맘을 몰라주는 우진이 매정해 보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유치한 싸움. 이것도 하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니 그냥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 "이런거라면, 일반 연인들이랑 별반 다를게 없네-" '동성'이라 해서 일반 연인들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들은 '일반'에 속하지 못 하는 족속들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 되니까. 그게 세상의 이치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사랑싸움도 하는 자신들을 보니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일반'인들과 다른 것이라곤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일 뿐이지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자신들도 똑같이 사랑하는 '일반 연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것이었다. 얼마 안 있어 방에 들어갔던 우진이 거실로 나왔고 소파에 앉아있는 재중을 흘끔 바라보더니 거실에 놓아두었던 봉지를 들고 부엌으로 향하였다. 강아지는 그새 진에게 정이 들었던지 진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꼬리를 흔들며 난리도 아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우진은 그런 강아지가 본의 아니게 거슬렸는지 마늘을 다지다 말고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음- 뭐라 불러야 하지. 개야…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구나. 음… 짱구네 강아지 닮았으니까- 흰둥이라 부를게. 흰둥아, 지금 형아 바쁘거든? 저기, 저 아저씨한테 가서 놀아." 마땅히 부를 게 없어 만화 주인공인 '짱구'네를 떠 올리며 어린 강아지를 흰둥이라 부르는 우진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재중을 아니곱게 흘겨보며 강아지를 놓아주었지만 진밖에 모르는 강아지는 도통 진에게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어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재중을 부르는 진. "형!" "어-" "얘 좀 데리고 가봐, 식사 못 차리겠잖아." 식사를 못 차리겠다는 소리에 눈썹이 꿈틀대던 재중이 목발을 집고 부엌까지 왔다. 그리고는 진을 충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안아달라고, 한번만 더 봐 달라고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가볍게 한손으로 작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서는 부엌을 빠져나간다. 강아지는 재중의 품에 있는 게 불만인지 낑낑 대며 결국엔 멍멍,하고 어린 목소리로 짖는다. "조용히 해, 너 콱- 갖다 버린다?" "형-! 다 들려!" 어린 강아지를 노려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해 보지만 그 어린 강아지는 오직 진에게 가기 위해 재중을 벗어나려 하고 재중의 협박에 반응하는 건 되려 우진이었다. 그런 우진의 반응에 재중은 한숨을 푹 내쉬며 강아지의 목을 간지러주었다. 그러자 언제 진에게 가고싶었다는 듯 몸을 뒤집고서 놀아달라는 강아지. "에휴, 그래- 놀아줄게, 놀아주면 될 거 아냐." 재중의 푸념섞인 목소리에 우진은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다가 시계를 한번 보더니 저녁 시간에 늦지 않게 식사를 차리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형, 동생으로 지낼 때 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분위기. 예전에도 이렇긴 했지만 뭔가 미미한 벽이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젠 그게 없어 보인다. 그리고 항상 슬펐던 그 기운도 이젠 행복한 기운으로 뒤덮이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다. 이런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인 것 같아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자자, 밥 먹으로 와!" 행복한 집안에 행복한 우진의 목소리가 퍼진다. ───────────────────────────────────────────────────── 쇼쿤, 나츠콘 봤는데.....- 너무 섹시했어ㅠ 그 노래 가사는 뭐야, '테아게로' 로 만족하지 못 하는거야(버럭;) 오쨩- 니노, 당신들 오미야SK를 꼭 봤어야 하는데, 망할 콘 비디오에 없더군. 젠장, 당신들 봤어야 했어! 마츠쥰, 너무나 섹시했어(웁스;) 아이바짱, 역시나 하이텐션! 보기 좋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8] "이 녀석들은 왜 이제서야 뒷북 치는거야." 윤호는 툴툴 거리며 식탁 의자를 하나 꺼내 앉는다. 그런 윤호의 말에 싱크대 앞에 분주히 움직이던 미야는 살풋 웃어 보이며 왜 그렇게 툴툴 거리냐며 묻는다. 그러자 윤호는 그냥 엎드려 버린다. 튀김을 튀기던 미야는 뒤돌아 보며 윤호를 보더니 방에 들어 가 있으라 하지만 윤호는 그저 막무가내로 앉아서는 턱을 괴고 미야를 쳐다 볼 뿐이다. "무리하면 안 될 텐데-" "아직 배도 안 불렀잖아요- 괜찮으니까 들어가 있어요. 기름 튀어요." "너는 기름 튀어도 괜찮아? 너 저번에도 튀기다가 손 다쳤잖아." 윤호는 미야의 말에 발끈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미야를 억지스레 불 앞에서 밀어낸 뒤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자신이 대신 젓가락을 움직이며 뜨거운 기름속에 조심히 튀김을 넣는다. 그러다가 기름이 튀었는지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들고 있던 나무 젓가락을 땅에 떨어뜨리고 미야는 괜찮냐며 당장 윤호에게 달려온다. 붉어진 윤호의 손을 보고 안절부절 못 하며 잡고 있는 미야를 보며 윤호는 특유의 편안한 미소를 지어주며 미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괜찮아, 안 아파." "그, 그래도- 내가 한다고 했잖아요!" 미야는 윤호의 손에 상처가 난게 자신때문인 것만 같아 크지 않게 소릴 질렀지만 윤호는 괜찮다면서 미야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서 자신이 미야의 손을 감싸 잡았다. 그러자 미야는 커다란 눈망울로 윤호를 쳐다보았고 윤호는 눈을 작게 휘어 보이며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했다. 미야는 그런 윤호의 모습에 입술을 앙 깨물더니, 이내 젓가락을 줍고 일어서서는 윤호에게 당장 방에 들어가라고 소리친다. "미야야, 괜찮다니까? 오빠 괜찮아-" "어서 들어가요! 앞으로 부엌에 들어 올 생각말고 오빠는 공부만 해요!" 윤호는 미야에게 방해만 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머리를 글쩍이며 슬쩍 부엌을 벗어났다. 그러다가 침실로 들어와서 책을 펼쳐들며 침대에 누웠다. 자기보고 공부하라는 미야의 말에 생각 해 본건데, 미야는 졸업을 앞 두고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휴학을 해 버렸다. 조금만 있음 졸업인데 괜히 자신때문에 완전히 끝내지 못 한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하아-" 괜시리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금 자신은 충분히 행복한데, 왜 한쪽 가슴이 휑하니 바람이 부는 것 같은지. 그게 모두 유천에 대한 죄책감, 아직 남아있는 사랑때문이란 걸 알지만 알기에 더 모른 척 하려는 걸지도 모른다. 아까 미야에게 대해줬던 그 자상함도 유천에게는 못 해줬던 일부분. 한번도 부엌에 가서 음식하는 걸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저 거실에 앉아 "조심해!"라는 말만 간간히 던져줄 뿐. 그러자 괜시리 이러는 자신이 측은해 져 버렸다. 어쩌면 자신은 유천의 남편이었던 사람으로써 유천에게 해주지 못 했던 것들을 현재 미야의 남편이 되어 미야에게 해 주려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유천보다 미야에게 더욱 잘 해주는 것이고, 잘해주는 정도가 다른 만큼 예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비교되는 걸지도 모른다. 비교하면 할 수록 드는 생각은 유천에게 드는 미안함. "…지금 와서 후회 해 봤자겠지-" 윤호는 몸을 틀며 다시 책을 펼쳐들었다. 이제 보름뒤면 의대 2학년으로 편입한다. 이제 곧 27살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대학을 다시 다니는 것도 웃기지만 의사가 되려면 의대를 졸업해야 된다니 어쩔 수 없이 편입하게 된 것이다. 사실 윤호는 의대에 진학했다가 도무지 재미 없다며 유천과 같은 대학 들어가려고 한번 더 수능을 쳐 일반 4년제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렇기에 2학년으로 바로 편입하는 윤호. 한참 재미도 없는 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딩동- "미야야! 내가 나갈게!" 벨소리가 들려왔고 윤호는 미야에게 자신이 나간다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바로 방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현관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보였고 그들은 웃어 보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안으로 들어오자 미야가 부엌에서 나와 어서 오세요, 라며 다소곳 하게 인사를 했다. "너네는 저번에 집들이 할때는 안 오더니, 왜 이제와서 뒷북이냐?" "복잡한 거 싫다고오-" "우리가 너네 오는 날을 꼭 기다려서 이렇게 상 차려야겠냐?" "정윤호, 더럽게 말 많네-" 창민은 윤호의 잔소리에 인상을 팍 쓰며 외투를 벗었고 뒤 따라 들어온 재중과 우진은 웃어보이며 소파에 앉았고, 윤호는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미야 대신 거실에 상을 펴며 여전히 창민과 투닥 거리고 있었다. 이내 미야가 음식을 들고 나왔고, 세 사람은 감탄을 연속으로 함으로써 집안은 한 순간에 시끌벅적 해졌다. 이번에는 윤호의 친한 친구들만 참석하는 두번째 집들이. 원래 두번째란 없었지만 그날 집들이에 참석하지 않은 그들 때문에 다시 한번 열게 된 것이다. 사람이 많았던 저번 집들이 보다 겨우 5명만 하는 집들이는 훨씬 단촐하지만 친한 친구들만 모였기에 더욱 즐거워 보인다. "27살 나이로 대학교 2학년이라- 크큭, 볼만 하겠다?" "놀리지마, 새끼야-" "그나저나 너 군대는 어떡할거냐? 안 다녀 올거냐?" "어떻게 안 다녀오냐, 뭐- 편입하자마자 바로 가야겠지." 어쩌다 보니 군 얘기가 나온 이들은 윤호의 군 얘기에 입을 모았다. 창민은 대학 다니던 시절에 다녀왔고, 진 역시 재학생 시절 다녀왔다가 재중의 사고로 대학을 자퇴했고, 재중 사고때문에 면제 되었다. 그러고 보니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유천과 윤호, 자신 뿐만이었다. 편입하자 마자 바로 가야겠다는 윤호의 말에 미야는 물끄러미 윤호를 쳐다 보았고, 창민은 니네 부인은 어쩌냐며 피박을 줘 버린다. 그때 맛있게 튀겨진 튀김을 한입 베어먹던 우진이 자연스럽게 유천의 이름을 꺼냈다. "군대 얘기 나와서 말인데, 유천이형 이번에 군대 간다던데-" 한 순간에 떠들썩하던 거실에 조용해 졌고, 그만큼 한 순간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진에게 쏠렸다. 우진은 자신이 실수했나 싶어 어색한 미소를 띄웠고 창민은 굳어버린 얼굴로 그게 무슨 말이냐며 진에게 말했다. 우진은 자신의 입을 원망하며 눈치를 살피더니 떠듬떠듬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그게- 저번에 만나서 얘기했는데, 더 이상 시간 끌기도 뭐 하고- 유환이도 이번에 간다길래 겸사겸사…." 끝을 대충 얼버무린 우진의 말에 분위기는 잔뜩 무거워져 버렸다. 조그만 미소를 짓고있던 윤호의 얼굴조차 잔뜩 굳어버린 지금 분위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뻘쭘해진 우진은 머리를 글쩍였고 창민과 재중조차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무슨 의민지 모르는 미야만 그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 겸사겸사가 정윤호 때문이냐?" "창민아, 진정해라." 창민의 말에 재중이 재빨리 창민을 말렸고 윤호도 아무 표정없이 진을 바라보았다. 미야는 윤호때문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윤호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보지만 윤호는 아무 말 없이 진만 응시할 뿐이었다. 우진은 싸하게 식어버린게 자기때문인 것만 같아 고개를 숙이고는 중얼거리 듯 말했다.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이제 윤호형도 미야씨랑 결혼했고, 유천이형이 윤호형 때문에- 웁-!" 모두들 우진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얼떨결에 미야까지 귀를 기울인 이 상황에 모든걸 말해버리게 되면 미야가 이때까지 그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 재빨리 우진의 입을 막아버리는 재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진 대신 입을 열었다. "무슨 집들이 와서 이런 얘기 하냐? 놀기나 하자. 다들 인상 펴!" 재중의 말이 있고서야 다들 미야를 의식했고 그제야 창민도 인상을 조금씩 펴며 술을 한모금 들이켰고, 미야는 과일을 가져 오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다시 한순간에 싸해진 분위기에 재중은 입을 열었다. "박유천 얘기는 우리끼리 있을때만이다. 미야씨가 우리때문에 피해 볼 필요는 없어." 모두들 아무런 대답은 안 했지만 다들 그렇게 받아 들였다. 얼마 안 있어 미야가 다시 오고 분위기는 방금 보다는 화기애애 해 졌지만 좀전처럼 밝아지지는 않았다. 아마 그 모든 것이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유천의 갑작스런 군대얘기 때문일게 뻔하다. 하지만 집들이가 끝나는 늦은 밤까지 그들 네명 중 단 한사람도 '박유천'이란 이름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무척이나 꺼내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겠지만 현재 윤호의 부인은 '권미야'이다. 그녀에게까지 이들의 슬픔을 나눠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나도 불좀 빌려 줘." 집들이 도중 잠시 빠져나온 창민과 윤호. 먼저 베란다로 나간 윤호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 나온 창민은 담배를 입에 물고 말했다. 얼마 안 있어 윤호가 창민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창민은 담배를 입에서 떼며 하얀 연기를 뱉었다. 밤 하늘에 희뿌연 연기가 흩어지고 그들은 한참이나 서울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유천이 군대, 어떻게 생각하냐?" "…나 때문이라 생각하지?" "……미안하다." 윤호의 말에 창민은 먼 곳을 바라보며 작게 말했고, 윤호는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필터를 깊게 빨아 들여본다. "미안할 필요있냐- 내가 더 미안하다. 내가 괜히 유천이하고 결혼해서, 일만 크게 벌여놓고- 박유천 힘들게 해서 괜한 사람만 힘들게 하고." "피식, 그 괜한 사람이 나인거냐?" "맘대로 생각해." 윤호의 말에 창민은 가만히 필터만 빨아들이다가 베란다 바닥에 다 탄 담배를 발로 비벼껐다. 윤호 역시 다 탄 담배의 재를 털털 털어본다. 창민은 베란다에 마련 된 테이블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내가 박유천을 만나 사랑하게 된 것도, 내가 박유천의 친구로 있을 수 밖에 없게 된 것도- 니가 박유천을 사랑하게 된 것도, 싫증내게 된 것도, 우리가 만난 것도- 모두…, 모두 인연이라면- 우리… 우리 정말 악연아니냐? 너무 질겨. 적당히 질겨야하는데, 피식- 그렇지, 정윤호?" "그러게. 만나면 안 될 사람들이 만나서… 더 질긴가보다. …그래서- 더 악연인가 보다." 두 사람의 측은한 대화에 거실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애써 그 두사람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어본다. ───────────────────────────────────────────────────── 오랜만이죠? 예, 오랜만입니다; 하하; 카페에 먼저 연재를 하게 되었네요. 엑스가 좀 더 걸릴 것 같군요. 으아, 갑작스런 군대얘기입니다. 군대얘기를 쓴 조차도 갑작스럽습니다. 월드야, 갑자기 왜 군대니?;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79] 윤호의 신혼집에서 막 나왔을 무렵 세상은 이미 비로 인해 젖어 있었다. 술을 안 마신 우진이 차에 타라고,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창민은 술도 깰 겸 걸어갈게, 라는 말만 남기고 그대로 뒤 돌아서서 빗속을 걸었다. 웬지 그 모습이 영화속의 주인공 같이 멋지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해서 우진은 더 이상 창민에게 차에 탈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대로 비에 젖은 도로로 차를 몰았다. 그 날 창민은 한참이나 걸어서 다 젖은 모습으로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 어제에 이어 비는 계속 왔고 전날 비를 맞아서 그런지 창민은 열이 나서 회사도 나가지 못 하게 되었다. 창민의 어머니는 창민의 방에 몇번이나 들어갔다, 나오는 걸 반복하며 물수건을 갈아주셨고, 얼마 안 있어 의사도 와서 창민의 팔에 따끔해 보이는 긴 바늘을 꽂고 갔다. 신후는 집과 학교가 꽤 멀기에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가서 밤 늦게야 와서 만날 시간도 없었고 어머니는 하루종일 이리저리 다닌다고 분주해 보였다. 오늘 하루종일 밥도 먹지 않은 체 방안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던 선우는 문득 쓸쓸함을 느낀다. 물론 같은 자식이라도 아픈 자식이 먼저겠지만, 오늘 하루종일 자신은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 형식적으로 묻는 말 한마디도 없이 그저 창민에게만 신경을 쓰는 창민의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라면 벌서 열번 넘게 자신의 방에 들어서며 빨리 밥 먹으라며 소리치셨겠지만 이 곳엔 그렇게 말 해줄 사람이 없다. 다들 자기 시간에 바빠서 자신에게 신경 써 줄 사람이 없다. 문득 둘러본 이 방 역시 갑자기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머니와 같이 돌아다니며 고른 벽지가 생각나고,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신 깔끔한 책상도 생각나고 침대 맡에 항상 자리잡고 있던 동생의 커다란 곰돌이 인형도 생각난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아버지…, 보고 싶어요…. 선혜야…, 오빠가 너무 보고싶어…." 눈물이 고인다. 항상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시지만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아껴주는 어머니 생각에, 짓궂지만 때때로는 너무나 귀엽고 예쁜 동생 생각에, 엄하기도 하셨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따뜻하시던 아버지 생각에, 같이 생활하던 그 시간이 너무 그리워서 눈물이 나온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감싸안은 체로 먼 곳만 응시하는 그 모습이 너무 외롭고 추워보여서 난로라도 가져다주고 싶을 정도이다. 곁에 누구라도 있음 그나마 그 쓸쓸함이 덜 할텐데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유천만 위하고 사랑하는 창민이라 할지라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텐데, 지금 선우의 곁에는 그 누구도 있지 않다. 똑똑- 노크 소리에 선우는 눈물만 뚝뚝 흘려대는 눈을 문쪽으로 가져갔고 이내 문이 조금씩 열릴쯤에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걸 느끼고서 급히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얀 얼굴은 붉어진 코와 눈가를 가려주지 못 하고 선우는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얼굴을 감추기 위해 아무 것도 없는 책상 앞에 서서 분주히 움직이는 척한다. 방에 들어 온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선우는 한참이나 책상 앞에서 서성거렸고 이내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야." 적당히 낮은 톤의 음성과 부드러운 목소리. 이 집에서 저 목소릴 가지고 있을 단 한사람, 그 사람이 누군지 알기에 선우는 더욱 뒤 돌아보기를 꺼려한다. 그러다가 빈 책상을 그나마 채워주고 있던 유리장식이 책상에서 떨어졌고, 워낙 약한 유리라 금방 깨 져 버렸다. 유리 조각이 이곳, 저곳으로 튀었고, 선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체로 유리가 깨진 곳 앞에 쪼그려 앉아 커다란 조각을 다른 한 손에 담았다. "선우야-" 다시 한번 들리는 그 목소리에 선우는 더욱 분주히 깨진 유리 조각을 줍는다. 그러다가 손에 피가 베이고 이내 핏방울이 방 바닥에 떨어진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고 선우는 여전히 작은 유리조각 까지 찾아 손에 담는다. 그때 등 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일반 사람의 체온보다 더 뜨거운게 열이 있다는 걸 알여준다. 하지만 선우는 신경쓰지 않고 유리를 주었고 이내 작은 유리를 줍다가 유리가 손에 박혀버렸는지 싸한 아픔에 다른 한 손에 모아둔 유리를 그만 도로 엎지르고 말았다. 선우의 손가락에서 피가 마구 세어나오고 선우는 손에 박힌 유리를 빼 보려 하지만 유리는 잘 빠지지 않는다. 그때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고 있던 그가 선우의 상처입은 손을 잡아당겨 유리가 박힌 손가락을 서슴없이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뭐, 뭐야!" "………."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상처를 핥는 창민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야말았다. 푸석푸석한 머리 모양새와 이 시간 되도록 갈아 입지 않은 그의 잠옷과 그의 옆에서 긴 줄을 이용해 약을 투입하는 링거. 그런 그의 모습에 선우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괜시리 눈물이 나온다. 너무나 쓸쓸했는데 그가 와 준게 너무 기뻐서,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오려 한다. 이내 창민은 선우의 손가락을 슬그머니 입에서 뺐고 주변에 있는 티슈를 뽑아 작게 날카로움을 과시하고 있는 유리파편과 선우의 피를 뱉어냈다. 그리고는 선우의 방에 있는 휴지통에 버린 후 나머지 유리조각 마저도 자신이 직접 다 치웠다. "바보같이… 아픈 주제에 왜 움직이는 거야? 아줌마가 알면 어떡하려고?" "…장에 가셨어." 감기로 목소리가 잠겼는지 아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달리 부드럽지 못 했고 선우의 볼에 닿는 창민의 손은 꽤나 뜨거웠다. 창민은 한손으로 선우의 뺨을 감싸더니 다시 한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울어. …애 같긴." 아픈 와중에도 짓는 창민의 미소에 선우의 눈에 잔뜩 고인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선우의 얼굴이 조금 구겨진다 싶더니 이내 창민의 목덜미를 와락 껴안는다. 창민은 갑작스럽게 안기는 선우의 모습에 그리 놀란 모습도 보이지 않은 체 한손은 바닥을 집고 링거를 맞고 있는 손을 어렵게 움직여 선우의 등을 쓸어준다. "울지마. …울면 안 되는거야." "으흑- …누가… 누가 운다고, 으윽-" 창민의 어깨너머로 힘없이 또 눈물을 떨어뜨리고 마는 선우. 창민은 선우의 맘을 알겠다는 듯 연신 등을 쓸어주었다. 어린 아기를 달래듯, 우는 아기를 달래듯 말이다. 창민은 중심을 잡고 나머지 한손으로 선우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부드러운 선우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따가운 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또 바보같이… 혼자라고 생각했지…?" "으윽, 으흐윽-" "바보같긴. 이선우, 너 이렇게 바보였냐." 창민의 말에 괜히 눈물이 더욱 흘러나왔다. 자신이 혼자 있을 때마다 옆에서 감싸 안아주는 그의 모습에 선우는 그를 더욱 끌어 안았다. 창민은 아직도 어린 아이같은 선우의 모습에 힘 없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밉지? …유천이 생각만 하고. 그런거 보면 나도 참 한심한 놈이야- 박유천은 절대 날 사랑하지 않을건데- 난 끝까지 바라보니까. …큭- 해바라기라도 된 기분이야. …항상 미안하기만 하네-. 항상 가려는 널 잡는 건 난데…, 항상- 항상 미안한 일만 생기네." 선우는 창민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열 기운때문에 뜨거운, 그러나 따뜻한 창민의 체온인 느껴진다. 이대로, 계속 그의 품에 안겨있고 싶지만, 그는 환자이다. 선우는 눈물을 닦아내고 창민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민을 일으켜주었다. 서로 몸이 꽤 밀착된 상태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창민은 아직도 젖어있는 선우의 눈을 바라보았고, 선우는 열때문에 충혈된 창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앞으로는- 형이라고… 부를게… 요. …다시는 버릇없게 굴지도 않을게요." "…선우야." 창민은 갑작스런 '형'이랑 호칭과 선우의 존대에 놀란 모양인지 선우를 불렀고, 선우는 시선을 창민의 어깨 너머로 내리 깔며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정주기 싫어… 요. 나 이제- 당신, 아니. 형한테- 정 뗄거에요." "………."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한날… 갑자기 당신, 아니- 형 앞에서… 없어져 버릴 거에요." 자신또한 어색한지 선우는 몇번이나 말을 고쳤고,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엄청난 말을 내뱉어 버렸다. 선우는 여전히 젖은 눈으로 창민을 보더니 조심스레 창민의 목덜미에 팔을 두른다. 완전히 밀착된 두 사람의 몸과 얼굴. 선우는 촉촉히 젖은 속눈썹을 내리깔며 조심히 자신의 입술을 창민에게 가져갔다. 촉- 가벼운 마찰음이 나고, 창민은 선우의 떨리는 속눈썹을 보았다. 얼마 안 있어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선우는 한동안 창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만히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뗐다. 눈물로 얼굴이 흠뻑 젖었는데도 눈을 휘며 웃어보이더니- "어서 방으로 가요." "…너 감기 걸리면 어떡하지?" 선우는 눈가를 닦아내다가 창민의 말에 무슨 말이냐는 듯 창민을 쳐다보았고, 그때 갑자기 창민의 한쪽 팔이 선우의 허리를 휘감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겨 아까와 같이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붉은 선우의 입술을 한번에 빨아들였다. 놀란 선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민을 밀어내려했지만 창민은 선우의 벌여진 입술 사이로 혀를 집어넣으며 더욱 강하게 빨아들였다. 창민의 감은 두 눈을 보고서야 선우도 힘없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선우의 입속을 헤집고 다니던 창민은 잠시 선우에게서 입술을 떼 내고 키스에 능숙하지 못 해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선우를 더욱 껴안았다. 생각 같아선 다른 한 손도 쓰고 싶지만 링거 바늘이 꽂혀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사용 가능한 한 팔로 선우를 꽉 안았다. "하아- 또… 미안한 일 생겼다." 촉촉하게 젖어 길게 뻗은 속눈썹을 들어올려 창민을 보던 선우는 창민의 말을 듣고 다시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어설픈 동작으로 창민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어왔다. 창민은 더 이상 아까처럼 놀라거나 하지 않고 다시 선우의 붉어진 입술을 머금었다. 창민의 열기가 선우에게까지 전해지고 선우는 창민의 목덜미를 더욱 껴 안았다. '…나 당신한테 고마워 해야겠지…? 이렇게 좋은 선물 줬으니… 고마워 해야겠지…?' 선우의 목소리가 조용히 선우의 가슴속에서 울렸다. ───────────────────────────────────────────────────── 역시, 오랜만에 찾아 뵌 권태기의 인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기뻤답니다. 나 사랑 받고 있구나, 하구요; 뭐, 실은 권태기가 사랑받고 있구나, 겠지만 제 맘대로 절 사랑한다고 생각할래요; 아, 역시나 군대 얘기에 엄청난 문의가 들어왔는데; 대한민국 민증 가지고 있는 건강한 남성이라면 한번쯤은 꼭 다녀와야하는 곳이 군대이기에; 뭐, 다녀왔다고 넣고 싶었지만 다녀왔다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안 맞는거에요; 그래서 갑작스럽게 넣어버렸답니다. 아, 저 역시도 유천씨가 잔뜩 그을리고 빡빡이 머리를 한 체 있는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군대에 가면 취사병으로 집어 넣어버릴까 생각중입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0] 갑작스럽게 내리기 시작했던 비는 3일간 계속 되었고, 잠시 그쳤다 싶었더니 이틀 채 지나지 못 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를 시작으로 더위가 싹 가시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너도 나도 긴 옷을 찾기 시작했고, 여름 옷은 재고 정리에 들어섰다. 그렇게 힘든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 "그래, 늦을 수도 있으니까 기다리지 마- …응, 그래. 알았어, 어서 자." 윤호의 다정한 목소리가 빗속에서 들려오고 윤호는 이내 살풋 미소 짓더니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 친구분 중에 박사 학위를 따신 분과 만나뵙고 나서 집에 곧장 들어가려다 발걸음을 돌려 이곳까지 와 버렸다. 지금 시간도 충분히 늦은 시간이었기에 그와 얘기를 하고나면 더 늦을 것만 같아 잠 안 자고 자신을 기다릴 미야에게 먼저 자고 있으라고 전화를 했다. 그렇게 윤호는 빗속에서 골목길 가로등의 불빛을 받으며 우두커니 우산을 든 체로 서 있었다. 그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끼이익- 빗속에서 꽤나 귀 아픈 소음이 들려왔고, 이내 밝은 라이트가 꺼지며 차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그는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렸고, 윤호는 어둠 속에서 그에게 조금씩, 조금씩 다가갔다. 윤호가 다가갔을 때 그는 거의 다 젖어 있었고 윤호는 슬쩍 그에게 우산을 씌어 주었다. 같은 우산 안에 있게 된 두 사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고, 이내 시선을 돌려 버린 건 윤호가 아닌 그 누군가 쪽이었다. "웬… 일이야." "보고싶어서." 눈을 작게 휘며 웃는 윤호의 말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던 그는 다시 윤호를 바라보았다. 윤호는 젖은 그를 안았다. 그리고 잔뜩 밀착된 그의 몸에서 떨림을 느끼며 쓴 웃음을 짓더니 그의 귓가에 소근거리 듯 말 했다. "박유천, 나 안 보고 싶었냐?" 윤호는 유천의 이름을 불렀고, 유천은 윤호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떨리는 몸으로, 그 떨리는 손길로 윤호를 밀쳐내며 다시 우산 밖으로 벗어났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있는 집쪽으로 향했다. 그때 윤호가 유천의 팔목을 강하게 잡아 당겼고 유천의 몸은 힘없이 윤호의 앞에 돌려 세워지고 말았다. "정윤호-" "얘기- 하고 싶어. 얘기 하고 싶어서 온 거야. 시간 좀 내 줘." "…할- 얘기 없잖아. 우리 더 이상 마주보고 있음 안 되는 거잖아. 어서 돌아가." "어째서? 어째서 우리가 마주 보고 있음 안 되는 거야?" 윤호는 유천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윤호가 쳐다본 유천의 눈동자에는 곤란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눈동자는 니가 결혼을 했기 때문이야, 라는 것처럼 보였다. 윤호는 그런 유천의 모습에 웬지 화가나 유천의 팔목을 잡아 당겨 다시 우산 속으로 끌어 당긴 다음 유천의 어깨를 단단히 감싸 끌고 가다시피 해서 자신의 차쪽으로 데리고 갔다. "정윤호, 이거 놔!" "타, 박유천." 낮은 윤호의 목소리에 유천은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오르고 만다. 윤호는 유천을 태운 뒤 문을 닫더니 운전석으로 왔다. 시동을 걸어 자신을 데리고 떠 어디론가 갈 것만 같던 윤호는 시동을 걸어 유천의 젖은 몸을 말릴 수 있도록 히터를 틀 뿐 어디론가 가거나 하지 않았다. 차에 작은 불이 켜졌고, 윤호는 그 작은 불 빛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린 유천의 옆모습만 바라 볼 뿐이다. 유천은 그런 윤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비가 오는 창밖만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넌 우리가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그럼 넌 우리가 만나도 된다고 생각하니?" 윤호의 물음에 화가 잔뜩 난 유천이 되 물었다. 윤호는 유천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 우리가 만나면 안 되는건데? 어째서?" "내가 이런말 하는 거 웃기지만, 너 나 사랑하고 있잖아. 이제서야 그 지긋하던 권태기가 끝나가고 있잖아!" 유천의 말에 윤호는 은근슬쩍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려버렸다. 사실이었다. 이제서야- 겨우 이제서야 그 지긋하고 빌어먹을 권태기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유천은 거기서 말을 그치지 않고 계속 윤호를 쏘아 붙였다. "너는 재혼했어! 예쁜 부인도 있고, 니 부인은 이제 니 아이까지 가졌어!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할래? 나에 이어 니 부인 조차도 힘들게 할 생각이야? 나 하나로는 부족하니? 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상처를 안겨줘야만 만족할 수 있겠어? 혹시 너는 내가 다시 널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해주길 바래?!" 어느새 윤호의 시선은 완전히 딴 곳으로 향해버렸고, 유천의 말이 끝날 무렵 다시 유천에게로 향했다. 유천은 격해진 감정 때문에 숨소리 마저 거칠어졌고, 이내 젠장 하면서 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담배를 머금었다. 뭔가- 상당히 거칠어 져 있는듯한 느낌이다. 유천의 말은 다 사실이고 정답이다. 하지만, 평소의 유천이라면, 적어도 정윤호가 알고 있는 유천 이라면 절대 이렇게 흥분한 체로 잔뜩 화난체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유천은 히스테릭 할 정도로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고 있다. 윤호는 안타까운 눈을 한 체 물었다. "다- 모두 나 때문이니?" "……그래." "그럼, 박유천 만나면 안 될 것 그랬다. …처음부터… 안 만났다면- 우리, 우리 서로 사랑할 일도 없을 거고- 이렇게 엇갈릴 일도 없을 건데-, 그런데 우리 잘못 만났나 보다." "……그… 래. …우리, 잘못 만나도 한참 잘못 만났어. 그러니까- 우리 여기서 인연 끝내자. 인연 끝내면!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해! 그러니까 이제 나 찾아오지 말고 니 부인에게, 니 아이에게 더욱 충실해져!" 유천의 언성이 다시 높아졌고, 유천의 말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유천이 톡톡 쏘아 붙일 때 마다 윤호의 고개가 점점 돌아가기 시작한다. 유천이 아닌 비가 내리는 어두운 창 밖으로. 유천도 말을 내 뱉는 내내 윤호가 상처 받을 게 생각나 가슴이 아팠지만, 이래야만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모질어야만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모질고 싶지 않지만 모질어야 했다. "친구도… 안 되니?" "……안…돼…." "…하아- 그래. 이게 다 내 잘못이니까. 내가 벌인일이고, 나 때문에 우리가 엇 갈린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다 이해해. 니가 나에게 모질게 대하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나 정말 나쁜 놈 같은 소리 하나만 할게." 윤호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게 유천은 못 내 가슴에 걸렸는지 눈물이 글썽거리려는 걸 참으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흰 손가락에서 혼자 타 들어가는 담배가 왜 그리 쓸쓸해 보이던지. 유천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빨리 말해, 라고 말했고 윤호는 침을 한번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이해 해 줬음 좋겠다. …나 사실- 나 힘든 거, 너 한테 밖에 말 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욕심 부렸어. 재중이도 있지만- 그래도 왜 너한테밖에 말 못하겠는지는… 모르겠다." "정윤호. …힘들어…? …안… 행복해…?" "행복해…. 행복한데- 나 사실 지금 아주 행복에 겨운 놈인데…, 나- 뭔가 허전해." 유천은 눈에서 글썽 거리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차 문을 열었다. 담배가 땅에 떨어지고 이내 비에 젖어 불이 꺼졌다. 막 차에서 벗어나려는 유천의 등 뒤에 대고 윤호는 조용히 말했다. "군대… 간다며? …그냥- 군대간다는 소릴 듣게 되서, 어쩌다보니… 또 너한테 오게 됐어." "…아직… 일러…, 내년… 3월에 가…." 윤호는 유천의 울먹임을 느꼈는지 슬프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웃음과 마찬가지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결혼 식 때- 그렇게 웃으면서 나 잘 보내줬으면서, 왜 그렇게 약한거냐. 그렇게 울어버리면- 마음이 놓이질 않잖아. …아무리 모질게 말한다 해도 끝에 울어버리면 소용 없다고, 박유천." "갈게." 탁- 윤호의 말을 끝으로 유천은 눈물을 참지 못 했는지 윤호의 차에서 내렸고 이내 비오는 그 길을 여전히 우산 없이 걸어 나갔다. 혼자 남은 차 안에서 윤호는 핸들을 꽉 잡더니 이내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에서 힘을 빼 버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널 보낸 걸… 이렇게 후회하고 있으니까…." ───────────────────────────────────────────────────── 취사병은 엄청났습니다- 크큭, 지금 새벽 4시입니다. 엑스에는 또 언제 올릴지-(퀭-) 카페에 먼저 올립니다. 으으, 눈이 괴로워요- 엄마에게 들키기 전에 어서 자야겠는, 쿨럭; 저는 인간을 '후회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을 살아가면서 후회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실로 존재하지 않겠죠(笑) 80편은 민셩이었습니다. 사실은 완디 내용을 마저 끝내고 싶었으나, 쿨럭; 감상에서 80편은 민셩으로 해 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차마 무시할 수 없어서, 쿨럭; 그럼 저는 이만 자러가겠습니다! 내일, 아니; 오늘은 어머님 생신ㅠ 엄마 생일날 늦잠자면 안 되겠죠, 쿨럭; 5시간만 자고 일어나야, 쿨럭; 그럼 이만! ━━━━━━━━━━━━━━━━━━━━━━━━ 　소설제목 ☞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下) ──────────────────────── 　작가이름 ☞ 월드 ──────────────────────── 　작가메일 ☞ x_world@hanmail.net ──────────────────────── 　소설출처 ☞ X ──────────────────────── 　계정출처 ☞ Knights of M.S Kingdom ━━━━━━━━━━━━━━━━━━━━━━━━ ──────────────────────────────── 아래소설의 제작권은 '월드'에게 있으며, 개인소장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펌이 발각되는 즉시 마스터에게 건의하겠습니다. 절대 개인소장용으로만 사용해주십시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1] 달칵- 조용한 밤에 꽤나 커다란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린다. 현관의 현광등이 자동으로 켜지고 그는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그가 거실로 발을 딛자 현관등이 꺼지고 거실에는 스탠드의 흐린 불빛이 잔잔히 퍼져 있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서기 전 거실 소파에 잠시 몸을 뉘인다. 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새벽 2시다. 생각보다 차에서 꽤나 오래 있었던 듯 하다. 그때 문 하나가 열리며 파자마 차림을 한 미야가 눈을 비비며 나오더니 오빠 왔어요, 라며 물어온다. 그는 미야의 등장에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앉았다. "아직 안 잤어? 내가 늦을 거라고 했잖아-" "아니에요, 나 잤어요. 문 여는 소리에 잠깐 깬 것 뿐이에요." 윤호의 걱정섞인 목소리에 미야는 자다가 깬거라며 윤호에게 둘러대지만 윤호의 눈에 비친 미야는 도무지 자다가 깬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미야는 그의 앞에 다가서며 그를 안아주었다. "안 좋은 일 생긴거에요? 기분이 안 좋아보여요, 오빠." "미안. 미안, 미야야." 윤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미안하다 했고 미야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나야말로 미안해요. 오빠 힘든 것 같은데, 아무 위로도 못 해주고." "아니야. 아니야, 미야야. 오빠가- 너한테 너무 미안해서…." 미야는 작게 웃었고, 그의 손을 풀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자신의 어깨에 놓으며 그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대어 보았다. 그리고는 기분 좋은듯한 미소를 짓고서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나는 오빠한테 너무 감사해요- 사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을때 너무 겁이 났거든요. 오빠가 그대로 뒤 돌아서 버릴까봐요. 그런데- 이렇게 나랑 결혼도 해주고. 그날 실수만 안 했어더라도 오빠는 저같은 여자보다 더 멋진 여자 만날 수 있을건데. 하지만 나 말예요. 오빠랑 결혼하고나서 하나 맘 먹은 거 있어요. 오빠가 저 때문에 앞으로 만날 멋진 여자들을 다 포기했으니까 권미야, 니가 멋진 여자가 되어 보자, 라구요. 그래서 나 열심히 노력중이에요." "………." "나 그때- 오빠가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어요. 끝날 때까지- 그 시간이 끝날 때까지 오빠는 계속 그 사람 이름을 불렀어요. 오빠는 기억 안 나죠? 하긴- 그때 잔뜩 술에 취해 있었으니까요. 오빠가 아이때문에 하는 수 없이 결혼한 거 알아요. 하지만, 나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오빠의 부인으로써- 오빠의 사랑이 될 수 있도록요. 오빠, 감사하고… 또 미안해요." 윤호는 어둠속에서 미야를 쳐다보았다. 스탠드의 불빛에 반사되어 미야의 눈물이 반짝였다. 윤호는 미야의 어깨에 올려진 팔에 힘을 주어 미야를 품에 끌어 안았다. 이 아이에게 너무 큰 잘 못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유천에게 처럼 어느 순간에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너무 미안하다. 차 안에서 혼자 깊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 있어 박유천이란 존재와 권미야라는 존재에 대해. 결론은 박유천은 전(前)이고 권미야는 현재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지금 이 순간, 바로 현재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나에게도 전 아내보다 지금 아내가 제일 중요한 것일까, 하고 윤호는 결코 답을 알수 없는 물음에 머리를 굴려야 했다. 지금 행동이 제일 흐지부지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마음을 잡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 유천의 앞에 가 있다. 하지만 오늘 유천을 보고 알았다. 유천은- 자신의 아픔이 미야에게도 반복되는 걸 원하지 않는 것이다. "권미야, 나 정윤호가- 너한테 이 약속 꼭 지켜줄게." "…무슨 약속이요?" 윤호의 말에 미야는 급히 눈물을 닦아내며 밝게 물었고, 윤호는 미야의 어깨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말했다. "권미야, 너에게만은- 두번 다시 후회하지 않게…, 행복하게만 해 줄 거고- 다른 사람, 설령 그게 내가 그날 밤 계속 불러댔던 이름의 주인이라 할 지라도…, 나 다른 사람 절대로 안 볼게. 너하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만 아껴지고 지켜주고 …사랑할게." "헤헤- 나 왜 이러지…? 아주 기쁜 말인데- 괜히 눈물이 나오네…." 박유천은 추억으로 남기자, 이게 그 고민의 최종적 결론이었다. 추억으로 남기면 좋은 기억만 남을 것이고 서로 피해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박유천은 박유천대로, 정윤호는 정윤호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이 같은 상황에서 제일 현명할지도 모를거란 생각을 했다. 정윤호가 지금껏 재혼을 하지 않았다면 다시 시작할 수도 없지않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다. 정윤호는 다른 여자와 재혼했고 거기다 아이까지 생겼다. 이제 정신 차리고 오직 자신의 아내와 아이만을 위해 살기로 맘 먹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사랑해야할 사람은 이제 '권미야'뿐이다,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에겐 화내지 않을거야, 짜증내지 않을거야, 싫증… 내지도 않을거야. 잘 해 주기만 할 거고, 사랑만 해 줄 거야. 그래서… 니가 울지 않고 항상 웃을 수 있게만 해 줄거야." "으흑- 고마워요…. 흐윽- 고마워요, 오빠…." 윤호는 따스한 손길로 그녀의 눈가를 닦아주었고, 그녀를 소중한 것을 대하 듯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에게 해주지 못 했던 것들을 그녀에게 다 해주고 말겠다고, 두번 다시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이제는 꼭 잘 해 보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는 어둠속에서 지그시 눈을 감으며 속으로- 조용히 자신만 들리게 말했다. '유천아, 너에 대한 감정은- 미안한 감정으로 그칠게. 이때까지 피곤하게 해서… 미안.' 이렇게 정윤호는 박유천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져가기 전에 줄기를 잘라버리고 말았다. ───────────────────────────────────────────────────── 아, 우선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80편 내용에서 두 사람의 알 수 없게 갑자기 변해버린 행동에 많은 분들이 이거 뭐야, 정윤호가 분명 결혼식장에서 그냥 지나쳤잖아, 하고 놀라셨겠죠;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내용의 흐름을 흐트러 놓았군요; 대단히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실수 없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소설 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봐 주시는 분들덕에 제 글에서 고쳐야 할 점도 깨우치고, 그런 점을 서슴없이 지적해주시는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2월입니다, 개학이 다가오는군요(씁쓸) 방학 마무리 열심히 하시구요, 다음에 뵈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2] "병신-" 오늘 웬일로 일찍 들어왔는지 신후는 교복을 갈아입자마자 선우의 방에 들어와서 계속 시비다. 선우는 그런 신후가 꽤나 거슬렸지만 상대해주면 더 기어오를 것만 같은 신후때문에 애써 외면하며 이불을 뒤집어 쓸 뿐이었다. 그러자 신후는 침대 근처에 다가오더니 또 병신-, 이라며 계속 중얼거린다. 선우는 이불 속에 들어가서 귀를 꼭 틀어 막았다. 왜 자신이 저런 어린 애한테 병신이란 소릴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반항기겠거니 라고 지나치려 해 보지만 신후는 반항을 넘어 건방지다. 자신보다 더 버릇없는 신후. 어쩌면 창민과 나이 차이가 꽤 나기 때문에 집안에서 오냐, 오냐하며 키운 걸 지도 모른다. 늦둥이니, 막내니 하면서 말이다. "병신, 이제는 귀머거리냐?" "………." "아, 귀머거리도 병신이지? 쿠쿡, 병신새끼." 신후의 말에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선우는 이불을 걷어냈고, 몸을 돌리는 순간 석고상 처럼 굳을 수 밖에 없었다. 1인용 침대라 좁은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바로 옆에 신후가 누워있는 것이었다. 소리가 워낙 가깝길래 그냥 침대 근처로 다가온 줄만 알았지 자신의 바로 옆에 누워있을 줄은 몰랐다. 선우는 좁은 틈에서 상체를 일으켰고, 이내 신후를 발로 차서 침대 밑으로 떨어뜨렸다. 역시나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병신새끼야! 아프잖아! 에이, 씨발." 선우는 엉둥이를 문지르면서 욕을 자연스럽게 내 뱉는 신후의 모습에 기가찬 듯 웃어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삥 뜯던 그 모습만 봐도 신후가 꽤나 논다는 것은 알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나는 날라리요-'라고 광고하는 것만 같았다. 신후는 선우의 웃음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너 내 모습이 웃기냐?! 왜 웃는 건데?!" "그래, 웃기다- 어쩔래? 나한테 관심좀 가져 주세요, 라고 광고하는 것 같아서 너무 웃겨. 어디서 쪼끄만 게 욕을 밥 먹듯 내 뱉고, 까불어? 너 날라린거 티내고 싶어? 그래서 나한테 이래?! 왜 계속 나 괴롭히는데? 이 개 새끼야!" "어쭈, 욕하는 거냐?" "나는 욕 못하는 줄 알았냐? 너야말로 병신새끼 아냐? 뇌가 잘 못 된 병신 새끼." 그 말을 끝으로 한껏 입 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비웃음까지 내 비추는 선우의 모습에 신후는 당장이라도 때릴 기세로 주먹을 든체 일어서더니 이내 한쪽 손으로는 선우의 멱살을 잡고 한쪽 손은 강하게 주먹을 쥔 체로 선우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선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때릴 태면 때려 봐, 라는 듯한 눈으로 신후를 쳐다 보았다. 신후는 주먹을 더욱 꽉 쥐었고, 선우는 그런 신후를 알기나 한 건지 더 도발했다. "왜? 못 때리겠어? 킥-, 너 같은 새끼들은 폼만 거창하지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못 하지. 그래,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다. 꼬맹이들 주먹질이 다 그렇지, 뭐. 그나저나 이것 좀 놓을래? 꽤나 불쾌하거든?" 선우는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까지 첨가해서 내 뱉고 있었고 신후는 선우의 멱살을 더욱 꽉 쥐었다. 선우는 숨이 막히는지 신후의 팔목을 아프게 내려쳤다. 하지만 신후는 계속 선우의 멱살을 잡은체로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선우는 속으로 잘못 건드린 걸까, 라 생각했고, 그때 신후의 입술이 한껏 비틀어져 올라갔다. "불쾌? 불쾌하다 했냐? 큭, 내가 더 불쾌해. 너같은 인간한테 내가 왜 그런 소릴 들어야 되는 거야?" "…너희같은 새끼들은 쓸 데없니 자존심만 쎄서 밥맛이야.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세상 살아가려면 그 자존심부터 좀 없애보는 게 어떻냐? 적어도 나한테 애 취급 받기 싫으면 말야." 그 말을 끝으로 선우의 입이 일자가 되었고, 신후의 웃고 있던 표정은 화로 일그러졌다. 선우는 이 상황이 짜증나려고만 했다. 자신보다 어린 녀석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고, 혼자 있고 싶은 시간에 이렇게 갑자기 들이 닥쳐 시비를 붙이는 신후도 맘에 들지 않았다. 이게 아무리 하나의 관심이라 해도 이런 관심은 사절이다. 적어도 선우에겐 그렇다. "김신후. 당장 놔, 니 손목 꺾어버리기 전에." 선우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신후의 팔목을 잡으며 위협하듯 말했지만 신후는 꼼짝하지도 않았다. 선우는 한숨을 푹 내 쉬었고, 그때 목에 답답했던 느낌이 좀 사라진다 싶었더니 한 순간에 고개가 치켜 들어지고 한순간에 얼굴이 덮였다. 선우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이내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무언가를 느끼며 신후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신후는 17살의 어린 나이 치고 웬만한 성인 남자의 힘 못지 않게 강했다. 선우는 신후의 머리 쪽으로 손을 옮겨 머리칼을 움켜 쥐고 떼어 내려했다. 머리칼이 잡아 당겨지는 아픔에 신후는 감고 있던 눈을 떴고 선우를 노려보았다. 선우는 창민과 닮은 얼굴에 손에 힘이 스르르 빠져버렸지만 이내 신후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고는 신후의 혀를 꽉 깨물었다. "하악, 씨발… 새끼야…. 헉- 장난도 정도껏 쳐라…, 하악-" "하악, 하악- 그러니까… 애 취급 하지마, 병신아." 신후는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났고, 방을 벗어나려했다. 그때 선우가 신후를 붙잡았다. 신후는 자신의 팔목을 잡은 선우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선우는 신후의 팔목을 강하게 잡고서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후는 그제야 그를 마주하고 섰다. 왜 잡아, 또 당하고 싶어? 라는 말을 내 뱉는 신후에게 가볍게 웃어준 (비웃음과도 같았다) 선우는 그를 똑바로 쳐다 보며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키스했으니까 대가를 치뤄야지." "무슨 말이야?" "김신후, 부탁하나 할게." 신후의 짜증 섞인 얼굴이 천천히 굳어갈 무렵 선우는 싱긋 웃어보였다. 선우는 신후를 끌어안다 시피해서 그의 귓가에 무엇을 소근거렸다. 다 말하고 나자 선우는 신후에게서 거리를 둔 체 떨어졌고 이제 나가봐, 라고 했다. 하지만 신후는 발이 붙은 듯 가만히 서서는 선우를 향해 무섭도록 가라앉은 음성을 내 뱉었다. "너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인거야." "말 그대로야. 빠른 시일 내에 부탁할게." 그때 갑자기 선우에게 달려들은 신후는 선우의 멱살을 잡아챘고, 선우의 싱글 거리던 얼굴은 점차 표정이 없어졌다. 신후는 선우의 멱살을 잡고있던 손에 힘을 풀며 절망적인 표정을 짓는다. "어째서? 어째서, 왜!!!" "김신후, 너 애취급 하지 말랬는데- 지금 보니까 영락없는 애다." "야, 이선우!!" "부탁이야, 김신후." 신후는 자신을 바라보는 선우의 진지한 눈빛에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부탁을 들어줘야할지, 말아야 할지 도대체 판결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진지한 눈빛속에 왜 계속 상처받은 듯한 눈빛이 한 가득 있는지, 신후는 선우를 꽉 껴안는다. 선우는 의외로 아무런 소리 없이 가만히 신후의 품에 안겨올 뿐이었다. 신후는 선우를 꽉 끌어안고 조용히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막내라서…, 그것도 우리 형이랑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막내여서 사랑만 받고 자랐거든? 그래서- 나는 사랑 받는 것만 알지, 사랑을 주는 건 몰라-. 그리고 사랑은 받으면 되니까 주는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진짜 태어나서…, 17년 인생 살면서 처음으로 후회되는 거 알아? 사랑 주는 법 좀 알아 놓을 걸, 하고 말야. …그랬으면…, 그랬으면… 내가 너 사랑해 주면 될텐데…." "…큭-. 너같은 어린 놈한테 사랑 안 받아도- 나 21년 동안 충분히 사랑받고 살았어, 새꺄-" 선우의 말에 더욱 서글퍼진 신후는 그저 더욱 꽉 안아올 뿐이다. 신후의 행동에 선우 역시 덩달아 서글퍼지는 이 기분은 어쩔 수 없나보다. 선우는 조심히 손을 움직여 우울 해 하는 신후의 등을 그저 토닥여 줄 뿐이다. ───────────────────────────────────────────────────── 어설픈 마무리. 82편- 실망, 실망 대실망! 왜 이렇게 어설프지. 난 신후가 좋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3] 모두가 잠들은 늦은 밤. 달칵, 거리는 작은 문소리와 함께 신후가 조용, 조용 선우의 방 안으로 들어선다. 선우는 기다렸다는 듯 침대에서 일어섰고, 신후가 내민 손을 잡고 발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히, 조용히 1층 현관으로 향했다. 신후의 조용한 손놀림에 현관문이 열리고 선우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선다. 신후는 밖에서 현관문을 잠그고 또 다시 선우의 손을 잡아채서 대문을 벗어난다. 대문 밖에는 신후가 타고 다니는 바이크가 대기 되어 있었다. "자, 헬멧 써." "이걸로 대전까지 갈 수 있어?" "니 짐도 이걸로 날랐으니까 어서 타기나 해." 헬멧은 쓴 선우는 먼저 바이크에 오른 신후의 뒤에 탔고, 자신의 헬멧을 쓴 신후는 바이크에 시동을 걸더니 뒤를 돌아 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옷 자락만 잡고 있는 선우의 손을 끌어다 자신의 허리를 잡게 했다. 신후는 이렇게 해야 안 떨어 져, 라며 퉁명스럽게 말한 뒤 시끄러운 모터소리를 내며 조용한 동네를 서서히 벗어났다. 「창민 형 방에서 우리 집 열쇠랑, 집 문서, 내 이름 앞으로 된 통장하고 도장을 꺼내 와 줘」 이주일 전, 선우가 부탁한 '키스의 대가'는 창민이 맡고 있는 선우의 재산이었다. 선우는 창민이 출근한 뒤 창민의 방에 들어 가 자신의 물건이 있는 곳을 알아냈고, 그것을 신후에게 알려 꺼내오도록 했다. 신후가 틈을 봐서 꺼내오는 그 기간동안 선우는 매일같이 대전에 내려가 집을 청소했다. 그리고 짐 정리를 한 뒤, 집은 부동산에 내 놓았다. 필요한 가전제품이나 가족들이 함께 쓰던 소품 등을 빼 놓고, 모두 중고센터에 팔아버렸다. 다행히 꽤나 값있게 팔았고, 집을 내 놓은지 얼마 안 되어 집을 보러와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가족의 그림움에 묻혀 살 수 없었다. 그리고 대학은 휴학을 해 놓은 상태라 다음 해부터 다니기로 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든, 대학은 마치기로 맘 먹은 선우였다. 토요일날 학교를 마치고 온 신후는 가족들이 모르게 친구들에게 부탁해 선우의 짐을 선우가 가르쳐 준 대전의 집까지 옮겨주었고, 월요일날이 개교기념일인 걸 이용해 일요일 저녁 부모님이 외출하신 걸 노리고 창민의 눈을 피해 이렇게 새벽에 선우를 태우고 대전으로 향하는 길이다. 부아아앙-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달리는 신후는 느슨해지는 선우의 팔에 꽉 잡으라고 소리친다. 얼마 안 있어 신호를 받게 되고 신후는 신호가 떨어지기 까지 잠시 멈췄다. 아무도 없기에 그냥 지나쳐도 상관 없지만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제법 추워진 날씨에 바이크를 타고 가는 건 꽤나 추웠다. "안 추워?!" "응, 좋아!" 선우는 신후의 허리를 잡으며 등에 기대었다. 신후는 자신의 등에 기대는 선우를 느끼며 다시 바이크를 움직였다. 이렇게 보내도 될까, 싶지만 이주일 전 선우는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선우를 좋아하게 된 지금, 모든지 해 주고 싶은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해 줄수 있는 것은 선우를 안전하게 대전까지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후는 그렇게 좋아하는 잠까지 자지 않고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선우를 데려다 주는 것이었다. "병신 새끼야! 대전 가서는! 병 든 닭처럼 있지 말고 잘 살아!" "으응, 그럴게…. 그럴게, 신후야!" 자신의 말에 흔들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선우가 가슴 아프게 느껴져 신후는 더욱 속력을 높여본다. ≠ 아침이 되어서야 대전, 선우의 집에 도착했다. 신후는 선우가 내리자 헬멧은 벗으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선우에게 내밀었다. 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쇠가 눈 앞에 비춰졌다. 선우는 열쇠를 받아들었고, 신후는 짐은 안에 잘 모셔다 놓았으니 걱정 말라는 소리와 함께 헬멧을 썼다. "좀 자고 가." "됐어, 빨리 서울 가 봐야 돼." "이거…." 선우는 자신의 품에 안고 있는 헬멧을 건넸고, 신후는 그 헬멧을 멀뚱히 쳐다보더니 선우를 쳐다보고 말했다. "기념이야. 김신후하고 같이 바이크 탄 기념이니까, 잘 간직해." "…고마워, 신후야." "쳇, 나 갈 거니까 어서 들어가." "응." 신후의 들어가란 소리에 선우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서 있을 뿐이다. 신후는 바이크에 다시 시동을 걸고서 선우를 바라보았다. 슬픈 얼굴이다. 신후는 그런 얼굴을 보기 싫은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병신, 내가 그런 얼굴 하지 말랬지? 하여튼- 잘 살아라. 내가 해 줄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정말- 고마워." "정말 간다." "응." 부아아아앙- 신후는 무심한 척 고개를 돌리며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우가 사는 동네를 벗어났다. 선우는 신후가 기념이라며 준 헬멧을 품에 꼭 안고 있다가 손에 쥐고 있는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몇일 고생하고 나니까 먼지만 잔뜩 쌓였던 집이 말끔해졌다. 무엇보다 중고상에 가구를 팔아버렸더니 집이 휑- 하다. "뭐- 어차피 이제 여기서 살 것도 아닌데." 지금부터 이삿짐 센터를 불러 대학 근처에 미리 사 놓은 원룸으로 짐을 옮겨 갈 것이다. 이제 이틀 후면 이 집에 다른 가족이 들어 와 살 것이다. 오늘 부동산에 열쇠를 넘겨주고 가기만 하면 된다. 웬지 씁쓸해지는 이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나보다. 선우는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펴 보았다. "열심히 살자, 이선우!" 선우는 기합을 잔뜩 넣고, 뭐가 웃긴지 혼자 웃어본다. 그리고는 폰을 이용해 이삿짐 센터에 전화를 했다. 3시쯤에 온다고 했다.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은 선우는 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배터리를 뽑았다. 그리고는 시간을 확인 하더니 바닥에 털썩 누워버린다. "나중에 대리점에 폰 번호나 바꾸러 가야겠다-" 이때까지의 일을 모두 정리할 생각인 선우. 그는 폰의 전화번호가 등록된 곳으로 들어가서 유천이 윤호의 번호를 지웠던 것 처럼 창민의 번호를 지웠다. 그리고 창민의 집 번호, 아저씨 번호도 지웠다. 이제야 끝난 느낌. 한참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신자에 뜬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지만 대학 친구의 이름만 떠 있을 뿐이다. 선우는 혼자 웃더니 뭘 기대한거야, 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이냐-" -애들이 요근래 너 많이 봤다더라? 혹시나 해서 전화했지. 대전이냐? "그래, 임마. 나 대전이다. 이제 대학 마칠때까지 대전에 쭈욱 있을 생각이야." -새끼, 이 형님도 대학 들어오고 나서 안 간 서울을 1년 가까이 가 있냐? "그래, 어쩔래?" -애들이 보고 싶단다, 오늘 놀자! 어때? 이선우, 대전 컴백 기념! 선우는 친구의 음성에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오늘 이삿짐 날라야 된다는 소리에 친구는 그럼 새 집에서 놀자, 라며 애들 데리고 갈게,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선우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랐지만 이내 작게 웃어보였다.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 온 느낌이었다. 이제야 예전의 이선우로 돌아 온 느낌이다. "대전으로- 돌아오길 잘 했어." 아직까지 잘 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우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이제 그의 흔적들을 지웠으니, 지금부터는 그에 대한 기억들을 잊으면 된다. 천천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 혹시 권태기에 시기 변화가 크게 있어도 너그러히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제 권태기도 정상을 넘어 내리막 길을 내려가고 있습니다(笑) 후속작품은 생각해 놨지만 장편은 되지 못 할 듯 싶고, 그리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笑)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4] 신후가 서울, 집에 도착했을 무렵 집안은 싸늘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초조한 얼굴을, 창민은 특별한 표정없이 굳어 있었다. 신후는 잠시 그런 분위기에 신발도 벗기전 집안을 둘러보았고,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막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신후를 붙잡았다. "신후, 너 잠깐 이리 와 보렴." "왜요-" 신후는 분명 선우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미리 예상했지만 모르는 척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꾹 다문 입술을 열며 밤새 어디 있었냐고 물었고, 신후는 그저 바이크 타고 다녔다고 그랬다. 순간 창민의 시선이 신후에게 향했고, 두 형제의 눈빛이 공중에서 교차했다. "선우가 오늘 아침에 와 보니 없더구나. 니 형이 들고 있는 쪽지를 보면 알 거다." 선우가 쪽지를 남겼는지 몰랐던 신후는 창민에게 다가가 쪽지를 받았고 그 쪽지에는 그동안 감사했고, 실례 많았습니다,라는 전형적인 멘트가 적혀있었다. 신후는 괜시리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2층 계단으로 향하면서 난 상관 없으니 자러갈게요, 라고 말한 뒤 올라 가 버렸다. 창민은 그런 신후를 보고 있다가 손안에 든 쪽지를 구깃 했다. 그리고는 부모님께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서 신후의 방으로 향했다. "김신후, 얘기좀 하자." "잠 오니까 나중에 해." 신후는 이불을 뒤집어 썼고 꽤 화가난 몸짓으로 신후가 뒤집어 쓴 이불을 벗겼다. 그러자 신후는 몸을 일으키며 창민에게 소릴 질렀고, 창민은 꽤나 화가난 얼굴과 말투로 신후에게 물었다. "너지?" "뭐가-! 잠좀 자게 내버려 둬!" "니가 이선우 빼돌렸잖아!" 창민의 말에 그제서야 신후도 얼굴에 잔뜩 쓰고 있던 인상을 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벗어나더니 벗어놓은 자켓 주머니를 뒤적이며 담배를 꺼냈다. 평소때 같으면 창민은 신후의 손에서 일찌감치 담배를 빼내고 세게 때려줬을 테지만 오늘은 웬 일인지 전혀 그러한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신후는 환기 시킨다며 창문을 열고 담배를 깊이 빨아본 뒤 하얀 연기를 내뱉었다. 창민은 인상을 팍 쓰며 그런 동생을 바라보고 말했다. "니가 지금 어떤 짓을 한건지 알아?" "내가 뭐? 벗어나고 싶어하는 새를 새장에서 꺼내줬을 뿐인데- 그게 잘못이야?" "잘못이야! 그 애 부모, 형제도 없고 지금 상처도 다 아물지 않았어! 거기다가 자살시도도 여러번 했다고!" "이제 안 그래!" 창민의 말에 점점 구겨지던 신후는 결국 창민에게 큰 소리 치고 말았다. 신후는 담배를 창틀에 아무렇게나 비벼 끈 뒤 창민의 앞에섰다. 이제 키가 제법 만만해졌다. 어렸을땐 언제 클까 싶던 신후도 이제 제법 남자 티가 난다. 창민은 한숨을 쉬었다. 남자 티가 나도 속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너는 답답해 하는 새를 멀리 날려보내준거야- 그런데 그 새가 혼자서 하늘을 날아 다니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데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씨발, 이선우가 어린이냐?! 이선우도 이제 좀 있음 22살인데 왜 그렇게 감싸려고 해? 그리고 걔가 고아야? 병신이야? 정상이야! 친척도 있고, 집도 있는 그런 잘난 녀석이야! 그런데 우리가 계속 감싸줘야 할 필요 있냐고! 형이 이선우에 대해서 뭘 아는데?" "그럼 넌 뭘 아는데?! 22살도 아직 어려! 그리고 넌 고작 17살이야! 니가 뭘 안다고 그래?!" 신후는 답답한듯 가슴언저리를 자신의 주먹으로 툭툭 쳤고 이내 말이 안 통한다는 듯 한 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창민을 바라보며 변성기 이후 중저음이 되버린 목소리를 더욱 낮추며 얘기했다. "이선우 데리고 와서 뭘 해줬는데? 자살 하려는거 막아준 것 밖에 더 해준 거 있어? 뭘 해줬는데? 뭘 해줬다고 이렇게 날 심문하냐고- 사실적으로 말해봐! 누가 진심으로 이선우 대해줬어?! 누가 사랑으로 이선우 대해줬냐고!" 형제의 다투는 소리가 커지자 어느새 부모님께서 신후의 방으로 들어오셨고 아버지는 신후에게 그만하라고 했지만 신후는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내 뱉었다. 한참 그러다가 부모님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빠하고 엄마는 뭘 해줬는데?! 다 동정심이잖아! 동정심만 있으면 애가 다시 밝아질 것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불쌍하다, 불쌍하다 생각해주면 계속 자신의 처지가 불쌍해지지 행복해 질 것 같아? 그 녀석한테 뭘 해줬는데?! 그 녀석 아버지가 부탁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보살피고 있는 거지, 사실 부탁하지 않았음 그냥 초상집에 고개만 내 비추고 말 일이었잖아!"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창민도. 다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애정보다는 동정심으로 같이 살았다. 혼자가 됐으니 불쌍하다,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신후는 세 사람을 돌아가며 노려보더니 이내 자켓과 바이크 키를 챙겨들고 방을 빠져나갔다. 어머니의 외침에도 신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집을 벗어났다. 창민은 열려있는 방 문만 멍하니 쳐다보다 이내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집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에 올라서 그대로 고속도로로 향했다. 지금이라면 늦지 않았을 거야, 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 "이선우- 그럼 다음 학기부터 다시 학교 다니지?" "그렇다니까?" "헤에- 우리가 선배님이다!" "닥치고 집으로나 가세요-" 원룸으로 된 빌라에 5, 6명 정도의 사내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렸고, 그들을 배웅하는 선우는 어서 가라는 듯 그들을 보냈다. 친구들 덕분에 빨리 짐정리를 끝내고 술 한잔 걸쳤더니 어느새 밤이 깊어버렸다. 선우는 쌀쌀한 밤 바람에 팔을 비벼보다가 이내 계단을 밟고 2층 집으로 향했다. 원룸이라 문을 여는 순간 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 책상, 서랍장, 테이블, 침대 등 생활용품 등을 대충 배치 해 보니까 나름대로 사람 사는 집 같아서 웬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혼자라는 느낌이 어색해 한 곳에 자리잡지 못하고 연신 이리저리 옮겨다녀 본다. 그러다 폰이 울려서 전화를 받았더니 큰 아버지 전화다. 몇 마디 나누고 전화를 끊고 나서 괜히 쓸쓸해진다. 소파에 누워있다가 벌떡 몸을 일으킨 선우는- "쓸쓸하긴 뭐가 쓸쓸하냐!" 자기 자신을 달래며 널려있는 술병을 치워본다. 그러다가 친구의 폰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서 선우는 피식, 웃어본다. 칠칠 맞은 녀석, 이라고 중얼거리던 선우는 딩동, 거리는 소리에 빨리 찾으러 왔네, 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얼어버렸다. 문 밖에 서 있는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병신- 빨리도 이사갔네. 너는 아무한테나 벌컥벌컥 문 열어주냐?" "너-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여기 이사 온지 알았냐고 묻고 싶은 거 아니야?" "…그래." "그래도 다행이네, 우리 형보다 먼저 너 찾아서." 신후는 그 길로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서 선우의 집에 이삿짐을 내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부동산을 알아내고 그 부동산 사장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이선우란 사람 집 어디냐 해서, 결국 부동산 사장님까지 함께 선우의 집을 찾았고, 이렇게 늦게서야 선우의 집을 알아내서 온 것이다. 선우는 지친 것 같은 신후에게 일단 들어오라 했고 신후는 서스럼 없이 들어와서 소파에 털석 누워버렸다. "너 내일 학교는 어떡하려고?" "병신, 니가 그러니까 병신이라는 거야. 넌 가출도 모르냐?" "출가겠지. 가출은 무슨-" "가출이야-" 신후의 목소리에 힘이 없어보인다. 오늘 아침과 달리 말이다. 신후는 선우가 치우고 있는 술병을 보더니 벌써부터 술판 이냐고 또 다시 비아냥 거렸다. 하지만 선우는 그냥 피식 웃어 넘기며 어른들의 세계야, 라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신후는 어른은 무슨, 이라며 투덜거렸다. 그런 신후의 모습에 선우는 또 웃어보였다. 혼자 있다가 둘이 되어서 그런지 평소 듣기 싫던 신후의 빈정거림도 마냥 좋았다. 그렇게 설거지까지 끝내고 선우는 여기까지 바이크 타고 왔음 많이 추웠을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따뜻한 코코아를 끓여 신후에게 가져갔다. "새집이라서 마실게 코코아 밖에 없다, 이거라도 마…. 훗, 자는거냐." 신후는 많이 피곤했던지 그새에 잠들어버렸다. 서울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하고 다시 대전까지 내려왔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선우는 이불을 가져와 신후에게 덮어준 후 끓여 온 코코아를 자신이 대신 마셨다. 대전에 내려와서 짐을 정리할 당시 집을 정리함과 동시에 원룸을 미리 구해놓았기에 다행히 전화나 tv 등이 나왔다. 혼자인 것도 쓸쓸한데 tv도 안 나왔다면 쓸쓸함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선우는 신후의 머리칼을 넘겨주다가 동생 생각이 났는지 쓴 웃음을 지어보았다. 살아 있었음 몇개월 후면 수험생이 되었을 자신의 동생. 왜 그렇게 빨리 갔냐고 묻고 싶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신후, 너 그냥 내 동생해라. 큭-"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신후에게서 손을 뗀 선우는 현관으로 나갔고 아까 신후의 말이 생각 나 이번에는 누구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상대쪽에서는 말이 없었고 선우는 결국 그냥 문을 열어보았다. 문 앞에 서있던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선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 숨으면 내가 못 찾을 것 같냐." "어쩐… 일이에요." "갑자기 사라진다는 소리가… 이 말이었냐. 그래서 매일 내 방 뒤적거리고 그랬냐…." "알고… 있었어요…?" "모른다면 바보지. 생전 내 방에 잘 안오는 김신후도 매일같이 들락날락 거리던걸." 선우는 시선을 내리깔며 들켰네, 라며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 유쾌한 상황이 아닌데도 괜시리 웃음이 나왔다. 선우는 문 앞에 서 있는 창민을 집안으로 잡아 끌며 잘 왔다고, 웃어보였다. 그런 선우의 웃음에 창민은 힘 없이 웃어보일 뿐이다. 선우에게 이끌려 선우의 새 보금자리에 들어선 창민은 집안을 둘러보다가 소파에서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들어 있는 존재가 자신의 동생인 것을 알고 여전히 힘없이 웃어보였다. "김신후가 더 빨랐네." "뭐 마실래요?" "됐어." 싱크대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선우가 이내 행동을 멈추고 창민에게 다가왔고 창민의 앞에 마주섰다. 창민은 선우를 보았고, 선우는 창민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말 없이 눈빛을 교차했다. 먼저 입을 연건 선우였다. "신후 깨거든 데리고 가세요. 그리고- 앞으로 찾아오지 말아주세요. 신후도 그렇게 하도록 해주고요." "왜… 나갔니." "남의 집에 얹혀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 만큼 비위가 좋지 못 하거든요." 선우의 말에 창민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그저 선우만 바라 볼 뿐이었다. 선우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때까지 일은 다 잊고 지낼거에요. 아저씨, 아주머니께 죄송하다 전해주세요. 그리고- 한번 더 이 집을 찾아오면 절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떠날 버릴거에요." "무슨 의미인건데…." "내가 어디 있는 지 아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세요. 그리고- 이건 한가지 충고이자 형의 앞날을 위해서 말하는건데요- 박유천이란 사람, 잊고 좋은 여자 만나세요. 나도 심창민이란 사람 잊고 열심히 살다가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을거에요-" "미안…." "미안하다 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대가 없는 사랑인걸 알고 저 혼자 시작했던 사랑이에요." 선우는 창민에게서 등을 돌려 침대쪽으로 다가가며 다시 한번 말했다. "대가 없는 사랑은- 정말로 허무하고도 아픈 사랑인걸 깨닫게 해줘서 고마워요." 싱긋 웃는 선우의 얼굴이 유난히 슬퍼보이는 날이었다. ───────────────────────────────────────────────────── 완디는 이로써 끝났습니다. 완결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결은 이렇게 내리자, 라는 결론이 섰습니다. 완결까지 몇편이 남았는지는 저 역시 모르겠으나 열심히 써내리겠습니다. 지난 3일동안 방황이 84편으로 매꾸어 지길 바랄 뿐입니다(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5] 한가한 오후, 점심을 먹은 뒤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은 낮잠이라도 자 볼겸 베란다의 햇빛을 받으며 거실의 테이블을 치우고 카펫 위에 누워본다. 한명은 자신의 팔을 베고 눕고, 한명은 그의 배를 베고 눕는다. 그 누가 보아도 한가하고 편안해 보이는 그들. 그 따뜻한 분위기에 취해 두 사람은 달콤한 잠에 빠져본다. 띠리리리- 조용한 집 안에 전화소리가 울리고 따뜻한 분위기에 취해 살풋 잠이 들었던 재중은 눈꺼풀을 올렸다. 우진은 그새 단잠이 들어버려서 깰 기미가 안 보였고, 재중은 최대한 진을 안 깨우기 위해 머리를 손으로 받쳐 다리를 베개 한 후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여보세요, 라고 하던 그는 이내 반가운 목소리로 엄마, 라고 외쳤다. 모자(母子)는 오랜만인 듯 한참이나 수화기를 놓지 못 하고 전화를 했다. 그의 목소리가 컸던지 잠들었던 우진은 어느새 잠에서 깨서 눈만 내리깔고 있었다. 한손으로 수화기를 잡고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그의 손길이 부드럽고 좋았기 때문이다. "응? 우진이는 갑자기 왜? …자고 있는데-" "형, 나 안 자고 있어." 재중의 무릎을 가만히 베고 있던 우진은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살며시 몸을 일으키면서 재중에게 전화를 건네어 받았다. 그리고는 수화기에 대고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라는 전형적인 멘트로 말이다. 그러나 얼마 후 밝은 분위기와 다르게 진지한 분위기가 진행되었고, 재중은 왜 그러냐는 듯 진을 바라보았고 우진은 재중을 쳐다보며 여전히 수화기를 놓을 줄 몰랐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꺼냈는지 우진은 한참이나 뜸 들이다가 내 뱉은 말은 생각해 볼게요, 라는 말이었다. 그 후 안녕히 계세요, 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고 재중은 참았던 궁금증을 터뜨리며 진에게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냐고 물어댔다. "다른게 아니라- 아주머니께서 회사자리 알아 봐 줄까, 라고 묻던데?" "웬 회사?" "몰라, 우리 재중이 때문에 고생이 많지, 라고 하시더니 좋은 자리 있는데 일할 생각 있냐고." "그래? 그럼 한번 해 보는 거 어때?" "무슨 소리야- 나 대학도 자퇴했고, 웬만한 회사에서는 잘 취직 시켜주지 않아. 그런데 무슨 좋은 자리야." 우진은 그냥 웃어 넘겼지만 재중은 아깝다는 듯 진을 쳐다 보았고, 우진은 기지개를 펴더니 방으로 향하면서 잠시 잘 테니 3시에 깨워달라고 하며 문을 닫고 들어 가 버렸다. 우진이 들어 간 방 문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던 재중은 우진이 지금으로 부터 몇시간 동안 나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엄마, 나예요." ≠ "휴우-" 방에 들어와 힘 없이 침대에 털썩 누워버린 우진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제 자신도 26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렇게 직장도 없이 생활하는 게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재중의 집안에서 생활비를 보내줘서 잘 살고 있지만 나중에 재중의 다리가 다 나으면 이렇게 생활비 대어 주는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당장 혼자가 되어버리는 자신은 어쩌란 말인가. 직장도 없고, 그렇다고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부모님을 부산에서 작은 슈퍼만 하시게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니 직장은 구해야 하고. 그렇다고 재중의 어머니께 넙죽 직장을 얻어달라 할 수도 없고. 그저 자신의 처지가 측은한 우진은 한숨을 푹 내 쉬어본다. "어떻게든 되겠지." 침대위에 똑바로 눕고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던 우진은 1분도 안 되서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쳤어! 뭐가 어떻게든 되겠지, 야- 전우진, 드디어 미쳐가고 있구나-" 어떻게든 되겠지, 란 무책임한 말을 내 뱉은 자신이 용서되지 않는 우진은 한참이나 자책하더니 이내 머리를 감싸쥐고 침대 위를 뒹굴 거렸다. 이내 문 여는 소리가 들려오자 우진은 깜짝 놀라며 이불속으로 몸을 감추고 등을 돌린체 누웠다. 그러는 도중에도 자신이 왜 자는 척을 하는거지, 라는 생각에 우진의 인상을 묘하게 구겨졌다. 목발을 집고 절뚝이며 방안으로 들어온 그는 침대 옆에 목발을 세워두고 우진의 옆에 앉았다. 이제는 같이 눕는 것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연인이 되고서 부터 거의 매일 같이 잤으니까 말이다. 재중은 우진의 옆자리에 베개로 등을 받히고 기대 앉은 체 습관처럼 우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의 손길을 느끼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이대로면 자는 '척'이 아닌 정말로 잠들어 버릴 것만 같다. "엄마한테 말해놨어, 너 일 할 자리좀 알아 봐 달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좋은 기분이고 뭐고,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 왜 맘대로 그런 말 했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는 척 하다가 벌떡 일어나서 그런 말 하기도 웃기니까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다. 재중은 그렇게 우진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계속 회사에 대해 말 했다.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회사인데 회계사 자리가 마침 비었다고- 그때 이때껏 가만히 듣고만 있던 우진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재중을 쳐다보았다. 재중은 처음부터 자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듯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만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은 왜 형 맘대로 정하고 난리야? 생각 해 볼 시간을 줘야 할 거 아냐! 그리고 같이 지낸지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형은 아직도 내 성격 같은 거 모르겠어?" "우진이, 너 평소에 일도 하고 싶어하고…." "됐어, 됐어! 나 저녁 늦- 게 들어 올 거니까 찾지 마!" '늦게'에 강조를 주면서 길게 늘어뜨리고 말한 뒤 우진은 그대로 침대를 벗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방밖으로 나오자마자 거실에서 햇빛을 받으며 거실 바닥에 뻗어있던 흰둥이(저번에 우진이 줏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진을 따라 왔지만 우진은 냉정하게 지갑과 겉 옷만 챙겨들고 현관 문을 쾅- 닫고 나갈 뿐이었다. 목발을 집고 절뚝이며 진을 뒤 따라 나온 재중은 현관문 앞에서 낑낑 대며 문을 긁어대고 있는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한숨을 내 쉴 뿐이었다. "니네 주인은 프라이드가 너무 높아. 그렇지, 똥개?" 한숨섞인 재중의 말에 흰둥이는 그저 멍멍- 하며 짖어댈 뿐이었다. 재중은 흰둥이를 보면 항상 똥개라 불렀고, 처음에 똥개라고 부르면 못 알아듣던 흰둥이는 이제 똥개, 도 자신의 이름으로 인식했는지 똥개야, 이리와- 라고 하면 곧 잘 따라 왔다. 방으로 들어가려던 재중은 소파 위에 그대로 내팽겨 쳐져 있는 우진의 폰을 보며 또 한번 한숨을 내 쉬었다. "후아- 오늘 밤 들어와서 얘기 좀 하려면 지금 좀 자둬야 겠다." 재중은 오늘 밤 우진이 그냥 넘어갈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고개를 내 저으며 흰둥이를 다시 내려 놓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용한 집 안에는 새하얀 어린 강아지, 흰둥이 만이 분주히 움직이며 다닐 뿐이었다. ───────────────────────────────────────────────────── 오랜만에 릭진입니다(笑) 기다리셨죠. 안 기다리셨다구요?(울먹) 아아, 저번에 제가 완디를 끝이라 해서 앞으로 완디는 완결이 날 때까지 안 나온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엄청 많으시더라구요; 그건 아닙니다; 완디 커플모드가 안 나올 뿐이지 가끔가끔 모습을 내 비출 겁니다; 그리고 완결을 향해 내려가고 있을 뿐이지, 앞으로 일주일 뒤에 완결이 난다던지 그런건 아닙니다; 앞으로 잘하면 몇십편은 더 해야하는 걸요; 완결 이야기만 생각 해놓았지, 완결이 바로 나 버리는 건 아니니까 감상 주실때 완결모드로 주시지 말아주세요ㅠ 아, 다음 소설은 어쩌면 완벽한 민셩 소설이 되어 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서는 아마 유천씨가 못됐게 나올 듯 싶군요(笑) 그리고 무지 짧아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일단 권태기를 끝내봐야겠군요. 앞으로 완결이 나는 그날까지 권태기의 인기행우진은 계속 됩니다(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6] 할짝, 할짝- 재중은 간지럽게 손을 핥는 느낌에 눈을 반쯤 뜨더니 이내 자신의 손을 간지럽게 하는 존재를 보았는지 그대로 냉정하게 쳐냈다. 그 존재는 침대에서 떨어지더니 깽깽, 거리며 방 밖으로 뛰쳐나간다. 재중은 상체를 일으키면서 붕 뜬 뒷 머리를 쓸어 내리며 저 놈의 똥개가 이제 침대 위까지 올라오네, 라며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더니 시계를 확인하고 침대 옆에 놓아둔 목발을 집고 방 밖으로 나섰다. 흰둥이는 분명 자신을 내팽겨쳤던 재중임에도 불구하고 꼬리를 흔들며 재중을 반겼다. 그제야 재중도 흰둥이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흰둥이를 옆에 내려놓았고 흰둥인 습관처럼 몸을 뒤집었고, 재중도 익숙한 손길로 흰둥이의 배를 간지러 주었다. "우진이는 아직도 안 왔는가-" 여전히 소파에 주인을 잃은 체 놓여져 있는 폰을 보고 재중은 한숨을 내 쉬었다. 낮잠이라 치고 잤는데 완전히 밤잠처럼 자 버린 재중은 우진이 나간지 4시간 후에야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이대로면 새벽 늦게까지 못 잘게 뻔했다. 재중은 아직도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하품을 크게 했다. 벌써 저녁 8시가 다 되어 가고 있는데 우진은 뭘 하고 있는건지. 찾으러 나가려 해도 다리가 불편한지라 밖으로 나가면 오히려 더 귀찮은 일들만 생길 뿐이다. 그 귀찮은 일들을 뒷처리 해야할 사람도 진 밖에 없기에 그냥 집안에서 가만히 진을 기다리는게 진에게도 편하고 재중에게도 편한 일인 것이다. 그렇게 평소에 잘 보지도 않는 드라마도 챙겨보고, 시트콤에 뉴스 그리고 10시 드라마까지 다 챙겨 본 재중은 시간이 꽤나 늦은걸 인식하고 한숨을 푹푹 내 쉬었다. 자존심이 유독 쎈 그에게 자리를 줄테니 일해라, 이런 식은 그 자존심에 금이 가는 말이었다는 걸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3년 가까이 살고도 자신을 모르냐는 우진의 말이 왜 그렇게 맘에 걸리는지 재중은 드라마 속에서 열심히 울고 있는 여자 주인공을 멍한 눈동자로 바라 볼 뿐이었다. 11시. 어느새 재중의 손길에 흰둥이는 소파에 뻗어서 잠들었고 재중은 또 다른 재미난 프로를 찾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그러다 재방송 하는 드라마를 틀게 되었는데 마침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미안해, 라는 대사를 날리고 있는 터였다. 그제야 재중도 진에게 해야 할 말들을 생각했다. 진지하게, 미안해. 장난스럽게, 에이- 미안하다니까? 웃으면서 최대한 편안하게, 아까는 정말 미안했어. 재중은 이것, 저것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미안함'이 담긴 말들을 여러가지 형태로 바꿔서 말 해 보았다. 그러나 하는 것 마다 다 어색해서 못 하겠다. 그러다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라곤 왜 사귀고 나서부터 더 많이 싸우게 되지,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다. 한참이나 쓸데 없이 고민에 빠져있던 재중은 쾅쾅- 거리는 소리에 놀라 절뚝이며 목발 없이 벽을 집고 현관으로 나갔다. 다리에 무리가 가긴 했지만 이것도 하나의 재활운동이기 때문에 재중은 고통을 감수하며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술냄새가 싸하게 풍겼고 비틀거리는 그나 힘없이 재중의 품에 쓰러졌다. 혼자 서 있기도 버겁던 재중은 그대로 뒤로 넘어져 엉덩이를 찧고,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은 진을 일으켜 보려고 애 썼다. 휑- 하니 열려버린 현관에서 차가운 바람이 스며 들어왔다. "도대체 몇병이나 마시고 온 거야-" 얼마나 마셨길래 이렇게 술 냄새가 지독할까, 라는 생각에 재중은 고개를 저었다. 진을 조심스레 거실 바닥에 내려 놓고 어렵게 일어나 현관문을 닫고 우진의 신발을 벗긴체 진을 질질 끌어다가 거실 카펫 위로 데리고 왔다. 재중은 소파가 눈 앞에 보이자마자 바로 쓰러지듯 앉았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그가 힘들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그래도 아주 늦- 게 들어 온 게 아니라서 웬지 웃음이 나온다. 아직도 늦- 게 들어 올 거니까 찾지 말라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사실 그때 웃음이 새어 나올 뻔 했는데, 억지로 참았다. 그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너 귀엽다, 라며 웃으면 자신만 미친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이라도 웃어본다. 그리고는 소파 밑으로 내려가 카펫 위에 대(大)자로 뻗어있는 우진의 볼을 꼬집으면서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 늦- 게 온다더니. 늦게라면 새벽이나 되어서야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냐?" "우웅- 놔아…." 재중이 꼬집는게 아팠는지 우진은 재중의 손을 쳐 내더니 다시 잠으로 빠져든다. 재중은 또 다시 웃어보였다. 술 취한 모습도 귀엽게만 보였다. 사랑하면 눈에 뭔가 씌인다더니, 그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말은 더 늦게 들어와야 되는 거 아니냐고 내 뱉고 있어도 재중은 속으로나마 지금이라도 들어 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 더 늦었다면 속이 타서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나갔을 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태평해 보여도 속은 낮잠에서 깨는 그 순간부터 계속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거의 1분 간격으로 계속 시간을 확인하던 재중은 우진이 집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에 기지개를 크게 펴 보았다. 그때 눈을 껌뻑이던 우진이 이내 완벽히 눈을 뜨고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재중을 바라보았다. 재중 역시 멀뚱히 진을 바라보았고, 진 역시 아무 말 없이 재중을 바라보았다. "어디야…." "집이야. 많이 마신것 같은데 집은 잘 찾아왔네." "으… 씨… 바보…, 멍청이…, 으엉-" 재중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고이던 우진의 눈은 이내 일그러 지더니 그의 입에서는 으엉, 하고 아이같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재중은 갑자기 울어버리자 당황해서는 왜 그러냐고 물었고, 목이 마르냐고 어디 부딪혀서 다쳤냐고 물었지만 우진은 그저 술에 취해 어눌해진 발음으로 바보, 멍충아- 라고 외치며 크게 울어대기만 했다. 재중은 난감하게 웃다가 밤 늦은 시간인걸 깨닫고는 달래어야 된다는 생각하나로 진을 일으켜 안아주었다. "밤이잖아, 그만 울어." "으어엉- 이 바보야, 흐어엉-" "그래, 그래- 형 바보니까 그만 울어." 뭐가 그리 속상한지 우진은 한참후에야 울음을 그쳤고, 울음을 그쳤다 싶어서 품에서 떼어 봤더니 그새 작게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운 것도 다 술 주정인가 싶어 괜시리 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거 병 아닌가, 하고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던 재중은 자신의 몸 상태로 영화처럼 멋있게 진을 품에 안고 침대까지 데리고 갈 수 없다는 걸 깨 닫고 진을 카펫 위에 다시 눕히고 어렵사리 몸을 일으켜 절뚝이며 방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베개, 우진의 베개, 이불을 꺼내왔다. 그리고는 거실에 보일러를 틀어 온도를 눕혔다. 아마 오늘은 거실에서 자야할 듯 싶었다. 우진의 머리를 들어 베개를 넣어 주고 온 집안에 불을 다 끈 체 진을 끌어안은 체 이불을 덮고 자신 역시 누웠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우진이 갑갑한지 이불을 겆어 차 냈고, 재중은 이불을 다시 덮어 주려다 그대로 입혀져 있는 우진의 겉옷을 보고는 한숨을 폭 내 쉬더니 겉옷에 셔츠까지 벗겨준 후 얇은 티셔츠 한장이 나오자 그제야 진을 바로 눕혔다. 그리고 양말을 벗긴 후, 양말은 욕실 앞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바지는 오늘 아침부터 입고 있던 편안한 트레이닝 복 차림이라 이 정도면 편안하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자리에 누웠다. 아까 낮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재중은 두시간 가까이 뒤척이자 거실의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우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귀염상이지만 특별히 여자같이 여려보이는 얼굴은 아니다. 귀여운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야하나. 날카롭게 뻗은 콧날이 제법 멋있다. 아까 울었던 탓인지 몇시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젖어있는 속눈썹이 참 예뻐 보인다. 그러나 옆모습도 우진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버리는 바람에 보지 못 하게 되었다. 조금만 더 보고 싶은 욕심에 목 밑으로 팔을 집어넣어 팔베개를 베듯 만들었고, 우진은 이내 힘 없이 몸을 돌리며 재중의 품안에 그대로 골인한다. 술냄새가 제법 강하게 풍기지만 재중은 상관 없다는 듯 헝크러진 우진의 뒷 머리를 정리해 주듯 슥슥 쓸어 넘겨준다. "귀여운 녀석…." 한살 어린데도 마냥 귀엽게만 느껴지는 것도 모두 사랑하기 때문인가. 하긴 보통 남자라면 자신보다 한살 어린, 그것도 다 큰 성인 남자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지는 않겠지. 웬지 씁쓸해진다. '보통'이란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들이 측은해서, '보통'이란 기준에 낄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서 말이다. 우진의 머리칼을 한참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자신의 허리에 우진의 팔이 감긴다. 웬지 모를 미소가 재중의 얼굴에 띄워지고 재중 역시 그를 꽉 끌어안는다. '보통에서 벗어난다 해도 너랑 같이 행복할 수 있다면 상관 없을 것 같아…, 아니. 상관 없어.' 그렇게 재중도 오랜 뒤척임 끝에 서서히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오늘은 별 내용없군요, 쿨럭; 그저 별 쓸데 없는 내용만 끄적여 본 듯 합니다; 그점에 대해 죄송해요! 아, 제가 저번 편에서 또 꼬리말을 이상하게 적었나 봅니다; 제가 말한 다음 소설은- 권태기가 아닌 권태기가 완결나고 새로 연재할 소설을 말하는겁니다; 하하하, 모두들 오해하시고 86편은 민셩이겠거니, 하셨죠?; 죄송합니다- 에, 자세히 설명 드리자면 새 소설에서 유천씨가 좀 못 됐게- 음, 자신의 처지 그 이상을 바란다 할까요(笑) 여튼 그리 순하게 나오지 않을겁니다, 쿨럭; 등장 인물 등은 언제 한번 카페 일기방에서 말씀 드릴게요(笑) 그럼 모두들 오해 푸시고- 한동은 또 릭진모드로 권태기를 이끌어 나가겠습니다. 에, 새벽 3시가 넘었습니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죠(먼산) 자기 싫다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7] 오후 1시가 막 지났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점심을 챙겨 먹고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이 사람들은 어찌된게 아직까지 자고 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하얀 강아지는 자신의 놀잇감을 찾아 이리저리 그 짧은 다리를 이용해 이리저리 바삐 다니다가 얼마전 주인이 사 준 공을 발견하고 혼자서 열심히 가지고 논다. 딸랑, 딸랑- 짧은 다리로 공을 막 굴려대는데 공 안에서 종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꽤나 거슬리는지 머리를 감싸쥐던 우진은 이내 베개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옆에서 자고 있던 재중도 슬며시 눈을 뜨더니 상체를 약간 들어 소리의 근원지를 찾고서는 흰둥이에게 똥개야, 조용히해 라고 큰 소리 치고는 다시 누워서 진을 끌어안는다. 그대로 재중의 품에 끌려와서 안겨 다시 잘 줄 알았던 우진은 예상외로 재중의 가슴을 밀어내고 일어나더니 깨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아야야, 라며 신음을 냈다. 재중은 우진의 손목을 끌어당겨 다시 눕히려 했지만 우진은 냉정하게 탁- 쳐냈다. "…우진아?" "형이랑 나랑 싸우고 있는 중인 거 몰라?" 앙칼지게 재중을 획 노려보던 우진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자신의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흰둥이는 자신의 주인이 일어난 게 반가웠던지 열심히 뒤쫓아 갔지만 우진의 행동이 더 빨랐기에 어제 현관문을 긁듯 방문을 긁고 낑낑 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재중이 상체를 일으키니까 그새 재중에게 와서 귀여워 해 달라고 꼬리를 흔들어댄다. 재중은 흰둥이를 품에 안고 털을 쓸어내리며 중얼 거렸다. "이야, 이번엔 꽤나 살벌한데?" 재중의 말에 흰둥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짖음만 계속 할 뿐이었다. ≠ 자신의 방에 들어 온 우진은 머리가 깨질 것 같은지 비틀 거리는 발걸음으로 침대로 다가가 푹- 쓰러지고 만다. 오랜만에 들어 오는 방에는 한기까지 든다. 평소에 거의 재중의 방에서 생활하다 시피 하니까 이 방은 말 그대로 겉모습만 자신의 방인 것이다. 괜히 한숨이 나온다. 필요없을 정도로 높은 프라이드 때문에 괜히 싸움만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어제 4시경에 나가 할일 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영화라도 보자, 라는 생각으로 영화관으로 갔는데 그 영화가 슬픈 영화 였는지 눈물이 계속 나오려는 것이었다. 남자가 밖에서 울면 추해, 라는 생각으로 꾹 참고 있는데 자신의 옆에, 앞에, 뒤에 모든 사람들이 막 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나니 7시가 좀 넘었 길래 그 길로 친구를 불러 밥 한끼 얻어먹고 그대로 포장마차로 직행해 소주만 4병 정도를 혼자서 다 마셨다. 그 다음 부터 기억이 없다.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조차 신기할 정도로 퍼 부어 마셨는데- "웁, 올릴 것 같아-" 속이 다 뒤집어 진 걸까. 울렁거리는 게 좋지 못하다. "욱-" 입안에 신맛이 느껴진다. 당장에라도 올라올 것 같다. 우진은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순간 흰둥이를 안고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재중의 얼굴이 스쳤지만 의식할 틈도 없이 그대로 변기에 다 게워 내 버렸다. 한참이나 욕실에서는 욱, 욱- 하는 우진의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재중은 흰둥이를 품 안에서 놓아주고서는 벽을 잡고 절뚝이며 부엌으로 향했다. 저대로면 속을 다 버릴지도 모른다. 재중은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려 놓고, 불편한 몸으로 분주히 움직인다. "우욱- 하아-, 하아-" 목이 따가워 죽을 것 같다. 입안도 찝찝하고. 이제 다 토했는지 더 이상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았다. 대신 머리하고 목이 아파왔다. 친구가 말릴때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해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 우진은 변기의 물을 내리고 그대로 일어서서 입을 헹궈낸 뒤 양치를 했다. 비틀비틀 거리며 욕실을 걸어나오는데 집안이 여러가지 형체로 변하는걸 보니 머리가 많이 어지러운 가 보다. 그때 스텝이 꼬여버렸고, 이제 넘어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우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프기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졌고, 우진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 잡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혀엉-?" "위험하잖아. 일단 죽 하고 간단한 콩나물 국 끓이고 있으니까 먹어야 한다?" 재중의 음성에 우진은 괜시리 울컥해져서 눈시울이 붉어져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마구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직장을 알아 봐 주려고 그랬을 뿐인데, 다 자신을 위해 그랬을 뿐인데 이 자존심이 그걸 용서 하지 못 하고 그에게 화내고, 오늘 아침도 그에게 화내고, 그런데도 그는 자신을 위해 해장할 음식들을 차려주고. 눈물이 흐르려고 한다. 아직 술이 안 깬건가. 머리로는 울면 안돼, 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은 벌써 울고있었다. 재중은 자신의 품에 쓰러진 우진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자상하게 말했다. "머리 어지러운데, 울면 안 돼. 머리가 더 아프거든. 밥 먹고 약먹자. 응?" "흐윽…, 나는… 나는 형한테… 흑- , 화만… 으윽- 냈는데…, 끅-" "괜찮아, 어제는 미안했어." "흐끅- 흐앙-" 재중의 자신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어대는 우진의 등을 쓸러내리며 울지마, 라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은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히죽- 웃고 있었다. 이로써 하루만에 싸움 끝이다. 사귀고 나서는 싸움 할 일도 잦았지만 그만큼 싸움이 길게 가는 일도 없었다. 재중은 여전히 울고 있는 우진의 얼굴을 들게 하여 자신을 보게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키스도 괜찮겠지, 라는 생각으로 천천히 입술을 가져갔고 진도 조금씩 눈을 감았다. 재중은 씨익 웃었고, 자신 역시 눈을 감으며 막 닿을 때 였다. 치이익- 물이 넘쳐 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재중과 우진은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너무 가까이 있는 거리에 머쓱해진 두 사람은 -정확히 말해서 우진은- 재빨리 떨어졌다. 재중은 아쉬운 표정을 한껏 지은 체 부엌으로 달려 가 가스를 끄고 벨브를 잠근 후 그릇에 각각 죽과 국을 따로 담아 식탁위에 올려놓았고, 진을 불렀다. 우진은 아직도 부끄러운지 머리를 글쩍이며 자리에 앉았고 이내 수저를 들었다. 그때 뭐라도 얻어먹기 위해 진에게 찰싹 달라 붙는 흰둥이를 보고 재중은 아침부터 굶었을 강아지 생각에 개 밥그릇에 사료를 담아 주었다. 그러자 뭐가 급한지 열심히 먹는 흰둥이. 재중은 다시 부엌으로 와서 우진의 맞은편에 앉고 열심히 먹던 우진은 순간 행동을 멈추더니 얼굴을 새 빨갛게 붉히고는 압을 열었다. "미, 미…" "응?" "미, 미… 에이- 씨, 미안해!" "헤에- 나는 에이씨 아닌데, 김씨인데-" "형!" 우진이 어렵게 한 사과에 재중이 장난을 치자 우진은 숟가락을 탁- 놓으며 형! 이라고 크게 외쳤고 재중을 알았다면서 웃더니 다시 먹으라며 우진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준다. 분위기가 다시 조용해지자 우진은 죽을 한 숟갈 떠 먹으며 형, 이제 잘 걷네- 라고 말했고 재중은 계속 웃기만 하면서 응, 이라고만 대답할 뿐이다. 재중이 계속 응, 아니- 이정도만으로 대답하니까 대화는 도통 이어질 생각을 안 하고 우진은 차라리 식사를 빨리 끝내고 벗어나자, 라고 생각했는지 급히 먹었다. 그러다 사례가 걸렸는지 콜록, 하고 기침을 했고 재중은 그런 진에게 물을 떠다 주면서 자리를 우진의 옆자리로 옮겼다. "자, 여기 물." "콜록, 콜록- 하아, 고마워-" 물을 먹고도 콜록대자 재중은 아프지 않게 우진의 등을 토닥여 주었고 이내 진정이 다 되었을 무렵엔 등을 토닥여 주던 손은 어느새 우진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아까 키스를 하려다가 실패아닌 실패를 하고 말아서 그런지 우진은 미친듯이 뛰는 심장에 속으로 심장아, 제발 진정해라- 라며 주문까지 걸고 있었고 우진이 예상한대로 얼마 안 있어 재중의 얼굴이 또 다시 가깝게 다가왔다. 우진은 슬슬 피하다가 결국 벽에 가두어지고 말았다. 난생 처음으로 식탁을 벽 쪽에 붙여 놓은 것을, 자신이 안쪽 의자에 앉은 것을 후회한 우진은 이제 완벽히 닿아버린 재중의 입술에 스르륵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츄웁- 끈적한 소리와 함께 입술이 몇번이나 부딪혔다 떨어진다. 아침, 아니. 점심부터 이어지는 진한 키스에 우진은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이다. 어느새 자신은 벽에 완벽히 밀착되어 있고 재중은 계속 다가오고 있다. 우진은 머리가 어질어질한 느낌에 재중을 밀어내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재중의 손은 우진의 허벅지 위에 올라 와 있다. 그리고는 점점 안쪽으로 향하는게- 쫘악- "아얏!!" "하아…, 하아…. 그, 그러게 누가 허벅지 만지래!" 우진은 재중의 손길을 버텨내지 못 하고 결국 뺨을 때려버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얼굴이 새 빨개 지더니 소리를 빽 질렀다. 그 길로 우진은 의자를 완전히 뒤로 빼서 부엌을 벗어났고, 재중은 화끈 거리는 뺨을 만져보더니 피식 웃어보였다. 맞고도 웃다니, M 기질인가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재중은 기지개를 쭈욱 펴 보았다. 뼈가 두둑, 하는게 오늘 잠을 너무 많이 잤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횡재했네- 키스도 하고." 혼자 실실 거리며 웃는 재중은 자신이 날이 갈수록 응큼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할까. ───────────────────────────────────────────────────── 릭진을 쓸 때가 가장 즐겁고 흐뭇해진답니다(笑) 만약 제 소설이 이모티콘이 많이 들어가는 소설이었다면 릭진 소설 쓸때는 언제나 웃는 이모티콘이 한 가득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릭우진은 건드릴 생각 없어요. 많은 분들께서 감상 주실때 '릭우진은 러브러브 모드죠?'라고 물으셔서; 예에; 저는 릭진 외에는 몰라도(!) 릭우진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드려요, 쿠쿠쿡- 아아, 왠지 한없이 사악해지는 이 기분! 벌써 3시가 넘었네요- 이제 엑스하고 카페에 차례대로 소설 올리고 나면 3시 20분 정도 되려나, 아니- 30분 정도 될 것 같네요(笑) 이제 오타 찾고, 노래 어울리는 거 맞춰 넣어야 하니까요. 그럼 다음에 뵐게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8] 같은 계절이 여섯번이 반복 될 무렵, 세상은 더욱 복잡했졌고 그 복잡한 세상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헤어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만 갔다. 그렇게 그들은 6년 전보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 "어제 잠은 잔 거에요?" 수화기에 대고 한창 대화를 하고 있는 그녀, 권미야. 6년전의 그녀의 길고 검은 생머리는 어느새 어깨까지 짧아진 체 머리에는 굵은 웨이브가 지어 져 있다. 그녀의 조금 나온 배를 만져보며 누구와 통화하는지 한참을 웃어보았다. 그러 다가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은 남자 아이를 부르며 말했다. "휘은아, 아빠야. 전화 받아." "아빠? 여보세요-, 아빠!" 이제 5살이 된, 아직은 어린 아이. 윤호와 미야의 첫째 아이. 그리고 미야의 뱃속엔 둘째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미야는 윤호를 닮아 귀여운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다가 어린 아들이 자신에게 다시 수화기를 건 네어 주길래 미야는 여전히 그 흐뭇한 미소를 입에 걸고서 전화를 받는다. 미야는 그 뒤로 알았어요, 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늦깍이 대학생 생활을 마친 후에 국가고시에 당당히 합격해 현재는 대학 병원에서 인턴생 활을 하고 있는 윤호. 다른 동기들보다 늦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하는 그는 뭐가 그리 바쁜지 집에도 이틀에 한번 꼴로 들어오기 마련이다. 아직 레지던트가 남았기에 몇년은 더 고생해야겠지만 그래도 일이 적성에 맞는 듯해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미야다. "휘은아, 아빠한테 옷 갖다 주러 갈까?" "응!" 아빠에게 갈까, 라고 묻는 미야의 말에 손에 쥐고 있는 크레파스를 당장 놓으며 벌떡 일어서는 아들의 모습에 미야는 또 한번 웃고 만다. 아들의 손에 묻은 크레파스를 물티슈로 지워주고 나서 아빠 옷 가져올게, 라며 방으로 들어가는 미야의 뒷모습이 꽤나 행복해 보인다. ≠ "이상 신제품 기획안이었습니다. 투자를 해 주신다면 정말 성공시킬 자신이 있는 제품입니다." "제품은 해외로도 수출 된다고 했습니까, 박유천씨?" "그렇습니다. 이번 신제품은 일반 생활용기를 사용하기 재밌고, 좀 더 편리하게, 그리고 쉽게 고장나지 않도록 철저히 검사하고 또 검사한 제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제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유천의 말을 들은 그는 흐음, 하더니 기획안 복사본을 훑어본다. 유천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 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10명의 거물급들은 유천네 회사 신제품에 대해 투자해 줄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제품에 대한 믿음을 주어야 한다. 유천이 손에 베어나는 땀을 정장 바지에 슥 닦을 때였다. "저희 한의 그룹에서는 sz 그룹에게 투자하겠습니다." 기획안을 발표하는 내내 계속 까다롭게 물어오던 한의 그룹 사람. 유천은 발표하는 내내 흐름을 끊어서 짜증나기도 했지만 오로지 회사의 이익과 sz그룹의 제품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기획안 발표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바로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천의 눈이 잠시 커지더니 이내 살짝 휘었다. 그리고는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흐르던 공간에 밝게 불이 켜지고 한의 그룹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 섰다. 유천은 나가 문으로 다가가 그들과 한명, 한명 악수를 하며 부탁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이번 신제품 기획안이 꽤나 맘에 들었는지 연락 하겠다는 말을 남겨주었다. "방금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절대 한의 그룹의 투자가 헛 되이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sz그룹에서 이렇게 철저할지는 몰랐습니다. 물론 그 점이 마음에 들어서 투자 하겠다 한 거구요. 지금 스케줄상 계약은 바로 못 하겠고, 이틀 뒤에 들리겠습니다. 그럼." "예, 살펴 가십시오."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섰던 한의 그룹 사람은 유천과 악수를 한 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그가 마지막이었는지 방금전까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던 공간은 휑- 하다. 그래도 유천은 오늘 한건 해결했다 싶어서 웃어보이며 불을 끄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군을 다녀오고 나서 다시 일을 배웠고, 3년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 거물급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할아버님의 생신 파티가 열리는 날 유천은 공식적으로 소개되었고, 불황인 기업계에 샛별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3년 째 기업을 키워 나가는데 한 몫을 하고 있는, sz 그룹에서는 아주 고마운 존재였다. sz그룹 회장의 손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유천은 sz그룹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널리 알려져 있었다. 대표 이사의 자리를 가지고 있는 유천이 돌아오자 단정하게 차려입은 비서가 일어서서 인사했고, 유천은 고개를 살짝만 끄덕이며 잠시 들어오라 했다. "부르셨습니까, 이사님." "다른게 아니라 이 다음 스케줄 어떻게 되죠? 아, 그리고 오늘 한의 그룹 이사님과 식사라도 한번 하게 그쪽 스케줄에 맞춰서 시간 한번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스케줄은 없으십니다." "무슨 소리죠?" "부 회장님께서 수고 하셨다고, 이사님 스케줄을 다 취소시키셨습니다." 유천은 '부 회장'이란 소리에 아버지가 쓸데 없는 짓 하셨군, 이라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어보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일찍 마치는 거라 유천은 비서에게도 일찍 퇴근하라고 이른 뒤 책상 위 혼잡하게 어질러진 문서를 정리했다. 책상 한 곳으로 결제해야 될 문서들을 밀어넣고 중요문서는 파일에 넣어 서랍속에 넣고 열쇠로 잠궜다. 그제야 유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펴더니 이내 코트를 챙겨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비서는 그에게 인사했고, 유천도 미소 한번 지어주며 어서 퇴근하라고 이른 뒤 회사를 벗어났다. ≠ "여어- 니가 웬일이냐? 먼저 술 마시자고 연락도 다 하고." "내가 술 마시자, 하면 안 될일 있냐?" 유천은 떠들썩한 창민의 등장에 웃어보이며 아프지 않게 한대 툭- 쳤다. 그러자 창민은 어쭈, 하면서 웃어 넘긴다. 창민의 손에 들려있는 봉지는 술병이 들어있는 듯 짤랑, 거리는 소리가 난다. 유천은 2층으로 창민을 데리고 가며 이내 2층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컵까지 미리 준비 해 놓은 유천에 놀라며 창민은 무슨 일 있냐고 물었고 유천은 기분이 좋아서 그런다며 또 다시 웃어보였다. 창민은 조용한 집안에 너 혼자냐고 물었고, 유천은 자신의 잔에 맥주를 부으며 유환인 늦게 들어와, 라고 말했다. "휴아씨랑 잘 되어 가냐?" "뭐, 그렇지." "새끼, 얼굴 붉히기는." 언제부터였을까. 창민에게 '휴아'라는 예쁜 여자가 생겼다. 군대를 막 제대했을 당시였던가. 술을 한잔 걸치던 그때 창민은 '나 이제 너 안 좋아한다.'라고 말했고, 유천은 그러냐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때의 창민의 눈은 한 없이 슬퍼 보이기만 했다. 그는 '나 이제 너한테는 심장도 안 뛰는데, 다른 녀석한테 막막 뛰어'라고 고백했 었다. 그런데 그 고백한지 얼마 안 되어 그는 선을 보았고, 몇년간의 연애끝에 한달 남은 12월에 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때, 니가 말한 다른 녀석이란 게." "응? 무슨 다른 녀석?" "왜, 그때 니가 말했잖아- 나 제대했을때, 다른 녀석한테 심장이 뛴다면서." "아아-" 창민은 씁쓸하게 웃더니 유천이 따라주는 술을 마셨다. 유천은 술잔을 손에 쥐고 만지작 거리면서 창민을 살펴보더니 창민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사람 말야. 몇년 전에- 자살미수로 병원에 입원했던, 그 선우라는 애 아니야?" "우와, 너 잘아네? 난 이때까지 너 엄청 둔탱인줄 알았는데. 많이 똑똑해졌다, 박유천?" "이 새끼가-. 그런데 선우라는 애 정말 대단하다? 10년 넘게 나만 사랑해 온 심창민 마음을 한순간에 훔쳐가버리네. 큭, 좀 아쉽다- 이제 더 이상 열정적인 사랑도 못 받고." "웃기지마, 이 녀석아." 유천의 농담섞인 말에 창민은 또 다시 웃어보였다.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그의 눈동자엔 잔잔한 그리움과 씁쓸함이 잔뜩 깔려있었다. 몇년 전까지 저런 눈을 하고 있었던 유천이기에 유천은 창민이 아직 선우를 완전히 잊지 못 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언제까지 짝사랑만 할래?" "어어, 지가 먼저 짝사랑하게 만들어 놓고. 그리고 휴아가 날 엄청 사랑하잖냐-" "너 휴아씨 정말 사랑하는 거 맞아?" "그럼. …이젠 사랑하는 것 같아. 몇년전만 해도 장난 같았는데, 그냥 적당히 만나다 헤어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만나다 보니까 괜찮더라고. 하하, 문득 휴아 사랑한다고 느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아냐? 나 호모인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라는 생각이다?" 창민의 말에 유천은 피식 웃으며 바보 녀석, 이라고 낮게 말했다. 한동안 그들은 말 없이 술잔을 기울였고, 점점 취해갈 무렵 창민은 다시 입을 열었다. "신후가 대학 입학 하자 마자 나한테 딱 그러는거야. 나 이선우 찾으러 갈거야! 라고." "신후도 좋아했었냐? 이야, 부러운데? 그래서 갔어?" "아니, 말려서 못 가게 했어." "왜? 동생한테 주기 싫어?" "그런게 아니라- 그 녀석…, 선우가 그때 한 말이 있거든." 유천은 무슨 말이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창민은 혼자서 낮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결국 유천도 포기하고 피식 웃으며 나중엔 말해줘야 한다, 라며 새로운 병을 땄다. 창민은 잔에 남은 술을 살짝 흔들어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선우가- 다시 한번 찾아오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린다고 했거든. 내가 모르는 곳에 가 버리면 더 이상은 찾을 수도 없을 것 같아서, 그럼 너무 답답하니까- 신후 말렸어. 한때는 너무 찾아가고 싶어서 몰래, 몰래 찾아가서 지켜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잊고 사니까 한결 나아. 이제는 휴아도 선우 녀석 못지 않게, 너한테 줬던 사랑 못지 않게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불 같은 사랑은 정말 한때인 것 같지 않냐? 그게 몇년이 지나면 어느새 추억으로 바껴버리잖아." "풋-, 동감이야." 그날 밤, 두 남자는 그 많은 술병이 다 비워질 때까지 오랜 얘기를 한 것 같다. ───────────────────────────────────────────────────── 사람의 마음은 불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한때는 불같이 사랑했다가도, 정말 한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음에도 시간이 약이라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 그 감정도 지워져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불은 쉽게 타오르다가 한 순간에 꺼지기도 하니까요(笑) 에, 이번에도 몇일간 잠수를 탔었죠?(笑) 죄송하게 생각하구요, 그 기간은 소설 권태기에서 6년이 흐르던 시간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제부터는 6년 후의 그들의 생활을 써 보려합니다. 윤호씨는 이제 본격적인 의사 활동(아직 인턴이지만)을 하며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구요, 미야씨는 두 아이의 엄마자, 윤호씨의 아내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후는 이제 23살의 청년이 되었고, 유천씨는 이제 기업을 운영 해 나가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서고 있습니다(笑) 창민씨는 여전히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겠지요? 선우씨와 릭우진은 차차 확인 해주시구요, 앞으로는 6년 후의 그들로 만나뵙겠습니다. 30대 그들을 기대해주세요(笑)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89] "안 된다니까?" "왜애- 나 싫어? 그런거야?" "이씨, 형 정말 계속 이럴래?!" 주차장 깊숙한 곳. 두 사내의 목소리가 오가고, 이내 사내의 두 팔에 갖혀있는 그가 화를 낸다. 하지만 앞에있는 사내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은 체 내가 뭘, 이란 표정을 짓는다. 그는 사내를 탁- 밀쳐낸다. "아야야-" 두 팔로 진을 벽에 가두다 시피 한 재중에게는 더 이상 휠체어나, 목발 같은 걸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소에 입고 있던 평상복이 아닌, 둘 다 검은 수트를 멋드러지게 걸치고 있었다. 우진은 재중의 능글맞은 모습에 결국 재중을 밀쳐냈고, 재중은 갑자기 -꽤나 오버적인 동작으로- 우진의 앞에서 팍 쓰러진다. 그리고는 자신의 다리를 잡 으며 아픈 신음을 내 뱉고, 우진은 무슨 꽤병이야 하면서도 걱정이 되는지 그의 눈은 슬슬 재중에게 향하고 있었다. 재중은 정말로 아픈건지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 하고, 우진은 심각해지면서 형 아프냐고 막 소리치며 재중을 일으켜 보려한다. "나, 난- 형이 장난치려고 하니까, 젠장- 그러니까 누가 장난치래?!" 우진은 안절부절 하지 못 한체 결국 버럭 화를 내버리고 만다. 재중은 부축해 달라며 손을 뻗어본다. 우진은 미안한 듯 입술을 꽉 깨물더니 이내 재중을 일으키려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각각 두팔을 넣었다. 그리고 막 일으키려하는데- 휘익, 하더니 한순간에 우진의 몸이 재중에게 기울어지고 그와 동시에 재중의 입술이 진에게 닿는다. "으으브- 으읍!" 경악의 눈초리를 하고있는 우진은 재중의 진지한 키스에도 무슨 말을 그리 하고 싶은지 계속 조잘조잘 거린다. 재중은 그런 우진의 모습에 입술을 슥 떼더니 넌 키스할때 뭐 그리 말이 많냐, 라면서 투덜거리더니 아프다는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일으키고는 정장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낸다. 우진은 혼이 빠진 듯 멍해진 체 재중을 바라보고 있었고, 재중은 진을 바라보며 집에 안 갈거야, 라고 묻는다. 그리고는 우진의 멍한 표정에 웃어보인다. 우진이 저 웃음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재중은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은근슬쩍 웃어 넘기기도 했다. 우진은 이내 정신이 들었는지 몸을 일으키더니 방금 전의 재중과 마찬가지로 정장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어낸다. 자신의 차로 다가가니 벌써 재중이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몇년 전부터 재중도 가끔씩 운전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퇴근때 항상 이렇게 재중이 운전하게 된다. 우진은 차 안에서 얄밉게 웃고 있는 재중을 바라보더니 조수석으로 가져 가던 손을 뒷좌석으로 바꿔 뒷문을 열고 뒷 좌석에 올랐다. "뭐야-" "뭐긴 뭐야? 어서 출발해." 우진은 삐친 듯이 말했고, 재중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이내 익숙하게 회사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6년전 우진의 몇시간의 출가 뒤로, 우진은 재중의 형의 회사에서 회계의 일을 맡으며 일하게 되었고, 재중도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아서 이제는 목발 없이도 걷게 되어 형에게 일을 배워서 기획과 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우진은 뒷좌석에서 팔짱을 낀 체 재중을 열심히 노려보았다.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된 후 시도때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들질 않나, 아니면 방금 전 처럼 회사 주차장 구석에 자신을 밀어넣고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질 않나. 누구라도 보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우진은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잠시 잊었었어." "뭘 말야?" "형, 대학교때 일들." "무슨 일?" 우진은 갑자기 내뜸 재중에게 말했고, 재중은 무슨 말이냐는 듯 거울을 통해 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우진은 의자에 상체를 깊숙히 기대보여 말했다. "형 대학교때 문란한 생활을 꽤나 하고 있었다는 거 모르겠어? 우리 동아리 멤버들은 다 알고 있었는걸- 다들 얼굴값 하는구나 하고 욕도 많이했는데, 쿡쿡- 형은 몰랐지? 이 문란한 남자야-" "흐응, 그거라면 다 알고 있는걸? 그리고 문란하다니, 전혀 문란하지 않아!" 재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던 카 레이스를 즐기는 사람들만 모였던 동아리 멤버들. 그 멤버들 중 한명이었던 우진은 대학교때 일이 생각나는 듯 쿡쿡 웃어보였다. 재중의 변명조차도 웃기게만 느껴져 이내 깔깔, 웃어본다. 그러다가 우진은 이내 자신을 가다듬더니 싱긋 웃으며 재중에게 말한다. "변명쟁이 김씨 아저씨, 앞이나 잘 보고 운전하세요-" ≠ "아직 27살인데, 결혼은 너무 이른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의우진이도 지금 이 나이에 결혼하는 건 손해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여자들에게는 맘껏 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구요." "허허, 별 걱정을 다하는 구나. 그리고 요즘 세상에 27살이 뭐가 빠른거냐? 직장도 자리 잡혔고, 이 큰아버지 친구가 회사 사장이니 승진도 문제 없고, 요즘 여자들은 늙은 남자들은 싫어한다고- 의우진이란 아이도 참 곱고, 나는 어서 조카 며느리로 맞고 싶은데?" "큰 아버지-" 선우는 곤란한 듯 웃어본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얼굴은 변함 없지만 6년 전보다 더욱 성숙한 분위기가 풍긴다. 그도 벌써 혼기가 다가 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얼마 전 큰 아버지가 소개시켜준 같은 회사 여직원과 사귀게 되었는데 어느새 결혼얘기 까지 오고 갈 정도다. 선우 역시 그녀가 맘에 안 드는 건 아니었지만 일찍이 그녀를 결혼 이란 이름안에 구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절실하게 원할때야 결혼을 할 생각인 선우는 큰 아버지의 생각에 난처한 얼굴말 지어보인다. 다정했던 아버지의 형, 큰 아버지. 아버지만큼이나 다정다감한 분이라서 선우는 창민의 집에서 생활할 때보다 쉽게 큰아버지께 맘을 열 수 있었다. 이게 핏줄이라는 건가…. "큰 아버지 말씀도 일리가 있단다, 일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혼기를 놓치면 곤란하지- 그리고 의진인 애교도 많고 예쁘던걸? 내 마음에 쏙 들어버렸단다. 그리고 선우 너도 언제까지 혼자 살 수는 없잖니- 나는 딸만 있어서 시집 보내고 나니까 아무것도 할게 없는걸. 딸들은 다 자기 시댁만 신경 써서 나는 어서 선우가 장가가서 큰아버지랑, 나랑 네 처랑 살고 싶구나." "큰 어머니-, 아직은 무리라구요-" 선우는 지금은 시집 가 버린 세 사촌누나를 생각하며 싱긋 웃어보였다. 유독 자신을 귀여워 해 줬는데, 어느새 시집을 가 버리는 터라 명절 외에는 보기 힘든 사촌 누나들이었다. 선우의 부모님이 다 살아계실 적에도 큰 어머니와 큰 아버 지는 유독 선우를 아들같이 귀여워 해 주셔서 그를 대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완전한 아들이 되어주길 바라는 쪽이었다. 그렇기에 선우의 결혼을 좀 더 재촉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자고 갈 거지?" "아,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결제해야 할 서류가 집에 있거든요." "흐음, 그럼 다음에는 자고 가야한다? 아, 그때는 의우진이란 아가씨도 데리고 오려무나." "예, 물어볼게요." 선우는 웃으며 일어섰고, 큰아버지와 큰 어머니는 현관까지 선우를 배웅 해준다. 선우는 집을 나오면서 연신 웃어본다. 그들의 배웅을 받고 나온 선우는 운전석에 올랐다. 몇년간은 사고 후유증인지 차를 제대로 몰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아 무렇지도 않은 듯 그때 그 사고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이제는 울기보다는 씁쓸한 웃음 하나로 그 추억을 마무리 시킨다. 그때 핸드폰 벨이 울리고, 선우는 액정에 뜬 번호를 보고 씨익 웃어본다. "허의진, 너 이렇게 다른 번호로 계속 전화 걸래? 내가 모를 줄 알아? …응, 지금 나오는 길이야. 너 보고 싶어서 안달들 나셨어. 그래, 그래- …무슨 영화? 아아, 그래- 재밌겠네. …하하, 미안-" 선우의 연인이자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여자, 의진. 얼굴이 특출나게 예쁜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성품이 곱고 마음이 좋아서 계속 꾸준히 사귀고 있는 중이다. 연인이 아니고 마치 친구 같아서 인연이 더욱 깊어지는 걸 지도 모른다. 그녀와 결혼한다면 계속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선우는 전화를 끊고 그제야 시동을 걸었다. 대전에서 대학을 마친 후 서울에 있는 큰 아버지 집 근처로 오피스텔 하나를 잡아 거기서 생활하는 선우. 운전대를 잡은 그의 팔목에는 아직도 6년 전, 칼로 그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 죄송합니다, 소설이 늦었죠? 사실 오늘 올릴 맘은 없었습니다(;) 완벽히 잠수함 한번 타 보자! 라는 생각으로 쨔쟌- 하고 나타났을때는 소설 5편 분량을 한꺼번에 들고 오자라고 생각했습니다만, 5편은 역시 저에게 무리였습니다; 차라리 매일 한편씩 올리는게 저한테는 더욱 빠른 길이겠죠ㅠ; 87편은 씁쓸하다고, 감상 주시는 분들 마다 똑같이 말해 주시더라구요(笑) 에, 놀랬다고 해야하나? 놀랬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똑같이 공감하시고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는게 너무 신기해져 버렸거든요; 여튼 이렇게 한편 툭- 던져놓고 갑니다. 에, 30대 그들의 이야기는 아마, 일상처럼- 편안한 일상 이야기처럼 흘러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笑) 앞으로 그들을 지켜봐주세요! [+] 아라시 피칸치 더블이 오늘 발매했음에도 불구하고 1위했습니다ㅠ 축하합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0] "엄마- 엄마-" 본격적으로 겨울이 되는 이 시기에 미야는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열이 많이 끓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 한체 앓아누워 버린 미야였다. 병원일로도 머리가 아픈 남편에게 아프다고까지 말할 수 없다. 부모님에게 말했다간 남편을 뭐라할 것만 같아 차마 말하지 못 하고 거기다 더해서 임신중이라 약도 먹지 못한 체 끙끙대며 앓고있을 뿐이다. "콜록- 휘은아, 여기있으면 감기 옮아." "엄마- 아빠…." "응? 아빠, 뭐라고?" "이거어-" 휘은은 머뭇머뭇거리더니 이내 그 작은손이 들고있기엔 커 보이는 지갑을 미야에게 내밀었다. 머리가 울리는 도중에도 불구하고 미야는 애써 휘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휘은의 손에는 윤호의 지갑이 들려있었고 내용물은 다 빠져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즘 들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은 휘은은 옷을 빤다고 잠시 윤호의 옷에서 빼 놨던 지갑을 미 야가 누워있는 사이에 다 빼서 헤집어 놓았나 보다. 안 그래도 아까 전화와서 지갑 집에 있냐고 물으면서 지갑 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윤호였는데 결국은 휘은이 윤호의 지갑을 건들이다 못 해 내용물을 다 빼 버린 것이다. 미야는 머리를 잡고 몸을 일으켰고, 휘은은 맞을거라 생각했는지 두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자신의 엄마 는 자신의 손에서 아빠의 지갑만 가져갔지 때리지는 않았다. 휘은은 미야를 닮아 아주 커다란 눈으로 미야를 바라보았 고 미야는 휘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어린이집도 쉬고, 우리 휘은이 심심해서 어떡하지? …그런데 휘은아, 아빠 물건은 함부러 만지면 안 돼. 만지고 싶으면 엄마한테 와서 허락이라도 받았어야지…, 휘은은 또 그럴거야?" 휘은은 평소라면 자신의 엉덩이를 찰싹, 때릴 미야가 힘없는 목소리와 뜨거운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게 이상했던지 평소와 달리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저어본다. 미야는 그런 휘은의 모습에 아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비디오가 어디 있으니 꺼내서 봐라고 일렀다. 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총총 걸음으로 안방을 빠져 나갔다. 침대에서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던 미야는 윤호의 지갑을 정리하고 눕자, 라는 생각으로 휘은이 억지로 집어 넣으려했던 구겨진 영수증까지 모조리 빼내고 다시 하나, 하나 차례대로 넣었다. 이내 마지막으로 남은건 사진으로 보이는 두장의 종이. "………." 사진 하나를 보고 미야는 힘없이 웃어보인다. 윤호의 지갑속에 자리하고 있는 두 사진중 하나는 자신과 휘은이 같이 찍은 사진인 것이다. 이런 것도 넣어다녔었나, 라고 생각하며 미야는 다시 한번 웃다가 하얀 뒷면을 보이고 있는 사진 하나로 손을 가져갔다. 그 사진의 뒷면에는 윤호의 필체가 적혀있었다. 미야는 흐릿한 눈에 초점을 맞추며 사진 뒷면 에 새겨진 윤호의 필체를 읽어보았다. 「너무나 사랑하는, 내 마음속의 영원한 나의 아름다운 연인…. 그와 함께」 미야는 첫사랑의 사진이라도 넣어다니는가, 해서 웃어보였다. 역시 남자들이란 첫사랑을 잊지 못 하는 건가…. 미야 는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진의 앞면으로 돌렸다. 역시나 생각한대로 예쁜 여자와 윤호가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윤호의 씨익, 웃기만 한 웃음과 달리 그의 옆에 여자는 아주 환하게 웃고있었다. 미야는 흐릿한 시야로 사진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이랑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미야는 흐릿한 눈을 비벼보았다. 불투명했던 시야가 그나마 말끔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좀 더 정확히 얼굴을 봐 볼까, 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았을 때, 미야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흐릿한 시야에서도 윤호 옆에 있는 사람이 컷트란 것은 알았지만 그 컷트를 친 여성이 남자일지는 몰랐다. 그것도… 6년전에 보았던- 윤호의 친구라고 했던 '박유천'이란 사람일지는 몰랐다. "…여기… 분명히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미야는 자신이 글을 잘못 읽었나 싶어서 눈을 비벼보며 다시 사진의 뒷면에 적힌 윤호의 글을 보았지만 내용은 변함 없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사진 속에 있는 두 남자의 모습, 6년 전 처음 윤호를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 남자는- 자신이 처음 윤호의 집에 놀러갔을 때 사진으로도, 실물로도 본… 남자치고 너무 예쁜 얼굴을 하고 있기에, 아니- 그것보다 윤호와 같이 찍었던 그 사진이 너무나 어울려서 한번에 자신 의 머릿속에 들어왔던 그 남자. 결혼식 때 너무나 슬픈 웃음을 짓던, 그리고- 결혼식 이후로 한번도 만나지 못한 윤호 의 친구. 도대체 무슨 관계길래 이런 글귀가 적혀있는 것일까. 지끈- 열이 오르나 보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는게, 몸이 어서 침대에 다시 누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미야는 멍하니 들고 있던 사진을 자신과 휘은의 사진 뒤에 끼워 놓고는 지갑 단추를 닫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는 몸이 원하는대로 침대에 누웠더니 머릿속이 울렁거리는 것만 같다. "…두통이… 꽤 심하네…, 하아-" 사진과 알수 없는 글귀를 보고아니, 왠지 머리가 더 아파오는 기분이다. 미야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두통속에 조금씩 조금씩 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 「…유천아- 하윽, 유천아…」 「오빠- 나 미야에요, 미야란 말이에요…」 "하악-" 잠에 깊이 빠져있던 미야가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녀의 희고 고운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고 입고 있던 티가 거의 다 젖어버렸다. 미야는 멍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며 거친 숨을 내뱉다가 문득 시선을 윤호의 지갑쪽으로 가져갔다. …꿈. 꿈을 꿨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안던…, 결혼하기 전의 윤호와의 일을 꿈으로 재현해 버렸 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아까 그 사진을 봐서 그런걸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윤호에게 강제다 시피 안긴 미 야는 첫날밤의 기억을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꿈으로 까지 꿔버리다니. "하아…, 하아….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그래도 아까 잠이 들기 전보다 두통은 없어졌다. 땀을 빼고 나니 한결 나은 기분에 침대에서 벗어났다. 감기 증상으로 나른해진 몸은 바닥을 딛는데도 딛는 것 같지 않아 이상한 느낌을 준다. 욕실로 가서 대충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갔는데 비디오 담긴 상자가 엎질러져서 비디오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있고 휘은 인 소파에 늘어져서 쿨쿨 자고 있었다. 미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비디오를 끄고 tv도 마저 끈 뒤 바닥에 흐트러져있 는 비디오를 치워서 다시 거실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다 정리하고 나니 열이 또 다시 오르는 것 같다. 휘은이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모두가 하얀 편이라 그런지 휘은인 말 그대로 우윳 빛 피부에다가 미야를 닮아 아주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씩 아주 못말리는 장난을 쳐서 매도 많이 맞는 장난꾸러기 같은 성격이다. 태어나자마자 아빠와 떨어졌던(윤호는 휘은이 태어나자마자 군대에 갔다) 휘은이기에 윤호가 한번 놀아주면 그 다음날 아빠 어디갔냐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난다. 그만큼 아빠를 너무나 좋아하는 어린 아이. 가끔 시간이 남아 윤호와 같이 tv를 시청하는 휘은의 표정은 어느새 윤호만큼이나 진지해져버려 정말 닮았다는 걸 느 끼게 된다. 낮잠도 어찌나 이렇게 달게 자는지, 두 부자가 똑같다는 생각에 미야는 웃어보였다. "…그래. 꿈이고… 우연일 뿐이야…. 권미야, 바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미야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이제 꽤나 커버린 휘은을 안고 (더군다나 임신에다가 몸도 안 좋은 상태에서) 방으로 가는건 무리라 생각했는지 휘은의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가지고 나와 소파에 누워자고 있는 휘은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이마에 작게 뽀뽀를 해주며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속으로 다시 들어온 미야는 몸을 옆으로 눕혔다. 그리고…. "바보…, 몸이 아프니까 바보가 되어가는 거야…?" 미야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 수 없는 허무함에, 알 수 없는 텅 빈 마음에 괜시리 가슴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내렸다. …혼자가 된 느낌이다. 그가 보고 싶다. 남편이 보고싶다. 자신에게 웃어줄… 윤호가 보고싶다. ───────────────────────────────────────────────────── 에, 미야양의 수난시대일까요. 이제 미야양도 그들의 관계를 알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는 않았으니까 민셩은 그냥 지켜봐주세요. 민셩은 앞으로 많이 남아있답니다. 이 실타래 같은 관계를 풀든지 아님 더 꼬우던지,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하지 않겠습니까(笑) 이야, 권태기가 벌서 90편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뭐가!;) 저도 소설 연재할 무렵 권태기가 이렇게 꼬여버릴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어느새 이혼에다가 지금은, 휴우-; 시간이 늦었습니다. 지금이 새벽 3시네요- (사실 조금 모자릅니다만, 소설을 올리고나면 그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1] "…야- 미…, 미야야!" "……여보…?" 미야는 열에 들뜬 목소리로 흐릿한 시야에 잡히는 윤호의 모습을 보고 그를 불렀다. 오늘은 집에 들어오는 날이 아닐텐데 왜 그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일까. 미야는 거친 숨을 내 뱉으며 윤호를 보고 왜 여기 있냐고 물었더니 윤호는 그런 그녀를 꽉 안아준다. 미야는 감기 옮는다며 떨어지라 하지만 윤호는 놓아주질 않는다. "바보같이! 아프면 아프다고 아침에 말을 해야될 거 아냐!" "…하아, 괜찮아요…." "괜찮긴 뭐가 괜찮아?! 휘은이가 전화 안 했음 몰랐을 거 아냐!" 꽤나 흥분해버린 윤호는 미야가 아픈것도 잠시 잊어버린 체 소리를 질러버렸다. 미야는 휘은이란 이름이 나오자 주위를 둘러보며 휘은이는 어디갔냐고 물었고, 윤호는 재웠다고 말한 뒤 다시 미야를 눕혀주고는 물수건을 미야의 이마위에 올려주었다. 미야가 혼자 끙끙 앓아버린 것에 대해 속이 상했는지 윤호는 그녀의 뜨거운 손을 꽉 잡아주었다. 미야는 눈을 돌려 윤호를 바라보았다. 병원 냄새가 몸에 베이는 걸 싫어해서 집에 오면 꼭꼭 샤워부터 하던 사람이 지금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병원냄새가 잔뜩 베인 체로 자신을 간호해주고 있다. "안… 씻어요…?" "니가 이렇게 아픈데 내가 한가하게 샤워나 하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하아…, 화내지마요. …휘은이 깨겠어요." 윤호는 바보같이 착하고 순한 아내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저 손만 꽉 잡아 줄 뿐이었다. 둘째를 임신해서 약도 먹을 수 없는 이 상황에 열은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윤호는 그저 앞이 깜깜했다. 약을 먹으면 아이에게 지장이 있고, 약을 안 먹으려 하니 미야가 심하게 아프다. 일단은 낫겠지, 라는 심정을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10분, 30분, 50분… 1시간. "하아…, 하아…." 미야의 몸은 어찌된게 더욱 불덩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윤호는 안 되겠다 싶어서 미야를 일으켰다. 미야는 어리 둥절한 얼굴로 윤호를 바라보았고, 윤호는 그녀에게 겉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하아…, 여보…?" "애를 유산 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너 낫게 할 거야." "…가벼운 감기인데 왜 그렇게 과민 반응이에요- …오늘 밤이 지나면 괜찮을 거에요." "애는 또 가질 수 있잖아, 어서 병원가자. 자, 일어나." "오빠!" 억지로 미야를 일으키는 윤호의 손길에 미야는 몇년 동안 안 불렀던 '오빠'라는 칭호를 사용해서 그를 불렀다. 미야의 부름에 윤호의 손길이 멈췄고 미야는 열이 올라 뜨거워진 손으로 윤호의 손을 덮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어나지 않아도… 생명은 생명이에요…. 다른 누구의 아기도 아닌… 오빠의 아이에요. 그리고… 우리 휘은이의 소중한 동생이구요. …그런 말 쉽게 하지 말아요…." "하아- 미안, 미야야." 윤호는 미야의 여린 마음에 또 다시 마음이 아파서 미야를 품안에 안았다. 미야도 이번엔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아 그를 안았다. 윤호의 얇은 셔츠 속으로 미야의 열기가 느껴진다. 미안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지금 상황이 너무 화가 나기도 해서 그저 그녀를 더욱 안아줄 뿐이다. 미야도 이번엔 떨어지려 하지 않고 그의 가슴에 더욱 얼굴을 묻었다. '나… 몇번이나 꿈 꾼줄 알아요…? 오빠가…, 당신이 유천이란 이름을 부르면서… 날 안는… 그 꿈을 나… 정신 잃은 동안 몇번이나 꾼줄 알아요…? …깨어나려해도 깨어날 수 없었어요…. 꿈에서 깨고 싶은데… 깰 수 없었어요…. …당신은 꿈속에서 너무 매정했어요. 미야라고, 난 권미야라고… 아무리 말하고… 또 말해도…, 당신은 끝까지 유천이란 이름만 불렀어요….' 아프면 서럽고, 서러우면 눈물이 난다고 했던가…. 열로 인해 붉게 충혈된 미야의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한방울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윤호는 자신의 셔츠자락이 젖어 나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땀이 아닌, 눈물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냥 안아줄 뿐이었다. 그의 행동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진정 한 여자의 남편으로써의 다정함이…. 하지만 그는 모른다. 그녀가 왜 우는지. 그는 단지 그녀가 아플 때 옆에 누가 없었기에, 그게 서러워서 눈물이 나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 "미야야…, 행복하게 해 줄게…." "으… 으흐윽-" 행복하게 해 준다는 말 밖에, 해줄 수 없다. 그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윤호다. 미야는 알기보다는 느끼고 있었다. 예전부터 말이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책임감을 위해 자신과 결혼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그가 자신을 버리지 않고 거두어 주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던 미야인데, 오늘 봤던 그 사진이- 오늘 봤던 그 글귀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픈지. 설마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일까, 하면서도 가슴이 아픈건 왜 일까…. ≠ "병원… 안 나가도 돼요…?" "니가 아픈데 어딜 나가. 오늘은 푹 쉬어, 휘은이 어린이 집도 내가 보낼테니까." "됐어요…, 어제보다 나아요. 어서 병원 갈 준비해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미야를 보고 윤호는 애써 다시 눕히고는 이불까지 꼼꼼히 덮어준다. 미야의 하얀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준 윤호는 휘은이 어린이 집 보내고 온다며 방을 나섰다. 미야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부탁 한다고 했고, 윤호도 그런 미야에게 웃어주며 걱정말라고 한 뒤 방을 나섰다. 혼자 방안에 남은 미야는 그저 쓸쓸한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다. 윤호가 닫고 나간, 그 방문만 바라보며 말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너무나….' 미야의 출혈된 눈가에서 또 다시 눈물이 묻어 나오고 말았다. ───────────────────────────────────────────────────── 짧은 91편입니다. 아아,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笑)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구요, 권태기는 아마 100편이 넘을 듯합니다; 에에, 죄송해요- 제가 완결 다 되어 간다 해 놓고 막상 보니 완결은 아직 멀어 보이고(;) 죄송합니다! 사실 새벽에 올리려했지만(어제 새벽 4시까지 띵가, 띵가 놀아버린;) 아버님한테 들키는 즉시 금지 당할 게 뻔하기에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사실 잠에서 깨어난지 한시간 밖에 안 되었죠. 에, 배경음악이 매우 좋습니다! 많이 들어주세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2] 윤호의 지극한 간호덕분인지 미야는 다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일이 흘러 이제 연말이 다가 왔다. 미야는 연말도 다가왔으니 대청소나 해 볼까, 싶어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앞치마를 두른 체 집안 일을 했다. 청 소는 휘은이가 어린이 집 갔5을 때만 가능한 일이기에 6시 전까지 끝내야 한다. 설거지 하고, 그릇 꺼내서 닦고, 먼지 털 어내고, 청소기 밀고, 가구 닦고. 결국은 옷장까지 열어 안 입는 겨울 옷은 버리기로 했다. "음, 이건 많이 낡았다-" 옷을 더 입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꼼꼼히 판가름 해 보는 미야의 눈이 제법 진지하다. 윤호를 처음 만날 적만 해도 아직 어린 아가씨 같았는데 이제는 어른의 티가 묻어나는 미야다. 환절기때 가을 옷을 차마 정리하지 못 했기에 박스 하나를 꺼내어 그 곳에 가을 옷을 차곡차곡 개켜 넣고, 코트는 먼지를 털어낸 다음에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어 둔다. 이제 서랍장 옷들만 정리 하면 된다. 미야는 서랍장을 열고 한참이나 정리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게 뭐지?" 서랍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비디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 캠코더 용 비디오인지 크기가 작다. 이런 거 찍은 적 없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한참이나 갸우뚱 거리던 미야는 뭔가 싶어서 6년 전 쯤에나 쓰던 캠코더를 꺼내어 그 안에 비디오를 넣고 거실로 나와 tv와 연결시킨다. 지지직 거리는 소음과 함께 화면이 뜨더니 이내 깨끗한 화면이 비 추어지고 푸른 바다를 담고 있던 비디오는 곧 누군가의 모습을 비춘다. …얼마 전 남편의 지갑속에서 보았던 그 남자. "아…." 웬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미야는 섣불리 전원 버튼에 손을 가져 가지 못 한다. 젖은 모래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듯한 그 남자의 얼굴이 이내 화면에 정면으로 비친다. 역시나…, 박유천이란 사람이다. 카메 라 렌즈를 들여 보는 듯 남자는 한참이나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에 비추더니 이내 입을 연다. 「이거 돌아가고 있는거야?」 「응, 지금 돌아가고 있어.」 남편의 목소리다. 윤호의 목소리다. 대답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 윤호의 목소리다. 세월이 흘렀지만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미야는 자신도 모르게 그 영상에 집중을 하고 만다. 「찍지마- 왜 이런 거 찍냐?」 「우리 예쁜 유천이 얼굴 많이 담아 놓게- 예쁜 포즈좀 지어봐봐- 이게 뭐야, 모래 투성이잖아.」 「그러니까 찍지마, 이왕 찍는 거 좀 깔끔할 때 찍으면 안 돼?」 「지금도 충분히 예쁘니까 그렇게 불만인 표정 짓지마- 지금 뭐 적는거야?」 찍고 있는 사람은 윤호인 듯 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미야의 얼굴이 어느새 진지해 져 버린다. 뭐 적고 있느 냐는 윤호의 물음에 이때껏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그 남자의 얼굴이 풀어지면서 싱긋 웃어보인다. 결혼식에서 보았던 그 얼굴이 아니다. 정말 행복해서, 너무 즐거워서 짓는 미소다. 이내 카메라가 잠시 흔들리더니 화면이 모래로 향한다.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나온다. 「엇, 뭐라고 적은거야?」 「바보, 이것도 못 알아봐?」 「내가 니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냐?」 「정윤호!」 찍고 있는 사람이 윤호란걸 증명해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내 남편의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 역시 정말 행복해서 짓는 그런 웃음 소리. …확실히 행복해 보인다. 이때까지 몇번이나 흔들리던 화면이 이내 바로 잡히더니 모래를 똑바로 비추기 시작한다. 미야 역시 모래 위에 써진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곧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인해 모래 위에 써진 글이 무슨 글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박유천… 하트, 정윤호?」 「쳇, 하트 아니다 뭐-」 「삐쳤어? 내가 너 제일 사랑하는 거 알면서 뭘 삐치고 그러냐-」 「됐어, 됐어- 나도 엎드려 절받기는 싫다, 이거야-」 투덜 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서는 잔뜩 애정이 베어 나왔다. 두 시간 정도로 계속 된 비디에오는… 참으로 많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남편도, 그의 모습도…. 「유천아, 비디오 다 된것 같아. 새 비디오…」라는 말에서 끝나버린 비디 오. 지지직- 거리더니 검은 화면이 tv를 가득 채운다. 집안은 조용해 졌고, 미야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담겨 있지 않다. 이내 그녀는 연결했던 캠코더를 빼고 캠코더에서 비디오도 꺼낸 뒤 비디오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 뒤 다시 제 자리에 넣어두었다. 정리하던 옷을 다시 집어 넣고 박스에 넣은 옷은 노란 테이프로 붙여서 방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시계를 바라보더니 겉 옷을 챙겨 입었다. 방에 불 을 다 끄고 신을 신었다. 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를 잡자 얼마 안 있어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올라왔다. 땡- 하는 소리와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는 작은 남자 아이가 타고 있었다. "엄마, 어디 가?" "아, 휘은아. 엄마 볼 일이 있어서…, 아니. 같이 가자." 그대로 휘은은 미야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향했다. 휘은은 계속 어디 가냐고 물었지만 미야는 굳어버린 얼굴을 한 체 묵묵히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할 뿐이었다. ≠ "엄마, 언제 집에 가?" "…아, 조금만 더 기다리자. 이제 곧 오실거야." 휘은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오렌지 주스를 빨대를 이용해 빨아 먹더니 한껏 지루한 표정을 지으며 미야에게 물었다. 미야는 굳어버린 얼굴을 풀 생각도 하지 못 한 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말했다. 미야가 온 곳은 한 카페인데 미야는 카페에 오자 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더니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통화를 끝낸 후 벌써 30분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딸랑, 거리는 종소리에 미야의 시선이 카페 현관으로 향하고 이내 익숙한 얼굴의 두 사람이 나타난다. 미야는 자리에서 일어서 자신이 있는 자리를 알렸고 곧 미야를 발견한 그들은 미야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왔다. "많이 기다렸죠?" "아니에요, 제가 갑자기 전화 걸어서 놀라셨죠?" "괜찮아요. 어, 우리 휘은이도 왔네?" "안녕하세요-" 그들은 다름 아닌 재중과 우진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끝마친 세사람은 자리에 앉았고, 휘은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만난게 좋은지 빙긋 웃으며 귀여운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자 재중의 옆에 자리해 있던 우진은 휘은의 머리를 마구 흐트 러 놓는다. 재중 역시 그런 휘은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야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아, 저…. 그게, 물어볼 게 있어서요." 미야의 말에 재중과 우진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고 우진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며 휘은에게로 다가갔다. 휘은은 자신의 앉은키에 맞춰 앉은 진을 바라보았고 우진은 싱긋 웃으며 휘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하고 저- 앞에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갈래?" "정말요?! 엄마, 나 갔다 와도 돼?" "우진씨, 안 피해주셔도 되는데…." 미야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우진은 아니라는 듯 웃어보이며 휘은을 품에 안아들고는 맛있는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라며 휘은을 안고 그대로 카페를 벗어났다. 재중은 그런 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미야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그 멋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재중씨,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예, 물어보세요." 재중의 대답을 듣고도 한참이나 뜸을 들이던 미야는 무릎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서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게 그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 본격적인 내용 시작? 하하, 권태기를 보고 답답해 하시는 분들도 많으시고 이성소설 같다고 하신는 분들도 많으신데- 에,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 능력이 부족해서; 완벽하게 해 드리지 못 해서 죄송하구요, 그래도 좀 이해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3] "…이해… 할 수 있죠?" 재중은 그녀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고 그녀의 손은 허둥지둥 물을 찾는다. 이내 물컵이 그녀의 손에 잡히고 그녀는 급히 물을 마신다. 재중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 쉬 었다. 역시 자신이 잘 못한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녀도 알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기에 말했고 그녀가 사 진과 비디오까지 본 이상 아무리 거짓말을 한다해도 뭔가 엉성해져 버릴 것이기에 재중은 이때까지의 그들에 대해서 다 말해 주었다. 미야는 이내 두 손으로 물컵을 감싸쥔다. "…단단히 바보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에요…." "언젠가는 미야씨도 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그 '언젠가'가 좀 더 빨리 와 버렸을 뿐이지…." "하…, 하하…." 어이없는 웃음을 짓는 미야의 눈가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재중은 당황해 하면서 미야에게 손수건을 내밀었지만 미야에게는 손수건을 받아 들 기력조차 없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자신의 남편이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에 너무 놀라버린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그것도…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다니. 이제야 하나씩 없어졌던 퍼즐을 찾아내서 맞추는 기분이다. 한동안 너무 궁금했던 그 일들이, 재중의 말을 듣고서야 알아가는 것 같다. 지난 날, 자신을 안으며 계속 부르던 '유천'이란 이름은 자신이 알던 윤호의 친구 '박유천'이란 사람이었고, 두사람은 오랜 연애를 하고 벨기에로 가서 결혼까지 한 공식적인 동성부부다. …그리고 윤호의 권태기로 깨졌던 불운의 부부이기도 하다. 그럼- 오래 전에 바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애인이 있다고 말하고서 씁쓸한 미소를 짓던 윤호는… 당시 권태기였던 것인가. 그때 자신을 만나버린 것일까. "지, 집에 가야겠어요…. 휘, 휘은이 좀 불러 주시겠어요?" "미야씨,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재중은 비틀 거리며 일어나는 그녀를 부축해서 계산을 하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카페 밖에는 진과 휘은이 밖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아마 그들의 대화를 위해 우진이 여기에 자리를 잡은 듯 했다. 우진은 미야가 재중에게 부축받아 나 오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더니 재빨리 그녀에게로 다가가 재중과 같이 부축했다. 휘은은 자신의 엄마에게 와서는 엄마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고, 투덜거리기 바빴지만 그녀의 탁한 눈동자는 휘은을 담지 못 한다. "아…, 아아윽- 아악-" 그때, 갑자기 그녀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생기더니 고통의 신음소리를 낸다. 그러더니 이내 배를 움켜쥐고 주저 앉아 버린다. 당황해 버린 두 남자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녀를 부축해 차에 태웠다. 충격으로 인한… 조산이 될 수도 있다. 조산도… 잘 하면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대처해야한다. 아기가 위태롭다. 뱃속의 아기가 위 태롭다. 우진은 재중에게 미야와 둘이 같이 타라했고, 재중은 알았다며 그녀를 안아들다 시피해서 차에 태운 후 휘은을 품에 안고 뒷좌석에 올랐고, 우진은 재빨리 운전석에 가서 시동을 걸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악- 하아, 하윽, 아파…. 아아윽-" 그녀의 얼굴에서는 땀이 베어나오고 우진은 초조한 듯 신호를 받고 있다. 재발 빨리 신호가 바뀔길 기다려보지만 신호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게 바뀌는지. 미야는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옷자락을 세게 잡아볼 뿐이었다. 제 어미가 아픈 것에 불안해져 버렸는지 휘은인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재중은 그런 휘은을 달래랴, 미야를 돌보느랴 애가 탔다. 이내 미야가 더욱 고통에 찬 신음 소리를 냈고, 이내 치마를 입은 그녀의 하얀 다리위로 피가 흘러내렸다. "지, 우진아- 양수가 터진 것 같아!" "뭐?! 아, 씨발- 젠장,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그대로 우진은 신호고 뭐고, 그대로 병원을 향해 미친듯이 속력을 높였다. ≠ "훈이 많이 컸네-" "아직 한살 밖에 안 된 걸요." 유천은 제 어미의 품에서 꼼지락 거리는 아기를 보며 신기한 듯 말했고 아기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은 부끄러운 듯 웃어 보이며 아기를 고쳐안다가 유천에게 안아보겠냐고 물었고 유천은 그래도 되냐고 말하더니 당장에 품에 아기를 안는다. 유천의 품에 안기자 작은 입을 양껏 벌리며 하품을 하던 아기가 눈을 깜빡이더니 갑자기 방실- 웃어보였다. 유천은 웃는 아기가 신기했는지 옆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아기가 웃는다며 말했다. "에이, 형은 그거에 감격하고 그러냐?" "임마, 너는 매일 본다 싶지만 나는 가끔 보잖아. 그치, 훈아-" 훈이란 아기는 뭘 아는지 그저 빙긋 웃어보일 뿐이다. 유천은 겨우 1살밖에 안 된 아기에게 너네 아빠 못 됐어, 라며 일러보지만 아기가 뭘 알겠는가,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겨우 한살 밖에 안 된 아기는 유환의 아들이다. 본명은 박연훈. 애칭은 훈이다. 2년 전 쯤이었나, 유천의 선자리라고 알아 놓은 곳에 유천이 결국 내빼자 얼떨결에 유환이 나갔는데 그게 잘 되어서 이렇게 결혼에 아이까지 낳은 것이었 다. 유천은 매번 유환을 볼 때마다 좋은 제수씨 얻었으니까 자기한테 감사하라며 농담삼아 내뱉곤 한다. 유환도 이제 30살. 아니, 이제 몇주만 더 있음 31살이다. 유천은 가끔 자기만 혼자 노총각으로 살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곤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심장이 고장나도 확실하게 고장났다니까. 어떻게- 심장이 이성을 볼때는 전혀 뛰질 않는거냐…. 그렇다고 동성을 봐도 뛰는 게 아니고. …그 녀석 외에는 뛰질 않아.' 유천은 한숨을 푹- 내 쉬고는 제수씨에게 조카를 안겨주고 잠 좀 자겠다고 식사할 때 부르라고 유환에게 일러둔 뒤 2층 방으로 향했다. 요즘 일은 꽤나 여유롭게 하는 편이라서 일찍 퇴근하긴 하는데 뭔가 지치는 기분이다. 몸이 쉽게 지친다 고나 할까. 유천은 자신도 나이를 먹긴 먹는가, 하며 피식 웃어보였다. 어느새 32살. 아니, 이제 해가 바뀌면 33살. 20살 적 사랑을 위해 맹목적이었던 자신은 이제 없다. 추억으로 돌려 피식 웃어보일 뿐. 하지만 그 추억은 당장에라도 현실로 되 살아나서 가끔 꿈에서 현실로 나타난다. 꿈 속에 그는 여전히 멋있는 모습으로 자신에게 말한다. 다시 둘이서 같이 살자고, 그러면 어느 순간 유천은 꿈속에서 정말 그와 둘이서 함께 생활한다. 그러다가 허무하게 잠에서 깨고만다. 무슨 꿈을 꿔도 이딴 꿈을 꾸는지, 하며 그냥 넘겨 보지만, 꿈의 여운이 너무 심해서 그런 꿈을 꾼 날이면 그날 하루종일 우울해지고 만다. 일이 안 잡히는 것은 기 본이요, 그의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려 더욱 괴롭기만 할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조차 안 나온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따끔 거린다. 이제는 눈물 대신, 쓴 웃음만 지어 볼 뿐이다. "정윤호, 넌… 잘 지내는거냐? 나는… 잘 지내…, 잘 지내고 있어. …그러니까…, 꿈에 나와서… 나보고 그딴 웃음 짓지마…, 씨발. 너 꿈속에서 그렇게 헤집어 놓고 가면… 나 어쩌라고…." 유천은 지갑 깊숙이 숨겨놓았던 윤호의 10년도 더 된 사진을 꺼내며 말해본다. 사랑의 여운이 왜 이렇게 길어서… 몇년이 지나도 왜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걸까. 이제 놓아주었음 좋으련만, 아직도 그에대한 사랑의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또 이렇게 그의 사진을 꺼내드는 것 보면 괜히 자신이 한심해지고 만다. 툭- 아무렇게나 던져진 지갑. 그 속에는 차마 다시 깊숙이 꽂지 못한 사진이 삐져 나와 있었다. ───────────────────────────────────────────────────── 태극기 휘날리며를 드디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영화 시작한지 5분만에 울기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계속 울었습니다. 집에서 혼자 봤으면 정말 엉엉- 울어버렸을지도 모르죠(笑) 저는 패러디 소설 찾으러 다녀야겠습니다, 므훗; 형제애가 장난이 아니죠오- 아, 그리고 저 꿈 얘기는요. 제가 겪어봤는데 그렇답니다(笑) 참으로 잊고 싶은 아이들이 있어요. 정말 보고 싶지도 않은 그런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정말 친했던 녀석들이었죠. 그러다가 어느새 틀어져 버린 녀석들이에요. …자기네들이 먼저 날 배신해 놓고 꿈에서 나올때는 항상 저에게 손을 내밀어요. 저는 꿈속인것도 모르고, 정말 기쁘게 그녀석들과 놀죠. 그 꿈을 꾸고나면 하루종일 저는 괴롭답니다. 쿡, 니 녀석들은… 가끔 내 꿈이라도 꾸냐? …난 엄청 많이 꾼다? 나 혼자만 많이 꾸면 억울하잖냐, 너네들도… 내 꿈 꿔. 그리고, 꿈속에서 만이라도…, 우리 옛시절로 돌아가자. 그러자, 친구였던… 녀석들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4] 35주만에 임신 중단으로, 질식 자연분만을 시도 하여 조산으로 태어난 여자 아기. 아기의 몸무게 겨우 2. 24kg밖에 안 되는 미숙아로, 2. 5kg 미만이란 이유로 인큐베이터에 들어 가기로 했다. 폐가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아 당분간은 호 흡기를 달아야 하는 신세에 놓였다. 다행히도 산모는 일주일 뒤에 퇴원이 가능했고, 아기는 2. 5kg이 넘을 때까지 인큐 베이터 신세를 지기로 했으므로 여전히 병원에 남아야했다. 아이를 낳은지 벌써 이주일. 아이는 아직도 병원 인큐베이터 속에 있다. 산모는 일주일 전에 퇴원해서 집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 생활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못 하다. '산후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 미야. 그리 슬프지도 않은데 막 울음을 터뜨리고, 의욕이 없어서 하루종일 침대 위에 누워있고, 요즘은 윤호에게 언제 들어오냐고 물으며 초조해 하기까지한다. 잠을 자도 계속 자고, 휘은이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가만 있다가도 그냥 짜증을 내고만다. 그런 증상이 더욱 깊어지자 윤호 역시 초조해지고, 재중과 우진은 그저 자기들이 꺼낸 얘기 때문인 것만 같아 미안해할 뿐이다. "엄마- 나 배고파." "흐윽, 흐으윽-" 휘은이는 무릎을 감싸 안고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자신의 엄마에게 배고프다고 말해 본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예전과 달리 그저 울어버린다. 예전 같으면 미안하다고 무슨 반찬 해줄까, 라고 물으며 환하게 웃음 짓던 자신의 엄마 가 요즘은 잘 울고, 화도 내고 그런다. "엄마, 아빠가 휘연이 괜찮데- 그러니까 뚝, 해. 응? 엄마아-" 해가 바뀌고 나서 막 6살이 된 꼬마 아이는 뭘 알기에 자신의 엄마를 달래는 것일까. 그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어미 의 어깨를 토닥이며 병원, 인큐베이터 속에 있는 자신의 여동생은 아빠가 괜찮다고 했다며 달래어 본다. 배가 고프지만 눈치가 빠른 아이는 우는 제 어미에게 차마 식사를 차려 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이나 울었을까? 미야는 젖은 얼굴을 들었고 이내 자신의 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아들을 감싸 안으며…. "엄마가…, 엄마가 미안해…. 우리 휘은이한테… 엄마가 미안해…." "엄마, 휘은이는 괜찮아. …그러니까 엄마 울면 안돼- 엄마가 우는 얼굴은 밉다고 했잖아. 엄마 얼굴은 엄청 예쁜데 울어서 미워지면 큰일 나잖아- 그러니까 엄마 울지마- 알았지?" "응, 휘은아. 그럴게…. 그럴게, 휘은아. …내 아기." 자신 때문에 그 어린 아이가 어리광도 피우지 못 하고 성숙해진 듯 해서 괜시리 미안한 미야다. 자신 역시 지금 자신이 왜 이런지 모르겠는데, 어디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가. 윤호가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은 거들떠 보기도 싫고. 하지만 이 상황 에서 더욱 우울증이 악화되면 정말 병원에 입원이라도 해야할 것만 같고 억지로 약을 손에 쥐어보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새 약은 다시 서랍장 안으로 들어가 있다. 미야는 어린 아들의 식사를 차려주기 위해 애써 일어서며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 엄마가 오므라이스 해 줄까…?" "응!"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에 미야는 또 울컥해져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입술을 꽉 깨물 고 자신을 따라 들어온 아들에게 앉아있으라며, 엄마가 금방 해 줄게, 라고 말한 뒤 눈물을 닦아내고 냉장고를 열었다. ≠ "여보…, 여보!" "……당신… 언제 왔어요?"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미야는 계속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 남편을 바라본다. 잔뜩 초조해져 있는 남편 의 얼굴에 미야는 무슨 일 있었냐며 물었고 미야의 말에 윤호는 버럭 화를 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약도 제대로 안 먹고, 계속 이렇게 생활할 거야?!" "……미안해요…." 미야는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큰 소릴 들으니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우는 것 또한 우울증의 증상. 아까 휘은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휘은의 앞에 앉아서 엄마 잠시 잘게, 라고 말한 뒤 엎드린 것 까지 생각나는데- 그 후로 윤호 가 퇴근할 때까지 계속 잠을 잔 모양이다. 그걸 보고 윤호가 방까지 옮긴 거겠지. 벌써 12시. 윤호는 속이 타는 듯 창가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문다. 미야는 아까와 같이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숨죽여 울 뿐이다. 짙은 연기를 내뱉던 윤호는 그런 아내를 보며 말했다. "내일 병원가자. 약물 치료든 해야할 거 아냐." "…싫어요." "휘은이하고 병원에 있는 휘연이 생각 해서라도 가야 돼!" "…난 휘연이 엄마로써 자격이 없어요…. 작은 생명한테 너무 많은 위험을 줘 버렸어요." "권미야!" 윤호의 큰 소리에 미야는 고개를 들고서는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며 잠시 거실에 혼자 있을테니 나오지 말라고 일러둔 뒤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갔다. 담배를 비벼 끄던 윤호는 방 문이 닫히자 벽에 기대어 미끄 러지듯 주저 앉았다. 「너하고 유천이하고 있었던 일 다 말해줬다」 「어쩔 수 없었어, 미야씨가 너하고 유천이하고 같이 찍은 사진, 비디오를 다 본 상태였어」 「어차피 알아야 할 사실을 안 것 뿐이야」 재중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미야가 조산으로 병원에 왔던 날, 그녀를 데리고 온 건 그 두 사람. 윤호는 혹시나 그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나 싶어서, 그것도 우울증의 원인이 될까,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받아들이기 힘들 거 라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산에다가 산후 우울증까지 겪게 될지는 몰랐다. 강한 그녀기에 산후 우울증정도는 가볍 게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엇때문인지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충격이겠지, 충격이겠지만 이해해 줬 으면 하는 바램이 없지 않아 있는 윤호. …이기적인가, 라는 생각에 피식- 웃어보지만 그 미소는 그리 밝지 못 하다.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거겠지…." 살며시 벽에 머리를 기댄 윤호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더 이상은 어떻게 손 쓸 수도 없다. 여기서 자신 은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어떻게 해야… 잘 했다고, 좋은 결정을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걸까. 속이 터질 것만 같다. 이때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덮고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뒤 늦게 일이 터져버리면 어 쩌란 말인지.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이 현실이- 자신을 가두는 것만 같아 너무나 괴롭고 힘이 들어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무능력해진다면… 이 세상에 자신때문에 상처 받아야 할 사람은 얼마나 많겠는가. "젠장…, 정윤호…. 무능력 해 지는게 아니라… 일찌감치 넌 무능력했어, 임마. 큭-"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보지만 그것도 잠시 입술이 부들, 부들 떨리더니 이내 흐윽- 하는 울음 소리가 나와 버린다. 구겨진 눈가로 눈물이 계속 새어 나온다. 닦아 낼 기력조차 없다. 꽉 깨문 입술 사이로 흐느낌은 더욱 커져간다. 애써 다시 입꼬리를 올려보는 윤호. "하… 하하, 크흑- …이렇게 상황이 지랄같아서는… 현실 도피도 할 수 없다고…. 흐윽-" 그는 그렇게… 한참이나 괴로운 얼굴로… 눈물을 흘려야 했다. ────────────────────────────────────────────────────── 제가 현재 여러분들께 드릴 수 있는 말은 단 하나 입니다. '지켜 봐 주십시오.' 완결까지 지켜봐주십시오. 일단은 완결까지 스토리가 다 정해져 변경할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절 믿어주십시오. 최대한 실망시켜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열심히 쓸테니, '지켜 봐 주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5] "엄마, 엄마- 무슨 약 먹어?" "으응, 우리 휘은이 예뻐해주려면 엄마가 빨리 나아야 할 것 같아서." 얼마 전 부터 약물 치료를 하고 있는 미야. 다행히 산후 우울증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기에 미야도 점점 예전처럼 밝아지고 있는 듯 하다. 그 덕분에 윤호도 한숨을 놓고, 휘은이 역시 의젓한 모습보다 제 또래의 장난스러운 모습이 다 시 한 가득 해 졌다. 이젠 거의 다 나았기에 이틀 정도만 약을 더 먹으면 완전히 기운을 차릴 듯 하다. 그와 동시에 병 원 인큐베이터 속에 있는 아기, 휘연이도 얼마 후면 2.5kg이 넘어서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와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된다. 미야는 토요일이라 어린이 집에 나가지 않은 휘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휘은아, 엄마 어디 가야할 것 같은데-" "어디? 나도 갈래, 나도 엄마 따라 갈래-" 미야는 아들이 조르자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안 된다고 일러보지만 휘은은 따라 간다고 막무가내이다. 차 타고 어딜 나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휘은으로써는 외출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안 된다는 소리에 금세 시 무룩해 지지만 굴하지 않겠다는 듯 계속 졸라 보는 휘은이다. "할머니 집에 가 있자, 휘은아. 응? 엄마가 그럼 퍼즐 사줄게, 새로운 퍼즐." "퍼즐?" 최근 집에 있는 퍼즐에 다 질려버린 휘은에게는 새로운 퍼즐이란 소리가 안 들어올리가 없다. 미야는 싱긋 웃으며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해 주었고, 휘은은 한참이나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말하며 그 캐릭터가 들 은 퍼즐로 사오라고한다. 그러자 미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한 뒤 어서 양치질 하라고 일러뒀다. 그러자 휘은은 응, 이라고 힘찬 대답을 한 뒤 욕실로 향했다. 미야는 어린 아들의 모습에 힘없이 웃다가 이럴 때가 아니지, 라며 방에 들어가 간단한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 "엄마 안녕-" "휘은이도 안녕, 나중에 엄마가 데리러 올게. 엄마, 부탁해요." "걱정말고 조심히 다녀오렴. 너 혼자 내보냈다고 나중에 이서방한테 혼나지나 않을지." "엄마가 말씀만 그렇게 안 하시면 그이도 모를 거니까, 말하지 말아줘요." 친정에 휘은을 맞기던 미야는 자신의 어머니께 윤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친정 어머니는 얼마 전 까지 계속 아프던 자신의 딸이 그렇게 사랑하는 어린 아들까지 맡기고 어디 가는 모습에 괜히 안타깝고 불안해서 손 흔 드는 딸의 모습에 그저 조심해, 라고 일러주며 주름진 눈가에 고인 눈물을 슥- 닦아본다. 부모는 제 자식이 아프면 슬프 고 가슴 아프다. 친정 어머니 역시 부모이기에 자신의 딸, 미야가 아픈 모습이 그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플 뿐이다. 그때 멀어지는 엄마의 뒷 모습을 보며 열심히 손을 흔들던 휘은은 이내 엄마의 뒷모습마저 사라지자 그제야 잡고있던 할머니 손을 잡아 당기며 들어 가자고 한다. 그제야 미야의 어머니도 그래, 라며 집 안으로 들어선다. 휘은일 친정 어머니께 맡긴 후 전철에 오른 미야는 멍한눈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의 검은 벽만 바라볼 뿐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미야는 자신의 핸드백에서 작은 종이 쪽지를 꺼내본다. 얼핏 보기에는 집 주소가 적혀 있는 듯 하다. 그것을 들여다 본 미야는 종이 쪽지를 작게 접어서 다시 백 안에 집어 넣는다. 아주 중요한 쪽지 라도 되는 듯 말이다. 곧 안내방송이 나오고 미야는 꽤나 여유로운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선다. 그리고는 나약해 지는 마음을 부여 잡으려는 듯 긴장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숨을 한번 들이켰다가 내 뱉은 후 그 커다란 눈을 또렷하게 뜬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될 일이니까.' 강한 다짐을 한 듯 미야는 문이 열리자 힘찬 걸음을 하였다.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어느 아파트로 향했다. 얼마 안 있어 지은지 얼마 안 된듯한 아파트가 눈에 띄고 미야는 돈을 준 뒤 택시에서 내려 아파트를 올려다 보았다. 하얗게 칠해진 아파트가 참으로 깔끔해 보인다. 미야는 아까 전철 속에서 꺼 내 본 쪽지를 다시 꺼내어 몇동, 몇호인 것을 확인 한 후 그리로 발걸음을 하였다. 「집 주소에요. 올해부터 혼자 나와 살고 있으니까 만나기 쉬울거에요. 요즘은 집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몇일 전에 만난 재중에게서 들은 말들. 미야는 날을 고르고, 고르다 토요일이면 조금이나마 여유있지 않을까, 라는 생 각으로 결국 여기까지 찾아왔다. 언젠가는 끝을 맺어야 할 일. 그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닥쳐올 일이다. 그렇기에 그 '언젠가'를 조금 더 빨리 앞당기는 것일 뿐이다. 늦게 끌었다간 더 엉망이 될 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 20개의 숫자 중 하나를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미야를 데려다 주었고, 미야는 이내 쉼호흡을 한번 한 뒤 떨리는 손을 들어 벨로 가져갔다. 딩동- 기계에서 나는 맑은 음과 함께 집 안에서 얼마 안 있어 누구세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미야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누구세요, 하고 몇번이나 안에서 물어왔지만 미야는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잔뜩 긴장한 몸은 바들, 바들 떨렸고, 그 녀의 심장은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무 대답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집 안은 다시 조용해 졌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장난으로 생각하는 가 보다. 미야는 긴장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손을 들어 벨 을 꾹- 눌렀다. 그러자 다시 한번 누구세요, 라는 말이 들려왔고 미야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정… 윤호씨…, 아시죠…?" 잔뜩 떨리는 목소리,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몸. 미야의 물음에도 안에서는 아무 응답도 없었다. 미야는 잘못 찾아왔는가 싶어서 다시 백을 뒤져서 종이 쪽지를 꺼내었다. 그때 갑작스레 문이 열렸고- "누구시…" 현관문을 열고 나온 그는 꽤나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갑작스레 등장한 그를 보고 적지 않게 당황 했지만 특유의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박…유천씨 맞으시죠?" "………." 그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미야의 질문에 대답하지도 못 할 만큼 커다랗게 놀란 듯 했다. 그에 비해 미리 마음 먹고 왔던 미야는 그런 그를 보며 경직된 얼근 근육을 움직여 힘들게 웃어보였다. "권미야라고 해요, 아시죠? …6년 전, 아니- 7년전 결혼식에서 봤던…." "윤호…, 부인이시죠?" "…들어가도 될까요?" 한참 후에야 겨우 입을 연 유천은 들어가도 되냐는 미야의 말에 한참 고민하는 듯 싶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 야는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섰고, 유천은 바로 부엌으로 향해 냉장고에서 마실 걸 가져와서는 미야에 게 내밀었고, 미야는 싱긋 웃으며 고맙다고 말한 뒤 시원한 음료를 한모금 마셨다. "…어쩐…, 아니- 어떻게 여길 아셨죠…?" "…재중씨한테 물어봤어요." 미야의 대답에 유천은 도대체 왜, 라는 표정으로 미야를 바라보았고, 미야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냥 놀러왔어요. 그이 친구니까, 저랑도 친구 되어줄 수 있으시죠?" 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 뒤로 유천은 그저 당황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 몸 상태가 별로 좋지 못해서, 좋은 소설로 찾아뵙지 못 했습니다. 항상 기대에 어긋나는 건 아닌가 걱정입니다만, 가끔은 살짝이나마 저를 봐 주십사 합니다(笑)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6] 벌써 8시가 넘었다. 한참이나 이것 저것 얘기하던 미야는 오랫동안 실례했다며, 미안하다고 말하며 겉옷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그녀가 일어서자 유천 역시 따라 일어섰고, 미야는 나오지 말라고 알아서 가겠다고 말한 뒤 현관에 서서 옷 을 똑바로 여미었다. 유천은 거실에서, 그녀는 현관에서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두 사 람의 시선은 교차했고, 이내 미야는 싱긋 웃어보았다. "또 와도 돼요?" "…뭐- 저야 별 상관 없습니다만." "헤에, 그럼 또 와도 된다는 말로 알아 들을게요. 제가 오늘 너무 실례했네요, 죄송해요-" 미야가 꾸벅 인사를 하자 유천 역시 얼떨결에 인사를 했고, 그녀는 이제 가겠다며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게 그녀 가 나가자 유천은 거실로 와서 피곤한 듯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녀와 무려 5시간을 대화했다. 물론 중간에 티 타임도 가졌지만 식사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거의 5시간을 전체를 대화를 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녀는 유천에게 많은 걸 말해주었다. 윤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과 그 설레임. 그리고 이제 6살 된 아들, 휘은의 이야기에 지금 인큐베이터에 있는 휘연의 이야기까지. 휘은이는 퍼즐을 무척 좋아해요, 라는 둥 휘은이 주로 하는 놀이나 취미 등등을 가르쳐 주었고, 딸 휘연은 아마 몸이 약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잘 보살펴줘야 겠다고 말 하는 미야의 모습은 틀림없이 두 아이를 둔 어머니와 같았다. 유천은 이런 이야기따위 들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도 어느새 새겨 듣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몇번이나 비소를 날리곤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윤호 이야기가 나왔고, 화제는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본인들의 이야기로 건너갔다. 미야는 유천에게 언제 윤호와 처음 만났냐며 여러가질 물어 보았고, 중간 중간마다 의미모를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 사람, 정말 좋아보여요,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요즘은 의사일이 바빠서 일주일에 두, 세번 밖에 집에 못 온다는 대목에서 유천은 움찔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야가 "흰 가운을 입고 열심히 움직이며 이 세 상 병든 사람들을 간호해주는 그이를 보면 왠지 흐뭇해져요."라고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던 것 같다. 다행히 미야는 유천에게 왜 친구면서 지난 7년 동안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냐는 둥, 이상한 소리는 하지 않았고 말 그 대로 친구로서의 수다밖에 하지 않았다. 다음에 또 와도 되냐는 그녀의 말에 유천은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 했다. 어쩌면 그녀를 통해 현재의 윤호를 좀 더 알고 싶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유천은 다시 비소를 지어 본다. "박유천, 병신같은 놈. …벌써 세월이 몇년인데…." 그 피식 웃는 웃음 조차 쓸쓸해 보이는 유천이었다. ≠ 사람이 많은 시내. 휴일이라 그런지 오늘은 유독 많다. 중, 고등학생과 대학생, 어른에서 어린 꼬마 아이들까지. 시내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지면서 거리에는 하나, 둘 등이 켜졌고, 이내 어두운 밤 거리가 환하게 밝혀졌다. 오늘따라 시내 거리에는 각각 팔짱을 낀 남, 녀가 정겹게 돌아 다니고 있다. "창민씨, 배고프죠? 우리 여기 가요- 여기 정말 맛있어요." "그래? 뭐, 휴아가 가자하면 가야지." 사람 좋은 창민의 미소에 휴아는 금새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창민의 팔을 잡아 끌고 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휴아 말대로 정말 맛 좋은 집인지 이미 식당안은 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창민은 먹을 수 있을까, 라며 자리가 났는지 둘러보았다. 그때 마침 한 테이블이 비었고, 창민은 휴아를 이끌고 저기 가서 앉자며 자리 잡고 앉았다. 얼마 안 있어 식당 아주머니 께서 테이블을 치워 주셨고, 주문을 받고 가셨다. 가만히 식당안을 둘러보던 창민은 잠시 화장실좀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화장실, 이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주 깔끔한 그런 식당이 아닌, 아주 서민적인 그런 식당이었기에 화장실도 시설이 엄청 좋거나 하지 않았다. 창민은 간단히 손만 씻고 나갈 생각이었으므로 그냥 물로 손을 헹궈낸 뒤 거울을 보고 머리를 정리한 뒤 식당쪽으로 향하였다(식당과 화장실을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탁- 좁은 통로 때문일까. 화장실을 나와 복도를 통해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려던 창민은 어떤 사람과 어깨를 부딪혔고, 이내 고개를 돌려 죄송합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하려는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너-" 창민의 모습에 그 사람 역시도 적잖게 당황한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이내 눈을 휘어 보이며 미소를 지 어 보이고는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한동안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창민. 정신을 차린건 그로부터 정확히 2분 뒤 였다. '쫓아가야 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창민의 몸은 움직였고 이내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서 시내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어떻게보면 짧은, 어떻게보면 긴 2분동안 그 사람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진 후였다. 오늘은 평일보다 더 많은 인파 가 시내에 집중된 날.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을리가 없다. 창민은 그저 쓴 웃음을 지어 보았다. "…휴아가- 기다리겠지." 화장실 간다, 해 놓고 몇분이나 부재중인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녀 생각에 창민은 다시 식당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 다. 하지만 계단을 오르는 그의 발걸음이 어찌나 힘이 없고 느리던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하게 보이기도 했다. 반층 정도 올라왔을까, 겨우 반층 올라와 놓고 한숨을 푹- 내 쉬고 있던 창민의 등뒤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이봐, 심창민! 아니…, 형이라 부른다고 약속했으니 형이라 불러야 하는건가." 말에 섞여 나오는 웃음, 조금은 건방지게도 들릴 수 있는 말투. 그리고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톤의 목소리. 몇년동안 한번도 듣지 못한 그 목소리, 다시 한번 찾아오면 못 찾을 곳으로 떠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던 그때와 다름 없는 목소리. 창민의 축 쳐진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경직된 자세로 식은땀을 흘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주먹이 가볍게 쥐어졌고 그의 동공은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꽤 오랜만인 것 같은데 안 돌아 보는 거야? …아니, 안 돌아봐요?" 창민은 고민했다. 여기서 뒤를 돌아봐야하는 것일까, 말아야 하는 것일까. …고민 끝에 창민은 결정을 했다. 조심히 조심히…. 천천히, 천천히… 뒤를 돌았다. 계단 밑에는 항상 보고 싶었던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대전마저 떠나버려 찾을 수 없었던 그 사람. 하지 만 지금 자신 앞에 나타나준 사람.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사랑인걸 깨달았던…, 그런 미련한 자신을 사랑해줬던 사 람. 바로… 이선우가 심창민의 앞에 서 있다. "이…선우…." "…오랜만이네. 아니, 오랜만이에요." 싱긋 웃는 그 웃음조차 너무 그리웠기에 창민은 제 마음대로 선우에게 향하는 다리를 질책하지 않고 그대로 선우에게 향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마주섰고, 선우는 창민을, 창민은 선우를 바라보았다. 서로 지난 7년이란 세월동안 많이 성 숙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캐주얼 차림이 아닌 수트를 멋있게 차려입고 있는 선우는 더 이상 21살의 어린 대 학생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너…, 대전 떠나서 어디 있었던거야! …내가,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 인상이 구겨지며 꽤 큰소리치는 창민의 모습에 선우는 아무 대답없이 그냥 창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저쪽에서 "이선우, 아직도 볼일 안 끝났어?"라고 크게 외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선우와 창민은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 았다. 귀엽게 생긴 여자가 잔뜩 불만이 섞인 얼굴로 선우에게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선우는 알았어, 라고 크 게 대답해 준 뒤로 다시 창민을 향해 싱긋 웃어보았다. "다음에 만나요-" "어디 사는데! 어디 사는지 알아야…" "어디 사는지 몰라도 만날날은 틀림없이 오니까…. 애인하고 같이온 것 같은데 어서 가 봐요. 여자들은 자신을 기다리게 만드는 남자는 싫어하니까. 그럼 이만." 창민에게 극히 간단한 말을 남기고서 제 여자친구에게 향하는 선우의 뒷모습에 창민은 쓰리는 가슴을 맛 보아야 했다. 결국 이렇게 됐어야 했던가. 결국 각자 이런 상황으로 마주쳐야 했던 것일까. 돌아서서 뒤늦게야 식당으로 향하는 창민의 어깨가 다시 힘 없이 축 쳐져 있다. 그에게는 늦은 후회만이 존재 할 뿐…. ───────────────────────────────────────────────────── 늦어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7] 그 날 그렇게 우연찮게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선우를 만난 후 창민은 좀처럼 휴아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몇개월 있음 결혼도 할 텐데 이렇게 그로 인해 정신이 분산되어 버리다니. 창민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개인 사무실을 벗어났다. 아직 1월이라 그런지 꽤나 찬 바람이 불었고, 창민은 코트를 여미었다. 움츠러 드는 몸을 애써 펴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나가 자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작년에 최신 모델형으로 뽑은 차가 주인을 잘 만나 초라 한 가로등 불빛마저도 멋있게 비춘다. 깔끔한 성격답게 차 역시도 깨끗하게 세차되어 있었다. 창민은 이런 작은 것에 내심 만족감을 느끼는지 혼자 씨익 웃어보였다. "그나저나- 아무도 없네." 주위를 둘러보던 창민은 주차장에 한대의 차도 없는 것을 보고 괜히 훵- 하니 텅 비는 듯한 마음을 달래어 보았다. 주 차장에는 차가운 바람과 차가운 바람에 못 이겨 떨어진 낙엽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 따라 퇴근이 유독 늦은 창민은 어서 집에 가야지, 라는 생각으로 차에 올랐다. 아니, 정확히 오르려던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차에 오르려던 창민을 붙잡았다. "꽤 늦게 나오네. …7년전 기억으로 겨우겨우 찾았는데 하도 당신이 안 나오길래 이 회사가 아닌가 했어." 저 목소리, 저 말투. 심창민이 알고 있는 사람 중 단 한명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것들. 창민은 어정쩡하게 숙여 진 몸을 바로 하며 목소리가 근원지를 찾아 그 곳에 시선을 두었다. "사실은 당신이 먼저 찾아오게끔 하고 싶었는데- 내가 사는 곳을 모르잖아.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어." 하얀얼굴이 어둠속에서 유독 빛난다. 오랫동안 밖에 있었는 붉어진 코와 귀, 손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 되어 창민의 눈 에 들어온다. 창민은 선우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나 보고싶어서 왔냐?" "음, 그런가." 새침스럽게 웃어보이는 그 모습이, 예전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그 웃음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너무 그리웠었던 얼굴 이기에 창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선우는 꽤나 긴장해 굳어있는 창민의 모습에 웃어보이며- "사실은 아저씨 만나려고 왔다가 당신 생각나서…." 선우의 말이 갑자기 끊겼다. 그 이유는 다 창민에게 있다. 가만히 굳어 있던 창민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선우 를 안아버린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선우의 눈은 동그랗게 떠졌지만 이내 휘어보이며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동 완은 선우를 더욱 껴 안았다. "너란 녀석은…, 정말 성가시는 녀석이야…." 창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얼마나 찾았는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그를 찾고 싶어서 얼마나 안달이 났었던 가. 이제 좀 잊고 살만하다 싶었는데 그 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그 때문에 얼마나 가슴 앓이를 했던가. 언제나 걱정 해주고 곁에서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그가 어느덧 28살의 성인이 되어서는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창민의 앞에 나타났다. 더 이상은 지켜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자라서는, 어느덧 여자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서는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 다시 창민의 마음을 흔들어 버린다. "…보고 싶었어… 요." 여전히 어색한 저 높임말…, 쓸쓸함이 묻어나는 저 목소리…. 그다, 그가 나타났다. 이선우다, 이선우가 나타났다. 다 름 아닌 심창민의 앞에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선우를 잠시 품안에서 떼어내 선우의 얼굴을 바라보던 창민은 선우의 손을 덥썩 잡았다. 아주 차다 못해 건조해져 있는 손을 보고 창민은 그대로 자신의 코트를 벗어 수트만 차려입고 있 는 선우의 어깨에 덮어줬다. "이럴 필요 없…" "내가 해주고 싶으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냐." 코트의 단추까지 채워주는 창민의 손길.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손길에 선우는 기분이 좋아져 그가 하는데로 그냥 놨두기로 했다. 얼마 안 있어 코트 단추가 다 채워졌는지 옷을 바로 잡아주던 창민은 갑자기 선우의 손을 잡고 차로 향 했다. 얼떨결에 이끌려가다시피 하던 선우는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았다. 7년 전에 그에게 외면 당했던 자신의 사 랑에 이제서야 보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좋기도 하지만 쓸쓸하기도 했다. 왜 이제서야 보답하는걸까…, 라는 약간의 책망도 들어있기도 하지만. 창민이 선우를 데리고 온 곳은 회사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늦은 시각으로 인해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인근의 공원이다. 창민은 차를 멈추고서 차 안의 어두운 조명으로 선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창민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동안 멍하게 앞만 응시하던 선우는 몇분이 지나서야 창민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얘기할래, 아님 밖에서…" "밖에서 얘기해…요. 차 안은 답답해." 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창민은 차에서 내렸고, 선우 역시 뒤 따라 내렸다. 창민은 선우에게 저쪽 벤취에 앉아 있 으라 한 뒤 어디로 향하는 듯 했다. 얼마 안 있어 선우의 앞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24시 편의점에서 사온 따뜻한 캔 커 피가 들려 있었다. 선우가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창민은 그저 씨익 웃어보이며 선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늦은 시간이 라 조깅을 하는 사람도 없고, 나무를 많이 심어놔서 이정도면 공기도 꽤나 괜찮고 바람은 차지만 제법 시원하게 느껴 지는게 7년동안의 어색함을 깰 수 있기에는 충분한 환경이다. "어떻게… 지냈어?" "보이는데로, 느끼는데로." 선우의 간결한 대답에 창민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할 말이 엄청 많아 몇시간을 얘기해도 모자 를 것 같았는데 막상 이렇게 둘이 같이 앉아있으니 꺼낼 얘기가 없다. 한참이나 따뜻한 캔 커피를 따지도 못 한 체 손에 들고 있는데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한테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왔다가, 당신이 생각나서 기다렸어. 차마- 직접 찾아가 이렇게 대면할 용기는 전혀 나지 않는 거 있지. 그래서 추운데서 기다리면서 엄청 생각했는데- 당신이라면 그렇게 해 줄것만 같아서… 그냥 갈까도 싶었지만 기다렸어." "…내가 뭘 해 줘?" 창민은 불안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저 얼굴에서, 저 입술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창민의 심장은 1초가 지날 때 마다 시커멓게 타 들어가듯 촉박해져있고, 창민은 어서 말해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창민을 한번 바라보던 선우는 가로등만 비치는 길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2월 22일." "………?" 갑자기 날짜를 말하는 선우의 모습에 창민의 궁금증은 최고조에 올랐고 선우는 그 후 입을 꾹 다물었다. 결국 창민이 먼저 "무슨… 말이야?"라고 물었고, 선우는 그런 창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창민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자신의 몸 을 일으켜 창민의 앞에 섰다. 창민의 시선이 선우의 얼굴을 보기 위해 올려졌고, 선우의 얼굴은 가로등을 등지고 서 서 그런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썩-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선우야?" "…그때…, 그때 당신이 내 사랑… 받아줬음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선우야." "…지금 이렇게밖에 있을 수 없는 우리의 미래는 바뀌었겠지? …하지만 뒤 늦은 후회는- 아주 바보같은 거라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 후회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선우가 말을 하면 할수록 창민의 궁금증도 계속 커지기만 한다. 그때 창민의 앞에 가만히 서 있던 선우가 갑작스레 창민의 품에 와락 안긴다. 미세한 떨림…. 울고 있다. 창민은 오랜만에 어린 선우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짓고서는 선우의 등을 쓸어주었다. 울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앞으로…, 나 당신한테 절대 이럴 수 없는 거 알아…?" "………." "…2월… 22일날… 결혼식이야." 쿵- 심장이 내려 앉는다. 잔잔하게 짓고 있던 미소마저 사라져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되고 등을 쓸어내리던, 진정시키던 그 손길은 얼음장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나는 그 날 이 세상에서 아주 행복한 결혼을 할 거야…. 그런데- 거기에 당신이 와줬음 좋겠어." "………." "당신이… 그 날 와 주면…, 난 아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정말 행복한 그런 결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와 줄 수 있지…?" 창민의 목덜미를 껴 안으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선우의 모습. 점점 흔들리는 선우의 어깨. 결국 흐느낌마저 새어 나온다. 멍하니 선우의 어깨너머로 가로등 불빛만 바라보던 창민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그래, 갈게. 나로 인해… 니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 날 꼭 갈게…." 자신의 어깨를 적시며 대답하던, 그의 모습에… 선우는 그날 밤 얼마나 그를 안고 미안해, 미안해… 를 말했는지 모른 다. 이제서야 사랑을 깨달은…, 뒤 늦게야 서로의 마음이 통한 그들의 모습은… 그 날밤 한 없이 슬펐던 걸로 기억된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8] 딩동, 딩동- "왜 문을 안 여는거지…." 몇일동안 병원에서 시달린 윤호는 한시라도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벨을 눌러보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 도 없다. 윤호는 이상하다, 라 생각하면서도 미야가 피곤해서 먼저 자고 있을거란 생각으로 차키와 함께 달 아 놓은 집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생각과 달리 거실에는 불이 켜져있었고 거실 소파위에는 항상 자신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든 아내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 장모님께서 누워 주무시고 계셨다. 윤호는 어떻게 됐는가 싶어서 일단은 아들의 방에 들어 가 보았다. 침대 위에서 잠옷까지 차려입고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안심하며 방을 나선 윤호는 이번에는 딸을 찾아 안방 문을 열었다. 부부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침대 속에 딸 휘연이 눈을 뜨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우리 휘연이 깼어-?" 가방을 내려놓고 겉옷도 벗기전에 윤호는 자신을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는 작은 아기를 안아 들었다. 품에 안자 아기 냄새가 알싸하게 풍긴다. 그 아기 냄새가 너무 좋아 한참을 안고 있던 윤호는 어느새 잠이 들은 휘연을 보며 다시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 놓았다. 꿈틀 거리던 아기, 휘연은 이내 다시 스르륵 잠이 들었 다. 윤호는 겉옷을 벗고 거실로 가 소파에서 불편하게 주무시고 계시는 장모님께 다가갔다. "장모님, 장모님-" "…미야 왔니…?" "장모님, 접니다. 정서방." "정서방…? 아이구, 정서방 왔는가?" 그녀의 어머니는 벌떡 몸을 일으킨체 자신의 사위를 바라보았다. 윤호는 장모 앞에 무릎을 꿇고 정중한 자 세로 앉아서는 자신의 아내의 행방을 물었다. 집안을 둘러 보아도 자신의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늦은 시각까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건데…. 장모는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이내 사위의 얼굴을 보면서 면목 없다는 말과 함께 사정을 얘기했다. 오후 4시쯤에 미야가 아이들을 맡기러 왔다고 했다. 여느때와 같이 7시쯤이면 데리러 오겠지, 하고 기다렸 는데 하도 오지 않아서 미야가 준 비상키로 먼저 애들 데리고 와서 재웠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 게 잠들어 버렸다고- 윤호는 오늘 밤 여기서 자라고 권했지만 장모는 장인이 기다린다고 가야 한다고 했다. 윤호는 그러면 태워서 데려다 드리겠다고 말했지만 장모는 아이들끼리만 있는데 어딜 나오냐면서 됐다고 하셨다. 하지만 장모 혼자가는 게 영 맘에 걸린 윤호는 늦은 시간에 콜 택시를 불러서 장모를 배웅한 뒤 얼 마 뒤에는 집에 전화까지 해서 장모가 들어간 걸 확인하였다. 장모가 집에 들어간 것 까지 확인하자 윤호는 자연스레 시계로 향하는 시선을 느꼈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자신의 아내는 지금 이 시간까지 아무 연락도 없이 뭐하는 것일까. 폰으로 연락해도 폰은 계속 꺼져있다는 멘트만 흘러 나오고…. 윤호는 답답한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현관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어 셔츠만 걸치고 있는 팔을 비벼보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검은 차 한대가 매끈하게 주차 되었고 윤호는 가던 발걸음을 멈춰 다시 현관으로 나왔다. 현관의 자동등이 켜지자 윤호는 아예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러자 다시 현관에 불은 꺼지고 윤호는 어둠속에 몸을 감추고 벽에 기대어 차를 주시했다. "오늘 고마웠어요." "아니에요, 그것보다 너무 늦은거 아닌가 싶네요."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은 다름아닌 자신의 아내였고, 그 옆에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남자였다. 왜소하지 만 꽤 큰 키의 남자는 어둠속에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심어 주었다. 밤이 조용해서 그런지 두 사람의 대화는 생각보다 잘 들려왔고 윤호는 좀 더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은 한번 만난게 아닌 듯 꽤나 다정한 얘기를 나 누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 남자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무테의 안경 안의 예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너무 많이 실례했죠- 죄송해요." 비틀 거리는 아내. 술에 취한 듯 싶었다. 아내는 이만 가 보겠다며 발걸음을 뗐고, 그와 동시에 비틀 거렸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남자가 와서 그녀를 받쳐 주었다. 그녀는 웃어보이며 괜찮다고 하며 가 보라고 일렀다. 그 와중에도 윤호의 시선은 남자에게 고정되었다. 남자를 바라보는 윤호의 눈은 예리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화를 낼듯한 차가웠다. 자신의 아내에게 부축하는 행동에서 그 이상을 했다간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기세인 윤호는 기대어 서있던 벽에서 등을 떼고 몸을 똑바로 한 뒤 한걸음, 한걸음 다가섰다. 하지만 거기까지…. '정윤호'가 갈 수 있는 곳은 거기까지였다. "유천씨, 괜찮으니까 가 보셔도 돼요- 여기서 몇걸음도 안 되서 엘리베이터만 타면 되는걸요-" "그래도…. 계단까지 부축해 드릴까요?" "에이, 괜찮다니까요…." 유천…. 박유천이었다. 발 끝부터 마비되는 듯한 이 느낌. 눈동자가 한 없이 흔들리는 윤호. 7년…. 7년만 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보지 않았는가. 아니, 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들에게만 집중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그 노력이 지금 이렇게 무너지려는가. 윤호 는 무너지려는 마음을 애써 부여 잡으며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지금 자신의 주변환경을 생각해서 자신이 버텨야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마음을 부여잡는 윤호였다. 그 남자, 유천은 얼마 안 있어 차로 돌아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고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지탱한 체 단지 를 벗어나는 차를 향해 손을 몇번 흔들던 아내는 뒤 돌아서서 비틀 거리는 발걸음을 뗐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웬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미야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고 이내 그를 비켜 가려했지만 팔목 을 붙잡히는 통에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무슨 볼일이신데 남의 손목을 잡는거에요오-" "너… 지금 시간이 몇신데…." "당신이에요…? 당신이…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왜 있어요?" "내일까지 쉬어. 당신 지금 제 정신인거야? 어서 들어 가." 미야는 자신의 팔목을 붙잡고 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이 왜 이렇게 고맙게만 느껴지는 걸까. 나중에 자신이 되려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을지도 모를 그. 왜 이렇게 하루종일 불안할 걸까. 그래서 유천에게 찾아가 술을 사 달라했다. 매주 토요일 오후만 되면 유천에게 찾 아 가는 것을 거의 일상으로 만들어 버린 미야에게나, 토요일마다 미야가 찾아오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유천에게나 같이 술을 마시는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 생각해서 마셨고, 결국 이렇게 밤 늦은 시간까지 같이 있게 되어버렸다. 너무 힘들어서 마셨다, 최근 일로 인해 더욱 집에 들어오지 않는 그를 보면 밤에 옆 자리가 쓸쓸하고 혼자 있으면 외로워서 미칠 것만 같아서…, 그래서 술을 마셨다. "여보…, 여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고 있는 그 순간에도 윤호는 미야를 보지 않은체 미야의 팔목만 잡고 있었다. 너무 강 하게 잡은 탓인지 미야의 팔목이 붉어지기 시작했지만 미야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여보, 하고 불렀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이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우는 것을 모르는 윤호 는 그저 뒷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여보…, 평생… 이렇게 나 잡고 있을 수 있어요…?" "………." "평생- 평생… 나 이렇게 안 놓고 살 자신 있어요…?" 땡-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윤호는 문이 열리자 마자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를 소파에 내팽겨 치듯 했 다. 미야는 힘 없이 소파에 주저 앉았고, 윤호는 어두운 집 안에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니, 노려 보다 시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재중에게서 듣고 유천에게 찾아간걸까. 혹시 그에게 폐를 끼친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해서 그를 상처입히지는 않았을까, 하고 걱정되 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의 아내가 아닌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당신이…, 당신이 왜 박유천하고 같이 있는거야." "……친구에요. 유천씨랑…, 나랑… 친구하기로 했어요." 고개를 숙인 탓에 그녀의 우는 얼굴은 윤호에게 비치지 않았다. 윤호는 아직도 그녀가 우는지, 어떤 심정으 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지 모른체 그녀가 그를 만나고 있다는 데에만 화나서는 그녀를 닥달하다 시피 하고 있다. 윤호는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고 흔들었다. "당신이 왜 유천이랑 친구를 하냐고!!" 어깨와 함께 힘없이 흔들리던 고개를 들은 그녀. 그제야 거실을 조금이나마 밝히고 있는, 잔잔한 불빛을 비추고 있던 스탠드로 그녀의 눈물을 보게 되었다. 불빛에 반사된 눈물은 그녀의 뺨을 타고, 목을 타고 한 없이 흐르고 있었다. "미야야…." "…말하기 싫어요. …지금은 안돼…, 일러요." 무슨 말을 하는걸까. 뭐가 안 돼고, 뭐가 이르다는 걸까. 윤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 다. 그녀에게 있어 유천의 존재는 그리 유쾌하지 못할 존재. 그런데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유천과 친구 를 하고 이렇게 밤 늦은 시간까지 함께 있는 걸까. "그게… 무슨 말이야…?" 미야는 여전히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힘없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해요." "………." 미야의 말에 윤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도 이제 자신의 사정을 모두 다 아는데 언제까지 거짓 말을 하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 윤호는 곤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어느새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 던 강한 손에는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더니 눈물 찬 눈으로 웃어보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궁금해 하는 답은… 모두 다 이 안에 있어요. 당신에게 향한 나의 사랑이… 답이에요. …언젠가는… 아니, 어쩌면 얼마 뒤면… 밝혀질 거에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윤호의 손을 치우고 비틀 거리는 발걸음으로 방으로 들어갔 다. 거실에 혼자남은 윤호는 복잡한 심정으로 그녀가 들어간 방을 바라 볼 뿐이었다. 그 당시…, 그 누가 그녀의 뜻을 알았을까…. ──────────────────────────────────────────────────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유독 썼다, 지웠다를 많이 반복한 98편이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하구요, 엑스가 다시 열린걸 다행이라 생각하며 올립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99] 그 날, 윤호가 유천을 만나고 미야의 가슴 아픈 사랑이 윤호에게 전해졌던 날 이후로 7일이 지나 다시 토 요일이 다가왔다. 윤호는 그 날 이후로 저도 모르게 미야를 감시 아닌 감시를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디 가거나, 아님 집에 전화했을때 전화를 안 받으면 그날 퇴근해서 어디 다녀 왔냐고 묻곤 했다. 이런 자신이 웃기지만 지금 이런 상태에서 정윤호가 박유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이라 생각했 기에 윤호는 이런 웃긴 상황에서도 자신의 아내를 감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중 무휴일로 보내서 그런것일까. 이렇게 뒤늦게야 휴가가 난 윤호는 토요일, 보통이면 지금 이시간에 병 원에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월요일까지 짧은 휴가를 받았기때문에 느긋하게 티비를 보고 있다. 평소 일 찍 일어나 출근하는 게 몸에 베인지라 잠은 6시 정각에 깨어 버렸고 윤호는 다시 자버릴까도 싶었지만 게 을러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파트 내 공원을 한바퀴 돈 후 목욕 가서 온탕에 몸을 풀고 사우나 까지 한 다음 지금 이렇게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소파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여보- 휘은이 옷좀 입혀 줄래요?" 아내의 목소리에 티비를 멍하니 들여다 보고 있던 윤호는 어느새 제 옷을 들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어린 아들을 보았다. 아직 춥다면서 내복을 벗지 못 해 귀여운 캐릭터가 새겨진 내복을 들고 윤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어린 아들. 가끔은 아빠인데도 불구하고 무척 어색하게 대하는 구석이 있는 휘은은 가끔 적응이 안 될만큼 낯설기도 하지만 그게 다 휘은이 태어나자 마자 군대에 들어가서 제대하자 마자 의학 공부한다고 정신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휘은에게는 가끔 만나는 아빠는 무척 반가운 존재 이지만 이렇게 집에 하루종일 있는 아빠는 신기한 존재였다. 좀처럼 집에서 같이 놀아주는 경우가 없었 기 때문이다. 윤호는 어린 제 아들을 품에 꼭 안았다. "아빠, 오늘 병원 안 가?" "응, 우리 휘은이랑 놀려고 안 나갔어." "정말?" 자신과 놀려고 안 나갔다는 제 아비의 말에 홍조까지 띄우며 기뻐하는 아들의 모습에 윤호는 웃어 보이지 만 미안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일반 샐러리맨 아버지라면 한참 귀여워 해주고도 남을텐데 늦깍이 의사생 활을 하다보니 같이 많이 있어주지 못 해 아버지로써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아서 한 없이 고개가 숙여질 뿐 이다. 윤호는 어린 아들을 품에 꼭 안아보다가 잠시 품 안에서 떼어내어 물었다. "휘은이는 아빠가 좋아?" "…응!" 한참을 고민하던 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자 작게 눈을 휘어보이며 웃던 윤호는 휘 은을 품에 꼭 안고 아빠 어디가 좋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참을 고민하던 휘은은 그 똘망똘망한 눈으로 윤호 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니까 아빠가 좋아!" "…무슨 소리야?" "어린이 집에서 배웠어. 엄마, 아빠는 우리를 사랑하니까 우리도 엄마, 아빠를 사랑해야한다고." "…그럼 엄마는 어디가 좋아?" "엄마는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윤호에게는 아빠니까 아빠가 좋아, 해 놓고 미야에게는 여러가지 면에 있어서 좋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것이 과연 얼마나 같이 있고, 얼마만큼 애정을 준 차이인가, 라는 생각에 윤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제야 옷 입자, 하며 아들의 옷을 하나, 하나 입혀주었고 휘은은 윤호가 옷을 입혀주자 마자 쎙- 하니 제 엄 마에게로 가버렸다. 내심 서운한 윤호는 그냥 리모컨만 만지작 거렸다. 안방에서 작은 애의 기저귀를 갈아주던 미야는 옷을 입자마자 자신에게 후다닥 달려오는 큰 애를 보더니 왜 아빠랑 더 있지 않냐고 했다. 그러자 휘은이는 몰라, 라며 부부의 침대에 털썩 몸을 던져 누워 버린다. 미야는 내심 서운해 하고 있을 남편에게 괜히 미안해져서 휘연일 안고 거실로 나갔다. 미야가 거실로 나 오자 소파에 누워있던 윤호가 머리를 글쩍이며 일어나 앉았고 미야는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휘은이가 당신을 어색해해요." "그러게…. 녀석, 병원에 가끔 찾아올때는 아주 친하게 굴더니." "당신이 집에 있으니까 적응이 안 되나봐요. …오늘 휘연이 데리고 외출을 할까 하는데- 휘은이랑 같이 있을래요? 이 참에 아들이랑 친해져도 보고…." 오늘은 토요일. 유천에게 가는 날이다. 그런데 윤호가 있으면 그게 곤란하게 된다. 윤호는 저번에 유천과 같이 있던 자신에게 화를 내었고, 그 후로 자신이 어디 나갔다 오기만 하면 의심을 하는 듯 했다. 미야는 그런 윤호를 따 돌리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휘은을 생각해낸 것이다. 어린 아들과 친해지고픈 마음은 윤호 역시 절실할 것이다. 이참에 두명만 놨두고 외출해 버린다면 어쩔 수 없이 어린 아들 휘은도 제 아빠에게 다가갈 것이고, 외출에서 돌아올때쯤이면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진 부자(父子)가 되어 있지 않을까, 란 생 각한 미야의 꾀 아닌 꾀였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윤호는 안경을 쓰지 않은, 예리한 눈으로 미야를 바라보 고는 잔뜩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는건데." "그냥…,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볼일인데? 내가 같이가줄까?"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안 방으로 들어가 겉옷까지 챙겨 들것만 같은 윤호의 모습 때문에 난감하게 웃어보 이던 미야는 그 짧은 시간동안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그에게 말했다. "엄마랑 외가에 다녀오기로 했어요." "외가댁?" "예, 외가요. 한동안 찾아 뵙지 못했고, 이번에 휘연이도 태어났는데 어른들이 휘연이를 많이 보고 싶다 하셨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당신한테 휘은이 맡기고 가자고 해서…." 윤호는 미야의 말을 들으며 미야를 빤히 쳐다보았다. 미야는 들킨건가, 하고 흠칫 놀랐지만 절대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여전히 잔잔한 미소만 띄우고 있었다. 여기서 그에게 한번 더 들킬 시에는 다시는 유천 을 만나러 가지도 못 할 뿐더러 자신이 생각했던 일들도 펼치지 못 한체 접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윤호는 의외로 다시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 휘은이 데리고 동물원이라도 다녀올테니까- 외가에만 다녀오고 나서 바로 와." "…알았어요. 그럼 오늘 하루 휘은이 잘 부탁해요." 싱긋 웃는 그녀는 속으로 한시름 놓았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준비해야 겠다며 휘연을 데리고 안방으로 가서 휘연을 눕혀놓은 뒤 욕실을 들어가는 듯 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가져가던 윤호 는 욕실문이 쾅, 하고 닫히자 그제야 시선을 베란다 밖으로 돌렸다. 티비는 꺼진지 오래고 집안은 고요할 뿐이다. 윤호는 한숨을 푹- 내 쉬어보았다. '어쩌겠어. 계속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리고 미야와 유천인- 그리 좋은 관계가 되질 못할 게 뻔해. 친구라 해도 별로 가지 못 하겠지. …그래, 그냥 의심치 말자.' 재촉했던 걸음을 늦추기로 한 윤호다. 그리고는 미야가 나가는 동시에 자신도 휘은을 데리고 나가기 위해 안방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그렇게 부부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하기 위해 각자 준비하기 시작했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0] 2월 22일. 토요일의 화창한 날씨. 결혼하기 딱 좋은 날, 왠지 오늘 결혼하는 사람은 아주 행복할 것만 같아, 라는 생각 이 마구마구 드는 그런 날씨. 이런 바람 좋고, 햇빛 좋은 날에 다름 아닌 이선우는 사랑하는 그녀와 식을 올 린다. 토요일 낮이라 그런지 뭔가 분주한 느낌. 하객들은 끊임없이 찾아 들어오고 벌써부터 뷔페에 들어가 는 사람들도 있을 뿐더러,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들과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결혼식장은 활기가 넘친다. 식장 입구에서 검은 예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신랑, 선우는 하얀 장갑을 낀 체 하객들과 끊임없이 인사하느라 바빠 보인다. 그의 뒤에는 그의 부모님 대신에 그를 너무나 아껴주는 큰 아버지 내외가 서 계시고 상대측에 는 신부의 부모님 역시 분주하게 하객을 맞고 있었다. "이런,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이제 하객들도 줄어들고 있으니 지금부터 대기실에 가서 쉬거라." "아니에요, 여기서 그냥 있다가 들어가죠." 선우의 말에 큰 아버지는 땀 때문에 메이크업이 다 지워졌다면서 다시 고치라고, 그래야 신부도 멋있어서 좋아한다면서 등을 떠미시길래 어쩔 수 없이 대기실까지 밀려난 선우다. 하지만 선우는 대기실 대신 식장 내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오히려 휴게실 쪽에 사람이 더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 싸여있 었던 지라 얼굴이 붉게 달아 올라 있었다. 선우는 땀 때문에 잘 벗겨지지 않는 흰 면장갑을 벗으며 자신의 볼을 감쌌다. 그러다가 자신의 예복 주머니를 뒤적 뒤적 거리더니 이내 뭔가 손에 집히자 미소를 지어보였 다. 그것을 주머니에 꺼내어 한개를 입에 무려는데, 누군가가 선우의 입술에 물려진 그것을 빼 갔다. "누구-" "정말 멋대가리 없는 신랑이군. 향수 냄새가 나도 시원찮을 텐데 담배 냄새라니…. 미친거냐?" "김… 신후!" 선우는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환히 웃으며 자신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신후에게 매달 리듯 푸욱 안겼다. 갑자기 선우가 안겨들자 꽤나 당황한 듯 하면서도 이내 그런 선우를 안는 그 남자는 다 름 아닌, 7년 전 그 싸가지 없고 맹랑하던 고등학생, 김신후였다. 7년 전만 해도 만만하던 키는 이제 자신 보다 훌쩍 커 버려 머리 하나 정도는 차이나고 체격도 단단한게 운동도 하는 것 같다. 거기다가 마스크도 멋진게 웬만한 여자는 다 넘어가버릴 듯 하다. "어이, 어이- 나랑 도망가고 싶냐? 어서 안 떨어져?" 가만히 선우를 안고 있던 신후는 이윽고 선우를 자신에게서 떼어 내어 흐트러진 옷차림을 똑바로 한다. 그 러자 너무해, 라는 표정을 짓던 선우는 이내 활짝 웃는다. 신후는 갑자기 윽, 하면서 두 눈을 가렸다. 선우 는 왜 그러냐는 듯 어디 아프냐고 자신의 얼굴을 가려버린 신후의 곁에서 멤돌았다. "씨발, 너 떨어져- 어서!" 신후가 욕까지 섞으며 버럭, 화를 내자 선우는 투덜대며 욕 잘하는 건 변함 없네, 라면서 조금 거리를 둔다. 그제야 신후는 살짝 굽혔던 허리를 바로 하면서 가볍게 주먹을 쥐어 입 가까이 하고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해 본다. 선우는 도대체 왜 그러냐는 듯한 얼굴을 했고, 신후는 그런 선우를 보더니 시선을 약간 높이 올리 며 조금은 버벅 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자, 잘 웃지도 않던게! 7년만에 실성했냐? 왜 그렇게 히죽 되는거냐!" "내가 웃는게 이상해?" "너 7년 전에 무지 싸가지 없고 화만 냈던거 기억 나지도 않냐?" "내가 언제 싸가지 없었냐- 니가 없었지. 그리고 나도 이제 28살이잖냐." 선우의 말에 신후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탄성했다. 자기 나이 먹는건 생각도 안 하고 선우는 언 제까지나 자신의 마음속에 21살의 그 철부지 대학생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던 것이다. 28살이라는 나이. 아 직도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은걸까. 이제 자신도 24살 청년인데- 이제야 그의 나 이를 바짝 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이 나이를 먹는 것 만큼 같이 먹고 있는 것이다. 그와 자신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김신후는 언제까지 어린 철부지로 인식될지 모른다. 그런 생각까 지 이르자 괜히 심통난 신후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늙은이." "뭐? 이 녀석이, 이제 좀 컸다고 제대로 먹은 인간 됐나 싶었는데-" "…이제야 너 따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넌 벌써 그만큼 나이를 처 먹은거냐. 그래, 너도- 너도 인간인데 어떻게 너만 나이를 안 먹겠냐…." "김신후, 너 왜 이렇게 진지해-" 선우는 속모를 웃음을 지으며 진지해져버린 신후를 툭 치며 말했고, 그때 갑자기 선우보다 훨씬 커진 신후 가 선우를 와락 안았다. 처음에 숨 막힌다며 놓으라고 하던 선우는 얼마 안 있어 신후의 등을 토닥여주었 다. 선우를 안고 있는 신후는 눈을 감고서 애 취급 하지 마라고 으르릉 거렸지만 선우는 그저 웃음만 지으 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토닥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넌 어른이야, 나 역시 어른이지. …어른은 어른의 세계를 걷는거야. 우리는 언제까지 어릴 수 없어. 그래서 나 역시 이 길을 걷는거야. …김신후, 아직 이 세상에는 니가 보지 못 한게 너무 많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못 보고 있는…" "헛소리 하지마, 개 새끼야!" 갑자기 신후가 거친 욕설을 내 뱉으며 선우를 확 놓아버렸고 뒤 돌아서며 선우에게 등을 보였다. 선우는 의미 모를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고 그때 사회자, 즉 선우 친구가 급히 휴게실로 뛰어 오며 말했다. "이선우! 신랑이 여기서 뭐 하는거야! 어서 와! 7분 뒤에 식 시작이야!" "알았어, 먼저 가서 분위기좀 띄워!" 친구는 어서 오라는 말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고, 선우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뒤 돌아선 신후의 등을 쳐다 보았다. 신후는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니가 우리형 좋아하는 거 알아." "…안 좋아하는데?" 태연한척, 미소까지 띄우며 안 좋아한다고 말하는 저 목소리. 신후는 듣기 싫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서는 소리쳤다. "씨발, 지랄하고 있네- 너는 안 좋아하는 사람이랑, 그것도 같은 사내새끼랑 키스하냐?" 흠칫, 하고 선우가 놀랐다. 웃던 얼굴이 굳었다. 7년 전, 창민이 아플 때 그러니까 자신이 떠날 거라고 결심 을 했을 때 그때 일인가보다. 그때 어떻게 봤던 것일까. 분명히 집에는 둘 밖에 없었는데- 어떻게 신후가 본 걸까. 선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고, 신후는 여전히 주먹을 꽉 쥔체로 말했다. "하- 나 참…. 땡땡이 치고 집에 왔다가 그런 꼴 볼줄 누가 알았겠냐." 선우는 그제야 쓴 웃음을 지으며 봤어? 하고 묻는다. 그러자 신후는 젠장, 하더니 아까 선우에게서 뺏은 담 배를 자신의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하얀 연기를 내뿜던 신후는 휙- 하고 뒤를 돌아보더니 선우를 쳐다본 다. 싱긋하고 웃던 선우의 얼굴은 없고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신후만 쳐다보고 있는 이선우만 남아있다. 신후는 "맛이 왜 이래-"라며 괜히 담배 탓을 하더니 옆에 있는 바닥에 담배꽁초를 떨어뜨려 불을 비벼 끈 뒤 옆에 있는 쓰레기 통에 집어 넣었다. 신후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스듬히 서서는 선우를 쳐다 보았다. "좋아하냐?" "아니." "새끼, 구라치기는." "이제는 좋아하지 않아. 단지 의지할 뿐이지." "우리 형이란 새끼는 이제 너 좋아하나 보던데?" "내 결혼식이야." 자신의 결혼식이라고 정확한 발음으로 강조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선우. 선우의 말에 신후의 표정은 선우와 마찬가지로 차차 무표정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선우는 다시 흰 면장감을 손에 끼고서는 뚜벅, 뚜 벅 구두 굽의 소릴 내며 신후에게 다가와서는…. "한 여자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날이지. …더이상 얘기 꺼내지마. 세월이 7년이야." 그 말을 남기고는 선우는 안면 근육을 움직여 씨익- 웃어보이고는 선우에게 등을 보이며 식장 쪽으로 향 했다. 그런 선우의 뒷 모습을 보며 신후는 주먹을 꽉 쥔다. "오늘 심창민 안 와!" 뚜벅, 뚜벅- "심창민 새끼 아프다고! 니 결혼식 따위 못 와! 못 온다고!" 선우의 구두굽 소리는 복도를 타고 울리고, 이내 창민이 못 온다는 소리에 그 걸음소리가 뚝, 하고 멈춰 버 렸다. 그리고는 약간 고개만 비튼 후 시선을 내리깔고 신후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네." 그리고는 다시 앞을 향해 걸어 갔다. 막 식이 시작할 참이였는지 선우가 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빨리 식장 안으로 데려갔고 혼자 휴게실에 남은 신후는 발로 애꿎은 쓰레기 통만 찰 뿐이다. 쿠당탕- 하는 소리와 함 께 쓰레기 통이 넘어졌고 신후는 분에 못 이겨 거친 숨소리를 내더니 선우가 향했던 복도로 유유히 걸어갔 다. 그의 표정은 분노와 슬픔으로 차서 미묘한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제 너보다 훨- 예쁜 아가씨 만나서 결혼해서 강아지같은 내 새끼들이랑 놀거다. 씨발, 넌 이제 내 속에서 왕따야, 이 선우. 그래도… 오늘까지만 왕따 안 시켜 줄게. 오늘까지만… 너 사랑하고 말거니까.' 신후의 눈동자는 씁쓸함이 가득 차 있고 그의 씁쓸한 눈동자는 힘차게 입장하는 선우의 뒷 모습에 향해 있을 뿐이다. ────────────────────────────────────────────────── 100편이 완디, 뭐- 정확히 말해서는 선우씨와 신후씨의 편이 될지는 저 역시 몰랐습니다(笑) 제가 100편에 민셩을 쓰지 않았다고 미워하신다면- 저 슬퍼요ㅠ 뭐, 한동안은 이유 없이 바빴지만 이번 주말은 꽤 넉넉히 시간이 남을 것 같습니다만- 앞으로 두주간은 바쁠 것 같네요. 왜냐하면! 시험기간이죠, 크흑; 에, 우선은-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면서 모든 장편 소설, 단편소설, 연재 소설과 동시에 포토샵 브러쉬, 폰트, 수많던 사진들, 그리고 음악 태그와 표지 태그 모아둔 것을 다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카페에서 받은 것 밖에 표지가 남지 않았네요, 죄송하게 생각 해요; 그래도 이해해주세요ㅠ 저도 백업 시키지 않았던걸 무지 후회하고 있어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쿨럭;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1] 식이 무사히 마치고, 하객들은 친지들과 인사를 나누며 아래층에 마련된 뷔페로 향한다. 신랑 신부도 대기 실에 가서 옷을 간단한 정장으로 갈아입은 후 뷔페로 가 친지분들께 인사를 올린다. 자신의 부모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신후는 그런 선우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애꿎은 음식만 포크로 꾹꾹 눌러댈 뿐이 다. 뭐가 저렇게 좋아서 웃고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신후를 괴롭혔지만 욕설 하나로 그런 생각을 억누르는 그였다. 한참 그렇게 음식을 먹지도 않고 헤집기만 하며 있던 신후는 다시 선우에게 눈길을 가져 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선우는 없고 선우의 그녀만이 남아 하객들과 혼자 인사하고 있었다. "어디로 간 거야?" ≠ 3분 전. 한참 그녀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그가 오지 않을거라고 외치던 신후. 잠시 마음이 흔들 렸지만 다행히 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는 사실. 그를 만나서 결혼식에 오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했던가. 그렇게 용기내어 말했는데 그가 오지 않다니,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얼마나 입구쪽을 바라봤는지 모른다. 혹시나 와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리고…. "의, 의우진아- 잠깐만!" "이선우, 어디 가?" "의우진아, 잠시만 실례할게." 선우는 그대로 자신의 아내 된 사람을 놨두고 무작정 입구쪽으로 향했다. 입구쪽으로 나와서 한참이나 두 리번 거리던 그는 이내 떨리는 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향한다. 자신이 잘 못 본게 아니라면, 그런게 아니 라면 분명히 그가 와 있다. 어디 있을까, 분명 스쳐서 봤는데…, 분명이 그였는데-! "하아…, 하아…." 정말…, 잘 못 본 게 아니었는 듯 하다. 그다. 그가 와 있다. 거친 숨을 내 뱉으며 아까 전 까지 신후와 있던 그 휴게실에 앉아 있다. 푸석푸석한 모습. 아픈데…, 저렇게 아픈데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선우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그의 앞에섰다. 그는 자신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고개를 들었다. "하아…, 선우… 야." "……바보같긴." 선우의 말에 그는 힘 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창민이었다. 심창민이 진짜 이선우의 결혼식에 온 것이었다. 저렇게 아픈 모습을 해 가지고 말이다. 이렇게 조금 거리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거친 숨결에 뜨거운 열기운 까지 다 느껴진다. 바보같이… 그런 몸을 해서 여기까지 오다니. 그의 옷은 벌써 땀으로 다 젖었는데 오늘 날씨는 좋지만 찬 바람이 꽤 부는데…. 그렇게 지독한 감기가 걸려서 여기까지 오다니. "그 몸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하아- 약속… 했잖아…, 하아- 너 결혼식… 참석하기로…." 창민은 눈뜨고 있는 것 조차 힘겨운지 몸을 뒤로 해 벽에 기댄 후 눈을 감았다. 선우는 그의 옆에 앉아서는 그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땀이 흠뻑 묻어나오는 이마. 재 빨리 손수건을 꺼내어 화장실로 가 물에 적신후 다시 휴게실로 와서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아…, 식을… 보지 못 했네…." "안 봐도 돼…, 그러니까…." 괜히 눈물이 고이려 한다. 오늘…, 오늘 그를 오라한 이유는 자신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때까지 자신의 괴로운 모습만 봐 온 그에게, 이제는 행복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런 의미로 오라고 했는데 이렇게 아픈 모습으로 오니까 도리어 또 안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말게 된다. "오늘은… 울면 안 되지 않아…? 하아…, 오늘… 너 웃는 모습 보려고 왔는데…." "안 울어, 이 바보같은… 이 바보같은 심창민…." 눈가를 벅벅 닦으며 말하는 선우. 그런 선우를 보며 피식 웃던 창민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선우 는 비틀거리는 그를 부축해 준다. 그런 선우를 보더니 창민은 씨익 웃어 보인다. 그 씨익 웃는 웃음 조차도 나 지금 너무 힘겹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은 선우. 창민은 부모님이 나오시기 전에 가야된다 고 미안하지만 택시 타는 곳 까지 좀 데려다 달라고 말했고 선우는 벌써 가는 그가 아쉬웠지만 혼쾌히 승 락했다. 그는 미안하단 말과 함께 선우의 부축을 받아 식장 앞에 나열되어있는 택시 중 하나에 올랐고, 선 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결혼 축하해…, 이제는… 정말 행복해야 한다." "…걱정말고 몸이나 추스려." "간다." 창민이 창문을 닫자 택시 기사는 알아서 출발했고, 선우는 쓸쓸한 걸음으로 뒤 돌아 식장으로 향했다. ≠ "친구분이 결혼 했나봐요?" 기사 아저씨가 넌지시 묻자 창민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그의 손수건을 한번 움켜쥐면서 열에 들뜬 웃음을 지어 보이며 착- 가라 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 했어요." "아이쿠, 어쩌나- 아까 저 분이 신랑 분이신 것 같던데…." 기사는 안타까운 얼굴로 창민을 쳐다보았다. 아마 창민이 사랑하는 사람이 방금 봤던 선우의 신부 일 거라 생각하고, 선우와 자신은 친구의 관계로써 선우의 신부를 가운데 둔 삼각 관계 일거라 생각했나 보다. 동 완은 조금 곤란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씨가 좋네…. 나도 이런 날 결혼해야 되겠다…. 모두의 축하를 받을 수 있게 말야. 이제 정말 안심해도 되겠다, 선우야…. 이제 나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 열로 인해 힘겹던 얼굴이 편하게 풀렸고 창민은 차 시트에 등을 깊숙이 묻으며 눈을 감았다. 햇빛 좋고, 바람 좋은 날…, 그 날은 심창민이 이선우한테… 이선우가 심창민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에서 풀려 나는 날이었다. ────────────────────────────────────────────────── 노래가 편해요- 토이의 노래인데, 가사는 슬프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멜로디에요(笑) 완디 완결입니다(笑) 죄송합니다, 완디는- 이렇게 끝입니다. 그들은 헤어지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좋은 '사랑'의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笑) 이제 다시 민셩이 나오겠구요, 릭우진은 저번에 비췄던게 조기 완결이었습니다(笑) 이제 끝날 쯔음에 모든 커플이 등장할 수 있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그럼 이상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2] 한 아파트 건물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 와 어느 집 앞에 선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랬듯 쉼호 흡을 한번 한 뒤 벨을 누른다. 이내 딩동, 이라는 고전적인 벨 소리가 집 안에 울리는 것이 느껴지고 그녀 는 품안에 안은 아기를 고쳐 안는다. 그녀의 품에는 잠든 아기가 있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여러가지 음식 재료들이 가득한 마트 봉지를 손에 쥐고 있고, 그녀의 왼쪽손에는 희고 작은 손이 쥐어져 있다. "엄마, 우리 놀러 나가는 거 아니었어?" 어린 아들은 아마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도시락을 싸서 저 멀리 놀러 가는 건지 알았나 보다. 그런 아들의 말에 그녀는 어머니들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음에 우리 가족 다 같이 놀러가자, 라는 말로 아 들을 달래어본다. 응, 이라고 말은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섭섭함이 한 가득했다. 벨 누른지가 한참 됐는 데 안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다. 그녀는 외출했는가, 하며 다시 벨을 눌렀다. 그때서야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없는가 했어요." "아, 손을 베어 버리는 바람에…." 그의 말에 그녀의 시선이 그의 손으로 향한다. 그는 검지 손가락이 베였는지 그의 검지 손가락에서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어서 치료하자며 급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 덕분에 낯선 그의 등장에 놀라서 굳어있던 그녀의 어린 아들도 그녀를 따라 얼떨결에 집 안으로 들어선다. "뭘 이렇게 사 오셨어요." "아, 오늘은… 식사라도 같이 할까 해서요." 그녀의 손에 쥐어진 봉지를 본 그는 미안함이 가득 베어 있는 얼굴로 말했고,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는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며 반가운 듯 휘연이도 왔네요, 라며 좀처럼 잘 볼 수 없었던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모습에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오늘은 큰 아이도 데려왔다고 하면서 자신의 뒤에 숨어있던 어린 아들의 팔을 잡아 당겨 그의 앞에 세운다. "휘은아, 뭐해? 어서 인사 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겨우 6살. 아직도 엄마가 아닌 다른 어른은 상대하기 껄끄러운 나이.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시 제 엄마의 뒤 로 숨은체 빼꼼히 고개만 내미는 그 어린 모습에 그는 굳어버린 얼굴을 펴 보이며 아이의 키에 맞춰 몸을 굽혀 앉았다. 그리고는 다친 손의 반대쪽 손을 내밀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니가 휘은이구나." 마치 자신을 아는 듯이 말하는 그의 모습에 아이는 슬그머니 제 엄마의 뒤에서 나온다. 그는 아직도 낯설 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아이의 모습에 긴장하지 말라는 듯 그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준다. 그의 앞 에 겨우 모습을 비춘 아이는 그의 미소에 마음이 놓이는 듯 굳은 얼굴을 조금씩 풀어본다. 그런 그들을 서서 지켜보고 있던 그녀. 그녀의 얼굴에는 평소 짓고 있던 그 잔잔한 미소조차 없다. 딱딱히 굳어버린 얼굴만 있을 뿐. 자신의 어린 아들과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의 손가락에 흐르 는 물과 섞인 피에 그제야 깜짝 놀라며 그를 일으킨다. "어서 치료부터 해야겠어요. 피가 계속 나고 있어요." "아…, 그렇네요." 자신의 어린 딸을 소파에 눕혀놓고 미야는 구급 상자가 어딨냐고 물은 뒤 그것을 꺼내어 와 수건으로 그의 손에 묻은 물기와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붙여줌으로써 마무리를 했다. 그녀는 오늘 자기가 저녁을 하겠다며 그에게 말했고 그는 자신이 해도 괜찮다고 일어서지만 그녀는 궂이 자기가 하겠다며 마트 가서 봐 온 재료를 들고 부엌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아이들 좀 봐달라고 부탁한 뒤 부엌으로 쏙 들어 가 버 린다. 그는 미안한 얼굴로 부엌쪽을 바라보다가 멀뚱히 서 있는 꼬마 아이, 휘은을 바라보았다. "서 있지 말고 앉아." 하지만 엄마가 없는 탓에 혼자 머쓱했는지 제 동생이 누워있는 옆 자리에 살포시 앉는다. 그는 그런 아이를 보다가 집에 있는 쥬스가 생각 나 냉장고 앞으로 가 쥬스를 꺼내 와 아이에게 따뤄 주었다. "자, 마셔." "고맙습니다-" 음료수를 받아들고 꾸벅 인사하는 모습에 예의바르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싱긋 웃어보였다. 그의 미소에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린 아이는 제 손에 너무 큰 컵을 양손으로 꽉 쥐고 쥬스를 훌쩍 거린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또 한번 미소짓는 그. 전체적으로는 그녀를 닮은 듯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그녀의 남편쪽을 꽤나 닮아있는 휘은이다. "유천씨- 뭐 먹고 싶어요?" "아무거나 잘 먹어요." 잠시 부엌에서 고개를 내민 그녀가 뭐 먹고 싶냐고 묻자 그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대꾸한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싱긋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는 그녀와의 짧은 대화가 어색했는지 연 신 머리를 글쩍인다. 그리고는 다시 휘은에게 눈을 돌리는데 어느새 쥬스 한잔을 다 마신 후였다. 그는 다 시 미소를 머금은 체 또 줄까, 라고 묻지만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어색한 공기의 흐름을 아이도 눈치챘는 지 연신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제 어미쪽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아이를 조금은 슬픈 눈동자로 바라보는 그. 아이를 바라보자 몇년 전의 기억이 떠 오른다. 사고를 쳤 다며, 그녀에게 아이가 생겨버렸다며 자신에게 청첩장을 내밀던 그 모습…. 그 날 너무 많이 울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괜시리 씁쓸해지는 이 기분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그녀의 아이도 되고…, 그녀의 남편의 아이도 되는… 이 아이. 자신은 가질 수 없었던… 사랑하는 그 사람의 아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에 그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해본다. 그때 그의 소리에 놀랐는지 제 엄마를 닮아 동그란 눈을 뜨며 그를 바라보는 휘은. 그는 슬픈 눈동자로 아이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떨어 지지 않는 입술을 몇번이나 떼었다가 붙였다가 하더니 한참 후에야 목소리를 낸다. "휘은이… 안아봐도 될까…?" 휘은은 그의 말에 한참이나 고민하는 듯 하더니 아직까지 자신의 양손에 쥐어진 빈컵을 조심히 테이블 위 에 놓고 그에게 머뭇, 머뭇 다가선다. 이내 가까이 다가온 휘은. 그는…, 유천은 아이의 작은 어깨를 조심히 잡아본다. 휘은은 놀라지 않고 눈시울이 붉어진 유천을 멀뚱히 바라보더니 이내 눈에 고이는 눈물을 보고 서는 그 작은 손을 뻗어 그의 눈가를 닦아주며…. "…울지 마세요." 「울지마….」 자신의 눈가를 닦아주며 울지 말라는 그 작은 아이. 그 모습을 보니 예전에 자신이 울때 울지 말라며 눈가 를 닦아내어 주는 그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유천은 그대로 휘은을 안았다. 놀란 듯 한 휘은이지만 이내 자신을 안고 있는 유천의 떨리는 어깨를 보며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유천의 등을 토닥, 토닥 거린다. "아저씨, 울지 마세요…." 어디서 이런 걸 배웠을까, 할 정도의 어린아이치고 성숙한 손짓. 또 겹친다. 그의 모습과…. 울고 있는 자 신을 껴안고 등을 토닥여주던 그 다정한 손길.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유천은 아이의 작은 등을 꽉 끌 어 안고 중얼거리 듯 말했다. "…니가 윤호 아이구나…. …윤호 아이가 맞구나…." 유천은 그렇게 한참이나 휘은을 놓을 수 없었다. 그를 닮아있는 이 어린 아이를…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내 아버지는 정윤호요, 라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 아이를… 어떻게 봐라 봐야하는 걸까. …그의 아 일 볼 수 있는 이 순간을… 어떻게 감사해야할까. '내가 갖지 못했던 그의 아이…, 그의 보석….' 유천은 아이를 떼어놓고 눈가를 슥슥 닦아냈다. 어린 아이 앞에서 다 큰 어른이 눈물이라니. 괜히 자신의 한심스러운 모습에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는 아이의 작은 손을, 한손으로는 아이의 작은 머리 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빠를… 많이 닮았구나. …휘은이는… 아빠를 참 많이 닮았어." 그의 쓸쓸한 읊조림. 그 어린 아이는 무엇을 아는지… 한참이나 알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바라 볼 뿐이었다. ≠ 자신과 남편의 아이를 안고 울던 그 모습…, 자신의 남편을 이름을 입에 담는 그 모습…, 자신의 남편을 많 이 닮았다고 말해주던 그 모습…. 한참을 분주히 움직이던 그녀는 그 모든 것들을 그의 눈에 띄지 않는 위 치에서 다 보고 있었다. 그 어떠한 미소도, 웃음도 걸려있지 않았다. 유천을 바라보는 알 수 없는 눈동자. 그녀의 얼굴에는 그 어떠 한 것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4월 17일 부터 중간고사 이기때문에 20일날 찾아 뵙겠습니다. 다른 학교보다 일찍 치는 실정이기에 제가 조금 더 일찍 잠수타고 조금 더 일찍 나타난다는 걸로 생각해주세요^^ 언제나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부족한 글 내용을 보여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현재 장편 소설 하나 준비 중이니까 나중에 뵐 수 있을 듯 합니다^^ 홈페이지도 한창 오픈 작업하고 있으니까 이사갈 준비해주세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3] 그렇게 미야가 휘은을 유천의 집에 데려간 후 휘은은 토요일마다 유천의 집에 가자고 난리법썩이다. 뭐가 그리 맘에 들었는지 요즘은 첫만남처럼 더듬거리며 안녕하세요, 하지도 않고 아주 활기차게 집에 있을 때 처럼 가서 장난도 치고 막 그러는 휘은이다. 집에 오는 길에 아저씨가 좋아, 라고 미야가 물으면 휘은은 얼 굴에 함박 웃음을 짓고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 이라고 힘차게 대답한다. 그럼 그때마다 미야는 알 수 없는 웃는 것도 아닌,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하고서 자신의 어린 아들을 바라보 곤 했다. ≠ 여기는 병원. 의사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정신없이 돌아 다니고 간호사들은 그에 맞추어 차트를 들고 이리 저리 분주히 움직인다. 환자들은 하나같이 링거를 달거나 휠체어, 목발등을 집고서 돌아다니고 병원 로비 에는 보호자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언제나 분주한 병원이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의사, 환자, 보호자 구별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다 내린 다. 그 중에는 사람들의 열기로 땀을 흘리는 미야도 섞여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튕기듯 나온 미야는 병원 을 빠져나와 병원 내에 있는 공원 벤취에 앉는다. 그녀는 알수 없는 눈동자로 멍하나 한 곳에 시선을 고정 시킨 체 있다. 요즘들어 이런 얼굴을 자주하는 그녀는 근심이 꽤나 가득해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있는 쪽에 살며시 자신의 손을 갖다 댄다. 파닥, 파닥 뛰는 심장. 살아 있다는 증거. 그리고는 또 힘없이 손 을 내린다. 그때 미야의 앞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고개를 들은 그녀의 앞에는 그녀의 남편이 하얀 가운을 입은 체 서 있다. "여… 보…?" "당신 어쩐 일이야?" 서로 놀란 듯 하지만 미야는 이내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당신 얼굴이라도 볼까 해서 왔어요, 라고 말한 뒤 그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뒷쪽을 바라보았지만 말이다. 그는 그녀의 옆에 털썩 앉으며 전화라도 하지 그랬냐고 말하지만 미야는 일 하는데 방해하면 안 된다고 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다. "…많이 바빠요…?" "뭐…, 항상 그랬듯이…. 3년만 더 고생하면 되니까 그때까지만 참아줘." 미안한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아니라는 듯 싱긋 웃어보인다. 소아과 레지던트로 입문한 윤호. 레 지던트 기간은 4년. 3년 후면 소아과 전문의 자격등을 취득해 개인 병원을 차릴 수도 있다. 다른 이들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녀는 오늘따라 자신의 남편을 쳐다보지 못하고 핸드백의 끈만 만지 작 거릴 뿐이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윤호는 의문을 가졌는지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봄이잖아요. 봄 타나봐요." 혹시 그에게 걱정이라도 끼칠까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는 눈빛에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났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휘은이와 휘연이는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휘은이는 유치원 갔고 휘연이는 어머님께 맡겼어요." "우리 어머니?" "예. 어머니께서 당신 고생한다고 걱정이 많으세요. 너무 바쁘더라도 한번씩은 본가에 들리세요. 이제 어머님도 나이가 있으신데 그런 걱정 하시면 건강에도 안 좋으시잖아요. 아버님도 내색은 안 하시지만 당신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래." 윤호네 집안에서는 그녀를 참 좋아한다. 그녀는 남자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여자고 아이도 아들, 딸 이렇게 둘을 낳았다. 못마땅했던 유천과는 달리 아주 맘에 들겠지. 거기다가 그녀 는 성격도 좋고 집안일도 척척 잘 해서 어른들에게 예쁨 받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을 비롯해 친척 어른들께서도 참으로 좋아하는 그녀다. 윤호는 본가에 자주 가지 않는다. 물론 의사 일이 바빠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항상 이 런 말씀을 하신다. 「진장에 미야같은 여자와 결혼했음 좋았었잖니. 왜 그런 좋지 않은 과거를 만들고 그러니? 그래도 새 아기가 네 곁에 있어서 마음이 편하구나.」 그럴때 마다 윤호는 속으로 '좋지 않은 과거가 뭡니까.'하고 대꾸한다. 겉으로는 할 수 없는 그 대꾸를 속 으로 눌러 담으며 말한다. 남자와 결혼했던게, 남자와 사랑했던게 좋지 않은 과거였던가. 자신에게 있어 아름다운 그 과거를… 사람들은 좋지 않은 또는 더러운 과거라고 칭하는가. 감히 그렇게 칭하는가. 왜 사 람들은 당사자의 마음을 생각도 하지도 않은체 자기 이기주의대로 생각하는걸까.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상이라도 뒤엎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며 참는 윤호였다. 아무리 자제 한다고 해도 계속 들으면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정말 큰 일을 치룰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윤호는 더더욱 본가를 찾지 않는 것이다. 그와의 아름다운 과거가 좋지 않은 과거로 치부되는 것 이 진심으로 싫기 때문에…. 한참을 말이 없던 부부.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려 무슨 말이든 꺼내보려 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 도통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윤호다. 그때 갑자기 자신의 아내가 벌떡 일어선다. 자연스럽게 윤호의 시선이 그 녀를 따라 올라가고 그녀는 그를 보며 말했다. "당신 바쁘지 않아요? 어서 들어 가 봐요. 나도 휘연이 데리러 가야할 것 같아요." "아, 그래…." 그제야 윤호도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녀는 그녀만의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당신이 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씩 구해 가는게 좋아요…." "뭐…, 겨우 소아과 레지던트인걸." "겨우라뇨. 전 정윤호씨 아내로써 아주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데요?" 미야의 말에 그제야 윤호도 피식, 웃어보인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본 미야는 만족한다는 듯 씨익 웃어보이더 니 이만 간다며 손을 흔들고 그렇게 모습을 감추었다. 그제서야 윤호도 꽤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병원 안으 로 들어갔다. ≠ 무슨 생각인지 미야는 버스 탈 정류장을 코앞에 두고 바로 지나쳐버렸다. 구두를 신은 발이 조금씩 아파 올 만도 한데 그녀는 무슨 생각인 터덜, 터덜 걷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크고 맑은 눈동자에서 눈물 한방울이 새어나왔다. 벗꽃이 활짝 핀 길거리. 그녀는 벽을 집 고 심장을 움켜쥐고 주저 앉았다. "으윽- 흐으윽-!"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미야는 입술을 꽉 깨물어본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 나오 고 그녀는 저릿한 심장 부위의 옷자락을 더욱 움켜 쥘 뿐이었다. 심장이 아프다…, 심장이 아프다…, 심장이 아프다…. 파닥파닥 뛰는 심장이 곧장이라도 멈출 것만 같다…. 곧장이라도 멈출 것만 같다…, 곧장이라도 멈출 것만 같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흐윽- 으흐흑-" 그 날 그 길가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야를 흘끔 거리며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가서 손 을 내밀지는 못 했다. 우는 그녀를 달래어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 달래어 주고 싶지 않았다기 보다는… 속 시원이 울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럴때는 위로하지 않고 울게 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 사 람들은 지나갈때 마다 안타까운 눈길로 그녀를 볼 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심장을 움켜쥐고 한참이나 길거리에 주저 앉아 울었다. ────────────────────────────────────────────────── 앞으로는 박유천씨, 정윤호씨, 권미야씨 이 세사람 관점으로 소설이 돌아 갈 것이며 릭우진은 예전에- 그것이 조기 완결이란 것을 알려드립니다. 앞으로는 위 세사람 위주로 소설이 진행될 것이니 다른 커플을 출현시켜 달라는 말씀은 부디 삼가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4] 달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이내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고 거실에는 그녀 의 남편이 어린 딸을 안고 서 있었다. 그녀는 짐짓 당황한 눈초리였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태 연하게 남편에게 다가갔다. "웬 일로 일찍 들어온 거에요?" "피곤해서 내가 내 몸을 못 견디겠더군." "그럼 애, 이리 줘요." 남편의 말에 그녀는 남편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는 어린 딸을 받아 들려 하지만 남편은 됐다며 뒤척 이는 어린 딸의 등을 토닥이며 다시 곤히 재운다. 그녀는 겉옷을 벗으며 가방과 겉옷을 그대로 소파에 놨 두고 쓰러지듯 소파에 앉아 기대었다. 피곤함이 물 밀듯 밀려와 눈을 감고 있다가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던 그녀는 어둠속에서 딸을 안고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휘연이는 앞집에 맡기고- 어떻게 된 거야?" "엄마랑 가볼 곳이 있었어요." "휘은이는?" "유…. 친정에 맡겼어요. 오늘 아버지가 집에서 쉬는 날이었거든요. 엄마랑 어디 간다고 하니까 휘은이는 그냥 두고 가시라고 하셔서…. 그래서 내일 데리러 가려구요." 뭔가를 말하려 하던 그녀는 갑자기 입을 꾹 다물더니 '친정'이란 말을 꺼내어 화제를 이어갔다. 불꺼진 어 둠속에서 눈동자만 움직이며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뒤 돌아 서서 방으로 향하며 말 했다. "아무리 친정이라 해도 그렇게 아이를 막 맡기지 마." "…알았어요." "어서 씻고 자. 그리고 내일 휘은이는 내가 데리러 갈게." "당신이요?" 그의 말에 깜짝 놀란 그녀가 피곤한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정색을 하며 묻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꽤나 이상했던지 방에 들어가던 그는 뒤를 돌아 벌떡 일어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너무 과민 반응을 보였던 것 같아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니…, 당신 내일 병원 가야 하잖아요." "내일 일요일이라서 오후쯤에 나가면 돼." "그냥 내가 데려 올게요. 내일은 이모도 오신다 해서 이모 얼굴도 볼겸…." "그럼 같이 가지 그래?" 그의 말에 그녀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그가 이런 말을 꺼낼 줄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했던 것이었다. 계산착오인가. 그녀는 괜시리 씁쓸하게 웃어보았다. 그리고는 아까의 그 굳은 얼굴과 당황한 나머지 조금 씩 떨리는 목소리를 언제 냈었냐는 듯 그를 보며 말한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상대를 일찌감치 만날 필요는 없어요, 여보." "…무슨 소리야?" "이제는 질릴만큼 보게 될 테니까 서두를 필요 없다는 거에요. …내일 휘은이는 내가 데리러 가요. 그러니까 당신은 부족한 잠 좀 자 두세요. 병원 나가야 하잖아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방으로 쓱 들어 가 버린다. 여전히 어린 딸을 자신 의 품에 안고 있는 윤호는 자신의 아내에 말에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곧… 만나게 될 사람?" 한참을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윤호는 이내 머리가 복잡해지는 듯 잠든 딸을 부드러운 손길로 토닥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아저씨, 오늘 엄마 안 와요?" 겨우 1인용 침대지만 작은 아이기에 별 무리 없어 혼자 잘때처럼 편안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까지 띄어지며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 주더니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한다. 커다란 곰돌이 캐릭터가 새겨 져 있는 파란 잠옷을 입은 어린 아이는 휘은이다. 미야가 친정에 맡겼다던 휘은이 말이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아침 일찍 자신을 찾은 미야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오른쪽 손에는 잠에서 덜 깬 체 자신의 눈을 비벼대고 있는 휘은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휘은이 좀 내일까지 봐 줄 수 있어요?" 라고 말한 미야는 그대로 휘은을 떠맡기듯 유천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가 버렸다. 유천을 알아보고 그에게 안기며 잠온다고 투정부리는 휘은을 품에 안고서 베란다로 나가봤더니 그녀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닌지 꽤 연세가 있어 보이시는 어떤 아주머니와 함께 차에 올랐다. 그리고는 바로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무슨 이유로 다음 날까지 봐 달라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 휘은이와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은 유천은 하루종일 휘은을 위해 시간을 소비했던 것이었다. 꽤 늦은 시각인데도 자 신의 품 안에서 꿈틀거리며 자지 않는 휘은일 보며 물었다. "잠 안 와?" "더 놀면 안 돼요?" "벌써 9시 잖아, 어서 자야지." "칫- 다른 애들은 11시에도 자고 그러는데…." 같은 반 애들은 밤 늦게 자는데 자신은 매일 9시에 자야 한다고 투덜거리던 휘은은 한참이나 몸을 뒤척이더 니 이내 유천의 품에 묻혀 고운 숨을 내쉬며 잠들었고 유천은 그제야 아이에게 베게 해 주었던 자신의 팔을 빼내며 다른 손으로 꾹꾹 주물렀다. 아마 쥐가 났던 듯. 유천은 아이에게 이불을 똑바로 덮어준 후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의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일을 못 했기 때문에 이렇게 밤에라도 해야했기 때문 이다. 탁, 탁- 이번 영국 수출 제의건을 한참이나 정신없이 작성하다가 마침내 끝을 본 유천은 기지개를 쭈욱 펴더니 의 자를 돌려 곤히 잠들어 있는 휘은을 바라보았다. 아까 분명히 똑바로 덮어줬던 이불이 몸부림으로 인해 침 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유천은 피식, 웃으며 아이에게 다시 이불을 반듯이 덮어주었다. 피부 하얀 것은 엄마, 아빠 다 닮았으니 그 누구도 닮았다고는 말 할 수 없고- 둥그스름 하면서도 큰 눈은 분명히 미야를 닮았고- 웃을 때 큰 눈임에도 불구하고 작게 휘어지는 귀여운 미소는 윤호를 닮았고- 나머지 코, 입술 등도 자세히 뜯어보면 미야, 윤호를 골고루 닮아있다. "하아-" 어쩔 수 없는 그의 아이. 아니,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아이. 괜히 씁쓸 해 지는 이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아 이는 윤호와 미야의 아이지 윤호 혼자만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 아이를 어느새 윤호 로 형성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바보같은 모습에 유천은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유천은 아 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 낮의 대화를 떠 올렸다. 「아저씨는 아저씨 아빠 좋아해요?」 「우리 아버지 말이니?」 젖살이 채 안 빠진 얼굴로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은체 심각하게 묻는 휘은. 유천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 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존재인 아버지였던 것이다. 유천의 대답에, 유천이 쥐어준 주스 잔을 들고 한참이나 만지작 거리던 휘은은 유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맨날 일만해요- 다른 애들은 일요일날 아빠랑 엄마랑 놀이동산도 가고 소풍도 가고 그러는데, 우리 아빠는 일요일에는 잠만 자요! 또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병원 냄새가 나구요-」 휘은의 앙증맞은 입술에서는 아빠에 대한 불만이 한 없이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는 유천은 어린 휘은의 불평에 작게 미소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의사 기초 단계이니까 집에 들어 올 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닌게 분명했고 일요일에는 잠을 보충하기 바쁘니 애들을 데리고 놀러 갈 기력도 없을 것이다. 병원냄 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거기가 직장이니 병원 냄새를 안 베길래야 안 베길수가 없는 것이다. 휘은의 어린 투정이 생각난 유천은 작은 미소를 띄우며 아이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네 아버지는 항상 널 생각하고 있단다. 이렇게 귀여운 아들과 딸…,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 를 위해서 열심히 병원에 뛰어 다니겠지. …난 가끔 니가 너무 부럽단다. 그의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게 말야. …또 어쩔 때는 네 어머니가 너무 부럽단다. 그의 아내 로써 내가 그에게 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해 줄수 있고…, 언제나 그의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 말야….' 유천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자고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아저씨는 말야. 네 아버지의 10년밖에 알지 못 했단다. 17살 때부터 26살의 생활 까지 밖에 알 수 없는데- 네 어머니는 그의 남은 인생을 다 알 수 있잖아…. 나는 그게 제일 부러워. …사랑하는 사람의 생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 생각하거든. 아쉽게도… 나는- 그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건가봐." 잠든 그의 아이를 두고 한 유천의 고백. 아직도 그를 사랑하는 어쩔 수 없는 바보같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 의 인생을 함께 할수 있고, 알 수 있다는 것은 축복. 그 축복을 받지 못한 이의 슬픔을… 그 누가 알까. 유천은 아직도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휘은을 조심히 안아보았다. 그의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아 좋다. "나는 항상 속으로 되풀이 했어. 니가 태어난 것은 그의 인생의 불행이라고…, 축복이 아닌 불행이라고 말야….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넌 그의 인생의 축복이야…. 그리고…" '내 인생의 축복이란다….' 그 날 밤 유천은 한참이나 휘은을 안고 있다가 결국은 그렇게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작은 아이가 불행 이 아닌 축복이란 것을 알게 된 그 날 밤은…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것 같다. ────────────────────────────────────────────────── 권태기 막을 연 날, 2003년 5월 12일. 권태기 막을 내릴 날, 2004년 5월 12일. 막을 내릴 날은 어디까지나 예상이지만 그때쯤 내리게 될 것 같아요^^ 딱 1년 되는 날 끝내보고 싶거든요. 시험이 화요일날 끝나는데요- 그 밖에 수행평가, 숙제등 할 게 많네요^^; 그래도 권태기 완결만은 꼭 내고 말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5] 커다란 회의실에 오른쪽의 형광등만 환하게 켜지고 그 불빛 밑에는 하얀 A4용지를 두고 열심히 펜을 돌리 고 있는 윤호가 보였다. 종이의 1/3도 못 채운체 그는 한숨까지 푹푹 내 쉬며 한쪽 손에는 펜을, 한쪽 손에 는 하얀 연기를 내 뿜으며 타고 있는 담배를 들고 있었다. 도무지 무슨 말을 적어야 할 지, 머리가 꽉 막히 는 느낌에 윤호는 펜을 내동댕이 치며 담배를 입에 물고 깊이 빨아들였다. 흡연실은 따로 있지만 이렇게 기 분 더러운 순간에 흡연실, 비흡연실 따져가며 담배를 피울 겨를이 없었다. 달칵. 갑자기 달칵, 하는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덕분에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윤호는 허겁지겁 담배를 껐지만 문을 꼭꼭 닫아놨둰 넓은 회의실에는 희뿌연 담배연기와 담배향이 남아 돌았다. 꽤나 당황하 그는 발로 비벼끈 담배를 슬그머니 신발로 감추었고 문을 열고 들어온 이를 확인했다. "아, 김 선생님." "여기서 담배 핀 건가?" "죄송합니다, 속상해서…." "아무리 속상해도 여기는 병원이니까 흡연 장소를 꼼꼼히 따져야겠지?" 소아과 전문의이자 자기보다 다섯살 정도 많은 김 선생의 깐깐한 말투에 윤호는 연신 죄송하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욕을 한 바가지로 날리고 있는 중이다. 안 그래도 아까 최 선생에게 혼나서 이렇게 시말서 까지 쓰고 있는데 거기다가 김선생까지 와서 잔소리라니. 정말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의사고, 환자고 때려 치 우고 뛰쳐나가 포장마차에 앉아 술이라도 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그의 입장 이었고 선배의 잔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잠시 앉아도 되겠지?" "그러십시오." 윤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윤호의 끄덕임에 김 선생은 곧바로 그의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남자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할 얘기란 크게 없다. 일, 또는 아내 흉보기 등인데 그들에게는 아내 흉보기 등은 필요 없을 듯 하다. 김 선생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윤호를 바라보았고 그 눈빛에 적응이 안 되는 윤호는 연신 머리를 글쩍이며 한쪽 손으로는 여전히 펜을 돌리고 있었다. "아까는 자네로 인해 괜한 생명이 죽을 뻔 했어." "죄송합니다. 잠시 패닉 상태로 빠지는 바람에." "의사가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기 위해 의사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네의 행동은 죽어가는 사람을 더 빨리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였어." 윤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의미를 표했다. 그렇다. 불과 몇시간 전, 응급실에 응급 환자가 왔고 고열과 설사로 시달린다는 그 아이는 소아마비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인턴은 간단한 응급치료를 했고 윤호, 자신은 전문의가 오기 전까지 아이의 병세를 좀 더 약화 시키기 위해 약물을 투입 시켰는데 그것이 잘 못 된게, 마침 간호사들이 부족해 직접 링거 약을 가져 왔는데 그 약이 다른 증상에 쓰이는 약이라 환자 의 상태를 더욱 촉진 시키는 자극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때마침 전문의가 왔고 더욱 이상해져 가는 아이의 증상에 이상하다 생각하며 링거를 확인했고 전문의는 누가 이걸 꽂았냐며 잔뜩 화나 소리쳤고,윤호 는 애꿎은 간호사들이 혼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조금 나아지자 3, 4명씩 붙어있던 의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폭 내쉬었고 하나, 둘 흩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윤호와 그 최 선생(전문의)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그 길로 윤호는 최 선생의 개인 진료실에 불려가 1시간동안 설교를 받으며 깨진 후 A4용지 한장 가득한 시말서를 작성하고 일주일간 근신 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최 선생의 경우 윤호와 동갑인데, 상사한테 깨지는 것도 짜증나는 판에 그 상사가 자신과 동갑일 경우 더욱 짜증나고 화가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가 잘못 한 일도 있기에 기분이 나쁘지만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시말서를 쓰고 이 틀간 근신을 받기로 한것이었다. "여튼…, 오늘 일을 되 새겨 의사 인생에 오점을 남기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깐깐하긴 하지만 존경할 만한 선배, 김 선생이었다. 자신보다 연장자 -그래야봐야 조금이지만- 이기 때문 에 최 선생에게 듣는 충고보다는 훨 나은 편이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적막감이 흘렀다. 하지만 김선생 은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그의 맞은편에 앉아 그 알수 없는 눈…, 아주 안타까워하는 눈으로 윤호를 바라 보았다. 시말서를 쓰려고 해도 그의 시선때문에 쓰지 못할 정도인 윤호인 것이다. 결국은 한마디 꺼내는데. "저…, 김선생님. 하실 말씀이라도…?" "………." 평소에 깐깐하고 규칙을 칼같이 지키는 이 사람이 웬일인지 담배를 꺼내 들었다. 불과 몇분 전만해도 여기 서 담배핀다고 윤호에게 뭐라 한 사람이 말이다. 심각하게 할 말이라도 있는건가, 라고 생각한 윤호가 그 를 바라보았고 그는 담배연기를 깊이 들이 마신 후 내 뿜더니 윤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거 알고 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늘 낮에 내가 한 그 말이 신경쓰여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는가." "무슨 말… 아." 김 선생의 말이 무슨 말인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윤호가 갑자기 탄성을 내 뱉더니 이내 잠잠해져 버린 다. 오늘 낮, 점심 식사를 즐기고 휴게실에서 간단히 커피를 뽑아 마시고 있을 때 였다. 그때 김선생이 다 가 오더니 그에게 말했다. 「권미야씨가… 자네 아내인가?」 「그렇습니다만…, 왜?」 「그게 말이지….」 한참을 뜸들이던 김선생은 한참 후, 점심 시간이 끝날 때쯤이야 겨우 윤호에게 꺼냈던 말. 「자네, 아내 말야…. 심장쪽에 이상이 있나 봐.」 심장쪽. 심장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심장이 약해서 가끔씩 병원에 와서 검사 받던 사람이 자신 의 아내인데, 심장쪽에 이상이 생겼단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병원 동료부터 간호사들까지 그녀를 봤다 는 말을 많이 했다. 심장 쪽에 전문인 박사님을 만나고 다닌다길래 뭔가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크게 신경 은 쓰지 않았다. 항상 밝고 건강해 보이는 아내였으니까. 심장이 약한 것 빼고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 는 그런 건강한 아내였으니까. 맞다. 그 이야기로 꽤 충격을 받았던 윤호는 점심시간이 끝난 후 몇시간 지나지 않아서 호출을 받고 응급 실로 불려갔고, 그 시급한 상황에 실수를 연발하고 멍하게 있기 까지했다. 그저 직장 상사한테 깨 졌다는 게 짜증나 오늘 점심때 들은 그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김선생을 바라보았 다. 김선생은 미안해 하는 눈치였지만 남편인 그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에게 말했다. "그쪽에 내 동료가 있어서 무슨 이상이 생겼는지 물어봤는데…." 그럼 김선생은 이미 미야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윤호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꺼 낸 말이지만서도 김선생은 고민했다. 증상마저 말해 버리면 윤호가 잘 버틸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일에 차질이 생겨버리기라도 하면 문제니까 말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이 병 원에서 일에 차질이 생겨버린다면 몇 사람정도는 거뜬히 죽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윤호의 눈동자는 어서 말해 달라고 확고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게 김선생은 담배가 다 타들어 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담배가 다 타 들어가 끝만 남았을 무렵…. "…협심증… 증세라는데. 이미 심장에 고통이 한번 있었나 보더군." "……협… 심증이라구요…? 제… 아내가 왜… 왜 그런 병에 걸립니까…?" "걱정 말게나. 협심증은 심근경색증 처럼 갑자기 죽는 병이 아니니까. …고통은 따르겠지만." "갑자기 안 죽는다는 것은 언젠가는 서서히 죽는단 말씀이십니까?" 김선생은 윤호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흥분해 있다. 안정 시켜야 한다. 저대로 가다간 평소 병원에 찾 아와 자신의 가족을 살려내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흥분하는 그런 환자의 보호자들 처럼 행동할지도 모른다. 그는 윤호의 어깨를 몇번 토닥이더니 말했다. "아마 관상 동맥경화증이 원인이 되어 협심증이 일어난 모양일세. 내과적 치료로는 효과 없는… 그런 증상이니까 어서 관상 동맥 촬영법을…." "하아- 하… 하하…." 기가 찬다는 듯 허탈하게 웃어보이는 그의 모습에 김선생은 뒤늦은 후회를 해 본다. 하지만 벌써 몇번씩이 나 병원에 드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편에게 말하지 않은 그녀를 생각하면 그녀의 증세를 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최선생이 윤호를 불러서 근신을 내리기 전에 재빨리 연락해서 넉넉하 게 일주일간 근신을 내려라고 한 것이었다. 남편인 그가 아내의 병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주일간…, 아내의 옆에 있어주게. 아플때 곁에 누군가 없으면 제일 서럽지 않은가." "………." "시말서는 천천히 써도 늦지 않아. 사람 생명이 더 소중하지. 어서 가. 어서 집으로 가서 자네의 아내 곁에 있어줘. 그게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제가 고쳐줄 겁니다." "…소아과 레지던트가 심장쪽의 일을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분노에 찬 윤호의 말에 김선생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김선생의 그 말이 끝마치자 마자 손에 쥐고 있던 펜이고 쓰고 있던 시말서고, 다 팽겨치고 그대로 넓은 회의실을 벗어났다. 김선생은 아끼는 후배의 모습에 그저 안타까운 얼굴만 지을 뿐이었다. 아끼는 후배에게 선배로써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꼭… 쾌유되길 바랄세." 그대로 김선생도 회의실을 나섰고 회의실은 불이 꺼졌다. 어둠속에 홀로 남은 펜과 하얀 종이. 하얀 종이 에는 윤호의 죄송하다는, 그런 글귀만이 남아있었다. 그 환자에게 죄송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미안해서 윤호는… 시말서 1/3을 거의 죄송하다는 말로밖에 채울 수 없었다. ──────────────────────────────────────────────────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만들었어요^^ 놀러들오세요^^ http://www.cyworld.com/x_world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6] 끼이이익- 최고조로 흥분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 운전하기는 아주 위험하지만 윤호는 미친듯이 속도를 내며 달리다 가 겨우 멈췄다. 멈춘 곳은 다름 아닌 바다. 유천과 마지막 이별을 예고했던 바다, 미야와 처음 만났던 바 다. 꽤 추억이 많은 바다다. 날이 저무른 바다에는 거친 파도만이 남아서 하얀 모래들을 적신다. "하아…, 하악- 아아악-!!!!!!!!!!" 핸들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소리를 질러버리는 윤호. 그 모습이 마치 아주 답답한 것을 가득 안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 도대체…, 도대체 왜 그녀가 그런 병을 앓아야 하는거 란 말인가. 그녀가 뭘 잘못 했기에…, 잘못이 있다면 다 자기 잘못일텐데 왜 그녀가 그런 병에 걸리는걸까. 항상 바보같이 자기만 바라봐주고 모든걸 다 이해해주고 넘어가주던 한없이 착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야속하기도 하지. "흐악…, 흐흡- 흐윽-!" 눈물이 나온다. 가혹한 현실에. 막말로 죽을 병도 아닌데 왜 우는가 싶지만…, 그녀게에 지은 죄가 너무 많 아서, 그렇기에 그녀가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서 슬퍼서 눈물이 나온다. 왜 그녀에게…, 왜 자신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실수로 이미 한번 잃었다. 그래서…,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런 실수따위 하지 않겠다고 얼마나 다짐했는데…, 얼마나 다짐하고 또 했는데… 이렇게 아파버리면. "으흑-! 윽…, 으윽!" 그녀에게 너무 미안해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 달칵. "오늘 춥던데…, 밤되니까 더 춥죠? 봄이 다 왔다 해도 아직 겨울기운 남아서 그런지 춥더라구요." "………." 벌써 새벽인데도 안자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에, 춥지 않냐고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의 모습에 민 우는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심장이 많이 아팠을텐데…. 벌써 병원에 몇번이나 드나들 정도로 심장이 많이 아프고 그랬을텐데…. 미안한 마음에 고개조차 들수 없다. 그녀는 그런 남편의 모습에 무슨 일이 있었나하 고 걱정되는 마음에 그에게 고개라도 들어봐 달라 했다. "여보…, 여보? 무슨 일 있었어요? …여보?" "…미안해."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끌어안으며 미안해,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 의 어깨에 고개를 묻은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돼요." "내가…, 내가 죽일 놈이었어. 미안해…! 내가…, 내가 널…."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요. 왜 당신이 미안해요. …내가 미안해요." 결국, 그녀 역시 눈물을 떨구어 내고 만다. 윤호는 그녀에게 미안해서, 뭐든지 다 미안해서 그녀를 안은 팔 을 풀 수가 없었다. 두번째 연인. 자신의 인생에 있어 두번째 연인. 사랑했어야 할 여자. 사랑했어야 했으나 사랑해 주지 못한 여자. 자신에게 너무 큰 사랑을 줬으나, 정작 보답해준 건 아무것도 없어서… 너무, 너무 미안한… 그런 여자. 바로… 자신의 아내. "내가… 내가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널 많이 사랑해줘야 했었는데…." "아니에요. …아닌걸요, 여보…. 당신이 아무 말 없이 나 데리고 살아준 것만 해도 난 좋아요…." "너…, 너정말 바보구나…." "…바보된지 오랜걸요…." 눈물을 머금다 못해 하늘에서 비내리듯 쏟아내는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말에 피식 웃어본다. 그 미소가 너무 슬퍼서…, 슬픈 미소를 짓는 서로가 너무 슬퍼만 보여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서로를 부등켜 안고 눈물짓던 두 사람은 한참 후에야 떨어졌다. 방에 들어간 그들은 그대로 침대안으로 들어가 서로를 꽉 안았다.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은… 환자를 죽일 뻔 했어." "…위험했네요." "그래서 일주일간 근신이야." "어떡해요…. 일주일 씩이나-" "걱정마, 당신 곁에 있을거니까."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 봤고, 그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미소지 어 주었다. 그리고는 아내의 부드러운 머리를 쓸어넘겨주며 말했다. "일주일간은… 정말 권미야, 너만을 위해 살게. 지난 7년간을 모두 보답할 수 있는… 그런 일주일이 되도록 할거야. 니가 귀찮다고 해도… 내가 너한테 붙어 있을게." "…나 죽을병도 아니잖아요. 치료 받으면 괜찮아요." "죽을 병이 아니라도… 내가 옆에 있고 싶어. 내가 당신한테 해준게 너무 없어서… 이번 일주일 간은 뭐든지 다 해줄거야." "그럼… 지금부터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줄 수 있어요…?" 미야의 말에 윤호는 그럴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 듯 남편의 허리를 꽉 껴안았 다. 윤호는 그런 그녀를 더욱 안아줄 뿐,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품에 얼굴을 묻고 말 했다. "그럼 제일 첫번째.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어요…?" "…그래." "…거짓이라도 좋아요. …난 왜 이렇게 당신이 사랑한다, 라고 말해주면 기쁜지 몰라요." 결혼한 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 적은 거의 없다. 7년 가까이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준것은 다 합쳐도 겨우 10번을 채울 정도다. 그 중에서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해준 것은 몇번일까. 한번 이라도 있을까. 아니…, 없다. 항상 형식적인 말 뿐이었다. '사랑해'라는 말에 그런 거짓이 들어갈 수 있다 는 것도, 아무 감정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녀와 살면서 알게 되었다. 이제 와서 그녀에게 모든 걸 해준다는 것은 일종의 죄책감에 따른 그녀에 대한 사죄일 뿐이다. "자- 그럼… 시작."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사랑해…." "응…, 나도…. 나도 사랑해요." "…사… 랑해." "으응…, 나도… 나도 당신 사랑해요." 윤호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리자, 대답하던 그녀의 목소리 역시 흔들린다. 지난 7년간 그녀에게 해 주지 못 했던 그만큼의 '사랑해'를 들려줄 것이다. 밤이 새도록, 그녀가 잠이 들어도… 그는 그녀에게 사랑해, 라고 말할 것이다. 이 밤이 끝나도, 다음 날 그녀가 깰때도 '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눈물이 나도 중 간에 목이 아프더라도 그는 그녀에게 말할 것이다. "사랑해…." -라고. 이 밤이 끝나고 날이 새도 '사랑해'라는 말을 그녀에게 해줄 것이다. 그녀에 대한 죄가 씻길 수 있도 록. 그녀의 빈 부분을 채워줄 수 있도록…. 한참 후일까. 그녀가 그의 품에서 곤히 잠들고, 그는 여전히 그 녀에게 사랑해, 를 반복해서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걸까. 그의 품에 안겨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다른 날과 달리 미소가 지어져있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그는 그녀의 어깨를 더욱 감싸안으며 어두운 방 천장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사랑해, 를 끊임없이 반복 했다. 하지만…, 사랑해라는 그 말은 이윽고…. "미안해…." '사랑해'가 아닌 '미안해'. 그의 진실한 마음. 사랑해, 가 아닌 미안해.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껍데기만… 사랑한다고 말해서 미안해…." 사랑한다고 치장한 선물 안에는 미안한 감정만 한 가득해…, 그게 더 미안해서 그 날 밤 그는 날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미안해, 사랑해… 라는 그런 말들만 해 줄 수밖에 없었다. ────────────────────────────────────────────────── 짧고 정리 안됩니다^^; 감상 답변은…; 현재 너무 버거워서 나중에 싹 정리해서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려요. 월드의 싸이월드 http://www.cyworld.com/x_world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7] "이거 걸을거야?" "아니요, 안 걸을거에요." 커다란 가족사진을 들고 있는 윤호는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그녀 의 모습에 윤호는 고개를 갸우뚱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어제, 그녀는 윤호에게 두번째 소원이라면서 가족 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그래서 특별히 아픈 그녀를 위해 휘은이 유치원까지 빠지게 해서, 잠든 휘연일 억 지로 깨워가며 찍은 사진인데 그녀는 걸지 않을거란다. 방금 사진관에서 커다란 액자속의 가족 사진을 받 아온 윤호는 그것을 들은체 멀뚱히 서 있었고 그녀는 그의 품에서 그 커다란 액자를 받아들어 다시 액자가 들어 있던 상자 속에 액자를 넣어버렸다. "왜 안 걸어?" "…따로 걸 곳이 있으니까요. …아, 당신 배고프죠? 점심 뭐 먹을까요?" 소파옆 작은 틈새에 액자를 넣어 둔 미야는 그에게 웃어보이며 점심 식사 메뉴를 물었고 그는 그냥 아무거 나 먹자며 말하더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소파에 누워 잠을 자는 딸을 바라보았다. 아기라 그런지 하루 반나절은 다 잠자고 이제 밤이 되면 깨서는 울곤한다. 그래도 다행히 휘은일 키울때보다 허둥대지는 않는 다. 이게 첫째 애와 둘째 애의 차이인가, 라는 생각에 윤호는 어느새 미야의 이상한 행동도 잊어버리고 웃 어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던 미야는 싱긋 웃더니 부엌으로 향하며 말했다. "오늘 물국수 해 먹어요, 괜찮죠?" ≠ 탁탁, 거리는 타자 소리만 들리던 방에 핸드폰 벨 소리가 울린다.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던 그는 서류더미 속을 한참이나 뒤진 후에야 울리는 폰을 찾아 플립을 열 수 있었다. 끝까지 전화를 끊지 않던 그는 다름아 닌, 신혼여행간 절친한 친구. 친구와 대화한다고 그는 어느새 하는일 마저 잊고 침대에 누워서 느긋하게 통화를 해 본다. "그래…, 알았다니까? …응. …아니, 그런건 아니야. …그래, 너도 휴아씨랑 좋은 여행하고 와." 유천은 지난 일요일날 결혼해서 현재 제주도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는 창민에게 몇번이나 좋겠네, 하 고 농담삼아 웃어본다. 한동안 '이선우'때문에 패닉상태에 빠져있더니 다행히 그것을 잘 견뎌내고 일어선 창민이다. 그리고 그도 이제는 유부남이 되었다. 전화를 끊은 유천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이제는 정말 나 혼자 독신이네, 라고 중얼거렸다. 동생인 유환도 결혼해서 벌써 아이까지 낳았고, 창민도 막 결혼했고 재중과 우진은 신혼부부 못지 않게 지내고, 그녀… 미야도 윤호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까…. "애라도 하나 입양해서 길러버릴까…." 하지만 유천은 곧 킥킥, 웃어대고 만다. 자신의 어처구니 없는 상상에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한참을 그렇 게 누워있던 유천은 하던일을 마저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일할 마음 이 없어졌다. 역시 한번 흐름이 끊기면 계속해서 하지 못 하겠다. 다음 주까지 해서 파일을 회사로 넘기면 되니까 시간은 꽤 있다. 그렇기에 유천은 더이상 욕심부리지 않고 처리하던 문서를 저장한 후 컴퓨터를 종 료 시켰다. 그리고는 아까 처럼 다시 침대에 털썩 몸을 눕혔다. 얼마 전, 그러니까 지난 일요일. 창민의 결혼식에서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참 많이 왔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을 꽤 했기에 아는 사람들이 많이왔고 이제 나이를 먹어 소년의 티를 벗어 버리고 어른의 모 습을 갖추고 있는 친구들은 각자 옆에 예쁜 아내와, 또는 아이까지 두고 있었다. 하긴 이제 다들 33살. 창민도 결혼을 늦게 하는 건데 자신은 결혼 할 여자조차 없으니 한심할 뿐이었다. 그곳에서 유천을 알아 본 그들은 하나같이 유천에게 결혼 여부부터 물었고 아직 안 했다는 소리에 놀랍다는 반응을 내 보였다. 그 리고 그 날 가진 동창들의 술자리에서 고3때의 반장이었던 그가 유천에게 말했다. 「그때 너 그 소문 아냐? 지금 10년 넘게 넘었으니까 하는 말인데 그때 정윤호랑, 너랑 사귄다는 소문 돌았던거 알아? 하하, 한동안 히트였다. 그래서 항상 애들이 너희 주시했잖아. 그래도 다행히 너네 둘이 서만 다닌게 아니라 창민이도 같이 다녀서 더 부풀어지지는 않았지만. 게 중에는 너네 셋이 삼각관계라 는 소리도 나온거 있지. 사내 놈들이 더 이상하다니까? …그나저나 윤호는 안 왔네? 나는 아직도 너네 셋이 죽마고우니, 뭐니 하며 붙어 다니는 줄 알았다. 요즘 뭐 한데? 몇년전에 갑자기 '벨기에' 지사에서 일 한다더니 요즘은 또 의사라는 소리가 나돌더라고.」 학창시절, 그들에 대한 소문을 말했다. 항상 윤호와 단 둘이 있으면 애들이 수군수군 대는게 이상하긴 했 는데 소문이 퍼져 있었구나, 라는 생각에 유천은 술을 들이키며 쓰게 웃어보였었다. 그래도 창민이 끼어서 그 소문이 덜 했다라. 왠지 씁쓸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윤호에 대해 묻자 난감 해 하던 유천은 그저 "의사한다고만 들었어. 몇년 째 안 만나."라고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쓴 웃음을 지어보 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미소에 친구들은 왠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일요일에 친구들과의 이야기 등이 생각나자 유천은 그날 처럼 또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밝지도, 슬 프지도 않은…, 그야말로 쓴 웃음. 아이가 쓴 약을 먹고서는 하나도 안 쓰다고 우기며 짓는 웃음이랄까…. 그런 그의 웃음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묻어난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혼자사는 조용한 집 안에 시끄러운 전화 벨 소리가 정신 없이 울렸고, 몇일 전 일을 떠 올리고 있던 유천은 한참 후에야 전화 벨이 울린다는 걸 알아채고는 거실로 나가서 수화기를 들 수 있었다. "여보세요?" -유천씨죠? 나예요. "미야씨?" 그녀였다. 평소 전화가 거의 없는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거의 없는 정도가 아닌 아예 없는 정도인 그녀가 집으로, 그것도 토요일이 아닌 평일날 전화했다는 게 유천에게는 너 무 신기했고 왜 전화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일 시간 돼요? "내일요?" -안 돼요? "그건… 아닙니다만." 유천의 약간 뜸들이는 듯한 말에 미야는 또 한번 안 되냐고 물었고 유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후로 그녀를 대하기가 왠지 껄끄러워졌다고나 할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였고, 나이 많 은 노총각이 유부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웃겼고, 그 유부녀가 특히나 전 '남편'이었던 사람의 아내라면 더더욱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유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No, 가 아니라는 유천의 대답 에 그녀 특유의 맑고 고운, 여성의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내일 만나요, 유천씨. 어제 사진관 다녀오는 길에 아주 예쁜 카페를 봤는데 유천씨가 좋아할 것 같아서요. 갈 거죠? 유천씨, 가요- 예? "아, 미야씨…." 곤란합니다만…, 이라고 말하기 전에 그녀는 시간과 그 카페의 위치까지 다 말해주었다. 유천은 왠지 웃음 이 났다. '이거 완전히 유부녀랑 바람 난 기분이구만.'이란 자신의 생각에 또 한번 웃어 보인 유천. 까짓것 만나지, 라는 생각으로 결국은 알았어요, 라는 대답을 했고 그녀는 더욱 밝아진 목소리로 내일 보자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밝고 맑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 누가 애가 둘이나 되는 유부녀라 생각할까. 하긴, 그녀와 밖에 나가면 연인 사이로 오해받기도 한다. 저번에는 술을 마시러 갔다가 "연인이 오붓하게 오셨네요."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유천, 본인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혹여나 그녀가 기분이 상하면 어 쩌나 싶었는데 그녀는 한껏 웃더니 "우리 둘 다정해보여요?"라며 팔짱까지 꼈다. 그녀의 밝은 미소와 명랑 함에 잘 웃지 않던 유천조차 웃을 정도였다. 대하기는 껄끄럽지만 막상 어울리면 편한 여자였다. 친구하기 에는 딱 좋은…, 그런 여자였기에 유천도 그리 경계심을 오래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띠리리리리- 또 한번의 벨 소리. 수화기 놓은지 몇번 됐다고 또 전화냐, 하면서 수화기를 들은 유천. "여보세요." -뭐야, 그 떨떠름한 목소리는. "우진이냐? …그냥, 오늘따라 나 찾아주는 사람이 많네, 하고." -어떤 할일 없는 인간이 형같은 노총각을 찾아? "니 녀석, 정말로…. 그럼 넌 할일 없어서 노총각한테 전화했냐?" 언제나 밝은 우진의 목소리에 유천은 미소까지 띄우며 우진의 말을 되 받아 치고 있다. 우진은 술 마시러 오라했 고, 마침 심난하던 유천은 혼쾌히 승락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유천은 모자 하나를 눌러쓰고 겉옷을 집어들 었다. 그리고는 차키와 폰까지 확인한 후 그대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 문을 잠그고 나갔다. 주인 없는 집안에는 왠지모를 허전함만이 남아 돌았다. ────────────────────────────────────────────────── 자기 소설을 보고, 자기가 안타까워 한다면 웃긴건가요?(퍼억) 하하, 죄송합니다; 감상 답변 없다고 안 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항상 확인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답변 몇자, 남기는거 어렵겠냐, 하시겠지만- 저에게는 버겁습니다, 쿨럭; 눈 뜨고 생활하는 것 조차 버거운 저에게(퍼억) 죄송하구요, 모아서 할게요^^; 107편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월드의 싸이월드 http://www.cyworld.com/x_world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8] 그녀와 만나기로 한 시각 1시. 현재 시각은 2시 10분. 낮에 잠깐 회사에 들린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이렇 게 늦어 버린 것이었다. 잠시 회사에 들려 서류만 전하고 나와서 약속 장소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거래처 사람들과 딱 마주치는 바람에 점심식사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 수출건에 아주 많이 힘을 준 거래처 라 어쩔 수 없이 점심식사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티타임까지 가지자는 거 겨우겨우 빠져 나와 약속 장소 로 향하는 중인 그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더니 막히는 신호에 초조한 듯 입술을 꽉 깨물어본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밀리는거야-" 상대가 누구든, 그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건 신사적이지 못한 행동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오고 그게 몸 에 습관처럼 베긴 유천에게는 1시간 10분 정도나 오버된 이 순간이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까 식사 도중에 실례한다고 말한 뒤 잠시 빠져나와 그녀에게 전화해 늦겠다고, 오늘 약속 다음에 미루는게 어 떻냐고 말했지만 그녀는 한사코 괜찮다며, 오늘 꼭 만나야 한다고 말해서 하는 수 없이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 유천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10분이나 더 지난뒤에야 약속 장소로 도착한 유천은 허겁지겁 카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지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카페 2층까지 샅샅이 훑어 보았지만 그녀는 물론, 혼자 앉아있는 사람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너무 늦어서 가 버렸는가 싶은 유천은 그냥 뒤 돌아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차가 있는 쪽으로 향하는데- "유천씨! 하아…, 하아…. 여기에요!" "…미야씨?" 뛰어온 듯 무릎을 짚고 숨을 돌리는 그녀를 본 유천은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다행이다, 라며 웃어보였 다. 그럼 여태까지 기다렸단 말인가. 유천은 괜시리 미안해져서 더욱 그녀에게 신경쓰는 듯 했다. 겨우 진 정된 그녀는 웃어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 카페에 계속 앉아있기가 무안해서 장소를 바꿨어요. 전화해서 알려주려고 했는데 전화가 꺼져 있어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에요." 그녀의 말에 유천은 그제야 자신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어 전원을 눌러 켠다. 같이 식사 자리를 가졌던 아버지께서 중요한 손님과의 식사니 중간에 나가지 않게 꺼 놔라고 했기 때문에 잠시 빠져 나와 미야에게 전화한 뒤 계속 꺼 놓았던 폰이었다. 켤 생각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꺼 놨던 것 조차 잊어버렸던 그였다. 자신이 장소가 바뀐 것도 모르고 그냥 가 버릴까봐 일부러 몇번이나 왔다, 갔다를 반복한 그녀에게 더욱 미안해진 유천은 그녀에게 말했다. "오늘 미안한데, 저녁 식사라도 사야겠네요. 타세요, 좋은 곳이라도 가야죠." "아뇨, 갈 때가 있다니까요? 아까 그 카페도 예뻤지만 맞은편에 있는 카페도 예쁘거든요." 유천의 제의를 거절하자마자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며 그를 끌어당기는 미야다. 그녀는 맞은 편의 실내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되어있는 카페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은 은한 조명이 카페를 비춰 아늑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생화같은 조화를 이용해 예쁘게 장식하고 원 목으로 지은 것 같이 바닥을 나무로 해 놓은 곳은 카페라기 보다는 정통 찻집을 연상케 했다. "여기 분위기 좋죠?" "그렇네요." "메뉴도 괜찮아요. 아까 있던 집은 실외만큼 실내가 안 따라주더라구요. 그런데 여기는 참 예뻐요." 그녀의 말에 유천은 쿡, 하고 웃어본다. 1, 2층으로 되어 실내가 아주 넓었던 앞의 카페와는 달리 이 카페 는 1층으로만 되어있는 데다가 각각 룸으로 되어있어 딱 좋다. 룸도 10개 정도? 아마 손님을 한정으로 받 는 듯 하다. 그녀가 말하길 여기는 커피맛이 좋아서 커피 매니아들이 많이 찾는단다. 그 새 그것까지 알았 나 싶어 유천은 또 한번 웃고만다. "보슬비 내리는 날, 이런 향긋한 향이 나는 카페라니- 낭만 적이지 않아요?"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아까 1시쯤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꼭 봄을 알리는 봄비같이 말이다. 차갑지도 않고 되려 따뜻한 것 같아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데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를 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안으로 걸어들어 가던 그녀는 이내 맨 마지막 방 앞에 선다. "안은 더 멋져요. 로즈마리가 심긴 작고 아담한 화분이 중앙에 올려져 있어서 향긋 하거든요. 그리고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창이 있어서 창 밖 보기가 참 좋아요. 창 밖에는 작은 화원이 보여서 여기가 도시란 생각이 들지 않거든요. 지금은 보슬비가 내려서 풀잎에 이슬이 맺혔는데 너무 예뻐요. 거기다가 이 카페 특유의 이 은은하고 낮은 조명이 로맨틱함을 더해주죠." 싱긋 웃으며 말을 마친 그녀는 통나무로 된 문 앞에서서는 문을 막듯이 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는 유천을 보 고 말했고 유천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래요, 하고 같이 마주보며 싱긋 웃어 줄 뿐이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 보며 방금까지의 들뜬 목소리와는 다른, 가라 앉으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한다면 아주 멋지겠죠?" "…그렇겠죠." 그의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이제 들어갈 차례에요."라고 말하며 유천의 손 을 잡았다. 갑자기 자신의 손을 잡는 그녀에 놀란 유천이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열리고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쉼호흡해야해요, 라고 말하며 룸 안으로 들어섰다. 룸 안에는 향긋한 로즈마리의 향과 은은한 카푸치노의 향이 흘렀고, 5평 남짓 되는 곳에는 테이블과 두명 씩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카푸치노가 담긴 커피잔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남자를 불렀다. 셋…. 둘…. 하나…. "여보." '여보'라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와 동시에 유천의 눈은 크게 떠지고 시선은 그녀에게로 향 했다. 그녀는 그런 유천을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고 이내 자신의 남편에게 눈을 돌렸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 리던 그가 말했다. "기다리던 사람 왔……." '기디리던 사람 왔어?' 하고 물으려던 그의 말은 체 이어지지 못한 체 끊기고 말았다. 그의 눈도 유천과 마 찬가지로 크게 떠졌고 그의 눈은 방금의 유천과 같게 그녀에게로 돌려지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고 묻는 듯한 남편의 눈. 그녀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자신의 옆에 굳은체로 멀뚱히 서 있는 유천 을 끌어다가 안쪽에 앉히고 자신이 바깥쪽에 앉았다. 어색하게 마주보게 된 유천과 그…. 유천은 그의 모습 에 짐짓 당황해 하며 고개를 비스듬히 돌렸다. "둘이 오랜만이죠? …분위기가 왜 이래요-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잖아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말에 유천의 고개가 놀란 듯 그녀에게로 돌려졌다. '연인'이란 말에 많이 놀란 듯한 유천이었다. 아직 그는 그녀가 자신들의 일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놀랄 수 밖에 없 는 것이었다. 그녀는 놀란듯한 그를 보며 "놀랄 필요 없어요, 알고 있는걸요." 라고 말하며 예의 그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아까 그녀가 유천을 데리러 나가면서 시켜놓은 에소프레소가 왔고 종업원은 좋은 시 간 가지라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유천씨, 마셔요." "…예…." 작게 대답한 그는 조심히 커피잔을 들었다.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싱긋 웃더니 자신의 남편을 보고도 싱 긋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에이, 왜 이렇게 분위기가 저조해요.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상관 말아요. 나 지금 나갈거니까." "미야씨-" "당신-" 지금 나갈거라는 그녀의 말에 두 남자는 당황스러워 하며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백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 고는 자신의 남편에게 "지금 부터는 유천씨한테 봉사해줘요."라고 말하며 예쁜 미소를 지었고 유천에게는 "오늘 좋은 시간 보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녀가 나가려 하자 당황한 유천이 엉거주춤하 게 몸을 일으켰고 미야는 휙 뒤 돌아서더니 말했다. "오늘 커피는, 두사람 재회기념으로 제가 사는거니까 커피 값은 걱정 말아요. 그럼 갈게요." 탁-. 가벼운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고, 그녀가 나가 버리자 더욱 어색해진 공기에 유천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따라 나갈 기세로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지금껏 가만히 앉아있던 윤호의 목소리가 유천의 귓가에 들려왔다. "잠깐…." 그의 목소리에 아직도 당황스럽다는 표정이 잔뜩 서린 유천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고, 그는 아까와 달리 담담한 얼굴로 유천을 보며 말했다. "잠깐만…." "………." "…앉아. …우리 오랜만이잖아…." '우리 오랜만이잖아'라는 그의 말에 손잡이를 잡고 있던 유천의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는 떨리는 걸음 으로 다시 자리고 가 앉았다. "…오랜만이네." "…그… 렇네…." 좀처럼 안절부절 하지 못 하는 유천을 보고 안타까움이 잔뜩 베어있는 눈으로 쳐다보는 윤호의 눈에는 슬 픔이 깔려있고, 그리움이 깔려있었다. 7년만의… 정식적인 재회였다. ────────────────────────────────────────────────── '정식적'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시겠다구요? 이미 윤호씨는 몇개월 전 유천씨를 만난적이 있죠^^ 그때 미야씨가 술에 취해 온 날 밤 뒤에서 유천씨를 지켜봤죠. 그게 간접적인 재회였으니 지금은 직접적, 즉 정식적인 재회겠죠?^^ 월드의 싸이월드 http://www.cyworld.com/x_world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09] 한참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너무나 조용한 공간 탓에 창 밖의 보슬비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한참후 에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바로 윤호였다. "잘… 지냈어?" "…응." "그래…."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유천은 이때껏 내리깔고 있던 두 눈으로 윤호를 쳐다보았다. 뭔가 초 췌해진 모습이다. 어디 아픈가. 얼굴 빛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고, 표정 역시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유천은 그런 그에게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응?" "…얼굴빛이… 안 좋아 보여서." 유천의 말에 이때껏 아무런 표정도 없던 윤호의 입꼬리가 잠시 올라가더니 피식, 하고 웃는 소리가 난다. 그런 윤호의 웃음에 유천은 아무 말 없이 윤호만 주시할 뿐이었다. 윤호는 반쯤 식은 커피를 입에 갖다대 며 목을 축였다. 그리고는 유천을 보고 다시 웃으며 말했다. "역시 박유천이네. …정말 내 낯빛 하나만 보고 다 안 다니까." "…무슨 일 있구나?" 유천의 물음에 윤호는 아무 대답없이 비오는 창 밖만 쳐다 볼 뿐이었다. 그리고는 거칠어진 입술을 달싹이 며 입을 열었다. 조금은 갈라져 버린 그의 목소리가 이내 흘러나왔다. "아파…." "………." "그녀가 아파…. …미야가 아파…." 윤호의 말에 유천은 의외의 대답이었다는 듯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윤호는 마저 말을 잇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시선을 유천에게 가져갔다. 윤호의 두 눈동자에는 어디가 아프냐는 듯한 유천의 얼굴 이 보였고 윤호는 이내 힘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죽는 병은 아닌데…, 죽을 수도 있는 병이야." "죽을 수도… 있는 병…? …그럼 위험하다는 거 아니야?" "…그렇겠지. 이번 주가 지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생각이야." 가서 치료 받을 거라는 말에 조금은 안심했지만 죽을 수도 있는 병이란 소리에 유천은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 한 듯 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 많이 친해져 버린 그녀에게 그런 병이 생겼다니. 믿을 수 없다. 항상 행복해 보여서…, 조금의 불행한 모습도 보이지 않아서 유천은 그녀에게 '병'이란 게 생겼다 고는 생각도 못 한 듯 했다. 항상 미소짓고 있는 그녀였으니까…. "우리가…, 아니. …내가 받을 벌을 받은거야…. 미야가- 미야가 내 벌을 대신 받아버린 거야…." "………." "그 벌은… 내가 받아야 하는건데…, 그 맘좋은 아이가 내 벌을 대신 받아버렸어." "…윤호야." "괴로워 죽겠어. …하루 하루가 괴롭고 미안하기만 해. 죄책감때문에- 내가 나 자신을 못 이겨 내겠어. …어떡하면 좋을 지 모르겠고, 내가 조금이라도 잘 못 하면… 당장 그녀가 죽을 것만 같아서 불안해. …나…, 나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괴로움이 가득한 눈동자로 말하는 윤호의 눈동자가 애처롭다. 그의 두 눈에는 이내 괴로움의 눈물이 가득 차 버렸다. 유천은 그런 윤호를 보며 쓴 웃음을 짓고선 바보 같은 놈, 이라고 말했다. 유천의 말에 피식 웃 던 윤호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많이 어긋나 있어…. 내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다 나때문인데…, 모두가 나 때문인데… 정작 본인은 뭘 해야할지 모르고 있어. 여기서 더 시간이 흘러버리면- 누구라 할것도 없이 다 상처를 입을 것만 같은데- 그래서 그걸 미리 방지하고 싶은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다… 다 나때문인데…." "바보같은 놈…. 미야씨가 죽기전에 니가 먼저 죽어버리겠다." "하- 하하…. 그런가…."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윤호가 안타까워서,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 윤호 때 문에 유천의 가슴은 욱씬거린다. 바보같은 사람. 왜 그 모든걸 다 자기 탓으로 돌리고 그 무거운 짐덩이들 을 혼자 짊어지려고만 하는건지. 유천은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내 옆에는 그녀가 있는데…, 나는 그녀를 사랑해야 하는데…." "편하게… 편하게 가져. 마음을 편하게 가지는거야." "편하게 가져선 안 돼…! 내가…, 내가 느긋해질 수록 그녀는 더 아파질거야-" "정윤호!" 뭔가 상당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은 유천은 이내 그의 이름을 불렀고, 유천을 바라봄과 동 시에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유천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바보같이… 바보같이 혼자 짊어지려 하지마. 너 병신이야? 너 혼자야? 왜 그렇게 안절부절 하지 못 해! 왜 모든걸 혼자 하려 하냐고!" "말했잖아! 내가 늦으면 늦을 수록 미야가 더 아파진다고! 죽으면 어떡해, 죽으면 어떡할거냐고!" "정윤호!" "한번 떠나 보냈음 됐어!" 끝내 윤호는 큰소리를 질렀고, 윤호의 마지막 말에 유천은 입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괴로운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말하는 윤호의 아픔이 유천에게 전해져 유천은 서글퍼지고 만다. "한번이면 됐어, 두번은 실수하지 않아…. 내 실수때문에 놓치거나 하고 싶지 않아." "윤호야…. …윤호야…. …정윤호…. 정윤호…, 이 바보같은 새끼야."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유천의 모습에 윤호의 눈동자는 흔들린다. 사랑하는 그가 울고 있는 모습에 또 다른 아픔이 다가온다. 언제나 웃고 있는 모습만 보고 싶은데…, 울면 가슴이 너무 아프니까. 그를 안아서 달래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녀에게 미안하니까. 윤호는 머리가 복잡한 듯 자리에서 일어 섰다. 아마 가려는 모양이다. 그런 윤호를 보는 유천. "사랑해!" "………." 손잡이를 잡으려던 윤호의 행동이 멈췄다. 유천은 여전히 울었고, 우는 중에도 계속 입을 열었다. "항상…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힘들면 말해도 좋아. …내가 니 옆에 있잖아…. 넌 혼자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윤호야…." "사랑해." 이번에는 윤호가 사랑해, 라는 말을 꺼냈고, 그와 동시에 유천의 고개가 들렸고 유천의 울음소리 역시 없 어졌다. 윤호는 유천에게 등을 보인체 몸을 돌리지 않았고 손에 쥐고 있는 손잡이만 꽉 잡고 쥐었다, 놓았 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등 뒤에 있을 유천에게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유천아…. 우리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사랑하자…." "……으흑-" "…지금은… 지금은 아닐 것 같아…. 지금은… 내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당장에라도 터질 것만 같아서 동시에 하지 못 할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사랑하자." 달칵. 이내 룸읨 문이 열리고, 윤호는 룸 밖으로 한발을 내밀었다. "나 역시… 언제나 널 사랑하고 있어." 이내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룸 안에서 유천은 오랜만에… 그와의 재회에 한참이나 울었다. ────────────────────────────────────────────────── Thank you…. 키륵유천님, 윤호유천님, 대박가수話님, 무뇌아앵두님, 민봉이눈내꼬얌님, 아이시떼루님, 다이야a미쯔님, aa윤호aa님, 그림자님, 새디_님, 엘프데쓰님, 셩이486님, 국뽀1호필교님, 백합한송이님, 코코민셩님, lovemode님, 양 한마리님, 후아유필교n님, InMySoul님, 검은목소리님, 녕이님, 비야님, 꽃청춘윤호님, 현대M카드님, 충재짝궁님, 블루코랄리프님, 민셩솜사탕님, 초지일관님, 메롱유천님, 네멋대로하셩님, 아르떼박유천님, 햇살파르페님, 로스트민셩a님, 독존님, 사랑이라는것은님, 야 이노마님, 하늘이는님, 부부민셩님, 쌔끈도발셩님, 워아이니님, wooyoun님, 잘살아민셩님, 파란장미님, 붉은나비님, 묵향사애님, 스테이지님, 바보윤호야님, 절대꽃수님, 월궁항아유천님, 해찬나래재중님, 안타레스님 (중복되는 분은 한번만 적었습니다^^;) 약 51명 정도의 분께서 이렇게 감상을 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했고,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 귀차니즘을 비롯해 이번 시험 결과가 나와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기에; 차마 답변을 달지 못 했습니다. 정말 한분, 한분 다 답변 달아드려야 했는데 그렇게 못 해 드려서 정말 죄송하구요. 다음에는 꼭 달겠습니다^^; 108편까지의 감상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과 공평하게 답변을 달지 못 하겠구요^^; 109편 감상부터 답변을 다시 달기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답변을 달지 않아도 항상 변함없이 감상을 남겨주시고 소중한 글귀를 남겨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일단은 표지 주신분들과 추천해주신 분들은 죄송하게도 제외했구요^^; 이해해주시길 바랄게요;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권태기는 완결까지 쭈욱 달려나가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0] "후우-" 문을 열고 한 발만 내밀면 집인데, 윤호는 선뜻 그러지 못 하고 있다. 들어 가서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걸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걸까. 일부러 자신들을 만나게 해 준건데 고맙다고? 아니, 그건 아니다. 그 럼 왜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했냐고? 그것 역시 아니다. 그를 만난건 분노도 고마움도 아니었다. 그를 만난 것에 대한 반가움과 예전의 가슴아픈 사랑의 감정일 뿐. 그렇게 한참이나 고민하고 있던 윤호는 한가지 의 문이 생겼다. 그녀는 자신을 어떻게 대할까, 라는 생각. 화를 낼까, 아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까…그것도 아님 예전처럼 활짝 웃어보일까. 한참을 고민하고 생각하던 윤호는 이내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벨도 누 르지 않은 체 현관문을 열었다. 잠겨있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문을 열려 있었고 윤호는 조심히 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집 안에는…. "아윽- 아악…, 하악…, 하악…. 으윽-" "여… 여보! 여보!!!!!!!!!!!!" 카펫 위에 새하얀 알약, 진통제를 다 쏟아 놓고 진통제를 삼키려 따라왔던 물은 카펫만 축축히 젖게 하며 유리로 된 빈병만 굴러다닐 뿐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그의 부인 미야가 쓰러져 있었다. 통증이 온 것이다.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 버린 윤호는 안절부절 하지 못 하며 아내 의 의식을 깨우려 그녀의 볼을 살살 때려 보았다. "정신 들어? 여보, 여보!" "…하악, 하악- 다, 당신…, 하악…."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숨을 거칠게 내 뱉는 그녀의 모습에 윤호는 그녀를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집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그새 1층에 가 있었고 사람들이 타는 모양인지 올라오지 않았다. 더욱 고통스러워 하는 아내가 걱정스러워 그는 조금 있음 올라 올 엘리베이터도 내팽겨 치고 그녀를 고쳐 업고서는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갔다. 죽을 것만 같은 아내의 모습에 힘든 것도 잊어버리 고 그는 정신없이 계단을 내려간다. "참아…. 참아야해, 미야야. 여기서 정신 잃으면 안 돼!" "하악…, 윽- 여…, 여보…." 온 몸이 땀 범벅이 되어서야 1층까지 내려온 윤호는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차로 향해 뒷 좌석에 그녀를 태 우고 운전석으로 와 차를 출발 시켰다. 신호고, 뭐고 상관없다는 듯 그는 미친듯이 속력을 내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의 귓가에는 그녀의 고통 찬 신음이 들리고 그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내 벌은 내가 받을게…. 내가 받을게, 미야야…. 니가 받으면 안 돼…." 이윽고 윤호의 시야에는 환하게 불켜진 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 다음날 아침.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쳤고, 싱그러운 풀잎에는 예쁜 이슬이 맺혔다. 도로는 아직까지 비에 젖어 축축했고 아이들은 물 구덩이를 밟으며 뭐가 재밌는지 깔깔 거리고 웃어본다. 그렇게 고요하고 편안한 일상 속에 윤호의 속은 계속 까맣게 타 들어가기만 한다. 어젯밤 윤호가 데리고 온 그녀는 결국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윤호가 연락해 아침 일찍 병원에 온 양가 어르신들. 그녀의 어머닌 계속 기도를 드리고 있고, 그녀의 어머니 옆의 윤호의 어머니는 사부인을 안정시키며 괜찮을 거란 소리 를 되 풀이하였다. 간밤에 있었던 대수술을 마치고 온 윤호의 아버지는 그녀 담당 의사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병환이 걱정 돼 계속 복도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하루 새에 수염이 꽤 자라 더욱 초췌해진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윤호가 있다. 멍하게 있는 윤호를 본 윤호의 아버지는 윤호를 데리고 휴게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가 뽑아 준 커피를 받은 윤호는 여전히 멍 하니 한 곳에 시선을 둘 뿐이다. "고비는 넘겼단다. 하루만 더 경과를 지켜보고 괜찮으면 일반병동으로 옮기겠다더구나." "…아버지…." "그래." "…나 미칠 것 같아요." "………."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아들만 바라 볼 뿐이었다. 윤호의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지고 이내 눈물이 고이고 만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나는 아직 유천일 사랑하고 있는데… 유천이한테 못 가겠어요…. 미야가 직접 자리까지 마련해줬는데… 내가 먼저 유천일 외면했어요." "…어제 유천일 만났나 보구나." "…만났어요. …이제는 아무 감정도 안 들거라 생각했는데… 나 속으로 아주 좋아하고 있는거 있죠." "………." 그의 진심어린 고백에 그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애써 창 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미친 걸까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미쳤는데 말이죠- 이렇게 너무 깊이 사랑하고 있는 걸 보니까… 내 자신이 마구 두려워져요. 미친거겠죠….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될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는 걸 어떡하죠. …내가 사랑하고 있는건 유천인데-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할 사람은 미야예요. …나… 나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버지." "유천인… 사랑이고, 미야는… 의무인거냐." "피식- …그런 걸지도 모르죠." 그의 두 눈이 감기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고, 그런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 또한 속이 타는 듯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사랑해요…. 사랑하고 있어요.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어요…. 유천일… 너무나 사랑해요…. …그녀가 가여워요…. 내가 떠나면 남을 그녀가 너무 가여워요…,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녀를 사랑하는데…, 유천이한테 느꼈던 그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윤호, 넌 미야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거야." "알고 있는 걸요…. 알고 있음 뭐해요…,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아들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때 본가에 들릴 때마다 표정은 좋지 않았고 자신의 아내에게 지어주는 웃음 또한 그나마 억지로 만들어낸 '껍데기만' 행복한 웃음이란 걸. 처음 아들 이 웬 사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 아이를 사랑한다고 둘이 결혼하러 벨기에로 떠나 가 살거라고 말했을 때는 정말 알 수 없는 배신감에 그날 밤 처음으로 윤호를 죽도록 팼던 걸로 기억한다. 걷지도 못할만큼 팼 는데 그 다음 날 아침 윤호가 있는가, 확인하러 갔을 때 윤호는 이미 사랑한다던 그 아이와 함께 한국을 뜬 후였다. 그 뒤로는 찾지 않았다. 벨기에에서 돌아왔을 때도 그냥 그러려니, 하며 윤호가 자신의 자식인 걸 그저 부정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이혼하러 간다더니, 왠 여자를 데리고 와 결혼하겠다는 윤호의 모 습에 아버지는 속으로 사내아이를 데려와 결혼하겠다던 그때보다 더한 충격을 받았다. "…유천이한테 가려거든…, 미야와의 모든 일을 다 정리하고 가." "…아버지…."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이다." 그 길로 아버지는 병원의 긴 복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아버지의 말에 허탈하게 웃어보일 뿐이다. 그 의 뺨을 타고 눈물은 한 없이 흐른다. "그런데… 아버지…. 내가… 유천이한테 갈 수 있기나 한 걸까요…." 그렇게 윤호는 미야가 깨어났다는 말을 전하러 온 간호사가 올 때까지 그 자리에 죽은듯이 앉아서 멍하니 흰 벽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 질투는 웃긴것. 그런 웃긴 것을 하는 나도 웃긴 것. 슬럼프. 완결이 다가온 지금 걸린 것 슬럼프. …피식- 내가 미친걸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1] 하루가 지나서야 겨우 의식을 차린 그녀는 다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보호자와 의사의 합의하에 그녀의 수술이 결정되었다. 심장의 발작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심근경색 으로 악화되는 것을 방지 하기 위해 수술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몸에 칼 대는 것을 싫어하는 그녀로써는 그리 유쾌한 일은 되지 못 했지만 자신의 부모님과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를 두 아이를 생각해 결국 그 녀는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남편의 정성어린 간호와 함께 수술할 날을 기다렸다. ≠ "아이들은요?" 오늘 날씨가 좋은지 열어놓은 창문으로 푸른 하늘과 함께 밝은 햇살이 들어왔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서 남 편이 씻어 온 새빨간 딸기를 먹던 그녀는 책을 읽고 있는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책에 한 참이나 빠져있던 그가 슬며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 보았다. 피부는 병원에 기절 해 올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창백했고, 예쁘고 촉촉하던 입술은 이제 빠작 매말라서 하얀 껍질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머리 역시 윤기를 잃고 푸석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아내가 측은해진 그는 아내의 푸석해진 머리를 쓸어넘기 며 말했다. "당신이 안심할 사람한테 맡겼어." "…유천씨요?" 딸기 하나를 베어 물면서 유천이냐고 묻는 아내의 말에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그의 손길이 잠시 멈 췄다. 그리고는 이내 "그래."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그의 대답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표 정에는 '다행이다', '안심이다' 라는 생각이 그대로 비췄다. 하지만 반대로 그의 얼굴은 그리 편하지 못 했 다. 아직 그녀에게 유천에 대해 말하기에는 뭔가 어색하고 비밀스럽기 때문이었다. 이미 다 아는 그녀인데, 그들을 위해 자리까지 마련해 줄 정도로 태연스러워진 그녀인데 그는 뭐가 그리 조심스러운 것일까. "가끔은 애들도 볼겸, 유천씨 집에 가 봐요." "알았어." "…혹시 두 사람 어색한 거에요? 그렇다면 어서 사이를 푸는게-" "그건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 아. …미안해." 유천과 자신의 사이의 어색함을 안 그녀가 나름대로 어색한 사이를 풀어주려고 한 말인데 그는 그만 실언 을 해버리고 말았다. 상관할 일이 아니라니, 마치 남을 대하는 듯한 이 말투. 그는 재 빨리 사과를 했지만 그녀의 놀란 얼굴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야 풀어졌다. 그녀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이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데…. 미안해요, 계속 간섭해서. 이러면 안 되는데…." "여보." "아, 당신 내 부탁 하나 들어 줄 수 있어요?" 힘 없는 미소를 싹 지워버리고 어느새 밝은 미소를 한가득 담은 그녀는 그에게 말했고, 그는 무슨 부탁이 라고 묻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그에게 별 거 아니라고, 집에 가면 화장대 둘째 서 랍을 열면 서류봉투가 나오는데 그것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단순한 부탁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 며 차키를 집어 들었다. 바로 가지러 갈 생각인가보다. 그는 다녀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갔고 혼 자 남은 병실에서 미야는 딸기가 담긴 그릇을 옆에 두고 편하게 누워보았다. 그리고는 새 하얗기만 한 천 장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른 입술로 중얼거렸다. "잘했어. …아주 잘 하고 있어, 권미야." ≠ "이 녀석…." 윤호의 표정이 살짝이 구겨졌다. 미야가 부탁한 것을 들어주기 위해 집으로 왔더니 현관문 앞에 떡하니 앉 아서는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유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더 것이다. 아직 날씨가 차가운데 이렇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고 있는 모습이라니. 어떻게 이런 건 나이를 먹어도 바뀌지 않을 까, 라는 생각에 윤호는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유천의 앉은 키에 맞춰 몸을 숙이고 앉았다. 감은 눈 은 띄일 줄 몰랐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하고서는 이렇게 자고 있는 모습이라니. 정윤호에게 있 어 박유천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일단 깨우자, 라는 생각으로 그를 흔들었다. "박유천, 유천아." "…아… 너…." 시야가 흐릿한 듯 몇번이나 깜빡이고 나서야 유천은 윤호를 알아보는 듯 '너'라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나 른하게 풀려버린 눈꺼플은 도통 완벽히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저런 눈빛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 해 버린 윤호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유천도 조금 비틀 거리면서 몸을 일 으키더니 어지러웠는지 잠시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 어디 아픈거야?" "…아, 그냥. 감기 기운이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는데 코감기 약이라 그런지 잠이오네." 어쩐지 목소리가 많이 잠겨있다 했는데 그는 감기라했다. 감기인데 이렇게 찬 시멘트 바닥에서 자다니. 윤호 는 그에게 따뜻한 유자차라도 줄 생각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보통사람보다 조금 뜨거워진 체온 이 윤호에게까지 느껴졌고, 윤호는 들어오자 마자 유천의 이마를 짚었다. 미세한 열이 있다. 유천은 그의 행동이 어색하게만 느껴져 슬쩍 몸을 뒤로 뺐고, 윤호도 그런 유천의 모습에 더 이상은 아무런 행동도 취 하지 않았다. 윤호는 미야가 말한 곳으로 몸을 옮기며 유천에게 소파에 앉아있으라고 말한 뒤 방으로 가서 미야의 화장대 둘째 서랍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녀가 서류 봉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긴 했지만 크게 의심은 하지 않고 방밖으로 나왔다. 방밖으로 나오자 유천은 그새 소파에 몸을 눕힌 체 눈을 감고 있었다. 약 기운 때문에 제 몸도 추스리지 못 하는 유천을 보니 자신이 챙겨주고픈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그 날 유천에게 지금은 안 된다고, 이 후에 사랑하자고 말해버렸는 걸. "유천아, 박유천. …많이 아픈거야?" "…아니…, 계속 잠이 와서…." 억지로 앉은 유천의 눈꺼플은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였다. 감길 듯 말듯한 눈에 윤호는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는 미야가 부탁한 서류 봉투를 손에 쥐고 일어서며 말했다. "집에서 좀 자고 있어. 나중에 데리러 올게." "…안 돼. 애들 기다리고 있어. …유환이 내외한테 애를 맡겼는걸, 데리러 가야해." 그러면서 억지로 잠을 물리치며 소파에서 일어난 유천은 하나도 힘이 없어 보였다. 윤호는 그에게 한번 더 집에 남으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사코 일어서며 가겠다고 했다. 결국은 그와 함께 집을 나서는 윤호였다. 미야가 부탁했던 서류를 확인하고 아이들의 옷을 가져 가려던 유천의 뜻대로 가방속에 아이들의 옷가지를 챙겨 유천에게 안겨주었다. 짐들을 뒷좌석에 놓고 조수석에는 유천이 탔다. 윤호가 차에 오르자 그는 안전 벨트를 매고서는 아까처럼 죽은 듯이 눈을 감았다. 차에 시동을 걸던 그는 유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거기 앉아있었던 거야?" "…기다리면… 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어리석은 놈." 윤호의 말에 유천은 어렵사리 입꼬리만 올리며 피식, 웃어보이고는 다시 잠잠해 졌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푹 쉬는게 최고인데 한참 말 안들을 시기인 6살짜리 꼬마와 손 많이 가는 1살짜리 아기를 맡긴 것이 화근 이었나 보다. 퇴근시간이라 한참 막히는 도로에서 신호를 받던 윤호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유천을 바라보 았다. 불편하게 창문에 기대어서 잠들어 있는 모습이라니. 정말 안 챙길래야, 안 챙길 수 없는 사람. "…윤호야." 잠들어 있을거라 생각한 그의 입에서 제법 부드럽고, 많이 가라 앉아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져 나왔다. 그 는 윤호를 불렀고, 윤호는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신호가 바뀌는 바람에 윤호는 다시 시선 을 정면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한참이나 끊긴 말을 잇지 않았다. "…윤호야. …너는- 너는 조금만 더 있다가 사랑하자 했는데…. 그랬는데… 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어. …내 심장이 다시 반응할까봐… 예쁜 부인과 귀여운 아이들과 잘 살아가고 있는 너한테… 다시 반응할까봐 더 피해왔던 걸지도 몰라. …너는 조금만 더 있다가 사랑하자 했는데… 난 이미 다시 시작했어. …그래서 미안." 유천의 말이 끝마침과 동시에 윤호는 그대로 차 방향을 바꾸었다. 차의 흔들림에 눈을 뜬 유천은 윤호의 차가 더욱 깊은 어둠속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어디로 가느냐고 윤호에게 물었고 윤호는 말 없이 더욱 깊은 어둠속으로 차를 몰고 들어 갈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가 멈췄고 유천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이 곳이 어딘지 확인하려는 듯 했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주변에 포기하고 윤호를 바라보았다. "어서 돌아 가자, 미야씨 기다리잖… 흐읍-" 미야가 기다린다고, 돌아가자고 말하던 유천의 입이 막힌건 한순간이었다. 윤호가 운전석을 넘어 조수석 에 와 유천에게 입을 맞춘 것이었다. 코감기 때문에 코로 숨쉬는게 불가능한 유천이기에 입을 벌였고 그 틈으로 재빠르게 윤호의 혀가 들어왔다. 마침내 의자가 뒤로 넘어가고 유천은 감기약과 진한 키스로 인해 나른해진 얼굴로 윤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자신의 위에 올라타고 있는 윤호의 목에 팔을 감고서는 눈을 감았다. 윤호는 그런 그의 모습에 다시 입술에 진한 키스를 하며 그의 겉옷을 하나씩 벗겼 다. 그리고는 유천을 향해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유천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 벌써 11시다.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한 윤호는 옆에 누워 잠들어 있는 유천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약기 운 때문에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던 그가 불과 한시간 전 격렬한 정사로 뻗어버린 것이었다. 차 안은 윤호 가 히터를 튼 바람에 더울 정도로 따뜻한 공기가 돌았고, 유천의 몸 위에는 윤호의 재킷 하나만이 덮어져 있었다. 윤호는 팔을 뻗어 잔뜩 웅크린체 잠들어 있는 그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더나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 께 뒷 좌석의 서류를 들고 내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까지 잘 잠근 그는 차안이 어둡도록 차의 조명까 지 끄고 병원건물 쪽으로 향했다. 병원을 나선지 6시간이나 지났다. 그는 조금 걸음을 재촉하며 병실 앞에 섰고, 이내 문을 열었다. 병실안 에는 잠든 아내가 있었고 윤호는 허리께까지만 덮여있는 이불을 목까지 덮어주었다. 그때 그녀의 눈꺼플 이 들어올려 지면서 이내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미안, 많이 늦었어." "…아니에요. 유천씨 집에 들렸다 온 거예요?" "…으응." 그건 아니지만 이때껏 유천과 보냈으니 윤호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섭 섭해 하기는 커녕 잘했어요, 라며 웃더니 그의 손에 들린 서류를 받아들었다. 이때껏 그 서류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그는 그녀에게 무슨 서류냐고 물었고 그녀는 봉투속에서 하얀 종이들을 꺼내며 말했다. "이혼 서류요." "…뭐?" "한쪽이 깨끗하게 정리 되지 않으면 계속 불편할 뿐이에요. 그날 줬어야 했는데 갑작스럽게 심장이 발작하는 바람에…. 자, 여기 당신 도장만 찍으면 돼요. 그럼 이거 좀 접수…"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윤호는 그 서류를 뺏어 들어 반으로 찢어버렸다. 그녀는 커다란 눈으로 그 를 바라보았고, 그는 그녀를 향해, 이런 건 필요없다고 말한 후 쓰레기통에 찢어진 이혼 서류를 집어 넣었 다. 아마 그녀는 유천과 윤호를 만나게 해 준 날 윤호가 집에 오면 이 서류를 내미려고 했던 모양이다. 비 록 자신이 쓰러지면서 서류를 내밀게 된 시기가 조금 늦어졌지만 처음보다 덜 어색해진 윤호와 유천의 관 계를 느끼며 지금이 적당하다고 생각한 미야였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박유천이라 해도… 아이들 엄마는 당신이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잔인해요, 당신. …하아- 하지만, 이건 다 당신 선택이에요. 난 당신이 이혼 하자면 이혼 해 줄수도 있고, 이혼 하기 싫다면 이혼 안 할 수도 있는 사람인걸요. 당신 뜻이 그렇다면 이혼은… 없던 걸로 해요." 그녀의 말에 그제야 잔뜩 굳어졌던 윤호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그것으로 끝아 아니 었다. 그녀의 말은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내 옆자리가 아니에요. …난 휘은이, 휘연이 엄마로 살아줄 수 있지만 더 이상 당신의 아내로는 살아 줄 수 없어요. …이제는 남을 속이는 짓 그만하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당신 옆에 데리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둬요. 그리고… 이제는 행복해져요, 여보. …난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어요. 유천씨는 가능할거야, 그래서… 그래서 내가 이렇게 믿고 보내는 걸요. 당신과 이혼 안 하는 조건이야…. 유천씨하고 같이 살아요…, 다시 유천씨하고 사랑해요. 이제… 이제 주위 시선같은거 신경쓰지 말고… 두번 다시는 실수같은거 하지말고… 행복해져요. …그게- …그게 당신이 나에게 받친 일주일 동안의… 마지막 소원이야." 불꺼진 병실에서 그녀의 얼굴은 환한 달빛으로 더욱 아름다워 보였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그녀의 눈물 과 그녀의 미소는… 한 없이 슬펐던… 그런 밤이었다. ────────────────────────────────────────────────── 5월 12일!!! 두둥, 12시 전에 완결을 낼 것인가, 쿨럭;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2] 그녀가 윤호를 완벽히 떠나 보내기로 맘 먹은 그 날로부터 3일이 흘렀다. 그녀가 수술하기 전까지 쉬기로 했던 윤호는 생각보다 빨리 의사 일에 복귀했고, 유천과의 동거도 시작되었다. 그 날 서로의 남은 사랑을 확인 해 버린 그들은 현재 어색함을 극복하는 중. 7년의 공백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해서 한번에 없어 지는 건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서로에게 적응해 가는 그들의 모습은 그 어느 커플 들 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녀는 수술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창백한 낯빛으로 괜찮다고 웃어보이며, 오히려 주윗 사람들을 안심시키며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윤호는 수술하기 하루 전 날 밤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고 있었으며, 그녀의 고마움을 아는 유천은 윤호에게 그녀 를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해주며 그녀의 안부를 걱정했다. 그녀는 장작 7시간에 걸린 대 수술을 치뤘고, 다행히 성공리에 마쳤다. 여섯명 정도의 의사가 먼저 나오고 얼마 안 되어 간호사들에 의해 그녀가 실려나왔다. 들어 갈 때보다 훨 창백해진 얼굴이 안타깝기 그지 없 지만 성공리에 마쳤다는 소리에 한숨 돌리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수술한 지 24시간이 지나가도록 미야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의료진들은 불안함에 몇 번이나 그녀에게 왔다, 갔다. 그럴 수록 그녀의 부모님과 응급실에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윤호는 그녀가 깨어 날 때까지 계속 긴장감에 시달려야했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뜬 것은 모두가 잠 들고, 병실을 떠나 버린 새 벽 3시. 그때 마침 응급실에서 시달리다 잠시 빠져나와 그녀의 병실을 들린 그가 그것을 알아채고 야간 의 료진을 불렀고, 졸다가 달려온 의사들은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고 양호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링거 액을 갈 아 끼웠다. 몇일동안 그녀로 인해 신경이 곤두 서 있던 의사들은 하나씩 잘 됐다며, 피곤함 속에서도 미소 를 지었고 이내 후배뻘 되는 윤호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돌아갔다. ≠ "엄마!" "우리 휘은이 왔어?" 밝고 쾌활하기만 하던 그녀는 수술 뒤 마치가 풀려서 그런지 깨어난 뒤 몇 시간 씩이나 계속 앓았고, 지금 은 통증에 힘이 쏙 빠진 목소리로 아들을 반겼다. 3주 정도만에 보는 아들의 모습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품 에 안고서 작은 입맞춤이라도 해 주고 싶지만 몸이 너무 아파서 그래 줄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 었다. 처음 들어올 때는 "엄마!"하고 큰소리로 외치고 들어오던 휘은이는 이내 창백해지고 입술이 다 갈라 지고 보기만 해도 아파 보이는 제 엄마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무서워져서 유천의 바지 자락을 꾹 잡고 그 의 뒤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휘은의 모습에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던 유천은 오셨어요, 하고 인사하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꾸벅여 인사를 하고는 휘은을 품에 안고 미야에게 다가왔다. "많이 아프죠?" "…뭐, 그렇죠." "휘은아, 엄마한테 가 볼래?" 엄마한테 가 볼래, 라고 묻는 유천의 말에 휘은은 한참이나 제 엄마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유천의 품에 꼭 안긴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말했다. "휘은이가… 유천씨를 많이 좋아하게 됐나보네요…." "미야씨." "…정말… 정말로 다행이에요." "………." "…유천씨 얼굴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정말 보기 좋아요." 유천은 미안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원래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고 들어선 건 아닌가, 하 는 미안함이 뼈까지 시리게 하는 것 같았다. 유천은 휘은을 내려 놓고 1000원을 쥐어주면서 밖에 자판기 에서 휘은이 마실 음료수를 사 오라고 하자 휘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로 향했 다. 휘은이 나가고 나자 병실에는 시계 돌아가는 소리와 가습기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유천은 그녀를 바 라보았다. 수척해진 모습이 마냥 안타까웠다. 그리고…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니요. …내가 더 미안해요. 진작에 이랬음 좋았을텐데- 하아, 그러면 이렇게 다 좋은걸…. 다만… 유천씨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유천은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는 듯한 의지를 내세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대답에 미 야는 힘이 다 빠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에요…. 전… 그이한테 절대로 해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구요. …나랑 사는 동안 그이 많이 힘들어 했어요. 그만큼… 저한테 충실해져 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래서 더 많이 상처 받았을 거에요. …이제 유천씨랑 그이랑 다시 이어졌으니까- 그러니까- …이제는 그이 행복하게 해줘요. …진심으로 웃을 수 있게." "………." "예, 유천씨? 그래 줄 수 있죠?" "…예." 그녀의 슬픈 목소리에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입술을 꽉 깨물고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만족한다는 듯 그녀는 싱긋 웃어보였다. 거기서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후로도 유천 에게 많은걸 부탁했다. 이제 내년부터 학교에 들어 갈 휘은이도, 아직 어린 휘연이도…. 그녀는 의지할 존 재인 아이들 마저도 유천에게 부탁했다. …정말 모든 걸 다 떠나 보내고 사라질 사람처럼 말이다. 그녀의 부탁을 하나, 하나 듣고 있던 유천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졌다. "…그 모든걸… 다 저한테 떠 맡기시면- 미야씨는… 미야씨는 어쩌실 겁니까?" "…시골쪽에 집을 하나 얻었어요." "………." "병원에서 협심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나서부터 엄마랑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녔어요. 나중에 내가 혼자 지내도 될 집…. 우리 아이들이 놀러와도 뛰어 놀수 있는 집…. 유천씨와 그이가 놀러와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집. …주치의가 한명 붙을 거에요. 나 이래뵈도 참 계산적이죠? 여자가 너무 계산 적이면 그리 예쁨받지 못할텐데 말이죠…."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유천은 결국 눈물 한방울을 떨구어 냈다. 그리고는 여전히 고운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조심히 감싸 잡았다. 세게 잡으면 부러질 것만 같은 손을… 유천은 조심히 감싸 잡았다. 미야는 유천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희미하게 웃었다. "…많이 울어줘요. …울어줘요, 유천씨. 나는… 나는 울 수 없으니까… 유천씨가 나 대신… 아주 많이 울어줘요. …난 웃을테니까… 유천씨는 내 몫까지 울어줘요. 그리고… 그 뒤부터는 내 몫까지… 아주 많이 행복하고 밝게 살아줘요. 이게 지난 7년간… 유천씨와 그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저의 보상이에요." "…흐… 흐윽- 미야씨…, 흐읍- 미안… 너무 미안해요…." 울 수 없는 그녀 대신 그는 한참이나 울었다. 끝까지 미소짓는 그녀를 위해 계속… 한 없이 울었다. 그녀는 우는 유천을 보며… 여전히 미소를 띄우며… 너무나 슬픈 미소를 띄우며 유천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행복해 져야해요…. 행복해지는 거에요, 유천씨. …행복해야 해요." ≠ "아빠, 아빠! 나 아저씨한테 안 말하고 나왔는데 괜찮아?" "…응, 괜찮아." "나중에 혼나면 아빠가 대신 혼나줘야 해!" "그래…, 아빠가 대신 혼나줄게." 그녀의 병실에 들리려다가 자판기 앞에서 돈을 제대로 넣지 못 해 끙끙 거리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보고 유천이 와 있다는 것을…, 일부러 휘은을 내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유천과 미야가 언젠가는 해결 해야할 일이기에 윤호는 그대로 휘은을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공원을 돌 던 그는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휘은에게 물었다. "휘은이는… 엄마 없어도 살 수 있어?" "엄마가 왜 없어?" "그냥…, 엄마가 저 멀리… 잠시 여행을 가신다면 아저씨랑, 아빠랑, 휘연이랑 우리 휘은이랑… 이렇게 네명 살 수 있겠어…?" "음- 엄마는 같이 살면 안 돼?" "엄마는… 엄마는 잠시 여행을 떠날거야." 그 작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휘은은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조차 먹지 않고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윤호는 괜시리 서글픈 미소를 지워내며 밝은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나는 엄마도 좋고 아저씨도 좋아! 그래서 아저씨랑 살아도 좋은데, 그래도 엄마가 좋아!" "…앞으로 한달에 딱 한번만 엄마 볼지도 몰라. 그래도 우리 휘은이 괜찮겠어?" "한달이 많아?" "열밤 자고… 또 열밤 자고… 또 열밤 자면 한달이야." "그럼- 그럼 한달에 10번 보면 안돼?"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고 써 내던 휘은에게는 엄마를 그렇게 긴 시간동안 딱 한번씩 밖에 볼 수 없 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휘은의 물음에 윤호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냥… 그냥 엄마가 보고 싶을때마다 찾아가자. …엄마가 심심하지 않게- 엄마가 좋아하는 예쁜 꽃이 피는 화분 사들고… 엄마한테 가자. 그리고 잠도자고… 여행도 가고 하는거야. 아빠랑, 엄마랑 우리 휘은이, 휘연이랑… 아저씨랑도." "응! 좋아! 바다로 놀러가자, 아빠! 응?" 윤호의 말에 화사하게 웃는 휘은의 모습은 영락없는 그녀다. 기뻐하는 휘은의 모습에 윤호는 작게 눈을 휘 며 웃어본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며 아들의 손을 잡았다. "자- 엄마하고 아저씨 있는데 가 볼까?" "응!" 아빠 손을 잡고 열심히 앞, 뒤로 흔들며 동요까지 부르는 휘은의 모습에 윤호는 또 한번 웃어본다. 어른들 의 선택때문에 이 작은 아이가 혹여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무 (無)의 상태에서 어른들을 받아들여주는 이 작은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윤호는 웃음 짓는다. '우리 모두 행복해지자.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자.' ────────────────────────────────────────────────── 결국은 12일날 완결을 못냈군요, 쿨럭; 저희 언니가 약속도 못 지키는 작가따위 죽어! 라고 외쳤지만 꿋꿋이 살고 있습니다(퍼억) 후후; 죄송하구요; 감상 답변은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ㅠ; 아아- 정말, 권태기 다음 소설은!!!! 학원물로 써 버릴겁니다!!!(쓰긴 쓸거냐;) 완결 못내서 다시한번 죄송하구요ㅠ 111편 감상 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하고 또 너무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3] 수술 후 한달 가량 더 입원 해 있던 그녀는 마침내 퇴원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집에 온 그녀는 일주일동 안 남편,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기로 했다. 미야가 병원에 있는동안 계속 유천의 집에서 생활했던 휘은은 오랜만에 집에 온 게,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있다는게 마냥 좋은 모양인지 일주일간은 아침에 유치원에 가 기 싫다고, 엄마랑 계속 있을거라고 칭얼거리는 바람에 그녀는 애를 먹기도 했다. 그녀는 유천에게도 같이 지내자 했지만 유천은 그녀의 제의를 거절했다. 일주일 후면 떠날 그녀에게 가족과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그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알때, 그 기분은 그 누구보다 유천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미야에게 윤호를 떠나보냈었고, 속앓이를 했다. 단, 미야는 차분하고 준비성있게 행동했다 치면 자신은 차 분함이 없었다는 것, 그 차이였다. 몇달간 일을 쉬었던 유천은 이번 수출건 때문에 외국 지사에 나가게 되 었고 마침 이번 일주일 동안 다녀오는 거라 별무리 없이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유천은 귀국했고 그녀는 가족과의 행복한 일주일을 마감했다. ≠ "유천씨, 나중에 꼭 놀러와야해요." "그럴게요. 꼭 갈테니까… 너무 자주 온다고 문 걸어 잠그면 안 돼요-" "하하, 그럴리가요- …기다릴게요." 윤호가 차 트렁크에 미야의 짐을 싣는 사이에 유천과 미야는 짧은 작별인사를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작은 농담이 오, 갔고 이내 둘은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녀는 유천의 품에 안겨 자고 있는 자신의 딸을 보며 아프 지 않게 딸의 통통한 볼살을 꼬집으며 말했다. "이 녀석, 엄마가 가는데 자 버리네?" "아까 계속 울었잖아요. 피곤할거에요." 어린 아기가 뭘 아는지, 휘연은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계속 끊임없이 울었다. 안고 달래도, 우유를 물려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줘도 계속 울어대다가 결국은 제풀에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딸의 볼을 어루 어 만져주던 미야는 속으로 '행복해야 한다, 내 아가야….'라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이번엔 유천의 바지자락을 꽉 쥐고 뒤에 숨어있는 휘은의 키에 맞춰 몸을 굽히고 앉으며 유천의 바지자락을 꽉 잡고 있는 작은 손을 잡았다. "휘은아…." 엄마의 부름에도 휘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그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서 뚝뚝 흐를 것만 같 았고, 미야는 그런 아들을 꽉 안아주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미안하지 않더라도- 이 작은 아이에게는… 자 신의 작은 아들에게는 너무 미안하기만 한 그녀였다. 남자는 우는 거 아니라고, 아빠한테 배웠다고, 그래 서 자신은 울지 않겠다고 말하던 휘은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불과 몇일 전에 자랑하듯 미야에게 와서 휘은이 한 말이었다. 휘은은 지금 자신의 엄마에게 했던 그 말을 지키려고 큰 소리로 울지 못하고 그저 입 술만 꽉 깨물고 눈물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어린 아들의 모습이 마냥 안타까워 미야는 아들을 안고 "엄마가 미안해."라고 말하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여보, 출발 할 시간이야." "그, 그래요. …가야겠죠." 짐을 다 옮겨 실은 윤호가 트렁크 문을 닫으며 말했고, 그녀는 고개만 돌려 그를 바라보며 쓸쓸한 목소리 로 중얼거렸다. 지금 출발해서 윤호네 집과 미야네 집에 들려 어른들께 인사를 한 후 그대로 떠나야 한다. 아직 완전히 나은건 아니기에 미야 어머니가 미야와 함께 한달간 살기로 하고 시골로 내려가게 된 것이었 다. 지금쯤 출발하면 인사하고 나서 초저녁 쯤엔 출발할 수 있다. 미야는 품에 안은 아들의 이마에 짧은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아들의 키에 맞쳐 굽혔던 몸을 바로하 고 일어섰다. 그녀의 치마자락이 부는 바람에 흔들렸고 아들은 멀어지려는 엄마의 모습에 결국 눈물을 흘 리며 유천의 바지자락을 더욱 꽉 잡았다. 유천은 자신의 바지자락을 잡는 힘이 느껴져 휘은을 바라보았고 휘은의 모습에 고개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가 울음을 참는 모습이란- 말할수 없는 슬픔이었다. "옷은 따뜻하게 입었어?" "그럼요. …어서가요." 그녀의 겉 옷을 여미어 주며 그가 물어보자 힘들게 대답한 그녀가 뒤에서 들리는 어린 아들의 흐느끼는 소 리에 어서 가자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며 조수석 문을 열어주어 그녀가 타게 하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 녀는 창문을 내려 아들을 바라보았고, 휘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유천의 옷을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잡고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휘은아! …휘은아! 나중에- 나중에 휘연이랑 꼭 놀러와! 엄마한테 꼭 놀러와야 해! 엄마가… 엄마가 우리 휘은이 좋아하는 거 많이 만들어 놓을게." "………." 휘은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하지만 그 어린 몸은 벌써 부들부들떨리고 있었다. 윤호는 그런 아내와 아들 의 생이별하는 모습에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뜬 뒤 차를 출발 시켰다. 차를 출발시키자 그제야 휘은은 유천 의 옷자락을 놓고 떠나가는 아빠의 차를 따라 열심히 달렸다. "엄마!!!!! 엄마!!!!!!!! 엄마!!!!!!!!!!!!!" "휘은아!" 유천이 붙잡기도 전에 달려간 휘은은 아파트가 떠나갈 듯, 큰 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열심히 차를 쫓았다. 윤호는 백미러로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애써 아픈 마음을 꾹 누르며 속력을 높였다. 미야는 고개를 내밀어 멀어지는-, 자신에게 달려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 로 아들에게 외쳤다. "사랑해!!!! 사랑해, 휘은아!!!!!!!! 엄마가 항상 기다릴 거니까!!!! 꼭 놀러와야해!!!!" "흐아아앙- 엄마아- 흐아아아앙-" 결국 넘어져 버린 휘은이 더 이상 제 엄마를 쫓아가지 못 하고 주저 앉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야도 내빼던 고개를 안으로 집어넣었고 그와 동시에 차는 코너를 돌아 큰도로로 나가버렸다. 넘어져서 숨이 넘어갈 듯 울고 있는 휘은의 모습에 유천은 급히 다가와서는 한 팔에 휘연을 안고 나머지 한팔로 휘 은을 일으켜 세워 품에 끌어 안았다. "휘은아, 울지마. …아저씨랑 나중에 꼭 엄마한테 놀러가자. 그러니까… 그러니까 울지마." "흐아아아앙-" 유천의 어깨에 작은 고개를 묻고 한참이나 울었다. 유천은 그런 휘은이 안타까워 작은 아이를 꼭 감싸 안 았다. 제 오빠의 우는 소리에 깬 휘연 역시 휘은이처럼 한참이나 울어댔다. 유천은 그런 아이들을 겨우 달 래어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들이 가고 난 자리에는 쓸쓸함만이 묻어났다. ≠ "…여보, 괜찮아?" 신호를 받고 있던 윤호가 손수건을 건네어 주면서 아직도 훌쩍이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수건을 받아들어 눈가를 닦았다. 그때 신호가 바뀌고 차는 다시 움직였다. 겨우 진정한 그녀는 빠르게 지나 가는 도시 배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휘은이- 1년간은 데려오지 마요. 1년간은… 떼 써도 데려오지 마요. …나 없어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는 강한 아이가 될 수 있게 데려오지 마요. …그리고 그 다음 해부터는 꼭 데리고 놀러와줘요. …우리 휘은이 볼 수 있게 꼭 데리고 놀러 와 줘요." "그래. …그럴게. 방학이 되면 다 같이 놀러갈게. …반갑게 맞아줘야해." 그의 말에 그녀는 아직도 눈물이 선한 눈으로 싱긋 미소지으며 답했다. "당연한걸요. …그러니까 당신도 유천씨랑 꼭 와야해요." "그래…." 그렇게 그녀는 도시를 벗어 날 준비를 마쳤다. ────────────────────────────────────────────────── 왜 휘은이와 미야씨의 이별 장면에 글을 쓰던 제가 울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울었달까요. 예전에 S.V 외전쓸 때 선우씨와 어머님의 슬픈 이별을 쓸때도 눈시울을 붉혔지만. 언제나 어머니와 생이별 장면을 쓸 때는 저도 모르게 제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나려합니다. …항상 고마운 분이십니다, 어머니는. 아마 다음편 정도에 완결이 날 듯 하군요. 끝까지 지켜봐주세요(笑) http://www.cyworld.com/x_world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4] 5월 5일 어린이날, 놀이공원. "당신은 여기서 쉬어요." "그러는게 좋겠어." "칫, 아빠 바보-" "채윤아!" 딸아이의 놀림에 그는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딸아이를 혼내려는 아내에게 상관없다는 듯 웃어보이고 는 손을 흔들어 보인다. 방금 전 딸 때문에 롤러코스터에 타서 몇바퀴나 돌고 온 그는 안색이 좋지 못했다. 손을 흔들어 보인 그는 "잘 다녀와-"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아내는 짐을 남편에게 내려 놓으며 그럼 다녀 오겠다고 말한 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또 한 아이 가 다가온다. "아빠, 엄마랑 채윤이는?!" "저기-, 저기 줄 서 있네. 그리고 채윤이가 뭐야, 누나지." "애들이 왜 채윤이한테 누나라 부르냐고 놀린단 말야! 아빠는 안가?" "응, 아빠는 안 가." 그러자 아이는 제 아빠의 안색을 살피더니 한껏 깔보는 말투로 "아빠는 그것도 못타?"라고 한껏 비아냥 거 리고는 제 엄마와 제 누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나마 하나 남은 희망이었던 아들에게조차 버림받은 그는 상처 받았다는 식의 표정을 한껏 짓더니, 이내 아내가 사 주고 간 시원한 탄산음료를 들이킨다. 거북 하던 속이 그나마 가라 앉는 것 같다. 그는 반쯤 남은 음료수 병을 손에 쥐고 자신의 가족이 있는 쪽을 바 라 보았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아들과 딸은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입을 쉴새 없이 연다. 저 조그만 입에 서 어찌 그리 상처되는 말만 내 뱉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말은 지독시리 안 듣지만 귀여운, 아직 5살 밖에 안된 어린 쌍둥이들과 착하고 고운 아내. 그리고 그런 가 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신. 그야말로 행복한 가족의 표본이라 생각한다. 다만 결혼을 늦게 해 자신의 나이가 아이들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게 미안할 뿐이다. 이럴줄 알았음 진작에 결혼이나 할걸, 이라고 중 얼거리던 그가 또 한번 시원스런 미소를 지어본다. 그 특유의 미소. 쌍둥이를 낳고부터 더 많이 지어지는 미소다. 그래, 이게 행복이다. '나는 행복하다. …넌… 넌 행복하냐? …행복할 거다. 너는 꼭 행복할 수 있을거야.' 벤치에 앉아 쉬는 그의 귓가에 한 가족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아, 빨리-!" "알았어, 알았어." "여기서 기다릴테니까 영원이랑 빨리 화장실 다녀와-" "알았어요. 가자, 영원아." 아이가 화장실이 급한 모양인지 이내 옆에 있던 가족은 남편만 홀로 남겨두고 딸아이와 아내는 급히 화장 실로 향하는 듯 했다. 그는 왠지 옆에 홀로 짐을 떠맡은 체 남겨진 남편의 처지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어디까지나 상황은 틀리지만) 괜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어떤 화목한 가정의 가장인가 싶어 얼굴을 보는데…. "이… 선우." "………!" 익숙하면서도, 몇년간 불러보지 않은 탓에 낯선 그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동시에 짐을 맡은 체 화장실에 간 아내와 딸아이를 기다리는 '그'의 고개가 돌려졌다. 그러더니 이내 놀라움이 가득한 눈을 한 체 동그랗게 눈을 뜬다. "…다, 당신…." '당신'이란, 익숙하면서도 낯설어진 호칭. 오랜만에 그에게서 듣는 저 호칭. '이선우'를 부른 '심창민'은 놀라움도 잊은체 활짝 웃으며 그에게 손부터 내밀었다, 반갑다고. 창민이 내민손을 얼떨결에 잡아 악수까 지 나눈 선우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창민은 그에게 "어린이 날이라서 가족끼리 놀러 온 거야?"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여전히 그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창민이 피식- 웃더니 그 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툭 쳐준다. "정신차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나 만나기 싫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놀라워서." 여전히 벙한 그의 대답에 창민은 또 다시 씨익 웃어본다. 6년전이랑 다름이 없구나, 란 생각에. 아니, 정확 히 말하자면 13년 전 그 모습과 다름이 없구나, 란 생각에 말이다. 6년전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은 창민, 자신의 결혼식 때 였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락을 끊자고 말한것도 아니었는데 자연스 레 연락이 끊겼던 걸로 기억한다. 창민이 다시 연락하려 했을때, 이미 전화번호는 다 바뀐 상태였다. "좋아 보인다. …엄청 좋아보여." "…좋아… 요. 좋습니다, 그때 당신과 사랑하지 않았던게." "훗-, 그래." 그의 대답에 창민은 짧게 웃어보이며 대답했다. 창민의 나이 39, 그의 나이 34. 이제는 정말 중년이 따로 없다. 이제는 총각티가 더 이상 나지 않고 누가 봐도 애 하나쯤은 있어 보이는 중년의 티가 난다. 그들은 서로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어본다. 선우는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행복해서 좋아요. 당신과 함께 하지 않아도 행복은 오네요." "…그러게." "이것도 꽤 괜찮지 않아요? 중년 돼서 만나는 만남." "바람이라도 피자고?" "설마요."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가 된 대화에 그들은 또 한번 피식, 웃어본다. 그때 선우의 시야에 아내와 딸아이 의 모습이 보이고 선우는 짐을 챙겨들고 일어서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어 창민에게 내민다. "바람 피자는 의미로 알아들어도 돼?" "형도 현재는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그럴수는 없을건데요."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이는 모습은 총각때의 모습과 다름 없다. 변함없는 그의 모습에 창민은 씨익 웃으 며 그의 명함을 받아들어 챙긴다. 그는 창민에게 손을 내밀었고, 창민은 아무 거리낌없이 그의 손을 잡았 다. 그는 처음과 달리 여유로운 미소까지 띄우며 창민에게 말했다. "이제는 만나도 돼요. 이제는 둘 다 행복하니까. …연락해요, 언제 술이나 하죠." "그래. 이제는… 둘 다 행복하니까." "그럼요. …형 미소가 '나 행복해 죽겠다'라는 미소라 배 아픈데요?" "하하, 그정도야? 티 안나려고 노력했는데. 너야말로 행복해 죽으려는 것 같아 배가 다 아프다." "…아, 집사람하고 애과 와서요. …그럼 전 이만." 창민의 농담에 큰 소리 없이 웃어보이던 선우는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는 아내와 딸아이의 모습에 간단히 고개를 숙이고 딸아이와 아내에게 달려가는 선우의 뒷모습을 보는 창민의 눈빛은 더 이상 쓸쓸한 눈빛이 아니다. 오히려 저렇게 밝은 모습에 뿌듯하다는 눈빛까지 섞여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놀이기구를 다 타고 다가오는 가족의 모습에 그는 한껏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는 다가오는 가족들을 보며 혼자만이 들을 수 있도록 중얼 거린다. "우린 어쩌면 함께하지 않았기에…, 지금 더욱 행복할 수 있는 건지도 몰라."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는 엄마의 양손을 하나씩 잡고 오는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채윤아, 채한아!" "아빠-" 두 아이가 창민에게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겨들고 창민은 두 아이를 안고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예쁜 아내는 다소곳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창민은 그런 아내에게 찡긋, 하고 웃어보이며 걸음을 재촉한다. 이런 게 행복 아닐까, 라는 생각에 창민의 기분은 더욱 좋아진다. "사랑한다, 김채윤, 김채한! 사랑한다, 우리 마누라!" "나도!" "나도!" "어머, 여보. 다른 사람 쳐다보잖아요-" 얼굴을 붉히는 아내와 자신들도 아빠를 사랑한다며 아빠의 양볼에 각자 뽀뽀를 하는 아이들. 창민은 그런 아이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꽉 안고서는 빠르지 않게 걸음을 재촉했다. '행복해지자. …우리 더욱 행복해지자, 선우야. 너도…, 나도…. 우리 다 행복해지자. 그래서… 그래서 다 같이 웃자. …지금처럼만 행복해지자. 지금처럼 언제나-' 창민의 입가에는 그 어느때보다 화사하고 밝은 미소가 떠 올랐다. ────────────────────────────────────────────────── 새벽 3시에 자기, 아침 7시에 일어나기, 낮잠 안자기. 무리!!!!!! 으흐으으윽ㅠ 여러분; 미안해요-, 116편 완결입니다; 다음편엔 릭진 마무리입니다. 땡스투는 다음에, 쿨럭; 감상은 너무 감사히 잘 읽고 있어요! 여러분이 궁금하신 것은 제가 완결나고 나서 다 공지를 띄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완디 완결이었습니다(웃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5] 토요일 저녁 8시. 식사를 마치고 한가로이 남매는 tv를 시청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온다. 자연스레 남매의 시선은 안방의 문으로 향했고, 얼마 안 되어 쫙- 하는 소리까지 나자 남매의 두눈 동그랗게 커지며 서로를 마주보다 다시 문쪽으로 시선이 향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난지 얼마 안 되어 방 문이 열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한 우진이 나와서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신고 집을 나가버린 다. 남매는 조용히 tv를 끄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갈라져서 소년은 방금 우진이 나간 문쪽으로, 소 녀는 안방으로 향하였다. ≠ "아빠, 왜 그랬어요-" "…들렸어?" 창문쪽으로 몸을 틀어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재중에게 딸, 유희는 왜 그랬냐고 물었고 재중은 슬그머니 들렸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유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유희의 끄덕임에 재중은 한숨을 푹 내 쉬었다. 그리고는 담배 피울 기력도 없다는 듯 재떨이에 얼마 피우지 않은 담배를 비벼 끄고 속이 답 답한 듯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뒤를 돌아보며 딸에게 물었다. "화 많이 났겠지?" "무슨 이유때문에 두 분이 싸운지는 모르겠지만 맞았으니까 당연히 화나죠-" "어우, 이 놈의 손." 재중은 진을 때려서 후끈 거리는 자신의 손을 펴 보이더니 이내 주먹을 꽉 쥐며 악을 썼다. 그리고는 이내 힘없이 웃어보이며 자신을 보고 있는 딸에게 "안 좋은 모습 보여서 미안하다"라며 작게 사과했다. 그러자 딸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두 분은 사이가 너무 좋아서 이상할 정도였다니까요? 적어도 조금의 트러블이 있도록 사는게 더 인간적이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죠, 아빠?" "그래- 그런데… 손찌검은 좀 그렇다. 휴우, 찾으러 가야겠지." "됐어요, 유환이가 나갔어요- 지금 나가봤자 작은아빠 감정만 상한다구요-" 재중은 딸의 말에 한숨을 내 쉬더니 이내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고2이지만 성숙된 모습이 참 보기 좋으면서도 안쓰럽다. 고아원에 처음 입양을 하러 갔을때, 자신보다 한살 어리지만 많이 먹지 못해 빼싹 말 라 버린 동생을 옆에 두고, 손을 꼭 잡은 체 아이들을 살피던 재중과 진을 경계하던 그 소녀가 이제는 어엿 한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다. 7년전, 겨우 초등학교 4학년때였지만 초등학교 4학년 정도면 어느 정도 기억 을 가지고 있을 나이. 소녀는 아직도 고아원의 힘들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다정히 대해주는 진과 재중 에 경계심에 똘똘 뭉쳐있던 마음을 풀어냈다. 그리하여 어려울 것만 같던 사춘기도 고분고분 쉽게 넘어간 유희인 것이다. 처음에는 얌전하고 키우기 쉽다고 생각한 여자아이를 입양하러 갔었다. 자신들도 어느 정도 나이가 있기 에 너무 어린 갓난 아기는 무리다, 라고 생각했기에 고아원으로 몸을 돌렸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띄었던 작은 소녀와 소년. 안그래도 살이 안 찌는 체형이기에 말라있는데 고아원에서 주는 밥이 부족 해 한 없이 말라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던 그들이었다. 그래도 살아있는 눈동자에서 영리 함을 발견한 그들은 처음에 소녀만 입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동생을 아끼던 소녀는 그들의 집에 와 서 계속 앓기만 했고, 결국 소년까지 입양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자 다시 나아진 소녀는 지금 껏 쾌활하게 생활하고 있는 중. 일단 신분은 둘 다 남자고, 해외로 나가 혼인신고를 한 것도 아니기에 그들은 두 아이를 나눠 각자 호적에 올리기로 했다. 재중은 동생쪽인 유환을, 우진은 누나쪽인 유희를. 그래서 졸지에 성이 다른 친남매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닮은꼴 남매인 전유희와 문유환은 비록 성이 다르더라도 한 가정내에 같이 지내는 끈끈한 남매였다. 재중은 진과 자신이 싸우는 것을 걱정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안하기도 하면서, 이 아이들 을 입양해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때 다른 아이를 입양했었더라면 사춘기 시절, 자신들의 '일반인과 다른 사랑'을 이해하지 못 하고 그대로 삐뚤어져버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사실 유환인 15살때 진과 재중을 이해하지 못 하고 심한 반항기를 맞았다. 하지만 다행히 누나인 유희가 계속 달래고 달래어 바르게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진과 재중도 맘 고생을 이만 저만 한게 아니었 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을 신경쓰고, 더욱 자신들의 사랑에 조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말 다행히도 유환이 제 자리로 돌아와 줘서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그들이다. 한참 딸을 보며 지난 7년을 회상하던 재중은 그녀에게 슬며시 물었다. "왜 너네 아빠 안 들어오지?" "아빠, 나간지 겨우 10분 됐어요." "그런거구나-" "그러게 왜 싸웠어요-" 딸의 질책섞인 목소리에 재중은 그저 뒷머리만 글쩍일 뿐이었다. ≠ "아빠, 아빠! 작은 아빠!" 아파트 앞 공원 벤치에 두 다리를 모으고 깍지를 낀 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앉아있는 진에게 다가가는 유 환이다. 그의 앞에 다 다랐을 무렵에는 더이상 그를 부르지 않고 그의 옆에 가만히 앉았다. "화 났어요? 어디 좀 봐요- 볼좀 보자니까?" "으흑… 으흐흑-" 얼굴을 계속 가리는 그의 팔을 억지로 떼서 한손에 잡으니, 결국 우진은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런 그의 모 습에 유환은 한숨을 푹 내 쉬며 그를 다독여줬다. "흐으윽, 그 인간이- 흐윽…, 그 인간이 분명히 몇일째 서무과 여자랑 노닥거리면서…, 흐윽- 나보곤 맨날 일찍 가라하고 그러면서…, 흐으으윽- 그래서 좀 따진 것 가지고 뺨까지 때리고… 흐흑, 정말 내가… 내가 열받아서…, 흐아앙-" 결국 아들의 품에 안기며 큰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유환은 살이 없어 왜소한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울 지 말라고, 아빠가 잘못 했다고 위로해주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동안 재중에게 쌓인 불만 이 다 터지는 순간이었는 듯, 우진은 울면서도 쉴새없이 재중을 욕했고, 몇시간이나 되었을까…. 잠잠해 진 듯한 그의 모습에 유환은 품에서 살짝 진을 떼 보았다. 하지만 힘 없이 떨어지는 고개에 그가 울다 지쳐 잠 이 들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 진을 알고 피식, 웃고만 유환은 축 늘어진 진을 들쳐 업고 아파트 쪽으로 향 했다. 잠결에 자신의 목덜미를 끌어안는 진을 보며 또 다시 웃고만 유환이다. '이렇게 예쁜 사람을… 한때는 경멸했었지.' 사춘기 시절, 왜 그렇게 그들이 더럽게 보이고 악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한 지금은 자 신들을 거두어준 진과 재중이 이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부모되는 사람들한테 예뻐 보인다, 라는 말은 예의에 어긋나는 면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게 사실이고 현실이다. 예뻐 보이는건 어쩔 수 없는걸. 유환은 눈 앞에 보이는 아파트 입구에 씨익 웃어보였다. ≠ "아직 안 잤어요?" "…어떻게 자냐, 집까지 나갔는데." "그럴걸 왜 싸웠어요-" 딸하고 같은 소리 하는 아들의 말에 재중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업고있는 진을 정 혁에게 건네어주었다. 힘없이 늘어져 아직도 자고 있던 우진은 그대로 재중에게 안겼고, 유환은 씻고 자겠다 며 방으로 들어가려했다. 재중은 그런 유환에게 고맙다고 인사했고 유환은 뭐 그런것 가지고 고맙다고 인 사 하냐며 둘이 싸운거나 잘 해결하라며, 되려 어른같은 소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들의 모습에 잘 자라는 소리까지 해 주고 재중도 품에 안은 진을 고쳐 안으며 스탠드만 켜진 불꺼진 방에 진을 데리고 가 침대위에 눕혔다. 그리고는 얼마 안되어 자신도 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올라가 우진의 허리를 껴 안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우진의 몸이 재중의 품속으로 기울었다. 내심 흐뭇해진 재중은 아까 때려 부어버린 우진의 뺨을 매만졌다. 본의아니게 손이 나가는 바람에 미안하게만 됐다. "미안해." 그리고는 그의 훤히 들어난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해 주고나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행복한 연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우진은 먼저 침대에서 벗어나 출근하기 위해 씻고서 아침 식사를 위해 부엌을 분주하게 움 직였다. 그 사이에 아이들도 일어나고 재중역시 일어났다. 아이들이 학교 갈 준비한다고 바쁜 와중 재중은 슬그머니 싱크대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진의 뒤로 가서 우진의 허릴 껴 안았다. "뭐 하는거야? 놔, 바쁘니까." "화 났어?" "내가 화 안날만큼 성격이 좋아보여?" "미안해-" 됐어, 라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 하지만 그는 집요하게 우진의 허리를 끌어안아온다. 그럼 맘대로 해 보라며 놨두던 진도 아이들이 부엌에 들어오려 하자, 몇분전 했던 말을 취소하고 재중에게 당장 떨어지라며 난리 다. 그러나 재중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용서해주면 떨어지지-" "싫어, 내가 왜 용서해? 미쳤어?" "그럼 이대로 회사까지 가자." "작은 아빠, 밥이요-" "그, 그래- 어서 안 떨어져?!" 유환이 들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재중의 모습에 얼굴이 새빨개진 우진은 어서 떨어지라고 난리지만 재중은 여전하다. 무슨 뚝심인지, 정말 작정하고 덤벼든 듯 하다. 재중은 한팔로 우진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체 나머 지 한손으로는 우진의 부어있는(어제보다는 나은) 뺨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이내 입술을 그의 뺨에 갖다대며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너하나밖에 없는거 알잖아, 어제는 흥분해서. …사랑해. 정말 너만 사랑한다니까?" "………." 볼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촉에 우진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고, 가만히 식탁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 환은 그들의 모습에 야유를 하며 말했다. "아침부터 너무 찐한 거 아니에요? 그런건 밤에 하라구요-" "아, 알았으니까 어서 놔!" "정말?" "그래, 용서해줄테니까 어서 놔-" 그제야 재중이 떨어졌고, 재중이 떨어진지 얼마 안 돼서 유희가 왔다. 유희는 여느때와 같이 나란히 앉아 있는 진과 재중을 보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서는 옆에 앉아있는 동생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고 유환은 "아빠의 느끼하고도 찐한 애정으로 풀었어."라고 답했다. 그 말에 우진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면서 고 개는 푹 숙여졌고, 재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계속 식사를 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 "싫어- 아빠가 운전하면 뭔가 위험하단 말야, 작은 아빠가 운전하지." "이것들이, 아빠가 하룻동안 봉사좀 한다는데 왜 방해야?" 운전한다는 재중의 말에 아이들이 투덜거리자 재중은 큰 눈을 더욱 부라리며 뭐라했고, 아이들은 다시 투 덜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은 결코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이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 문이 닫히고 네명의 가족이 사는 집은 텅 비었다. 다같이 찍은 가족 사진. 유희와 우진이 찍은 사진, 유환과 재중이 찍은 사진, 재중과 우진이 찍은 사진, 유희와 유환이 찍은 사진. 얼마전까지 맛있는 냄새가 새어 나오던 부엌, 예쁜 공주같은 딸아이 방, 시원하게 디자 인 되어있는 아들 방, 신혼같은 안방, 아기자기한 거실. 한군데도 사랑이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이 그들의 행복, 이것이 그들의 사랑. 그들은 지금까지의 행복보다 더 많이 남은 행복을 위하여 살아 갈 것이다. 아이들에 이어 그들이 짊어질 또하나의 선물. 바로 그들에게 남은 영원한 행복.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방식대로 이 세상에 어우러져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름 아닌 '그들'이니까. ────────────────────────────────────────────────── 오래걸렸죠? 죄송해요, 글이 안 써지는 바람에 오래걸리고 말았습니다. 다음편은 대망의 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펌 문의가 계속 들어오는데요, 펌 문의는 제가 완결나고 공지로 띄워드릴테니 기다려주세요- 감상은 여전히 잘 읽고 있습니다^^; 답변 못 달아드려서 정말 죄송하구요, 꼭 완결나면 답변달게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표지 주신분들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거 아시죠? 모르신다구요? 알아주셔야해요^^ 싸이월드에 많이 놀러와 주시고, 카페 현재 오픈하고 있습니다. 가입하실 분은 지금 기회를 빌어 가입하세요^^ 늦은 115편에 죄송합니다. 그리고… 릭진 완결이었습니다^^ 읽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http://cafe.daum.net/wdfanfic http://www.cyworld.com/x_world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것 같습니다…. 권태기[倦怠期]_욕구불만 남편 [116] -完- 「죄송합니다, 8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휴진입니다.」 컴퓨터로 뽑은 듯, 정갈한 글씨가 굵고 검게 인쇄된 A4 용지의 네 모서리에 유리 테이프를 꼼꼼히 붙이고 는 구겨질새라, 조심스러운 손길로 병원의 현관에 붙여 넣는다. 꼼꼼히, 떨어질세라 꾹꾹 눌러 붙인 종이 에 담긴 메세지를 보고 씨익, 웃던 그는 한쪽 어깨에 맨 가방을 고쳐업고는 서둘러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건물 밖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긴 자신의 딸과, 그런 딸을 안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의 옆에 서서 있는, 이제 소년티가 물씬 풍기는 자신의 아들이 있었다. "휘연아, 아빠왔네. 이제 내리자." "싫어- 이렇게 있을래." 유천이 품에 안겨있는 휘연을 내리려하자 이제 7살이 된 휘연은 싫다며 더욱 유천의 목을 끌어 안는다. 곤 란하다는 웃음을 짓는 유천을 보고, 13살 치고 꽤 큰 휘은이 자신의 여동생을 보고 아니꼽다는 듯. "아저씨 팔 아프다잖아, 너같은 돼지 않고 있다간 당장에 팔이 부셔지고 마니까 어서 내려와." "흥, 오빠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도 몰라? 나는 공주님이야, 그래서 자도 돼." "미친거 아냐?" "휘은아, 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동생의 대답이 맘에 안 드는 듯 인상을 팍 찌푸리며 미친 거 아니냐며 말하던 휘은이 안내문을 붙이고 자 신들에게 다가오는 윤호에게 결국 한소리 듣고 만다. 그러자 동생은 얄밉게도 유천의 품에 안겨서는 메롱 을 하며 꺄르르, 웃다가 이내 유천의 품에서 내리고는 먼저 차 뒷좌석에 올랐다. 한참 못 마땅한 표정을 짓 는 휘은에게 유천은 이해하라는 듯 어깨를 두어번 토닥여주고 휘은을 뒷좌석에 태우고 문을 닫더니, 조수 석으로 와 문을 열고 탄다. 트렁크에 실린 짐을 체크한 윤호가 운전석에 오를 무렵, 휘은은 얄미운 휘연의 머리를 꿍, 하고 주먹으로 쥐어 박는다. 그리고는 윤호와 유천에게 불만을 토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아저씨- 휘연이 좀 봐요, 버르장머리가 없다구요. 아무리 막내고 딸이라지만 너무 오냐, 오냐 해주는 거 아니에요? 이러면 애들이 싫어한다구요, 휘연이 왕따 만들기 싫으면 지금부터라도 엄하게 대하셔야해요. 아까 저한테 하는거 봤잖아요-" "그래, 그래." 휘은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자, 윤호가 건성으로 대답하고 휘은은 "제발 새겨 들으시라구요!" 라고 꽥 소릴 지른다. 그러자 창문에 기대어 가만히 듣고 있던 유천이 피식, 하고 웃어본다. 윤호는 정말 분하다 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앞으로 휘연이는 못난이 공주님으로 부르면 되는거지?" "공주님도 안 돼요." "알았어, 그럼 우리 아드님 소원대로 휘연이는 못난이다-" "뭐야, 아빠!!!!!" 아들 말 대로 해주니, 이번에는 딸이 꽥 소릴 지른다. 그러자 휘연의 옆에 앉아있던 휘은이 뭐긴, 뭐냐는 듯 머리를 다시 한번 쥐어 박는다. 남매의 투닥 거리는 소리에 앞에 앉은 두 사람은 크게 웃어본다. 싸울때는 13살이고 7살이고 지능지수가 같단 말야, 라고 생각한 그들은 아이들의 싸움을 추스려본다. 그리고 윤호 는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인 국도를 기분좋게 달린다. ≠ "엄마-!" 휘은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직도 마냥 여린 꽃같이 아름다운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가 푹 안긴다. 그 녀의 핏기 없는 하얀 얼굴에는 미소가 띄워지고 온다고 수고했다며 품에 안긴 아들을 더욱 꼭 안아준다. 저번 봄 방학 이후로 처음보는 엄마의 모습에 휘은은 잔뜩 들 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휘은과 달리 휘연은 유천의 뒤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그녀가 딴 사람이라도 되듯 행동하는 휘연이다. "휘연아, 뭐해- 어서 엄마한테 가봐." "싫어-" 유천이 작고 가는 팔을 잡아 당기자 싫다며 유천의 큰 손에서 자신의 팔을 빼 내는 휘연이다. 그리고는 유천의 뒤에 꼭 숨더니 얼마 안 있어 유천에게 두 팔을 벌리며 안아 달리고 난리다. 유천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휘연을 안아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셨어요?" "예, 잘 지냈어요?" "덕분에요." 간단한 인사를 건네던 두 사람은 크지 않게 미소를 지어본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품에 안긴 자신의 딸 에게 향했다. 자신의 딸이지만 자신의 딸이 아닌 아이. 휘은과 휘연을 남겨두고 떠날 당시 휘은의 나이 7 살, 휘연의 나이 겨우 1살이었다. 어떤 사람이 1살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겠는가. 순전히 휘연은 유천이 키 웠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기에 휘연에게 있어 엄마의 존재는 유천이었고, 그녀는 말 그대로 그 저 '말만' 친 엄마인 셈이었다. 그런 딸의 모습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강요하지 않는다. 딸에게 자신 을 알아달라고, 내가 친 엄마이니 날 알아달라고, 미야는 휘연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동생을 바라보는 제 엄마의 쓸쓸한 눈길을 알아 챈 휘은은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으며 그녀를 끌어 당겼다. 그녀는 아직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의 아들의 머리를 대견스럽다는 듯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트렁크에서 짐을 다 꺼내 온 윤호가 다가왔고, 한달에 두번씩은 꼬박 꼬박 들리는 그이기에 그와의 어색함은 전혀 없는 미야가 익숙하게 그를 맞이했다. 이렇게 다섯 '가족'은 그녀의 집에 들어섰다. 아이들 방학을 맞이해서 미야가 있는 시골에 내려 온 그들이다. 휘은이는 해마다 있는 방학이며 시골에 내 려 보내 한달 내내 미야와 살게 한 윤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를 어색해 하는 휘연이도 함께 보내게 하려고 휘연을 비롯해 모두가 다 시골로 내려온 것이었다. 보름간 같이 지내려고 맘 먹은 윤호와 유천도 각자 회사나 병원에 휴가계를 냈고 내려온 터였다. 6년이 지난 세월, 윤호는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등까지 취득해 개인 소아과 병원을 차렸다. 다행 히 병원이 없는 동네에 차려서 그런지 병원이 영 안 되고 그러는 건 없었었다. 그리고 유천은 후계 자리를 자신에게 물려 주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정중히 거절하고 후계권을 이미 아들과 처까지 있는 유환에게 넘겨주었다. 후계권을 유환에게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연로하신 유천의 할아버지는 돌아 가셨고, 유독 자 신을 예뻐해준 할아버지였기에 유천은 몇날 몇일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때 곁에 있어 준 게 윤호였고, 다 행히 윤호와 휘은, 휘연 남매 때문에 유천은 몇일 안 되어 씩식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맡고 있던 대표이사 직에서 물러 난 유천은 유환의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하며 가끔씩 유환의 일을 봐 주기도 하며 집에서 아이들을 보았다. 밖에서 바베큐를 구워 먹고, 모닥불도 피우며 한껏 산장 분위기를 냈더니 미야에게 적응 못 하고 어색해하 던 휘연도 활짝 웃어보였다. 그러나 쉽게 미야에게 다가가지는 못 했고, 휘은이 계속 미야에게 붙어있는 것 처럼 자신도 유천의 곁에 붙어있기만 했다. 아이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자 어른들의 술자리가 펼쳐졌고, 일 찍 자는 것이 몸에 베인 휘연은 9시가 지난지 얼마 안 되어 골아 떨어졌다. 하긴, 오늘 아침 일찍 부터 놀러 간다고 유난히 설치던 휘연이긴 했다. 기분이 좋았던 모양인지 술을 꽤 한 유천은 정신이 비몽사몽했고, 휘 연을 데리고 침실로 가기에는 무리인 것으로 보였다. 윤호가 가려고 했지만 그때 휘은은 잠든 동생을 안으 며 자기가 데리고 가겠다고 말했다. 윤호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그래, 하고 웃어보이며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휘은이 휘연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갔고, 윤호는 술에 취해 잠들어 버린 유천의 고개를 자신의 어깨를 베도록 해준 후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드는군요." "응?" "유천씨랑 당신이요. …무섭도록 어울리는 거 알아요? 훗, 8년 가까이를 나랑 어떻게 살았을까, 할 정도예요. …정말 후회되지 않을 만큼 두 사람 어울려." "…고마워. …당신 아니었음, 우린 끝까지 서로 얼굴도 못 마주봤을거야." 그의 말에 그녀는 잔잔한 미소만 지어 볼 뿐이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일어서서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휘은이랑 같이 자겠다고, 윤호에게 유천과 같은 방을 써라고는 말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모 닥불 앞에 남은 두 사람. 바로 윤호와 유천. 윤호는 유천의 어깨를 더욱 끌어 안아본다.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내 인생, 최고의 행복한 기간이 아닐까 해. …너는 어때?" '너는 어떻니, 유천아….' ≠ 달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하얀 얼굴의 그가 조심스레 방 안으로 들어온다. 동생의 이불을 정리해 주고 있던 휘은은 엄마의 등장에 자신의 피곤함도 잊고 환하게 웃어본다. 큰 눈을 작게 휘며 웃는 건 영락 없는 윤호와 미야의 모습을 합쳐 놓은것이 틀림 없다. 엄마, 라고 부르려는 휘은에게 미야는 콧등 을 찡긋 하며 검지를 입가에 갖다대며 쉿, 한다. 그러자 휘은도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 안 있어 미야는 휘 은에게 다가와 휘연이 잠들어 있는 침대에 조심히 걸터 앉아본다. 그리고는 휘연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도 록 휘연의 긴 머리를 쓸어 넘겨본다. "…휘연이 참 예쁘지?" "하는 짓은 미워도… 엄마 닮았으니까…, 엄마랑 똑같이 생겼으니까 예뻐 해 주려고 노력해요." "훗,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벌써 내년이면 중학생이구나." "…엄마. 졸업식… 졸업식 와 줄거죠?" "그래…. 엄마가…, 엄마가 우리 아들 졸업식은 갈게." 휘은은 그녀의 품에 안겨 다행이다, 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한 곳은 자신을 낳아 준 어 머니 품. 휘은은 그녀의 품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품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그녀 역시, 든든한 아들에 게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휘은은 아까 낮에 유천의 품에 안겨 자신의 엄마에게로 가지 않으려던 휘연이 생각났다. …참으로 괘씸하게 생각됐다. 유천도 좋지만… 진짜 엄마는 미야인데, 왜 휘연은 미야에게 오지 않으려는 걸까, 왜 그런 휘연이 때문에 엄마가 또 쓸쓸해 해야하나, 하고 동생을 탓 해 보지만 휘은도 잘 알 고 있다. 자신은 그때 7살이었지만 휘은은 1살이었다는 걸. 전혀 기억이 없는게 당연했다. "엄마. …휘연이가 엄마를 몰라봐도 나는 엄마 알아보니까-" "…그래." "알아보니까…, 아까처럼… 아까처럼 엄마, 슬픈 표정 짓지 마요. 나중에… 나중에 휘연이가 더 크면 엄마 알아 볼 거니까…, 슬퍼하지 마요. …휘연이가 엄마 알아볼 때까지 내가 엄마 곁에 계속 있을게. …엄마. …나는, 정휘은은… 아직도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 "…응." 그녀는 눈물을 참으며 대답했다. 휘은은 여린 꽃같으면서도 강한 그녀를 꽉 끌어 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에 게 말했다.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라고. 어쩜, 미야에게 가장 큰 선물은 휘은이었을 지도 모른다. 한 때는, 비록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아들만 있음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 어린 아들인 휘은은 자신 이 엄마로써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줘서 때로는 너무 고맙다. "엄마도…, 휘은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 "응, 나도." 그때, 술에 취해 잠들은 유천을 안고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방 앞을 지나가다 작게 열린 문틈으로 조용한 집안에 잔잔하게 퍼지는 모자의 대화에 그는 왠지모를 미소를 짓고 만다. 자신의 사랑 때문에 어머니와 아 들이 원하지도 않는 생 이별을 하게 됐다는 것에 있어 큰 죄책감을 느끼는 그. 하지만 지금 모두가 이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기에, 이 상황에 대해 아무도 불평하지 않기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이다. 그렇게 그 날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 보름이 훌쩍 지나가고, 휘은과 휘연만 놓아두고 일때문에 서울로 올라온 유천과 윤호. 유천이 가려하자 휘 연은 무척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다른 때처럼 유천이 간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 큼 보름동안 미야가 맘에 들었단 말이겠지. 그리고 일주일 쯤 지나니까 휘연도 미야를 부를 마땅한 호칭을 찾지 못 해 자신의 오빠처럼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이제 점차 그 호칭이 익숙해지 겠지. 휘연이 그녀를 따른다 해서 유천은 서운하거나 하는 면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휘연이 그녀를 좀 더 가까이 했음 좋겠다는 마음이지. 서울로 돌아오는 길, 유천은 운전하는 윤호에게 슬그머니 말했다. "애들 없으니까 뭔가 조용하네." "그러게." "그러게가 뭐냐, 내가 말을 꺼냈음 계속 이어갈 생각을 해야지." "아, 그런 거 였어?" 신호를 받고 멈춘 윤호는 투덜거리는 유천을 보며 웃음을 참으며 말했고, 유천은 됐다는, 표정으로 윤호에 게 귀찮다는 손짓을 했고, 여느때처럼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 지점 에 달하자,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보았다. 뭘 그리들 열심히 구경하는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빼고 보는 사람들이다. 뭔지 궁금해진 유천도 창문을 열어 고개를 뺐고, 이내 유천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너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나한테 이럴 순 없는 거잖아!" "뭘 이럴 수 없다는거야?! 질린다는 걸 질린다고 말했을 뿐인데!" "니가 인간이니?! 니가 인간이야?! 그럼 결혼은 왜 했는데!" 길가에는 겨우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 녀가 크게 싸우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결혼 한 사이인 데 신랑쪽에서 벌써부터 신부에게 싫증이 난 모양이다. 왠지 익숙한 모양새를 본듯해 유천은 자신도 모르 게 피식 웃어본다. 어느새 윤호도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는 유천을 따라 자신 역시 웃어본다. 유천은 사람들이 쳐다보는지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싸우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철 없을때 결혼하면 저렇게 된다니까." "어떻게 아는데?" "어떻게 알긴. …우리도 저랬었잖아. 저렇게 길거리에서 저러지는 않았지만." 우리도 저랬었잖아, 하고 말하는 유천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쿡, 하고 웃어보인다. 윤호는 더 이 상 볼것도 없다는 듯 유천쪽 창문을 올려버리며 에어컨을 틀어 차를 출발 시킨다. 유천은 방금 전 커플이 계속 생각나는 듯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윤호에게 물었다. "나중에 저 남자 어떻게 될 것 같아?" 유천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 한 윤호가 갑작스런 질문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이해가 간다는 듯 씨익, 웃어보이더니 오랜 세월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여자랑 살다가… 다시 옛 부인이 그립겠지. 그리고는 평생 후회하면서 살거야." 윤호의 대답을 듣고 한참이나 윤호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유천은 이내 안면 근육을 풀며 미소를 짓는다. 그 리고는 그를 향해… "정답이야." -라고 말했다. 그런 유천의 모습에 윤호 역시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어린 나이에 철 없이 무턱대고 결혼해서, 결국 권태기를 맞고 이혼까지 해 버린 후, 뒤 늦은 후회로 인해 마음 앓이면 몇년. 그냥 질린다는 이유만으로 미래도 생각해보지 않고 덜컥, 이혼해 버린 어렸던 자신. '사랑'에도 책임이 있 다는 걸 한참후에야 깨달았던 자신. 그리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랬던 과거…. 그 사람이 자신의 것이 안 되어서야 끝나버린…, 너무나 허무하고도 냉랭했던 '권태기' "권태기는, 너무 사랑해서 한번쯤은 겪는 거라지?" "응?" "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어. 우리가 한참 힘들었을 그 시절에… 니가 나에게 말했던 말이야." "…그래." 유천은 그때가 생각나는 지 쓴 미소를 지으며 그래, 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 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과거를 회상하는데는.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시간을 회상하는데에 말따위는 필요 없었다. 열중해서 운전을 하던 윤호는 유천에게 말했다. "지금 생각하니까 그때의 내가 왜 그렇게 한심했는지 몰라." "푸훗…. 이제 알았냐? 한심한 너때문에 내가 고생 좀 했다." "그래. …그러니까 지금 엄청 보답하고 있잖아?" 윤호의 말에 유천은 크게 웃어버리고 만다. 7년의 아픔, 평생의 보답. 서로를 잃어버리고 서로를 다시 찾 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힘들어했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이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였기에 그 누구도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에 대한 보답은 '두 사람의 권태기가 끝나는 것'이었기에. "권태기는 정말 서로를 많이 사랑한 사람들만의 특권이야." "그래, 특권이야." "그런데 말하고 싶어. 이 세상 모두에게. …사랑한다면 그 상대에게 질리게 되더라도 그 상대를 놓지 말라고. 그럼… 누구누구 처럼 평생 후회한다고." 윤호의 말이 끝나자 유천은 윤호를 바라 보았고, 둘은 마주보며 싱긋 웃어보았다. 앞으로 서로에게 화를 내기전 13년 전의 그 아픔을 떠 올리고, 앞으로 서로에게 무엇인가를 원하기 전 13년 전의 그 시련을 떠 올려 더 나은 행복을 만들기로 한 그들. '권태기' 힘들고도 어려운 그 기간. 하지만. 서로를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만 겪을 수 있는 특권, 바로 '권태기'. '권태기'를 이겨내고 사랑을 다시 이루었을때, '권태기'는 막을 내린다.